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문
(曺錫文,
1413年
~
1477年
)은
朝鮮
前期의 文身이다. 本貫은
昌寧
(昌寧), 初名은 石門(碩門), 字는 순보(順甫)이다.
1413年에 觀察使 條項의 아들로 태어났다. 世宗 때 文科에 及第 以後에 世子 좌정자,
集賢殿
副修撰,
司諫院
정언 等을 歷任하고 吏曹, 刑曹, 禮曹, 戶曹, 兵曹의 情郞, 佐郞 等을 거쳐 안산군知事, 上護軍, 地形調査(知刑曹事)를 지냈다.
1455年 同副承旨로
世祖
의 卽位를 도와 都承旨가 되고 이어 吏曹, 刑曹, 共助, 兵曹의 參判을 거쳐 右贊成, 左贊成, 戶曹判書, 禮曹判書, 兵曹判書, 工曹判書를 지냈다.
1467年
,
李施愛의 亂
이 일어나자 病魔部총사로 亂을 鎭壓하여 敵愾功臣1等이 되었고 이어
左議政
이 되었다. 얼마 뒤에
領議政
에 올랐다.
1476年
여름
에 다시 左議政에 任命되었으나 가을에 病으로 辭職하고 昌寧
府院君
에 封해졌다.
1476年에서 이듬해 1477年까지 1年間 조선국 上級 國喪 地位를 지낸 그는 1477年, 봄에 領中樞府事로 轉職하였다가, 그해 8月에 65歲의 나이로 死亡하였다. 諡號는 忠奸(忠簡)이다.
評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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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成宗實錄
》에 記錄된 使臣(史臣)의 坪에 따르면 조석문은 天性이 요사스럽고 阿諂을 잘 하여 말솜씨로 꾀를 부렸다고 한다.
家族 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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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曾祖父 : 조우희(曺遇禧)
- 할아버지 : 造景樹(曺敬修)
- 아버지 : 條項(曺沆)
- 어머니 : 民設의 딸
- 本部인 : 안숭선의 딸
- 季父인 : 채하정의 딸
- 兄: 조효문
- 동생: 조계문
參考 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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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成宗實錄
》 成宗 8年 8月 5日, 領中樞府事 조석문의 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