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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大韓民國 시원(始原)을 巧妙히 否定하는가|신동아

閔境遇 586칼럼

누가 大韓民國 시원(始原)을 巧妙히 否定하는가

  • 閔境遇 未來代案行動 代表

    mkw1972@hanmail.net

    入力 2021-10-0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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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레반 執權이 日帝에서 解放된 光復節?

    • 政治的 酒邪派는 淸算, 精神的 酒邪派는 如前히…

    • 아프간 事態 以後 注目해야 할 國際秩序는 美中 對立

    8월 16일(현지 시간) 아프가니스탄 탈출에 나선 시민들이 카불 국제공항으로 들어가기 위해 담을 넘고 있다. [뉴스1]

    8月 16日(現地 時間) 아프가니스탄 脫出에 나선 市民들이 카불 國際空港으로 들어가기 위해 담을 넘고 있다. [뉴스1]

    中央아시아의 邊方 國家 아프가니스탄(아프간)이 다시 歷史의 中心으로 浮上했다. 2021年 8月 아프간에서 美軍이 撤收하는 모습은 1975年 4月 베트남에서 美軍이 撤收하는 場面만큼이나 衝擊的이었다. 美軍 撤收 以後 不過 보름餘 만에 아프간 政府가 무너지고 탈레반 政權이 들어섰다. 아프간 事態는 連鎖的으로 世界情勢에 影響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事態를 民族 自主의 觀點에서 보는 一連의 생각에 對해 살펴본다.

    먼저 살펴볼 것은 아프간 狀況에 對한 北韓의 立場이다. 8月 31日 北韓은 外務省 홈페이지에 “美國이야말로 世界支配 戰略과 强盜的 利潤 追求를 위해서라면 侵略과 殺戮, 掠奪도 서슴없이 敢行하는 世界平和와 安定破壞의 主犯이라는 것, 美國의 反人倫的 侵略 行爲를 反對하여 果敢한 鬪爭을 벌여나가야 한다는 哲理를 다시금 새겨주고 있다”라고 主張했다. 한마디로 美國의 아프간 攻擊이 帝國主義的 侵略이라는 것이다.

    中國의 反應은 相對的으로 原論的이다. 8月 16日 화춘잉 中國 外交部 代辯人은 “中國은 아프간 國民의 念願과 選擇을 尊重한다”면서 “中國은 아프간 國家 主權과 各 政派의 念願을 充分히 尊重하는 基礎 위에 아프간 탈레반 等과 連絡과 疏通을 維持해, 아프간 問題의 政治的 解決을 위한 建設的 役割을 發揮하겠다”는 原則的 立場을 밝혔다. 탈레반 政府를 承認하겠느냐는 質問에도 卽答을 避하고 “建設的 役割 發揮”란 立場만 反復했다.

    北韓 時刻 共有하는 大韓民國 急進派

    大韓民國 急進派는 北韓의 視角을 共有한다. 자주時報, 4·27時代硏究원, 民플러스 等에는 1980年代를 起源으로 하는 古色蒼然한 分析들이 잘 드러나 있다. 흥미로운 것은 ‘野生草便紙’로 有名한 황대권의 分析이다. 황대권은 8月 16日 페이스북(페북)에 올린 ‘아프가니스탄 解放’이라는 題目의 글에서 “日帝로부터 解放된 光復節인 오늘 아프가니스탄이 미제로부터 解放되었다. 탈레반 支持者도 이슬람敎徒度 아닌 내가 오늘의 歷史를 기뻐하는 理由는 單 하나, 民族의 自主權 擁護 次元에서다”라고 쓰고 있다. 이 글은 페북에서 많은 論難을 불러일으켰는데 적지 않은 識者層이 이 글에 同感을 표했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의 勝利를 反帝 또는 民族自主의 勝利라고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탈레반이 이슬람 根本主義 勢力 및 테러와 連累돼 있고, 女性 人權과 같은 初步的인 人權도 否定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황대권의 分析은 또 다른 極端主義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아프간 事態를 民族自主의 觀點에서 理解하는 一連의 傾向은 歷史的이고 構造的인 脈絡과 맞닿아 있다. 1945年 第2次 世界大戰이 끝난 뒤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等 廣闊한 世界에 無數한 獨立國家가 登場했다. 中國에는 마오쩌둥, 印度에는 네루, 이집트에는 나세르 政權이 들어섰다. 이들의 共通點은 社會主義나 資本主義 같은 世俗的 理念을 追求했다는 點이다. 이 時點에서 보면 宗敎는 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게 人類 歷史를 風靡했던 宗敎는 歷史의 뒤안길로 退場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 世俗 政權이 滿足할 만한 經濟 成果를 보이지 못하면서 1970年代를 고비로 次例로 政治的 激浪에 휩싸였다. 여기서 世上은 다양한 갈래로 分化한다. 이 時期 政治 地形은 普通 美國을 中心으로 한 西方의 1世界와 蘇聯 社會主義圈의 2世界, 中國·印度 等 美國이나 蘇聯 어느 便에도 屬하지 않는 第3世界로 區分됐다.

    歷史的이고 構造的인 아프간 事態

    中國, 印度, 베트남 等은 方向을 旋回해 1世界와의 聯合을 통해 活路를 摸索한다. 1978年 中國의 改革開放, 1986年 베트남의 도이모이, 1991年 印度의 改革開放 等이 그것이다. 이들은 이른바 3世界를 代表하는 나라들이었다. 中國과 印度는 18世紀 中盤까지 유럽을 앞선 大國이었고, 베트남은 美國과 單獨으로 맞서 싸운 底力을 가진 나라였다.

    反面 나머지 廣範圍한 나라들에서 고만고만한 群小 國家들은 放置 또는 有機됐다. 여기에는 1990年代 初盤 보스니아 內戰, 1990年代 中盤 北韓의 食糧危機, 2000年代 中盤 베네수엘라 經濟危機 外에도 짐바브웨, 시리아 事態 等이 있었다. 2010年代 中盤 美國에서 ‘셰일 革命’이 始作되면서 美國의 石油 依存度가 減少한 것도 劇的인 影響을 미쳤다. 수많은 低開發 國家의 戰略的 地位가 構造的으로 下向된 것이다.

    이들 國家들과 美國 사이의 關係를 帝國主義와 植民地로 보는 것은 一面的인 생각이다. 狀況을 決定的으로 악화시킨 것은 外部로부터의 介入이 아니라 內部의 政治社會的인 力量 不足이었다. 中國과 베트남에서 보듯 狀況을 收拾할 安定된 政治 力量만 있다면 얼마든지 對外 進出이 可能한 狀態였다.

    아프간 狀況은 더욱 그러했다. 美國이 아프간을 侵攻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 主導한 9·11 테러 때문이다. 아프간의 執權 勢力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과 血緣的 連繫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美國의 아프간 攻擊은 아프간에 대단한 利權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벌인 깜짝쇼, 그리고 그것에 對應하는 그들의 態度 때문이었다. 9·11 테러 水準의 衝擊이 아니었다면 美國이 아프간을 占領할 必要까지는 없었을 수 있다.

    執權 탈레반이 테러에 對한 適切한 反對 意思를 表明하고 이를 團束, 統制하려는 積極的인 措置를 取했다면 軍事的 衝突의 相當 部分은 抑止할 수 있었다. 狀況을 根本에서 左右限 것은 原始的 部族主義와 宗敎的 熱情이었다. 이것이 9·11 테러를 敢行한 同期이자 9·11 테러에도 不拘하고 事態를 收拾하는 政治的 外交的 措置 없이 對策 없는 戰爭을 이어간 理由가 됐다.

    탈레반 執權이 갖는 意味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뉴시스]

    映畫 ‘봉오동 戰鬪’ 포스터. [뉴시스]

    美國의 撤軍 以後 아프간을 支配하게 된 탈레반의 勝利를 民族自主라는 觀點에서 보는 視角이 갖는 政治的 意味를 살펴보자. 그것이 갖는 問題는 北韓 또는 南韓 急進派 一部만의 問題가 아니다.

    文明과 文明, 不足과 部族이 衝突하는 場面에서는 恒常 迂餘曲折이 따르게 마련이다. 强한 文明, 强盛한 部族이 弱者를 侵略, 服屬할 수도 있고 弱한 文明, 弱小한 部族이 强者를 따를 수도 있다. 日帝와 朝鮮, 美國과 韓國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 過程에서 均衡을 찾고자 했다. 日帝의 先進 文物을 받아들이되 日帝로부터 獨立하고, 美國으로부터 배우되 美國에 너무 依存하지 않는 것 等이다.

    1970年代 筆者가 어린 時節에는 美國과 日本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重視했다. 駐韓美軍이 駐屯했고 美國과 日本의 資本과 技術을 받아들였다. 韓國은 그렇게 (印度)太平洋 地域을 背景으로 繁榮하고 成長했다. 1917年에 黃海道에서 태어난 筆者의 父親도 語訥한 語套로 美國과 日本의 學問과 技術을 배워야 한다는 點을 늘 力說하곤 했다.

    歲月이 흘러 1970年代 後半 異色的인 世界觀이 出現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民族의 自主가 重要하다고 主張했다. 이들 中 一部는 政治的으로 自身의 생각을 實現하려다 失敗했다. 이들을 普通 主思派, NL, 자민통(自主民主統一)이라 한다. 主思派, NL, 자민통은 地下黨을 만들고 北韓에 충성하는 사람들에 限定된 것이 아니다. 酒邪派는 韓國 社會의 根本 問題가 親日派의 殘滓가 淸算되지 않은 것 때문이고, 日本에 이어 양키(美國)들이 朝鮮을 分斷시켰다고 보는 一連의 歷史觀과 交集合을 이룬다. 政治的 酒邪派는 淸算됐지만 文化的 主思派, 精神的으로 派生된 酒邪派는 如前히 살아 있다는 게 筆者의 생각이다.

    歲月이 흘러 2010年代가 됐다. 우리는 影響力 있는 政治人들이 ‘竹槍가’를 부르고 土着倭寇를 强調하는 場面을 보고 있다. 그들은 與野 政治 對決을 韓日戰으로 몰아가 모든 것을 反日로 돌린다. 이런 傾向을 代表하는 映畫 中에 하나가 ‘봉오동 戰鬪’다. 2021年 8月 15日 文在寅 大統領은 洪範圖 將軍의 遺骸를 성대히 맞이했다.

    500萬 名 가까이 觀覽한 映畫 ‘봉오동戰鬪’는 터무니없이 殘忍하다. 映畫는 朝鮮은 옳고 日本은 틀렸다, 朝鮮은 착하고 日本은 惡하다는 信念에 기초해 만들어진 듯하다. 朝鮮이 日本에 反對하거나 抵抗한다면 理由가 있어야 한다. 朝鮮이 日本에 反對하고 抵抗하는 理由가 朝鮮이 建設해야 할 나라의 方向과 哲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을 例로 든다면 美國에 抵抗한다는 理由로 民間人에 對한 테러를 恣行하는 나라를 擁護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프간 事態를 두고 特別히 注目하는 것은 美·中 對立이다. 美國 바이든 行政府 出帆 以後 美國은 印度 太平洋 地域을 자유롭고 開放的인 地域으로 規定한다. 여기서 ‘자유롭고 開放的인’ 意味는 文明과 文明, 民族과 民族의 衝突 局面에서 民族 自主보다는 改革과 開放에 어울리는 單語다.

    흥미로운 것은 美國과 西方世界가 새삼스럽게 韓國에 이를 特別히 强調하고 있다는 點이다. 美 下院 軍事委員會는 9月 4日(現地 時間) 美國, 英國, 캐나다, 濠洲, 뉴질랜드 等 이른바 앵글로색슨界 5個國으로 構成된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韓國, 日本, 獨逸을 包含하는 作業에 着手했다.

    8月 31日 英國의 航母 퀸 엘리자베스號가 韓半島 隣近 海域에서 限·美·英 聯合 軍事訓鍊을 進行했는데, 이 訓鍊에 네덜란드 軍艦 한 隻이 參與했다. 배의 이름은 ‘에버트센’이고 같은 이름의 배가 1950年 6·25 戰爭에 參戰했다.

    네덜란드 國防長官은 徐旭 國防長官에게 이 같은 內容이 담긴 메시지를 유튜브를 통해 公開했다. 네덜란드 國防長官이 韓國의 國防長官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유튜브에 公開한 것도 매우 異例的이지만, 더욱 특별한 것은 메시지 內容인데, 大略 이렇다.

    “韓國과 네덜란드 兩國은 자유롭고 開放的인 삶의 方式을 支持하며, 兩國은 人間의 尊嚴性과 自由, 法治主義 및 人權을 尊重한다. 그런데 最近 安保 不安定과 緊張은 秩序와 均衡을 威脅하고 있다. 不幸히도 印度 太平洋 地域에서 이러한 現象이 가장 두드러지고 있다. 韓國이 地域 내 安定과 安保를 위한 積極的인 參與와 努力에 讚辭를 보낸다.”

    함께 連帶하고 함께 싸우자

    韓國이 印度 太平洋 地域에서 秩序와 均衡을 維持하기 위해 積極 參與할 것을 注文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强調했다.

    “우리의 生活方式이 維持되는 것을 當然視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같은 以上을 共有하고 서로를 支持하는 同盟國과 함께 우리가 所重히 여기는 價値를 지켜내야 한다. 에버트센의 訪韓은 印度 太平洋 地域, 特히 大韓民國에 對한 네덜란드의 意志를 보여준다.”

    1975年까지 유엔 創立日인 10月 24日이 韓國에서는 公休日이었다. 只今은 많이 잊혔지만 大韓民國이 建設되는 데 유엔의 保證이 큰 몫을 했다. 유엔은 유엔軍을 組織해 6·25戰爭에서 北韓, 中國과 맞서 싸웠다. 네덜란드 國防長官은 네덜란드가 그 유엔軍의 一員이었음을 喚起시키며 大韓民國에 그 길에서 함께 連帶하고 함께 싸우자고 强調한다.

    時代精神은 該當 時期의 課題와 사람들의 志向을 集約的으로 表現한 것이다. 2021年의 歷史는 中國을 包含한 그의 同盟國과 美國, 英國, 獨逸, 프랑스, 日本, 印度를 하나로 엮는 世界의 對立과 葛藤으로 要約된다. 네덜란드 國防長官은 시진핑의 中國에 맞서 後者의 世界가 자유롭고 開放的인 世界라고 指摘하는 것이다.

    太平洋 勢力을 背景으로 태어난 大韓民國은 그들이 共有하는 價値, 卽 自由와 開放, 法治主義와 人權의 틀 안에서 蕃盛해 왔다. 그 土臺 위에서 民族과 統一, 유라시아 大陸으로의 進出을 論해야 한다. 그럼에도 民族과 統一을 앞세워 大韓民國의 始原을 巧妙히 否定하려는 一連의 傾向과 맞서 싸워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主思派 #自由와開放 #新東亞


    閔境遇
    ● 1965年 出生
    ● 서울대 國史學科 卒業
    ● 서울대 人文大 學生會長
    ● 祖國統一汎民族聯合 事務處長·進步連帶 政策委員會 副委員長
    ● 著書 : ‘數學 工夫의 再構成’ ‘새로운 保守의 아이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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