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겨레
한겨레 CI
한겨레 CI
國家 大韓民國
言語 韓國語
刊行週期 日刊
種類 一般日刊新聞
板形 大판/타블로이드
創刊日 1988年 5月 15日
價格 1部當 1,000
1個月 定期 購讀 20,000
發行法人 한겨레新聞社
發行人 최우성 (代表理事 社長)
編輯人 김영희 (編輯人)
박현 (뉴스룸國葬)
웹사이트 http://www.hani.co.kr
한겨레新聞社 社屋

한겨레 》(The Hankyoreh)는 大韓民國의 新聞 出版 企業인 한겨레新聞 株式會社가 大韓民國에서 發行하는 朝刊 日刊紙이다. 1988年 5月 15日에 동아일보 解職記者들이 모여 國民株 募金 形態로 創刊되었다. 한겨레新聞 株式會社의 本社는 서울特別市 麻浦區 曉蒼목길 6에 位置하고있다. 現在 代表理事는 최우성 社長이다. 政治的으로는 中道左派 를 標榜하고 있다. [1] [2] [3] [4] [5]

가장 信賴하는 新聞媒體 順位에서 꾸준히 順位圈에 들며 2019年에는 조선일보에 이은 2位를 차지하였다. [6] 有料購讀者順位에서는 조선일보 東亞日報 中央日報에 이은 4位이나 中央日報의 3分의 1程度의 購讀者數를 保有하고 있다. [7] 한국기자협회 가 主管하는 '이달의 記者賞'을 2012年 에 14次例, 2013年 에 17次例, 2014年 11次例 受賞하면서 3年 連續 最多 受賞한 言論社가 되기도 하였다. [8] [9]

歷史 [ 編輯 ]

한겨레新聞 初期 로고
(1988年 5月 15日부터 1996年 10月 23日까지)
한겨레 디자인 로고
(1996年 10月 24日부터 2005年 5月 13日까지)

1988年 5月 15日 東亞日報 朝鮮日報 의 解職 言論 記者들을 中心으로 株式을 公募하여 募金된 資本金으로 創刊되었다. 1988年 創刊當時의 題號(題號)는 《한겨레신문》이었으나 1996年 에 《한겨레》로 바뀌었다. 《한겨레》는 ‘國民株 新聞’으로 創刊된 新聞으로서, [10] 一部 國民들로부터 資本金을 모아 《한겨레신문》을 設立하고 募金에 參與한 國民들에게 《한겨레신문》의 株式을 配定해 株主로서의 權利를 行使하게 한 것이다. 또한, 韓國 言論 史上 最初로 編輯委員長을 直選制로 選出하였으며, 綜合日刊紙 最初로 創刊 當時부터 한글專用 가로쓰기 를 導入하였다. ‘ 責任 ’과 ‘ 公正 ’과 ' 疏通 '을 標榜하고 있으며, [11] 特定 資本으로부터의 制度的 獨立을 위해 獨立 資本金으로 經營하고 있다. 2023年 5月 現在 社長(發行人, 社員들의 直接投票로 選出)은 최우성이다. [12]

1995年 4月 27日 中央日報 에 이어 大韓民國 내 新聞社로는 두 番째로 週刊誌 《한겨레21》로 인터넷 서비스를 始作했다. 이듬해인 1996年 1月 1日 에 《씨네21》, 1996年 7月 11日 日刊紙 《한겨레》의 인터넷 서비스를 始作했다. 本社는 서울特別市 마포구 曉蒼목길 6에 位置하고 있다. 2007年 1月 29日 에는 取材 報道 準則을 制定하였다. 2009年 韓國ABC協會 資料에 따르면 하루에 281,814部를 發行하고 있다.

2005年 부터 黑字로 돌아섰으며 766億 원 賣出에 19億 원의 經常利益을 냈다. 2004年에는 21億 원, 2003年에는 28億 원 赤字였다. 2007年 會計年度의 賣出額은 762億 원, 當期純利益 20億 원이며 2007年 12月 基準으로 資産 695億 원, 負債 445億 원, 資本金이 250億 원이다. [13]

取材 報道 準則 [ 編輯 ]

2007年 1月 29日 , ‘取材 報道 準則’을 制定하고 公表했다.

人物 [ 編輯 ]

外部 寄稿者 [ 編輯 ]

會長 [ 編輯 ]

社長 [ 編輯 ]

  • 송건호 (代表理事 · 發行人, 1988.5 ~ 1989.3/代表理事 · 發行人 · 編輯人, 1989.3 ~ 1989.12/代表理事 · 發行人 · 印刷人, 1989.12 ~ 1991.4)
  • 김명걸 (代表理事, 1991.4 ~ 1991.7/代表理事 · 發行人 · 編輯人 · 印刷人, 1991.8 ~ 1993.6)
  • 김중배 (代表理事 · 發行人 · 編輯人 · 印刷人, 1993.6 ~ 1994.6)
  • 김두식 (代表理事 · 發行人 · 印刷人, 1994.6 ~ 1995.3/發行人 · 印刷人, 1995.3/印刷人, 1995.3 ~ 1997.3)
  • 권근술 (代表理事 · 發行人 · 編輯人 · 印刷人, 1997.3 ~ 1999.3)
  • 최학래 (代表理事 · 發行人 · 編輯人 · 印刷人, 1999.3 ~ 2003)
  • 고희범 (代表理事, 2003.3 ~ 2005.3)
  • 정태기 (代表理事, 2005.3 ~ 2007.3)
  • 徐炯洙 (代表理事, 2007.3 ~ 2008.3)
  • 고광헌 (代表理事, 2008.3 ~ 2011.3)
  • 양상우 (代表理事, 2011.3 ~ 2014.3/代表理事, 2017.3 ~ 2020.3)
  • 정영무 (代表理事, 2014.3 ~ 2017.3)
  • 김현대 (代表理事, 2020.3 ~ 2023.3)
  • 최우성 (代表理事, 2023.3 ~ 現在)

지면 [ 編輯 ]

  • 週6日制 新聞을 發行한다.
  • 每週 日曜日 新聞 發行하지 않고 [14] , 온라인 서비스를 繼續한다.

姊妹誌 [ 編輯 ]

子會社 및 主要 事業 [ 編輯 ]

한겨레는 1999年 12月 22日 子會社 ‘(週)인터넷한겨레’를 세우고 初代 代表理事로 오귀환 前 編輯局長을 選任했다. 인터넷 한겨레는 한겨레의 뉴미디어局과 ‘한겨레마을’이라는 通信販賣를 擔當하던 流通事業部와 旅行事業部 等 세 가지 事業을 하나의 法人으로 묶어 分社한 會社이다. 2代 代表理事로 徐炯洙, 3代 代表理事로 이상훈이 各各 就任했다.

2002年 한겨레草綠마을事業을 開始했으며 ‘(週)인터넷한겨레’는 會社이름을 2003年 5月 26日 (週)한겨레플러스 ’로 改稱했다. 한便 2005年 1月 旅行事業部門은 '(週)한겨레투어’別途 法人으로 噴射되었으며, 2005年 12月 에 인터넷미디어部分은 한겨레에 事業 移管을 하였다. 以後 한겨레플러스 는 有機農 商品 流通業人 ‘草綠마을’과 海外 敎育 프로그램 서비스業인 ‘敎育과 未來’만 運營하게 되었다.

2008年 12月 30日 , 한겨레는 大象그룹 의 系列社인 對象홀딩스에 한겨레플러스(草綠마을, 敎育과 未來)와 한겨레투어를 80餘 億원에 賣却하였으며 한겨레新聞 子會社에서 大象그룹 子會社로 變更되었다.

  • 한겨레敎育 - 2008年 8月 한겨레에서 噴射했으며,1995년 3月 始作한 <한겨레敎育文化센터> 와 한겨레신문의 테마뉴스 <함께하는교육> <아하한겨레> , 靑少年敎育 <한겨레放課後學校> <한겨레캠프>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아하한겨레敎育센터>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온라인 敎育 <한겨레e한터> 等의 敎育 서비스를 한다. <한겨레敎育文化센터>는 20年 넘는 傳統에 걸맞게 言論과 出版, 映畫, PR, 마케팅, 카피라이터 , 디자인, 일러스트 , 作家 等 多樣한 分野의 士官學校로 통하고 있으며, 專門家 養成에도 寄與하고 있다. 言論社답게 글쓰기 分野는 獨步的인 서비스로 인정받고 있으며, 一般人의 글쓰기부터 小說家, 詩人, 드라마 作家, 라디오作家, 飜譯作家, 自由寄稿家, 그림冊作家 等 作家 養成 過程까지 있다. 더불어 世上을 살아가는데 必要한 人文學과 社會, 哲學, 敎養, 心理, 治癒, 音樂, 美術, 캘리그라피 等 市民敎育 서비스도 進行하고 있다. 한겨레敎育은 初中高生을 爲한 <아하한겨레敎育센터><한겨레放課後學校><한겨레캠프> 等도 運營한다. 敎育 프로그램은 自己主導學習과 學習習慣, 進路, 進學, 글쓰기, 討論, 體驗學習 等 非敎科領域 中心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또, 統合論述指導사와 放課後學校指導士, 人性讀書指導士 等 就業이 可能한 指導士 過程도 運營한다. 以外 2015年3月 [카페 틈]을 열었으며 企業과 政府, 團體 等을 위한 맞춤敎育 講演事業 等도 活潑하게 進行하고 있다.
한겨레 創刊號

한겨레에 對한 批判 [ 編輯 ]

自殺에 對한 觀點 [ 編輯 ]

2004年 參與政府 當時 정몽헌 前 현대아산 會長, 안상영 釜山廣域市長, 남상국 前 대우건설 社長, 박태영 全羅南道支社의 自殺이 繼續되자 "스스로 죽을 勇氣가 있다면 왜 꿋꿋이 살아 견뎌내지 못하느냐는 너무나 當然한 疑問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罪가 없다면 살아서 끝까지 潔白을 밝혀내야 하고, 萬若 罪가 있다면 떳떳이 罪값을 치르고 反省하면 될 게 아니냐는 게 누구나 갖는 素朴한 생각이다. …… 게다가 그동안 우리 社會는 自殺로 問題를 解決하려는 사람들에게 免罪符를 주는 雰圍氣가 慇懃히 있었고, 甚至於 이들의 自殺을 美化하고 政治的 攻防의 素材로까지 삼았다."라는 詩論을 통해 自殺에 對한 否定的 見解를 폈다. [15] 그러나 第16代 大統領 盧武鉉 의 逝去에 對해서는 言論 責任論을 들면서 [16] 自殺에 對한 二重잣대를 댔다는 批判이 있다. [17]

盧武鉉 自殺 前과 後의 報道 [ 編輯 ]

東亞日報 는 한겨레의 報道行態가 盧武鉉의 逝去 前·後가 다르다고 批判했다. 한겨레신문은 盧武鉉이 逝去하기 前까지 '檢察의 입을 빌리는' 記事를 連日 썼으며 盧武鉉의 解明이 맞지 않을 때는 强力하게 批判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의 逝去 後에는 盧武鉉의 逝去가 '政治 檢察과 保守 新聞의 政治的 他殺'이라고 主張하면서 노무현 逝去 前과 後의 報道가 矛盾된다는 批判이 있다. [18]

盧武鉉 死亡 責任 輿論調査 [ 編輯 ]

빅뉴스 는 盧武鉉의 死亡에 對한 責任을 묻는 한겨레의 記事가 歪曲되었다고 批判했다. 한겨레는 "이 事件(盧武鉉 前大統領 逝去)에 누가 가장 큰 責任이 큰지에 對해 1順位와 2, 3順位를 復讐로 應答하게 한 結果 56.3%는 檢察, 49.1%는 言論을 꼽았다"고 報道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調査 原文에는 가장 큰 責任이 있는 1順位는 노무현으로 27.9%, 檢察 22.7%, 言論 15.5%보다 더 높은 結果가 나왔는데, 한겨레는 應答者들이 1順位로 應答한 盧武鉉의 責任이 가장 크게 나온 結果에 對해 1面에서 排除하며 5面에서 簡略히 言及하였고, 責任의 程度에 對해 1, 2, 3順位 等 加重値를 주었으면서도 이를 單純 合算하여 檢察 56.3%, 言論 49.1%로 數値를 높여 노무현 36.7%보다 더 큰 責任이 있는 것처럼 事實上 歪曲 報道하였다고 빅뉴스는 非難하였다. [19]

兵役非理 疑惑 關聯 報道 [ 編輯 ]

한겨레는 15代 大選 當時 李會昌 候補의 兵役非理 疑惑을 報道하면서 김대업의 確認되지 않은 一方的인 主張을 아니면 말고 式으로 中繼하듯 報道하면서 公正性을 잃었다는 批判이 있다. 以後 法院은 김대업의 모든 兵役非理 關聯 主張은 虛僞였다고 判決했다. [20]

盧武鉉 卑下 表現 [ 編輯 ]

한겨레는 2010年 6月 11日 '놈縣 管掌社'라고 指稱하는 等 不適切한 表現을 使用한 것에 對해 論難이 일자 6月 15日 1面에 성한용 編輯局長 名義로 公式 謝過文을 揭載했다. 國民參與當 柳時敏 은 이를 契機로 한겨레 절독을 宣言했다. [21] 生前에 盧武鉉 大統領은 個人 私費로 한겨레 新聞을 後援하기도 했다. [22]

現代史學會에 對한 歪曲報道 [ 編輯 ]

2011年 10月 한겨레는 27日子 '反國家, 反民主 맨얼굴 드러낸 韓國現代史學會 '라는 題目의 社說을 통해 "韓國現代史學會가 大韓民國은 3·1 運動 으로 建立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을 繼承했다는 內容을 지우자고 要求했다"라고 主張했다고 報道했다. 또 " 日帝强占期 經濟成長을 美化하고 親日派를 肯定的으로 描寫하는 等 植民地 近代化論을 包含시키자고 要求했다"며 "旣存 敎科書 執筆基準에 있던 '大韓民國 政府는 3·1 獨立精神과 大韓民國 臨時政府 의 正統性을 繼承하였음을 理解한다'는 內容 代身 '大韓民國은 유엔의 도움을 받아 建國하고 共産勢力으로부터 自由民主主義 體制를 守護하였음을 理解한다'는 內容도 包含시키자고 要請했다"라고 報道했다. 現代史學會는 "그런 內容의 建議書를 낸 적이 없다"며 "正常的인 批判의 水準을 넘었다."라고 批判했다. 學會 次元에서 植民地 近代化論을 主張한 적도 없고 臨政의 正統性 部分 일구를 削除하여 提示한 일이 있으나 이는 臨政 法統 繼承을 否定한 것이 아닌 8·15 光復 以後 時期 敎育課程에 들어가기는 適切치 않다고 봤기 때문이라며, 實際로 國便이 마련한 '高等學校 韓國史'에는 8·15 光復 以後 時期 敎育課程에 이미 臨時政府에 關한 部分이 存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現代史學會는 "한겨레新聞이 우리 學會를 罵倒하면서 '나라를 팔아 먹고 獨立運動家를 때려잡고 同族을 收奪하고 反人倫 犯罪를 저지른 者들이 활개치는 世上을 만들자는 것'이라고 主張한 것은 正常的인 批判을 넘어선 것"이라고 批判했다. [23]

敎學社 歷史敎科書 歪曲 訂正報道 [ 編輯 ]

2013年 5月 31日子 한겨레는 敎學社 5.16革命 - 5.18暴動 으로 敍述했다며 進步陣營과 野黨에선 該當 記事의 題目과 內容을 引用해 “교학사 敎科書엔 ‘5.16은 革命, 5.18은 暴動’이라는 內容이 담겼다”며 “歷史를 歪曲하고 있다”고 主張했다. 그러나 敎學社 敎科書엔 이 같은 內容이 없는 것으로 確認되었다. 한겨레는 이날 ‘[政情] ‘李承晩·朴正熙 獨裁 美化’ 뉴라이트, 歷史흔들기 本格化 記事 關聯’에서 “本誌는 2013年 5月 31日子 22時15分 記事에서 ‘뉴라이트 敎科書에 “5.16은 革命, 5.18은 暴動”’이란 題目을 달았습니다. 該當 題目이 事實이 아님을 認知한 後 題目을 바꿨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記事를 읽었습니다. 記事에 言及된 敎學社 韓國史 敎科書엔 그런 內容이 없음을 알려드리고, 記事에 言及된 關係者들과 該當 機關, 團體에 심심한 謝過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訂正報道를 냈다. [24] [25]

始發택시 事件 [ 編輯 ]

2017年 3月 27日 光州廣域市에서 치러진 더불어民主黨 大統領 候補者 湖南圈域 選出大會에서 文在寅 候補는 總 23萬6358票 中 14萬2343票(60.2%)를 얻어 壓勝했다. 競選 結果가 發表되는 時點에 他新聞社들은 一齊히 文在寅 候補의 光州競選 壓勝을 트윗한 反面, 한겨레는 트위터를 통해 '慶州에 始發택시 보러 갈까' 라는 內容의 記事를 링크했다. 慶州 世界自動車 博物館에 對한 記事를 링크한 것이었으나, 該當 記事에 始發택시 寫眞은 없었다. 또한, 以後에 揭載된 트위터와 페이스북 壓勝報道 記事의 題目도 페이스북은 "壓倒的 勝利"라고 事實記事를 引用한 反面, 트위터 쪽은 "大勢?" 라며 60.2%를 받은 게 大勢인가? 라는 題目이었다.

親文在寅 政府 言論 스탠스 報道 論難 [ 編輯 ]

2019年 9月 한겨레 一線 記者들도 祖國 法務部 長官 候補者를 둘러싼 疑惑을 報道하는 것에 對해 消極的인 態度를 보였다며 한겨레 編輯局 幹部들을 批判하고 나섰는데 祖國 候補者 關聯報道는 한겨레 報道의 慘事라며 局長團 辭退를 要求했다. [26] 이어 "2017年 文在寅 政權이 들어선 뒤 한겨레의 칼날은 限없이 무뎌졌다"며 "人事聽聞會 檢證팀은 文在寅 政權 1期 內閣 以後 單 한 番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取材가 아닌 '감싸기'에만 汲汲했다."며 暴露했는데 이들은 過去 政府에는 長官이 指名된 以後 태스크포스팀(TF)을 꾸리고 檢證에 나섰던 것과 全혀 달랐다고 强調했다. [26] 마지막으로 이들은 "박용현 局長과 局長團은 스스로 職에서 辭退하고, 文在寅 政府 出帆 뒤 檢證팀을 꾸리지 않은 理由는 무엇인지 編輯局 構成員들 앞에서 詳細히 밝혀라"라고 했다. [26]

同僚記者 暴行致死 [ 編輯 ]

2017年 4月 22日 새벽 2時30分頃, 한겨레 文化部 所屬 大衆文化팀 公演 擔當 記者인 손준현(53)李 한겨레 編輯局 所屬 안창현(46) 記者에게 暴行當해 백병원으로 옮겨졌다. 孫 記者는 當日 16時 15分에 간醬 破裂로 死亡했다. 한겨레의 양상우 社長은 “只今 葬禮式場 밖에 있는 言論社와 接觸하지 마라. 한겨레가 明白히 眞相糾明하겠다. 夫人이 願하면 한겨레로 就業시켜주겠다”는 提案을 遺家族에게 하여 2次 加害를 하였다 [27] .

'김만배와 億臺 돈去來' 幹部 記者 解雇 [ 編輯 ]

한겨레新聞社한겨레신문사가 火天大有資産管理(火天大有) 實所有主 김만배氏와 9億원의 金錢去來를 한 것으로 把握된 前 編輯局 幹部 記者 A氏를 解雇한다고 밝혔다.

前날에는 류이근 한겨레 編輯局長이 指揮·管理 責任을 지고 補職에서 辭退했다. 김현대 한겨레 社長 等 經營陣도 다음달 初 代表理事 選擧로 次期 社長이 決定되면 辭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8]

參考 事項 [ 編輯 ]

  • 創刊號부터 디지털 데이터베이스 를 構築하여,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29] 서비스를 볼 수 있다.
  • 한겨레는 여느 다른 新聞社들과 달리 英文 알파벳 頭文字語에 對해 한글 表記를 하는 原則을 두고 있는 特異 事項이 있다. 보기를 들어 SBS 는 "에스비에스"라고 쓰며, tvN 亦是 "티브이엔"이라고 적혀 둔다고 나와 있다. [30]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Rudiger Frank, Jim Hoare (2009). 《Korea Yearbook (2009): Politics, Economy and Society》 . BRILL. 101쪽. ISBN   978-90-04-18019-2 .  
  2. Leo Kim (2011年 7月 25日). “Media framing of stem cell research: a cross-national analysis of political representation of science between the UK and South Korea” (PDF) . Journal of Science Communication. 4쪽. ISSN   1824-2049 . 2020年 9月 24日에 原本 文書 (PDF) 에서 保存된 文書 . 2020年 4月 12日에 確認함 .  
  3. “East Asian press grapples with a nuclear North Korea” . 《 BBC 》. 2016年 9月 12日. Centre left-daily The Hankyoreh calls for an end to sabre-rattling: "We need to get past our antagonistic, Cold War-style logic.  
  4. “Why Trump is being panned by Korean media, right, left and centre. Except one racist website” . 《 South China Morning Post 》. 2016年 10月 10日. The centre-left newspaper Hankyoreh said Trump is turning the election into a mudslinging match while Clinton is displaying an “atmosphere of civility”.  
  5. “South Korea's elections driven by voters' desire for reform” . 《The Guardian》. 2012年 12月 4日. The centre-left daily Hankyoreh endorses this analysis, writing: "The winner will be the one who is seen as best equipped to embody the present mood."  
  6. “[特輯] 新聞 代身 유튜브 보고, ‘性向 같아야 信賴’” . 2020年 10月 9日 . 2020年 10月 24日에 確認함 .  
  7. “‘닐슨코리아 뉴스미디어 2017年 報告書’ 한겨레 熱讀率 3位, 購讀率 4位” . 2017年 10月 18日 . 2020年 10月 24日에 確認함 .  
  8. 강아영. 이달의 祈子床 最多 受賞 '한겨레' . 韓國記者協會. 2015年 2月 19日.
  9. 정혁준. ‘한겨레’ 지난해 ‘이달의 祈子床’ 最多 受賞…3年 連續 1位 . 한겨레. 2015年 2月 27日.
  10. 한겨레 株主廣場
  11. 미디어 오늘 한겨레 19周年 創刊 記念式
  12. [1]
  13. “한겨레株主센터 營業實績및 資産狀態” . 2015年 4月 2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08年 7月 11日에 確認함 .  
  14. 설날 · 秋夕 에 限定
  15. 自殺만이 唯一한 解決策인가 :: 네이버 뉴스
  16. [社說] 盧 前 大統領 逝去 ‘言論 責任論’ 무겁게 여겨야 : 社說 : 社說.칼럼 : 뉴스 : 한겨레
  17. 빅뉴스
  18. donga.com[뉴스]-한겨레-京鄕新聞, 盧逝去 後엔 “政治的 他殺” 自家撞着 主張
  19. http://www.bignews.co.kr/news/article.html?no=230727 빅뉴스
  20. 左派 媒體들, 지난날 뭐라고 報道했던가 東亞日報
  21. 한겨레, '놈縣' 公式謝過文 1面 揭載
  22. 盧大統領,한겨레 基金 千萬원 寄託
  23. 親日 讚揚? 現代史學會 賣渡 左派言論 意圖는
  24. ‘李承晩·朴正熙 獨裁 美化’ 뉴라이트, 歷史흔들기 本格化 한겨레 2013年 5月 31日
  25. 한겨레 "교학사 敎科書에 그런 內容 없다" 訂正報道 데일리안 2013年 9月 16日
  26. “한겨레 平記者들 "自社 曺國 報道 慘事…부끄럽게 하지마라 " . 《뉴스1》. 2019年 9月 6日.  
  27. “한겨레 양상우 社長 “葬禮式場 밖에 있는 言論社와 接觸하지 마라”” . 2017年 11月 3日. 2021年 7月 15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21年 7月 12日에 確認함 .  
  28. [2]
  29. 1999年 12月 31日까지 閱覽을 볼 수 있음.
  30. 이 境遇에 該當되어 있는 內容은 知識iN 에서 質問, 答辯을 할 때나 네이버 블로그 等과 같이 블로그에 포스팅을 作成할 때에도 비슷하게 나가는 境遇도 있다.

參考 資料 [ 編輯 ]

이 文書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 (現 카카오 )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配布한 글로벌 世界대백과사전 의 內容을 基礎로 作成된 글이 包含되어 있습니다.

外部 링크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