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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市몽타주] 서울 광장동, 베이비붐 世代 꿈과 挫折 投影된 ‘江北 大峙洞’|新東亞

[都市몽타주] 서울 광장동, 베이비붐 世代 꿈과 挫折 投影된 ‘江北 大峙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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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記者

    jayko@donga.com

    入力 2019-06-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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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年代 中盤부터 現代建設이 아파트團地 開發

    • 광남 學群, 大峙洞 接近性 德에 關心

    • “모두가 富者집은 아니지만 不足함은 없는 家庭”

    • “이곳 長點? 幼稚園에서 高校까지 다 키울 수 있다”

    • “學窓 時節 記憶은 집·學校·學院·讀書室·놀이터뿐”

    • “住民들의 ‘洞네 滿足度’ 어마어마하더라”

    • “베이비붐 世代 子女들에겐 月給 모아 入城 어려운 곳 돼”

    韓國 産業化의 또 다른 이름은 ‘現代’다. 只今이야 ‘財界 1位 三星’李 常識이지만 20餘 年 前만 해도 事情은 달랐다. 公正去來委員會는 해마다 大規模企業集團 指定을 위해 資産總額 基準 財界 序列을 發表한다. 現代그룹은 關聯 順位를 매기기 始作한 1987年부터 2000年까지 14年間 王座를 지켰다. 그 以前에도 韓國人이라면 누구나 ‘財界 1位는 現代’ ‘財閥 1位는 鄭周永’이라고 생각했다. 

    여기 ‘現代’라는 이름標가 櫛比하게 붙은 洞네가 있다. 서울特別市 광진구 광장동. 面積 2.39㎢에 1萬2016世代가 둥지를 틀었고 3萬6139名이 산다.(2019년 1月 1日 基準) 4月 26日 서울 地下鐵 5號線 광나루驛 3番 出口를 나와 4番 出口 方向으로 視線을 두니 같은 이름을 쓰되 數字만 다른 아파트가 그득하다. 個中에는 ‘파크빌’ ‘힐스테이트’ ‘프라임’ ‘홈타운’ ‘아이파크’ 같은 造語를 붙인 곳도 있으나 本質은 共히 ‘현대 아파트’다. 광나루驛 3番 出口 方向에서 광남高等學校를 거쳐 서울 地下鐵 2號線 江邊驛 方向으로 걸어가니 不動産과 跆拳道場, 讀書室, 오피스텔도 ‘現代’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다. 

    그러니 ‘광장동 사람들’에게 ‘現代’는 空氣와 같은 存在다. 광남고 近處 ‘現代타워’ CU 便宜店에서 만난 정某(남·17)君은 “여기서는 ‘어디 사느냐’고 했을 때 ‘3團地 산다’ ‘5團地 산다’ 하면 다 안다. ‘現代’라는 말은 굳이 쓸 必要가 없다”고 귀띔했다. 말을 마친 鄭 君은 ‘現代타워’ 옆 商家에 자리 잡은 ‘大宇 公認仲介士 事務所’를 가로질러 발길을 옮겼다. 産業化의 喜怒哀樂을 품은 ‘鄭周永의 현대’와 ‘김우중의 待遇’는 광장동에서 이런 式으로 遭遇한다.

    “落鄕하는 姜鎬人들의 居處”

    광장동의 起源을 거슬러 올라가면 광진리(廣津里)를 만나게 된다. 廣津은 광나루를 漢字(나루 陳·津)로 바꿔 쓴 名稱이다. 광나루라는 이름은 京畿 廣州(廣州)로 가는 길목에 位置한 나루, 或은 江幅이 넓은 나루에서 祈願했다. “광나루는 罪人들이 都城을 빠져나가는 길목이 됐고, 때로는 黨爭에 밀려 落鄕하는 姜鎬人들의 居處가 됐다.”(이은식, ‘地名이 품은 韓國史’ 中) 

    광나루는 量나루 또는 양진(楊津)이라고도 불렸다. 광장동에 ‘廣場’ 뿐 아니라 ‘癢疹’의 이름을 단 學校가 있는 까닭이다. 광장동 뒤로는 아차산이 있는데, 1963年 山 中턱에 워커힐호텔이 開館해 隣近이 有名해졌다. 애初 京畿道 所屬이던 광진리(廣津里)는 장의동(壯義洞)과 合쳐 廣場里가 됐다. 1949年 서울特別市 城東區로 編入됐고, 暫時 구의동 一部와 합쳐 狂依東이 됐다가 1970年 구의동으로 改稱했다. 1977年 구의동에서 分離돼 只今의 광장동이 誕生했다. 



    1995年에는 성동구에서 광진구가 分區됐다. 광진구는 광장동의 옛 이름인 廣津에서 따온 것이다. 광장동은 廣津區 面積의 14%를 차지할 만큼 量的인 位相도 남다르다. 그렇다면 ‘落鄕하는 姜鎬人들의 居處’는 어쩌다 ‘現代’의 聖地가 됐을까. 

    發端은 1980年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경제신문’ 2000年 8月 4日子 ‘구의/광장동 ‘現代 타운’ 造成…來달 初 10團地 入住 마무리’는 이와 關聯한 前後脈絡을 잘 보여준다. 

    “元來 밭과 쓰레기 埋立地였던 이곳에는 現代建設이 1980年代 中盤부터 10個의 아파트 團地(광나루現代 包含)를 잇따라 建設했다. 極東, 三星, 請求, 江邊宇成 等 현대아파트 周邊의 4個 團地 2712家口를 包含하면 이 一帶 아파트는 1萬 家口가 넘는다. 그中 현대아파트의 時勢가 가장 높다. 현대건설이 이곳을 狎鷗亭現代의 名聲을 이어갈 곳으로 보고 設計와 施工에 心血을 기울인 結果다.”

    1970年代 中後半부터 서울市內에 中産層을 겨냥한 아파트가 여럿 登場했다. 1985年 經濟企劃院은 ‘中間層 育成對策’을 내놨다. 政府가 내놓은 最初의 中産層 育成政策이었다. “住宅金融 需要者 사이에서 아파트에 對한 選好는 1980年代 末부터 急增했으며 1990年을 전후해 單獨住宅을 누르고 가장 選好하는 住宅 形態로 斷然 아파트가 꼽혔다.”(정헌목, ‘價値 있는 아파트 만들기’ 中)

    광장동과 SKY

    2000년 10월. 첫 입주 당시의 광장동 현대10단지(파크빌) 모습. [동아DB]

    2000年 10月. 첫 入住 當時의 광장동 현대10團地(파크빌) 모습. [東亞DB]

    딱 이 時期를 즈음해 광장동 ‘現代 타운’에 中産層이 續續 모여들었다. 年齡帶로 따지면 베이비붐 世代(1955~1963年 出生)가 많았다. 當代 最高 企業이던 현대의 任職員들도 여럿 광장동으로 왔다. 앞선 ‘한국경제신문’ 記事는 “初等學校 4個를 비롯해 10餘 個의 學校가 但只 周邊에 자리 잡고 있어 敎育施設도 좋은 便”이라고 報道를 매듭지었다. 이는 的確한 說明이었다. 1990年代와 2000年代를 거쳐 광장동 中産層은 남부럽지 않은 ‘敎育特區’를 빚어냈다. 

    오늘날 광장동은 서울特別市 노원구 중계동과 더불어 ‘江北 大峙洞’으로 꼽힌다. 이는 ‘광남 學群’ 德分이기도 하고, 實際 대치동 學院街에 對한 接近性이 좋아서기도 하다. 광장동에서 올림픽大橋를 건너면 곧바로 ‘江南 3區’에 屬한 蠶室이다. 記者가 찾은 4月 26日에도 ‘對峙’나 ‘江南’이라는 이름을 단 學院버스가 여럿 團地를 돌았다. 

    大企業 金融社 代理 구정희(假名·女·29) 氏는 中學校 時節이던 2000年代 中盤 광장동 워커힐아파트로 移徙와 광남중·高等學校를 卒業했다. 丘氏는 베이비붐 世代의 子女다. 只今은 ‘現代 3團地’에 居住하는 그는 ‘江北 大峙洞’이라는 比喩가 “相當히 적합한 表現”이라면서 韻을 뗐다. 

    “많은 學生이 대치동 學院을 다니고 父母님들이 (子女들을) ‘픽업’하는 境遇가 大部分입니다. 광남중은 特目高 進學率이 江南 優秀 中學校와 類似하고, 광남고는 ‘SKY’大學 進學率이 높습니다. 過去 현대 任職員들이 많이 居住한 背景을 考慮했을 때, 父母님들의 學歷 水準이 꽤 높은 便이었습니다. 子女 敎育에 投資를 많이 하는 便이었어요.” 

    大企業 流通社 代理 문재환(假名·男·32) 氏는 송파구 신천동에 살다가 베이비붐 世代인 父母님의 決定으로 2000年代 初盤 廣場中學校에 轉學 왔다. 以後 광남고에 進學했고, ‘現代 5團地’에서 10年을 살았다. 文氏는 學窓 時節을 이렇게 回顧했다. 

    “有名한 中堅企業 會長의 아들도 學校를 같이 다녔어요. 그 親舊도 꽤 오래 살았습니다. 南楊州나 九里에 사는데 居住地 住所를 광장동으로 옮기고 광남고에 다니기 위해 通學하는 親舊도 많았어요. 제가 高等學校 入學하기 直前 해에는 40~50名에 가까운 광남고 卒業生이 이른바 ‘SKY大學’에 合格했었어요. 再修, 三修生이 섞여 있긴 했으나 이런 事例가 몇 해간 이어지자 광장동에 學群 프리미엄 비슷한 게 생긴 것 같아요.” 

    韓國에서 社會的 層位를 가르는 잣대는 敎育이다. 敎育 成就는 個人的 努力의 結果다. 이와 同時에 敎育 成就를 이뤄낼 環境을 提供할 父母의 存在가 上手다. 그래서 韓國人이라면 “마음은 언제나 대치동에 가 있다.”(정아은, ‘잠실동 사람들’ 中) 羨望과 叱咤의 視線을 同時에 받는 韓國의 ‘行政洞’은 대치동이 唯一하다. 父母들은 子女 敎育에 적합한 洞네를 찾아 이곳저곳 헤매면서도 늘 마음 한켠에 大峙洞을 둔다. 

    하지만 ‘대치동 캐슬’에 屬하려면 특별한 經濟 條件이 必要하다. 이는 그 自體로 ‘排除의 論理’로 作動한다. ‘江北 大峙洞’이라는 낱말이 膾炙되는 까닭은 代替財(代替財)에 對한 欲望 때문일 터. 江北에 屬하지만 學群이 遵守하고, 大峙洞 私敎育에 對한 接近性에도 利點을 가진 광장동은 中産層의 ‘子女 敎育 둥지’로 쓰임새가 要緊했다. 

    광장동이 排除의 論理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광장동 현대 10團地의 境遇 竣工 20年이 다 돼가지만 84제곱미터(㎡) 基準 賣買價는 10億 원을 웃돈다. 지은 지 30年 된 또 다른 현대 團地도 賣買 坪當價가 3000萬 원 안팎을 形成하고 있다. 價格을 支撐하는 건 勿論 學群이다. 大企業 金融社 代理 구정희 氏의 말은 ‘광장동 사람들’의 생각을 代辯한다.

    大企業, 銀行員, 公務員

    “價格은 아파트 軟式보다는 社會的으로 策定된다고 봐요. 學群은 住居環境의 一種입니다. 學校의 定員은 限定돼 있으나, 進學하고자 하는 學生은 많으니 價格이 오를 수도 있지요. 老朽 施設이라도 便益이 크고 惠澤이 훌륭하면 價格이 오를 수 있습니다. 施設이 훌륭해도 便益이 낮다면 찾는 사람이 없어 아무도 費用을 支拂하지 않을 겁니다.” 

    광장동은 住民들 사이의 同質性이 比較的 높은 洞네다. 世代 間 富의 移轉을 통해 資産을 蓄積한 富裕層보다는 賃金勞動者로 일하며 ‘身分의 階段’을 걸어 올라간 中産層이 더 많은 便이어서다. 그 德에 洞네에는 大體로 맞벌이 家庭이 많다. 公立學校가 大部分인 地域 環境도 이런 階層 背景과 無關치 않다. 

    5年 前 汝矣島에서 광장동 청구아파트로 移徙 온 大企業 部長 주진호 氏(假名·男·42)는 맞벌이 夫婦다. 큰딸은 隣近 初等學校에 다닌다. 그는 “살아보니 다른 洞네와 比較하면 階層 隔差를 느낄 일이 없다는 點이 아이들 키우기에 적합한 要因”이라며 말을 이었다. 

    “大部分 비슷한 與件에 있는 中産層이 많아요. 假令 애들이 學校에서 ‘누구네 집은 비싸. 엄청 富者야’ 이런 말을 자꾸 하다 보면 아무래도 階層 隔差를 느끼고 萎縮될 수 있잖아요. 그로 인해 葛藤이 생길 수도 있고. 여기는 그런 게 없어요.” 

    朱氏는 中産層이 살기에는 高價 브랜드 아파트가 너무 많다는 指摘에 對해 “勿論 비싸긴 하지만 江南 水準은 아니다. 親한 이웃들을 보면 맞벌이 家庭이 많은데, 잘 알려진 企業에서 일하거나 或은 銀行員, 公務員 等 그런 사람들이 많다. 우리 社會에서 흔히 보는 中産層이 많이 사는 洞네”라고 말했다. 

    大企業 流通社에 다니는 문재환 氏도 朱氏의 말과 脈이 닿는 主張을 했다. 

    “제가 學窓 時節 親舊들을 부를 때 ‘광장동 親舊들’이라는 表現을 主로 쓰는데, 그들 모두가 대단한 富者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不足함이 있는 家庭에서 자라지는 않았거든요. 어찌 보면 溫室 속의 花草처럼 자란 느낌이랄까요.” 

    광장동이 學群으로 가진 또 하나의 長點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조로움’이다. 광장동에는 워커힐아파트를 除外하면 별다른 랜드마크가 없다. 商業·文化施設을 갖춘 複合團地度 찾기 어렵다. 大企業 部長 주진호 氏는 “이 洞네의 最大 長點은 子女를 幼稚園부터 高等學校까지 다 키울 수 있다는 點”이라면서 “遺骸施設이 없고 徒步로 初·中·高校를 다 다닐 수 있다. 每年 初等學校 學生 數가 늘어나는 아주 特異한 洞네”라고 말했다.

    단조로운 日常

    광나루역 인근 ‘삼성 2차 아파트’와 ‘현대 8단지’ 사이 자리 잡은 도보 표지판. [고재석 기자]

    광나루驛 隣近 ‘三星 2次 아파트’와 ‘現代 8團地’ 사이 자리 잡은 徒步 標識板. [고재석 記者]

    광나루驛 隣近 ‘三星 2次 아파트’와 ‘現代 8團地’ 사이 자리 잡은 徒步 標識板에는 이런 內容이 적혀 있었다. ‘광남고 150m, 광남중 250m, 광남初 150m, 광남幼稚園 150m’. 幼稚園에서 高等學校가 한 뭉텅이에 있다는 얘기다. 

    구정희 氏는 “學校 다닐 때 親舊들은 現代 但只 아이들이 大部分이었다”면서 “團地 안에 學校가 있어 아이들이 安全한 環境을 누릴 수 있었다. 有害環境이 없는 게 學群으로서 큰 메리트”라고 말했다. 문재환 氏는 “洞네에 이렇다 할 즐길 거리가 많지 않다. 그나마 江邊驛 테크노마트에 가야 지루하지 않게 時間을 보낼 수 있었다”면서 말을 이었다. 

    “學窓 時節 記憶은 집과 學校, 學院, 讀書室, 아파트 團地 內 놀이터가 大部分인 것 같아요. ‘江南 메가스터디’나 ‘역삼 대성학원’에 修能 特講을 들으러 가는 날 빼고는 거의 洞네를 벗어나지 않았어요. 只今 와서 생각해보면 洞네의 단조로운 日常이 맞벌이로 子女 敎育에 많은 時間을 割愛하기 어려웠던 父母님에게 ‘내 아이가 다른 길로 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줄여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子女 敎育에 特化되다 보니 광장동에는 오래 居住한 住民이 많다. 그 德에 洞네에 對한 住民들의 ‘로열티’가 큰 便이다. 汝矣島에서 살다가 移徙 온 주진호 氏는 “살아 보니 광장동 住民들의 ‘洞네 滿足度’가 어마어마하다”면서 “子女들이 大學에 가서야 移徙 갈 苦悶을 하는 곳”이라고 傳했다. 구정희 氏도 “月貰 比率이 微微하고 傳貰값도 賣買값에 비하면 낮은 水準”이라면서 “大部分 自家 所有로 實居住하는 比率이 높다. 그만큼 住民들의 洞네에 對한 愛着이 크다”고 말했다. 

    이는 開發에 對한 ‘색다른’ 視角으로 이어진다. 광장동을 包含한 峨嵯山로 一帶는 最近 들어 開發 好材를 누리고 있다. 먼저 東서울터미널 現代化 事業과 워커힐아파트 再建築이 可視化됐다. ‘現代 5團地’에 10年을 居住한 主婦 김선경(假名·女·61) 氏는 “워커힐아파트 一部 住民 中에는 再開發 自體를 願치 않는 사람도 있다. 팔기 위한 집이라기보다 오랫동안 居住하려고 入住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傳했다. 

    隣近 九宜驛度 桑田碧海를 앞두고 있다. 광진구는 올해 下半期 九宜驛 一帶에 들어설 ‘尖端業務複合團地’ 着工에 들어간다. 먼저 광진區廳 新廳舍가 들어선다. 또 業務빌딩과 호텔 및 오피스텔, 大規模 文化公園, 아파트도 建設된다. 이에 對해 구정희 氏는 “地域의 健康한 開發에 關心 가진 住民이 많다”면서 “單純히 집값을 높이는 投機的 開發이 아니라, 살기 좋은 環境을 構築하기 위한 住民들의 意志가 地域 開發에 反映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價格이 우리를 고른다”

    中産層은 韓國 資本主義의 動力이자 成長의 結果였다. 광장동의 ‘現代 타운’은 베이비붐 世代가 産業化를 거쳐 1990年代에 中産層 地位를 獲得한 後, 自身의 階層을 再生産하는 舞臺로 役割을 해냈다. 

    그러나 베이비붐 世代의 子女(1980~1995年 出生)들은 “檀君 以來 父母보다 못사는 첫 世代”라며 自愧感에 빠져 있다. 低成長은 거스를 수 없는 大勢가 됐다. 大企業, 公企業 等 ‘좋은 職場’에 다니는 30代에게도 ‘10億 원짜리 25坪 아파트’는 선뜻 紙匣을 열고 購買할 수 있는 商品이 아니다. 未來를 가늠할 수 없어서다. 中産層 洞네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돼 自身의 賃金으로 堪當 할 수 있는 또 다른 광장동을 찾아 浮遊(浮游)해야 할 狀況에 내몰렸다. 1987年生인 문재환 氏의 告白이다. 

    “광장동은 제가 자란 洞네긴 하지만 막상 月給 모아 入城하기엔 어려운 地域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까운 未來의 제가 앞 世代처럼 子息 敎育을 생각해 理事를 苦悶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요. 事實 뜨는 洞네라거나 좋은 곳들은 關心을 쏟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中 우리 世代가 擇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더라고요. 適當한 價格이 우리를 고르는 게 아닐까 싶어요.”



    고재석 기자

    고재석 記者

    1986年 濟州 出生. 學部에서 歷史學, 政治學을 工夫했고 大學院에서 映像커뮤니케이션을 專攻해 碩士學位를 받았습니다. 2015年 下半期에 象牙塔 바깥으로 나와 記者生活을 始作했습니다. 流通, 電子, 미디어業界와 財界를 取材하며 經濟記者의 文法을 익혔습니다. 2018年 6月 동아일보에 入社해 新東亞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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