歲月號 沈沒 事故

珍島 淸海鎭 海運 歲月號 沈沒 事故
事故現場을 上空에서 撮影한 寫眞
날짜 2014年 4月 16日 (10年 前) ( 2014-04-16 )
時間 午前 8時 48分 53秒 (午前 8時 30分 ~ 午前 10時 30分, KST ) [1]
位置 大韓民國 全羅南道 珍島郡
조도면 屛風도 隣近 海上 [2]
座標 北緯 34° 13′ 05″ 東京 125° 57′ 00″  /  北緯 34.2181° 東京 125.95°  / 34.2181; 125.95
여객선 침몰 지점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여객선 침몰 지점
旅客船 沈沒 地點
출항지 인천  
出港地 仁川  
도착예정지 제주  
到着豫定地 濟州  
旅客船 沈沒 地點 (大韓民國)
最初 보고자 濟州海洋警察署
結果 沈沒
死亡者 299名 [3]
失踪者 5名 [內容主 1]
歲月號 沈沒 事故를 追慕하는 노란 리본들 ( 2014年 5月 7日 )

歲月號 沈沒 事故 ( 英語 : Sinking of MV Sewol , 歲月號沈沒事故)는 2014年 4月 16日 午前 8時 50分 頃 大韓民國 全羅南道 珍島郡 조도면 附近 屛風도 海上에서 旅客船 歲月號 가 顚覆되어 沈沒한 思考이다. [4] 4·16 세월호 慘事 (April 16th Sewol-Ferry sinking accident, 四一六歲月號慘事) 或은 歲月號 慘事 (歲月號慘事)로도 불린다.

세월호는 청해진해운 所屬으로 仁川~濟州 航路를 運航한 沿岸 旅客船이다. 團體 修學旅行을 떠나는 京畿道 安山市 단원고등학교 의 敎師와 學生 339名을 包含한 乘客 476名을 태우고 4月 15日 仁川港을 出港, 提州를 向해 運行하던 中인 4月 16日 午前 8時 58分 屛風도 東北쪽 2km(1.7海里) 隣近에서 遭難 信號를 보냈다. [5] 2014年 4月 18日 세월호는 完全히 沈沒하였으며 [6] , 이 事故로 屍身 未收拾者 5名을 包含한 304名이 死亡하였다. [7] 事故 生存者 172名 中 折半 以上은 海洋警察 보다 約 40分 늦게 到着한 漁船 等 民間 船舶에 依해 救助되었다. [8]

2014年 4月 18日부터 11月 11日까지 세월호 水中 搜索 作業이 이루어졌다. 세월호 船體는 3年 동안 引揚이 미뤄지다가 第18代 大統領 朴槿惠 가 罷免되고 12日 後인 2017年 3月 22日 부터 引揚이 始作되어, 2017年 4月 10日부터 木浦新港만 에 据置되었다. [9] [10] [11]

歲月號 沈沒 事故의 眞相糾明을 위해 2015年 4.16 歲月號 慘事 特別調査委員會 가 設置되었으나, 2016年 6月 特調위 調査活動이 强制 終了되었다. [12] 歲月號 引揚 後인 2017年 7月 세월호 船體調査委員會 가 出帆하였으나, 沈沒 原因에 對해 統一된 結論을 내지 못하여 '內鱗屑'과 '열린안'의 두 報告書를 提出하고 活動을 終了했다. [13] 2018年 12月 出帆한 社會的慘事 特別調査委員會 는 2022年 9月 綜合報告書를 公開하고 4·16歲月號慘事에 對해 12件의 勸告事項을 내며 活動을 終了하였으나, 沈沒 原因 等 完全한 眞相糾明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4]

背景

청해진해운

仁川市 中區에 本社를 둔 청해진해운 은 1999年 2月에 創立된 沿岸旅客船史이며, 4隻의 旅客船으로 仁川-濟州, 仁川-白翎島, 麗水-巨文島의 3個 航路를 運航하였다. 2003年에는 마루에이 페리 에서 大型 카페리 誤하마나湖 를 들여와 運用하였고, 2012年 10月에 歲月號 를 들여왔다. [15]

淸海鎭海運은 나美노우에호를 들여온 直後인 2012年 10月 7日부터 이듬해 2月 16日까지 全南 靈巖에 있는 CC朝鮮에서 이 船舶의 增改築 作業을 벌였다. 乘客이 머무는 旅客室을 增設해 最大 乘船 人員은 956名(旅客 921名, 船員 35名)이 됐다. 이런 改造 作業으로 아무것도 싣지 않은 배 自體의 무게를 뜻하는 敬賀重量은 307톤 增加했고, 이에 따라 船舶이 積載할 수 있는 最大 重量을 意味하는 財貨重量은 307톤 減少했다.

세월호가 救命艇이 接近하기 힘들 程度로 빠르게 기울어지며 沈沒한 原因 中 하나가 無理한 不法 改造·增築 때문이라는 專門家들의 見解가 있지만 [16] , 船舶 設備 安全 檢査 機關인 韓國船級 에 세월호의 增築 等에 對하여 許可 받았고 2次例에 걸쳐 問題가 없다고 評價하여 違法性은 없었다고 한다.

淸海鎭海運이 日本에서는 運用時限 約 18年이 된 歲月號(1994年 乾燥)를 사들여와 運航할 수 있었던 것은, 2009年 大韓民國 海運法 施行規則이 改正되면서 旅客船 運航 基準이 仙靈 20年에서 30年으로 緩和 [內容主 2] 되었기 때문이라는 報道 [17] 가 있었으나, 改正 前인 2008年에도 旅客船 船齡基準은 25年 [內容主 3] 이었다. 따라서 沈沒當時 仙靈 20年이었던 세월호는 規制 緩和와 無關했다.

淸海鎭海運은 세월호의 出港 前 運航管理者에게 車輛 150代, 貨物 675톤을 실었다고 報告했으나 [16] , 社慘委 調査結果에 따르면 車輛 185臺를 包含하여 總貨物量 2,213톤이 실린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全體 貨物重量은 3,576톤으로 財貨重量人 3,794톤보다 적게 실렸다.

仁川~濟州 航路를 運航해 온 淸海鎭海運은 세월호 事故의 責任으로 2014年 5月 仁川~濟州 運航 免許가 取消되었다. [18]

船員

大韓民國의 內航船 船舶職(船長·航海士·操舵手·機關士 等) 大部分은 1年 以下 契約職으로 일하는 것이 大部分이며, 事故 當時 세월호 船長도 月 270萬원의 1年 契約職이었으니 職業的 安定性이 떨어져 所屬感이나 使命感을 期待하기가 애初에 어렵고, 淸海鎭海運은 2013年 船員 敎育費用으로 54萬 1千원을 쓰는 等 敎育 管理도 劣惡했다 [16] [19] 고 알려졌다.

하지만 臨時 船長으로 알려진 이준석 船長은 淸海鎭海運으로부터 月 400萬원 假量 받는 [20] 正式 船長이었고, 2013年 3月 歲月號 出港부터 세월호의 正式 船長으로 實習 船長인 신보식과 함께 2013年 8月까지 勤務했다고 한다. 以後 이준석 船長이 停年이 넘어 退社를 해야 해서 信保食餌 正式 船長이 되었고 李俊錫은 契約職으로 繼續 船長 勤務를 했다고 밝혔다. [內容主 4]

또한 淸海鎭海運이 船員 敎育費用으로 54萬 1千원을 쓴 것에도 誤解의 餘地가 있다. 船員 敎育은 禪寺에서 自體的으로 進行하는 敎育과 法廷 敎育으로 나뉘는데, 自體的으로 進行하는 敎育의 境遇 別途의 敎育費가 發生하지 않았고, 法廷 敎育의 境遇 費用 自體가 크지 않고 雇傭勞動部로부터 訓鍊費用의 一部를 還給받을 수 있었으며 한 番 敎育 받으면 有效期間이 길고 免除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큰 費用을 支出할 餘地가 적었다. [21]

歲月號

2014年 3月 27日에 撮影된 歲月號

세월호는 日本 나가사키 하야시카네 朝鮮 (林兼造船) [內容主 5] 에서 乾燥한 6,586톤 旅客·貨物 兼用線(RoPax, RORO선 ) [22] 으로, 1994年 4月 13日 進水되었다. [23] 日本 마루에이 페리 社에서 '페리 나美노우에'( フェリ?なみのうえ )라는 이름으로 [24] [內容主 6] 18年 以上 가고시마 ~ 오키나와 나하 肝을 運航하다가 2012年 9月 退役하였으며 淸海鎭海運이 2012年 10月에 中古로 導入하여 船尾쪽에 增築·改造 作業을 거친 後 2013年 3月부터 仁川 - 濟州 航路에 投入하였다. [27] [28] 세월호의 이름에 對해 一部 言論은 "世上(世)을 超越(越)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報道했으나 [29] 事實은 '흘러가는 時間'을 뜻하는 歲月(歲月)이다.

세월호는 容積톤수(G/T) 6,825톤, 戰場 145m, 船幅 22m이고, 21노트의 速度로 最大 264 마일을 運航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旅客 庭園은 921名, 積載 限度는 3,794톤, 滿載排水量은 9,907톤이다. [30] [31]

세월호의 內部는 5層으로, 甲板 아래에 位置한 1層과 2層에는 貨物칸, 甲板 위의 3層과 4層에는 乘客을 위한 客室이 마련되어 있고, 5層에는 操舵室과 乘務員室, VIP실이 있는 것으로 報道되었다.

仁川-濟州 航路

仁川-濟州 航路는 1995年 5月에 처음으로 開設되었다. 仁川~濟州 航路를 처음으로 運航한 것은 淸海鎭海運의 前身格인 ㈜세모의 '세모高速페리'號였다. 세모高速페리호는 最大 500名의 乘客과 車輛 100餘 臺를 싣고 片道 16時間으로 仁川港과 濟州港 사이를 週 3回 往復하였다. [32] [33] 2001年에는 淸海鎭 海運이 春陽號를 追加로 投入하여 세모 高速페리 1號와 함께 最大 600餘 名의 乘客을 싣고 片道 13時間으로 1日 1回 運行하였다. [34] 2003年 3月에는 6,322톤級의 大型 카페리 誤하마나湖가, 2013年 2月에는 6,852톤級의 세월호가 두 船舶을 代替하였다. [35]

仁川~濟州 航路는 歲月號 沈沒 事故 直後 休航되었으며, 2014年 5月 淸海鎭 海運의 仁川~濟州 航路 免許 取消로 運行이 全面 中斷되었다. [36] [37] 以後 2021年 12月 旅客船社 下이덱스 스토리지가 비욘드 트러스트號를 就航하여 運航해 왔으나 現在는 또 다시 中斷되었다. [38]

事故 海域

事故가 發生한 海域을 全羅南道 珍島郡 조도면 , 맹골도 와 거車道 사이의 潮流가 센 맹골수도 라고 알려진 境遇도 있으나 實際 事故는 맹골수도를 지나서 波濤가 잔잔했던 屛風도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發生했다. [39]

事故 및 構造

事故는 2014年 4月 16日 午前에 全羅南道 珍島郡 屛風도 附近에서 發生하였다. 이 事故로 搭乘者 476名 中 172名이 救助되고 304名이 死亡·失踪되었다. 그리하여 이 事故의 生存率은 36.1%로 매우 低調하다.

出港

안개로 인해 出發이 遲延된 세월호는 事故 前날인 4月 15日 午後 9時에 仁川港을 出港했다. 歲月號에는 一般 搭乘客 70名, 貨物記事 33名, 濟州島로 修學旅行을 떠나던 京畿 安山 단원고등학교 學生 325名과 敎師 14名, 引率者 1名, 그리고 船員을 包含한 乘務員 33名 等 모두 476名이 搭乘하고 있었다. 貨物은 鐵筋 約 410톤, 車輛 185代 等 總 2,213톤 程度가 실려 있었다. [40]

慘事 初期 세월호가 積載 限度를 超過하여 過積했다고 알려졌지만, 해司法 滿載吃水線 [內容主 7] 을 基準으로 過積을 判斷하고 있기 때문에 滿載吃水線 을 넘기지 않은 세월호는 船舶法上 過積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 改造 後 이루어진 復元性 檢査 結果를 基準으로 1,077톤만 실을 수 있는 歲月號에 貨物을 超過하여 실었기 때문에 '運用上 過積'이라는 表現이 使用되었다. [內容主 8]

事故 發生

船舶自動識別裝置의 航跡 資料와 生存者들의 證言에 따르면, 세월호는 4月 16日 午前 8時 30分頃 맹골도와 西巨次島 사이 물살이 빠르다고 하는 맹골수도로 進入했고, 맹골수도를 빠져나올 때까지 注目할 만한 異常 徵候는 없었다. [41] 맹골수도를 빠져나온 세월호는 8時 46分頃 屛風도 海上에 進入했다. 8時 48分頃 세월호가 10度 變針해야하는 地點에 다다르자, 3等 航海士 박한결은 操舵手 조준기에게 平素대로 5度씩 나누어 두 番 操舵하도록 命令했다. 첫番째 操舵까지만 해도 平素와 같았다. 그러나 두番째 操舵에서는 操舵를 멈췄음에도 于先膾가 繼續되었고, 세월호는 알 수 없는 理由로 左舷으로 기울어지며 急旋回로 이어졌다. [內容主 9] 以後 세월호는 'J'字를 그리며 왔던 길 方向으로 漂流했다.

8時 49分頃 세월호가 45度假量 기울어지자, 甲板 外販의 루버 通風口를 통해 機關 裝備 區劃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始作한 것으로 推定된다. 不實한 맨홀과 水密門 管理는 세월호가 기울기 始作한지 101分 만에 顚覆되어 가라앉은 原因 中 하나로 指目된다. 9時 50分 무렵에는 選手와 客室 中央部까지 浸水가 始作되었고, 세월호의 기울기는 62.8度에 達했다. [42] 急旋回가 始作된지 101分이 지난 10時 30分 무렵에 세월호는 뱃머리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43]

申告와 構造

午前 8時 52分 32秒 ( KST ), 全南消防本部 119狀況室에 最初로 申告 電話가 걸려왔다. 最初 申告者인 學生이 던진 첫마디는 "살려주세요"였고, 以後 그는 배가 沈沒하고 있음을 알렸다. 當時 申告電話를 받은 全南消防本部 關係者는 內容을 듣고 木浦海警을 連結했다 (54分 07秒). 그런데 木浦는 最初 申告者에게 第一 먼저 經度와 緯度를 말하라며, 배의 位置를 물었다. 唐慌한 最初 申告者가 '네?'를 連發瑕疵 119關係者는 그가 搭乘客임을 알렸다. 하지만 海警은 反復해서 GPS를 擧論하는 等, 位置를 물었다. 그로부터 1分 30秒 뒤 海警 側은 船舶 이름이 무엇인지 물었고, 最初 申告者는 "歲月號"라고 答하였다(이러한 時間 遲延에 對하여, 後日 박진수 한국해양대 航海學部 敎授는 船舶 이름부터 묻는 것은 基本임을 指摘하고 "救助를 하려면 順序를 누가, 어디서, 무슨 事故를 當했는지…우리는 六何原則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批判했다). 세월호는 最初 申告보다 3分 後, 事故 海域과 가까운 珍島管制센터(VTS)가 아닌 濟州管制센터(VTS)에 交信하여 배가 沈沒 中임을 알렸다(8시 55分). 그리고 다시 이 濟州管制센터(VTS)는 木浦海警이 아닌 濟州海警에 連絡하였고(8시 56分), 8時 58分에 비로소 木浦海警이 事故를 接受하였다(이 事故接受度 歲月號 乘務員들이 아닌 學生의 申告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追後 狀況을 把握한 珍島管制센터(VTS)가 9時 6分에 歲月號와 交信하여, 歲月號를 呼出하여 直接管制를 始作하였다. [44] [45] [46] 9時 17分의 珍島管制센터와의 交信에서 세월호 船員은 배가 50度 以上 기울어져 있다고 보고하였다. [47]

航海 經路 Position on chart

珍島VTS 交信 內容에 따르면, 9時 7分에 2,755톤級의 油槽船 둘라에이스호가 珍島VTS와 交信 後 세월호를 肉眼으로 確認하였다. 둘라에이스號는 歲月號를 救助하기 위하여 接近했다. 歲月號와 唯一하게 交信할 수 있었던 珍島VTS는 9時 14分頃 둘라에이스호로부터 "乘客들이 脫出하면 救助하겠습니다"라는 交信을 받았음에도 不拘하고, 9時 24分頃 세월호가 "本選이 乘客들을 脫出시키면 構造가 바로 되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船長이 最終 判斷을 하셔서 乘客 脫出을 시킬지 決定을 내리라"고 答辯했고, 더불어 10分 內에 警備艇이 到着할 것이라고 하며 海警 警備艇을 기다리며 脫出 命令을 내리지 못하도록 하였다. 萬若 이때 退船 命令이 내려졌다면, 乘客과 乘務員 全員은 9分 28秒만에 海上으로 脫出할 수 있었다. [48]

申告 電話가 接受된 8時 52分頃부터 操舵室에 있던 船長과 船員들이 脫出한 9時 45分頃까지, 歲月號에는 船內에 가만히 待機하고 있으라는 放送이 繼續 나왔다. 船長과 船員들은 乘客들에 對한 措置를 全혀 하지 않았고, 船內 待機 放送만 繼續 내보내다가 가장 먼저 脫出했다.

事故 接受 後, 海洋警察 은 出動 및 構造에 나섰다. 9時25分 西海海警廳 所屬 헬기 511號와 海警 123情이 잇따라 到着했다. 하지만 出動한 海警은 歲月號와 交信조차 하지 않았다. 乘客들에게 退船 命令도 하지 않았다. [49]

9時 44分頃 헬기(511號, 512號 等)가 6名을 救助했고, 9時 46分頃 操舵室 船員과 船長이 123梃으로 옮겨 타는 等 船員들을 包含해 52名이 123梃으로 救助되었다. 以後 10時 6分頃 세월호의 3層 客室 琉璃窓을 깨고 乘客 5名을 救助한 123定은 10時 11分頃 歲月號에서 물러났고, 오히려 構造를 위해 온 漁船들을 向해 “漁船들은 統制해. 漁船들은 退去시키라고”라며 소리쳤다. 이에대해 海警은 救助艇이 歲月號 밑으로 빨려들어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解明했지만, 123情이 歲月號에서 물러나 있었던 그 때에도 세월호 周邊에서는 漁船들이 乘客들을 救助하고 있었다. [50] [51]

當時 現場 헬기들을 指揮했던 703號基는 9時 58分頃 “暫時 後에 本廳 1番님(海洋警察廳長)께서 出發하셔 가지고 現場에 오실 豫定이니까 너무 任務에 執着하지 말고 安全에 留意하세요”라는 納得하기 힘든 交信을 했다. 또한 10時 39分頃에는 現場에 進入하고자 하는 消防헬기에게 “救助할 人員이 없습니다. 復歸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라고 通報했다. 이로 因해 右舷이 唯一한 脫出口였던 時點에서 우현에서의 더 積極的이고 效果的인 構造活動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52]

가장 積極的으로 構造에 나서야 했던 海警은 漁船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民間 漁船 船長 박영섭(56)은 16日 새벽 操業을 마치고 歸降準備를 하고 있었다. 朴 船長은 午前 9時 3分頃 水協木浦漁業通信國이 송신한 緊急 救助 要請 信號를 받고, 屛風도 北쪽 1.5마일 海上에서 旅客船 歲月號 가 沈沒 中이라는 事實을 確認. 바로 뱃머리를 屛風도 쪽으로 돌렸다. 午前 10時 30分頃 事故 現場에 到着한 朴 船長은 海警과 救助作業에 參與해 乘客 27名을 構造下였다. [53] 조도면 靑年會員 金炯旿(47) 亦是, 里長團長으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自身의 1.1t級 小型漁船을 몰고 救助作業에 同參하여, 總 25名을 構造下였다. 그 外에도 메시지를 받고 10餘分 만에 出港準備를 마친 조도면의 漁船이 60餘隻, 漁民은 150餘名에 達했으며 全速力으로 到着까지 20餘分이 所要되었다고 傳해져 初動救助에 民間 漁船들이 큰 役割을 하였음이 밝혀졌다. [54]

當日 10時 30分까지 모두 172名이 救助되었고, 以後 生存者는 없었다. 救助된 搭乘者는 乘務員 23名, 團員苦生 75名, 敎師 3名, 一般人 71名이었다. [55]

搜索 및 引揚

2014年 4月 16日

한 遺家族은 呼訴文을 통해 '事故 當日 밤 10時가 넘도록 救助 作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國民들에게 呼訴했다. [56]

14時 36分頃, 中央救助本部가 乘客 300餘 名이 歲月號에서 脫出하지 못한 事實을 最終 確認했다. 「周邊 海域 大型 海上事故 對應 매뉴얼」과 「海上 搜索救助 매뉴얼」에 따르면 海水 溫度가 20度 未滿일 때는 事故 發生 後 3日 以內 集中 搜索을 實施해야 한다. 따라서 構造本部長은 한時라도 빨리 水中搜索 活動에 必要한 指示를 해야 했다. 그러나 中央救助本部가 水中搜索을 위한 從事命令을 내려야 할 重要한 時點에 海洋警察廳 次長과 搜索救助 課長 等은 淸海鎭海運이 救難業體 言딘과 救難 契約을 締結하도록 慫慂하고, 現場에 到着한 타 業體의 現場 投入을 統制했다. 이들은 當日 15時 18分부터 언딘 理事와 청해진해운 關係者에게 再次 電話해 救難 業體를 選定하는 데 關與했다. 卽 人命救助 作業보다 時急하지도 않고, 所管 業務도 아닌 船體 引揚 作業에 더 神經을 쓴 것이다.

15時頃, 海警은 搜索 作業에 進展이 없었음에도 搜索 狀況과 構造 動員 勢力을 誇張하여 發表하기 始作했다. 海警이 發表한 狀況報告書 6報에는 水中搜索에 海警 118名, 海軍 42名 等 160名이 動員되어 隔室 等 生存者 確認을 위해 搜索을 實施하고 있으며, 海上搜索에는 海警 55隻, 海軍 17隻과 官公船과 漁船 27隻 等 72隻, 航空機 18代 等이 動員 되었다고 誇張했다. 또한 言論은 事實 確認을 하지 않고 이 內容을 받아쓰며 '地上 最大의 救助 作戰'이라며 大大的으로 報道했다. 當時 大統領祕書室은 搜索構造 現場 狀況 情報를 報告받고 있었고, 海警에게서 家族 動向도 報告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發表가 虛僞 事實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搜索構造 狀況을 虛僞로 發表한 것을 問題 삼거나 修正하도록 指示하지 않았다. 水中搜索을 위한 重要한 判斷과 決定은 때를 놓쳤다.

18時頃, 3009함에서 進行된 ‘閔·官·郡 狀況 對策 會議’에서는 세월호의 特性으로 보아 失踪者의 生存 可能性이 稀薄하며, 40미터 水深에서 犧牲者 收拾 活動을 하는 것은 危險하니 水深이 얕은 곳으로 歲月號를 曳引하자는 提案이 나왔다. 産業잠修士들의 意見이었다. 그러나 이런 提案이 合當하고 可能한지 제대로 따져보기 어려운 雰圍氣였다.

23時頃부터 生存者가 直接 救助 要請을 하고 있다는 虛僞 메시지가 擴散되고, 에어포켓에서 60時間을 보낸 後 救助되었다는 事例가 放送에서 나오는 等 輿論의 흐름으로 인해 實際 歲月號 狀況에 根據해 論議하고 判斷하기 어려워졌다. 構造本部는 緻密한 狀況 分析과 迅速한 意思 決定을 제때하지 않았고, 結果的으로 生存構造 活動 以外에 失踪者 水中搜索 計劃과 犧牲者 後續 措置 方案을 함께 마련하지 않았다.

一分一秒가 지날 때마다 애가 탔을 失踪者 家族은 構造 可能性을 높일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試圖하고 싶은 心情이었다. 그럴수록 責任 있는 位置에 있는 사람이 正確한 情報를 바탕으로 家族들이 納得할 수 있도록 構造 現況과 對策을 說明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構造 消息은 없었고, 무엇을 믿고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狀況이 이어지자 現場에 모인 家族들은 크게 絶望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57]

2014年 4月 17日

現場에서는 潛水 人力의 安全을 考慮하지 않은 無責任한 判斷과 指示가 내려졌다. 4月 17日 서해청 狀況室과 3009艦이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면, 當時 中央救助本部가 指揮部 儀典과 報告를 위해 潛水 人力의 安全을 無視했음을 알 수 있다.

0時 36分, 서해청 狀況室은 3009艦에 “現在 海水部 長官님 狀況室 臨場. 바로 入手 바람. 照明彈 發射 바람”이라는 指示를 내렸고, 뒤이어 現場 狀況을 報告받은 다음에도 “액션이라도 하기 바람. 들어가는 척이라도 하기 바람. 廳長님 指示事項임” 等의 指示가 反復되었다.

0時 43分, 이에 對해 3009艦은 “危險한 狀況에서 無條件 들어가라고만 指示하기가 힘듭니다. … 現場에 있는 職員들의 安全 確保도 重要한 事項임을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4月 16日 3009函에서 열린 會議에서는 失踪者들의 生存 可能性이 크지 않다는 意見이 支配的이었다. 그러나 17日 構造本部는 船內 空氣 注入 實施 計劃을 發表했고, 以後 汎臺本도 生存構造 可能性을 높이는 措置를 中心으로 運營되었다. 이는 靑瓦臺가 “現在로서는 生還에 對한 期待感이 큰 失踪者 家族 等을 勘案, 失踪者 搜索 및 失踪者 家族 不滿 最少化 等에 主力”하고, “死亡을 前提로 한 葬禮 問題, 死亡 等”에 對해서는 “對外 表出 없이 內部的으로만 檢討 中”이라는 基調를 세웠기 때문이었다. 海警은 海軍이나 民間 潛水 人力과 協力해 搜索 方案을 講究해야 할 時點에 船內 空氣 注入 等 보여주기식 措置를 이어갔다. 그러나 그때까지 船內 進入에 成功한 潛水士度 없었고 에어포켓이 있을 만한 位置도 모르는 狀態였다. 卽 空氣 注入에 實效가 없었다는 뜻이다. [58]

2014年 4月 18日 ~ 2014年 11月 11日

搜索 作業은 大韓民國 政府가 搜索 作業 終了를 發表한 2014年 11月 11日까지 總 209日間 繼續되었다. [59] 바다 밑 搜索은 거센 潮流와 濁한 視野, 낮은 水溫으로 作業에 큰 어려움을 겪었으며, 作業 日程이 길어지면서 疲勞의 累積과 그에 따른 事故 가 發生하기도 하였다.

汎政府 事故對策本部는 海警·海軍·消防隊員·民間潛水士와 合同救助팀을 꾸리고 船體 搜索과 救助 作業에 나섰으며, 警備艦艇, 民間漁船, 官公船, 헬기까지 投入되어 廣範圍한 海上 搜索도 竝行했다.

4月 18日, 船體로 들어가는 通路를 確保하고 空氣 注入이 始作되었다. 4月 19日, 船體 琉璃窓을 깨고 船內에 進入하여 船體 內部에서 처음으로 屍身 收拾이 이루어졌다. 以後 4月 29日까지 收拾된 屍身은 200區가 넘어섰다. 그러나 船體 崩壞가 進行되면서 屍身이 收拾되지 않는 날이 차츰 늘어갔다. 事故 現場에서 數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流失된 屍身이 發見되기도 했다. 5月 29日, 乘客이 가장 많이 殘留했을 것으로 推定되는 4層 船體 一部를 切斷하고 障礙物 除去 作業을 竝行하면서 一般人, 단원고 學生, 서비스職 乘務員의 屍身이 收拾되기도 했다.

以後 搜索 作業이 進陟이 없자 10月 22日 民間 潛水業體가 撤收 立場을 밝히면서 搜索 中斷 論議가 나오기 始作했다. 이에 失踪者 家族들은 10月 27日 無記名 投票로 搜索 持續을 決定했고 民間 潛水業體도 撤收를 飜覆하고 搜索을 再開했다. 10月 28日, 곧바로 마지막 失踪者가 發見된 지 102日 만에 檀園高 女學生의 屍身이 發見되면서 搜索 中斷 論議가 暫時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11月 11日, 政府는 搜索 作業의 어려움과 潛水士 危險을 들어 搜索 終了를 宣言했고, 失踪者 9名을 남기고 慘事 發生 210日째에 水中搜索은 마무리됐다. [60] [61]

收拾 方法

海上 및 空中

16日 事故 發生 初期에는 沈沒된 歲月號 附近에서 船舶을 통한 海上救助와 헬기를 通한 空中 搜索救助가 主를 이루었다. 特히 初動救助에 民間 漁船들이 큰 役割을 하였다. [54]

潛水要員

潛水要員들은 于先 水面에서 船體까지 가이드라인(誘導線)을 連結한다. 이 線은 빠른 流速과 可視距離가 10~20cm에 不過한 事故 現場에서 潛水要員들이 安全하게 船體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해주는 一種의 길이다. 물속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線을 連結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짚어가며 움직여야 한다. 또한, 빠른 流速 때문에 誘導線을 連結하더라도 線끼리 꼬일 수 있고(꼬이면 다시 設置하는 作業을 해야 한다) 潛水要員의 마스크까지 벗겨질 수 있다. 꼬인 線을 整理해가며 船體로 進入이 可能한 船室과 貨物칸 入口, 操舵室 等에 到達한다. 그리고 線을 그곳에 매어 놓으면, 그때부터 船體進入을 本格的으로 試圖한다. 進入 入口를 確保하고, 다시 自身의 몸의 生命줄을 이은 뒤 船體 內部로 進入을 試圖한다. 船體 안은 漆黑 같은 어둠 속이므로 方向을 잃게 되면 船體 內에 孤立되어 生命이 危險하기 때문이다. 船體로 進入 後에는 携帶 照明 裝備로 매우 혼란스러운 船體 內部를 一一이 눈으로 搜索해야 한다. 그러나 水深에서의 作業時間은 最大 30分에 不過하여, 潛水要員에게 주어진 時間은 짧다. 따라서 高度로 訓鍊된 一部 潛水要員만이 作業에 參與할 수 있는 限界가 있다. [62]

또, 潛水要員들이 酸素를 供給받는 方式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酸素桶을 통해 酸素를 供給받는 스쿠버 다이빙 方式이며, 둘은 공기호스가 連結된 다이빙 헬멧 을 통해 酸素를 供給받는 머구리 方式이다. 歲月號 沈沒 事故에서, 16日 大韓民國 政府는 머구리 方式은 탁 트인 水中에서 水中 作業을 위한 用途이며, 세월호의 船體를 굽이굽이 들어가서 作業하려면 生命線이 꼬이거나 切斷될 危險이 있다며 스쿠버 다이빙 方式을 固守하려 했다. 스쿠버 다이빙 方式은 相對的으로 짧은 時間만 作業할 수 있다. 水深 30 미터에서 水面으로 올라오는데, 潛水病 의 問題로 천천히 浮上해야 하기 때문에 所要되는 時間이 있기 때문이다. 急浮上을 브라보라고 하는데, 이 境遇 潛水病으로 死亡할 수 있다. 失踪者 家族들은 持續해서 머구리 方式을 主張했다. 머구리 方式은 그만큼 潛水病 確率도 높지만, 머구리들이 다이빙 헬멧을 쓰고 西海 40미터 海底 바닥을 3時間 동안이나 걸어다니면서 키조개를 캘 수 있을 程度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作業 限界는 20~30分이 아닌 3時間이다. 結局, 政府는 投入에 反對하다가 投入을 許可했는데, 머구리들이 投入後 船體 內部 進入에 最初 成功하는 等 相當한 成果를 내기 始作해 22日부터 歲月號 沈沒 事故의 構造方式이 머구리 方式으로 轉換되었다. [63] [64]

汎政府事故對策本部는 7月 11日 豫定된 美國 수仲裁呼吸器 潛水팀의 檢證潛水가 作業現場 條件에 對한 異見으로 實施하지 못하고 美國 潛水팀이 撤收하기로 했다고 다음날인 12日에 밝혔다. 수仲裁呼吸器(Rebreather) 潛水는 潛水師가 내쉰 空氣를 排出하지 않고 淨化해 再活用, 潛水時間을 最大 6時間까지 늘리는 潛水方式으로 對策本部는 檢證作業을 거친 後 歲月號 搜索에 投入할 計劃이었다. 事故海域 檢證 潛水現場에서 美國 潛水팀이 갑자기 "沈沒地點 海上에 碇泊한 바지 탓에 潛水士 安全確保에 어려움이 있다"며 "바지가 없는 狀態에서만 潛水할 수 있다"는 條件을 提示하였다. 이에 事故對策本部는 "'나이트록스' 潛水方式을 主力 潛水手段으로 活用하고 수仲裁呼吸器 潛水를 補助 手段으로 竝行할 豫定인 現 狀況에서 바지를 撤收해 달라는 美國 潛水팀의 要求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異見이 좁혀지지 않아 수仲裁呼吸器 投入이 霧散됐다"고 밝혔다.

나이트록스는 潛水를 오래 할 수 있도록 酸素 濃度를 높인 氣體를 말하며, 이 氣體를 쓰는 潛水 方式이 나이트록스 潛水다. 잠修辭들이 들이마시는 機體만 달라진 거라서 外觀上 달라 보이는 건 없다. 하지만 旣存의 '表面 空氣 供給 方式'李 酸素 濃度가 21%인 一般 空氣를 썼던 反面, 나이트록스 潛水社들은 酸素 濃度가 28%까지 올라간 機體를 供給받는다. 이 氣體를 마시면서 潛水하기 때문에 旣存의 2倍인 最大 60分까지 潛水 時間을 確保하게 되었다. 搜索 時間이 2倍 가까이 늘어나면서 그만큼 精密 搜索이 可能해진 것이다. 하지만 構造當局은 자칫 나이트록스 方式을 잘못 쓰게 되면 酸素 中毒으로 인한 潛水病 症狀을 誘發할 수 있다는 憂慮 때문에 導入 時機를 늦춰 왔었다.

空氣注入 및 리프트백 設置

空氣注入은 船體 內에 공기호스를 注入하여, 或是 모를 船內 生存者들의 生存時間을 늘리는 役割과 浮力을 維持하는 役割을 할 수 있다. 物體가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重力에 相應하는 浮力이 作用해야 하기 때문이다. 空氣는 浮力을 증가시켜줄 수 있다. 따라서 一種의 浮力주머니인 리프트百科 空氣注入을 政府는 推進하였다. [65] 그러나 이러한 措置에 對하여, 알파潛水技術工事 이종인 代表는 理解가 잘 안된다고 論評했다. 空氣注入은 사람이 있을 만한 곳에 해야 함에도, 第一 上甲板人 操舵室에 空氣注入을 했다는 主張이다. 또한, 操舵室의 構造的 特性을 根據로 空氣가 注入되어 다른 쪽으로 空氣가 퍼져 에어포켓을 形成할 可能性에 對해서도 否定했다. 그는 오히려 空氣注入은 一旦 調査 後, 食堂 等 사람이 살아 있을 確率이 있는 곳에 해야 한다고 指摘했다. 또, 18日 進行된 政府의 리프트백 設置 樣相이 但只 배가 거기 있다고 表示하는 어떤 風船처럼 돼 있을 뿐, 어떤 浮力을 作用하는 效果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評價했다. [66]

船體 切斷

5月 10日 汎政府事故對策本部에 따르면 崩壞 危險이 確認된 곳은 5層 選手 乘務員 客室 通路와 中央 特室 通路, 4層 船首 左舷 8人室 通路와 선미 30人室 通路 等 4곳이다. 이런 狀況으로 潛水 搜索이 不可能한 區域이 생기자 船體 外販 一部를 切斷하는 方案에 最終 合意했다. 세월호 失踪者 家族들의 法律代理人인 배의철 辯護士는 27日 午後 진도군청 에서 브리핑을 열고 "家族들은 애初 失踪者 流失 危險 때문에 躊躇했으나 政府가 船體 附近과 外郭에 3次에 걸쳐 流失 防止를 위한 에어백과 그물, 鮟鱇網 等을 設置하겠다고 約束해 한 名의 流失도 없이 施行될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切斷은 4層 선미 우현부터 于先 推進하며, 切斷 方法은 1次的으로 酸素 아크 切斷法을 使用하고 2次 代案으로 超高溫 切斷鳳이 提示됐다. [67] 汎政府事故對策本部는 30日 午前 진도군청에서 열린 定例 브리핑에서 "前날 午後 2時 10分께 4層 선미 窓門 3곳의 切斷 作業을 始作, 現在 窓門 下端 가로 4.8m를 切開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날 午後 2時께 豫定된 '搜索救助支援 裝備技術 硏究 專擔班(TF)'會議에서는 4層 선미 切斷 進行 狀況 點檢과 前날 午後 家族들이 建議한 4層 選手 區域 切斷 與否에 對해 論議할 豫定이다. [68]

2017年, 세월호가 木浦新港에 引揚되었을 때 寫眞
船舶 引揚

收拾 變數

鳥類 및 可視距離

船舶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乘客들을 救助하기 爲한 方法은 潛水要員 投入이었다. 潛水要員은 船舶隣近 및 船舶內部를 搜索했다. 그러나 맹골수도 의 特性上 潮流가 빠르고, 可視距離가 10~20cm밖에 되지 않아 潛水要員들의 安全을 擔保할 수 없어 構造에 어려움을 겪었다. [69]

氣象

氣象 亦是 事故 收拾을 더디게 했다. 甚至於 17日 午後에는 氣象狀況이 나빠져 構造가 中斷되기도 하였다. [70]

低體溫症

박준범 순천향大學病院 應急醫學科 敎授는 "10度~15度 사이의 물에 사람이 한두 時間 程度 있게 되면 이미 意識을 잃어요. 體溫이 떨어지면서. 한두 時間이 지난다면 宏壯히 危險한 狀態에 빠진다고 할 수 있고요"라고 言及하였다. 危急한 狀況에는 心臟機能에 異常이 생기면서 脈搏이 느려지는 徐脈과 心房 및 心室細動, 甚하면 心臟停止까지 올 수 있다. 體溫이 떨어지면 人體는 筋肉을 통해 熱을 內 溫度를 維持하려고 하기 때문에, 筋肉量이 낮은 高齡者나 慢性疾患이 있는 사람은 特히 危險할 수 있다. 低體溫症狀態가 되면 構造過程에서도 작은 衝擊으로 甚한 不整脈이 오거나 出血이 생기기 쉬워 注意를 요한다. [71]

에어포켓

事故 初期 一部 專門家들이 希望을 걸어볼 수 있는 것으로 指摘했던 것은 에어포켓 이다. 정창두 서울대 朝鮮海洋工學 名譽敎授는 배가 完全히 水面 아래로 가라앉지 않고, 떠있는 理由를 "컵을 물속에 엎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空氣가 빠져나가지 않았고, 多幸히 選手 部分은 損傷이 없기 때문에 空氣가 갇혀 있는 거죠. 所謂 에어포켓이 形成되어 있습니다"라고 說明하였다. 이 에어포켓에 空氣가 8m 3 假量 있다고 假定하면, 마지노線은 最大 72時間으로 計算된다 [72] . 한便, 가라앉지 않은 部分에 依해 推算되는 船內 空氣量은 500~1000 세제곱미터였다. 大西洋에서는 船舶顚覆 事故 後, 船員이 에어포켓에서 60時間을 버티다가 救助된 事例가 있었기에, 에어포켓에 依한 生存者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報道가 많았다. [73] [74] 政府는 에어포켓에 希望을 걸고 歲月號에 空氣를 注入하기도 했다. [75] 그러나 結局 에어포켓에 依한 生存者가 나오지 않았고, 에어포켓 關聯 報道와 政府의 對應이 結果論的으로는 遺家族들에게 '希望拷問'이었다는 批判이 存在한다. [76]

隔室

隔室이란 事故의 波及을 防止하기 위해 隔離시켜 만든 空間으로 大部分의 船舶은 이 隔室들을 갖추고 있다. 한국해양대학교 공길영 敎授는 “只今 狀況은 天安艦 狀況과 매우 비슷하다”며 “失踪者들이 生存해 있으려면 水密隔室이 돼야 하는데 배에 電源 供給이 中斷되고 急激히 뒤집히는 臺 混沌 속에서 門을 닫는 措置가 取해져 있을지 悲觀的이다"고 말했다. 隔室이 제대로 作動하기 위해서는 門을 닫는 措置가 取해져야 하며, 隔室에 에어포켓이 있다면 理論的으로 48時間을 버틸 수 있다. [77]

事故 原因 및 責任者 搜査

沈沒 原因 調査

事故 原因에 對하여 檢察은 2014年 10月 6日 다음과 같이 發表하였다.

첫째, 12年 日本에서 輸入된 後 修理 增築에 따라 총톤수가 增加(239톤) 하고 左右가 不均衡하게 되었으며, 둘째, 事故 當日 最大 貨物 積載量(1,077톤)의 2倍에 達하는 過積(2,142톤)이 있었고, 셋째, 船體 復元에 必要한 平衡數 等을 1,375.8톤 減縮 摘載하였으며 넷째, 關係 法規에 依하지 않는 方法으로 車輛 컨테이너를 不實 古朴하는 가운데, 다섯째, 事故 海域 通過 時 操舵할 義務가 있는 船長이 船室을 離脫하고 勤務 航海士와 操舵手가 過度하게 變針하는 等 運航上 過失이 더하여 沈沒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78]

그러나 그러했던 檢察의 發表는 다음과 같이 棄却되었다. 첫째, 세월호의 增改築은 韓國船級에 依해 許可를 받고 進行된 事項이며, 이로 因해 增改築의 違法性은 裁判을 통해 認定되지 않았다. 둘째, 過積은 滿載吃水線이 基準이므로 法的으로 過積은 事實이 아닌 것으로 確認되었다. 이로 因해 檢警 合搜部 諮問團 報告書에도 運航上 過積이라는 表現을 使用하고 있다. 셋째, 坪型數는 元來 固定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運航 狀況에 따라 調節 可能한 것이며, 넷째, 船員 裁判 1審에서는 이준석 船長이 操舵室에 再選하여 直接 指揮를 할 義務가 없었다는 主張이 받아들여져 犯罪事實에서 除外되었다.

假說들

다음은 沈沒에 對한 假說 들이다.

暗礁衝突說

事故 發生 初期에는 言論이 안개에 依한 暗礁 未發見으로 因한, 衝突可能性을 集中 照明하였다. 生存者 中 一部가 들었다는 '쿵' 소리와 當時 氣象狀況이 안개가 있었다는 點을 考慮한 主張이었다. 백점기 釜山大 船舶海洋플랜트技術硏究院長은 배의 坐礁로 인한 事故可能性이 가장 높다고 하였다. [79] [80] 하지만 이 主張은 該當 海域에 暗礁가 없으며, '쿵' 소리의 原因이 다른 데 있을 수 있다는 專門家들의 共通的인 指摘에 따라, 有力한 事故 原因에서 後順位로 밀려나게 되었다. [81] [82] [83] 最近 發表된 社慘委 綜合報告書에 따르면 세월호 船體 變形과 損傷의 原因이 水中體 接觸에 依한 外部 衝擊일 可能性과 關聯해, "그 可能性을 排除할 수 없으나 同時에 다른 可能性을 排除할 程度에는 이르지 못하여 外力이 沈沒 原因인지 確認되지 않았다는 結論으로 마무리되었다. [84]

救助缺陷說

歲月號와 같은 RORO선 은 構造的 缺陷으로 인한 事故의 危險性이 國際的으로 자주 指摘되던 船舶이다( RORO선 事故 目錄 參照). [85] 2009年 11月 日本에서 미쓰비시 重工業 에서 乾燥하여, 마루에이 페리 社가 運行하던 아리아케號 가 沈沒했다. [86] 이 船舶은 過去 세월호가 나美노우에호로 活躍하던 時節 運行한 海運社가 同一했고 船舶 디자인과 排水量이 類似한 RORO선 이다. [87] 2009年 아리아케號 事故 直後, 마루에이 페리는 同一 船舶인 나美노우에호를 2012年 退役시켰다. 그것을 청해진해운 에서 輸入하여 1年間 改造하였으며, 2013年 3月 이름을 세월호로 改名하고 運行을 始作하였는데 1年 1個月 만에 坐礁된 것이다. [88] 한 海上專門家는 "船體가 그렇게 빨리 기운다는 것은 船舶 復元力을 생각하면 쉽게 理解가 가지 않는데, 이는 船舶의 構造的 缺陷이 原因일 可能性이 있다"라고 말했다. [89] 歲月號 沈沒에 對하여 構造的으로 缺陷이 있다는 主張은 慘事 直後부터 提起되었는데, 이와 關聯해 船社 任職員 對象 2審 裁判에서 “操舵機의 非正常 作動 可能性 等을 排除할 수 없다”고 結論 난 바 있다. 그러나, 最近 社慘委 調査 結果報告書에 따르면 操舵機와 關聯된 “솔레노이드 밸브 固着이 세월호의 急激한  右旋回와 橫警査를 誘發했을 可能性은 매우 낮다”고 하여 內人說의 主要 主張 中 하나인 操舵機 故障설이 棄却된 바 있다. [90]

構造變更설

한국해양대 海士輸送科學部 김길수 敎授는 事故의 原因이 構造變更에 있을 수 있다고 指摘하였다. 實際로 세월호는 2012年 10月 日本에서 輸入된 뒤, 이듬해 3月까지 全南 木浦에서 客室을 增設하였다. 3~5層에 客室이 增設되었고 乘船定員은 181名 追加된 921名으로 많아졌으며, 船舶 무게도 239t 增加했다. 이에 따라 무게中心이 元來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金敎授는 "배를 急激히 돌린다고 顚覆이 되지는 않는다" 며 "構造 變更 過程에서 무게中心이 위로 올라갔다면 내ㆍ외부에서 衝擊이 加해졌을 때 배가 뒤집힌다" 고 說明했다. 이에 對해 歲月號 登錄 檢査를 맡았던 韓國船級 關係者는 "客室 增設은 合法的인 工事, 點檢 結果 運航에 問題가 없다는 結論이 나와 登錄 檢査를 正常 通過했다" 고 밝혔다. [91] 한便, 客室만 增築한 게 아니라, 배 앞쪽 램프웨이度 撤去한 것으로 드러났다. 出入口를 줄이면 貨物을 더 실을 수 있고, 배 全體 무게가 가벼워져 그만큼 客室 增築에 유리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推定된다. 한쪽에만 있던 램프웨이를 없애면서 오른쪽이 너무 가벼워진 게 아니냐는 疑問을 提起하기도 한다. [92]

變針설(航路變更설)

變針(變針) 이란 旅客船이나 航空機 運航 等에서 主로 使用하는 專門 用語로, 航路를 變更한다는 뜻이다. 一部 專門家들은 세월호가 急激한 變針으로 무게重心을 잃고 한쪽으로 쏠렸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沈沒한 세월호가 左로 기울었다는 點도 이같은 分析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임긍수 목포해양대 海洋運送시스템學部 敎授는 "歲月號 旅客船 慘事 原因이 暗礁가 아닌 急旋回에 따른 外方傾斜路 推定된다" 고 밝혔다. 그는 流速이 빠른 海域에서 船舶이 回轉하게 되면 船體가 5~ 10度假量 기울게 되고 그 影響으로 船體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나 貨物이 한쪽方向으로 쏠려 船舶과 衝突했을 것으로 推定하였다. 異說을 支持하는 專門家들은 事故 當時 發生한 '꽝' 소리는 結縛된 貨物들이 풀리면서 船舶에 부딪혀 發生한 소리로 보고 있다. [81] [82] 이 說은 17日 海警이 緊急 브리핑에서 暫定 結論으로 發表한 見解이기도 하다. [93] 그러나 歲月號에 실려있던 車輛 블랙박스를 通해, 船體가 10秒만에 52度까지 急激하게 기울고 난 뒤에 車輛이 움직이는 場面이 確認되면서, 變針이나 貨物쏠림으로는 物理的으로 不可能한 速度로 船體가 기우는게 確認되었다. [94] 또한, 2014年 國內 船舶海洋硏究所의 模型航走實驗을 통해, 2014年 當時 檢察이 主張했던 세월호 急變침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硏究結果가 나왔지만, 4年間 隱蔽되었다가 2018年 3月이 되어서야 硏究事實이 밝혀졌으며, [95] 2018年 1月, 네덜란드에서 政府가 發表한 AIS 航跡을 數百番 實行했으나, 어떤 境遇의 數를 두더라도 政府가 發表한 抗敵을 그리지 않았다. [96]

內部爆發說

공길영 한국해양대 敎授와 林敎授는 異見을 보였다. 그는 "變針은 沈沒의 1次的 事故 原因이 아니다. 배가 이미 기운 狀態에서 變針을 試圖했다면 問題가 된다" 며 "可能性이 낮다" 고 했다. 그는 "操舵 裝置가 제대로 作動되지 않았다는 것은 두 가지 意味가 있다. 이미 기울어진 狀況에서 操舵 裝置를 作動해 봐야 無用之物이다" 면서 "內部에서 暴發했을 可能性이 크다. 컨테이너에도 무엇이 실렸는지 봐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暗礁설에 對해서는 海洋 調査員들이 海圖에 航路에 있는 暗礁들을 記入해둘 뿐 아니라 乘務員들도 그 航路에 익숙할 수밖에 없다며 暗礁에 依한 坐礁可能性을 一蹴하였다. [97]

過積 및 船體缺陷설

이 見解는 2014年 4月 19日子 午前 10時頃 釜山日報 와 그날 午後에 綜編 放送社 JTBC 에서 提起한 것이다. 釜山日報 4月 19日子 報道 上, 한국해운조합에 따르면 세월호는 4月 15日 出港 前 貨物 657t, 車輛 150臺를 실었다고 組合에 報告書를 提出하였다. 그러나 實際 確認 結果 세월호는 貨物 1千157t, 車輛 180臺를 싣고 있었기에 이는 貨物은 無慮 500t, 車輛은 30臺를 超過했다는 疑惑을 提起했다. 곧 貨物 500t 車輛 30代 超過한 狀態에서 밧줄로 제대로 묶지도 않았기에 船舶 荷重調節 失敗도 한 原因으로 作用했다는 見解이다. [98]

한便 歲月號에 얼마 前까지 勤務했던 機關士는 먼저 船舶이 回轉을 할 때 均衡을 잡아주는 船舶 兩 側面의 스태빌라이저가 缺陷이 있었다고 證言하였다. 스태빌라이저는 船舶 側面에 날개 模樣의 形態로, 船體의 안과 밖을 反復的으로 往復한다. 級回轉 時 이 스태빌라이저가 作動하지 않으면 배가 기울어져 버린다. 그런데 여기에는 前提條件이 있는데, 貨物의 過積載이다. 이에 對해 청해진해운 側은 過積載가 아니라고 主張했지만 JTBC는 이를 다음과 같이 反駁한다. 세월호의 全體 重量은 6,825톤인데, 이것은 船舶 自體, 貨物, 乘客, 燃料 等의 무게를 모두 더한 數値다(만재배수톤수). 이 무게를 넘어서게 되면 過積이 돼 出港을 할 수 없는 것이 原則이다. 歲月號 배 自體의 무게는 3,031톤, 船社 側이 밝힌 貨物과 乘客 무게는 3,638톤이다. 모두 더하면 6,825톤을 넘지 않아 問題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배의 燃料와 平衡數 等의 무게가 漏落돼 있다는 것이다. 歲月號 燃料로 쓰인 벙커C類와 內部 發展容認 輕油를 換算한 무게는 約 160톤으로 이를 더하면, 6,825톤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윤종희 한국해양대 敎授는 "모든 것을 실은 狀態에서 거기 貨物도 있고, 燃料·물·船用品 飮食 等 이런 거 다 있지 않습니까. 그런 種類도 다 包含돼요."라고 밝혔다. 이 部分에 對해서는 청해진해운 側은 答辯을 하지 않았다.

또한, 平衡數 問題 亦是 船舶의 動的安定性을 沮害할 수 있는 要因으로 擧論된다. 乘客들의 證言에 따르면, 세월호는 沈沒되기 한 時間 前인 7時 40分頃부터 이미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된 데는 이른바 平衡數 탱크에 問題가 생겼기 때문이 아니냐는 主張이다. 平衡數 탱크는 船舶 가장 아래 部分에 位置하는데, 左右 3個씩 모두 6個의 물탱크로 이루어져 있다. 坪型數는 海水를 담아 배의 左右 均衡을 맞춰준다. 그런데, 最近까지 歲月號에서 일했던 前職 船員의 陳述은 다음과 같다. "물이 한쪽으로 실리는 傾向이 있어요. 한 番 물을 딱 맞춰 놓으면 그대로 있어야 하는데…" 卽, 左右 均衡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便 JTBC는 平衡數 施設이 2月에 修理를 하고, 安全點檢까지 받아 通過했지만 그 以後에도 船員들은 全혀 고쳐진 바가 없다고 했다고 言及하였다. 또한, 스태빌라이저 亦是 部品이 없어 修理를 받지 못했고. 摘載된 컨테이너 亦是 쇠줄이 아닌 밧줄로 묶여 있었다는 點도 指摘하였다. [99] [100]

그러나 네티즌 '字로'의 다큐멘터리 '歲月X'에 依하면 當時 세월호는 過積을 한 것이 事實이나 慘事 當時보다 적게 실은 날이 單 4番 뿐이었고, 3倍 以上 過積하여 運航한 날도 있어 이 假說에 對해서는 論難이 있다.

느슨한 結縛설

歲月號 前 航海士 金某氏는 4月 21日子 JTBC 뉴스 9 孫石熙 앵커와의 對話에서 스태빌라이저나 平衡數, 變針 等의 問題는 決定的인 問題가 아니라며, "沈沒한 세월호는 結縛을 제대로 안했을 것"이라 했다. [101] 또, 仁川港 船舶의 貨物 結縛을 現場에서 直接 擔當하는 仁川航運勞組는 컨테이너 結縛에 꼭 必要한 라싱바와 브릿지피팅 같은 專門 裝備가 歲月號에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밝혔다. [102]

그 外에도 潛水艦 衝突說 等이 있다. [103]

責任論

乘客들을 船舶에 두고 1次 脫出한 船舶職 乘務員들에 對하여 社會倫理的 責任이 擧論되었다. 이러한 批判은 세월호 事故의 工學的·物理的 分析에 따른 直接原因보다 根本原因을 指摘한다. 船舶이라는 한 集團의 範圍 內에서는, 船長 等 船舶職 乘務員들이 航海와 乘客 救助任務 責任을 지닌 리더인데, 그들의 리더십 不在가 세월호의 沈沒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몇 가지 根據로, 充分한 脫出 可能時間이 있었음에도(약 2時間) 乘客들에게 "움직이면 危險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放送과 海警에 救助要請을 하는 것 外에는 별다른 時期適切한 有效 措置가 없었다는 點, 오히려 放送 指示의 合理性에 疑問을 품고 救命조끼를 着用한 뒤 脫出을 試圖했던 乘客들이 生存率이 높았다는 點, 船長 李俊錫 等 船舶職 乘務員들이 乘客들을 뒤로 하고 1次 脫出했다는 點을 든다. 따라서 이 分析은 人命被害를 最少化할 수 있었던 問題가 리더들의 判斷錯誤와 責任感 不在로 人材(人災)가 되었음을 指摘한다. 歲月號 慘事 直後 船長 및 淸海鎭海運의 職員 大部分이 救援派 信徒들이며, 救援派의 敎理로 인해 歲月號慘事가 일어난 것이라고 報道되었으나 [104] [105] [106] 이는 以後 事實이 아님이 訂正報道 되었다. [107] 한便, 세월호 船員들이 沈沒事故 直前 自身들만 아는 通路를 利用해 배에서 脫出했다는 情況이 드러났다. [108]

2014年 4月 17日 午後 9時에 仁川港에서 청해진해운 代表 김한식 代表가 나와 對國民 謝過를 하였다. [109]

大韓民國 社會

歲月號와 大韓民國 社會를 類比推論韓 社會 全般의 責任論이 擡頭된다. 朝鮮日報 李宗泫 記者는 "沈沒하는 세월호는 韓國 社會의 縮小版"이라며, 세월호의 核心乘務員들이 乘客들을 남겨두고 먼저 脫出하는 모습을 危機에 處하면 몰래 빠져나가는 財閥 會長, 國會議員 같은 韓國 社會指導層의 모습과 닮은꼴이라고 指摘했다. 失踪者 家族들이 海警과 海軍을 믿지 못하고 民間 潛水夫 投入을 强하게 要求했다는 點, 海警이 民間 潛水夫 投入을 막고 嘲弄했다는 根據 없는 이야기가 政府의 公式 發表보다 더 힘을 얻는 狀況이 反復된다는 點에서 이는 政府 스스로 權威와 信賴를 잃은 結果라 指摘했다. [110]

最近 社慘委 發表 內容

2022年 9月, 社會的慘事特別調査委員會를 통해 發表된 內容은 아래와 같다.

歲月號 沈沒 原因

社慘委는 內人說의 主要 根據로 提起되었던 솔레노이드 밸브 固着이 세월호의 急激한 右旋回와 橫警査를 誘發했을 可能性은 매우 낮다는 結論을 내렸다. 한便, 세월호 船體 變形과 損傷의 原因이 水中體 接觸에 依한 外部 衝擊일 可能性과 關聯해, 社慘委는 外力이 沈沒 原因인지 確認되지 않았다는 結論을 내렸다. 그 可能性을 排除할 수 없으나 同時에 다른 可能性을 排除할 程度에는 이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沈沒 原因을 綜合的으로 整理해내지는 못하였다. [111]

歲月號 慘事에서 海警 等 初動對應의 適切性

調査를 통해 304名의 死亡에 對한 海警 指揮部의 責任이 分明히 確認되었다. 海警 指揮部는 法令과 매뉴얼에 依해 분명한 義務와 權限을 가지고 있는 位置로서 可用資源을 總動員하여 狀況을 把握하고자 했어야 했고, 세월호의 危急한 狀況을 把握하여 出動勢力으로 하여금 歲月號 乘客들의 退膳을 誘導할 수 있도록 指示를 내렸어야 했으나 그러한 措置를 取하지 않았다.

海警 指揮部는 스스로 세월호의 具體的인 狀況을 把握하고자 努力하지도 않았고 乘客의 申告 等으로 이미 確保된 情報도 出動勢力에게 共有하지 않았으며 乘客 申告와 現場 出動勢力이 提供하는 情報를 통해 세월호의 危急性을 認識할 수 있었음에도 不拘하고 出動勢力에게 제대로 된 指揮를 하지도 않았다. [112]

歲月號 慘事에서 靑瓦臺 等 對應의 適正性

靑瓦臺는 「國家危機管理基本指針」의 明示的 規定에 따라 國家危機狀況에 컨트롤타워 役割을 遂行했어야 했다. 그러나 2014年 4月 16日 不在했던 컨트롤타워는 慘事 以後 政府를 向한 國民 輿論이 惡化되면서 活潑히 作動했다. 靑瓦臺는 政權 批判이 擴散되는 것을 막기 위해 輿論을 糊塗하고 國民을 自身들의 政治的 利害關係에 따라 區分하고 나누는 行爲도 恣行했다. 靑瓦臺가 認識한 危機는 '政權의 危機'였고 特히 國論分裂 樣相이 나타났을 때 大統領·政府를 批判하는 個人과 團體를 '理念偏向的', '從北勢力'으로 몰아세우며 制裁를 加했다. 그 過程에서 右派團體를 活用했고 이에 協力한 團體에 金錢的 支援을 하거나, 積極的인 人事를 主要 補職에 任用하는 等 保守勢力의 基盤을 强化했다. 靑瓦臺는 被害者를 保護하지 않고 오히려 政治勢力에 煽動된 모습으로 烙印 찍히게 만들었다. 이렇듯 朴槿惠 靑瓦臺는 被害者의 要求를 曲解하면서 社會的 葛藤의 要因들을 强化하고, 特別法 等 向後 災難對應力을 위한 徹底한 眞相糾明조차 妨害하기에 이르렀다. [113]

情報機關(國精院, 기무사 等)의 歲月號 慘事 介入

委員會는 國精院과 기무사 等 情報機關이 兪炳彦 一家 搜査 및 檢擧 作戰에 違法, 不當하게 支援한 事實 또는 情況을 確認했다. 當時 靑瓦臺는 歲月號慘事를 ‘全 國民에게 苦痛을 안겨준 國家的 災難으로 兪炳彦 一家의 貪慾的인 財産 增殖 過程에서 빚어진 慘事’라고 規定하며 兪炳彦 搜査 및 檢擧 作戰을 카드로 活用하여 歲月號慘事 政局에서 政府의 責任을 回避하고 政府로 向한 非難의 화살을 선주에게 돌리려 하였다. 國精院과 기무사는 이와 같은 靑瓦臺의 基調에 積極 副應하였다. [114]

當時 機務司도 兪炳彦 檢擧와 財産 還收가 歲月號 政局을 終結하는 關鍵이라고 判斷하고 ‘유병언 檢擧 TF’를 構成하는 等 積極 協力·支援하였다. 그 當時 機務司 人員들은 금수원 民間人 對象 監聽, 基督敎福音침례회(救援派) 民間人의 厖大한 個人情報를 蒐集하여 分析한 것이 適法한 “行政應援” 이었다고 主張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무사의 活動은 搜査機關의 搜査 活動으로 判斷되고, 따라서 行政節次法上 行政應援에 該當할 餘地가 없어 違法 또는 不當하다고 判斷된다. 이와 같이 兪炳彦 檢擧作戰에 介入하였던 機務司의 違法 不當한 行動은 定例 報告를 통하여 靑瓦臺로 隨時 報告되었다는 點도 確認되었다. [115]

歲月號 慘事와 國家 犯罪

歲月號特調委의 眞相糾明 妨害는 計劃的·大量的·體系的으로 恣行된 國家 犯罪로 判斷된다. 國家가 그 權力을 利用하여 國家 構成員인 個人에게 加害行爲를 하는 等 國家權力에 依한 重大한 人權蹂躪 行爲를 說明하는 用語를 ‘國家犯罪’라고 한다. 歲月號特調委의 調査에 協助할 義務를 지닌 國家 機關이 오히려 職權을 濫用하여 歲月號特調委의 內部 動向과 調査 進行 現況 等을 事前 把握해 相互 共有하고, 把握된 動向을 바탕으로 歲月號特調委의 調査를 妨害하고 統制하기 위해 具體的 對應方案을 相互 公募하여 樹立하고 實行했다. [116]

416聯隊의 反應

416聯隊는 社慘委의 調査活動 結果에 크게 失望하고 慨歎하며 4가지 限界點을 指摘했다. 첫째, 慘事 當日 救助芳氣의 核心 原因에 對한 調査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둘째, 眞實은 隱蔽하고 調査를 妨害한 行爲, 被害者 權利를 侵害하고 査察한 行爲 等 廣範圍하게 恣行된 國家暴力의 實體를 確認하였으나, 情報機關으로부터 資料를 圓滑히 받을 수 없어 그 全貌를 追跡하고 밝혀내지 못하였다. 셋째, 沈沒原因마저 結論을 내리지 못하였다. 넷째, 調査 過程과 調査 機構 運營에서 意思疏通의 不在로 인한 混線을 비롯한 여러 가지 限界와 問題點을 드러냈다.

4.16歲月號慘事家族協議會와 4.16聯隊는 앞으로도 持續的으로 聖域 없는 眞相糾明活動과, 國家의 歲月號 慘事 以後 恣行된 廣範圍한 眞相隱蔽와 被害者/市民 人權侵害 等의 國家暴力에 對한 謝過 및 後續 措置 要求 市民行動, 다른 災難慘事 被害者와 各界各層 市民들과 連帶 等을 통한 市民의 安全圈 保障과 災難慘事 被害者 權利保障을 위한 制度的 對策을 마련을 持續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17]

이에 對한 現政府의 立場

社慘委는 社會的 慘事 特別法에 따라 綜合報告書와 80件의 勸告를 國會와 大統領에 報告했으며, 勸告를 받은 國家機關은 특별한 事由가 없으면 勸告를 履行해야 한다. [118] 그러나 4·16聯隊에 따르면, 2024年 4月 12日 現在 尹錫悅 政府는 12個 分野로 分類된 勸告 中 海洋災難 搜索構造 體系 改善 1個 分野만 比較的 履行하였으며 5個 分野는 거의 履行하지 않았고, 6個 分野는 全혀 履行하지 않았다. [119]

反應 및 餘波

大韓民國 內外의 反應

歲月號 合同焚香所

餘波

外傷 後 스트레스 障礙(PTSD)

救助된 生存者들 大部分은 病院들로 移送되었다. 生存者를 診察한 醫師는 "移送된 患者들이 甚한 外傷 後 스트레스 障礙 , 卽 트라우마로 한동안 멍한 狀態가 이어졌다"면서 "精神 檢診과 스트레스 程度를 把握해 治療할 計劃"이라고 말했다. 生存者 以外에도 周邊人이나 構造人力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指摘이 있으며, 保健福祉部는 事故 當日 5名으로 構成된 心理治療팀을 生存者들이 入院한 安山 구로病院에 보내 心理 支援을 始作했으며, 17日에는 女性家族部와 敎育部, 消防防災廳, 京畿道 等과 함께 '中央災害 心理支援團'을 꾸려 珍島 事故 現場에 내려 보냈다. [120]

自殺

4月 18日 午後 4時 5分 警, 修學旅行 引率者로 갔다가 事故를 當하고 救助된 安山 단원고등학교 강민규 交感이 全南 珍島體育館 뒤便 野山에서 목을 매 숨진 채 發見되었다. [121] 校監의 紙匣에서는 遺書가 發見되었다. 遺書에는 "200名의 生死를 알 수 없는데 혼자 살기에는 힘이 벅차다. 나에게 모든 責任을 지워 달라. 내가 數學旅行을 推進했다"며 屍身은 化粧한 뒤 事故 海域에 뿌려 달라는 內容이 담겨있다. 이어 "屍身을 찾지 못하는 녀석들과 함께 저승에서도 先生을 할까"라는 內容도 적혀있었다. [122] 自殺 原因 中 하나로 推定되는 것이 있다. 그는 學生들을 남겨두고 救助된 것에 對해 周圍에 “나만 혼자 빠져나온 것 같아 괴롭다”고 呼訴했으며, 그런 가운데 旅客船 沈沒로 死亡하거나 失踪된 단원고 學生 學父母들로부터 “왜 當身만 살아 돌아왔느냐”는 等 剛한 叱咤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23] 강민규 校監은 공주대학교 師範大學을 卒業 後 1987年 中等學校 敎師로 任用되어 道德과 倫理 科目을 가르쳤다. 2012年 3月 校監으로 昇進하였으며, 安山 陽地高等學校 等에서 勤務하다 2014年 3月 1日 字로 단원고등학교에 赴任하였다. [124]

5月 30日 午前 4時 57分께 花郞遊園地 內 駐車場에서 A氏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行人이 發見, 警察에 申告했다. A氏는 歲月號 慘事 犧牲者 遺族은 아닌 것으로 確認됐으며 숨진 A氏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便紙紙 1張 分量의 遺書가 發見됐다. 警察은 A氏가 남긴 遺書에 ‘세월호로 숨진 學生들을 追慕한다. 어른이어서 未安하다. 紙匣에 든 돈(70餘萬원)을 遺族들을 위한 誠金으로 써달라. 屍身은 寄贈하겠다’는 等의 內容이 적혀 있었다고 傳했다. [125]

7月 5日 全南 珍島警察署 에 따르면 이날 午前 9時 58分께 珍島郡 군내면 신기리 無調理船着場 앞 海上에서 震度警察署 所屬 金某 警衛의 屍身이 물에 떠 있는 것을 搜索에 나선 漁民이 發見에 警察에 申告했다. 그는 지난 達人 6月 26日 午後 9時 26分께 珍島郡 진도읍 珍島大橋 에서 投身했다. 金某 警衛는 慘事 以後 投身 前까지 彭木港과 珍島室內體育館에서 支援業務를 해 왔으며 業務 疲勞와 昇進 等의 問題로 極甚한 스트레스를 呼訴한 것으로 알려졌다. [126]

自殺 企圖

4月 21日 午前 11時 40分頃, 參考人 身分이었던 歲月號 機關士 孫某(58)가 自殺을 企圖했으나 同僚와 모텔 職員의 申告로 救助되어 生命에는 支障이 없었다. [127]

5月 9日 午後 5時 50分쯤 京畿 安山 단원고 學生의 어머니가 집에서 쓰러진 채 發見돼 病院으로 옮겨졌다. 古代 安山病院 關係者는 "A氏는 藥물을 過多服用한 것으로 推定된다”며 “多幸히 患者가 迅速히 病院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128] 11日 安山 團員警察署에 따르면 이날 새벽 1時 40分께 政府 合同焚香所 遺家族 待機室 隣近에서 徐某氏가 自殺을 試圖하려다 出動한 警察이 發見해 無事히 家族에게 引繼됐다. 警察은 徐氏가 連絡이 안 된다는 申告를 받고 搜索을 벌이던 中 遺家族 待機室 뒤便에서 허리띠를 풀어 목을 메 自殺을 試圖하려는 徐氏를 發見했다. 徐氏는 家族과 함께 歸家 措置됐으며, 生命에는 支障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129]

救助人力 人命被害

汎政府事故對策本部는 4月 27日 午前 진도군청 에서 定例 브리핑을 열고 搜索 地點의 水深이 깊어지면서 潛水病 症狀을 呼訴하는 隊員들도 늘고 있어 潛水士 1名當 1日 投入回數를 最少化하고 休息을 按排하며 作業하고 있다고 說明했다. [130]

5月 1日 , 午前 1時 15分께 民間 潛水士 金某(40)氏가 慶尙南道 泗川市 의 三千浦서울病院 高壓酸素治療센터로 緊急 後送돼 治療를 받고 있다. 金氏는 前날 午後 全南 珍島 海域에서 세월호 水中 搜索作業을 마치고 나서 바지船 위 減壓챔버에서 意識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應急措置를 받고 意識은 回復했지만 極甚한 頭痛 等 潛水病 症勢가 深刻해 三千浦서울病院으로 옮겨졌다. 病院 側은 곧바로 高壓酸素治療센터에서 水深 40~50m 程度의 環境인 6大氣壓으로 金氏를 4時間 50分 동안 治療했다. 治療를 받은 金氏는 頭痛이 緩和되는 等 狀態가 好轉됐으나 骨盤 痛症 等을 呼訴해 潛水病 關聯 精密檢査를 받을 豫定이다. [131] 이 같은 일은 2日, 14日, 17日에도 여러番 發生하였다.

5月 6日 , 事故 現場에서 搜索作業 中이던 李某氏(潛水士)는 새벽 6時께 流速이 弱해지는 正祖時間에 맞춰 事故 海域에서 船體 搜索作業을 벌이던 中, 5分만에 交信이 끊겨 다른 潛水夫들에 依해 救助됐으나 意識이 없는 狀態에서 헬기로 木浦 한국병원으로 移送됐으나 끝내 숨졌다. 病院 側은 7時10分께 患者가 移送돼 왔는데 狀態가 워낙 좋지 않아 心肺蘇生術을 實施했으나 結局 숨을 거뒀다고 傳했다. 汎政府事故對策本部에 따르면 이날 死亡한 民間潛水士 李某氏는 마린 인더스트리 側이 臨時로 雇用한 잠搜査로, 犧牲者 收拾作業에는 이날 처음으로 投入됐으며, 呼吸困難 症勢를 보였다고 한다. [132] 이에 對해 檢察은 現場을 指揮했던 海警이 아닌, 民間 잠搜査의 作業 配置 業務를 擔當했던 同僚 民間 潛水士 공형우 氏를 起訴하여 論難 이 되었다. 裁判 끝에 공형우 氏는 無罪 判決을 받았다. [133]

5月 7日 午後 8時 20分께 歲月號 沈沒 海域에서 待機 中인 木浦海洋警察署 3009함에서 海洋警察廳 仁川 航空大 所屬 鄭某 傾斜가 쓰러져 意識 不明에 빠졌다. 鄭 傾斜는 지난 6日 午前부터 仁川에서 24時間 勤務를 한 뒤 休息을 取하지 못하고 곧바로 세월호 事故 現場에 投入, 搜索 作業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鄭 傾斜는 이날 午後 8時 20分 交代 勤務를 마친 뒤 어지럼症을 呼訴했으며 血壓 數値도 높게 나온 것으로 傳해졌다. [134] 그는 腦出血 診斷을 받고 4時間 동안 應急手術을 받았으며, 手術 後 意識을 回復했지만 2週日 程度 進行 經過를 지켜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잠修士들의 人命被害가 頻發하자 汎政府事故對策本部는 5月 19日 "바지船에 旣存 物理治療師 3名 外에 7名을 追加로 配置할 計劃"이라며 "醫療支援 强化를 위해 鍼術治療를 할 수 있도록 韓醫師를 追加 配置하는 方案도 檢討할 計劃"이라고 19日 밝혔다. [135]

5月 21日 海警에 따르면 이날 午前 10時 50分께 全南 珍島 事故 海域에서 搜索 作業 中이던 李某 警長이 허리에 負傷을 입어 病院으로 옮겨졌다.

5月 30日 船體 切斷作業에 投入된 民間潛水士 1名이 숨졌다. 潛水士 李氏는 4層 선미 外販 節槪를 하기 위해 이날 午後 1時 50分께 入手했다. 이어 2時 20分께 李氏가 作業을 하던 附近에서 衝擊音이 들렸고 李氏는 얼굴 等에 피를 흘린 채 다른 潛水史에 依해 20餘 分娩이 2時 40分께 救助됐다. 現場에서 應急治療를 받은 李氏는 隣近에 있던 헬기에 依해 木浦의 한 病院으로 옮겨져 心肺蘇生術 等을 받았지만 숨졌다.

海警은 6月 17日 낮 12時 40分께 事故海域 隣近에서 搜索支援 中이던 海警隊員 晉某氏가 3000톤級 海警 3011함에서 1512艦 所屬 斷定으로 移動 中, 사다리에서 떨어지며 斷定 椅子에 옆구리를 부딪혔다고 밝혔다. 晉氏는 木浦 한국병원으로 移送돼 '갈비뼈 3個 骨折'이라는 診斷을 받고 治療 中에 있다.

慶南 泗川市 에 있는 三千浦暑鬱病院은 세월호 救助 搜索作業에 나섰던 民間 潛水士 13名이 潛水病 症狀으로 入院해 治療를 받고 있다고 7月 13日 밝혔다. 지난 7月 10日 과 11日 言딘 所屬 金某(31)氏 等 11名과 海警 所屬 白某(39)氏 等 3名이 疲勞 累積과 頭痛, 全身 痛症을 呼訴해 이 中 13名이 入院했다. 特히 金氏는 急性 경추 디스크 症狀으로 手術했다. [136]

2014年 7月 14日부터 세월호 事故 海域에서 失踪者 搜索 作業을 支援하고 7月 17日에 江陵으로 復歸하던 江原道 特殊救助團 所屬 헬기가 光州 都心 隣近에 墜落해 搭乘한 消防公務員 5名이 모두 殉職하였다.( 光州廣域市 消防 헬리콥터 墜落 事故 ) [137]

救助人力·裝備 調整

민·관·군 合同救助팀이 다음달부터는 歲月號 搜索 潛水士와 海軍艦艇 等 人力과 裝備를 大幅 縮小해 運營하겠다는 內部 方針을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6月 29日 汎政府事故對策本部 關係者에 따르면 海警·海軍 關係者 等이 지난 21日 水中探索 協助會議에서 오는 7月 15日 까지를 目標로 水中探索 期間을 延長하고 追加延長 與否는 遺家族 反應과 探索結果를 考慮해 決定하기로 했다. 또한 長期 搜索에 지친 海軍 잠修士들의 疲勞度를 줄이기 위해 投入 潛水士 數를 7月 1日부터 現在의 3分의 2 水準으로 줄이고, 15日 以後에는 現在 基準 2分의 1 水準으로 大幅 줄인다는 內部 方案이 提示됐다. 이 計劃대로라면 다음달 1日부터 海軍 SSU 潛水師가 現在 109名에서 70餘 名으로, UDT 潛水師가 現在 89名에서 60餘名으로, 總 198名에서 160餘名으로 줄어든다. 7月 15日부터는 現在의 折半假量인 100餘名의 潛水師가 現場을 지킬 것으로 豫想된다. 內部 計劃에는 또 물살이 거센 大棗機, 中朝期에는 잠修辭들을 全員 撤收시켜 休息을 取하게 하는 方案이 提示됐다. 現在는 大棗機, 中朝期에도 鳥類의 흐름을 지켜보며 現場 바지에서 待機하도록 하고 있다. 裝備支援度 줄어들 展望인데, 于先 獨島艦은 整備와 訓鍊 參加를 理由로 다음달 15日께에는 珍島 海域을 떠나 鎭海 地域으로 復歸할 豫定이다. 또 失踪者 減少로 現場構造指揮本部 役割이 減少했다며 指揮本部 人員도 現在 28名에서 18名으로 줄여 海軍 3艦隊 司令部로 移管할 計劃이다. 當初 合同救助팀은 1次 精密搜索이 끝나는 이달 30日 以後에는 海軍, 海警, 民間이 各各 맡았던 搜索 區域을 交代해 다시 精密搜索을 實施하겠다고 밝혔다. [138]

스미싱

歲月號 沈沒 事故 뉴스를 傳하는 內容으로 僞裝한 스미싱 이 發生하였다. 未來創造科學部 韓國인터넷振興院 은 18日 세월호 事故를 詐稱한 스미싱 文字가 追加로 發送되고 있는 것을 確認하고, 스미싱 文字와 連結된 惡性 애플리케이션 流布地를 遮斷 措置했다고 밝혔다. [139]

各 敎育廳 措置

京畿道敎育廳 은 2014學年度 1學期에 豫定된 所在 各 學校의 現場 體驗學習을 保留하였다고 밝혔다. [140] 서울特別市敎育廳 은 市內 모든 初, 中高等學校에 現在 計劃 中인 修學旅行 等 現場 體驗學習의 安全狀況을 再點檢하고 安全에 憂慮가 있으면 卽刻 取消하라고 指示했다. [141] 그리고 18日, 公式 報道 資料로 '修學旅行 修鍊活動 및 靑少年 團體 活動 學生 安全事故 豫防案內’(2014.4.16.) 公文에 4月 21日 實施 豫定인 管內 學校 6個校(初 5, 고 1)의 濟州行 修學旅行을 取消 및 保留하였다고 하였다. [142] 大田廣域市敎育廳 은 安全이 踏步되지 않은 行事는 學校 構成員의 事前協議에 따라 日程을 調整할 것을 勸告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5月 中 修學旅行이 豫定되어 있던 西大田高等學校 서일女子高等學校 가 日程을 全面 取消했다. [143]

기름 流出

19日 海洋警察廳에 따르면 세월호는 벙커C油 120㎘, 經由 50㎘가 積載된 狀態로 沈沒하였다. 이에 對한 餘波로 기름이 流出된 것으로 보인다. 18日 午前까지는 歲月號 周邊 100m 半徑에 엷은 油膜이 形成됐지만 하루 만에 훨씬 짙은 기름띠로 變했다. [144]

論難

세월호 犧牲者 名單

단원고등학교

2學年 1班: 苦海인, 김민지, 김민희, 金守經,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소현, 이연화, 정가현, 조은화, 한고운 (18名)

2學年 2班: 강수정, 강우영, 길彩園,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성, 송지나, 量온유, 오유정, 윤민지, 尹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許多尹, 虛儒林 (25名)

2學年 3班: 김담非, 金道彦, 김빛나라, 金素延, 金守經,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朴芝潤, 박채현, 백지숙, 신승희, 猶豫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26名)

2學年 4班: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金範洙,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朴洙賢, 박정은, 빈賀龍,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旌麾犯, 軫憂革, 최성호, 한정무, 홍순영 (28名)

2學年 5班: 김건우, 김건우, 김도현, 金民錫,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正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27名)

2學年 6班: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남현철, 박세도, 박영인, 鉏才能,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정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25名)

2學年 7班: 곽수인, 國乘革, 김건호, 金基洙, 金玟秀,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心臟英, 安重根,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李珉雨,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32名)

2學年 8班: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현,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전준형, 전현우, 제세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29名)

2學年 9班: 고하영, 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金草隸, 김해화, 김혜선, 박예地, 配享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便多人 (20名)

2學年 10班: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朴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 (20名)

敎職員: 고창석, 김응현, 김초원, 남윤철, 박육근, 양승진, 유니나, 이지혜, 이해봉, 전수영, 최혜정 (11名)

비 단원고 犧牲者들

一般 乘客: 권재근, 권혁규, 김순금, 김연혁, 리샹하오, 문인자, 박성미, 백평권, 서규석, 서순자, 신경순, 심숙자, 우점달, 윤춘연, 이광진, 이도남, 李世永, 이영숙, 이은창, 이제창, 인옥자, 전종현, 정명숙, 정원재, 정중훈, 조지훈, 조충환, 지혜진, 최순복, 최승호, 최창복, 한금희, 한綸旨 (33名)

船員들: 김문익, 박지영, 안현영, 양대홍, 이묘희, 정현선, 구춘미, 김기웅, 방현수, 이현우 (10名)

세월호의 義人들

歲月號 乘務員 박지영(22)氏는 學生들에게 救命조끼를 讓步하며 脫出을 도우며, 배에 끝까지 남아 있다가 結局 死亡하였다. 生存者인 學生의 인터뷰에 따르면 "배가 기울면서 3層에서 欄干을 붙잡고 있었는데, 乘務員 누나가 뛰어내리라고 해 바다로 뛰어 내려 목숨을 救했다. 當時 10名이 함께 있었는데 救命조끼가 모자라 乘務員 누나가 學生들에게 조끼를 讓步했다."고 傳했다. 또 그는 "누나는 왜 조끼를 입지 않느냐."고 묻자 "너희들 다 求하고 나도 따라 가겠다."라고 答하였다고 傳했다. 德分에 그와 함께 있었던 學生들은 모두 救助되었다고 傳해진다. [145] 그 外에도 船員으로서 義務를 다 하다가 失踪된 船員은 더 있었다. 歲月號 事務長 양대홍(46)은 아내와 나눈 電話 通話에서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어. 水協 通帳에 돈이 있으니까 아이 登錄金으로 써.”라고 말했다. 아내가 ”只今 狀況이 어떠냐.”고 묻자, 兩 事務長은 ‘只今 아이들 求하러 가야 해. 길게 通話 못 해. 끊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146] 또, 結婚을 앞둔 사이였던 歲月號 아르바이트生 金○○(28)氏와 事務職 乘務員 情○○(28)氏도 事故 當時 學生들의 構造를 돕고 船內에 남아 있는 乘客들을 救하러 들어갔다가 숨졌다. [147] [148]

단원고등학교 2學年 6班 擔任敎師 남윤철은 16日 午前 10時쯤, 船室 非常口 近處에 있어 脫出이 可能한 位置에 있었음에도 學生들을 찾아다니며 救命조끼를 나누어주는 等 待避를 돕다 死亡하였다. [149] 2學年 5班 擔任敎師 李○○(33)은 欄干에 매달려 있는 弟子들의 脫出을 돕다가 失踪되었고, 體育敎師 고○○(43)도 弟子에게 救命조끼를 讓步하고 脫出을 돕다가 本人은 나오지 못했다. [150] 최혜정 敎師도 事故 狀況 속에서 SNS메시지를 통해 學生들에게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先生님 나갈게"라고 말하며 學生들을 救出하였다. 以後 그女는 脫出하지 못하고 死亡하였다. 敎師 金○○ 亦是 脫出하지 못하고 死亡하였다. [151] 救助된 後 自殺한 江○○ 校監도 앞장서 出入口를 열고 올라가 "너희 거기 있으면 다 죽는다. 힘이 들더라도 여기로 올라와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大學生 一行의 脫出을 도왔고, 먼저 救助될 수 있었음에도 "빨리 나와라. 이쪽으로 와라."고 외치며 끝까지 學生들을 救하다 나중에야 배에서 빠져나왔다. [152]

단원고등학교 學生 정차웅 軍은 阿修羅場이 된 船室에서 救命조끼를 親舊에게 건네주고, 물이찬 船室에 갇힌 親舊들을 求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끝내 死亡하였다. [153] 단원고등학교 學生 量온유 孃 亦是 沈沒 直後 甲板으로 나와 救助될 수 있었으나 船室에 남아있는 親舊들을 救하기 위해 救命조끼를 입지 않은 채 다시 물이 차오르는 船室로 들어갔고 끝내 나오지 못한 채 死亡하였다. [154] 단원고등학교 學生 兆○○은 배가 기울자 女學生 房을 찾아 救命조끼를 나줘주며 待避하라고 알리고 女學生을 直接 끌고 올라오는 等 20餘名을 救해냈다. [155] 단원고등학교 學生 朴○○ 亦是 울고 있던 어린 아이를 急히 업고 구명보트에 뛰어올라 둘 다 生還할 수 있었다. 朴君은 "나도 네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며 "父母를 찾으며 울고 있는 아이를 두고 먼저 나올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156] [149]

配管 設備士 金○○(59)은 濟州島에 있는 建築會社에 첫 出勤을 하던 中 事故를 겪었다. 그는 배가 기울어지던 30餘分 동안 周邊 사람들과 함께 消防호스와 커튼을 묶어 船舶 1層에 있던 學生 20餘 名을 6~7m假量의 위層 欄干으로 올려주었고 그 自身을 包含하여 이들은 모두 生還하였다. 그는, 그 사이에 1層에는 물이 가득 차는 바람에 더 많은 學生들을 救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157] 貨物 運轉技士 金○○(50)은 事故 當時 旅客船 3層 貨物運送 記事 專用 客室에서 同僚 記事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배가 기울자 一般 客室이 몰린 4層으로 移動해 호스와 밧줄을 던져 10餘 名의 사람들을 求하고 生還하였다. 特히, 그가 求한 이들 가운데는 家族들과 함께 濟州島로 移徙를 가다가 事故를 當한 어린이 卷○○(6, 與)도 包含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8]

義死者 指定

保健福祉部 5月 12日 '2014年度 第3次 義사상자審査委員會'를 열어 세월호 事故로 숨진 乘務員 박지영(22·女), 김기웅(28), 정현선(28·女)氏 等 3名을 義死者로 認定하였다. [147]

仁川廣域市 5月 23日 歲月號 事務長 兩大洪氏를 義死者로 指定해달라며, 遺族의 同意를 얻은 뒤 目擊者 陳述, 必要 書類 等을 갖춰 이날 午後 保健福祉部에 申請書를 提出하였다. 市의 한 關係者는 "申請을 위해 必要한 資料를 모두 갖췄다"며 "복지부에서 決定할 事案이지만 國民的 輿論이나 言論 報道 內容 等을 考慮할 때 義死者 認定이 可能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兩 事務長은 歲月號 高位 乘務員 가운데 唯一하게 脫出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乘客 構造를 위해 배를 지키다가 끝내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159]

事故 初期부터 이들 '殺身成仁' 敎師들을 義死者로 指定해달라는 누리꾼들의 請願이 이어지고 있지만 '義死者' 申請은 留保된 것으로 確認됐다. 하지만 敎師 遺家族들은 '殉職' 處理를 통해 國家 有功者로 登錄되는 것을 優先的으로 推進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他人의 生命을 救하기 위해 애쓰다 숨졌다'는 點을 立證해 義死者로 登錄하기 보다는 國家公務員으로서 公務遂行 中 犧牲당했다는 點을 인정받는 것이 容易해 이 같은 方向으로 推進 中으로 傳해졌다. 모든 敎師가 公務上 死亡을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番 事故로 犧牲되거나 失踪된 敎員 12名 中 期間制 敎師인 2名은 公務員이 아니며, 이들은 公務員年金管理公團 의 '公務上 死亡' 認定을 받을 수 있는 資格이 못 된다. 한便 遺家族 對策위는 '歲月號 特別法'에 檀園高 敎師와 學生들을 全員 義死者로 指定하는 方案을 推進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또한 意見이 나뉘어 아직 確定되지 않은 것으로 確認됐다. [160]

關聯 미디어

關聯 映畫

그날, 바다

김지영 監督, 金於俊 製作의 다큐멘터리 映畫. 프로젝트 部(Project 不)에서 始作한 크라우드 펀딩에서 20億 3千萬원의 市民 後援을 통해 3年間 製作되었다. 2018年 4月 12日 開封되어 54萬名이 觀覽하였다. 歲月號 航跡 分析, 生存者 陳述, 積載 車輛 CCTV 分析資料 等의 交叉檢證되는 事實을 根據로 假說을 提示하였다. 該當 映畫가 主張한 'AIS(船舶自動識別시스템) 造作 疑惑'을 遺家族이 檢察 歲月號慘事特別搜査團에 搜査依賴하여 國內 23個의 AIS 基地局 및 海外 AIS 收集業體, 民間 船舶의 AIS 데이터 等을 分析하였다. 特搜團은 慘事 當時 提出된 資料의 造作은 없는 것으로 發表했으나, 歲月號 社會的慘事特別調査位(社慘委)는 20日 “特搜團이 AIS 疑惑에 對해 結論의 根據를 提示하지 못했고, 海水部 等의 旣存 論據를 反復했다”는 立場을 냈다. [161] [162]

歲月X

一般人 身分인 네티즌 '字로'는 歲月號 慘事를 直接 搜査하여 歲月號에 對한 疑問들을 담아낸 다큐멘터리 '歲月X'를 유튜브 에 업로드하여 公開하였다. 歲月X는 8時間 49分 짜리 필리버스터 다큐멘터리로, 現在 政府에서 公開한 歲月號 斬死 原因에 對해 反駁하였다. 또한, 子路는 歲月X를 통해 모든 科學的 證據를 利用해 세월호는 外力에 依해 沈沒하였다고 主張하였다.

生日

다이빙벨

다이빙벨 그後

當身의 四月

바뀌지 않을 것이다

關聯 書籍

  • 民主社會를 위한 辯護士모임. 《416歲月號 民辯의 記錄》. 생각의길. 2014年. ISBN   9788965133049
  • 眞實의 힘 歲月號 記錄팀, 《歲月號, 그날의 記錄》. 眞實의힘. 2016年. ISBN   9791195716005

같이 보기

各州

內容主

  1. 未收拾者 5名은 끝내 屍身을 찾지 못한 채 2017年 11月 20日 葬禮를 치뤘다.
  2. 海運法 施行規則 [施行 2009. 7. 1.] [國土海洋部令 第147號, 2009. 7. 1., 他法改正] 第5條 (旅客船의 保有量 等) ② 法 第5條第1項第5號에 따른 海上旅客運送事業의 旅客船 仙靈(船齡)基準은 20年 以下로 한다. <改正 2008. 3. 14., 2009. 1. 13.> ③ 第2項에도 不拘하고 船齡이 20年을 超過한 旅客船으로서 國土海洋部長官이 定하여 告示하는 船舶檢査基準에 따라 船舶을 檢査한 結果 安全運航에 支障이 없는 것으로 判定된 旅客船은 5年의 範圍에서 1年 單位로 仙靈을 延長할 수 있고, 船齡이 25年을 超過한 旅客船[강화플라스틱(FRP) 材質의 船舶은 除外한다]으로서 國土海洋部長官이 定하여 告示하는 船舶檢査基準에 따라 船舶을 檢査한 結果 및 國土海洋部長官이 定하여 告示하는 船舶管理評價基準에 따라 船舶을 評價한 結果 安全運航에 支障이 없는 것으로 判定된 旅客船은 5年의 範圍에서 1年 單位로 仙靈을 延長할 수 있다. <新設 2009. 1. 13.>
  3. 海運法 施行規則 [施行 2008. 3. 14.] [國土海洋部令 第4號, 2008. 3. 14., 他法改正] 第5條 (旅客船의 保有量 等) ② 法 第5條第1項第5號에 따른 海上旅客運送事業의 旅客船 仙靈(船齡)基準은 20年 以下로 한다. 다만, 國土海洋部長官이 定하는 船舶檢査 結果 安全運航에 支障이 없는 것으로 判定된 旅客船은 5年의 範圍에서 1年 單位로 延長할 수 있다.
  4. 李俊錫 被疑者訊問調書 中 "(門) 被疑者가 세월호 船長으로 乘船하게 된 經緯가 어떻게 되나요 (答) 2013.3景 세월호가 새로이 就航하였는데, 그 때부터 신보식과 함께 세월호의 船長으로 勤務를 하였습니다. 當時 信保食餌 經驗이 짧았기 떄문에 제가 신보식을 트레이닝 시킨다는 意味로 責任 船長으로 勤務하고 신보식은 見習으로 勤務를 하게 된 것으로 2013.8.卿까지 제가 正式 船長으로 勤務를 하였습니다. / (門) 信保食餌 正式 船長이 된 理由는 무엇 때문인가요 (答) 當時 제가 停年(60살)李 넘어 退社를 해야 하는 狀況이 發生하였습니다. 그러다가 淸海鎭 海運에서 契約職으로 勤務를 하게 되었고, 신보식은 正規職 船員이었기 때문에 信保食餌 正式 船長이 된 것입니다."
  5. 하야시카네 選擧는 第2次 世界 大戰 當時 軍需 工場으로 多數의 朝鮮人이 强制動員 되었던 가와나미 工業 (川南工業) 後카호리 造船所(深堀造船所)를 全身으로 1965年 設立된 日本의 朝鮮會社이다. 日本 造船業界의 不況에 따른 經營 惡化로 1992年 타이완 에버그린 그룹 (長榮集團)에 引受되어 超에이 朝鮮(長?造船)으로 改稱되었다가 2004年 다시 후쿠오카 朝鮮 (福岡造船)에 引受되어 現在는 후쿠오카 朝鮮 나가사키 工場이 되었다.
  6. 미쓰비시 重工業 나가사키 造船所에서 乾燥한 것으로 잘못 알려진 境遇도 있다. 마루에이 페리는 歲月號를 淸海鎭海運에 賣却하기 前인 2012年 미쓰비시 重工業 시모노세키 造船所에 새로운 페리 나美노우에호(5대)를 注文하였는데, 旣存 歲月號와 外樣이 닮아 混同을 일으켰을 것으로 보인다. [25] [26]
  7. 滿載吃水(full load draft)는 許容된 最大 積載量을 실은 船舶이 물에 잠기는 깊이로, 滿載吃水를 標示해둔 線이 滿載吃水線 (full load line)이다. 船舶마다 個別的으로 指定되는데, 萬若 船舶이 滿載吃水線을 넘어서 잠겨있다면 그 船舶은 出港할 수 없다.
  8. 合同搜査本部 專門家 諮問團 報告書 (旅客船 歲月號 沈沒 事故 原因分析 結果報告書) (2014.8.12. 發行) 51p "過積이라 함은 貨物을 規定値보다 많이 싣는 것을 意味한다. 해司法上 意味로는 船舶의 形象과 强固를 基準으로 算定한 海域別 滿載吃水線 (full load line)까지 旅客이나 貨物을 摘載하게 함으로써 航海의 安全을 圖謀하고 있다. 따라서 平水區域內의 航行을 除外하고는 어떠한 境遇라도 船舶은 이 線을 超過하여 貨物을 摘載해서는 안 된다. 關係者들의 陳述에 따르면 세월호는 規定된 滿載吃水線을 넘기지 않은 것 같으므로 해司法上 過積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規定된 滿載吃水 狀態에서 復元性을 確保하기 위해 要求되는 貨物과 平衡水의 積載基準보다 많은 貨物을 敵愾하여 復元性을 喪失하였으므로 船舶運用上의 立場에서 '過積'이라는 表現을 使用한다."
  9. "이에 앞서 8時 46分頃 세월호가 우현 쪽으로 屛風島와 0.9마일 程度 距離를 두고 約 18노트 速力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3等航海士 박한결은 操舵手 조준기에게 選手方向을 135度에서 140度로 變針하라고 指示했다. 배는 140度 正寢되었다. 3等航海士는 다시 8時 48分頃 배를 140度에서 145度로 變針하라는 操舵 命令을 내렸다. 배가 오른쪽으로 旋回하기 始作했다. 하지만 세월호는 願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操舵手가 多急하게 “어어, 안 돼, 안 돼, 안 돼.” 하고 소리 질렀고, 배는 오른쪽으로 繼續 돌면서 곧이어 왼쪽으로 기울기 始作했다." [41]

參考週

  1. “<旅客船沈沒> 歲月號, 막판에 航路 急히 바뀌어(종합)” . 聯合뉴스 . 2014年 4月 17日 . 2014年 4月 17日에 確認함 .  
  2. “<旅客船沈沒> 세월호 事故 位置도” . 聯合뉴스. 2014年 4月 16日 . 2014年 4月 17日에 確認함 .  
  3. “남은 5名 찾는다 … 歲月號 客室 2次 搜索” . 광주일보. 2017年 6月 22日 . 2017年 6月 22日에 確認함 .  
  4. 박동해 (2016年 9月 5日). “[歲月號慘事 眞相糾明-일지]참사 2年 5個月의 記錄” . 《 뉴스1 》.  
  5. “[速報]海軍 遭難 申告 接受...珍島 屛風도 北쪽 20km” . 《 YTN 》. 2014年 4月 16日.  
  6. 김호 (2014年 7月 23日). “[歲月號慘事 100日] 沈沒부터 搜索까지” . 《 뉴스1 》.  
  7. 구용희; 배동민 (2014年 5月 7日). “[歲月號 慘事][綜合3報]安逸한 海警, 失踪·救助 數値 또 訂正” . 《 뉴시스 》.  
  8. 아시아經濟 온라인이슈팀 (2014年 4月 30日). “歲月號 沈沒 "海警보다 40分 늦게 到着한 漁船이 더 많이 構造 " . 《 아시아經濟 》.  
  9. 전진우 (2017年 3月 22日). “[그래픽] 歲月號 引揚 過程” . 《 뉴시스 》.  
  10. “沈想奵 “國民들 마음속 ‘朴 罷免 事由’는 歲月號”” . 《 헤럴드經濟 》. 2017年 3月 22日.  
  11. 이승호 (2017年 3月 10日). “歲月號 引揚 事實上 終了...歲月號 沈沒 3周忌 戰後 未收拾者 搜索 本格 始作” . 《 中央日報 . 2024年 4月 21日에 確認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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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 디지털뉴스팀 (2014年 4月 21日). ““내 손 잡아” 脫出 돕던 그 아저씨가 校監이었다…” . 《 京鄕新聞 》.  
  153. '우리들의 英雄' 고 정차웅群, 이승에서 18年 짧은 生 '마감' - 뉴스1 , 2014年 4月 22日 作成
  154. 박요진; 황인호; 전수민 (2014年 4月 24日). “[歲月號 沈沒 慘事-單獨] 甲板까지 나왔다가 親舊 救하러 船室로…단원고 量온유量 殺身成仁” . 《 國民日報 》.  
  155. 최기성 (2014年 4月 17日). “緊迫한 狀況에도 救助에 힘써…목숨을 건 '殺身成仁 ' . OBS뉴스 . 2014年 4月 22日에 確認함 .  
  156. 特別取材팀 (2014年 4月 17日). “<旅客船沈沒> 6살 女兒 탈출시킨 檀園高 박호진群” . 聯合뉴스 . 2014年 4月 17日에 確認함 .  
  157. 特別取材팀 (2014年 4月 16日). “<旅客船沈沒> 20餘名 救하고 마지막 脫出한 김홍경氏” . 聯合뉴스 . 2014年 4月 16日에 確認함 .  
  158. 강제남 (2014年 4月 16日). “[珍島旅客船沈沒]濟州 貨物車 記事 목숨 걸고 學生 等 生命 救해” . 뉴시스 . 2014年 4月 16日에 確認함 .  
  159. 배상희 (2014年 5月 23日). “仁川市, 義人 양대홍 事務長 義死者 認定 申請” . 《 聯合뉴스 》.  
  160. 박소연 (2014年 6月 13日). “세월호 犧牲 敎師들 '義死者' 推進 안했다…속사정 뭐길래?” . 《 머니투데이 》.  
  161. “金於俊, 根據 없는 ‘歲月號 陰謀論’ 映畫로 44億 賣出” . 2021年 4月 17日에 確認함 .  
  162. 뉴스1 (2021年 1月 19日). ““歲月號 搜査에 靑外壓 없었다”…6년9개월만에 最終 結論” . 《東亞日報》 . 2021年 4月 18日에 確認함 .  

參考 文獻

外部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