雁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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雁堂 (安?, 1461年 ~ 1521年 )은 朝鮮 前期의 文臣으로 字는 언보(彦寶), 號는 영모당(永慕堂), 諡號는 정민(貞愍), 本貫은 순흥 이다. 安珦 의 後孫이며, 조광조 를 비롯한 士林을 登用했으며, 政治的 後見人이기도 했다. 안지귀 의 堂조카이다.

문성공 安珦 의 8代孫으로, 안돈후 의 아들이다. 1480年 成均試에 合格하고 1481年 親試文科에 丙科로 及第하여 士官이 되고 1499年 四星이 되어 《 成宗實錄 》 編纂에 參與했다. 以後 大司諫을 지냈다.

1506年 中宗反正 政局 原從功臣 2等에 錄勳되었다. 1507年 理科 의 獄事를 다스려 定難功臣 3等에 책록되고 戶曹判書 , 兵曹判書 , 工曹判書 , 吏曹判書 를 거쳐 1518年 右議政 이 되고 1519年 左議政 에 올랐다.

그러나 己卯士禍 로 投獄된 조광조 와 그의 新進 勢力들을 求하려다가 파직당했고 1521年 辛巳誣獄 에 連累되어 아들과 함께 死藥을 받고 死刑당했다. 後에 宣祖 卽位 後에 赦免 復權되고, 정민의 諡號가 내려졌다.

송익필, 송한필과의 關係 [ 編輯 ]

송익필 , 송한필 은 그의 진외종손이 된다. 아버지 안돈후는 婢妾에게서 庶女 感情을 낳고, 鑑定은 黃海道 의 甲紗 松鱗 에게 出嫁했다. 松鱗의 아들이자 송익필, 송한필의 아버지가 송사련 으로 송사련은 外叔父인 안당과 그의 아들들이 趙光祖와 함께 逆謀를 꾀했다고 告變했고, 그 功勞로 堂上官으로 昇進하여 僉知中樞府事 가 되었다. 後에 살아남은 안당의 曾孫婦가 宣祖 때에 송익필, 송한필 一家의 處罰 및 환천을 主張하여 論難이 되었다.

家族 關係 [ 編輯 ]

  • 할아버지 : 眼鏡(安璟)
  • 아버지 : 안돈후(安敦厚)
  • 長男 : 안처겸(安處謙)
  • 次男 : 안처함(安處?)
  • 三南 : 안처근(安處謹)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