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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年 11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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雁堂
(安?,
1461年
~
1521年
)은
朝鮮
前期의 文臣으로 字는 언보(彦寶), 號는 영모당(永慕堂), 諡號는 정민(貞愍), 本貫은
순흥
이다.
安珦
의 後孫이며,
조광조
를 비롯한 士林을 登用했으며, 政治的 後見人이기도 했다.
안지귀
의 堂조카이다.
문성공
安珦
의 8代孫으로,
안돈후
의 아들이다.
1480年
成均試에 合格하고
1481年
親試文科에 丙科로 及第하여 士官이 되고
1499年
四星이 되어 《
成宗實錄
》 編纂에 參與했다. 以後 大司諫을 지냈다.
1506年
中宗反正
後
政局
原從功臣
2等에 錄勳되었다.
1507年
理科
의 獄事를 다스려
定難功臣
3等에 책록되고
戶曹判書
,
兵曹判書
,
工曹判書
,
吏曹判書
를 거쳐
1518年
右議政
이 되고
1519年
左議政
에 올랐다.
그러나
己卯士禍
로 投獄된
조광조
와 그의 新進 勢力들을 求하려다가 파직당했고
1521年
辛巳誣獄
에 連累되어 아들과 함께 死藥을 받고 死刑당했다. 後에
宣祖
卽位 後에 赦免 復權되고, 정민의 諡號가 내려졌다.
송익필, 송한필과의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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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익필
,
송한필
은 그의 진외종손이 된다. 아버지 안돈후는 婢妾에게서 庶女 感情을 낳고, 鑑定은
黃海道
의 甲紗
松鱗
에게 出嫁했다. 松鱗의 아들이자 송익필, 송한필의 아버지가
송사련
으로 송사련은 外叔父인 안당과 그의 아들들이 趙光祖와 함께 逆謀를 꾀했다고 告變했고, 그 功勞로 堂上官으로 昇進하여
僉知中樞府事
가 되었다. 後에 살아남은 안당의 曾孫婦가
宣祖
때에 송익필, 송한필 一家의 處罰 및 환천을 主張하여 論難이 되었다.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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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 : 眼鏡(安璟)
- 아버지 : 안돈후(安敦厚)
- 長男 : 안처겸(安處謙)
- 次男 : 안처함(安處?)
- 三南 : 안처근(安處謹)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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