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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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
出生 1483年 11月 10日 ( 1483-11-10 )
만스펠트 白菊 아이슬레벤
死亡 1546年 2月 18日 ( 1546-02-18 ) (62歲)
만스펠트 白菊 아이슬레벤
經歷 基督敎 神學者 出身
獨逸 비텐베르크 大學校 敎授
敎派 改新敎

마르틴 루터 ( 獨逸語 : Martin Luther , 獨逸語 發音: [?ma?tiːn ?l?t?] , 1483年 11月 10日 [1] ~ 1546年 2月 18日 )는 獨逸 宗敎改革家 이다. 當時 비텐베르크 大學校 의 敎授였으며, 後날 宗敎改革 을 일으킨 人物이다. [2] 本來 아우구스티노回 搜査였던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 免罪符 販賣價 悔改 가 없는 容恕, 거짓 平安( 예레미야 豫言者 의 가르침을 引用함)이라고 批判했으며, 믿음을 통해 의롭다함을 얻는(der Rechtfertigung durch den Glauben) 이신稱의 를 主張했다. 稱의 를 통한 個人 救援의 새 時代를 열어주었다. 免罪符 販賣를 批判한 루터는 1517年 95個 論題 를 揭示함으로써 當時 免罪符를 大量 販賣하던 도미니코回 修士이자 說敎者 요한 테첼 에 맞섰다. 1520年 敎皇 레오 10歲 로부터 모든 主張을 撤回하라는 要求를 받았지만, 오직 聖經 의 權威를 앞세우면서 聖書에 어긋나는 가르침들을 拒否하였다. 1521年 보름스 會議 에서도 마찬가지로 神聖 로마 帝國 의 皇帝인 카를 5歲 로부터 같은 要求를 받았으나 拒否함으로써 結局 敎皇 에게 波紋 當했다. 1517年 10月 31日 비텐베르크 大學校 敎會 正門에 95個 論題 를 揭示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것으로 宗敎 改革 이 始作되었다. 루터의 宗敎 改革은 當時 宗敎와 社會에 큰 影響을 주었다.

槪要 [ 編輯 ]

마르틴 루터는 로마 가톨릭교회 에 腐敗와 잘못된 敎皇의 權威에 抗拒하여, 로마 가톨릭교회의 敎理 를 論駁하고, 聖書 가 지니고 있는 基督敎 信仰에서의 最高의 權威와 그리스도 에 對한 오직 믿음과 하나님 의 全的인 恩惠를 通한 舊怨 을 强調했다. 루터의 主張은 "오직 聖經, 오직 믿음, 오직 恩惠,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榮光을"(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 Soli Deo Gloria)이라는 表現으로 含蓄할 수 있다. ( 다섯 솔라 ) 루터 本人은 自身이 ‘ 宗敎 改革 ’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宗敎 改革이 하나님 에게 이끌림을 받아, 할 수 없이 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 福音主義者 ’로서 福音 을 傳播하기를 願했고, 自身이 說敎者 , 博士 , 敎授 라고 불리기를 願했다. 그러나 그의 삶 가운데 그가 行했던 일들은 엄청난 結果를 가져왔다. 改新敎 가 胎動했을 뿐 아니라, 聖書 飜譯 , 많은 著作 活動, 作曲과 說敎를 통해 社會와 歷史가 크게 變化되었기 때문이다. 大韓民國 基督敎 韓國 루터回 에서는 루터를 마틴 루터 라고 稱한다.

生涯 [ 編輯 ]

修道士 時節의 마르틴 루터

修道士가 되다 [ 編輯 ]

父母 [ 編輯 ]

루터는 1483年 獨逸 작센안할트州 아이슬레벤 에서 鑛産業에 從事하는 아버지 한스 루더(Hans Luder)와 [3] 어머니 마르가레테 린데만(Margarethe Lindemann) 사이에서 태어났다. 父親은 敎會의 墮落을 默認하지 않는 信念의 基督敎人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틴 루터의 父母님

루터는 主祈禱文 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文章에 負擔을 느낄만큼 嚴格한 아버지의 그늘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進路問題度 自身의 適性과 興味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定해야 했는데, 루터의 아버지는 아들을 法律家 가 되게 하여 社會的 成功을 하게 하려고, 에르푸르트 大學校 에 입학시켰다. 그곳은 世界的으로 엄청난 法律家들만 모이는 團體다. 계몽사 에서 出版한 《漫畫 世界史》(계몽사)에서도 루터의 아버지가 루터를 안고 "나는 苦生하더라도 아들은 出世시켜야지"라고 말하는 場面이 있으니 루터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얼마나 欲心을 投影했을지를 斟酌할만 하다. 루터는 敎養學部에서 삼학(三學, 라틴語 : trivium ) [4] 과 私學(四學, 라틴語 : quadrivium ) [5] 을 마치고서 1502年 9月 文學 學事學位, 1505年 1月 17名 가운데 次席으로 試驗에 通過하여 文學 碩士學位를 받았다. 루터는 豫備學校를 마친 5月에 本格的으로 法 工夫를 始作했다.

灰心 [ 編輯 ]

루터가 大學校에서 工夫를 繼續 하던 中, 집에 갔다가 에르푸르트 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7月 2日 슈土테르하임 隣近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瞬間 루터는 땅으로 엎어지면서 鑛夫들의 守護聖人 을 큰 목소리로 불렀다. 聖 안나(聖母의 어머니)여, 나를 도우소서! 저는 新婦 가 되겠습니다!

修道院 에 들어가려는 생각이 이미 무르익었던 터라 루터는 雷雨를 하나님의 音聲으로 받아들이는 데 全혀 躊躇하지 않았다. [6] 루터는 自身의 期待에 어긋나는 아들의 進路變更에 挫折을 느낀 父親의 憤怒어린 反對에도, 1505年 7月 17日 에르푸르트(Erfurt)에 있는 “ 아우구스티누스 修道會” 所屬 “검은 修道院”에 立會하여 修士神父가 되었다.

루터는 罪人인 人間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바른 關係를 맺을 수 있을 것인가에 對해서 苦惱했는데, 修道會에서는 루터가 비텐베르크 大學校 에서 工夫하도록 했다. 비텐베르크 大學校의 요한 폰 스타禹피츠 敎授는 루터가 聖書 에 對해 眞摯하게 工夫하면 平安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루터를 聖書學 敎授 司祭로 임명했는데, 이로 因해 루터는 信仰的인 苦悶을 解決할 수 있었다. 루터는 로마書, 詩篇, 갈라디아서 講義를 통해 義에 對한 槪念을 새롭게 確立하게 되었다. 稱의 란 오직 그리스도 를 믿음으로 罪人이 義人으로 인정받는다는 敎理다. 하나님의 漪瀾 受動的인 것으로 하나님에 依해 恩惠로 주어지는 依이며, 代表的으로 다음 句節을 들 수 있다.

  •  "Denn Gottes Gerechtigkeit wird darin geoffenbart aus Glauben zu Glauben,

wie geschrieben steht: "Der Gerechte aber wird aus Glauben leben." [7]

  • "δικαιοσ?νη γ?ρ Θεο? ?ν α?τ? ?ποκαλ?πτεται ?κ π?στεω? ε?? π?στιν,

καθ?? γ?γραπται ? δ? δ?καιο? ?κ π?στεω? ζ?σεται." [8]

  • "福音에는 하나님의 義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記錄된 바 오직 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 [9]

宗敎 改革의 出發點 95個 論題 [ 編輯 ]

비텐베르크 慢性敎會(All Saints' Church)()의 文, 元來門은 불에 탔지만 1857年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4歲 가 다시 交替하였다
95個組 反駁文

中世 로마 가톨릭 敎會 의 强制的인 免罪符 販賣는 루터의 信仰을 根本的으로 흔들었다. '돈으로 舊怨 을 살 수 있다'라는 로마 가톨릭 敎會 의 가르침에 順應할 수 없었고, 나아가 沈默할 수도 없었다. 루터는 自身이 가르치고 돌보는 많은 사람에 關한 牧會的 良心과 責任으로 說敎 免罪符 販賣를 批判 하기 始作했고, 全혀 改善되지 않자 드디어 1517年 10月 31日 , 비텐베르크 의 慢性 敎會( de ) 門에 ‘95個 論題’를 揭示했다고 한다. 旣存 敎會와 本格的인 論爭을 始作했으며, 이것이 宗敎 改革 의 始發點이다. 다만 루터가 論題를 敎會에 揭示했는지는 確認된 바 없다. 反駁文은 루터가 授記한 後 印刷해서 사람들이 읽었으며, 冊으로 發刊한 後에도 敎會의 門 또는 隣近에 이를 揭示했다는 內容은 確認되지 않았다. [10] 敎會 壁 揭示를 最初로 擧論한 사람은 필리프 멜란히톤 이며, 루터 死後 自身의 著書에서 루터를 言及하며 反駁文을 壁에 揭示한 일에 關한 最初 記錄이다. [10]

1515年 루터는 10個의 아우구스티누스 修道院을 監督하면서 書信 交換과 訪問 等을 통하여 새로 發見한 福音 의 씨앗을 傳播할 位置에 서게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自身의 깨우침이 얼마나 急進的인지 알지 못한 채 繼續 聖書 硏究에 專念하고 있었는데, 免罪符 論爭을 契機로 그것이 公公然히 드러나게 되었다.

免罪符는 로마 가톨릭교회 의 일곱 成事들 가운데 하나인 告解聖事 와 聯關된 것이다. 私製 는 痛悔하는 告解者의 罪告白을 듣고 罪赦免을 한 뒤 罪責에 對한 補贖으로 殉敎, 詩篇 朗誦, 特別 企圖 等의 行爲를 하게 하였는데 免罪符는 이러한 步速을 면해주는 證書였다. 그런데 免罪符가 로마 가톨릭 敎會의 主要 收入源이 되면서 敎會는 免罪符 營業에 熱을 올렸는데, 實際로 요한 테첼 은 “金貨가 獻金櫃에 떨어지며 소리를 내는 瞬間 靈魂 은 煉獄을 벗어나 天國 向해 올라가리라”고 信者들을 欺瞞하였던 것이다. 그는 選帝侯 프리드리히 3歲 가 작센 營內에서의 免罪符 販賣를 拒否하자 境界 近處에다 免罪符 판을 벌여 놓았으며, 聖書 도 適切히 引用하고 煉獄에서 當身들의 父母가 苦痛을 받고 있다면서 感情에도 呼訴함으로써 純眞한 信者들을 眩惑하였다. 이러한 墮落에는 敎人들도 原因을 提供하였다. 實際로 中世 敎會의 信者들은 하나님께 自身의 잘못을 뉘우치는 眞摯한 信仰生活보다는 免罪符를 購入함으로써 罪意識을 면하려는 손쉬운 信仰生活을 좋아하였으며, 舊怨 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敎會의 主張이 果然 聖書 의 가르침에 符合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다.

敎區民들의 靈魂을 念慮하는 牧會的 責任感에 움직여 루터는 이미 以前에 行한( 1516年 10月 31日 1517年 2月) 說敎 에서 免罪符 販賣를 批判하였었다. 그러나 告해 問題의 再考 要請들이 結局 失敗하자 루터는 公開 論爭을 要請하기로 決心하여 1517年 10月 31日 , 齊聲記念日 前夜에 95個 論題 를 비텐베르크의 만인 聖者 敎會( de )의 門에 내걸었다.

루터는 “우리의 主님이시며 先生이신 예수 그리스도 께서 ‘悔改하라’고 하실 때, 그는 信者들의 全 生涯가 懺悔되어야 할 것을 要求하셨다”라고 論題(第1組)를 始作했다. 그는 自身의 福音의 再發見을 免罪符 問題에 適用하여 “敎會의 참 報告가 하나님의 榮光과 恩惠의 거룩한 福音”(第62條)이라고 力說하면서, 免罪符는 그리스도의 十字架 에 나타난 자비에 비할 바가 아님을 闡明하였다(제68조).

마지막 論題(第95條)에서 루터는 그리스도人 은 免罪符와 같은 行爲의 義가 아니라 ‘오히려 많은 苦難을 통해 하늘나라 에 들어간다’고 結論내린다.

宗敎改革 [ 編輯 ]

宗敎 改革 運動은 로마 가톨릭 의 問題를 論駁함으로써 敎會改革을 主張하였다. 十字架의 神學 을 理解하려면 먼저 루터가 말한 榮光의 神學이 무엇인지를 把握해야 한다.

榮光의 神學 [ 編輯 ]

神學者 김영한 에 따르면 루터의 榮光의 神學은 神學者가 하나님의 本質을 그의 使役에서 知覺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本質을 보는 神學이라고 한다. [11] 榮光의 神學은 出埃及記 33張이 보여주는 모세처럼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神學이다. 榮光의 神學은 하나님의 使役을 통해 하나님을 認識 하고자 하며 하나님의 보이는 本質을 통해서 그의 보이지 않는 本質의 智慧를 破棄하는 것 이라고 한다. 루터는 “萬一 人間 이 하나님을 十字架의 낮아지심과 數値 속에서 認識하지 않고 하나님을 그의 榮光과 尊嚴性 속에서 認識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充分하지 않고 必要하지 않다." 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에 對한 直接的 認識이요 人間에게는 不可能한 길이다. 榮光의 神學은 “主여 아버지를 보여주소서”(요14:8) 라고 懇請하는 빌립의 要求에 相應하는 神學이다. 그러나 예수는 빌립처럼 다른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者들에게 “나를 본 者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요14;8)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을 創造使役으로부터 認識 - 하나님의 使役(Werke)으로부터 試圖하는 하나님의 認識이다. 이 使役이란 創造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을 말한다. 그리고 人間의 行爲이다. 하나님을 創造使役으로부터 認識하고자 하는 自然神學과 思辨的 形而上學과 道德的 人間의 行爲 거룩姓은 함께 屬한다. 榮光의 神學은 人間을 自己 功勞를 내세우는 驕慢으로 이끌고 간다. 榮光의 神學은 하나님을 認識하는데 “榮光과 能力”(Glorie und Macht)을 基準으로 내세운다. 人間의 行爲를 强調 - 루터는 中世 스콜라주의가 人間의 行爲를 强調하는 榮光의 神學이라고 批判하면서 하나님의 恩寵 을 强調하는 十字架 神學을 提示하고 있다. 中世의 스콜라주의는 人間의 道德的 努力과 理性的 推論에 依하여 하나님 認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人間의 宗敎的 思索이나 行爲의 의(work-righteousness)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直接 나아고자 하는 人本主義的 試圖이다. 이것은 人間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上昇하는 構造를 갖는다. 그러므로 이는 靈光의 神學이다. 榮光의 神學은 하나님을 公開的인 神的 能力, 智慧와 榮光 속에서 하나님을 直接的으로 認識하고자 한다. 榮光의 神學은 人間을 倫理的 實績으로 行爲하는 者, 하나님 앞에 律法의 履行者로서 세운다. 그래서 道德的 行爲注意(moralischer Aktivismus)를 正當化 한다. 道德主義와 合理主義에 기인 - 世上의 智慧란 人間의 道德性과 理性의 能力을 말하며, 여기서 人間은 自己의 功勞를 통하여 하나님에게로 나가고자 한다. 이것은 榮光의 神學이다. 榮光의 神學은 十字架에 달리시고 十字架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世上의 榮光과 認定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러한 人間의 方法으로는 하나님에게 다가 갈 수 없다고 宣言한다. 人間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全的으로 하나님의 恩寵에 달려 있다. 世上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世上은 그리스도를 十字架에 달린 弱하고 無能한 者로 보기 때문이라고 神學者 김영한 은 말한다.

十字架의 神學 [ 編輯 ]

애當初 學者들間의 討論을 위해 내걸었던 95個 論題는 大量으로 印刷되어 ‘마치 天使들이 傳令이 된 것처럼’ 瞬息間에 全 獨逸 로 퍼져나갔을 뿐 아니라, 全 유럽 에 미치게 되었다. 95個 論題 發表後 5個月이 지난 1518年 4月에, 로마 가톨릭교회 는 한 이름 없는 修道士 의 主張 안에서 漸次 沸騰하는 爆發力을 잠재우기 위해 그로 하여금 하이델베르크 에서 열리는 아우구스티누스 修道會의 獨逸 分會에서 自身의 神學을 紹介하도록 要請하였다. 그러나 이 모임은 루터의 主張을 決코 억누를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바르고 强한 主張은 아우구스티누스 修道會의 修道院 담을 훌쩍 넘어서 온 世上에 메아리로 번졌으며, 免罪符 販賣 論爭을 한層 더 高調시켰다. 하이델베르크 論爭 에서 루터는 苦難과 十字架 를 통해 하나님을 認識할 수 있다는 ‘ 十字架 神學 ’을 發表하여, 스콜라주의 榮光의 神學 , 卽 힘과 征服을 追從하던 當時 로마 가톨릭 敎會 의 神學을 批判하였다. 그의 十字架 神學 은 人間은 舊怨 을 받을만한 道德 敵 能力이 있다고 主張하던 榮光의 神學을 否定하고, 하나님의 恩惠에 依한 救援을 主張함으로써 하나님의 慈悲와 恩惠를 强調한 恩惠의 神學이기도 하였다. [12]

榮光의 神學과 對照的으로 루터의 十字架의 神學을 神學者 김영한은 다음과 같이 說明한다. [13]

“하나님의 보이는 것, 그의 뒷面을 苦痛과 十字架를 통해서 보고 知覺한다.” 루터는 出埃及記 33張 註釋을 통하여 十字架 神學을 展開한다. 모세는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干求한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의 얼굴을 보는 者는 살지 못하리라“(출33;20).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 틈에 두시고 그의 榮光이 지나가기까지 모세를 그의 손으로 덮으신다. 모세는 하나님의 뒷面만을 보고, 그의 榮光의 얼굴을 보지 못한다. 十字架의 神學은 하나님의 뒷面을 보는 神學이다.

十字架 神學은 그리스도의 十字架와 信者의 十字架를 하나님 認識의 基準으로 提示한다. 十字架의 神學은 하나님이 숨어 계신 處所, 卽 約河心, 미련함 속에서 하나님을 間接的으로 認識하고자 한다. 十字架의 神學은 人間을 苦難과 受難으로 부름 받은 者로 理解한다. 그리하여 이 十字架는 하나님 앞에 서는 人間을 無能化 한다. 人間이 스스로 무엇을 하는 代身에 오히려 하나님이 모든 것을 人間 속에 行하시도록 한다. 人間은 순수히 하나님의 功勞와 恩惠를 受容하는 者가 된다. 十字架 神學은 榮光의 神學의 基準에 따르면 苦難, 卽 惡함과 미련함 속에서 하나님을 認識한다.

루터는“ 人間들이 하나님의 使役들로부터 하나님의 認識을 誤用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시 苦難으로부터 認識되기를 願하며, 보이지 않는 本性의 智慧는 보이는 本性의 智慧를 통해서 廢棄되기 願하신다.”고 한다. 루터에 依하면 하나님의 啓示됨과 十字架 속에 그의 감推尋은 對立된다. 루터에 依하면 十字架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眞正한 神學과 眞正한 神 認識이 있다. 十字架는 自然神學과 自然的인 에토스(ethos)의 自己意識을 깨뜨린다. 十字架는 人間의 成功이나 繁榮儀式을 깨뜨린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서 우리를 만나신다, 그래서 人間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自己의 죽음으로 經驗한다. 世上의 智慧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그리스도의 十字架만이 하나님의 智慧이다. 이에 反하여 十字架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世上의 智慧에는 감추어져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軟弱하고, 愚鈍한 것이 나타나 있다.

十字架 神學은 十字架에 달리신 十字架에 감추어진 하나님을 證言한다. 이것은 오로지 謙虛하고 가난한 마음을 통하여 可能하다. 十字架는 하나님의 隱蔽(die Verhehlung Gottes)이다. 왜냐하면 十字架는 하나님의 能力이 아니라 하나님의 無能(die Ohnmacht Gottes)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能力은 直接的으로 계시되지 않고 逆說的으로 그의 無能과 낮亞地心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루터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恩惠는 그의 瞋怒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하나님의 膳物과 福은 十字架 아래, 말하자면 “不幸과 災難” 아래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의 眞理는 世上의 눈에는 거짓(Luge)으로, 世上의 거짓은 眞理로서 나타난다. 루터는 하나님은 世上에 對하여 惡魔처럼 다가온다. 十字架 神學의 思考에 依하면 하나님은 數千名, 數萬名이 모여서 熱狂하고 說敎者가 스타처럼 聽衆의 歡呼聲을 자아내게 하는 說敎壇에 계시기 보다는 人間的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少數의 무리들이 가난한 마음을 가지고 懇切히 말씀을 듣는 世上的으로는 너무나도 초라한 說敎壇에 임재해 계신다. 說敎者가 마치 皇帝처럼 聽衆들을 宗敎的 熱狂으로 몰아가고 繁榮과 成功을 나누어주는 說敎壇이 아니라 淸潔한 마음을 지닌 少數의 聽衆에게 災難과 어려움과 疾病 가운데서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眞實한 說敎壇에 하나님은 임재해 계신다.

루터는 十字架 神學 에 對해 다음과 같이 說明하였다.

榮光의 神學은 洞察力을 갖고 있지도 合當한 神學徒 아니다. 實際로 自然으로부터 出發하여 하느님을 認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神學者는 그리스도 를 모르므로 苦痛보다 行跡을, 어리석음 代身 智慧를 選好하기 때문에 十字架 苦痛에 감추어진 하느님(Absconditus Deus)를 決코 알지 못한다. 그러한 者들은 바울 에 依하면 그리스도 十字架의 怨讐( 필리포서 3:18)이다. 實際로 그들은 十字架 의 苦痛을 嫌惡하고, 業績들과 그 榮光을 좋아하며, 그리하여 十字架의 線을 惡이라, 惡의 行業을 線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自己 行業들에서 推論된 하느님에 對한 認識을 濫用했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와 反對로, 卽 當身의 苦痛을 통해 認識되기를 願하셨고, 또 그리하여 可視的인 것에서부터의 認識을 새로이 立證하셨다. 이는 하나님이 當身 自身의 行跡안에서 自身을 나타내는 분으로 하느님을 欽崇하지 않는 者들로 하여금 苦痛 안에 自身을 감추시는 분으로 禮拜 하도록 하시기 爲한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라도 그런 者들이 하느님의 自己 卑下와 十字架 事件을 認識하는 것은 充分하지 않고, 그것은 全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리하여 하느님은 이사야 豫言者가 말한대로, 지혜롭다는 者들의 智慧를 排斥하신다. ' 야훼 當身은 鎭靜 숨어계신 하느님이십니다.'(이사야 45:15) [14]

로마가톨릭과의 神學論爭 [ 編輯 ]

카예彈 樞機卿과의 論爭과 稱議論 主張 [ 編輯 ]

루터가 自身의 主張 抛棄를 拒否하자, 敎皇 은 그를 宗敎 裁判에 넘기려고 로마 로 召喚 指示하였다. 그러나 選帝侯 프리드리히 3歲 와 大學이 이것에 反對하면서 代身 아우크스부르크 에서 樞機卿 토마스 카예彈 (Thomas Cajetan)이 그를 審問하도록 周旋하였다. 토마스 카예탄은 1518年 10月 12日 - 15日에 소환당한 그에게 免罪符에 對한 敎皇의 敎領(Unigenitus. 1343年)을 가리키면서 免罪符를 承認한 敎皇의 權威에 順從해야 한다고 威脅하였다. 루터 는 敎皇보다 公議會 가 더 높으며, 모든 人間 들은 誤謬를 犯할 수 있기 때문에 基督敎 信仰의 最終的인 權威는 敎會 가 아닌, 聖書 가 가진다고 反駁하였다. 그리고 罪人이라는 身分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에 對한 믿음을 보시고 그리스도人 을 의로운 사람으로 認定해주신다는, 루터의 表現대로 受動的인 義人 稱議論(이신稱의)도 굽히지 않았다. 카예탄은 結局 루터로부터 ‘나는 뉘우친다’(revoco)는 말을 얻어내지 못하자 選帝侯 프리드리히 3歲 에게 便紙를 써서 루터를 ‘로마로 넘기거나 領地로부터 追放’하라고 威脅 섞인 强勸을 하였지만, 選帝侯는 루터를 保護하였다.

( 1519年 1月) 敎皇廳 의 특별한 好意의 徵表인 黃金 薔薇 를 가진 밀티츠( de:Karl von Miltitz )가 選帝侯에게 나타났다. 그는 選帝侯가 루터를 追放하라는 카예탄의 要求를 이미 拒否한 것을 모르고 루터를 追放하거나 로마로 押送할 境遇 選帝侯에게 있을 有益을 宣傳하였다. 그리고 루터를 만날 수 있도록 許容해 줄 것을 要請하였으며 이 要請에 따른 만남은 許諾되었다. 會合을 가진 두 사람은 이제 以後로는 彼此 公的으로 沈默하기로 約束을 하였다.

라이프치히 論爭 [ 編輯 ]

그러나 잉골슈타트 大學校 의 敎授 요한 에크 가 沈默을 깨고 루터를 攻擊하자 루터는 同僚인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와 함께 라이프치히로 따라가 그와 論爭을 벌였다( 1519年 7月 4日 - 7月 14日). 요한 에크 는 自身의 大學이 아닌 라이프치히 大學校를 巧妙하게 비텐베르크 大學의 挑戰者로 끌어들였다. 이 두 大學은 오랜 競爭關係에 있던 2個의 작센( de )을 代表하는 大學校들이었던 것이다. 이 論爭에서 루터는 舊怨 받기 위해 敎皇을 認定해야 할 必要는 없다고 反駁하였다. 게다가 콘스탄스 公議會( 1414年 - 1418年 )가 체코슬로바키아 宗敎改革 얀 후스 를 잘못 定罪한 것을 들어 敎會의 公議會 조차도 過誤를 犯할 수 있고, 에베소서 에 根據하여 敎皇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만이 地上에서도 敎會의 머리가 되심을 主張하였다. [15]

루터와 에크 의 論爭은 다음 네 가지로 要約된다.

  • 첫째, 敎皇의 起源과 權威에 關한 것. 에크는 교황권이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敎皇에 順從해야 한다고 主張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敎皇의 權勢는 僞造文書人 '이시도리안 敎令집 ( de )'에 기초하여 세워졌으므로 虛僞라고 反駁하였다.
  • 둘째, 聖經의 權威에 關한 것. 루터는 오직 聖經만이 信仰의 道理와 生活의 規範이 되므로 聖經의 가르침에 따라 敎會를 改革하자고 외쳤다. 反面 에크는 '오직 聖經' 思想은 中世 末 現代主義 思潮를 따르는 異端들의 主張이라고 指摘하며 루터를 異端이라고 몰아세웠다.
  • 셋째, 煉獄에 關한 것. 에크는 煉獄思想이 마카비 2서 12張 45節에 나오므로 聖經的인 것이라고 主張하였으나 루터는 마카비書가 聖經이 아니라 畏敬에 不過하다고 하므로 神的인 權威가 없고, 따라서 煉獄敎理는 잘못이라고 指摘하였다.
  • 넷째, 免罪符 와 告解聖事. 에크는 免罪符와 告解聖事가 敎會 傳統에 根據한 것이므로 敎會가 따라야 한다고 主張하였다. 루터는 敎會의 傳統이 人間에게서 비롯된 것이므로 잘못될 수 있고, 오직 聖經만이 誤謬가 없으며, 免罪符와 告解聖事는 聖經의 敎訓에 背馳되는 것이라고 反駁하였다.

이 論爭을 契機로 해서 루터는 작센 公國(Herzogtum Sachsen)의 작센 공 게오르크( de )와 對立되었으나, 한便 그의 斷乎한 態度는 멜란히톤 같은 이를 友軍으로 얻었다.

로마 가톨릭 敎會 로부터 異端 宣告, 波紋 을 當함 [ 編輯 ]

라이프치히 論爭은 루터에 對한 期待도 增大시켰고 그에 對한 攻擊도 加速化 시켰다. 엑크는 라이프치히 論爭에 對한 報告書를 통해 루터의 黜敎에 對한 敎皇의 敎書를 이끌어냈다. 1520年 6月 24日 發表된 敎書 《Exurge Domine》(主여! 일어나소서!)에서 敎皇 레오는 뉘우칠 수 있는 60日間의 말미를 주고 이 期間 안에 루터가 自身의 主張을 撤回하지 않으면 그와 同僚들을 모두 波紋할 것이라 威脅하였다. 敎書는 루터의 作品 中에서 41個 發言들을 列擧하면서 ‘異端的이고 違法的이며 거짓’이라고 斷罪하고, 루터의 모든 著書를 불태울 것을 命令하였다. 루터는 自身의 冊들이 罍番 에서 불탄 事件 以後 그리고 波紋 威脅을 담은 敎書가 아직 비텐베르크 에 到着하기 前, 性(城)의 엘스터 門앞에서 學生들과 함께 敎皇의 敎書 뿐만 아니라 로마 敎會 法典의 火刑式을 12月 10日 擧行했다. 이로써 루터와 로마 사이의 모든 다리도 불에 타 버렸다.

敎皇의 火刑令狀은 루터를 憤慨하게 했다.

나의 이 말은 眞理의 말, 健實한 말이며, 人間의 能力으로 可能한 限 充實히 땅 위에 하나님의 眞理를 奬勵하고 人間의 靈魂을 求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現世에서의 하나님의 代理人이라면서 死刑 執行人과 火刑으로 對答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에게 傳하려한 까닭으로, 나와 내 眞理의 말을 火刑에 處하려는 것인가? 그대는 하나님의 代理人이 아니라. 惡魔의 代理人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대의 敎書라는 것은 종이를 더럽힌 거짓말이다. 그것이나 태워버려라. 그대는 그대가 하고 싶은대로 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하겠다. [16] "

며 敎皇의 火刑 令狀을 태워버린다.

루터를 最終的으로 罷免하는 敎皇의 敎書 《Decet Romanum Pontificem》(로마 敎皇은 이렇게 말한다)는 1521年 1月 3日 로마 에서 公布되었다. 自身에 對한 波紋은 루터의 靈魂 깊숙이 傷處를 내었다. 事實 루터는 免罪符 論爭이 한창 進行 中일 때에도 敎皇에 全的인 忠誠을 바치고 있었다. 그는 免罪符의 誤用들로부터 로마 敎皇을 保護하는 일이 바로 그 權威를 세워주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敎皇廳이 로마교회를 적그리스도 에게 넘겨주었다는 確信이 서게 되자, 그때 루터는 비로소 敎皇廳에 反擊을 決心한 것이었다. 따라서 루터가 過去와의 關係를 끊은 것은 급작스레 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이 關係에서 돌아선 것은 自己가 아니라고 하였다. 오히려 自己는 徹底히 外面을 當하였으며 세 番이나 出校를 當하였다고 하였다.

1518年 슈타우피츠는 修道院에 對한 順從의 誓約으로부터 나를 풀어주면서 아우크스부르크 에 혼자 내버려두었다. 그러고 나서 敎皇이 自身의 敎會로부터 나를 끊어버렸고, 마지막으로 皇帝가 그의 帝國으로부터 끊어버렸다. 그러나 主님은 나를 迎接하셨다. [17]

보름스 論爭 [ 編輯 ]

敎皇의 罷免에도 不拘하고 選帝侯 프리드리히 3歲 를 筆頭로 獨逸의 領主들은 보름스 會議 에서 루터가 自身을 위해 辯護할 機會를 얻도록 하는 데 成功하였다. 그리하여 카를 5歲 皇帝는 身邊의 安定 保障을 約束하면서 루터에게 1521年 3月 6日, 招請狀을 보냈다. 皇帝의 安全 保障은 믿을 바가 못되었다. 選帝侯의 宮殿에서도 意見은 紛紛하였다. 結局 갈 것인지 말 것인지는 루터가 選擇할 몫이었다. 루터는 周圍의 憂慮와 勸告를 물리치고 斷乎하게 보름스를 向했다.

우리는 보름스에 入城할 것이다. 地獄의 모든 門들과 하늘의 모든 權勢들이 막으려고 할지라도 … 거기서 우리의 使命은 魔鬼를 쫓아내는 것이다.

슈팔라틴 ( de )도 그의 決然한 모습을 感知했다.

그는 보름스로 가려고 한다. 그곳의 지붕위에 있는 기왓張의 數만큼이나 魔鬼들이 있을지라도….

보름스에 1521年 4月 16日 到着한 루터는 다음 날 첫 番 聽聞會에 參席하였다. 트리어 大主敎 의 顧問官은 루터에게 두 가지 質問에 答하도록 물었다.

  1. 그대의 이름으로 出版된 이 冊들을 그대의 것으로 認定하는가?
  2. 그대는 이 冊들에서 쓴 內容을 撤回할 準備가 되어 있는가?

첫 番 質問에 루터는 自身의 冊들이라 是認하고 自身이 쓴 冊들이 더 있다고 對答했다. 두 番째 質問에 루터는 하루의 餘裕를 救했다.

루터는 4月 17日 저녁에 비엔나 요하네스 쿠스피니아누스 ( de )에게 그날과 다음 날의 일에 對해 便紙를 썼다.

… 이 瞬間 나는 皇帝 와 使節들 앞에 서서 撤回할 것인가하는 質問을 받았다 … 來日 나는 撤回에 對한 答辯을 할 것이다. 생각할 時間을 달라는 要請은 받아들여졌지만, 이 하루 以上은 許諾이 안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께서 내게 恩惠를 베풀어 주시는 限 永遠히 한 글字도 撤回하지 않을 것이다 ….

다음날(4月 18日) 루터는 皇帝 앞에서 담대히 對答했다.

聖書 의 證據함과 明白한 異性에 비추어 나의 有罪가 證明되지 않는 以上 나는 敎皇들과 敎會 會議의 權威를 認定하지 않겠습니다. 事實 이 둘은 誤謬를 犯하여 왔고 또 서로 엇갈린 主張을 펴왔습니다. 내 良心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撤回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良心에 反해서 行動하는 것은 安全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賢明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英國의 歷史學者 토머스 칼라일 은 루터가 보름스 國會에 죽음을 무릎쓰고 出頭한 일을 유럽 歷史上 最大의 場面이며, 보름스 會議 에서 自身의 主張을 撤回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 場面을 人類의 近代 歷史에서 가장 偉大한 瞬間이라고 評價했다. 또한 地獄 그 自體에 正面으로 挑戰하고자 했던 루터의 行爲는 두려움 없는 最高의 勇氣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評價했다. [18]

루터에 對한 身邊保護 [ 編輯 ]

바르트부르크 城에서의 隱身 [ 編輯 ]

카를 5歲 皇帝는 루터에 對한 身分 安全 保障의 約束을 지키려 했다. 그래서 루터가 3週 以內로 비텐베르크로 돌아갈 것과 途中에 說敎 와 著述을 하지 말 것을 命令하였다. 루터는 아무도 모르게 同僚들과 함께 보름스 를 떠났다. 길을 가던 中 루터는 프리드리히 3歲가 미리 周旋한 대로 僞裝 拉致되어 바르트부르크 城으로 갔다. 여기서 루터는 게오르크 記事 行世를 하며 10個月間 지냈다. 한便 루터가 보름스를 떠난 後 皇帝는 보름스 勅令을 통해서 루터를 法에서 追放된 者라고 宣言하였다. 이제 法的으로는 누가 그를 殺害한다고 해도 殺人罪로 處罰받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의 가르침은 파리, 罍番 , 쾰른 大學校 神學部로부터도 定罪당하였다.

獨逸語 聖書 飜譯 [ 編輯 ]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城에서 ‘强制된 休暇’를 어떻게 지내야 할지 알았다. 그는 이 期間을 聖書 主席, 로마 가톨릭 學者들과의 書面 論爭, 論文 著述 뿐만 아니라 新約聖書 의 飜譯에 使用하였다. 루터가 飜譯한 獨逸語 聖書는 1522年 9月에 出版 되었기 때문에 ‘9月 聖書(Septemberbible)’로 불리게 되었다. 루터의 獨逸語 聖書 飜譯은 獨逸 基督敎人 들을 敎會 의 權威에서 解放하고, 獨逸語 發展에 이바지한 神學 敵, 言語學 敵으로 重要한 事件이다. 獨逸 宗敎改革 以前에 使用된 聖書 라틴語 城西였으므로 少數의 貴族 聖職者 만이 읽을 수 있었는데, 聖職者들은 이를 惡用하여, 基督敎人들을 自身들의 牧會的 必要에 따라 操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터 故地 獨逸語 로 聖書를 飜譯하면서 누구나 聖書 를 읽을 수 있게 되어, 獨逸 基督敎人 들은 聖職者 들의 支配에서 벗어나 自由롭게 聖書 를 읽고 그들의 異性 으로 理解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루터가 聖書 飜譯에 使用한 故地 獨逸語 는 現代의 標準 獨逸語 가 되었기 때문에, 루터의 聖書 飜譯은 獨逸語 文法 이 統一되는 契機가 된 事件이기도 하다. [19]

루터는 聖書 飜譯을 훌륭히 遂行하여 ‘獨逸의 나이팅게일 들이 로마의 방울새 들 만큼 노래를 아름답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을 滿天下에 보여주고자 했다. 이것을 위해 普通 사람들의 言語를 使用하려고 相當한 關心을 기울였는데 슈팔라틴 ( de )에게 보낸 便紙에서 그의 聖書 飜譯의 原則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은 當身에게 때때로 적합한 單語를 물어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單純한 말을 가르쳐 주십시오. 宮廷이나 城 안에서 쓰는 말은 謝絶합니다. 왜냐하면 이 冊은 單純性으로 有名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루터의 獨逸語 聖書가 구텐베르크의 印刷術德分에 빠르게 普及됨으로써 基督敎人들은 聖書를 聖職者의 解釋을 거치지 않고도 그들의 理性으로 理解하게 되었다. 이러한 歷史는 聖書 逐字靈感說 等의 經典 敵 解釋에서 벗어나, 社會學 , 修辭學 , 寫本들과의 比較, 歷史 等의 學問 的인 方法들을 利用하여 客觀的으로 理解하려는 城西批評 이 胎動하는 거름이 되었다. [20]

暴力 使用 反對 [ 編輯 ]

루터가 바르트부르크 性 에 머물고 있는 동안 비텐베르크에서는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가 敎會를 武力으로 改革하려고 하였다. 하나님으로부터 特別한 啓示를 받았다는 세 名의 ‘츠비카우의 豫言者들’도 合勢를 했다. 聖晩餐 에서는 그때까지 平信徒에게 거부되었던 葡萄酒 도 提供되었으며, 革新的인 禮拜樣式과 禮服이 導入되었고, 로마 가톨릭 미사 를 擧行하던 修道士들은 돌에 맞았으며, 聖像 들은 敎會 에서 除去되고 불태워졌으며 騷擾가 일었다. 루터는 믿음의 일로서 始作한 自身의 일이 誤解받고 威脅당하고 있다고 느끼자, 12月 中 비텐베르크를 祕密裏에 訪問하여 5日間 머물다 돌아갔다. 이 때의 느낌을 슈팔라틴에게 쓴 便紙에서 루터는 저들이, 福音이 주는 自由를 强制 條項으로 만들었다고 非難하였다.

나는 어느 누구도 暴力과 피흘림을 가지고서 福音을 위해 싸우는 것을 願치 않는다. 말씀을 통해 世上은 征服되며, 말씀을 통해 敎會는 舊怨받으며, 말씀을 통해 敎會는 復興한다.

騷擾가 繼續되자 루터는 自身의 亡命地를 떠나 1522年 3月 6日 , 비텐베르크 로 돌아와 敎會에서 8日間 連續으로 說敎하였다. 말씀만이 일을 해야 한다는 그의 原則이 옳다는 것이 證明되었다. 安寧과 秩序가 復舊되었던 것이다.

要約하여, 나는 말씀을 說敎하리라. 나는 말씀을 말하리라. 나는 말씀을 적으리라. 그러나 나는 어느 누구도 强制하거나 强要하지는 않으리라. 믿음은 자유롭게 되기를 願하지 强制되거나 强壓으로 받아들여지기를 願치 않는 것이다.

改革의 原理: 하나님의 말씀 [ 編輯 ]

루터의 宗敎改革 1517年 - 1520年 사이에, 로마 가톨릭교회 와의 斷絶 過程을 겪었으나, 한便 改革 陣營 內部 勢力들과의 差別化 過程도 겪었다. 먼저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 토마스 뮌처 , 農民들을 中心으로 한 急進的 改革運動과의 差別化( 1521年 - 1525年 ), 다음으로는 에라스뮈스 그리고 人文主義者 들과의 差別化( 1524年 - 1525年 ) 過程이 있었다. 이러한 過程들은 農民, 토마스 뮌처, 人文主義者들에게 루터가 外面을 받게 함으로써 宗敎改革의 急速한 發展을 막는 結果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다른 한便으로는 하나님의 恩惠에 對한 福音이 熱狂主義的 神祕主義라든가, 人文主義 敵 啓蒙, 그리고 社會政治的 急進主義로 誤解되는 것을 막는 結果를 가져왔다.

이 過程들에 있어서 共通點은 루터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依支하였다는 것이다. 聖書 가 정경화를 통해 登場하기 前에는 敎會가 있었다는 理解에 따라 敎會 와 傳統의 權威를 聖書 위에 올려 놓은 로마 가톨릭교회 에 對해 루터는 ‘性서만으로’를 主張하였고, 人間의 宗敎的 經驗을 强調하는 熱狂主義者들의 主觀的인 啓示理解에 對해서는 聖書 의 客觀的인 말씀을 主張하였으며, 에라스뮈스 의 人文主義에 對해서는 聖書가 말하는 確實性을 主張하였고, 福音 을 政治的으로 解釋한 農民革命에 對해서 福音은 오직 良心만을 相對한다고 하였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이 穩全히 傳播만 된다면 그 結果는 저절로 온다고 確信하였다.

나는 免罪符 와 모든 敎皇主義者들을 反對하였으나 決코 武力은 使用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說敎 하고, 썼을 뿐이고 그 外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잠을 자거나 親舊 니콜라우스 폰 암스도르프 ( de )와 함께 비텐베르크 麥酒 를 마시는 동안 말씀은 敎皇 을 徹底히 無力化시켰다. 그 어떤 君主나 皇帝도 그 程度의 害를 입힐 수 없었을 程度로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말씀이 다 했다.

結婚 [ 編輯 ]

루터는 42歲이던 1525年 6月 13日 結婚을 했다. 神父는 16年 年下의 前職 로마 가톨릭교회 修女 카타리나 폰 보라 ( de )였다. 루터는 自身의 結婚의 目的이 늙은 아버지에게 子孫을 안겨 주기 위해서, 또한 結婚을 머뭇거리는 사람들에게는 自身의 說敎를 몸소 實踐하면서 본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나는 내가 가르쳐 온 것을 實踐으로 確證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福音으로부터 오는 그렇게 커다란 빛에도 不拘하고 수많은 小心한 이들을 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行動을 뜻하셨고 또 일으키셨다. 왜냐하면 나는 ‘ 사랑 에 빠졌다’거나 欲情으로 불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한다.

그러나 루터가 結婚하겠다고 했을 때 모두 다 反對하였다. 同僚들은 루터가 結婚하면 온 世上과 魔鬼가 웃을 것이며 그 自身이 그동안에 이루어 놓은 일을 다 헛수고로 만들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特히 農民戰爭의 渦中에서 그의 結婚宣言은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루터는 宗敎改革 과 함께 福音이 傳播됨으로써 사탄이 마지막 攻擊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獨逸 農民革命 [ 編輯 ]

獨逸 農民들이 領主들의 搾取에 抵抗하여 일으킨 獨逸 農民戰爭 도 처음에는 同情的인 모습을 보였으나, 나중에는 福音을 獨裁 體裁로 歪曲시키려는 사탄의 攻擊이라고 主張하여 領主들에게 强勁鎭壓을 要求하였다. 只今까지 敎皇은 世俗權力에 對한 優位權을 主張하였는데, 이제 農民들은 政治的 權力을 얻기 위해 福音의 이름으로 칼을 손에 쥐었다는게 루터의 생각이었다.

죽음 [ 編輯 ]

自身이 태어난 아이슬레벤에서 63歲로 死亡하였다. 이때 그는 만스펠트 ( de ))의 伯爵들 사이에 있었던 法的 論爭을 仲裁하러 가 있는 中이었다. 루터가 死亡하던 밤 意思와 그의 親舊들이 그의 臨終을 지켜보았다. 루터는 다음 聖經 句節을 繼續 暗誦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世上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그의 獨生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滅亡하지 않고 永生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  요한 福音 , 3章 16節

새벽 세 時가 가까워 요나스 博士는 마지막이 이른 것을 알고 그에게 물었다.

“先生님은 先生님께서 가르치신 敎理와 그리스도 위에 굳건히 서서 돌아가시겠습니까?”

루터의 몸이 움직이면서 큰 소리로 對答하였다.

“예.”

루터의 遺骸는 비텐베르크로 옮겨져 萬人 聖者 敎會 ( de )에 安置되었다.

音樂 [ 編輯 ]

루터는 音樂 이 神學 다음으로 하나님의 가장 큰 膳物이라고 하였다. 音樂은 神學科 닮은 點이 많은데 特히 靈魂을 고치고 靈들을 소생시키는 데 있다고 하였다. 音樂이 없으면 人間은 木石과 마찬가지이지만 音樂이 있으면 魔鬼를 멀리 보낼 수 있다. 루터는 이것을 靈的인 苦痛 가운데에서 直接 經驗하였다.

“音樂은 나를 자주 소생시켜 주고 무거운 짐으로부터 解放시켜 준다.”

그러나 音樂을 蔑視하는 ‘熱狂主義者들’은 音樂의 이 有益을 몰랐다. 그들은 오르간을 魔鬼의 遺産으로 置簿했다. 그러나 루터는

音樂 은 하나님의 膳物이요 祝福이다. 音樂은 또한 魔鬼를 몰아내주고 사람들을 幸福하게 만든다. 音樂은 사람의 모든 憤怒, 淫亂, 驕慢, 그리고 모든 惡을 잊게 해준다. 나는 音樂을 神學 다음으로 重要하게 보며 無限히 아낀다.

고 하였다.

한便 루터는 로마 가톨릭 敎會 에서 限定된 이들에 依해서만 使用되어 오던 聲價를 萬人의 所有物로 돌려주었다. 以前의 그레고리오 聖歌 에서는 미사 때 會衆은 잠잠히 있고 聖歌隊의 專門家들만이 榮光頌 (Doxology)을 번갈아 불렀다. 그러나 루터는 一般 回中道 讚頌을 부를 수 있게 前例 卽, 禮拜 樣式을 改革하였으며 ‘내 주는 剛한 性이요’ [21] 를 비롯하여 많은 讚頌曲을 作詞, 作曲하였다. 그의 曲들은 ‘코랄’이라는 장르로 자리 잡는다. 그는 自身의 ‘작고 못생긴 목소리’를 不平했지만 플루트 와 류트를 연주하는 能手能爛한 音樂家였다.

루터는 사람을 움직이는 성가의 能力을 믿었다. 聖歌는 普通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운 이들에게도 聖經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家長이 家族에게 讚頌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루터의 宗敎改革, 聖職者들의 力量을 높이다 [ 編輯 ]

루터가 살던 時代에 改新敎 牧師들의 水準은 낮았다. 改新敎 牧師들은 腐敗하고, 不道德했으며, 酒酊뱅이, 直接 술집 을 運營하는 者도 있었다. 敎人들이 捐補를 하지 않아 生計에 어려움이 있는 聖職者 들도 있었다. 루터의 宗敎改革 同志인 멜란히톤 1528年 3月 《선제후령 작센의 敎區牧師 視察者를 위한 指針書》를 製作하여 敎區牧師들을 敎育하고자 했다. 領邦 에 所屬된 改新敎 敎會에서는 牧師 들이 國家에 所屬된 公務員 과 같은 性格을 가지게 되었고, 聖書 와 信仰을 가르칠만한 力量을 갖춘 聖職者가 必要하다는 主張이 있었다. 비텐베르크 大學校 神學者 들이 主管하는 聖職考試를 合格하고, 大學校 敎育을 받아야 했으므로 改新敎 聖職者들의 水準이 높아졌다. 領邦敎會에서 第一 重要한 監督會에서는 社會福祉 , 結婚, 禮拜 , 信仰敎育等을 擔當했다. [22]

神學 [ 編輯 ]

마르틴 루터의 神學 核心 思想은 크게 세 가지 口號로 說明된다.

믿음만으로(sola fide)! 恩寵만으로(sola gratia)! 城西만으로(sola scriptura)!

오직 聖經 , 오직 恩寵, 오직 믿음 [ 編輯 ]

루터의 宗敎改革思想은 徹底히 하나님 中心이었다. 그의 宗敎改革 作業의 核心은 하나님을 人間의 눈으로 判斷하고 그 위에 自身의 宗敎를 쌓아가려는 로마 가톨릭 敎會 에 對抗하여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었다. 事實 中世 로마 가톨릭 敎會 라고해서 聖書 의 權威와 聖靈 의 感度(令監)에 對해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또한 先行(先行)하는 하나님의 恩寵을 가르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믿음의 重要性에 無知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急進的이었던 것은 이 말들 앞에 붙은 한 작은 單語, “오직”(sola) 이었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 敎會가 이것들을 말하면서도 實은 그 밑바닥에는 人間 中心의 宗敎가 사로잡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當時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聖書 의 權威를 말하면서도 聖書를 解釋하는 敎皇 의 權威를 그 위에 세웠으며, 恩寵을 하나님이 주신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을 人間이 律法 의 義를 쌓는 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能力’으로만 理解하였고, 믿음이 重要하다는 말을 처음에는 始作하다가 어느덧 ‘先行(善行)으로 形成된 믿음’을 强調했던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聖書 는 그 文字가 自明하고 單純하기 때문에 어느 누구라도 理解할 수 있는 으로서, 自身 以外의 다른 어떤 解釋者도 重要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성서만으로!), 恩寵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罪人들을 罪人에서 義人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 信仰을 보시고 義人으로 認定해주시는 ‘好意’( 神學 用語로 이를 '稱의'라고 한다.)로 理解하였고(은총만으로!), 하나님의 約束을 믿는 믿음은 單番에 모든 律法 을 成就하며 人間을 의롭게 한다고 하였다(믿음만으로!).

'오직 성서'(Sola Scriptura)는 敎權主義 에 對한 抵抗이기도 했다. 神學 과 敎理의 最優先의 權威는 聖書라고 主張함으로써 敎皇 의 權威는 絶對的이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 [23]

오직 그리스도 [ 編輯 ]

하나님 中心의 原則 下에서 나온 이 세 가지 宗敎改革 의 口號들은 서로 密接한 關係 속에 있으며 또한 ‘ 그리스도 만으로’의 原則이 서로를 連結시켜 주는 끈이다. 루터는 神·舊約聖書를 통틀어 聖書 의 主題는 그리스도라고 理解하여,

그리스도를 聖書에서 빼보라. 그리하면 聖書에서 무엇을 더 찾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으며, ‘恩寵만으로’는 代贖에 있어서 우리의 舊怨 을 위한 그리스도의 十字架에서의 죽으심의 絶對的 重要함과 또한 充分함을 主張하였고, ‘믿음만으로’는 律法 의 終結者로 오시며 그 要求를 ‘텅 비게’ 하시는 新人(神人)卽, 참 하나님이요, 참 人間이신 [24] 이신 그리스도 에 對한 告白을 前提로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은 敎理뿐만 아니라 倫理 , 文化 , 政治 에까지 包括的으로 適用되는 것으로 루터는 이 條項 위에 敎會가 서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다고 그 重要性을 强辯하였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더 以上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自身의 行爲를 드릴 必要가 없다. 代身 그는 그의 行爲를 必要로 하는 이웃에게 베푼다. 하나님께서 주신 疏明(calling, 부르심) 안에서 充實할 때 누구보다도 거룩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며, 律法의 完成인 이웃 사랑 [25] 을 實踐하는 것이다.

福音主義 神學者 김세윤 博士는 《 基督敎 思想 2008年 12月號에 寄稿한 '韓國敎會의 새로운 改革을 위하여'에서 宗敎改革者 마르틴 루터가 主張한 오직 그리스도 思想은 敎會 가 宣言해야 할 福音이 十字架 에서의 죽으심과 復活 로써 그리스도 가 되신 예수 를 傳하는 十字架 福音이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主張한다. 이러한 解釋은 十字架의 福音이 아닌 世上에서 部와 出世의 福音이 支配하는 韓國 敎會에 適切한 批評이라고 김세윤 博士는 神學者의 知性으로 主張하였다.

自敍傳的 短篇 [ 編輯 ]

루터는 世上을 떠나기 前인 1545年 에 學者들이 所謂 "自敍傳的 短篇"이라고 부르는 글을 썼다.

한便, 그해 ( 1519年 ) 동안에 나는 이미 새롭게 詩篇 을 解釋하는 일에 돌아와 있었다. <中略> 나는 確實히 로마書에 있는 바울 을 理解하기 위해 特別한 熱情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때까지 내 길을막고 있던 것은 내 心臟 周圍의 차가운 피가 아니라 1張(17節)에 있는 "그 안에 하나님의 義가 나타나서"라는 한 單語였다.

? Luther, Preface to the Complete Edition of Luther's Latin Writings , LW 34:336 [26]

섬김의 神學 [ 編輯 ]

마르틴 루터는 社會 問題에 關心을 갖고 行動하는 神學者 였다. 그는 勞動 을 하지 않고 求乞하는 것 곧 無爲徒食에는 "求乞은 하나님의 誡命에 어긋나는 것이고, 倫理 에 어긋나며, 人間 尊嚴性에도 어긋난다."라는 論理 로 反對했지만, 配偶者와의 死別, 疾病 , 强者가 自身의 生存을 위해 弱者를 搾取 하는 構造的 等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對해서는 " 그리스도 께서 말씀하신 사랑 은 困境에 處한 兄弟를 돕고 섬기는 것이며, 이를 實踐하는 것이 가장 큰 禮拜 "라며 贊成하여 每週 主日마다 라이스니히 時 에서 市民들이 每 主日 禮拜 때마다 共同募金함에 奉獻하여 모아진 獻金으로 病·年老함 等으로 勞動 을 할 수 없는 市民들을 돕는 라이스니히 禁錮規定( 1523年 )에 西門作成으로 參與했다. 이러한 傳統은 北유럽 에도 번져나간다. [27]

著書 [ 編輯 ]

批評 [ 編輯 ]

反유대主義 [ 編輯 ]

루터는 1543年에 發表한《유대인들과 그들의 거짓말(Die Juden und ihre Lugen)》이라는 글에서 "유대人의 會堂을 불지르고, 그들을 죽이고, 埋葬하고 會堂을 무너뜨리고, 탈무드를 빼앗으라"고 主張하며 갑자기 유대人 彈壓을 煽動한다. 루터의 이런 主張은 19世紀 初 反유대主義가 氣勝을 부리던 獨逸에서 基督敎社會勞動黨 代表인 아돌프 슈퇴커(Adolf Stoecker) 에 依해 널리 퍼져 나갔고 나치에게 波及되었다. [28] 또한 루터는 地獄에 갈 것이라고 脅迫 까지 해 가면서 유대人들에 對해 人道主義 를 提供하면 안 된다고 主張하였다.(《손대접》, Christine paul, 정옥배 옮김, 福있는 사람.p.123)

現實權力과의 結託 [ 編輯 ]

또한 루터의 宗敎改革은 支配階級들과의 結託에 依해 進行되었으므로, 獨逸農民들이 諸侯들의 搾取에 對抗하여 民衆 抗爭을 벌이자( 獨逸 農民戰爭 ), 諸侯들에게 書信을 보내 鎭壓해야 한다고 煽動하였다. [29] 루터는 農民抗爭 鎭壓을 正當化하기 위해 諸侯들의 搾取에 맞서 階級鬪爭 을 벌이는 農民들을 社會 를 危險하게 하는 暴徒라고 誹謗하였지만, 實際로는 諸侯들과의 結託이 維持되지 않으면 宗敎改革 이 進行될 수 없다는 現實的 理由에서 農民抗爭 鎭壓을 主張하였다. [30] 卽 루터에게는 抑壓的이고 搾取的인 支配秩序로부터 民衆 舊怨 하는 聖書 의 하나님보다, 現實權力人 諸侯들과의 結託을 通한 宗敎改革 進行이 重要했던 셈이다. 이는 改新敎 도 旣存 로마 가톨릭교회 처럼 宗敎 政治 間의 結託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事實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를 克服하기 위해 再浸禮敎 에서는 宗敎 政治 間의 分離를 主張한다. 하지만 政治와 宗敎의 分離思想은 市民革命 以後 宗敎와 政治間의 結託이나 消耗的인 對立을 막기 爲한 것이지 [31] , 民衆 을 抑壓하고 搾取하는 支配秩序에 對해 敎會 政治 에 干與하면 안 된다면서 沈默하거나 基督敎 根本主義 에 뿌리를 둔 保守 敵이거나 때로는 守舊的인 神學 으로 維持시키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權威的인 性格의 典型的인 人物 [ 編輯 ]

에리히 프롬 은 그의 著書 < 自由로부터의 逃避 >에서 루터를 心理學的인 分析을 통해 權威主義的인 性格의 典型的인 人物로 評價하였다. '그는 極度의 孤獨感과 無力感 및 罪惡感에 사로잡혀 있으며, 다른 한便으로는 內面에 强烈한 支配欲을 지니고 있었다.'로 評價하였다. 루터의 人間像은 二律背反的인 狀況을 反映하는 데, 그에게 人間은 自身을 精神的 權威에 종속시키는 一切의 關係로부터는 자유롭지만, 이러한 自由가 孤獨과 不安을 일으켜 虛無感과 無力感으로 人間을 壓倒한다는 것이다. [32]

宗敎改革家 로서 意味 [ 編輯 ]

루터는 宗敎改革 을 主張했다는 事實에서 卽, 敎會改革의 神學的 모델을 提示했다는 事實에서 重要한 神學者 이다. 福音主義 클럽 運營者인 양희송은 《 福音과 狀況 》 171號 表紙이야기- <不滅의 루터, 한 말씀하시다>에서 루터를 가리켜 旣成 敎會 로마 가톨릭 批判 하는 지성과 自身의 생각을 95個組 反駁文 作成으로 옮긴 熱情을 모두 갖춘 神學者 라고 評價했다.

韓國의 基督敎人 들 보면 이래도 좋고 저래도 괜찮다는 式으로 사는데, 제발 좀 그러지 말았으면 해. 내가 韓國敎會 를 보면서 第一 안타까운 것이 工夫 를 안 한다는 거요. 敎會改革 이야기하면 꼭 ‘ 祈禱 했냐?’ 물어보는 사람 있는데, 祈禱 는 必須高 改革運動은 硏究해야 해요. 宗敎改革 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나온 運動이 아니라고. 中世의 修道院 들은 每日 最少 세 番은 祈禱會를 갖는 修道共同體였지만, 同時에 神學者 의 圖書館이자 硏究室이기도 했소. 나도 어거스틴 修道會에서 數 年間 神學 聖書 硏究를 꼼꼼히 할 機會가 있었으니 나중에 神學 論爭에서 내 立場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이고, 내 同僚들도 다 神學 의 專門家들이었소. 생각해봐요. 敎皇 體制 自體가 巨大한 敎理 歷史 의 結集體인데, 이를 克服하겠다는 사람들이 턱도 없이 모자란 工夫로 무얼 한단 말이오. 소경이 소경을 引導할 수 없지 않소.

나는 平生을 改革運動에 邁進했고, 無數히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方向으로 빠져들거나 指導者들의 脫線으로 追從者들이 목숨을 잃는 事例도 보았네. 改革運動은 客氣로 할 運動이 아니오. 眞짜 다 걸고 해야 할 運動이오.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內容과 方向을 찾는 일은 決死的으로 해야 하오.

루터 自身도 다음과 같이 記錄함으로써 宗敎改革은 正義感이 아닌 神學에서 나온다는 事實을 論證한다.

“나는 激烈하고 苦痛스러운 良心으로 火를 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나는 바울의 그 말씀에 끈덕지게 매달렸고 아주 熱烈히 星 바울이 願하는 것을 알고자 하였다. 마침내 하나님의 自費로 밤낮으로 默想하는 가운데 나는 그 單語들이 나오는 文脈에 注意를 기울였다. ‘하나님의 義가 나타나서 … 記錄된 바 오직 義人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張)’ 거기서 나는, 하나님의 義는 이 義에 依하여 義人이 하나님의 膳物, 卽 믿음으로 살아가는 바 그 義라는 것을 理解하기 始作하였다. … 여기서 나는 完全히 새로 거듭나서 열린 門들을 통하여 樂園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느꼈다. …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의’라는 單語를 以前에 미워하였던 것만큼이나 이제 사랑으로 나의 가장 달콤한 單語로 讚揚하였다. 이렇게 해서 바울의 바로 그 句節은 내게 眞情으로 樂園으로 들어가는 門이 되었다.” [33]

또한 그의 十字架 神學 基督敎 傳統 人 淸貧, 自足과 反對되는 榮光의 神學에 물든 美國 韓國 保守的 福音主義 敎會에 좋은 對案이 된다.

삶의 方式으로 볼 때, 榮光의 神學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勝利로 因한 繁榮과 福 받음, 勝利를 强調하는 데 비해, 十字架 神學은 사랑과 自己犧牲, 總體的 獻身과 服從의 삶을 基督敎人 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삶의 길이라고 主張한다. 이와 같이 十字架 神學은 苦難 속에 參與해야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하며 또 實際로 그렇게 함으로 헛된 勝利主義를 拒否하고 十字架와 함께 時代의 어둠을 넘어 예수 復活 에 參與하고자 한다. [34]

같이 보기 [ 編輯 ]

 作品 [ 編輯 ]

Tomus secundus omnium operum , 1562
  • Weimarer Lutherausgabe ( WA ), 120 Bande, 1883?2009 (Sonderedition 2000?2007), [[:de:Spezial:ISBN-Suche/3740009454| ISBN   3-7400-0945-4 ]].
  • Kurt Aland (Hrsg.): Luther deutsch. Die Werke Martin Luthers in neuer Auswahl fur die Gegenwart. (1957?1974) 4. Auflage. Vandenhoeck & Ruprecht, Gottingen 1991, [[:de:Spezial:ISBN-Suche/382521656X| ISBN   3-8252-1656-X ]] (10 Bande, ein Registerband, ein Erganzungsband)
Kurt Aland (Hrsg.): Martin Luther. Gesammelte Werke. (= CD-Rom, Digitale Bibliothek. Band 63). Directmedia, Berlin 2002, [[:de:Spezial:ISBN-Suche/3898536394| ISBN   3-89853-639-4 ]].

圖書들 [ 編輯 ]

生涯 [ 編輯 ]

  • Josef Benzing , Helmut Claus: Lutherbibliographie: Verzeichnis der gedruckten Schriften Martin Luthers bis zu dessen Tod (= Bibliotheca bibliographica Aureliana ). Band 2 mit Anhang: Bibel und Bibelteile in Luthers Ubersetzung 1522?1546 . Koerner, Baden-Baden, 1989, 1994.

歷史的 圖書 [ 編輯 ]

  • Thomas Kaufmann : Erloste und Verdammte. Eine Geschichte der Reformation. C.H. Beck, Munchen 2016, [[:de:Spezial:ISBN-Suche/9783406696077| ISBN   978-3-406-69607-7 ]].
  • Thomas Kaufmann: Geschichte der Reformation. Suhrkamp, Frankfurt am Main 2009, [[:de:Spezial:ISBN-Suche/9783458710240| ISBN   978-3-458-71024-0 ]].
  • Heinz Schilling : 1517. Weltgeschichte eines Jahres. C.H. Beck, Munchen 2017, [[:de:Spezial:ISBN-Suche/9783406700699| ISBN   978-3-406-70069-9 ]].
  • Luise Schorn-Schutte: Die Reformation. Vorgeschichte, Verlauf, Wirkung. 6. Auflage. C.H. Beck, Munchen 2016, [[:de:Spezial:ISBN-Suche/9783406693588| ISBN   978-3-406-69358-8 ]].

參考 文獻 [ 編輯 ]

神學的 參考 文獻 [ 編輯 ]

  • Gerhard Dunnhaupt (Hrsg.): The Martin Luther Quincentennial. Wayne State University Press, Detroit 1985, [[:de:Spezial:ISBN-Suche/081431774X| ISBN   0-8143-1774-X ]].
  • Albrecht Beutel (Hrsg.): Luther Handbuch. 2. Auflage. Mohr & Siebeck, Tubingen 2010, [[:de:Spezial:ISBN-Suche/9783825234164| ISBN   978-3-8252-3416-4 ]].
  • Volker Leppin , Gury Schneider-Ludorff (Hrsg.): Das Luther-Lexikon. Buckle & Bohm, Regensburg 2014, [[:de:Spezial:ISBN-Suche/9783941530058| ISBN   978-3-941530-05-8 ]].
  • Hans-Martin Barth : Die Theologie Martin Luthers. Eine kritische Wurdigung. Gutersloher Verlagshaus, Gutersloh 2009, [[:de:Spezial:ISBN-Suche/9783579080451| ISBN   978-3-579-08045-1 ]].
  • Reinhard Schwarz: Martin Luther. Lehrer der christlichen Religion. Mohr Siebeck, Tubingen 2015, [[:de:Spezial:ISBN-Suche/9783161518805| ISBN   978-3-16-151880-5 ]]. (Gesamtdarstellung von Luthers Theologie; Rezension )
  • Christopher Spehr: Luther und das Konzil. Zur Entwicklung eines zentralen Themas in der Reformationszeit. Mohr/Siebeck, Tubingen 2010, [[:de:Spezial:ISBN-Suche/9783161504747| ISBN   978-3-16-150474-7 ]].
  • Oswald Bayer : Martin Luthers Theologie. Eine Vergegenwartigung . Mohr Siebeck Verlag, 2004, [[:de:Spezial:ISBN-Suche/3161481224| ISBN   3-16-148122-4 ]].
  • Jorg Haustein : Martin Luthers Stellung zum Zauber- und Hexenwesen. Kohlhammer, Stuttgart 1990, [[:de:Spezial:ISBN-Suche/3170107690| ISBN   3-17-010769-0 ]].
  • Jorg Haustein: Zwischen Aberglaube und Wissenschaft: Zauberei und Hexen in der Sicht Martin Luthers. In: Rosemarie Knape (Hrsg.): Martin Luther und der Bergbau im Mansfelder Land. Stiftung Luthergedenkstatten in Sachsen-Anhalt, Lutherstadt Eisleben 2000, [[:de:Spezial:ISBN-Suche/3980632873| ISBN   3-9806328-7-3 ]], S. 327?337.
  • Sylvia Weigelt: ?Der Manner Lust und Freude sein.“ Frauen um Luther. Wartburg, Weimar 2011, [[:de:Spezial:ISBN-Suche/9783861602415| ISBN   978-3-86160-2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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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olkmar Joestel, Friedrich Schorlemmer (Hrsg.): Wir sind allzu lange deutsche Bestien gewesen: Volksbildung bei Luther und Melanchthon. Eine Textsammlung. Drei-Kastanien-Verlag, Wittenberg 2000, [[:de:Spezial:ISBN-Suche/3933028353| ISBN   3-933028-35-3 ]].
  • Martin Treu : Martin Luther und das Geld. Stiftung Luthergedenkstatten in Sachsen-Anhalt, Wittenberg 2000, [[:de:Spezial:ISBN-Suche/398063289X| ISBN   3-9806328-9-X ]].
  • Volker Stumke: Das Friedensverstandnis Martin Luthers: Grundlagen und Anwendungsbereiche seiner politischen Ethik. Kohlhammer, Stuttgart 2007, [[:de:Spezial:ISBN-Suche/9783170199705| ISBN   978-3-17-019970-5 ]].
  • Peter Zimmerling : Evangelische Mystik . Vandenhoeck & Ruprecht, Gottingen 2015, [[:de:Spezial:ISBN-Suche/9783525570418| ISBN   978-3-525-57041-8 ]]. Martin Luther (1483?1546): Demokratisierung der Mystik. S. 37?57.
  • Klaus-Peter Hertzsch, Claus Bernet: Martin Luther in seiner Zeit ? und das Himmlische Jerusalem. Norderstedt 2016, [[:de:Spezial:ISBN-Suche/9783739246925| ISBN   978-3-7392-4692-5 ]].
  • Udo Rossling, Paul Ambros: Reisen zu Luther. Nicolaische Verlagsbuchhandlung, Berlin 1983, [[:de:Spezial:ISBN-Suche/3875841131| ISBN   3-87584-113-1 ]].
  • Uwe Stamer: Luthers Land. Literarische Streifzuge zwischen Coburg und Wittenberg. Klett-Cotta, Stuttgart 2002, [[:de:Spezial:ISBN-Suche/3608932658| ISBN   3-608-93265-8 ]].
  • Reinhard Dithmar: Auf Luthers Spuren. Ein biographischer Reisefuhrer. Evangelische Verlagsanstalt, Leipzig 2006, [[:de:Spezial:ISBN-Suche/3374023606| ISBN   3-374-02360-6 ]].
  • Cornelia Domer: Mit Luther unterwegs. Ein biografischer Reisefuhrer. SCM Hanssler Verlag, 2008, [[:de:Spezial:ISBN-Suche/9783775148795| ISBN   978-3-7751-4879-5 ]].
  • Norbert Roth: Martin Luther neu begegnen. Auf Entdeckungsreise durch Mitteldeutschland. Bonifatius Verlag, Paderborn 2010, [[:de:Spezial:ISBN-Suche/9783865062703| ISBN   978-3-86506-270-3 ]].
  • Heinz Stade, Thomas A. Seidel: Unterwegs zu Luther. Eine Reise durch 50 Lutherorte mit Fotografien von Harald Wenzel-Orf. Wartburg-Verlag, Weimar und Eisenach 2010, [[:de:Spezial:ISBN-Suche/9783861601968| ISBN   978-3-86160-196-8 ]].
  • Arnt Cobbers: Auf den Spuren von Martin Luther. Die Lebensstationen des großen Reformators. Jaron Verlag, Berlin 2013, [[:de:Spezial:ISBN-Suche/9783897737105| ISBN   978-3-89773-710-5 ]].
  • Werner Schwanfelder: 95 Lutherorte, die Sie gesehen haben mussen. Spurensuche auf den Lutherwegen durch Sachsen, Sachsen-Anhalt und Thuringen. Neukirchener Aussaat, Neukirchen-Vluyn 2015, [[:de:Spezial:ISBN-Suche/9783761561935| ISBN   978-3-7615-6193-5 ]].
  • Jochen Birkenmeier: Luthers Land. Eine Zeitreise nach Sachsen-Anhalt und Thuringen. Gmeiner Verlag, Meßkirch 2016, [[:de:Spezial:ISBN-Suche/9783839249970| ISBN   978-3-8392-4997-0 ]].
  • Ernst Troeltsch : Luther und die moderne Welt. Wissenschaftlicher Verlag, Schutterwald/Baden 2000, [[:de:Spezial:ISBN-Suche/3928640631| ISBN   3-928640-63-1 ]] (1. Auflage 1908)
  • Albert Mock: Abschied von Luther: Psychologische und theologische Reflexionen zum Lutherjahr. Luthe, Koln 1985, [[:de:Spezial:ISBN-Suche/3922727204| ISBN   3-922727-20-4 ]].
  • Gottfried Maron: Die ganze Christenheit auf Erden: Martin Luther und seine okumenische Bedeutung. Vandenhoeck & Ruprecht, Gottingen 1997, [[:de:Spezial:ISBN-Suche/3525554222| ISBN   3-525-55422-2 ]].
  • Hans Medick, Peer Schmidt: Luther zwischen den Kulturen: Zeitgenossenschaft ? Weltwirkung. Vandenhoeck & Ruprecht, Gottingen 2004, [[:de:Spezial:ISBN-Suche/3525554494| ISBN   3-525-5544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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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ndesamt fur Denkmalpflege und Archaologie Sachsen-Anhalt ? Landesmuseum fur Vorgeschichte / Stiftung Luthergedenkstatten in Sachsen-Anhalt / Stiftung Deutsches Historisches Museum / Stiftung Schloss Friedenstein Gotha /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 The Morgan Library & Museum : Martin Luther. Aufbruch in eine neue Welt / Schatze der Reformation , Sandstein Verlag, Dresden 2016, [[:de:Spezial:ISBN-Suche/9783954982318| ISBN   978-3-95498-231-8 ]].
  • Norbert Mecklenburg: Der Prophet der Deutschen. Martin Luther im Spiegel der Literatur. J. B. Metzler, Stuttgart 2016, [[:de:Spezial:ISBN-Suche/9783476026842| ISBN   978-3-476-02684-2 ]].
  • Stefan Michel: Die Kanonisierung der Werke Martin Luthers im 16. Jahrhundert . Mohr Siebeck, Tubingen 2016, [[:de:Spezial:ISBN-Suche/9783161544538| ISBN   978-3-16-154453-8 ]].
  • Friedrich Ludwig Zacharias Werner: Martin Luther, oder Die Weihe der Kraft: Eine Tragodie. Sander, Berlin 1807. [35]
  • Ludwig Bechstein: Der Furstentag. Historisch-romantisches Zeitbild aus dem sechzehnten Jahrhundert. Sauerlander, Frankfurt am Main 1834 [36]
  • Levin Schucking: Luther in Rom. (1870) Tredition Classics, 2012, [[:de:Spezial:ISBN-Suche/9783842420571| ISBN   978-3-8424-2057-1 ]] [37]
  • Ferdinand Gustav Kuhne: Wittenberg und Rom: Klosternovellen aus Luther?s Zeit, Band 1?3. O. Janke, Berlin 1877 [38]
  • Jakob Knudsen: Angst Mod Martin Luther: Fortælling. (1912?1914) Hovedland, 1996, [[:de:Spezial:ISBN-Suche/8777392884| ISBN   87-7739-288-4 ]] [39]
  • Eugen Fischer-Baling: Das Reich des Lebens: Martini Luthers Taten und Abenteuer in seinen jungen Jahren. Aus alten Papieren neu erzahlt. Gebruder Paetel, Berlin 1918 [40]
  • Wilhelm Kotzde-Kottenrodt: Die Wittenbergisch Nachtigall: eine Dichtung. J.F. Steinkopf, 1924. [41]
  • Emil Uellenberg: Ich hab's gewagt! Ein Lutherroman. P. Ott, Gotha 1930 [42]
  • Jochen Klepper: Das ewige Haus: Die Flucht der Katharina von Bora. (1941) Deutsche Verlags-Anstalt, 1951 [43]
  • Hans Lorbeer: Die Rebellen von Wittenberg Band 2: Der Widerruf: ein Roman um Luthers Wandlung. Mitteldeutscher Verlag, 1956 [44]
  • Detlef Opitz: Klio, ein Wirbel um L. Roman. Steidl, Gottingen 1996, [[:de:Spezial:ISBN-Suche/3882433884| ISBN   3-88243-388-4 ]] [45]
  • Waldtraut Lewin : Feuer. Der Luther-Roman. Gutersloher Verlagshaus, Gutersloh 2014, [[:de:Spezial:ISBN-Suche/9783579065878| ISBN   978-3-579-06587-8 ]].
  • Matthias Eckoldt , Tatjana Rese : Freies Geleit fur Martin Luther. Kriminalroman. Hamburg 2017, [[:de:Spezial:ISBN-Suche/9783862824854| ISBN   978-3-86282-485-4 ]].
  • Michael Landgraf (Theologe) : Der Protestant. Roman. Wellhofer Verlag , Mannheim 2016, [[:de:Spezial:ISBN-Suche/9783954281930| ISBN   978-3-95428-193-0 ]].
  • Wolfgang Vater: Luther und der stumme Himmel. Roman. Wellhofer Verlag , Mannheim 2016, [[:de:Spezial:ISBN-Suche/9783954282180| ISBN   978-3-95428-218-0 ]].
  • Feridun Zaimoglu : Evangelio. Roman. Kiepenheuer & Witsch, Koln 2017, [[:de:Spezial:ISBN-Suche/9783462050103| ISBN   978-3-462-05010-3 ]].

各州 [ 編輯 ]

  1. Luther himself, however, believed that he had been born in 1484. Hendrix, Scott H. (2015). 《Martin Luther: Visionary Reformer》 . Yale University Press . 17쪽. ISBN   978-0-300-16669-9 . 2017年 11月 12日에 確認함 .  
  2. Plass, Ewald M. (1959). 〈Monasticism〉. 《What Luther Says: An Anthology》 2 .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964쪽.  
  3. Marty, Martin . Martin Luther . Viking Penguin, 2004, p. 1.
  4. 文法 , 修辭學 , 辨證法
  5. 算術 , 幾何學 , 天文學 , 音樂
  6. 조인형 (1999年 3月 15日). 《歷史와 오늘》. 신서원. ISBN   978-89-7940-910-9 .  
    김인봉, 編輯. (2009年 1月 5日). 《EBS 修能特講 言語領域》 初版. 韓國敎育放送公社. 2卷12쪽. ISBN   978-89-547-1115-9 .   에서 再引用.
  7. Romer 1:17 biblestudytools
  8. Nestle
  9. 改譯改正
  10. 발터 크래머; 괴츠 트랜클러 (2002年 9月 10日). 《常識의 誤謬 事前 I》. 박영구, 박정미 옮김 初 10刷판. 서울: 圖書出版 경당. 80~82쪽쪽. ISBN   89-86377-17-6 |isbn= 값 確認 必要: checksum ( 도움말 ) .  
  11. 김영한, 靈光 神學의 說敎와 十字架 神學의 說敎, 크리스투데이, 2012.04.18
  12. 論文《十字架神學의 빛으로 본 美國 保守 福音主義 批判》,撲滿(釜山장로회신학대學校 組織神學 敎授)
  13. 김영한, 靈光 神學의 說敎와 十字架 神學의 說敎, 크리스투데이, 2012.04.18
  14. <十字架 神學>(최영철 지음. 聖 바오로 p.18-19에 실린 마르틴 루터의 하이델베르크 論爭 / 1518年 中에서
  15. 하나님께서는 萬物을 그리스도 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萬物 위에 敎會 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에베소서 1:22/標準새飜譯)
  16. 토머스 칼라일《英雄崇拜論》(한길사, P220)
  17. 내 父母는 나를 버렸으나 야훼는 나를 迎接하시리이다.
     
    詩篇 , 27:10
  18. 토머스 칼라일《英雄崇拜論》(한길사,P221~228)
  19. 한귀용 專門委員 (2006年 10月 13日). “마틴 루터는 獨逸의 世宗大王”. 《한겨레 21》 (第630號).  
  20. 《人間의 옷을 입은 聖書》/김호경 지음/책세상 p.30-31
  21. '내 주는 剛한 性이요'는 한글 改新敎 讚頌歌 384張에 收錄되어 있는데, 歌詞는 다음과 같다.
    1. 내 주는 剛한 性이요 防牌와 倂記 되시니, 큰 患難에서 우리를 救하여 내시리로다.
      옛 怨讐 魔鬼는 이때도 힘을 써 謀略과 權勢로 武器를 삼으니 天下에 누가 當하랴.
    2. 내 힘만 依支할 때는 敗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長壽 나와서 날 代身하여 싸우네.
      이 將帥 누군가. 主 예수 그리스도 萬軍의 主로다. 當할 者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3. 이 땅에 魔鬼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 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眞理로 이기리로다.
      親戚과 財物과 名譽와 生命을 다 빼앗긴대도 眞理는 살아서 그 나라 永遠하리라. 아멘.
  22. 박흥식. 《未完의 改革者 마르틴 루터:3部 危機와 突破 그리고 루터의 遺産,03:敎會의 再組織과 聯邦敎會 p.191-193》 . 21世紀북스.  
  23. 《基督敎의 敎派》16世紀 宗敎改革과 敎團의 形成:루터敎會/남병두 지음/살림 p.49
  24.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神經 칼케돈 神經 參照
  25. 모든 律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 5:14
  26. 이양호, [루터의 生涯와 思想], 大韓基督敎敍懷, 2002, pp.33-34에서 再引用
  27. 《基督敎思想》 2008年 7月號, 디아코니아,홍주민 p.150-158
  28. 김요한 《基督敎的 反유대主義 硏究와 反省》(총신대 神學大學院)
  29. 크리스천투데이 (2021年 1月 22日). “宗敎改革의 그림자 “미친 개처럼 잡아 죽여라”” . 2021年 1月 22日에 確認함 .  
  30. 《常識밖의 世界史》/안효상 지음/새길
  31. 《예수 歷史인가,신화인가》/ 정승우 지음/책세상
  32. 프롬, 에리히. 《自由로부터의 逃避》. 洪신문화사. 59쪽.  
  33. “基督敎 韓國 루터會議 누리집” . 2012年 1月 31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0年 12月 18日에 確認함 .  
  34. 《十字架神學의 빛에서 본 美國의 保守的 福音主義 批判》(釜山장로회신학대學校 撲滿 敎授 論文,2005年)
  35. Gunter Hartung: Luther-Bilder in deutscher Literatur. In: Gunter Hartung: Literatur und Welt. Leipziger Universitats-Verlag, Leipzig 2001, [[Spezial:ISBN-Suche/3935693494| ISBN   3-935693-49-4 ]], S.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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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Fred und Gabriele Oberhauser: Literarischer Fuhrer durch Deutschland: ein Insel-Reiselexikon fur die Bundesrepublik Deutschland und Berlin. Insel, 1983, [[Spezial:ISBN-Suche/3458140832| ISBN   3-458-14083-2 ]], S. 763.
  43. Wolfgang Grunberg: ?Ich will Zeugnis ablegen bis zum Letzten.“. In: Klaus M. Kodalle, Anne M. Steinmeier (Hrsg.): Subjektiver Geist: Reflexion und Erfahrung im Glauben. Festschrift zum 65. Geburtstag von Traugott Koch. Konigshausen & Neumann, 2002, [[Spezial:ISBN-Suche/3826023072| ISBN   3-8260-2307-2 ]], S. 250.
  44. Gunter Hartung: Luther-Bilder in deutscher Literatur. A. a. O., Leipzig 2001, S. 32.
  45. Alban Nikolai Herbst: Klio, ein Wirbel um L., Roman von Dieter Opitz. Archived 2016年 3月 4日 - 웨이백 머신 (Rezension 1996)

外部 링크 [ 編輯 ]

獨逸權 外部 링크

Biographien

Quellen

Luther und die Juden

Luther und das Alte Testament Luther und die Hexenverfolgung

Luther und seine Testamente (1537 und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