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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兄弟國’ 터키의 민낯 ‘아르메니아 集團虐殺’|新東亞

‘兄弟國’ 터키의 민낯 ‘아르메니아 集團虐殺’

[황승경의 Into the Arte] 映畫 ‘더 프로미스(The Promise)’

  • 황승경 公演칼럼니스트·公演藝術學 博士

    lunapiena7@naver.com

    入力 2022-07-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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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嫌惡는 狂氣를 觸媒 삼아 暴力으로 發火한다. 煉獄의 불꽃처럼 猛威를 떨치는 살기(殺氣)에 人間의 尊嚴은 家畜의 그것보다도 하찮게 바스라진다. 100餘 年 前 스러져간 이들의 絶叫와 現世(現世)의 울부짖음이 다를 게 있을까. 記憶에서 잊히고 萬 慘劇의 아리아는 歷史의 도돌이標를 타고 永劫(永劫) 동안 反復되게 마련이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이다. 최소 100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살해당했다. [누리픽쳐스]

    ‘아르메니아 集團虐殺’은 20世紀 最初의 集團虐殺이다. 最少 100萬 名에서 最大 150萬 名의 아르메니아인이 오스만帝國에 依해 殺害당했다. [누리픽쳐스]

    5月 21日 조 바이든 美國 大統領은 尹錫悅 大統領과의 共同 記者會見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侵略을 糾彈했다. 特히 러시아軍이 부차虐殺(올해 4月 러시아軍이 우크라이나 부차 地域에서 民間人 650餘 名을 射殺한 事件)을 恣行한 直後 바이든 大統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大統領이 “제노사이드(genocide·人種淸掃)를 推進하고 있다”며 强力하게 批判했다. 제노사이드는 人種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genos’와 殺人을 나타내는 ‘cide’가 結合된 것으로서 特定 國家나 種族, 人種 等을 破壞할 目的으로 行해지는 集團 殺傷을 意味한다.

    反知性의 結晶體, 제노사이드

    以前부터 바이든 大統領은 人權 問題에 積極的 行步를 보였다. 지난해 4月 24日 아르메니아 集團虐殺(1915~1916年 오스만帝國 計劃·實行下에 恣行된 아르메니아人 集團虐殺 事件)을 ‘제노사이드’로 指稱했다. 最近 40餘 年 동안 美國 政府는 터키의 反撥을 憂慮해 이 問題를 쉬쉬해 왔다.

    虐殺로 인해 프랑스, 獨逸, 캐나다, 美國, 이탈리아, 러시아 等 107個國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르메니아 後孫은 1000萬 名에 達한다. 이들은 宣祖의 苦痛과 哀歡을 藝術 作品으로 승화시켜 民族의 傷處를 治癒하려 했다. 世代를 거치며 100年 넘게 멈추지 않고 記錄했다.

    映畫界를 例로 들면 20篇이 넘는 映畫가 製作됐다. 虐殺을 두 눈으로 目擊한 被害者 오로라 마르디가니안(1901~1994)이 直接 시나리오를 쓰고 出演까지 한 ‘강간당한 아르메니아’(1919)와 1991年 아르메니아 出身의 巨匠 앙리 베르누이(1920~2002)가 메가폰을 잡은 自傳的 映畫 ‘메이리그’ 等을 例로 들 수 있다.

    영화 ‘더 프로미스’ 포스터. [누리픽쳐스]

    映畫 ‘더 프로미스’ 포스터. [누리픽쳐스]

    아르메니아 出身 美國 카지노 財閥이자 企業投資家人 億萬長者 커크 커코리언(1917~2015)李 아르메니아 集團虐殺 100周年 追慕를 위해 作心하고 製作費를 專擔한 ‘더 프로미스’(2016)가 斷然 白眉다. 아무리 抹殺하려 해도 억새풀처럼 질기게 버티며 世界에 뿌리내린 아르메니아인들의 生命力을 잘 그려냈다. 弱小民族이 當한 苦痛을 읊조리는 게 다인 映畫가 아니다. 殘惡한 歷史와 人間 尊嚴을 害치는 半(反)知性을 告發한다.



     영화 ‘더 프로미스’는 가상의 도시 ‘시룬’을 설정해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사건을 생생히 재현했다. [누리픽쳐스]

    映畫 ‘더 프로미스’는 假想의 都市 ‘時룬’을 設定해 ‘아르메니아 集團虐殺’ 事件을 생생히 再現했다. [누리픽쳐스]

    ‘더 프로미스’의 監督 테리 조지(69)는 映畫 속 主人公처럼 波瀾萬丈한 人生을 살았다. 北아일랜드 出身으로서 10代 後半부터 祖國의 解放을 꿈꿨다. 아일랜드民族解放軍(INLA)에서 活動하다 1975年에 逮捕돼 6年刑을 받았고, 3年 만에 假釋放돼 1981年 美國으로 移住했다. 4年 뒤엔 收監 生活 中 脫獄 經驗을 바탕으로 演劇 ‘더 터널’의 脚本을 쓰며 作家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93年엔 대니얼 데이 루이스 主演의 映畫 ‘아버지의 이름으로’에 劇本 兼 助監督으로 參與해 映畫界에 데뷔했다.

    苦難의 歲月을 默默히 견뎌낸 아르메니아인을 보며 祖國 아일랜드를 떠올린 걸까. 조지 監督 特有의 묵직한 디아스포라(母國을 떠나 他國에서 흩어져 살아가는 共同體 集團) 感性이 映畫 ‘더 프로미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더 프로미스’는 아르메니아 集團虐殺을 이슈化하는 데 赫赫한 功을 세웠다.

    誤判과 外面이 불러온 殺傷

    영화 ‘더 프로미스’가 재현한 오스만제국의 도시 풍경. [누리픽쳐스]

    映畫 ‘더 프로미스’가 再現한 오스만제국의 都市 風景. [누리픽쳐스]

    映畫는 1914年 터키 南部 ‘時룬’이라는 平和로운 假想 都市에서 始作한다. 조지 監督은 터키의 異議 提起를 對備해 아예 地圖上에 없는 假想의 牧歌마을을 設定했다(시룬은 아르메니아語로 ‘아름다움’을 뜻한다).

    主人公 미카엘 報告시앙(오스카 아이작)은 아르메니아인이다. 藥材商으로 일하며 200年 동안 내려오는 家門의 祕法으로 藥을 조제했지만 限界를 느낀다. 體系的으로 醫學을 배우길 渴望해 콘스탄티노플 황립醫科大 入學을 決心한다. 태어나 처음 콘스탄티노플에 이른 미카엘은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大都市의 異國的 風貌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富裕한 叔父의 집에 머물며 都市 生活에 빠르게 適應한다. 조카들의 家庭敎師인 아나 케사리言(샬롯 르 본)과 交友하고 醫科大學에서 오스만 高官大爵의 子弟인 엠레 오간(마르반 켄자리)과도 親舊가 된다. 프랑스 소르본大 出身의 아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오페라 ‘라보엠’의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을 들으며 新聞에 揭載할 揷畵를 그리고 발레를 춘다. 미카엘은 아나의 모습에 魅了된다.

    1844年 오스만제국이 施行한 마지막 人口調査에서 아르메니아인은 240萬 名으로 集計됐다. 같은 아르메니아인이라고 해도 居住地域과 階層에 따라 經濟的 地位가 千差萬別이었다. 미카엘의 叔父처럼 最上類層이 된 사람도 있었고, 아나처럼 外國에서 藝術을 工夫한 엘리트도 있었다.

    아나는 自身의 뿌리를 찾으려 파리에서 되돌아와 故鄕에서 定着하고자 한다. 男子親舊이자 AP通信 記者인 美國人 크리스(크리스티안 베일)와 함께 살지만 性格 差異로 다툼이 잦다. 크리스는 不義를 보면 못 참는 熱血 記者지만 알코올依存症과 多血質이 恒常 問題다. 미카엘의 叔父는 미카엘에게 “持參金에 그 折半을 더 얹어서 주겠다”며 故鄕에서 맺은 約婚을 罷하고 아나와 만나길 勸誘한다. 미카엘은 約婚女와의 約束을 저버릴 수 없다고 單番에 拒絶한다.

    20世紀 初盤 러시아가 南下할 機會를 虎視眈眈 엿보며 黑海 地域에 軍事 增大를 計劃瑕疵 오스만제국은 재빨리 英國에 新型 軍艦을 發注한다. 그러나 1914年 7月 갑작스레 第1次 世界大戰이 勃發하자 英國은 一方的으로 約束을 어긴다. 오스만제국仁義 反映 感情은 極에 達한다. 中立을 固守하던 오스만제국은 獨逸과 손을 잡고 戰爭에 參與하려 한다.

    이즈음 오스만 軍隊의 移動 路線에 受賞함을 느낀 크리스는 아나에게 호텔을 絶對 벗어나지 말 것을 申申當付하고 地方으로 取材를 떠난다. 取材 中 끔찍한 虐殺 現場과 强制移住 行列을 마주하곤 驚愕을 禁치 못한다.

    오스만제국은 典型的 多宗敎·多民族 國家다. 歷史的으로 오스만帝國 내 非(非)무슬림은 갖은 差別과 蔑視를 當하며 높은 稅金에 시달렸다. 19世紀 後半 발칸반도의 여러 基督敎 國家들이 오스만제국으로부터 獨立할 때 아르메니아는 相對的으로 國際社會의 關心을 받지 못했다. 다른 民族과 달리 아르메니아인은 무슬림과 섞여 全國에 퍼져 居住했기에 地域的으로 아르메니아의 獨立을 規定하기 模糊했다.

    또 아르메니아는 세르비아나 불가리아가 擇한 蜂起, 或은 民衆鬪爭의 形式이 아니라 平和的 外交로만 自治行政을 이루려고 했다. 오스만제국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理 없었을뿐더러 國際 情勢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힘의 論理’가 支配하는 國際社會를 至極히 純粹한 以上으로만 바라본 아르메니아 指導者들의 判斷 誤謬였다. 西歐 列强 處地로선 利害關係가 걸려 있지 않은 아르메니아 問題로 오스만제국의 心氣를 건드릴 何等의 理由가 없었다.

    1878年 러시아와의 戰爭에서 敗한 오스만제국은 베를린 調整會議에서 아르메니아인의 安全 保障을 約束했다. 平和는 잠깐이었다. 國際社會가 아르메니아에 더는 關心을 가지지 않자 오스만제국은 1895年부터 거리낌 없이 아르메니아인을 殺傷했다.

    홀로코스트로 되풀이된 悲劇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당시 아르메니아인은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 앞에 철저히 무시당했다. [누리픽쳐스]

    ‘아르메니아 集團虐殺’ 當時 아르메니아인은 國際社會의 힘의 論理 앞에 徹底히 無視當했다. [누리픽쳐스]

    第1次 世界大戰으로 오스만帝國 내 모든 아르메니아 靑年은 軍隊에 徵集됐다. 當然히 미카엘度 徵集 對象이었지만 엠레의 도움으로 兵役을 避한다. ‘붉은 日曜日’로 命名된 1915年 4月 24日 오스만제국은 戰時 狀況 非常戒嚴令을 利用해 아르메니아 民族社會를 代表하는 知識人, 聖職者, 經濟人을 모아 모두 處刑해 버린다.

    이는 集團虐殺의 序幕에 不過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메니아인 男子는 强制 徵集돼 바로 銃殺되거나 徵用을 當해 工事 現場에서 勞動하다 集團 射殺됐다. 남은 女性과 老人, 어린이는 瘠薄한 시리아 沙漠으로 追放돼 굶주림과 疾病으로 죽어나갔다.

    벼랑 끝 흙 한 줌 위에도 꽃은 피는 法. 미카엘과 아나는 禮拜를 마치고 돌아가다 거리에서 오스만 群衆示威代와 마주쳐 危機에 處한다. 가까스로 狂氣 어린 무리를 避한 두 아르메니아 男女는 깊은 紐帶感을 느끼고 사랑을 確認한다. 다음 날 叔父의 逮捕 消息을 들은 미카엘은 엠레에게 付託해 남은 돈을 모두 갖고 國家安保局을 찾는다. 賂物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逮捕돼 트로스 山脈의 鐵道工事 勞動敎化所에 收容되고 만다.

    미카엘은 劣惡한 工事 現場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番 넘긴다. 爆發事故의 어수선한 틈을 타 겨우 도망쳐 故鄕을 向해 旅程에 나선다. 달리는 汽車 지붕에 매달려 숨을 돌리려는 刹那, 어디선가 搖亂한 悲鳴이 들린다.

    미카엘은 汽車 짐칸 內部에 빼곡하게 실린 아르메니아 同胞들이 내리는 빗물에 조금이라도 몸을 적셔 보려고 鐵條網 窓門으로 팔을 내미는 모습을 目擊한다. 이 場面은 마치 映畫 ‘쉰들러 리스트’(1993)의 한 場面과 매우 類似하다. 홀로코스트(유대人 絶滅을 위해 아돌프 히틀러의 主導 아래 그 協力者들이 同參해 벌인 組織的 集團虐殺)의 元兇 히틀러는 著書 ‘나의 鬪爭’에서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 大虐殺을 擧論하며 “時間이 흐르면 모든 것은 잊히니 富强한 國家權力을 만드는 것이 重要하다”고 强調했다. 萬若 國際社會가 좀 더 깨어 있는 時代精神을 涵養하고 아르메니아 集團虐殺의 眞相 糾明과 責任者 處罰에 臨했더라면 홀로코스트가 되풀이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監督의 意圖가 읽히는 대목이다.

    千辛萬苦 끝에 故鄕집에 돌아온 미카엘은 어른들에 떠밀려 約婚者 마랄(안젤라 사라詖言)과 結婚式을 올리고 山속 깊은 곳의 오두幕으로 居處를 옮긴다. 아나를 잊지 못해 마음이 무겁지만 이내 마카엘은 마랄과 安定을 찾고 山속 生活에 適應한다.

    힘의 論理가 곧 正義인 現實

    영화 ‘더 프로미스’에서 집단의 광기 앞에 주인공들의 안식은 힘없이 바스러지고 만다. [누리픽쳐스]

    映畫 ‘더 프로미스’에서 集團의 狂氣 앞에 主人公들의 安息은 힘없이 바스러지고 만다. [누리픽쳐스]

    한便 콘스탄티노플에 남은 미카엘의 叔母와 조카들이 아나와 크리스의 도움을 받아 미카엘의 故鄕에 찾아온다. 마침 妊娠한 마랄이 危重瑕疵 미카엘은 마랄을 데리고 마을로 내려온다. 아나와 크리스가 近處에 있다는 消息을 들은 미카엘은 이番이 脫出할 수 있는 마지막 機會임을 直感한다. 寤寐不忘 미카엘을 기다리던 아나는 미카엘의 結婚 消息에 큰 衝擊을 받지만 미카엘의 家族이 孤兒들과 無事히 救出線을 탈 수 있게 해주겠노라고 約束한다.

    그러나 그새 軍人들이 故鄕에 들이닥쳐 殺戮을 恣行한다. 殺害當한 아내와 家族의 屍身을 본 미카엘은 피를 吐하며 絶叫한다. 充分히 슬퍼할 틈도 없이 미카엘 一行은 다시 軍人들과 맞닥뜨리고 이 過程에서 크리스가 붙잡힌다. 크리스는 엠레가 美國大使館에 그의 逮捕 消息을 알려 九死一生으로 살아난다. 크리스는 몰타로 追放돼 목숨을 건지지만 엠레는 反逆罪로 총살당한다.

    映畫는 아르메니아인의 悽慘한 絶望과 苦痛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勇氣와 鬪志도 함께 照明한다. 아르메니아 避難民은 오스만제국君의 甘言利說에 속지 않는다. 羊떼처럼 그들을 따라가다 떼죽음당하지 않고 無事다흐山 등성이에 隱身處를 만든다. 風前燈火의 危機 속에서도 最後까지 싸우리라 結社抗戰 意志를 闡明한다. 미카엘은 復讐心에 齒를 떨지만 아나는 “살아남는 것이 곧 復讐”라며 그를 慰勞한다.

    飽和 속에서 아르메니아인을 求하려는 프랑스 戰艦이 가까스로 到着한다. 戰爭孤兒를 비롯한 아르메니아 難民 4000餘 名이 救助된다. 미카엘은 조카 예바와 함께 살아남지만 아나는 끝내 傳함에 오르지 못한다. 映畫는 “한 民族을 散散조각 냈지만 그들은 두 名만 만나면 새로운 아르메니아를 建設해 다시 웃고 노래하고 祈禱할 것”이라는 文句로 마무리를 裝飾한다. 아르메니아系 美國 作家 윌리엄 사로얀(1908~1981)의 短篇小說 ‘아르메니아인과 아르메니아人’의 한 句節이다.

    터키는 아직도 아르메니아 集團虐殺을 集團移住 過程에서 나온 異民族 間의 單純 所要(騷擾)라고 主張한다. 6·25戰爭 때 어깨를 맞대고 싸운 戰友이자 ‘兄弟國’으로 여겨지는 터키의 섬뜩한 過去가 語塞하기만 하다. 아직 많은 國家가 政治·經濟的 理由로 아르메니아 集團虐殺을 認定하고 있지 않다. 近來 우크라이나 戰爭으로 集團虐殺 論爭의 한가운데 線 러시아가 정작 아르메니아 集團虐殺을 全 世界에서 3番째로 認定했다는 事實이 아이러니하다.

    황승경
    ● 1976年 서울 出生
    ● 이탈리아 레被逮國立音樂院 디플럼, 韓國藝術綜合學校 專門士,  成均館大 公演藝術學 博士
    ● 國際오페라團 團長
    ● 前 이탈리아 盧베 放送局 리포터, 月刊 ‘英카페’ 編輯長
    ● 著書 : ‘3S 보컬트레이닝’ ‘無限한 想像과 놀이의 變奏’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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