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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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하 (李端夏, 1625年 1689年 )는 朝鮮 의 文身이다. 字는 契主(季周), 號는 외재(畏齋)·松間(松磵), 本貫은 덕수 (德水)이며, 택당 移植 의 아들이다.

顯宗 때 文科에 及第하여 正言, 地平, 副校理를 지내고 外職으로 나가 容顔縣監을 지내고 獻納, 地平을 거쳐 副修撰, 北評事, 副校理를 거쳐 敎理, 副修撰, 兼司書를 지내고 吏曹正郞, 副校理, 敎理에 이어 副校理, 檢報德, 兼文學을 지내고 弘文館敎理, 이조정랑에 이어 다시 獻納, 李朝正郞을 지내고 敎理, 獻納에 이어 副校理, 吏曹正郞, 副修撰, 鋼管 等을 지냈다. 1669年 軍隊 組織인 訓鍊別隊 創設을 王에게 請하여 이를 實施하게 하였고, 소나무 잎으로 機敏을 救濟할 것을 請하여, 서울 밖에 있는 貧民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 後 應敎, 사간, 집의, 檢詳에 이어 집의, 死因, 兼補德을 지내고 同副承旨 , 右副承旨 , 左副承旨 , 吏曹參議 , 兵曹參知 , 大司成 을 지내고 다시 吏曹參議 , 大司成 , 副提學 等을 지냈으며 肅宗 이 王位에 오른 後에는 吏曹參議 , 大司憲 , 知春秋館事 , 大提學 , 吏曹參判 , 同知中樞府事 를 지내며 西人의 先鋒將으로 活動하다 流配를 當하였고, 庚申換局 以後에도 西人으로서 活躍이 컸다. 庚申換局 以後 다시 登用되어 京畿道觀察使가 되고 共助參判 , 同知經筵事 를 거쳐 刑曹判書 , 大司憲 , 禮曹判書 , 弘文館 提學 을 지내고 지돈녕부社, 同知經筵事에 이어 吏曹判書 , 左參贊 , 大司憲 을 지내고 知經筵事와 賑恤製造를 지냈다. 以後 大司憲 左參贊 을 거쳐 1684年 禮曹判書가 되어 <社倉節目>을 지어 肅宗에게 바쳤으며, <顯宗實錄>을 고쳐 編纂하는 데 參與하였다. 以後 右參贊 , 左參贊 을 거쳐 禮曹判書 가 되고 知中樞府事가 되었으며, 以後 右議政 을 거쳐 左議政 에 이르렀다. 그는 글을 잘 지어 이름을 떨쳤으며 글씨 또한 잘 썼다. 著書로 <외재집>이 있다. 諡號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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