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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아 1千 駱駝, 로마군을 潰滅하다|신동아

動物萬事

파르티아 1千 駱駝, 로마군을 潰滅하다

  • 이강원 動物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入力 2020-05-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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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驕兵必敗(驕兵必敗), 軍事力의 剛함만 믿고 섣불리 敵에게 威嚴을 보이려 하면 반드시 敗한다는 뜻이다. 紀元前 53年 只今의 터키 땅인 카레에서 로마 大君(大軍)李 파르티아 軍隊가 뿌린 ‘화살비’를 맞고 潰滅했다. 駱駝와 말이 나르는 짐의 量 規模가 다르다는 單純한 事實을 로마인들은 把握하지 못했다.
    [©The Creative Assembly  SEGA]

    [ⓒThe Creative Assembly SEGA]

    토끼는 環境 適應 能力이 卓越해 南極과 大陸에서 멀리 떨어진 極少數 圖書를 除外한 地球上 大部分 地域에서 棲息한다. 토끼는 어디서나 살 수 있고 個體 數도 豐富해 捕食者들이 침을 흘리는 사냥감이지만 토끼를 잡는 일은 매우 어렵다. 危急한 狀況이 發生하면 特有의 재빠른 몸놀림으로 捕食者를 따돌리고 自身만의 隱密한 아지트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獅子도 토끼를 잡으려면 最善을 다해야 한다”는 格言이 傳해진다. 토끼가 작다고 해서 만만히 보다가는 狼狽 보기 쉽다는 뜻이다.

    러시아 월드컵의 驕兵必敗, 大韓民國과 獨逸

    中國의 大混亂期 春秋戰國時代 敍述된 孫子兵法(孫子兵法)에 아무리 만만하게 보이는 敵이라도 깔보면 안 된다는 뜻을 가진 驕兵必敗(驕兵必敗)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이는 토끼와 獅子가 登場하는 格言과도 意味가 一脈相通한다. 

    人間의 筋肉과 技術이 結合된 競演場인 스포츠의 世界는 驕兵必敗의 原理가 잘 作動하는 分野다. 게리 리네커(Gary Lineker)는 잉글랜드 蹴球를 代表하는 레전드다. 自國 리그는 勿論 월드컵에서도 得點王을 차지했을 만큼 當代를 代表하는 世界的 골잡이였다. 韓國으로 치면 리네커는 車範根과 比較할 만하다. 

    리네커는 蹴球를 論할 때 매우 冷靜했다. 잉글랜드人이면서도 “蹴球는 90分間 싸워 獨逸이 이기는 競技”라고 定義했다. 잉글랜드 出身 攻擊手가 그렇게 말할 程度로 獨逸 蹴球는 유럽은 勿論 世界 蹴球界를 長期間 支配했다. 獨逸 蹴球 全盛期는 2018年 러시아 월드컵 開幕 直前까지 이어졌다. 여러 指標에서 다른 競爭國을 壓倒했다. 當然히 FIFA(國際蹴球聯盟) 랭킹도 先頭였다. 甚至於 獨逸은 2014年 브라질 월드컵 優勝國으로 디펜딩 챔피언(defending champion)이었다. 

    獨逸 蹴球의 優秀함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確然히 드러났다. 獨逸은 强力한 優勝 候補면서 홈팀인 브라질을 準決勝에서 7對 1로 大破하는 믿기 어려운 成果를 創出했다. 이 世上 어느 나라도 브라질을 그렇게 이길 수 없다. 오직 獨逸만 可能한 일이다. 월드컵 開幕 1年 前마다 컨페더레이션스컵(Confederations Cup)李 열린다. 러시아 월드컵 1年 前에 열린 컨페더레이션스컵度 獨逸의 차지였다. 누구도 獨逸의 러시아 월드컵 優勝을 疑心하지 않았다. 



    獨逸이 러시아 월드컵 첫 게임에서 북중미의 盟主 멕시코에 不意의 一擊을 當했으나 世界 蹴球팬들은 豫防注射를 맞은 程度로 생각했다. 放心하다가 그럴 수도 있다는 評價였다. 그다음 競技에서 獨逸은 北유럽의 强豪 스웨덴에 勝利를 거두고 敗北의 衝擊에서 完全히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獨逸의 組別 리그 마지막 相對는 스웨덴, 멕시코에 連霸한 韓國이었다. 獨逸에 韓國은 考慮 對象이 아니었다. 最弱體 韓國과의 一戰은 16强으로 가는 練習競技나 마찬가지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교만한 獨逸은 마치 토끼 程度로 생각한 韓國에 0代 2의 敗北를 當하고 만다. 獨逸 蹴球 歷史上 最初의 월드컵 組別 리그 脫落이었다. 

    獨逸이 敗北한 것은 누가 뭐래도 韓國이 잘 싸웠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虎狼이, 韓國이 世界 最强 獨逸에 모처럼 크게 咆哮했다. 하지만 獨逸이 相對를 가볍게 여겼다는 點도 無視할 수 없다. 월드컵 閉幕 後, 獨逸이 韓國과 멕시코의 全力을 徹底하게 分析하지 않았던 것으로 報道되기도 했다. 

    獨逸은 韓國의 맞춤 戰術에 제대로 對應하지 못했다. 反面 韓國은 獨逸의 攻擊을 守備壁으로 막으며 競技 내내 剛한 壓迫을 加했다. 그러다가 공을 낚아채면 번개 같은 速度로 逆襲했다. 蹴球는 占有率이 아닌 골로 勝負를 가르는 競技임을 韓國은 獨逸에 가르쳐주었다. 韓國에서는 카잔의 奇跡이라고 부르는 이 競技는 蹴球版 膠餠必敗라고 할 수 있다. 獨逸에서는 이 競技를 只今도 카잔의 恥辱(Schande von Kasan)이라고 일컫는다. 

    驕兵必敗는 國家가 가진 物理力을 總動員해 다른 나라와 싸우는 戰爭에서 태어난 말이다. 一一이 例를 들지 않더라도 相對의 前歷을 가볍게 여기다가 狼狽(狼狽)韓 强國은 歷史上 不知其數로 많다. 客觀的으로 아무리 弱하게 보이는 相對라고 해도 戰場에서 威力을 發揮할 수 있는 致命的 武器나 劃期的 戰術 한두 個 程度는 保有하고 있게 마련이다.

    로마共和國의 唯一한 競爭者 파르티아

    카이사르, 크라수스, 마그누스(왼쪽부터). [wikimedia commons]

    카이사르, 크라수스, 마그누스(왼쪽부터). [wikimedia commons]

    2000餘 年 前 西半球의 敗者 로마의 權力 構造는 매우 獨特했다. 公式 正體(政體)는 共和國(Roman Republic)이지만 마치 힘센 水死者 여럿이 獅子 무리를 共同으로 支配하는 프라이드(pride)와 같았다. 

    로마라는 巨大한 프라이드를 共同 支配하는 實力者는 세 名이었다. 갈리아(Gallia)를 征服한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골칫거리이던 地中海 海賊을 掃蕩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Pompeius Magnus), 로마 最高 甲富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Marcus Licinius Crassus), 이 時期를 세 名의 巨頭가 政治를 左右한 때라는 뜻의 삼두情(triumvirate·三頭政)이라고 하기도 한다. 

    세 英雄의 속내는 같았다. 혼자 權力을 獨食해 皇帝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群衆이 熱狂할 만한 偉大한 業績을 더 쌓고 싶어 했다. 셋 中에서도 競爭者들에 비해 나이도 많고, 軍事的 業績이 不足한 크라수스의 마음이 特히 躁急했다. 크라수스가 내세울 수 있는 唯一한 業績은 스파르타쿠스(Spartacus)의 叛亂을 鎭壓한 것이었는데 冷靜하게 評價하면 烏合之卒 奴隸 叛亂을 막아낸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當時 市民 大部分은 크라수스의 軍功을 높게 評價하지 않았다.
     
    크라수스는 그런 狀況을 突破하고 싶었다. 그의 選擇은 賭博이었다. 꾸준히 國力이 伸張되던 파르티아(Parthian Empire)를 征服하기로 마음먹고 行動에 옮긴다. 

    로마는 포에니戰爭을 통해 海洋大國 카르타고(Carthage)를 征服하고 유럽과 아프리카의 敗者가 된 지 오래였다. 로마의 平和 或은 秩序를 威脅할 만한 存在는 當時 西半球에 없었다. 하지만 潛在的 挑戰者까지 考慮하면 한 나라가 있었다. 파르티아였다. 파르티아의 領域은 現在의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全域과 터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一部를 아울렀다. 大帝國이라고 稱하기는 不足하지만, 地域 强國으로 評價하기에는 不足함이 없다.

    掠奪로 物資 確保한 元述, 百姓 被害 最少化 曹操

    當時 파르티아는 東西의 中間에 位置한 利點을 活用해 貿易으로 國家의 富를 蓄積하고 있었다. 로마와 맞먹을 만한 國力을 가진 東洋의 帝國 한(漢)과 交易하기 위해 파르티아는 실크로드(silk road)를 利用하기도 했다. 國富의 源泉인 장사의 主人公들은 駱駝와 말의 등에 짐을 싣고 運搬한 카라반(caravan)들이었다. 歷史에서 對象(隊商)이라고 하는 이들이다. 

    當時 로마인의 視角에서는 파르티아만 征服하면 그들이 아는 文明 世界를 모두 征服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파르티아의 巨大한 領土와 莫大한 財貨는 勝利와 함께 덤으로 딸려오는 보너스와 같았다. 크라수스는 그래서 큰 賭博판에 뛰어든 것이다. 

    파르티아라는 對局을 征服하려면 兵力이 많이 必要했다. 로마의 시리아屬州 總督으로 就任한 크라수스는 兵力 確保를 위해 自身의 最高 武器인 財力을 活用한다. 自費를 들여 6個나 되는 群團을 募集하고 赴任地인 시리아屬州로 向한 것이다. 

    시리아屬州에는 2個 軍團이 駐屯하고 있었다. 크라수스는 그中 1個 軍團도 파르티아 遠征에 差出하고 남은 1個 軍團에 治安 任務를 맡겼다. 이렇게 編成된 遠征軍은 步兵 3萬4000, 起兵 4000, 기타 2000 等 都合 4萬이나 됐다. 當時 人口를 考慮하면 엄청난 規模가 아닐 수 없다. 

    遠征軍의 部長(副將)은 크라수스의 아들인 푸블리우스(Publius Licinius Crassus)였다. 그는 갈리아 遠征에서 큰 功을 세워 아버지의 政敵인 카이사르에게도 寵愛를 받은 人物이다. 카이사르는 푸블리우스를 위해 當時 유럽 最强으로 評價받던 갈리아 起兵 5000期 中 1000基를 떼어 맡긴다. 靜寂의 遠征길에 最精銳 騎兵을 보태줄 만큼 카이사르는 ‘對人倍’였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前歷을 構成한 크라수스 軍團은 시리아屬州에서 勝利를 위한 訓鍊보다 다른 活動에 置重한다. 遠征軍 司令官인 크라수스는 파르티아 遠征 編成에 所要된 本錢이 생각났던 것 같다. 遠征에 앞서 시리아屬州에서 費用을 回收하려 한 것이다. 神殿(神殿)의 財物까지 털어버렸다고 하니 할 말이 없는 셈이다. 

    무릇 軍紀는 嚴正해야 한다. 軍紀가 展示에 勝利를 擔保한다. 後漢(後漢) 말, 크라수스처럼 君을 運營한 諸侯가 있다. 南陽태수(南陽太守) 元述(袁術), 그의 軍은 배고픈 메뚜기 無理였다. 不足한 軍糧과 物資를 現地에서 掠奪해 調達했다. 하지만 그의 競爭者인 曹操(曹操)는 달랐다. 根據地 演奏에서 軍需物資를 準備해 遠征에 臨했고, 戰爭을 하면서도 百姓들의 被害를 最少化하려고 努力했다. 軍의 紀綱도 嚴正했다. 그런 差異가 曹操가 元述과는 全혀 다른 業績을 세우게 만들었다.

    교만한 長壽, 크라수스가 주는 敎訓

    紀元前 53年 只今의 터키 땅인 카레(Carrhae)에서 크라수스의 大軍은 파르티아의 수레나스(Surena)가 이끄는 파르티아君을 만난다. 수레나스의 兵力은 로마 軍隊의 4分의 1에 不過했다. 파르티아가 少數 兵力으로 로마의 大軍에 맞선 데는 避치 못할 事情이 있었다. 

    當時 파르티아의 主力은 다른 곳에서 戰爭을 펼치고 있었다. 파르티아 調整은 수레나스가 카레에서 로마軍의 進擊을 늦추고 最大限 時間을 벌어주기를 바랐다. 파르티아 國王 誤로데스2歲(Orodes II)의 主力軍이 아르메니아와 戰鬪를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는 로마軍에 파르티아로 가는 길을 案內하는 嚮導(嚮導) 役割도 맡고 있었다. 

    그런데 크라수스의 大軍을 相對한 수레나스는 파르티아 國王은 勿論 로마인들까지도 全혀 豫想하지 못한 大勝을 거뒀다. 4萬의 로마군 中 3萬을 戰士시키고 司令官인 크라수스와 그의 아들이며 部長인 푸블리우스까지 죽였다. 

    수레나스는 150年 前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로마를 侵攻한 카르타고의 한니발(Hannibal)을 떠올리기에 充分했다. 카레에서 戰死한 3萬의 로마軍은 모두 로마의 市民이었다. 수많은 로마인이 카이사르를 包含한 實力者들에게 파르티아에 對한 피의 復讐를 要求했다. 

    크라수스의 敗因은 相對를 얕보고, 緻密한 準備 없이 戰爭에 뛰어든 것이다. 驕兵必敗(驕兵必敗)의 原理가 그대로 適用됐다. 戰爭에서 勝利하려면 아무리 相對가 弱해도 自身이 使用 可能한 모든 카드를 活用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勝利는 勿論 我軍 被害도 最少化할 수 있다. 하지만 크라수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勝利를 가져온 파르티아의 駱駝

    로마-파르티아 전쟁을 묘사한 그림. [Wikia 홈페이지]

    로마-파르티아 戰爭을 描寫한 그림. [Wikia 홈페이지]

    카레의 들판에서 遭遇한 로마軍과 파르티아君의 勝敗를 가른 것은 駱駝였다. 수레나스는 駱駝를 잘 活用해 兵力이 4倍에 達하는 크라수스의 大軍을 擊破했다. 

    수레나스의 1萬 兵力 中 9000은 武裝이 가벼운 輕騎兵(輕騎兵), 1000은 中企病(重騎兵)이었다. 機動力이 優秀한 輕騎兵의 武器는 활이었다. 파르티아의 輕騎兵들은 射程距離를 늘린 활을 가지고 로마軍의 화살 射程距離 밖에서 화살비를 날렸다. 화살비가 쏟아지자 로마의 主力인 重甲步兵들이 테스偸盜(Testudo)라는 龜甲(龜甲) 陣營을 構築해 防禦하려 했으나 파르티아의 重騎兵들이 一時에 突進해 그 龜甲을 흔들어버렸다. 이렇듯 로마 軍營이 混亂한 틈에 파르티아 輕騎兵들은 다시 화살비를 퍼부었다. 이 같은 消耗戰에 當할 步兵部隊는 世上에 없다. 로마의 大軍은 화살비에 脈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로마의 步兵들이 脈없이 쓰러지는 가운데 騎兵들도 같은 運命을 맞이한다. 파르티아 輕騎兵들이 펼친 誘引 戰術에 걸려 이들도 步兵처럼 화살비를 맞고 騎兵隊長人 푸블리우스와 함께 全滅했다. 

    로마軍에 내린 화살비는 ‘沙漠의 倍’ 駱駝로 運送됐다. 파르티아의 對象들은 交易할 때 駱駝의 등에 物資를 싣고 다녔는데, 軍도 駱駝를 活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파르티아의 낙타들이 카레로 엄청난 量의 화살을 싣고 왔다. 1000마리나 되는 駱駝가 動員됐다. 파르티아 騎兵들이 화살비를 내릴 때 로마軍은 暫時 後 그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誤判이었다. 그 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과 駱駝가 나르는 짐의 量은 그 規模가 다르다는 單純한 事實을 當時 로마인들은 把握하지 못했다. 

    수레나스의 勝利는 侵略國 로마는 勿論 파르티아 內部까지 不安하게 했다. 誤로데스2世는 수레나스의 前科에 기뻐하면서도 嫉妬했다. 임금이 臣下의 功績을 時期하면 臣下의 목숨은 危險해지는 法이다. 

    카레 戰鬪 結果, 시리아屬州에는 로마 軍團이 한 個밖에 남지 않았다. 8個나 되는 로마 大君 中 7個가 潰滅했기 때문이다. 또한 로마의 同盟을 自處하던 아르메니아도 파르티아의 保護國이 됐다. 相當 期間 로마는 파르티아를 攻掠하기 어렵게 됐다.

    兎死狗烹 當한 수레나스

    誤로데스2世는 수레나스를 더는 必要 없는 存在로 여겼다. 結局 수레나스는 兎死狗烹(兎死狗烹) 身世가 된다. 셀레우키아로 入城한 수레나스는 疑問투성이 죽음을 맞는다. 누가 그를 죽였는지 充分히 斟酌할 수 있지 않은가. 

    駱駝를 效率的으로 利用해 로마의 大軍을 潰滅한 수레나스는 한니발처럼 로마의 頭痛거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은 그가 한니발이 되는 것을 許諾하지 않았고, 로마의 灑落度 願하지 않았다. 수레나스 事後 파르티아軍은 餘勢를 몰아 시리아屬州를 攻擊했으나 數的 優位에도 不拘하고 敗退한다. 敗因은 簡單했다. 파르티아 軍營에는 수레나스가 없었고 오직 猜忌心에 눈이 멀어 臣下를 疑心하고 嫉妬한 誤로데스2世가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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