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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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빈 (趙道彬, 1665年 ~ 1729年 )은 朝鮮의 文身이다. 者는 樂補(樂甫), 號는 數와(睡窩)·휴와(休窩), 本貫은 洋酒 이다. 右議政 을 지냈다. 黨籍은 老論으로 左議政 조태채 , 少論이던 領議政 조태구 , 左議政 조태억 過度 姻戚이었다. 장렬왕후 조氏와도 姻戚 關係에 있다.

生涯 [ 編輯 ]

1691年(肅宗 17) 進士試에 合格하고, 1702年 謁聖文科에 乙科로 及第했다. 地平, 정언, 副修撰, 修撰, 副校理로 玉堂의 一員이 되고 敎理, 副校理, 獻納, 修撰, 吏曹正郞, 兼司書 等을 거쳐 修撰, 獻納, 敎理, 副校理, 兼司書, 李朝正郞을 지내고 修撰, 兼司書, 獻納, 副應敎를 거쳐 사간, 應敎, 兼補德, 副應敎 等을 지내고 兼弼善, 應敎, 사간, 副校理, 집의 等을 지낸 뒤 以後 堂上官이 되어 右副承旨 가 되고 忠淸道觀察使가 되면서 民情을 다스리고 以後 承旨 , 大司諫 , 大司成 , 吏曹參議 等을 거쳐 連이어 吏曹參議 , 大司諫 , 大司成 , 都承旨 를 지내고 大司憲 , 禮曹參判 , 都承旨 , 大司成 을 거쳐 大司憲 , 兵曹判書 를 하다가 同志情事로 中國에 다녀오고 다시 兵曹判書 , 漢城府判尹 을 거쳐 大司憲 , 刑曹判書 , 右參贊 을 거쳐 平安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갔다가 景宗 때 刑曹判書 로 復歸했다. 以後 平安道觀察使를 지내지만, 辛壬士禍로 罷職되지만 以後 英祖 때 再登用되어서 工曹判書 가 되고 左參贊 , 兵曹判書 를 거쳐 右議政 이 되고 判中樞府事를 지낸 뒤 領中樞府事에 이르렀다. 以後 영돈녕府使에 이르렀다. 諡號는 呈戱(靖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