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鄕新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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京鄕新聞
國家 대한민국의 기 大韓民國
言語 韓國語
刊行週期 日刊
種類 一般 日刊 新聞
板形 타블로이드倍版
創刊日 1946年 10月 6日
價格 1部 1,000원 , 月 18,000원
發行法人 경향신문사
發行人 김석종
웹사이트 http://www.khan.co.kr
1982年 의 京鄕新聞 本社
當時 文化放送 과 共同으로 使用하였다.

京鄕新聞 》(京鄕新聞)은 大韓民國 에서 發賣하는 日刊 朝刊 新聞이다. [1] '京鄕'이라는 말은 우르非 에트 오르非 (Urbi et Orbi), 卽 "都市( 敎皇廳 )와 全 世界에게"라는 로마 가톨릭교회 의 標語에서 비롯되었다. [2] [3]

本社는 서울特別市 中區 정동길3에 所在海 있으며, 現在 言論 中 熱讀率 1位로 代表的인 言論 中 하나로 看做되고 있다. 2009年 한국기자협회 의 言論人 對象 輿論調査에서 경향신문이 1位를 차지했으며, 影響力으로는 各各 2位, 6位로 꼽혔다.

歷史 [ 編輯 ]

光復 이듬해인 1946年 5月, 整版社 僞造紙幣 事件 으로 朝鮮정판사 社屋과 그 施設 一切를 美軍政 이 押守하여 가톨릭 에 넘겨줌으로써 같은 해 10月 京城天主敎 財團에서 創刊했다. 初期에는 가톨릭 系列 言論社로 李承晩의 斷定 路線에도 매우 批判的이었으며, 金九 의 南北協商論은 非現實이라 主張했다. [4] 反面, 美蘇共委 左右合作 에 많은 期待를 걸기도 했다. [4] 또한 美軍政에 協調的이면서도 옳지 않는 일에는 날카롭게 批判도 하고 責任을 물기도 했다. 大韓民國 政府 樹立以後 親 민국당 , 친 民主黨 敵 路線을 堅持했다. 第1共和國 期間 내내 國務總理 副統領 을 지낸 場面 (張勉)을 政治的으로 支持하였다. 이때문에 1958年 李承晩 과 自由黨으로부터 停刊處分을 當하기도 했다.( 京鄕新聞 筆禍 事件 參照.) 1959年 以後 自由黨 獨裁體制가 굳어지자 反獨裁 路線을 分明히 했으며, 場面 副統領 被襲事件 以後 批判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場面의 姻戚인 한창우 가 使嗾로 就任하였고, 경향신문은 第2共和國 期間 내내 場面 을 批判的으로 支持하였다.

5·16 쿠데타 以後 民間에게 불하되면서 宗敎 性向을 띠지 않고 있다. 朴正熙 大統領 時節에는 批判的 論調가 거슬린다며, 京鄕新聞 主要 人事 交替, 株價와 版權賣却으로 淨水場學會 와 여러 大企業의 所有가 되었으며, 當時 言論統廢合으로 합쳐진 MBC 와 함께 親軍部 性向 言論社로 變質되었다. 문화방송 系列社이던 1980年만 해도 미테랑 프랑스 大統領의 長期 執權을 유럽 의 左傾化로 表現하는 等 親軍部, 反共主義 敵 論調를 보였다. 이러한 傾向新聞의 反(反) 民主的이고 親獨裁政權 性向의 論調 때문에 1987年 6月 抗爭 當時 경향신문에 對해 憤怒한 示威 群衆, 市民들이 地方 配送을 爲해 서울驛 앞에 쌓여 있던 경향신문을 大量으로 燒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5] 以後 1990年에 韓華그룹 에 賣却되었다가 1998年에 社員株主會社로 獨立한 以後부터는 進步와 改革勢力의 목소리를 代辯하고, 여러 社說, 칼럼, 記事 等에서 進步 性向을 띠는 新聞이 되었으며 該當 新聞에 GTV 가 貰들어있었던 탓인지 1997年 첫 母體 진로그룹 의 不渡로 어려움에 놓인 GTV 引受 物望에 한때 擧論됐으나 [6] 不發됐다.

京鄕新聞 沿革 [ 編輯 ]

지면 [ 編輯 ]

  • 週5日制 新聞을 發行한다. 每週 土曜日 日曜日 新聞 發行하지 않고 [7] , 온라인 서비스를 繼續한다.

論難 [ 編輯 ]

天安艦 沈沒 映像 [ 編輯 ]

2010年 9月, 警察 內部 敎育資料로 쓸 目的으로 만든 天安艦 沈沒 弘報 動映像을 上映하는 것에 對해서 一線 初等學校들이 反對했음에도 不拘하고 2個 初等學校에서 上映을 强行하였다는 主張이 경향신문을 通해 提起되었다. 또한 이 動映像을 한 인터넷 保守言論이 製作해 웹사이트上에 올려놓은 映像과 同一하다고 報道하였는데, [8] 疑問이 提起된 코나스넷側은 '北韓問題硏究所'가 製作한 것이라고 反駁했다. [9] 코나스는 이 動映像을 홈페이지를 통해 公開했다. [10]

류근일 迎入 [ 編輯 ]

2011年 8月, 경향신문은 칼럼陣에 뉴데일리 顧問이자 朝鮮日報 칼럼니스트 出身인 류근일을 迎入하였다. 이에 對해 內部에서는 肯定的인 反應인 反面, 讀者層을 包含한 外部에서는 경향신문이 均衡강박증에 걸렸다, 헛발질이라면서 많은 憂慮와 批判的인 視角을 가지고 있다. [11] [12] [13]

社長選擧 外壓 [ 編輯 ]

2012年 5月 1日의 社長選擧를 앞두고 송영승 社長과 강병국 辯護士가 競合하게 되자, 송영승 社長의 側近인 이대근 編輯局長이 강병국 辯護士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當身의 立候補를 막겠다"고 不出馬를 慫慂했고, 結局 강병국 辯護士가 不出馬하면서 송영승 社長이 連任되었다. [14] [15]

社長 [ 編輯 ]

過去
現在

外部 寄稿者 [ 編輯 ]

姊妹誌 [ 編輯 ]

參考 文獻 [ 編輯 ]

各州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