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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退勤길 마음 울리는 망치질, 年維持·補修費用 7000萬 원|新東亞

出退勤길 마음 울리는 망치질, 年維持·補修費用 7000萬 원

[名作의 祕密]

  • 이광표 西原大 휴머니티敎養大學 敎授

    kpleedonga@hanmail.net

    入力 2022-08-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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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치질하는 사람’, 20年間 光化門 지켜

    • 튀니지 구두共에 令監 얻어 만든 作品

    • 單純하고 꾸밈없는 움직임이 만드는 感動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흥국생명 사옥 앞 조형물 ‘망치질하는 사람’. [동아DB]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흥국생명 社屋 앞 造形物 ‘망치질하는 사람’. [東亞DB]

    韓日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年 6月. 當時 서울 光化門 一帶는 連日 붉은 惡魔의 물결로 뒤덮였다. 그 때 光化門 네거리 隣近 새문안로의 흥국생명 社屋 앞에 特異한 造形物이 하나 들어섰다. 키 22m에 몸무게 50t. 巨大한 人間이 목을 若干 숙인 채 多少 구부정한 姿勢로 망치질하는 모습을 形象化한 作品이다. 作品 이름은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 맨·Hammering Man)’. 泰光그룹이 흥국생명빌딩을 建立하면서 美國 設置美術家 조너선 보롭스키에게 注文 製作한 것이다.

    이 造形物의 特徵은 망치를 든 팔이 實際로 움직인다는 點. 作品에 모터를 設置해 망치를 든 팔이 위아래로 움직이도록 했다. 가까이서 暫時 멈춰 눈여겨보면 망치를 든 오른손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確認할 수 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速度는 35秒에 한 番.

    光化門 一帶 職場人이나 近處를 자주 찾는 사람에겐 꽤 익숙해졌지만, 길을 걷다 巨大한 人間의 망치질을 구경할 수 있다는 건 新鮮한 만남이고 흥미로운 經驗이다. 저 巨人의 망치질을 보면 여러 궁금症이 밀려온다. 저 사람은 누구인지, 왜 망치질을 하는 것인지, 대장장이의 망치질인지, 木工의 망치질인지, 구두 修繕工의 망치질인지, 只今 즐거운 마음인지, 고통스러운 마음인지, 저 높은 곳에 매달려 있는 얼굴은 어떤 表情인지, 오늘 밤엔 평화로운 休息을 取할 수 있을지….

    스무 살 망치질하는 사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치된 ‘망치질하는 사람’. 광화문에 있는 동명의 작품에 비해 크기가 다소 작다. [동아DB]

    獨逸 프랑크푸르트에 設置된 ‘망치질하는 사람’. 光化門에 있는 同名의 作品에 비해 크기가 多少 작다. [東亞DB]

    最近 들어 좀 나아졌다고 하지만 韓國의 거리 造形物(거리美術, 公共美術)은 大部分 뻔하고 常套的이다. 서울과 地方, 例外가 없다. 서울 都心의 한 言論社 앞 造形物은 넥타이를 맨 男性이 노트북을 들고 달려가는 모습이다. 言論社와 노트북이라니, 너무 舊態依然하다.

    서울 都心의 한 博物館 앞에는 두 男女가 벤치에 앉아 幸福하게 談笑를 나누는 모습의 造形物이 設置돼 있다. 뜬금없기도 하고 좀 誘致하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거리 美術은 大體로 創意性이 不足하다. 그렇다 보니 感動을 주지 못한다. 圓이나 曲線, 直選으로 構成한 抽象的 雰圍氣의 造形物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망치질하는 사람’은 좀 다르다. 敢히 말하건대, 이 作品은 거리 造形物 가운데 斷然 獨步的이다. 월드컵의 熱氣에 묻혀 이 作品이 當時에 그리 浮刻되지 못했지만, 2002年 ‘망치질하는 사람’의 서울 出現은 國內 거리美術 歷史에서 一大 事件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 設置된 지 벌써 20年이 지났다. 20年 동안 光化門과 새문안로를 지켜보며 쉼 없이 망치질을 해온 저 사람. 때로는 힘들고 지루해 망치를 집어던지고 싶었을 텐데…. 스무 살의 이 靑年은 이제 우리의 이웃이다. 어엿한 서울市民이 된 것이다.

    20年間 한자리에서 默默히 망치를 두드리는 모습은 우리에게 勇氣를 주고 때로는 마음을 서글프게 한다. 奧妙한 感情이다. 저 奧妙한 感情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망치질이라고 하는 人間의 勞動을 表現했기 때문일까. 勞動을 表現한 作品은 많은데, 왜 唯獨 이 作品이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일까.

    가장 크고 힘센 망치질

    ‘망치질하는 사람’의 始發點은 1979年 뉴욕에서 열린 步롭스키의 個人展이다. 步롭스키는 이 展示에 3.4m 높이의 나무 조각 ‘워커(Worker)’를 선보였다. 新鮮하다는 反應이 나왔고 그는 以後 材料를 나무에서 鋼鐵과 알루미늄으로 바꾸었다. 크기도 키웠고 作品 이름도 ‘망치질하는 사람(해머링 맨)’으로 바꾸었다. 金屬 材質의 ‘망치질하는 사람’은 그해 美國 뉴욕에 처음 設置됐고, 以後 美國 시애틀·로스앤젤레스·미니애폴리스, 獨逸 프랑크푸르트, 日本 나고야, 스위스 바젤, 노르웨이 릴레스톰 等 11個 都市에 設置됐다. 서울 흥국생명 앞에 設置된 ‘망치질하는 사람’은 그 가운데 8番째 作品.

    世界 곳곳에 서 있는 ‘망치질하는 사람’은 크기와 무게가 모두 다르다. 서울 光化門의 ‘망치질하는 사람’이 가장 크고 가장 무겁다. 全體 무게 50t에 망치를 든 오른팔 무게만 4t이다. 그래서 全體的으로 肉重하고 雄壯하다. 망치를 쥐고 徐徐히 오르내리는 팔의 움직임도 드라마틱한 느낌을 준다. 이 作品의 所藏者는 泰光그룹의 세화美術館(흥국생명빌딩 3層)이다.

    흥국생명은 2008年 ‘망치질하는 사람’을 道路 쪽으로 4.8m 옮겼다. 市民애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當時에는 造形物이 建物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光化門 네거리 쪽(東쪽)에서는 잘 보이지만 西大門 네거리 쪽(西쪽)에선 잘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아쉬움을 解決하려고 5m 가까이 道路 쪽으로 빼낸 것이다. 元來는 全體를 鐵製로 製作했지만, 망치질의 負擔을 줄이고자 망치와 망치를 든 오른팔을 가벼운 알루미늄 材質로 交替하기도 했다.
    ‘망치질하는 사람’은 實際 勞動者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只今은 每日 午前 8時부터 午後 7時까지 망치질하고 週末과 公休日엔 쉰다. 5월 1日 勞動節에도 망치질을 쉰다. 點檢 및 維持 管理 費用으로 1年에 7000萬 원假量 들어간다고 한다.

    口頭, 구두 修繕工, 망치질

    빈센트 반 고흐 1886년 작품 ‘낡은 구두 한 켤레’. [Gettyimages]

    빈센트 반 고흐 1886年 作品 ‘낡은 구두 한 켤레’. [Gettyimages]

    步롭스키는 20代 時節 미니멀리즘과 팝아트에 빠졌다. 그러나 40代 以後 사람의 肉體에 關心을 갖게 됐고 人體 表現을 통해 自身의 獨自的 美術 世界를 構築해 나갔다. 그림에서는 ‘달리는 사람’(러닝맨·Running Man)’ 聯作, 彫刻에서는 ‘망치질하는 사람’ 聯作이 代表的이다.

    그런데 ‘망치질하는 사람’의 誕生 過程이 興味롭다. 步롭스키는 어린 時節 아버지가 들려준 親切한 巨人 이야기에서 이 作品의 靈感을 얻었다고 한다. 以後 巨人의 모습을 어떻게 視覺的으로 具現할지 苦悶했다. 具體的 形象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繼續 苦悶하던 中 1976年 한 張의 寫眞을 만났다. 튀니지의 구두 修繕工이 망치질하는 모습을 찍은 寫眞이다. 口頭, 修繕, 망치질…. ‘망치질하는 사람’의 形象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렇다면 저 망치질은 튀니지 구두 修繕工의 망치질이란 말인가. 이 대목에서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口頭 그림이 떠오른다.

    1880年代 고흐는 여러 點의 口頭 그림을 그렸다. 고흐의 그림 속 구두들은 모두 낡은 모습이다. 그래서 作品의 題目도 大部分 ‘낡은 구두’다. 이 가운데 1886年作 ‘낡은 구두’ 그림은 後날 哲學者와 美術史家의 關心을 끌면서 藝術의 存在 意味에 對한 論爭을 觸發했다. 論爭에 參與한 사람은 獨逸의 實存主義 哲學者 마르틴 하이데거, 美國의 美術史家 메이어 샤피로, 프랑스의 解體主義 哲學者 자크 데리다. 모두 20世紀의 錚錚한 哲學者이자 美術史家다.

    고흐의 구두에 먼저 注目한 이는 하이데거다. 1935年 著書 ‘藝術 作品의 根源’을 통해 고흐의 구두 그림에 對한 哲學的 解釋을 내놓았다. 內容은 이렇다. “이 구두의 主人은 農夫 또는 農夫의 아내다. 고흐는 신발이라는 道具를 통해 農村 사람들의 고단한 삶, 大地와의 聯關性, 거기 깃든 存在의 眞理(存在論的 眞理)를 드러냈다. 口頭 自體가 重要한 것이 아니라 구두라는 存在의 意味를 드러냈다는 것이 重要하다. 그것이 藝術이다.”

    구두와 망치에 담긴 哀歡

    하이데거는 이런 論議를 거쳐 自身의 藝術論을 披瀝했다. “藝術 作品은 아름다움과 關係하는 것이 아니라 存在者(구두)가 自身의 存在 意味를 드러내는 것이다. 藝術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眞理를 具現하는 하나의 方式이다.” 고흐의 구두 그림을 통해 藝術의 存在 意味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고흐가 그린 구두가 正말로 農夫(農夫의 아내)의 것인가. 그걸 어떻게 立證할 것인가. 30餘 年이 흐른 1968年, 美術史家 메이어 샤피로는 이렇게 反駁했다. “그림 속 구두는 農夫의 것이 아니다. 반 고흐가 파리에서 生活할 때 神은 것이다. 구두는 고흐 自身이 걸어온 삶, 藝術家로서의 苦惱, 挫折과 熱情 等을 象徵한다. 結局 口頭 그림은 고흐의 肖像畫이자 自畫像이다.” 샤피로는 고흐가 파리 時節 구두를 즐겨 신었고 구두를 그리고 싶었다는 證言까지 引用했다. 그러나 이 主張 또한 샤피로의 主觀的 主張일 뿐이다.

    10年 뒤인 1978年, 데리다는 解體主義者답게 第3의 視角을 提示했다. 데리다는 그림 속 구두가 누구의 것인지 確定할 수 없다고 보았다. “主人에 關한 論議나 解釋은 無意味하다. 藝術은 늘 다양한 解釋을 가져오고, 多樣한 생각을 生成하는 것이 藝術이다.”

    步롭스키의 ‘망치질하는 사람’을 얘기하면서 ‘고흐의 낡은 구두 論爭’을 張皇하게 紹介한 것은 구두의 象徵性 때문이다. 步롭스키는 구두 修繕工이 망치질하는 모습이 담긴 寫眞을 보고 이 作品을 形象化했다. 구두를 修繕하는 行爲를 통해 무언가 깊은 洞察을 얻었음에 틀림없다. 구두는 그런 것이고 망치질 또한 그런 것이다. 고흐 그림 속 구두의 實體를 놓고 論爭이 있지만 그럼에도 不拘하고, 고흐 그림에서처럼 구두에는 우리네 삶의 哀歡과 來歷이 담기게 마련이다. 그런 구두를 修繕하기 위해 망치질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感動的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망치질하는 사람’李 구두 修繕工이란 말인가. 그렇진 않다. 그것이 구두를 修繕하는 망치질이든, 대장장이의 망치질이든, 木工의 망치질이든 相關이 없다. 구두 修繕工의 망치질에서 始作했지만 우리네 日常의 고단한 망치질로 받아들여도 無妨할 것이다. 망치질은 人間 實存의 삶 그 自體를 象徵하는 動作인 셈이다. 데리다의 見解처럼 말이다.

    망치질의 哲學, 움직임의 美學

    步롭스키가 萬若 움직임 要素를 導入하지 않았다면 이 作品은 어떠했을까. 움직임이 없었으면 그저 觀念的이고 常套的인 勞動者像(像)으로 머물렀을 것이다. 움직임이 있었기에 人間의 本質, 삶의 意味에 다가갔다. 이러한 觀點이 바로 創意性이다.

    ‘망치질하는 사람’을 두고 “勞動의 崇高함과 現代人의 孤獨을 잘 表現했다”는 評價가 많다. 이 또한 이 作品이 直接 망치질을 하기에 可能하다. 現代社會의 勞動이라고 하는 무거운 主題를 흥미로우면서도 餘韻이 깊게 具現한 것도 이 德分이다.

    그런데 하루 終日 망치질하는 모습이 嚴肅하고 듬직하지만 때로는 限없이 쓸쓸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망치질하는 사람’은 은유적이며 象徵的이다. 그런데 그 隱喩나 象徵이 複雜하지 않고 衒學的이지도 않다. 단순명료하다. 삶 속에서 가져왔기 때문이다. 쉽고 便安하지만 餘韻이 깊다. 그 餘韻은 곧 省察로 이어진다.

    ‘망치질하는 사람’은 또한 지나치게 멋 내지 않았다. 어떤 距離 造形物의 境遇, 作家의 哲學을 誇示라도 하려는 듯 지나치게 폼을 잡아 보는 이에게 負擔을 준다. 그러나 이 作品은 폼을 잡지 않아 더욱 좋다. 우리 日常 속에서 人間 存在를 들여다봤기에 可能한 일이다. 그 核心이 單純明瞭한 망치질이다. 國內의 어느 造形物보다 가장 魅力的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造形物은 그 모습이 平凡하다면 平凡하고 特異하다면 特異하다. 巨創하게 말하면 勞動하는 人間의 모습, 素朴하게 말하면 그저 살아가는 모습이다. 藝術이 삶이라고 할 때, 이 망치질하는 사람은 그 삶을 가장 꾸밈없이 보여준 것이다.

    서울驛 걷는 사람

    2009년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빌딩 외벽에 설치한 미디어파사드에 영국 미술가 줄리언 오피 작품 ‘걸어가는 사람들’. [동아DB]

    2009年 서울 中區 서울스퀘어 빌딩 外壁에 設置한 미디어파사드에 英國 美術家 줄리언 오피 作品 ‘걸어가는 사람들’. [東亞DB]

    서울驛 앞에는 서울스퀘어 빌딩이 있다. 예전의 待遇센터빌딩이다. 서울驛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이 建物은 한 時節 서울의 象徵이었다. 이 建物의 外壁 파사드에선 每日 밤 미디어아트가 펼쳐진다. 서울스퀘어 빌딩의 4~23層 外壁 타일에 구멍을 뚫어 4萬2000餘 個의 LED를 設置하고 그것을 캔버스 삼아 動映像을 선보이는 形式이다. 가로 100m, 세로 78m 크기로, 世界 最大 規模의 미디어 캔버스라고 한다. 가나아트센터는 2009年부터 이곳에서 미디어아트 프로젝트를 企劃해 여러 篇의 映像을 上映해 오고 있다. 그中 가장 두드러진 作品은 英國 美術家 줄리언 오피의 ‘걸어가는 사람들(워킹 피플·Walking People)’이다.

    映像 속에선 줄리언 오피가 만들어낸 單純化된 모습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걸어간다. 수많은 사람은 한쪽을 向해 걷고 걷는다. 그들의 걸음은 反復的이지만 지루하거나 느슨하지 않다. 始終 活氣가 넘친다. 한便으로 모두 한쪽 方向을 向해 劃一的으로 걷는다는 點에서 多少 서글프기도 한다.

    어두운 밤, 서울驛을 나서면 巨大한 미디어 캔버스 위로 熱心히 걸어가는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이 作品은 新鮮하고 省察的이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 저마다 事情은 다르지만 우리는 어딘가로 가야 하기에 더 切切하게 다가온다. 줄리언 오피는 映像 속 사람들을 最大限 單純化해 表現했다. 원으로 表現된 얼굴, 線으로만 表現된 몸體. 人間 삶의 군더더기를 모두 除去하고 最小限의 本質만 남긴 것이다. 그런 모습의 사람들이 걷고 또 걷는다. 여러모로 光化門의 ‘망치질하는 사람’과 겹치는 대목이 있다.

    서울驛을 빠져나오는 수많은 사람이 맞닥뜨린 豫想치 않은 만남과 낯선 感動, 그건 새문안로에서 ‘망치질하는 사람’을 만나는 新鮮함과 恰似하다. 豫想치 못한 만남은 우리로 하여금 世上을 낯설고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그것은 省察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省察로 이르는 過程이 어렵지 않고 便安하며 재미있고 生動感 넘친다. 藝術에서 이보다 더한 魅力이 어디 있을까.

    망치질 速度 60秒 vs 35秒

    世界 곳곳에 서 있는 11名의 ‘망치질하는 사람’들 가운데 서울 光化門의 것이 가장 크고 힘이 가장 세다. 망치질 速度도 가장 빠르다. 1分에 한 番이 아니라 35秒에 한 番 망치질을 한다. 너무 느리다는 怨聲(?) 때문에 망치질 速度를 調整했기 때문이다. 이 逸話는 흥미로운 點을 示唆한다. 周邊 環境과 雰圍氣, 사람들의 受容 方式 等에 맞추어 망치질 速度를 調節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1分에 한 次例 망치질할 때엔 多少 느리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35秒에 한 次例 망치질을 하는 걸 보니 ‘저건 좀 빠르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個人(세화美術館) 所藏品이지만 거리에 設置한 公共美術이라는 點에서, 所藏者가 사람들의 意見을 反映해 망치질 速度를 調整할 수도 있으리라. 더 빨라져야 할지, 좀 느리게 하는 게 좋을지. 우리 社會에 스트레스가 많을 땐 좀 빨리, 平和로운 땐 좀 천천히 말이다. 이에 關해 科學的 心理學的으로 分析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누군가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想像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名作은 이렇게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이광표
    ● 1965年 忠南 豫算 出生
    ● 서울대 考古美術史學科 卒業
    ● 高麗大 大學院 文化遺産學協同過程 卒業(博士)
    ● 前 동아일보 論說委員
    ● 著書 : ‘그림에 나를 담다’ ‘손 안의 博物館’ ‘韓國의 國寶’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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