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低出生 惹起한 스파르타의 悲劇 ‘300’ [황승경의 Into the Arte]|新東亞

低出生 惹起한 스파르타의 悲劇 ‘300’ [황승경의 Into the Arte]

個人 幸福 없이 國家 存續 없다

  • 황승경 公演칼럼니스트·公演藝術學 博士

    lunapiena7@naver.com

    入力 2023-07-1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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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古代 都市國家 스파르타는 周邊 國家를 恐怖에 떨게 만들 程度로 體系的이고 强力한 國家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時間이 흐를수록 ‘低出生’이라는 痼疾的 副作用이 同伴될 수밖에 없는 致命的 社會構造가 問題로 드러났다. 스파르타의 過度한 敎育費와 社會兩極化는 市民階級의 安定을 威脅했다. 머리로 習得한 冷徹한 知識은 몸과 가슴으로 體得한 文化를 이길 수 없다. 政策으로 歡心을 사서는 低出生 問題를 解決할 수 없다. 父母가 아이를 낳는 것이 能事가 아니다. 아이를 幸福하게 키우는 文化를 만들어야 한다. 아이가 잘 成長해 기꺼이 父母가 되기를 꿈꾸는 文化 말이다. 오늘날 ‘低出生’이란 用語에 埋沒되지 않고, 可視的 成果에 執着하지 않는, 賢明한 政策이 必要한 理由다.
    레오니다스의 부인 고르고는 죽은 선왕인 형의 딸로 조카가 된다. 조카인 부인과 어린 아들을 두고 전장에 나가는 길에도 감상적인 이별 인사는 없다. 나약함은 스파르타 전사에게 사치이므로. [워너브라더스]

    레오니다스의 夫人 고르고는 죽은 先王인 兄의 딸로 조카가 된다. 조카인 夫人과 어린 아들을 두고 戰場에 나가는 길에도 感傷的인 離別 人士는 없다. 懦弱함은 스파르타 戰士에게 奢侈이므로. [워너브라더스]

    統計廳 調査에 依하면 最近 5年間 우리나라 合計出産率은 0.98名(2018), 0.92名(2019), 0.84名(2020), 0.81名(2021), 0.78名(2022)을 記錄했다. 지난 15年間 政府가 280兆 원假量의 豫算을 低出生 對策에 投入했음에도 合計出産率은 繼續 떨어지고 있다. 部處마다 國家的 課題인 低出生 危機를 克服하고자 特段의 措置를 내놓기 바쁘다. 要因은 大體的으로 住居費, 就業, 일·育兒 竝行, 敎育費 負擔 等으로 모아진다. 한마디로 大韓民國은 아이를 幸福한 成人으로 키우기 힘든 環境이라 出生率이 낮다는 거다. 國家가 아무리 번지르르한 育兒 政策을 提示해도 社會 全般에서 패러다임의 轉換이 나오지 않는 限 低出生 問題는 解決되기 힘들다. 知識은 文化를 이기기 못한다. 映畫 ‘300’(잭 스나이더·2007)을 통해 스파르타의 勇猛함 뒤에 감춰진 低出生 그림자와 單숨에 滅亡의 那落으로 빠져든 스파르타의 歷史를 되짚어보자.

    敎育費 負擔에 등골 휜 스파르타人

    紀元前 371年 레욱트라 戰鬪에서 스파르타가 이웃 國家 테베에 大敗해 시골의 작은 마을로 格下된 지도 於焉 2000年이 흘렀다. 古代 스파르타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王家 못지않은 排他的인 純血主義를 固守하며 市民階級을 獨占하려 했다. 映畫 ‘300’의 主舞臺인 테르모필레 戰鬪(BC 380) 以後 外勢가 물밀듯이 들어오자 國家의 紀綱은 흔들렸다. 그동안 겨우 維持했던 市民權을 가진 成人 男性 스파르탄(Spartiate)의 人口는 急減해 國家의 存立을 威脅했다. 超低出生 危險信號가 곳곳에서 感知됐지만 엘리트主義에 빠진 스파르타의 首腦部는 深刻性을 認知하지 못했고 破滅을 自招했다.

    오늘날에도 酷毒한 스파르타 敎育은 嚴格하고 效果的인 敎育法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스파르타는 印度의 카스트制度와는 比較도 안 될 無慈悲한 피라미드형 階級制度를 維持했다. 奴隸의 數는 市民보다 20倍나 많았다. 階級을 獨占하기 위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莫强한 冷血 軍人이 切實했고, 스파르타人은 걸음마만 떼면 싸우는 法을 배워야 했다. 全 市民이 軍人이던 스파르타에서 理想的 人材賞은 피도 눈물도 없는 冷血 軍人이었다. 스파르타의 敎育은 人間이 삶을 營爲하는 데 必要한 모든 行爲를 가르치고 배우는 데 局限된 것이 아니라 最適의 人間兵器를 養成하는 데 焦點이 맞춰졌다.

    스파르타는 一種의 巨大한 軍事訓鍊所였다. 身體檢査를 通過하지 못한 갓난아기는 그대로 버려졌다. 7歲가 되면 無條件 父母의 품을 떠나 ‘아고게’라고 불리는 軍事 寄宿學校에 入敎해야 했다. 國家가 아고게를 運營하고 統制했지만 卒業까지 들어가는 모든 敎育費는 父母가 堪當했다. 映畫에서 스파르타군은 쇼트팬츠에 망토만 입어 筋肉質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狀態로 黃銅 投球부터 甲옷, 窓, 檢, 防牌 等 約 32kg에 達하는 重武裝 舞具를 着用했다. 兵士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두른 모든 裝備도 國家가 아닌 個人이 各自 調達해야 했다. 여러모로 스파르탄 市民은 등골이 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는 地形이 險하고 平地가 적다. 같은 言語를 使用하고 같은 神을 섬긴다고 해도 統一國家로 거듭나기 어려운 地形이다. 작은 언덕 單位로 ‘폴리스’라 불리는 各其 다른 都市國家가 形成될 수밖에 없었다. 代表的 都市國家인 스파르타와 아테네는 246km程度 떨어져 있지만 相反된 都市文化를 갖고 있다. 瘠薄한 自然環境으로 商工業에 注力한 아테네는 王政으로 始作했지만 여러 西洋 文物을 받아들여 開放的 民主社會를 이뤘다.



    일찍이 스파르타는 토지와 주택을 공동 분배했다. 초창기 스파르탄의 사유재산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들은 공동 식사 비용과 교육비를 제하면 사치를 하고 싶어도 검소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워너브라더스]

    일찍이 스파르타는 土地와 住宅을 共同 分配했다. 草創期 스파르彈의 私有財産은 거의 비슷한 水準이었다. 그들은 共同 食事 費用과 敎育費를 除하면 奢侈를 하고 싶어도 儉素하게 살 수밖에 없었다. [워너브라더스]

    反面 肥沃한 農業國家인 스파르타는 少數의 스파르타人이 權力을 손아귀에 쥐고 多數의 原住民 奴隸를 統率해야 했다. 무엇보다 强力한 國家 統制 아래 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軍事力이 必要했다. 스파르타는 土地改革으로 땅을 國民에게 公平하게 分配하고, 不淨腐敗를 막기 위해 徹底한 禁慾主義的 共同生活을 追求했다. 그 一環으로 스파르타人은 모두 共同 食事를 해야만 했는데 共同 食事 費用 亦是 個人에게 醵出했다. 割當된 費用을 堪當하지 못하는 스파르타人은 中間階層人 페리오이코이로 降等되거나 스파르타를 떠나야 했다.

    古代 그리스 땅을 旅行한 觀光客 가운데 古代都市 中 第一 실망스러운 곳으로 스파르타를 꼽는다. 萬若 레오니다스 銅像과 스파르타 博物館이 없었으면 現在 스파르타는 그냥 閑寂한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儉素함이 國民의 義務였기에 都市 어디에도 華麗한 神殿이나 劇場도 없는 것일 터. 그것은 한때 都市를 繁榮케 했으나 한瞬間에 都市의 映畫를 破壞한 原因이기도 했다.

    피의 成人式

    테르모필레 해협에 내린 페르시아군은 끝이 안 보일 정도의 대군이었다. [워너브라더스]

    테르모필레 海峽에 내린 페르시아軍은 끝이 안 보일 程度의 大軍이었다. [워너브라더스]

    映畫 ‘300’은 스파르타가 支離滅裂해지기 100餘 年 前인 紀元前 480年 페르시아와 그리스 聯合軍이 맞붙은 테르모필레 戰鬪를 素材로 한다. 紀元前 480年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皇帝는 100萬 大軍을 이끌고 그리스를 向해 進軍한다. 1次 페르시아戰爭을 일으킨 先王 다리우스 1世는 上陸道 못 하고 에게海 한복판에서 艦隊들이 난파당해 눈물을 머금고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2次 페르시아戰爭에서는 아테네에서 急派된 約 1萬의 軍士가 마라톤 曠野가 내려다보이는 山기슭에 布陣해 있다가 奇襲해 大敗하는 아픔을 맛봤다. 이 戰鬪의 勝利를 알리기 위해 아테네까지 40km를 單숨에 뛰어 絶命한 아테네 軍士를 記念하려 만든 景氣가 마라톤 競走다. 아버지의 復讐를 하기 위해 臥薪嘗膽하던 아들 크세르크세스 1歲(로드리고 産土로)는 卽位하자마자 그리스 征伐 計劃을 차근차근 準備하고 親히 參戰한다.

    체인을 둘둘 말고 나온 흑인으로 분한 크세르크세스 황제는 사실 백인 아리안족이었다. 페르시아인은 그리스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피부색을 가졌다. [워너브라더스]

    체인을 둘둘 말고 나온 黑人으로 扮한 크세르크세스 皇帝는 事實 白人 아리안족이었다. 페르시아人은 그리스인과 別般 다르지 않은 皮膚色을 가졌다. [워너브라더스]

    映畫는 스파르타 長壽 달리오스(데이비드 웬햄)가 플라타이아이 平野에서 戰鬪를 앞둔 스파르타 軍人을 모아놓고 1年 前 테르모필레 戰鬪를 回想하는 내레이션으로 始作된다. 國家權力을 獨占하는 스파르타 王과 달리 스파르타人은 태어나자마자 가시밭길에 놓인다. 걸음마만 떼면 싸우는 法을 배워야 했기 때문이다. 달리오스는 最高의 戰士로 거듭나기 위한 스파르타의 成人式에 對해 說明한다. 한 스파르타 靑年이 午밤中에 猛獸들이 우글거리는 山으로 쫓겨난다. 少年은 暗黑처럼 시꺼먼 털을 날리며 붉은 눈으로 노려보는 사나운 늑대와 맞닥뜨리고 智慧와 意志만으로 싸워 이겨내야 했다. 元來 스파르타의 傳統的 成人式은 이렇게 短劍 하나 달랑 쥐고 허허벌판이나 奴隸들의 居住地에서 사냥하게 한다. 짐승뿐 아니라 사람 사냥도 스파르탄 成人式의 一部였지만 映畫는 이는 省略한다. 죽은 늑대 가죽을 메고 나타난 少年의 이름은 레오니다스. 後日 그는 아들 없이 死亡한 兄의 뒤를 이어 스파르타의 王으로 登極해 레오니다스 1世가 된다. 그가 바로 映畫 ‘300’의 主人公인 傳說的 人物 레오니다스(제라드 버틀러) 王이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날, 검은 皮膚를 가진 페르시아의 傳令(피터 멘사)李 스파르타를 찾는다. 다짜고짜 레오니다스 王을 찾아온 그는 페르시아의 王에게 스파르타의 물과 흙을 바치라고 倨慢하게 말한다. 고작 물과 흙이면 妥協할 만도 한데 自尊感으로 똘똘 뭉친 스파르彈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生命의 源泉인 물과 흙은 한 國家의 正體性이기 때문. 레오니다스 王은 憤怒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使臣을 발로 차 우물에 빠뜨리며 외친다. “여기는 스파르타다!”

    個人의 自由 剝奪한 스파르타

    스파르타 군인은 오른손으로는 2m 정도의 창, 왼손으로는 방패를 든다. 철저하게 대형으로 움직이며 대장의 작전에 맞춰 전진하고 대형을 바꿔 적을 교란한다. [워너브라더스]

    스파르타 軍人은 오른손으로는 2m 程度의 窓, 왼손으로는 防牌를 든다. 徹底하게 大型으로 움직이며 大將의 作戰에 맞춰 前進하고 大型을 바꿔 敵을 攪亂한다. [워너브라더스]

    使臣들을 모두 송장으로 만들었으니 다음 手順은 戰爭이었다. 古代 그리스의 都市國家들은 判斷할 수 없는 어려운 問題는 델포이의 神殿에서 神에게 물었다. 스파르타度 例外는 아니었다. 레오니다스 王은 獨自的으로 軍隊를 이끌고 戰場으로 나서지 못하고 반드시 信託(神託)을 통해 神의 意志로 行動해야 했다. 信託은 다음과 같다. ‘王이 죽지 않으면 스파르타는 滅亡할 것이다.’ 映畫는 드라마틱한 蓋然性을 附與하려 虛構的 要素를 過度하게 加味한다. 信託을 받기 위해 到着한 神殿의 祭祀場들을 墮落한 怪物로 描寫하고 巫女(巫女)인 피티아는 無知한 少女로 그린다. 祭司長들이 淫蕩한 웃음을 지으며 歲는 金貨에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歲(로드리고 産土로)의 얼굴을 넣어 마치 祭司長들이 페르시아에게 買收당해 戰爭을 不許하는 것으로 描寫한다.

    映畫에서 레오니다스 王은 信託의 反對에도 代를 이을 子孫이 있는 精銳部隊員 300名을 이끌고 ‘뜨거운 文’이라는 意味인 테르모필레 峽谷으로 向한다. 가는 途中 다른 都市國家에서 急造한 그리스 聯合軍을 만나 힘을 합치지만 100萬 名의 페르시아 大軍을 相對하기에는 力不足이었다. 다만 레오니다스는 많은 軍士가 좁은 峽谷(映畫에서는 實際 峽谷보다 훨씬 좁게 誇張해 描寫한다)을 通過할 수 없으므로 아무리 人海戰術로 밀고 내려와도 峽谷에서는 勝算이 있다고 믿었다. 全面戰으로 가는 通路를 峽谷에서 遮斷해 버리면 大規模 戰爭物資 輸送이 원활치 않은 페르시아는 退却할 것이라는 計算이었다. 初盤에는 ‘사즉생(死卽生)’의 覺悟로 싸우는 스파르타의 氣勢에 눌려 페르시아軍이 番番이 峽谷을 뚫지 못한다. 이때 補償에 눈이 먼 그리스人 에피알테스(앤드루 티어亂)가 峽谷을 迂廻할 수 있는 샛길을 알려준다. 이런 緣由로 에피알테스는 그리스어로 ‘惡夢’이라는 意味로 傳해온다.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直感한 레오니다스는 後日을 圖謀할 資産으로 그리스 聯合軍을 後方으로 보낸다. 스파르타 軍人 300名만이 峽谷에서 決死 抗戰을 벌이며 映畫는 悲壯하게 끝난다.

    歷史的 事實을 映畫化하는 過程에서 잭 스나이더 監督은 에피알테스를 脊椎障礙人으로 描寫하고 文明國에 살던 페르시아人을 頹廢的이고 未開하게 歪曲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怪物로 表現한다. 映畫 ‘300’의 原作은 1965年 英國 映畫 ‘300 스파르탄’에 靈感을 받은 프랭크 밀러가 脚色한 漫畫(그래픽 노블)冊이다. 밀러는 漫畫 作畫에도 뛰어나지만 스토리 作家이기도 하다. 다만 밀러는 歷史的 考證보다 自身이 傳하고자 하는 ‘아이러니’라는 메시지에 集中했다. 스파르타는 自由와 平和를 부르짖지만 過激한 全體主義 國家의 限界를 넘지 못한다. 또 民主的 節次를 重視하지만 非合理的 豫言에 全的으로 依支하는 二重性을 보인다.

    스나이더 監督은 데뷔作인 좀비 호러映畫 ‘새벽의 詛呪’로 製作費의 5倍에 達하는 興行 收益을 올리고 次期作으로 映畫 ‘300’을 選擇했다. 그는 CF監督 出身답게 짧은 時間에 이미지를 露出해 大衆의 腦裏에 剛한 印象을 남기는 데 一家見이 있다. 스나이퍼 監督의 안티일지라도 그의 빼어난 映像美에는 모두 ‘엄지 척’을 표할 程度다. ‘300’에서는 人物을 뺀 背景을 3D로 神祕主義 繪畫처럼 具現했고 롱테이크와 슬로모션으로 激動的이고 熾烈한 戰鬪 場面을 實感 나게 編輯했다.

    300名의 스파르타 戰士가 테르모필레 峽谷에 뼈를 묻은 理由는 單 한 가지다. ‘戰鬪에서는 絶對 後退하지 않는다’는 法에 服從해야 했기 때문이다. 벌떼처럼 쏟아지는 페르시아의 화살을 報告 ‘德分에 시원한 그늘 아래에서 싸울 수 있겠다’고 말했다는 레오니다스의 이야기는 豪放한 유머가 아니라 個人은 없고 全體만 强調한 集團催眠의 證據가 아닐까.

    테르모필레 戰鬪 1年 後에 벌어진 플라타이아이 戰鬪에서 스파르타는 大勝을 거두고 페르시아軍을 그리스 半島에서 完全히 몰아낸다. 그러나 戰爭으로 徹底하게 닫혔던 門戶가 開放되자 스파르타人들은 그동안 금기시됐던 新世界를 發見하고 分裂한다. 以後 社會 兩極化, 過度한 敎育費 같은 葛藤 要因이 低出生 文化로 固着됐고 스파르타는 衰亡의 길로 접어들었다.


    황승경
    ● 1976年 서울 出生
    ● 이탈리아 레被逮國立音樂院 디플럼, 韓國藝術綜合學校 專門士, 成均館大 公演藝術學 博士
    ● 國際오페라團 團長
    ● 前 이탈리아 盧베 放送局 리포터, 月刊 ‘英카페’ 編輯長
    ● 著書 : ‘3S 보컬트레이닝’ ‘無限한 想像과 놀이의 變奏’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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