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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體思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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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年 4月 15日에 完工된 平壤 주체사상탑 .

主體思想 (主體思想, 英語 : Juche idea )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로동당 의 公式 理念이다. [1] 김일성主義 (金日成主義)라고도 하며, 嚴密히 따지면 김일성主義는 “主體思想을 核心으로 하는 思想·理論·方法의 全一的 體系”를 뜻해 主體思想보다 上位의 槪念이지만, [2]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이 둘을 區分하지 않는다. 明確한 區分을 위해 김일성主義와 同一視되는 主體思想을 "넓은 意味의 主體思想", 그보다 狹小하고 理論的인 部分의 主體思想을 “좁은 意味의 主體思想”이라고 한다. 2012年 5月에 成立된 조선로동당 黨憲에는 金日成-김정일主義 (金日成金正日主義)라는 表現이 있는데, 이는 金正日 先軍政治 와 結合한 全一的 體系로서의 主體思想을 뜻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主體思想이 打倒帝國主義同盟 의 會議에서 처음 主唱되었고 金日成 1930年 지린省 창춘 카輪會議에서 發表한 〈朝鮮革命의 進路〉라는 演說文에서 主體的 立場이 闡明되었다고 主張하고 있지만, 實際로 主體라는 單語가 쓰이기 始作한 것은 1955年 12月 28日 〈思想事業에서 敎條主義와 形式主義를 退治하고 主體를 確立할 데 對하여〉가 發表된 다음부터이다. 北韓側 主張이 담긴《조선로동당략사》(朝鮮勞動黨略史)에 따르면, 김일성은 本來 마르크스-레닌주의 에 精通해 있었으나 朝鮮革命 을 겪으며 이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現實에 맞게 修正 適用, 土着化한 것이 主體思想의 社會歷史的 背景이라고 한다.

1982年 에는 金正日 의 이름으로 〈主體思想에 對하여〉가 發表되는데, 一般的으로 이 論文에서 主體思想의 核心이 完成된 것으로 본다. [3] 뒤이어 1985年 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總 10卷인 《偉大한 主體思想 叢書》를 發刊한다. 이런 모습에서 볼 수 있듯, 主體思想은 金日成 에 依해 始作되었으나 그 理論의 綜合的 테두리는 金正日 의 思想 地圖를 거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主體思想은 强한 反帝民族主義 性格을 갖고 있는데, 이는 過去 日本에 依한 植民地時代 經驗과 無關치 않다는 評이 있다. [4]

槪要 [ 編輯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主義에 對해 “김일성 同志의 思想, 理論, 方法을 主體思想이라고 말한다.”고 規定한다. 그런데 이 때의 思想은 主體思想을 의미하며, 學界에서는 電子의 主體思想을 넓은 意味의 主體思想, 後者의 主體思想을 좁은 意味의 主體思想이라고 區分한다. 理論은 革命理論, 方法은 影島 方法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整理할 수 있다.

主體思想(넓은 意味) = 김일성主義
思想 理論 主體思想의 基本的인 理論的 內容
革命 理論 帝國主義, 植民主義 等에 맞서 革命을 하기 위한 理論
影島 方法 首領을 中心으로 한 유일영度體系를 構成하는 方法論

主體思想의 歷史 [ 編輯 ]

主體思想의 形成 背景 [ 編輯 ]

1930年 7月 2日 지린省 長春에서 主催된 카輪 會議에서 金日成(金日成)은 『朝鮮革命의 進路』를 發表하여 統一戰線 路線을 主張했다. 統一戰線에 對한 綱領的 內容은 엠엘당이 主軸이 된 第3次 朝鮮 共産黨이 最初로 明示한 것이나, 統一戰線을 黨 大會에서 黨 運營의 主要 內容 및 原理로 擧論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1932年 4月 25日에는 打倒帝國主義同盟을 主軸으로 했던 金日成 이 崔晛(崔賢)·金策(金策)·최용건(崔庸健) 等과 함께 朝鮮人民革命軍(朝鮮人民革命軍)을 組織하였다. 朝鮮人民革命軍은 統一戰線에 기초한 最初의 武裝抗日遊擊隊였다. 이 時期부터 鬪爭은 中國共産黨의 支援을 主로 받으면서 進行됐다. [5]

解放 後 1948年 9月 9日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政府가 樹立되었다. 1956年 蘇聯共産黨 第20次 全黨大會에서 흐루시초프에 依한 스탈린 格下 事件이 일어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中華人民共和國은 蘇聯에 對해 修正主義라는 批判을 퍼부었다. 社會主義 宗主國 蘇聯이 唯一指導體系를 抛棄하고 國內에서 8月宗派事件 과 같은 政變 試圖가 일어나자, 김일성은 國內 修正主義를 打破하여 人民民主獨裁를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자 한다.

김일성은 1955年 12月 28日에 黨宣傳煽動員大會에서 『思想事業에서 敎條主義와 形式主義를 退治하고 主體를 確立할 데 對하여』라는 이름의 演說을 했는데, 主體라는 이름의 用語는 이때 처음 使用되었다. 以後 김일성은 沿岸波, 蘇聯派 等 自身의 反對勢力들을 肅淸할 때 이 演說을 바탕으로 ‘主體가 없는 사람’이라는 名分을 씌웠다.

主體思想이 思想的인 內容을 갖추기 始作한 것은 김일성이 1965年 4月 인도네시아 알리 아르函 社會科學院에 訪問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社會主義建設과 南朝鮮革命에 對하여』라는 演說을 했을 때다. 김일성은 “思想에서의 主體, 政治에서의 自主, 經濟에서의 自立, 國防에서의 自衛, 이것이 우리 黨이 一貫하게 堅持하고 있는 立場이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오늘날 主體思想의 指導的 原則에 적힌 ‘主體思想 4代 原則’이다.

主體·自主·프롤레타리아 國際主義 [ 編輯 ]

甲山派와 남로당파를 비롯한 모든 半-빨치산派 勢力이 肅淸되고 金日成을 基盤으로 한 빨치산派가 조선로동당의 霸權을 잡고, 깊어지는 中蘇紛爭 사이에서 中立路線을 걸으며 ‘思想의 主體, 政治의 自主, 經濟의 自立, 軍事의 自慰, 學問의 主體’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운 獨自的 政治理論 構築에 突入하였다.

  • 金日成, 1965年 4月 14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의 共産主義建設과 南朝鮮革命에 對하여〉
  • 金日成, 1965年 7月 1日 〈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第4期 第11次全員會議에서 얻은 結論〉
  • 金日成, 1965年 10月 10日 〈조선로동당創建 스무돐에 즈음하여〉
  • 金日成, 1965年 10月 5日 〈現情勢와 우리 黨의 課業〉

主體의 10대정강수립 [ 編輯 ]

主體의 10대정講義 樹立은 조선로동당의 思想的 統一을 一段落짓는 것으로, 主體思想은 이 時期 以後 金正日 의 理論 綜合化 試圖가 나타나기까지 現在의 安定化된 形態를 갖추었다.

  • 1967年 12月 16日 〈國家活動의 모든 分野에서 자주, 自立, 自慰의 革命精神을 더욱 徹底히 具現瑕疵>
  • 1970年 11月 2日 〈조선로동당 第5次大會 開會辭>

이 때 以後 김일성의 偶像化가 始作되었으며 1972年 12月 27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社會主義憲法》에 主體思想을 明文化하며 김정일의 後繼體系가 準備되기 始作하였다.

思想 理論 [ 編輯 ]

思想 理論은 ‘哲學 原理’, ‘社會歷史 原理’, ‘指導 原則’의 세 部分으로 構成된다.

哲學 原理 [ 編輯 ]

主體思想의 哲學的 原理의 基本은 “사람이 모든 것의 主人이며 모든 것을 決定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이 모든 것의 主人이라는 말은 사람이 世界와 自己 運命의 主人이라는 것이며, 사람이 모든 것을 決定한다는 것은 사람이 世界를 改造하고 自己 運命을 開拓하는 데서 決定的 役割을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사람은 ‘가장 發展된 物質的 存在이며 物質世界發展의 特出한 産物’이기 때문에 自主性 · 創造性 · 意識性 을 가진 社會的 存在이다.

이때 ‘사람이 모든 것의 主人’이라는 命題는 社會歷史原理에서 ‘人民大衆은 社會歷史의 主體’라는 命題로 연역된다. 또한 哲學的 原理의 ‘自主性’은 社會歷史原理의 ‘鬪爭의 歷史’, ‘創造性’은 ‘創造的 運動’, ‘意識性’은 ‘自主的인 思想意識’으로 연역된다.

이러한 思想은 從來의 哲學思想을 批判하는 데서 始作되고 있다. 이는 김정일의 論文인 『主體思想 敎養에서 提起되는 몇가지 問題에 對하여』에서 確認할 수 있다. 그 文句는 다음과 같다.

哲學的 世界觀의 根本使命은 人間의 運命開拓의 길을 밝혀주는 데에 있다. 哲學의 目的과 社名도 여기에서 例外로 될 수는 없다. … (中略) … 人間은 世界가 무엇인가를 認識하는 데 切實한 利害關係를 가지게 된다. … (中略) … 主體의 哲學的 世界觀은 根本特徵과 비할 바 없는 優越性도 바로 世界에서 차지하는 人間의 地位와 役割을 밝혀주는 哲學的 原理에 기초하여 人間의 運命開拓의 根本方道를 가장 科學的으로 밝혀준다는 데 있다.
?  金正日 , 『主體思想 敎養에서 提起되는 몇가지 問題에 對하여』에서 [6]

同時에 金正日은 旣存 마르크스주의의 唯物論과 辨證法이 世界運動 原理의 巨視的 構造를 밝혔으나, 變革을 이끄는 人間의 能動的 活動, 卽, 微視的 構造에 對해서는 그 糾明을 完璧히 해내지 못 했다고 指摘한다.

世界에서 차지하는 人間의 地位와 役割을 밝히자면 반드시 物質世界의 一般的 特徵과 함께 人間의 本質的 特性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從來의 哲學的 世界觀에서는 世界과 物質로 이루어져 있다는 唯物論의 原理와 世界과 끊임없이 變化發展한다는 辨證法의 原理는 밝혔으나, 이러한 哲學的 原理만으로서는 物質世界의 一般特徵은 밝힐 수 있어도 世界에서 차지하는 人間의 地位와 役割은 解明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唯物論과 辨證法이 世界觀으로서의 使命을 다하자면 世界과 物質로 이루어지고 끊임없이 變化發展한다는 것을 解明하는 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世界에서 가장 發展된 物質인 人間이 主人의 地位를 차지하고 世界 發展에서 決定的 役割을 한다는 것까지 밝혀주어야 한다.
?  金正日 , 『主體思想 敎養에서 提起되는 몇가지 問題에 對하여』에서 [7]

이와 같은 旣存의 哲學에 對한 批判을 통하여 김정일은 그러므로 “사람中心의 哲學的 世界觀만이 物質的 世界의 一般的 特徵을 밝혀지는 原理와 人間의 本質的 特徵을 밝혀주는 原理를 다같이 包括하게 된다. 이런 點에서 主體의 世界觀은 지난 時期의 哲學的 世界觀이 가지고 있던 一面性을 克服하고 世界의 本質과 人間의 運命問題에 가장 深奧하게 包括的 解明을 준 哲學的 世界觀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人間中心哲學 [ 編輯 ]

人間中心哲學의 目的은 旣存의 ‘正統’ 마르크스주의 哲學이 갖고 있던 機械主義性을 批判하고 人間의 自主性, 創造性, 意識性을 糾明하여 革命活動에서의 能動性을 保障하려는 것에 있다. 이러한 理論 作業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의 『辨證法的 唯物論』李 밝힌 人間 意識의 一般性에 基盤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內容은 다음과 같이 要約할 수 있다. [8]

  1. 物質의 量的 上昇은 質的 轉換의 契機가 된다. 이 原理로부터 意識性이 생겨난다.
  2. 意識 一般은 物質의 反映이다.
  3. 人間은 物質發電의 結果로 나타난 派生物 中 가장 優越한 物質이므로, 周邊 物質과 低發展된 意識은 改造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4. 모든 物質 사이에서 最高 地位를 갖고 있는 人間은 世界에 對하여 自主性, 創造性, 意識性을 가질 수 있다.

(4)를 통하여 人間에 對한 素朴實在論的인 解釋을 遮斷한다. 이에 對해 ‘自由意志論’이라고 解釋하는 意見도 있으나, 主體思想은 原則的으로 辨證法的 唯物論에 基盤한 人間觀을 따른다. 主體思想은 人間의 認知(條件에 對應한 生物學的 基礎에 따른 反應)와 認識(階級 儀式으로서 人間의 思惟와 實踐)을 區分하고 있는데, 認知는 機械的인 原理를 따르며, 認識은 世界私的 辨證 鬪爭에 屬한 것이기에 自由意志的이라고 說明하고 있다. 따라서, 人間이 갖는 世界에 對한 3代 本性은 物質 또는 低次元의 意識을 辨證法的으로 改造하고 再具現할 수 있게 하는 原因이라고 解釋하는 것이 옳다. [9]

意識에 關한 主體思想의 이러한 立場은 스탈린 以後 共産圈 社會에서 認定된 辨證法的 唯物論의 人間 意識 解釋과 本質的인 差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9]

一例로, 이오시프 스탈린( 러시아語 : Ио?сиф Ста?лин , 1878 - 1953)은 自身의 著書 『辨證法的 唯物論』(О диалектическом и историческом материализме) 第4章에서 意識과 矛盾性을 糾明하였는데, 主體思想은 이 圖式에 어긋나지 않으며, 오히려 이에 對한 忠實한 反映에 기초한 能動主義라고 할 수 있다. [9]

이에 基盤하여 (1)과 (2)를 解釋한다면, 人間 意識의 客觀性을 規定한 것이 되므로 主觀主義도 또한 豫防한다. 앞으로 展開될 人間中心과 關聯된 모든 論議는 이 네 가지 前提에 따라 進行된다. ‘主體思想 人間觀’은 바로 이러한 基本 原則에 根據한 人間觀이다. 結果的으로, 人民大衆의 自主性, 創造性, 意識性을 强調하는 것은 共産主義로의 履行 過程에서 革命의 退步를 불러오는 消極主義를 打破할 수 있다.

人間觀 [ 編輯 ]

主體思想 人間觀은 人間이 앞서 論議한 原則의 (4)에서 어떻게 세 가지 주된 本性을 가질 수 있는가에 對한 論議이다. 金正日은 사람이 이러한 性質을 具有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사람이 가장 發展된 物質的 存在로서 發展된 腦髓救助, 서서 걸을 수 있는 姿勢, 精巧한 손 等 오랜 進化過程에서 形成되고 發展된 肉體的, 生物學的 基礎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特徵은 모두 根源的으로 物質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 根本은 物質이라고 할 수 있는데, 主體思想은 基本的으로 唯物論을 基礎로 하여 人間을 解釋하고 있으며, 人間의 세 가지 本性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生體 器官을 이루는 物質의 量的 轉換에 따른 자연스러운 結果라고 하고 있다. 이는 카를 마르크스( 獨逸語 : Karl Marx , 1818 - 1883)의 論文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自然哲學의 差異』(Differenz der demokritischen und epikureischen Naturphilosophie)의 質的 電話 槪念을 堅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0]

한便으로 主體思想이 人間觀을 規定하는 데 있어서 核心的인 槪念인 人間의 세 가지 本性을 ‘勞動’과 結付하여 보고 있다. 이는 人間의 抽象性이 오로지 現象 世界와 獨立하여 存在하는 形而上學的 法則을 思惟할 때에만 生成되며, 認識할 수 있다는 헤겔의 敎義를 批判한 마르크스의 立場을 堅持한 것이다. 人間은 그 自體로 자주性·創造性·意識性을 가지나, 이 세 가지 本性은 오로지 ‘自然 世界를 理性的 認識을 통해 再配列하는 活動’, 다시 말하여, ‘勞動의 發現性’李 人間에 內在된 狀態일 때에만 成立하는 것이다. 結果的으로 세 가지 本性은 勞動을 통해서 具體的으로 發現되며, 勞動이라는 槪念에 依存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人間이 本來 自然 世界를 再配列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면 세 가지 本性 또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點에서 勞動은 그 自體로 ‘高度로 發達된 抽象性’이며, 세 가지 本性을 規定하고, 維持시키는 核心이 된다. 金正日은 不斷한 生物學的 進化와 進化 過程에서 推動되는 腦의 發達 等이 本質的인 意味에서의 勞動을 탄생시켰다고 說明하고 있으며, 勞動 없이는 세 가지 本性이 存在할 수 없다고 說明하였다. 그리하여 人間은 참된 勞動이 마음껏 發現될 수 있는 社會를 위해 鬪爭해야 하며, 特히, 人間의 勞動 能力을 熱化하여 ‘隸屬的 小生産’에 固着하려는 封建地主나 ‘勞動力 算出’에 限定하려는 資本家 및 帝國主義者에 對抗하여야 한다. 金正日은 이것을 ‘人間의 세 가지 本性을 참되게 具現하기 위한 鬪爭’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세 가지 本性을 참되게 發揮할 수 있는 人間을 ‘주체형의 共産主義的 人間’이라고 한다. [10]

自主性 [ 編輯 ]

自主性(自主性)은 隸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人間의 本性으로 說明될 수 있다. [11] 動物을 비롯한 다른 生命物質은 自然에 全的으로 隸屬되어 있으며 自然을 自身을 위하여 服務하도록 만들어 나가지 못하는데, 사람만은 自然을 征服하여 破壞的으로 作用하는 自然의 盲目的인 힘의 作用을 調節統制하며 社會關係도 自身에게 유리한 生活條件을 保障하는 社會關係로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다. [12]

社會的 存在로서의 自主性이라는 特性은 또한 모든 搾取階級에 反對하는 民衆들의 鬪爭의 動力源이 된다. 이러한 自主性 槪念은 바뤼흐 스피노자( 네덜란드語 : Baruch Spinoza , 1632 - 1677)의 코나투스(Conatus) 槪念과 맞닿아있는 部分이 있다. 特히, 物質의 集積體이자 欲求에 쉽게 지배당하는 人間이 世界에 對해 辨證 活動(理性的 思惟 活動)을 하는 本質的 原因을 提供하는 意味에서의 自主性은 코나투스와 類似點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意味에서 主體思想의 自主性 槪念은 單純히 어떠한 巨視的 觀點에서의 隸屬 狀態를 벗어나 있는 것을 追求한다는 意味로서의 自主性이라기보단, 人間 思惟 活動의 根源을 可能케 하는 本質的인 것으로 理解해야 한다. [12]

이런 意味에서 帝國主義가 自主性을 破壞한다는 것도 더욱 根本的인 理解가 加해져야 한다. 帝國主義는 單純히 弱小民族의 普遍的인 人權을 짓밟아서 自主性을 破壞하는 것과 더불어, 人間이 갖고 있는 本質的인 側面에서의 自主性의 發現을 抑制한다는 點에서 人間의 思惟 活動을 破壞하는, 더더욱 非人間的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自主性은 그 自體로 無條件 肯定的인 것이라고 할 수 없는데, 그 理由는 指導力이 없는 狀態에서의 個人主義的 自主性은 各自에 對한 無分別한 鬪爭 狀態만을 招來할 것이기 때문이다. 主體思想은 人間의 自主性을 完全히 이뤄내기 위해, 이에 基盤한 ‘高度의 抽象的 活動’(勞動)을 專門으로 하는 主體인 勞動階級을 筆頭로 해서 人間의 解放을 圖謀하려고 한 思想인 마르크스주의 를 繼承하였고, 革命的 糖이 가져야 할 基本的 方針을 마르크스-레닌주의 에서 얻었다. 그리고 더욱 細分化하여 革命指導 方法을 ‘首領’이라는 槪念에 基盤하여 集中的으로 硏究하였는데, 이를 ‘革命的 首領官’이라고 한다.

創造性 [ 編輯 ]

創造性(創造性)은 本能에 따라 盲目的으로 活動하는 人間 外 動物과는 달리 사람은 自己의 志向과 要求로부터 出發하여 目的을 세우고 그 實現方道를 찾아낸 다음 實踐活動을 意圖的으로 벌여나간다는 것이다. 創造性은 다음으로 낡은 것을 改造하여 새것을 만들어 내는 사람의 活動의 性質로 생각할 수 있다. 사람은 다른 生命物質과는 달리 旣成의 事物을 加工하여 그 形態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事物을 만들어 내는 能力을 갖고 있어, 生活環境을 自己에게 이로운 것으로 改變시키지 못 하는 다른 生命物質들과는 달리, 사람은 自然環境과 社會的 條件을 自己에게 유리하게 改造한다.

意識性 [ 編輯 ]

人間 外 動物들은 自體 知能의 限界로 인해 末梢的 本能에 기초하여 行動하는 境遇가 壓倒的인 것에 비해 人間은 自身의 利害關係에 따라 意識的으로 行動한다. 이것을 人間이 가진 意識性(意識性)이라고 한다. 또한 意識性은 다음으로 世界를 認識하고 改造하는 사람의 性質로 특징지어지며, 이는 意識, 特히 思想意識에 依해 調節, 統制되지 않고서는 進行될 수 없다. 이러한 世界를 認識하고 改造하는 사람의 活動을 意識的으로 保障하는 性質이 바로 意識性이다.

마르크스주의 辨證法에서 意識 活動은 必然的으로 辨證 過程으로 되기에 鄭(正)에 對해 鬪爭하는 反(反)으로서의 意識 性格을 恒常 갖는다고 省察하고 있으며, 意識을 통한 運動의 一般性은 下部 構造의 矛盾性으로부터 反映된 것이다. 反映으로부터 派生한 意識에도 亦是 矛盾있다는 立場과 “모든 것은 本來 그것의 存在 樣式을 維持하기 위한 本來의 힘이 있다. 意識은 그것의 母體(母體)인 物質의 本來的 性格을 되찾으려고 한다. 따라서 意識의 發露가 鬪爭의 始作을 의미한다.”라는 마르크스의 哲學的 見地 [13] 를 綜合하여 主體思想은 意識性이 積極的으로 發現될 境遇 能動的인 鬪爭(矛盾을 認識하고 矛盾을 階級 意識으로서 發展的 經路로 나아가게 하는 方向으로)을 불러온다고 말하고 있다. 意識의 能動性은 意識이 矛盾을 認識하고 그것을 鬪爭을 통해 發展的 性格으로 轉換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過程 全般을 擔當하기에 特定 辨證 段階에서 標的으로 하는 每 주제에 한해 人間은 自由意志的이라고 看做할 수 있다.

主體思想의 意識에 對한 立場은 칼 마르크스와 그 哲學의 繼承者라고 할 수 있는 프리드리히 엥겔스 ( 獨逸語 : Friedrich Engels , 1820 - 1895)의 『반뒤링론』(Anti-Duhring)에서 크게 벗어난 狀態의 觀點은 아니다. 意識에 對한 마르크스주의的 分析의 綜合化는 本來 이오시프 스탈린 이 自身의 著書 『辨證法的 唯物論』 第4章에서 試圖한 바가 있다. 여기서 스탈린은 機械的인 反應일 뿐인, 非意識的 辨證(物質의 機械的 運動)과 意識 活動을 區分하였고, 勞動과 具體的 革命 活動은 모두 後者에 屬한다고 하였다. 主體思想은 스탈린의 認識 理論을 基盤으로, 人間 意識의 能動性 强調하여, 이것을 最上의 形態로 發現할 수 있는 特殊한 方法論을 糾明한 思想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 모두 意識을 物質의 反映으로 看做한다는 點에서 같은 唯物論이라고 할 수 있다.

意識에 關한 마르크스주의的 認識 理論에 기초하여 主體思想은 意識性 槪念을 旣存의 마르크스주의에 비해 훨씬 擴大하여 適用하고 있으며, 應用的 性格이 剛하다. 主體思想이 意識性을 規定하는 데 있어서 엥겔스의 『반뒤링론』의 더 以前 主題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 獨逸語 :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 1770 - 1831)의 對象意識까지 그 論議 主題를 擴大하여 意識性의 能動性을 糾明하려고 했다는 點은 主體思想이 意識性을 더욱 應用的이고 能動的으로 解釋한 理由가 될 수 있다. [14]

主體思想이 헤겔의 哲學을 再解釋한 理由는 다음과 같다. 첫 番째는, 마르크스주의를 機械論的 唯物論으로 解釋하려는 一連의 움직임이 實際, 마르크스주의가 成立되기 以前 生物學主義 基調에서 그 根據를 찾으려고 한다는 點이다. 이러한 움직임에 對한 對抗은, 칼 마르크스가 影響을 받았다고 認定되는 헤겔의 哲學에서부터 그 代를 끊어야 할 必要性이 있다. 두 番째는, 마르크스주의는 意識性의 能動性을 强調할 수 있는 地點이 存在하나, 그것은 이미 靑年헤겔學派의 意識 理論의 綜合으로 表現이 되어있기에, 마르크스가 參照한 原典인 헤겔의 原電에서 結論을 導出하는 것이 더욱 根源的인 接近法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原則에 따라 主體思想은 헤겔의 『對論理學』(Wissenschaft der Logik)을 相當 部分 參考하고 있다. [14]

人間 意識性에 對한 進化論 敵 解釋에 있어서의 問題도 主體思想의 意識性 問題에서 相當히 重要한 것으로 擧論된다. 主體思想은 進化論의 基本的 立場을 固守하고 있다. 그러나, 認識과 感覺인지는 完全히 같다는 機械論的 決定主義와 人間 心理에 對한 行動主義的 解釋은 一切 否定한다. 卽, 人間은 分子構造 物質의 複雜性 增大와, 自然選擇에 따라 登場한 生物體이지만, 人間이 갖고 있는 意識性까지 이러한 물질性에 基盤한 機械主義로 解釋하게 되면, 오히려 意識性을 糾明하는 데 있어서 科學的이지 못 하게 되며, 反動哲學에 이용당하는 材料로 使用될 수 있다는 觀點이다. 假令, 行動主義 觀點 [15] 은 人間이 가진 本性에 對해 “自己 利益 追求이며, 몇 가지 기초적인 生理 欲求에 不過하다.”라고 보기에 資本主義社會에서 各 個人의 破片化를 불러오고 結局 社會發展을 위한 人間의 行動을 막는 것으로 作用한다. [16]

社會歷史 原理 [ 編輯 ]

1995年 10月 10日에 完工된 平壤 黨創建記念塔 .

主體思想의 社會歷史原理는 人民大衆의 社會歷史的 地位, 그들의 役割 等에 對해 敍述하는 部分으로, “人民大衆은 社會歷史의 主體이다.”라는 中心 命題를 基盤으로 하여 人民大衆이 社會歷史 原理에서 갖는 主體, 本質, 性格, 推進力을 解明하고 있다.

主體 [ 編輯 ]

主體思想은 “人民大衆이 革命과 建設의 主人이며 自然을 改造하고 社會를 발전시키는 決定的인 要因이다.”이라고 하면서, “自然과 社會의 改造를 통해 人民大衆의 地位는 强化된다.”고 말한다. 過去엔 人民大衆이 社會의 主人으로서 地位를 차지하지 못한 탓으로 歷史를 自主的으로 開拓할 수 없었으나, 勞動階級의 革命的 영도와 鬪爭의 結果로 搾取와 壓迫에서 解放되고 社會와 自己 運命의 참다운 主人으로서 歷史를 意識的으로 創造해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主體思想은 옳은 指導 없이는 勞動階級이 勝利할 수 없다는 것을 强調하면서 勞動階級을 비롯한 人民大衆은 黨과 首領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만 한다고 하며, 블라디미르 레닌 ( 러시아語 : Влади?мир Ле?нин ), 1870 - 1924)이 말했던 革命的 政黨의 必要性을 固守하는 基盤 위에서 守令의 指導性을 守護하는 態度를 取한다. [17]

이는 통하여 歷史 發展의 主體는 人民大衆이며, 그들의 自主的, 創造的, 意識的 活動에 따라 歷史가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主體史觀’(主體史觀)이라고 할 수 있다.

本質 [ 編輯 ]

主體思想은 人類 歷史 進步의 本質을 ‘人類社會의 發展歷史는 自主性을 擁護하고 實現하기 위한 人民大衆의 鬪爭의 歷史’라고 定義한다.

人類社會의 오랜 歷史를 통하여 사람들은 社會的 隸屬과 自然의 拘束에서 自身을 解放하기 위한 鬪爭을 끊임없이 벌여왔다. 社會와 自然을 改造하고, 人間을 改造하는 모든 鬪爭은 다 人民大衆의 自主性을 擁護하고 實現하기 위한 鬪爭이다.
?  金正日 , 『主體思想에 對하여』에서 [18]

더불어 人類의 오랜 歷史를 통하여 사람들은 社會的 隸屬과 自然의 拘束에서 自身을 解放하기 위한 鬪爭을 벌여왔는데, 여기서 社會 改造 鬪爭은 人民大衆이 階級과 民族의 禮俗을 벗어나기 위함이고, 自然 改造 鬪爭은 自主的 生活을 누릴 수 있는 物質的 條件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社會改造, 自然改造, 人間改造는 人民大衆의 自主性을 위한 鬪爭의 重要한 構成部分을 이룬다. … (中略) … 사람은 社會的 隸屬과 自然의 拘束, 낡은 思想과 文化의 拘束에서 解放되어야 自主性을 完全히 實現할 수 있으며, 또한, 自主性을 위한 鬪爭은 社會改造, 自然改造, 人間改造의 모든 領域에서 全面的으로 進行되어야 한다.
?  金正日 , 『主體思想에 對하여』에서 [19]

同時에 “帝國主義勢力이 國際的으로 聯合되어 있는 것만큼 帝國主義의 支配와 抑壓을 反對하고 自主性을 擁護하기 위한 鬪爭 亦是 國際的인 것이다.”이라고 말한다.

性格 [ 編輯 ]

主體思想은 歷史 性格에 對하여 “社會歷史的 運動은 人民大衆의 創造的인 運動이다.”라고 規定한다. 이는 ‘創造的 運動’이라는 表現으로 單純化할 수 있다. 金正日은 “人類歷史가 始作된 以來 人民大衆은 創造的 勞動으로 自然을 征服하고 自己의 生存과 發展에 必要한 財富를 만들어 왔으며, 낡은 것을 變革하는 創造的 活動에 依하여 社會는 發展하여 왔다. … (中略) … 人民大衆은 自然을 改造하고 社會를 발전시키면서 同時에 自己의 創造的 能力을 키워왔다.”라고 하였다. [20]

위에서 言及되는 ‘勞動’( 獨逸語 : Arbeit )은 칼 마르크스가 『1844年 經濟學 哲學 草稿』(Okonomisch-philosophische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에서 言及한 ‘意識의 一般性으로부터 導出된, 人間이 가진 諸般自然 創造性’의 正義로 代表할 수 있다. 以後에 나오는 ‘創造的 勞動을 통한 自然 征服 및 生存 繁榮 問題’도 이러한 意識性에 기초하고 있다. 主體思想은 이러한 人間勞動의 性格이 가진 創造性을 極大化하는, 人間의 能動的 性格이 歷史를 發展으로 이끄는 性格의 本質이라고 規定하는 것이다. 이러한 點에서 主體思想은 다시 한 番 機械主義와 消極主義의 可能性을 嚴格하게 遮斷하고 人民의 主體性을 强調하고 있다.

金正日은 ‘現 段階의 創造性’에 對하여 다음과 같이 規定하고 있다.

  1. 創造的 活動의 主導集團은 人民大衆이다.
  2. 自然과 社會를 改造하는 鬪爭은 時代發展을 考慮한다. 時代에 뒤쳐진 科學理論과 社會科學的 方法을 果敢히 버리고 모든 方面에서의 최신화를 追求한다.
  3. 史上活動에서의 敎條主義와 形式主義를 積極的으로 退治하고 變化하는 時代에 걸맞는 革命理論體系를 세운다.

이에 따라 ‘歷史 性格으로서 創造性’은 時代의 要求에 맞게 革命의 戰略과 鬪爭方針을 科學的으로 規定하고 人民大衆의 創造力을 끊임없이 높이 發揚시킴으로써 革命의 勝利를 믿음직하게 擔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1]

推進力 [ 編輯 ]

主體思想은 歷史 推進力에 對하여 “革命鬪爭에서 決定的 役割을 하는 것은 人民大衆의 自主的인 思想意識이다.”라고 規定한다. 이는 '自主的인 思想意識'이라고 單純化할 수 있다. 人民大衆이 가져야 할 自主的인 思想意識은 온갖 難關을 이겨내는 强靭한 意識과, 簡潔하고 明瞭한 意識으로부터 나오며, 이것은 人民大衆의 自主性과 直結되는 것이다.

指導 原則 [ 編輯 ]

指導的 原則은 黨, 國家 等 政治的 單位에 對해 敍述하는 部分으로, ‘自主的 立場’, ‘創造的 立場’, ‘思想基本的 立場’이라는 세 가지 테제를 中心으로 構成된다.

自主的 立場 [ 編輯 ]

自主的 立場에서는 主體思想 4大原則이라고 불리는 ‘思想에서의 主體(主體), 政治에서의 自主(自主), 經濟에서의 自立(自立), 國防에서의 自衛(自衛)’가 說明된다.

思想에서 主體 [ 編輯 ]

主體思想은 思想에서 主體를 세워야 政治, 經濟, 國防 等 모든 分野에서 主體를 세울 수 있다고 한다. 더불어 思想에서 主體를 세운다는 것은 革命과 建設의 主人이라는 自覺을 가지며 自己 나라 革命을 中心에 놓고 모든 것을 思考하고 實踐하며 모든 問題를 自己 힘으로 풀어나가는 觀點과 態度를 가지는 것이다. 이에 對해 金正日은 다음과 같이 敍述한다.

思想에서의 主體를 세우는 것은 自主性을 위한 人民大衆의 革命鬪爭에서 나서는 先次的 要求로서 革命과 建設의 主人이라는 自覺을 가지며, 自己나라 革命을 中心에 놓고 모든 것을 思考하고 實踐하며, 모든 問題를 自己의 智慧와 힘으로 풀어나가는 觀點과 態度를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 (中略) … 思想에서 主體를 세우기 위해서는 自己의 것에 精通해야 하고, 높은 民族的 自尊心과 革命的 自負心을 가져야 하며, 民族文化를 發展시키고, 文化 및 技術 水準을 높여야 하며, 特히 事大主義를 徹底히 뿌리뽑아야 한다고 主張하고 있는 것이다.
?  金正日 , 『主體思想에 對하여』에서 [22]

이와 함께 勞動階級의 革命思想과 自己 黨의 路線과 政策으로 武裝하여야 한다고 하여 조선로동당 의 唯一思想體系를 正當化하고 있다. 이를 爲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은 黨員의 敎養 및 人民大衆을 相對로 하는 思想事業에서 蘇聯의 影響을 줄이고 『 볼셰비키 黨舍』 代身 조선로동당 의 黨舍인 『조선로동당略史』(朝鮮勞動黨略史)를 敎材로 敎養事業을 하기로 하는 等의 움직임을 보였다. 이러한 움직임은 中小 紛爭 사이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갖고 있던 現實的인 外交 問題와도 連結되어있다.

政治에서 自主 [ 編輯 ]

主體思想에서 말하는 政治에서 自主는 勞動階級과 人民大衆이 國家와 社會의 主權을 쥐고 主人이 되는 것을 말하며, 同時에 對外關係에서 完全한 自主權과 平等權을 行使하는 것이 必要하다. 이를 基礎로 自主性과 國際主義를 結合시킨다는 것이 目標다.

이러한 立場은 當時 蘇聯의 修正主義化와 中華人民共和國의 改革開放 路線에 對한 안티테제로 登場한 面이 存在한다. 假令, 蘇聯의 境遇는 衛星國人 中央유럽 共産圈의 政治를 事實上 左之右之하고 있었는데, 結局 蘇聯이 修正主義 路線으로 政治를 指導하자, 이들 國家도 事實上 마찬가지로 修正主義 路線을 無批判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러한 修正主義 路線을 世界 共産主義 運動에서의 第一 害惡한 疾病으로 看做하였고, 이를 막기 위한 獨自的인 政治, 卽, 政治에서의 自主를 내세우게 된 것이다. [23]

經濟에서 自立 [ 編輯 ]

自立的 民族經濟를 建設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곧 自己 나라의 資源과 自己 人民의 힘에 依據하여 發展하는 經濟를 말한다. 그리고 重工業과 함께 輕工業과 農業을 同時에 발전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 ‘技術的 自立’李 要求된다. 또한 ‘民族技術人材問題’와 ‘自力更生의 原則’ 또한 重要한 問題이다. 더불어 ‘人民經濟의 主體化, 現代化, 科學化’를 戰略的 路線으로 삼는다.

國防에서 自慰 [ 編輯 ]

主로 帝國主義 를 反對하는 것을 目標로 하는데, 特히, 帝國主義는 戰爭의 恒時的 根源이며 오늘 侵略과 戰爭의 주되는 勢力은 美帝國主義라고 하여 美國 에 敵對感을 드러낸다. 國防에서 自慰를 實現하기 위해선 ‘自慰的 武裝力’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 “全人民的, 全國家的 防衛體系를 세워야 한다.”고 한다. 同時에 ‘全民의 武裝化와 全國의 要塞化’를 要求한다. [24]

創造的 立場 [ 編輯 ]

김정일은 主體思想의 指導的 原則의 또 하나의 要素로 ‘創造的 立場’을 들고 있다. 이 立場은 크게 ‘人民大衆에 依據하는 方法’(群衆路線)과 ‘失政 狀況에 맞게 行하는 方法’(失政性)이라는 두 가지 方法論으로 나눠진다. [25]

群衆路線 [ 編輯 ]

主體思想은 人民大衆에 對해 革命과 建設을 밀고 나가는 決定的 力量으로 規定한다. 그렇기에, 人民大衆에 依據하여 革命과 建設을 成功的으로 遂行해야 한다. 그 方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說明할 수 있다. [26]

  1. 大衆의 要求와 志向을 反映하여, 올바른 路線과 政策을 세우며, 그것을 大衆 自身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2. 當面 群衆의 要求와 階級路線을 옳게 結合하여 大衆을 하나의 政治的 力量으로 묶어 세워야 한다.
  3. 人民大衆으로 하여금 革命과 建設의 主人으로서 立場을 지키고 主人으로서 役割을 다하게 하는 革命的 事業方法을 確立해야 한다.

(1)은 革命事業에서의 大衆의 要求를 考慮해야 한다는 原則인데, 假令, 黨幹部가 人民의 要求를 外面하거나 神經 쓰지 않은 狀態에서 自身만의 獨自的인 方式으로 地域革命事業을 處理했을 때의 問題點을 羅列하고 있다. 아무리 그 事業方式이 마르크스-레닌주의 基本 原則에 忠實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人民大衆의 要求와 指向點에 어긋난다면, 이를 서로 結合하여, 共産主義 原則이 곧 人民大衆의 志向과 一致하다는 것을 說得해야 한다. 이러한 立場은 곧 (2)와 連結된다.

이에 따라, (3)을 理解할 수 있다. 例를 들어, 한 地域의 革命事業이 急하다는 理由로 農民階級에 屬한 群衆에게 勞動集約的 産業 役割을 附與한다면, 群衆은 이를 理解할 수 없을 것이며, 이러한 革命事業에 對한 主人意識 또한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過程에서 專門性의 問題가 생기며 이는 곧 黨 政策의 失敗로 이어질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러한 그릇된 地圖를 避하기 위해 最大限 人民大衆의 要求, 그들의 指向點을 形式的 層位에서의 革命事業과 結合해야 함을 强調하고 있다. [27]

失政性 [ 編輯 ]

群衆路線에 기초하여 實情性(實情性)을 理解할 수 있다. 失政姓은 革命事業面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또는 어떤 나라의 革命 原則이 오늘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現實에는 반드시 들어맞는 것이 아니므로, 現實의 實情을 勘案하여 創造的 處方, 政策을 내세워야 한다는 槪念이다. 假令, 經濟建設 側面에서는 經濟難, 特히, 資源不足과 技術落後 等의 現實을 勘案하여 自己實情에 맞는 方法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오시프 스탈린 이 自身의 著書인 『辨證法的 唯物論』 第7張의 「普遍과 個別」에서 强調한 것이다. ‘失政性’에 對한 立場은 ‘內容과 形式’, ‘可能과 現實’에서 드러난 스탈린의 立場을 그대로 反映하고 있다. [28]

思想基本的 立場 [ 編輯 ]

思想基本的 立場은 크게 ‘思想改造先行’(思想改造先行), ‘政治事業先行’(政治事業先行)이라는 두 가지 槪念으로 이루어져 있다. 主體思想은 共産主義로의 履行에서 理念에 先次性을 附與하고 있다. 앞서 言及한 實情聖徒 또한 理念과 現實을 結合하는 鬪爭인 것이다. 金正日은 蘇聯共産黨 修正主義와 中國共産黨의 市場 路線이 바로 이러한 것을 놓쳤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하였다. 萬若에 失政性 卽, 現實性이 理念보다 優位에 서게 되면 現存하는 社會主義國家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基本 原則을 無視하게 될 것이고 그 結果 世界私的 退行을 불러오는 政治事業만을 하고 結局 革命을 망칠 것이다. 金正日은 이러한 것을 指摘하고, 이것을 豫防하기 위하여 ‘思想基本的 立場’을 强調하였다.

思想改造先行 [ 編輯 ]

김일성과 김정일은 社會의 모든 成員들을 革命化, 勞動階級化하여 그들을 주체형의 共産主義的 人間으로 改造하는 것을 온 社會를 主體思想化 하기 위한 重要한 革命課業이라고 提示하면서 思想改造를 통한 共産主義的 人間改造를 强調하고 있다.

思想改造는 사람들의 思想意識領域에서 낡은 社會의 遺物을 終局的으로 없애고 모든 勤勞者들을 先進的인 勞動階級의 思想, 共産主義 思想으로 무장시키기 위한 鬪爭이며, 搾取階級이 淸算된 社會主義社會에서 벌어지는 階級鬪爭의 基本形式을 이룬다. 이러한 思想改造는 革命的 世界觀을 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總體的으로 ‘主體革命館’(主體革命觀) 또는 ‘品性論’(品性論)이라고 불린다. 그것은 社會全般에서의 共産主義道德 培養과, 黨과 國家, 그리고 守令에 對한 忠誠으로 要約할 수 있다. [29]

世界史的으로 볼 때 이러한 思想改造先行作業은 中華人民共和國의 文化大革命 으로도 說明될 수 있다. 思想改造善行은 人民大衆이 革命的 黨으로부터 離脫하지 않고 黨의 일은 곧 自身의 일이라는 意識을 일깨우기 위한 作業이라고 理解할 수도 있다.

政治事業先行 [ 編輯 ]

政治事業을 先行한다는 것은 다른 모든 事業에 앞서 人民大衆을 黨의 路線과 政策으로 무장시키고 그들의 革命的 熱意를 불러일으킴으로써 大衆 自身이 높은 自覺性과 積極性을 가지고 革命鬪爭과 建設事業을 成果的으로 遂行토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金正日은 이러한 政治事業先行作業은 絶對 官僚主義로 이룰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强調하면서, 黨員의 精銳化를 主張하고 있다. 卽, 黨은 앞서 論議된 失政性을 바탕으로 人民大衆을 꾸준히 說得하고, 그들의 同意를 얻어내어 그들과 함께 政治事業을 完遂해야 한다. 이 作業에서 重要한 것은 結局 反官僚主義(反官僚主義)라고 할 수 있다. [30]

革命 理論 [ 編輯 ]

革命 理論은 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論, 社會主義生産理論, 植民地民族解放론, 革命的 首領論 네 가지로 構成된다.

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論 [ 編輯 ]

1910年代 後半부터 始作된 朝鮮共産主義運動은 日帝强占期라는 特殊性下에서 進行되었다. 初期 系派는 火曜派, ML派, 서상派 等으로 分類가 되었는데, 이 中 화요파는 가장 左傾的인 系派로, 中國 革命家인 리리싼(而立三)의 소비에트路線을 따르고 있었다. 이들은 朝鮮과 滿洲 地域의 革命段階엔 差異가 없으며, 日帝가 이미 朝鮮에 對해 獨占資本主義 正體를 성립시켰기에 곧바로 社會主義段階로 나아가야 한다고 主張하였다. 勿論, 이러한 觀點은 火曜派 뿐만이 아닌 ML派 및 서상波濤 일정하게 共有하고 있었다. [31]

이들은 中國共産黨 滿洲性委員會 內 敎條主義者들과 連繫하여 1930年 5月 30日에 間島 5·30 蜂起 를 일으켰으나, 이 運動은 별다른 變化를 이끌지 못 하고 오히려 수많은 革命家들과 學生運動家들이 死亡한, 戰術的으론 失敗한 蜂起였다. [32]

當時 右傾路線과 左傾路線을 모두 反對했던 김일성은 1930年 7月 2日 지린省 長春 에서 主催된 카輪 會議에서 『朝鮮革命의 進路』를 發表하였다. 그리고 이 路線에서 主張된 것이 바로 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論(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論)이다. [33]

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論은 當時 朝鮮 現實을 植民地反封建社會(植民地半封建社會)로 規定하였다. 이는 植民地朝鮮에 對해 “完全한 封建社會이다.”라는 解釋과 “完全한 資本主義社會이다.”라는 두 가지 立場과는 다른 것이었다. 김일성은 當時 植民地朝鮮이 階級的 地盤 問題로 인해 封建制와 부르주아性이 婚材된 狀態로 存在하고 있다고 理解하였다. 이는 日本帝國主義의 影響力으로 인해 朝鮮社會의 資本主義 發展 程度가 極度로 抑制되고 있다고 한 것과 같다. 卽, 日本帝國主義는 收奪과 基本的 政治的 權利 剝奪 等 抑壓 手段을 통하여 朝鮮의 內在的 發展 可能性을 完全히 抑制하고 있고, 그 結果 朝鮮이라는 封建性과, 日本帝國主義 主導의 移植的 資本主義性이 同時에 存在하고 있는 反封建(半封建)社會라는 것이다. 그 實證的 根據는 日本人 및 日本의 後援을 받는 國內 地主에 依한 朝鮮人民의 自主的 土地 所有權 侵害, 日帝 支配로 인한 朝鮮 末 資本主義的 農業 生産關係로의 轉換 正體 그리고 그 同時에 帝國主義侵略을 위한 前哨基地로서의 部分·狹小的인 工業化 等이 있다. 이는 마오쩌둥 思想 의 新民主主義革命론(新民主主義革命論)과 類似한 地點이다.

이 理論의 結果로 김일성은 解放 後 勞農地圖에 基盤한 人民民主主義政府를 세웠다. 이 時期 政權은 人民大衆階層에 利로운 民主主義 施策을 施行하며, 社會主義로 나아가기 爲한 社會·經濟的 土臺를 쌓는다. 그 後 1972年에는 憲法 改正을 통하여 現在의 社會主義政府 段階에 進入했다는 것을 宣言하였다. 主體思想은 南朝鮮革命의 性格에 對해서도 이러한 立場을 固守한다. 大韓民國은 美帝國主義의 影響力 아래에 부르주아民主主義의 이로운 點이 穩全히 實行되지 않는, 從屬된 植民地反封建社會이며, 이로 因해 南朝鮮革命의 課題는 當代 現實에 맞게 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이라는 것이다. [34]

"南朝鮮人民이 만들어야 할 民主主義"는 ‘人民民主獨裁政府’이므로, 이것은 勞動階級과 農村勞動大衆에 依해 主導되는 民主主義라고 할 수 있으며, 社會主義로 나아가기 위한 客觀的 條件을 마련하는 時期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立場은 1970年代 末부터 登場한 大韓民國 學生運動圈에 큰 影響을 줬다. 特히, 植民地性이라는 特殊性을 考慮하는 것과 當代 革命의 段階를 人民民主主義段階로 設定한 系派를 NLPDR(民族解放人民民主主義革命論, 民族解放人民民主主義革命論)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마오쩌둥 思想과 主體思想이라는 當代 特殊性을 考慮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社會 變革의 中心 槪念으로 잡았다 [34]

1990年代 末 以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南朝鮮革命의 段階에 對해 이렇다 할 特別한 觀點을 내보이지 않고 있었으나, 2016年에 改正된 조선로동당 黨規에는 朝鮮 全體의 革命을 民族解放民主主義革命(民族解放民主主義革命)으로 規定하였다. 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國內로 들어온 日本의 共産主義者들에게 主體思想을 强要하지 않고, 그들만의 獨自的인 마르크스-레닌주의를 創造해야 한다는 點을 밝힌 것과 對照的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5]

프롤레타리아 道德主義 [ 編輯 ]

主體思想의 生上力 理論은 基本的으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影響을 받았으나, 人民大衆의 思想改造를 强調한다는 點에서 큰 差異點이 存在한다. 그 代表的인 敍述은 『主體思想에 對하여』에서 確認할 수 있다.

그러나 政治道德的 刺戟을 輕視하고 物質的 刺戟을 爲主로 하는 것은 社會主義制度의 根本性格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것은 勤勞者들 속에서 利己主義를 調停하고 그들을 돈이나 物質에만 매어 달리게 하며, 結局 社會主義制度와 革命의 戰取物을 腐蝕시키는 매우 危險하고 유해로운 偏向이다. 따라서 社會主義 下에서는 어디까지나 政治道德的 刺戟을 爲主로 해야 한다. 政治道德的 刺戟을 爲主로 하여야 人民大衆이 나라와 革命의 主人으로서의 立場과 態度를 올바로 가지고 自覺的 熱誠을 내어 일하도록 할 수 있다.
?  金正日 , 『主體思想에 對하여』에서 [36]

이는 意識性을 强調하는 主體思想의 特性에서 나오는 것이다. 意識은 辨證法的 唯物論에 따라 物質의 反映이며, 人間은 이 原理에 따라 世界를 解釋하는 辨證 過程을 거치며 社會發展의 動力이 되나, 어디까지나 그 動力의 最一線에 서 있는 것은 物質 自體가 아닌, 意識이다. 勿論, 意識은 物質 밖에서 따로 存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反映된 意識, 그리고 그 後 高揚된 意識은 世界를 解釋하고 歷史 鬪爭에서 實質的인 役割을 擔當하는 主要 材料이다. 意識은 物質로부터 나오지만, 發展된 意識은 다시 物質을 改造하여, 社會 變革을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意味에서 物的土臺의 지나친 强調는 意識의 能動性, 卽, 發展된 意識性이 發生하는 데에 妨害가 될 수 있다. 鎭靜 社會主義의 發展을 促進하고 共産主義로의 移行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世界를 革命的으로 解釋할 수 있는 敎育과 思想改造가 이루어져야 하며, 프롤레타리아 道德主義를 固守해야 한다. [37]

植民地民族解放론 [ 編輯 ]

金正日은 "마르크스에 依하여 開拓된 勞動階級의 革命偉業을 完成하는 데서 現時期에 重要하게 나서는 課業은 帝國主義를 反對하고 世界의 自主化를 다그쳐 나가는 것이다."라고 前提하고 그의 帝國主義論을 다음과 같이 展開하고 있다.

國際舞臺에서 오랫동안 展開되어 온 植民主義, 帝國主義를 反對하는 鬪爭은 只今도 繼續되고 있으며, 더욱더 激烈하게 벌어지고 있다. 植民主義, 帝國主義는 人類歷史에서 自主性에 對한 人民大衆의 志向과 要求를 짓밟는 最後의 搾取制度이며, 階級的 支配와 民族的 壓迫을 結合시킨 가장 橫暴한 抑壓制度이다. … (中略) … 美製를 우두머리로 하는 現代帝國主義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나 滅亡하여 가는 지들의 處地를 救援해 보려고 必死的으로 날뛰고 있다. 特히 帝國主義의 全般的 危機가 실혐됨에 따라 帝國主義者들은 自己나라 勞動階級과 勤勞人民大衆을 苛酷하게 彈壓할 뿐만이 아니라, 國際共産主義運動을 反對하는 侵略과 破壞行爲를 더욱 强化하고 있다.
?  金正日 ,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의 旗幟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에서 [38]

以後 김정일은 立場을 簡略化하여 “帝國主義를 終局的으로 멸망시키고 世界革命의 勝利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反帝反美鬪爭을 强化해야 한다.”라고 밝혔으며, “反帝反美鬪爭을 强化하는 데서 무엇보다 重要한 것은 社會主義國家들과 共産黨, 勞動黨들이 半制的 立場을 堅持하고 國際帝國主義를 反對하는 鬪爭을 힘있게 벌여야 한다.”라고 主張함으로써 社會主義國家가 反修正主義 外交에 同參해야 함을 說破했다. [39]

이와 더불어 金正日은 南아메리카, 東南아시아, 아랍, 아프리카 等地의 革命運動을 積極的으로 支援해야 함도 主張했는데, 이는 反帝國主義와 國際主義 連帶를 强化하려는 積極的인 試圖로 보인다. 實際로 이 時期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아프리카 貧國에 수많은 基盤 施設 및 醫療 施設 建設을 위한 資金 支援을 해주기도 하였으며, 이는 現在까지 이어지는 國際革命事業이기도 하다. 또한, 主體思想 文獻은 南아메리카와 아프리카 等地의 民族解放運動家들에 依해 폭넓게 읽히고 있다.

革命的 首領官 [ 編輯 ]

러시아 革命家인 블라디미르 레닌이 “프롤레타리아 前衛黨만이 프롤레타리아와 全體 勤勞者大衆의 前衛를 統一하고 育成하며, 또 組織할 수 있고, 그들을 革命隊列에 끌어들일 수 있다.” [40] 라고 했던 것처럼, 金正日도 또한, “人民大衆이 實際로 社會歷史의 主體가 되기 위해서는 黨과 指導者의 指導와 結合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이는 革命的 黨의 役割을 重視한다는 點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의 共通點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主體思想은 “守令의 地圖를 排除하고 黨의 指導만을 强調하는 革命的 黨은, 그 黨에 對한 人民의 이반을 必然的으로 불러온다.”라고 規定하여 守令의 指導를 强調하고 있다. 이는 旣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差別되는 支店이라고 할 수 있는데, 主體思想에서는 이를 '革命的 首領官'이라고 한다.

革命的 首領官은 김정일의 論文인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打倒帝國主義同盟의 傳統을 繼承한 主體型의 革命的 黨이다』에서 登場하는 ‘조선로동당의 金日成糖化’라는 標語를 簡明하게 理解할 수 있다. [41] 그는 『主體思想에 對하여』라는 論文을 통하여 革命的 首領官의 커다란 두 가지 槪念을 提示하였다. 첫 番째는 ‘革命鬪爭에서 守令이 차지하는 地位와 役割에 對한 勞動階級의 올바른 觀點’이라는 主題인데, 여기서 金正日은 抗日鬪爭時期 朝鮮共産主義運動의 宗派性을 言及한 後 黨의 民主主義的 中央集權制 原則이 實際로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에 對해 考察한다. 레닌이 밝혔듯이, 黨內 宗派主義는 革命을 妨害하는 要素이며, 그것을 效果的으로 除去하기 위하여 民主集中制를 採擇해야 하지만, 實際 現實에서는 黨만을 强調함으로써 얻는 것은 黨內 宗派主義에 對한 幇助이다. 實際 民主集中制 原則에 따라 黨이 決定한 것을 下部組織이 基本的으로 따라야 하지만, 萬若 黨의 테제를 決定하는 上位集團 內部에도 宗派主義가 浸透한 狀態라면, 民主集中制는 作動할 수 없게 된다. 結局 그 結果로 黨 일꾼들은 어떠한 것이 ‘決定된 事案’인가를 알 수 없으며, 革命活動은 退潮期를 맞을 수 있다.

김정일은 黨內 宗派主義가 過去 共産主義運動에서 어떠한 害惡을 끼쳤고, 現在 그것이 어떻게 修正主義를 불러오고 있는지 分析한 後, 最終的으로 그 解決策을 革命的 首領官에 基盤하여 說明한다. 그 骨子는, 革命 活動에서 黨의 包括的 決定보다는 黨中央의 뜻을 體現하는 守令의 決定이 重視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要約할 수 있다. 그리고 革命을 이끌 守令이 갖춰야 할 세 가지 稟性으로 ‘革命思想의 偉大性’ [42] , ‘革命的 영도의 偉大性’ [43] , ‘革命的 風貌의 偉大性’ [44] 을 들고 있다. [45]

두 番째는 ‘守令을 모시는 立場과 姿勢’인데, 이는 革命活動에서 守令에 忠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革命的 首領論은 김일성이 김정일에게 指導者 자리를 물려주기 위한 事前作業이라는 評價도 또한 存在한다. 革命的 首領官 槪念은 오늘날 韓半島 內 共産主義運動에서 커다란 論難을 낳고 있는 槪念이기도 하다.

影島 方法 [ 編輯 ]

만수대對記念碑 안에 세워진 김일성과 김정일 銅像.

影島 方法은 影島體系, 領導藝術 等 守令의 指揮를 實現하기 위한 黨-國家의 組織體系, 人民大衆을 움직이는 方法 等을 說明한다.

主體의 影島 方法은 모든 것을 人民大衆의 힘에 依據하고 人民大衆의 創造的 힘을 發動하여 解決해 나갈 데 對한 要求를 提示함으로써 世界와 歷史의 主體로 自覺된 사람들의 創造力을 倍加하고 그 힘을 自主의 새 世界를 創造하는 데로 이끌어 갈 수 있는 方道이다. [46]

이 影島 方法은 基本的으로 革命 理論의 群衆路線을 基本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은 또한 김일성의 抗日遊擊隊式 革命事業 方法과 密接하게 聯關된 것이다. 이것은 크게 세 가지로 分類될 수 있는데, ‘靑山里方法’, ‘代案事業體系’, ‘3代革命小組運動’이 그것이다.

김정일에 依하면 主體思想의 革命事業方法은 ‘돈과 채찍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方法이나 行政式, 命令式 事業方法과는 根本的으로 對立되는 것’으로 늘 群衆 속에 들어가 實情을 깊이 요해하여 問題解決의 올바른 方道를 세우며, 위가 아래를 實속있게 도와주며, 모든 事業에 政治事業을 앞세워군중이 革命課業 遂行에 自覺的으로 動員되게 하며, 格式과 틀이 없이 모든 問題를 具體的 特性과 環境에 맞게 創造的으로 풀어나가는 革命的이고 共産主義的인 事業方法이다. [47]

靑山裏 方法 [ 編輯 ]

김정일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의 旗幟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에서 “一群들의 事業方法과 作風을 改善하는 데서 우리 黨이 堅持하고 있는 基本方針은 김일성首領이 創造한 靑山裏 精神, 靑山裏 方法을 貫徹하는 것이다.”라고 하여 이 方法이 主體의 影島 方法의 核心이 되는 것임을 表明하고 있다. [48] 主體思想 學者들에 따르면, 所謂 靑山裏 精神에는 ‘革命的 群衆路線’이나 ‘大衆 指導의 基本 原則’들이 集大成되어 있다고 한다. 이 靑山裏 精神이라는 것은 1960年 2月 김일성이 直接 平安南道 江西郡 靑山裏에 나가서 農村指導의 本보기를 보인 것으로 宣傳되고 있는데, 그 內容은 다음과 같다. [49]

  1. 勤勞人民 속에 들어가 그들의 實相과 要求에 맞게 指導하며, 大衆을 動員한다.
  2. 먼저 敵對分子들을 除外한 모든 社會成員들을 敎養·改造한다.
  3. 勤勞大衆의 熱誠과 創造的 積極性을 動員한다.
  4. 靑山裏 方法의 基本은 웃機關이 아랫機關을 도와주고 現地에 내려가 實情을 깊이 알아보고 問題解決의 올바른 方道를 세우는 것이다.
  5. 모든 事業에 政治事業을 앞세운다.

(1)에서 (4)까지는 全般的으로 失政城에 基盤한 革命指導方法을 紹介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러한 '靑山裏 方法'을 憲法前文에 明記할 程度로 重視하고 있다.

代案事業體系 [ 編輯 ]

金正日은 社會主義經濟란 國家의 中央集權的 指導에 依해서만 成果的으로 管理, 運營될 수 있다고 하였다. 特히, 代案事業體系를 基本的으로 하는 主體的인 社會主義 經濟管理體系의 優越性을 높이 發揚시켜야 한다고 說明하고 있다. 김정일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의 旗幟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에서 代案事業體系에 對해 “社會主義制度의 本性에 가장 알맞는 가장 優越한 經濟管理體系이다. 代案事業體系는 黨 委員會의 集體的 指導 밑에 群衆路線을 徹底히 貫徹하며 經濟를 科學的으로, 合理的으로 管理運營하는 主體의 經濟管理形態이다.”라고 하였다. [50]

代案事業體系는 1961年 12月 9日 金日成이 남포시에 있는 代案 電氣工場을 現地指導 하여 確立했다는 것으로서, 社會主義體制의 固有한 難點을 彌縫的으로 解決하고자 하여 마련한 것이다. 그 骨子는 다음과 같다. [51]

  1. 以前의 支配人 單獨책임제에서 工場 黨 委員會에 依한 所謂 集體的 指導制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것은 黨 優位原則에서 管理幹部, 黨幹部, 技術幹部 사이의 對立을 解決하려는 것이며, 工場 黨祕書가 單獨으로 責任을 지는 것이 아니라 工場 黨 委員會가 企業管理의 最高決定機關이 된다.
  2. 資材를 中央集中的으로 供給하여 各 職場은 生産에만 專念토록 하고, 綜合的·集中的으로 生産指導를 行한다.
  3. 周邊 協同農場과 連繫하여 工場經營委員會가 用役, 日用品 部門에서 勞動者의 生活을 保障하는 後方供給體系를 갖춘다.

結果的으로 代案事業體系는 産業 施設 運營에서 黨의 主導性을 確立한 위에 工場과 勞動者의 一體感, 勞動者의 前 生活過程을 緊密히 結合한 形態로 體系化하려고 試圖한 點에서 特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3代革命小組運動 [ 編輯 ]

金正日은 ‘社會主義社會의 過渡期的 性格’을 克服하고 共産主義社會를 建設하자면, 思想, 文化, 技術의 落後性을 淸算하기 위한 革命을 繼續하여야 한다는 論理로부터 3代革命小組運動을 내세웠다. [52]

思想革命 [ 編輯 ]

思想革命은 朝鮮 現實에 맞는 獨自的인 마르크스-레닌주의 理論을 構築하고, 이 革命路線에 따라 廣範圍한 人民大衆을 指導하고, 持續的으로 思想敎育을 實施하여 全人民을 革命化해야 한다는 理論이다. 이러한 基調는 앞서 說明한 바와 같이 蘇聯共産黨과 中國共産黨의 修正主義化와 兩大 紛爭이라는 當代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수한 現實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思想革命에 따라 勞動階級과 農村의 農民階級에 對한 持續的인 思想敎育事業을 進行했으며, 學校 敎育에도 別途의 思想敎育時間을 새로이 構成하여 學生들을 革命化하였다.

文化革命 [ 編輯 ]

金正日은 共産主義 人間에 맞는 品性을 開發하기 위해 單純 經濟主義 鬪爭이 아닌 文化의 鬪爭을 積極的으로 敢行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社會主義制度에 걸맞는 人性 培養과 共産主義 人間으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되는 藝術(文學·映畫·音樂 等等) 確立에 있다. 實際 1980年代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文化藝術界에서는 김일성의 抗日遊擊隊에 關聯된 수많은 映像物이 製作되었으며, 當代의 鬪爭과 1980年代 主體思想의 革命精神을 藝術的으로 서로 連結시키려는 巨大한 흐름이 있었다.

同時에 外部에서 流入되는 資本主義 文化에 對한 檢閱은 한層 더 强化되었다. 金正日은, 人間을 卑賤하게 만들고 欲求中心的인 思考를 하게 하여 結局 全人民의 反動化를 이루려는 것이 資本主義 文化藝術의 本質이라고 하였는데, 그 正確한 內容은 다음과 같다.

美國과 그 追從 나라의 文化藝術界를 觀察했을 때 共通的으로 드러나는 것은, 人間에 對한 不信, 그리고 人間이 가진 第一 低劣한 感性을 刺戟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藝術行爲는 그 나라의 勞動階級에게 甚大한 意識的 打擊을 주며, 終局에는 階級意識이 存在할 수 없게 되는 歷史의 不具者로 만드는 徹底한 反動 行爲이다. 이것은 共産主義로의 履行期에서 人間이 가져야 할 同志愛, 愛國心, 革命觀과는 正反對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黨은 文化藝術界에서 온갖 頹廢享樂主義를 물리치고, 그 結果로 健康한 共産主義文化藝術이 자라날 수 있는 土壤을 만들어야 한다.
?  金正日 , 『映畫藝術論』에서 [53]

따라서 文化革命의 路線에 따라 資本主義 流入물은 더욱더 嚴格히 統制되었다고 볼 수 있다.

技術革命 [ 編輯 ]

技術革命度 또한 思想革命에서와 마찬가지로 當時 蘇聯과 中華人民共和國 모두에게 經濟的 支援을 받기 困難한 특수한 環境에서 나온 産物이다. 主體思想 影島 方法에서 技術革命이란, 모든 技術에 對해 大國에 依存하지 않고 自國 人民大衆의 創造力과 知的 活動에 基盤하여 技術發展을 꾀하는 것을 意味한다.

批判 [ 編輯 ]

主體思想의 哲學的 原理의 基本은 “사람이 모든 것의 主人이며 모든 것을 決定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首領論 으로 인해 主體思想은 主體性을 잃고 一人獨裁體制의 도구화된 哲學으로 變質되었다고 評價받는다.

南韓에 主體思想을 傳播했던 김영환은 다음과 같이 批判했다.

“守令이 文化大革命과 같은 誤謬를 犯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質問을 反復했지만 그들은(조선로동당 幹部들) 全혀 엉뚱한 對答만 늘어놓고 答을 하지 못했다. 世上에서 主體思想을 硏究할 自由가 없는 곳은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事實을 分明히 알 수 있었다. [54]

對外的으로 非同盟權 國家에게는 共産主義 世界革命論이라는 批判이 있다. 主體思想의 ‘人間中心 世界觀’은 人間이 自己 運命의 主人이며 開拓者라고 主張하는데, 이는 카를 마르크스 가 客觀的인 社會的 存在가 人間의 意識을 決定한다는 前提下에서 理論을 展開한 것과 差異가 있다. 또한 이 ‘人間中心’의 世界觀은 勞動大衆 中心主義로, 레닌主義 的인 勞動階級의 先導者로서의 黨의 役割로, 그리고 黨의 唯一한 리더로서 김일성, 김정일의 個人 獨裁를 合理化시키기에 이르며, 1967年 조선로동당 黨中央委員會 4期 16次 全員會議 以後 個人崇拜 運動으로 이어지는 思想的 根據가 되었다.

또한 主體思想은 駐韓美軍 이 아직까지 駐屯하고 있다는 理由로 休戰線 南部가 美國 의 占領下에 있는, 美收復地域으로 남았기에 朝鮮 革命 은 아직 進行 中이라 主張하고 있으며, 大韓民國 은 主體思想이 김정일의 獨裁를 確固히 하는 道具가 되었다고 批判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國防에서 自慰를 强調하지만, 지나치게 軍事力에 集中하고 革命路線을 堅持함으로써 南北韓 軍事競爭을 加速化하여 人民과 國家에 큰 負擔을 안겼으며, 結局 資源의 非效率的 分配로 인해 國家의 生産性을 弱化시켜 世界 競爭體制에서 뒤처지는 國家로 轉落했다. 또 오늘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先軍政治 를 强調함으로써 資源과 權力의 軍部集中을 加速化하는 事態는 軍國主義를 發展시킬 憂慮를 심화시키고 있다.

主體思想은 또한 經濟의 自立을 强調한다. 國內에서 算出할 수 없는 石油 稀土類 같은 資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는 不可能하다는 것이 大槪의 意見이다.

主體思想의 宗敎的 要素는 首領官에서 分明히 나타나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哲學 辭典은 守令을 ‘革命과 建設에서 絶對的 地位를 차지하고 決定的 役割을 遂行하는 黨과 革命의 越等한 領導者’라고 定義하고 있다. [55] 여기서 守令을 ‘絶對的’이라고 함으로써 信仰的 性格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政治를 信仰的으로 보는 것과 關聯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政治는 아직 世俗化되지 않은 信仰化 體制로 理解해야 한다는 見解도 있다. 또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政治 文化를 理解하는 데 傳統 社會 支配 階層의 이데올로기인 儒敎뿐 아니라 人民의 精神世界에 支配的 影響을 미친 巫俗 信仰을 理解하는 것이 重要하다는 見解도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政治 文化는 閉鎖 體制 以前으로부터 殘留한 巫俗 信仰, 有, 佛, 選의 傳統 宗敎, 基督敎 等의 影響을 反映하며 統治階層은 이러한 宗敎的 情緖를 意圖的으로 權力構築에 活用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56]

  • 金日成, 1955年 12月 28日 〈思想事業에서 敎條主義와 形式主義를 退治하고 主體를 確立할 데 對하여〉
  • 金日成, 1960年 2月 18日 〈새 環境에 맞게 軍黨團體의 事業方法을 改善할데 對하여〉
  • 金日成, 1963年 2月 8日 〈우리의 人民軍隊는 勞動階級의 軍隊, 革命의 軍隊이다. 階級的政治敎養事業을 繼續 强化하여야 한다〉
  • 金日成, 1963年 10月 5日 〈우리 人民軍隊를 革命軍隊로 만들며 國防에서 自慰의 方針을 貫徹하자〉

各州 [ 編輯 ]

  1. s: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_社會主義_憲法#.EC.84.9C.EB.AC.B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社會主義 憲法 序文
  2. http://www.kplibrary.com/nkterm/read.aspx?num=289
  3. [1]
  4. 《北韓의 經濟》. 京仁文化史. 2006年 11月 25日. 12-13쪽.  
  5.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 2015年. pp. 250-251, 338-339, 341-342
  6. 金正日 저, 『主體思想 敎養에서 提起되는 몇가지 問題에 對하여』(근로자, 1987年) p. 5
  7. 金正日 저, 『主體思想 敎養에서 提起되는 몇가지 問題에 對하여』(근로자, 1987年) p. 6
  8.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81
  9. 이오시프 스탈린 저, 김성환 譯, 『辨證法的 唯物論』(白頭, 1988年) pp. 68 - 75
  10. 理想걸 저, 『親愛하는 指導者 김정일 同志의 《主體思想에 對하여》 解釋』(平壤社會科學出版社, 1983年) pp. 52 - 53
  11. 이것은 單純한 自由意志와 區別하여 理解하여야 한다. 主體思想에서 自主性은 人間이 가진 物質的 基礎로부터 發生하는 本性이다.
  12. 기세춘 저, 『主體哲學 노트』(세훈, 1997年) pp. 43 - 45
  13.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 한철 譯, 『반뒤링론』(이成果現實, 1989年) pp. 177 - 180
  14. 김상일 저, 『腦의 衝突과 文明의 衝突』(지식산업사, 2007年) pp. 243 - 246
  15. 오늘날 行動主義는 그 硏究 方法의 限界로 인해 事實上 學界에서 死滅 段階에 있다.
  16. 김상일 저, 『腦의 衝突과 文明의 衝突』(지식산업사, 2007年) pp. 155 - 158
  17.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p. 86 - 87
  18.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89
  19.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60
  20.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95
  21.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97
  22.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p. 103 - 105
  23. 編輯部 저, 『主體思想 硏究』(太白, 1989年) p. 37
  24. 編輯部 저, 『主體思想 硏究』(太白, 1989年) p. 38
  25.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115
  26.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p. 116 - 118
  27. 編輯部 저, 『主體思想 硏究』(太白, 1989年) p. 39
  28.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119
  29.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p. 122 - 124
  30.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p. 125 - 126
  31. 로버트 스칼라피노, 이정식 저, 한홍구 譯, 『韓國 共産主義運動史』(돌베개, 2015年) pp. 158 - 159
  32. 로버트 스칼라피노, 이정식 저, 한홍구 譯, 『韓國 共産主義運動史』(돌베개, 2015年) pp. 330 - 332
  33. 로버트 스칼라피노, 이정식 저, 한홍구 譯, 『韓國 共産主義運動史』(돌베개, 2015年) pp. 338 - 340
  34. 反帝反封建民主主義革命論 情報
  35. 다미야 다까마로 저, 나영주 譯, 『우리思想의 革命』(論藏, 1989年) pp. 129 - 135
  36.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p. 125 - 126
  37. 金正日 저, 『主體思想 敎養에서 提起되는 몇가지 問題에 對하여』(근로자, 1987年) pp. 9 - 10
  38. 金正日 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의 旗幟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3年) p. 18
  39. 金正日 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의 旗幟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3年) p. 19
  40. 블라디미르 레닌 저, 김민호 譯, 『무엇을 할 것인가?』(백두, 1988年) p. 125
  41. 金正日 저, 『조선로동당은 영광스러운 打倒帝國主義同盟의 傳統을 繼承한 主體型의 革命的 黨이다』(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20
  42. 守令은 共産主義思想을 現實에 맞게 創造할 수 있는 能力을 갖춰야 한다. 萬若, 이러한 能力을 갖추지 못 할 境遇에는 自國에 맞지 않는 他國의 革命理論을 그대로 輸入하여 現實 對應을 하지 못 하게 될 것이다.
  43. 革命思想이 선 다음에는 더욱더 現實的인 鬪爭指導能力이 있어야 한다. 假令, 思想은 옳지만 具體的 鬪爭 事案에서 제대로 指導하지 못 할 境遇 革命의 敵에게 敗北하게 될 것이다.
  44. 守令은 單純히 知的 能力, 鬪爭 指揮 能力만이 아닌, 個人的 稟性에 있어서도 模範이 되어야 한다. 端正한 차림새, 精製된 말套, 여러 生活 面에서의 節制性 等이 있다.
  45.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160 - 163
  46. 탁 陳, 김강일, 박홍재 저, 『김정일 指導者』(동방사, 1984年) pp. 17 - 18
  47. 金正日 저, 『主體思想에 對하여』(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2年) p. 117 - 118
  48. 金正日 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의 旗幟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3年) p. 17
  49. 編輯部 저, 『主體思想 硏究』(太白, 1989年) p. 46
  50. 金正日 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主體思想의 旗幟를 높이 들고 나아가자』(조선로동당 中央委員會 主體思想硏究所, 1983年) p. 15
  51. 編輯部 저, 『主體思想 硏究』(太白, 1989年) p. 47
  52. 編輯部 저, 『主體思想 硏究』(太白, 1989年) p. 48
  53. 金正日 저, 『映畫藝術論』(내나라, 1973年) pp. 229 - 230
  54. - ‘鋼鐵’ 金榮煥 “나를 꺾은건 拷問 아닌 北現實”, 데일리 NK (2007-06-27)
  5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社會科學院 哲學硏究所, <主體哲學事前> 17쪽.
  56. 주준화, 〈北韓 政治의 宗敎性-김일성의 神格化에 있어서 巫俗 信仰의 影響을 中心으로〉, 한국정치학회洑 第29輯 4號 (1995), 393-413쪽.

같이 보기 [ 編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