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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留學生 便紙 “中共産黨은 바이러스 같은 存在”|新東亞

中國 留學生 便紙 “中共産黨은 바이러스 같은 存在”

中共産黨에 買收돼 中國 讚揚하는 韓國 學者들

  • 街吳玭(高彬·假名) 中國人 留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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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入力 2020-05-05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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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共産黨, 물이 종이에 스며들 듯 韓 浸透 中

    • 언제부터인가 韓國이 中國 닮아가고 있어

    • 코로나19 隱蔽·欺瞞으로 中國人 無防備로 죽어나가

    • 어릴 적부터 洗腦敎育…韓國에서도 監視받아

    1월 1일 홍콩 시내에서 대규모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뉴시스]

    1月 1日 홍콩 市內에서 大規模 民主化 要求 示威가 벌어졌다. [뉴시스]

    저는 中國에서 온 留學生입니다. 現在 韓國 A大學 大學院에서 工夫하고 있습니다. 中國에서 태어나고 자란 中國人인 제가 韓國에 와서 工夫하는 理由는 무엇일까요. 異常하게 여기실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眞正한 學問을 배우기 위해서는 中國共産黨 治下의 中國을 떠나야 한다고 判斷해 韓國에서 工夫하게 됐습니다.

    어릴 적부터 洗腦敎育 받아

    어린 時節부터 中國共産黨 政府의 洗腦敎育을 받았습니다. 幼稚園에서 ‘共産黨이 없으면 新中國度 없네’ ‘우리 偉大하신 樹齡 마오쩌둥(毛澤東), 우리를 이끌어 앞으로 나아가네’ 같은 노래를 배웠습니다. 勿論 다른 노래도 배웠지만 거의 다 中國共産黨을 稱頌하거나 오늘날 中國共産黨 治下의 幸福한 生活을 禮讚하는 노래였습니다. 

    마을에서 週期的으로 共産黨을 宣傳하는 映畫도 봤습니다. 映畫의 주된 內容은 中國共産黨이 主軸이 돼 日本을 물리친 抗日戰爭(抗日戰爭), 農民을 搾取·虐待하는 地主를 打倒하는 ‘백母女(白毛女)’, 中國人民解放軍이 朝鮮(北韓)을 도와 韓半島에 쳐들어온 美軍을 쳐부순 抗美援朝戰爭(抗美援朝戰爭·6·25戰爭) 等 階級鬪爭과 戰爭이었습니다. 映畫 內容 大部分이 거짓인 줄도 모르고 신나게 본 記憶이 생생합니다. 

    初等學校 入學 後부터 大學 時節까지 저를 힘들게 한 것은 政治思想 科目이었습니다. 社會主義·共産主義 理念, 마르크스-레닌 思想, 마오쩌둥 思想, 共産黨 色彩가 덧씌워진 時事 問題, 中國의 視角으로 바라본 世界 問題가 그것입니다. 中國 近·現代史 亦是 必須 敎科目이라 入試를 위해 歷史的 事實을 熱心히 暗記해야 했습니다. 

    어린 時節이었음에도 中國共産黨이 가르치는 歷史가 相當 部分 歪曲됐다는 것 程度는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特히 古代史 部分에서 秦始皇(秦始皇) 等 歷史上 暴君의 惡行을 强調하며, 隱然中 中國共産黨 統治와 對比시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만 基本的으로 敎科書가 가르치는 內容에 對해 큰 疑心을 품지는 않았습니다.



    中國 古典 歪曲해 共産黨 宣傳

    大學에 進學할 무렵 海外에서 祕密裏에 傳해져 暗暗裏에 읽히던 禁書(禁書), ‘구평共産黨(九評共産黨·中國共産黨에 對한 아홉 가지 評)’을 읽게 됐습니다. 冊을 읽는 瞬間 저는 混亂에 빠졌습니다. 20年 동안 배워온 모든 것을 뒤엎는 內容으로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特히 中國共産黨 治下에서 發生한 大躍進運動, 文化大革命 等으로 數千萬 名의 中國人이 死亡했다는 것은 큰 衝擊으로 다가왔습니다. 衝擊에 冊을 읽다 덮은 저는 끝까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冊欌 깊숙이 숨겼습니다. 한참 지나서야 다시 꺼낼 勇氣가 생겨 드디어 玩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時間이 지난 後에야 눈이 漸漸 뜨이기 始作했고 그동안 中國共産黨으로부터 注入받은 것은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高等學校 3學年 受驗生일 때 저는 過重한 學業 競爭으로 心身이 疲弊해진 狀態였습니다. 氣分 轉換 삼아 中國 古典을 펼쳤습니다. 口語體 現代 中國語가 아닌 文語體 苦戰 中國語로 돼 있어 當時 저의 知的 水準으로는 完全히 解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틈틈이 읽고 一部를 理解하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慰安이 됐습니다. 그 後부터 古典의 魅力에 빠지게 됐습니다. 

    大學에 進學한 後에는 相對的으로 餘暇 時間이 늘어났습니다. 時間을 割愛해 苦戰을 原文으로 읽고 工夫했습니다. 이를 통해 入試 工夫에서 느낄 수 없었던 精神的 喜悅을 느꼈습니다. 人生觀도 確立해 갔습니다. ‘論語’ 等 古典을 읽으면서 옛 聖人들의 智慧와 洞察에 歎服하기도 했습니다. 古典을 現代 中國語로 옮겨 더 많은 사람이 읽고 깨닫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大學 時節 저는 學科 助敎로 일했습니다. 그 過程에서 學校의 行政 시스템을 들여다볼 機會를 얻었습니다. 中國 各級機關이 그러하듯 中國 大學에는 어김없이 共産黨 組織이 構築돼 있습니다. 例를 들어 大學 校長(總長)이라는 敎務行政 責任者가 있으면, 別途로 中國共産黨委員會 書記(書記)가 存在합니다. 두 자리는 名目上 同級이지만, 黨委員會 組織이 學校 最高영도機構라고 法令에 明示합니다. 따라서 學校行政機構는 黨機構의 눈치를 살펴야 합니다. 助敎로 일하는 동안 中國 內 大學에서는 正常的인 學術 活動을 하기에는 많은 制約이 따른다는 것을 直接 體驗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韓國 留學을 選擇하게 된 理由 中 하나입니다.

    韓國에서도 中共産黨 監視받아

    助敎로 일하면서 또 다른 現象도 目睹했습니다. 中國 內 名門 大學들과 著名 學術機關들은 中國 古典, 拷問(古文) 分野 硏究에 莫大한 人力과 豫算을 投入하고 있습니다. 專門 書籍도 많이 發刊합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批判을 위한 批判을 하는 硏究 書籍을 多數 發刊하고 있었습니다. 重要 苦戰 解釋에서는 決定的인 部分을 曲解해 讀者를 誤導하기도 했습니다. 孔子 思想이 代表的인 例입니다. 以外에도 中國共産黨은 古典에서 自身들에게 유리한 內容만 拔萃해 宣傳 道具로 使用하거나, 中國共産黨의 立場과 代置된 內容이면 封建社會의 陳腐한 思想이라는 式의 맹批判을 합니다. 이러한 理由로 저는 學問의 精髓(精髓)를 攄得하기 위해서는 中國을 떠나야 한다는 決心을 굳혔습니다. 

    韓國에서 大學院 生活은 즐거웠습니다. 무엇보다 政治思想 敎科目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願하는 科目을 選擇해 자유롭게 工夫할 수 있었습니다. 專攻 分野 碩學도 많이 만났습니다. 이분들로부터 머리로만 學問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도 實現하는 것이 眞正한 工夫임을 배웠습니다. 知識뿐만 아니라 學問을 하는 態度를 익힌 것은 中國에서는 經驗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 다른 즐거움은 다양한 冊과 資料를 읽을 수 있다는 點입니다. 言論·出版 自由가 制約된 中國과 달리 다양한 知識과 생각을 담은 資料를 接할 수 있었던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아울러 中國共産黨의 嚴格한 監視와 統制를 벗어나 制約받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면서 硏究 活動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즐거움이었습니다. 共産化 以後 傳統文化·思想이 破壞된 中國과는 달리 中國 傳統文化·思想 硏究가 活潑한 韓國, 臺灣, 日本의 存在에 고마움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즐거움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外國에 왔다고 해서 中國共産黨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줄 알았으나 現實은 全혀 아니었습니다. 中國 留學生 中에는 공청團원·共産黨員이 많은데 내가 工夫하는 學科에도 여러 名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海外에서도 中國共産黨의 細胞로 活動하는 듯했습니다. 

    韓國 生活에 適應한 後 學科 工夫에서도 漸漸 頭角을 드러낼 무렵, 共産黨員인 中國 留學生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元來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는데 急速度로 親해졌습니다. 그 後로부터 그 學生은 자주 저를 MT에 招待하고, 때로는 같이 놀러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를 中國共産黨 海外擔當機關이 主催한 行事 스태프로 데려가 넉넉한 謝禮金을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그 學生과 사이가 틀어진 것은 一瞬間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中國共産黨의 問題點을 指摘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저를 보는 그 學生의 눈길이 冷冷해졌습니다. 後날 그 學生이 駐韓 中國大使館과 連絡을 주고받는다는 事實을 알게 됐을 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가 그 學生의 包攝 對象이었음을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外國에 나와도 共産黨의 監視網에 놓여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촘촘하게 짜인 監視網…SNS까지 統制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015년 10월 22일 영국 런던의 공자학원을 방문해 1000번째 교실 개설을 축하하고 있다.  [뉴시스]

    시진핑 中國 國家主席(오른쪽)李 2015年 10月 22日 英國 런던의 孔子學원을 訪問해 1000番째 敎室 開設을 祝賀하고 있다. [뉴시스]

    온라인上에서도 저는 監視 對象이었습니다. 2019年 7月 中國 산둥省 칭다오에서 外國人 敎師가 幼稚園生을 性醜行한 事件이 發生했습니다. 수많은 中國人, 特히 學父母를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저도 關聯 揭示物을 위챗에 共有했습니다. 事件 發生 이튿날, 中國 政府는 “이 事件이 流言蜚語이고 關係者에게 懲戒를 내리겠다”고 宣布했습니다. 中國共産黨이 이런 式으로 問題를 잠재우는 것을 많이 봐왔기에 저는 믿지 않고 이에 對한 批判 글을 여러 番 올렸습니다. 

    며칠 後 저는 제 위챗 計定의 親舊 追加 機能이 制限돼 있음을 發見했습니다. 中國共産黨의 監視網이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 있는지도 實感했습니다. 事件 後 마음속에 禁飭語를 定해 말하거나 行動하기 前 스스로 檢閱하기 始作했습니다. 

    그 무렵 “마오쩌둥은 20世紀 3代 獨裁者 中 한 名”이라는 韓國人 敎授님의 말에 對해 어느 中國 留學生이 甚하게 反駁하는 것도 지켜봤습니다. 이런 일을 格을 때마다 中國에서 느꼈던 窒息死할 것 같은 답답함을 다시 經驗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中 저를 다시 한番 驚愕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난해 美國에서 居住하다 韓國으로 돌아온 韓國人을 만났습니다. 그로부터 中國共産黨이 世界 各國에 設立한 孔子學원의 實態를 들었습니다. 中國共産黨이 ‘孔子’의 이름으로 設立한 孔子學원의 實相이 共産主義 體制 宣傳機構이자 스파이 機關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半信半疑하는 마음으로 圖書, 論文, 인터넷 資料를 뒤졌습니다. 이를 통해 그 韓國人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저로서는 正말 괴로웠습니다. 무엇보다 孔子學원이 儒家 思想을 歪曲한다는 事實에 가슴이 아프고 한便으로 火도 났습니다. 袖手傍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中國共産黨의 무서움을 알고 있기에 두려운 마음이 앞서 勇氣를 내지 못했습니다. 

    제가 마음을 바꾸게 된 契機는 지난해 홍콩 民主化 示威, 올해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 事態입니다. 홍콩 警察이 市民들에게 無慈悲한 暴力을 恣行하는 場面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警察이 電氣棒으로 市民을 暴行하는 映像을 보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 後로 저는 憂鬱해졌습니다. ‘아시아의 神社’로 불리던 홍콩 警察이 中國共産黨의 敎師를 받아 惡魔로 突變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韓國이 中國 닮아가고 있어

    올해 全 世界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 事態를 보면서 다시 한番 깨달았습니다. 唯物論에 立脚한 中國共産黨 政府는 사람의 生命을 가볍게 여기고, 自國民을 人間 取扱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中國 當局의 隱蔽와 欺瞞劇 속에 수많은 中國人이 無防備로 感染되고 죽어나갔습니다. 結局 바이러스는 中國을 넘어 全 世界로 퍼져 大災難을 일으켰습니다. 

    제가 勇氣를 내 이 글을 쓰게 된 理由는 제가 사랑하는 韓國, 韓國人이 걱정돼서이기도 합니다. 韓國에서 살아가는 동안 ‘언제부터인가 韓國이 中國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시진핑의 中國夢에 同參하고자 한다는 韓國 政治 指導者의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特히 韓國 젊은 世代들, 進步 性向 人士들이 中國共産黨의 實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無批判的으로 中國을 좇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두려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中國共産黨이 물이 종이에 스며들 듯 浸透해 韓國을 植民地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 事態를 지켜보면서 中國共産黨은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같은 存在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共産主義라는 바이러스가 韓國에 소리 所聞 없이 浸透해 體制를 망가뜨리고 民主主義를 破壞할 수 있다는 憂慮가 듭니다. 제가 判斷하기에 中國共産黨은 보이지 않게 韓國 社會 깊숙이 魔手를 뻗쳤습니다. 中國 政府 돈에 買收돼 中國共産黨을 讚揚하는 글을 쓰는 學者들, “中國과 가까이 지내야만 韓國의 未來가 있다”고 公言하는 政治人들을 보면서 韓國 社會에 ‘羊의 탈을 쓴 늑대’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韓國 國民 여러분, 中國共産黨의 實體를 제대로 보고 警覺心을 가져주시기를 呼訴합니다. 韓國의 未來가 달린 일입니다.

    * ‘신동아’는 이 글을 쓴 中國 留學生의 身元을 確認한 後 投稿를 받았으나 身邊 保護를 위해 身上 情報는 밝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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