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庶孼 정진교의 上疏|新東亞

私論史論으로 본 朝鮮王朝實錄

庶孼 정진교의 上疏

해와 달은 사람 가려 비추지 않는다

  • 강성득 韓國古典飜譯院 硏究員

    入力 2019-04-1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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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장각도(奎章閣圖). 서얼은 타고난 신분으로 인해 능력이 있어도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다 정조는 개혁 정치의 일환으로 당색에 물들지 않은 서얼 출신들을 등용했는데, 이때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등이 규장각 검서관에 발탁됐다. 이들은 각신을 보좌하고 서적을 교정하고 서사(書寫)하는 일을 담당했다. [국립중앙박물관]

    奎章閣도(奎章閣圖). 庶孼은 타고난 身分으로 인해 能力이 있어도 벼슬길에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다 正祖는 改革 政治의 一環으로 黨色에 물들지 않은 庶孼 出身들을 登用했는데, 이때 李德懋, 朴齊家, 柳得恭 等이 奎章閣 檢書官에 拔擢됐다. 이들은 閣臣을 補佐하고 書籍을 矯正하고 敍事(書寫)하는 일을 擔當했다. [국립중앙박물관]

    朝鮮에서 身分制 때문에 鬱憤을 삼키고 살아야 했던 代表的인 存在가 庶孼(庶孼)이다. 庶孼은 妾의 子息을 이르는 말로, 어머니가 상민日 境遇에는 庶子(庶子), 奴婢日 境遇에는 孼子(子)라고 불렀다. 庶孼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家門의 代를 이을 수도 없었다. 官職에 나아간다 해도 昇進할 수 있는 品階가 制限돼 있었다. 太宗 13年(1413) 庶孼의 官職 進出을 制限하는 庶孼禁錮法(庶孼禁錮法)李 만들어진 뒤로 庶孼의 身分 差別 撤廢 要求가 이어졌다. 

    英祖 卽位年인 1724年 12月 17日, 庶孼인 眞사(進士) 정진교(鄭震僑) 等 260名이 長文의 上疏 한 通을 올렸다. 그前에 이미 數次例 庶孼禁錮法 廢止를 要請하는 上疏를 올렸지만 英祖에게 傳해지지 않았다. 정진교는 英祖가 宮闕을 나가 警鐘의 新株를 맞이하는 날을 미리 알아 두었다가 英祖의 行次가 잘 보이는 곳에서 긴 長대를 들고 自身의 意思를 表示했다. 長대 끝에는 종이를 매달았는데, 종이에는 뜻을 펴지 못해 궁한 사람이 恨을 품는다는 뜻의 ‘宮人抱冤(窮人抱寃)’ 네 글字가 크게 적혀 있었다. 이를 본 영조는 卽時 上疏를 들이라고 命했다.

    庶孼이 벼슬을 못하게 막는 法은 天下 萬古에 없던 것입니다. 中國은 三代부터 漢나라, 唐나라, 宋나라, 明나라에 이르기까지 庶孼이 將帥가 되고 宰相이 되어 名聲을 떨치고 功績을 쌓았습니다. 우리 東邦은 慰勞 三國時代부터 高麗 5百餘 年에 이르기까지 人材를 選拔함에 있어 中國의 方式을 一貫되게 準用해 差異가 없었습니다. 


    <英祖實錄 卽位年 12月 17日>

    정진교는 庶孼이 벼슬하지 못하게 하는 法은 애初에 없었다는 內容으로 上訴를 써내려갔다. 이어서 太宗 때 右代言(右代言)인 鼠銑(徐選) 等이 主唱해 庶孼의 子孫을 要職에 登用하지 못하게 한 뒤로 강희맹(姜希孟)李 ‘經國大典’을 編纂할 때 官職에 進出하거나 過去試驗을 볼 수 있는 길까지 아울러 막은 일을 言及했다. 以後로도 庶孼禁錮 問題를 解決하고자 했으나 施行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宣祖 初에 身分(申) 等 1000餘 名이 上疏해 원통함을 呼訴한 일에 對해 宣祖가 下校한 內容을 써내려갔다.



    宣祖 : 해바라기가 해를 向하는 것은 곁가지라고 해서 다르지 않으니, 어찌 꼭 情實(正室)에게서 태어난 適者만이 臣下가 되어 忠誠을 바치기를 바라겠는가?


    <英祖實錄 卽位年 12月 17日>

    정진교는 宣祖가 庶孼에 對해 지닌 생각을 至極히 공정한 마음이라고 評價했다. 이어 仁祖 때 主要 臣僚들이 庶孼 差別 問題를 어떻게 認識했는지 하나하나 言及해나갔다.

    右議政 정유성 : 嫡子와 庶子의 區分은 집안에서만 했지 朝廷에서는 適用하지 않았습니다. 門閥을 가장 많이 따진 六曹六朝 때에도 사람을 쓸 때는 오로지 아버지의 姓姓만 묻고 어머니의 姓은 묻지 않았습니다. 하늘이 人材를 낼 때 貴賤에 差異를 두지 않았고, 賃金이 사람을 쓸 때 家門에 求愛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하늘의 理致로 보면 當然한 일이라서 歷代 임금들이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원익·윤방 : 庶孼을 卑賤하게 여기고 薄待하는 것은 天下 萬古에 없던 法이니, 賃金이 身分을 따지지 않고 어진 人材를 登用해야 한다는 道理에서 크게 어긋납니다. 

    오윤겸 : 庶孼의 벼슬을 禁止하는 것은 先王들이 하셨던 至極히 공정한 政事가 아니니, 벼슬길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實로 理致에 맞습니다. 施行하기 어렵다고 問題를 提起하는 사람들은 嫡子와 庶子의 分別이 紊亂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嫡子와 庶子의 區分은 집안一日 뿐이니, 朝廷에서는 賢明하고 能力 있는 사람을 登用하기만 하면 됩니다.

    <英祖實錄 卽位年 12月 17日>

    정진교는 仁祖 때 政局을 運營하던 主要 臣僚들이 庶孼에 對해 지닌 認識을 통해 庶孼禁錮 撤廢가 自身들만의 主張이 아니라는 點을 强調했다. 뒤이어 歷代 名臣 中에 庶孼 出身이 많았음을 말하면서, 庶孼을 登用하는 길을 넓혀줄 것을 要請했다. 정진교 等이 일으킨 이 일을 두고 當時 史觀은 다음과 같이 評價했다.

    유자광 以後로 庶孼을 淸職에 임명하는 것을 許諾하지 않았는데, 이때에 이르러 庶孼들이 스스로 淸職에 任命될 수 있게 해달라고 請했으니, 朝廷의 紀綱이 날로 紊亂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英祖實錄 卽位年 12月 17日>

    當時 史觀이 奸臣의 典型으로 알려진 柳子光을 言及한 理由는, 그가 自身의 權力을 利用해 갖은 弊端을 일으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庶孼 出身으로 戊午士禍(戊午士禍)를 일으켜 士林들에게 被害를 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背景이 士林들이 朝鮮 時代 내내 庶孼을 差別하는 주된 理由가 됐다. 정진교의 上疏를 본 史官의 생각도 士林의 基本 認識과 다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史觀들이 庶孼禁錮法 撤廢 問題에 對해 이같이 論評한 事例는 實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정진교의 上疏를 받아 든 英祖는 “하늘과 사람은 하나이고 해와 달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비추는데, 王이 人材를 登用하는 데 어찌 差異를 두겠는가? 다만 由來가 오래되어 갑자기 變更할 수 없으니 천천히 方法을 講究해서 處理해야 한다”라는 批答을 내렸다. 이어 仁祖 때의 修交(受敎·賃金이 世子, 世孫 等을 冊封할 때 내리던 敎命)에 따라 戶曹, 刑曹, 工曹의 郎官에 庶孼을 임명할 수 있게 하라고 命했다. 以前보다는 多少 나아진 狀況이지만, 庶孼 差別을 完全히 撤廢하는 것에 對해서는 갑자기 바꿀 수 없다는 理由를 대며 한발 물러섰다. 

    嫡庶 差別에 基盤한 朝鮮의 身分制는 庶孼들에게 넘을 수 없는 ‘現實의 壁’이었다. 英祖나 史官의 言及을 보면 아직까지 朝鮮에서는 庶孼에 對한 差別을 撤廢할만한 社會的 與件이 成立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英祖 以後 一部 官職에 庶孼이 登用되기도 했으나 實質的으로 庶孼이 身分 差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約 170年이 지난 甲午改革(1894) 때였다. 中人인 차좌일(車佐一)의 ‘使命者詩集(四名子詩集)’에 실린 글 한 줄을 통해서도 身分 差別에 對한 원통함이 느껴진다.

    이 世上에 나고 또 난다 해도 永遠히 이 나라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英祖가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下校를 내렸을지 궁금하다. 오늘을 사는 우리 앞에 놓인 ‘現實의 壁’은 어떠한가? 또 그 壁을 바라보는 우리의 態度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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