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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地雷挑發’은 ‘金正恩 統一大田’ DMZ 講習突破 最終練習|新東亞

安保秘史

‘8·4 地雷挑發’은 ‘金正恩 統一大田’ DMZ 講習突破 最終練習

  • 홍성민 安保政策네트웍스 代表

    入力 2019-05-28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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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正熙 對 金日成 智略 싸움 : 開戰 3日

    • 砲擊戰 통해 박근혜 中國 전승절 參席 沮止 노려

    • 韓民求의 ‘心理戰 再開’ 北韓軍 首腦部 戰戰兢兢

    • 9·19軍事合意로 北韓 軍部 活路 열어줘

    • 文政府 2年 만에 韓美聯合防衛態勢 土臺 崩壞

    2018년 12월 12일 남북 군사 당국이 9·19 군사분야 합의서 이행 차원에서 시범철수한 비무장지대 내 GP에 대해 상호 검증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8年 12月 12日 南北 軍事 當局이 9·19 軍事分野 合意書 履行 次元에서 示範撤收한 非武裝地帶 내 GP에 對해 相互 檢證을 하고 있다. [寫眞共同取材團]

    北韓軍 步兵·機械化部隊의 非武裝地帶(DMZ) 突破를 위해 考案된 김일성의 ‘땅窟作戰’은 1990年 3月 第4땅窟 發掘로 最終 挫折됐다. 金正日은 機械化部隊를 利用해 DMZ를 ‘講習突破’하는 戰略으로 轉換했다. 金正恩은 DMZ 突破 戰術을 試驗하는 同時에 朴槿惠 大統領의 中國 전승절 70周年 記念 閱兵式(2015年 9月 3日) 參席을 막고자 2015年 8月 4日 木函地雷 挑發을 敢行했다. 

    金正恩의 ‘8·4 地雷挑發’은 過去 北韓軍의 DMZ 挑發 樣相과는 全혀 달랐다. 다섯 가지 質問을 던져보자. ①왜 GP에 對한 銃擊·砲擊이나 特殊戰 遙遠 浸透 等 多樣한 挑發 手段을 保有하고 있음에도 DMZ의 國軍 搜索隊 移動路에 地雷를 設置했는가. ②왜 문산 軸線(國軍 1師團)에서 地雷 挑發을 敢行한 後 國軍이 對應 措置로 心理戰을 再開하자 시변리 軸線(國軍 28師團)에서 膺懲 砲擊을 敢行했는가. ③왜 GP·민경대代의 裝備나 前方 軍團의 다양한 砲擊 手段을 使用하지 않고 最前方 師團의 火器인 14.5㎜牽引高射砲와 76.2㎜直射牽引砲를 DMZ로 이동시켜 挑發했는가. ④왜 國軍이 心理戰을 再開한 8月 10日부터 열흘이 지난 8月 20日 漣川 一帶를 砲擊했을까. ⑤왜 漣川 一帶에 砲擊 挑發을 敢行한 後 “48時間 以內(22日 午後 5時까지)에 對北 擴聲器 放送을 中斷하지 않으면 全面戰을 不辭하겠다”고 威脅하고는 實際로 全面戰을 假定한 軍事力을 動員했는가.

    전승절 參席을 沮止하라

    2015年 8月 4日 北韓軍 木函地雷 挑發에서 9月 3日 朴槿惠 大統領의 中國 전승절 閱兵式 參席까지의 一連의 事件은 反轉의 連續이었다. 8月 10日 國防部는 北韓軍 地雷 挑發 事實을 發表한 後 擴聲器를 利用한 對北 心理戰 再開를 宣言했다. 10日 後 北韓은 心理戰 再開에 對한 報復으로 DMZ 및 前方地域에 砲擊 挑發을 敢行했다. 그러면서 김양건 北韓 勞動黨 祕書 名義로 對話를 提議했으며, 48時間 內 擴聲器 撤去 不應 時 軍事 行動에 나서겠다고 最後通牒도 날렸다. 

    國軍은 DMZ 北側을 向해 對應 砲擊에 나섰다. 北韓은 準戰時 狀態를 宣布했으며 韓美 安保 當局은 워치콘(情報監視態勢)을 上向 調整했다. 8月 26日 南北 高位級 協商을 통해 事態가 收拾됐으며 朴槿惠 大統領은 9月 3日 中國 전승절 閱兵式에 參席했다. 

    韓國 言論은 朴槿惠 大統領의 전승절 參席과 關聯해 ‘中國에 치우친다’는 뜻의 中國傾斜론(傾斜論)을 提起하면서 憂慮를 나타냈다. 主要 外信의 評價는 달랐다. 朴 大統領의 전승절 參席을 大韓民國의 外交的 勝利라고 報道했다. 日本의 北韓 專門家인 시게무라 도시미쓰(重村智計) 와세다대 敎授는 “朴 大統領이 中國 전승절에 參席하면 北韓이 主張하는 正統性이 打擊을 받는다”면서 “地雷 挑發은 전승절 參席을 막기 爲한 布石”이라고 봤다. 워싱턴포스트는 “시진핑 옆에 金正恩이 아닌 박근혜가 섰다”면서 “北·中 關係가 얼마나 冷冷한지 보여줬다”고 評價했다. 



    8月 20日 靑瓦臺가 朴槿惠 大統領이 中國 전승절 記念式에 參席하기로 했다고 發表하자마자 北韓軍은 기다렸다는 듯 午後 3時 53分과 4時 12分 두 次例에 걸쳐 火力 挑發을 敢行했다. 漣川 一帶에 對한 砲擊은 전승절 參席을 沮止하기 위한 것이었다.

    美軍 介入 以前 戰爭 終結 : 速度戰 戰略

    8·4 地雷 挑發의 底意를 밝히려면 ‘김일성의 6·25戰爭’부터 ‘김정은의 統一大田’까지 北韓軍의 南侵 戰略 變化를 살펴봐야 한다. 

    6·25戰爭 向背는 北韓軍 最精銳 1·4·3·105땅크師團이 集中된 京釜本로(의정부-서울-수원-평택-대전-대구-부산)에서 결판났다. 國軍은 開戰 初期 北韓軍 攻勢를 막지 못했으며 主要 裝備를 抛棄하고 兵力만 艱辛히 漢江 以南으로 撤收해 洛東江 戰線까지 後退했다. 北韓軍은 電車를 앞세운 開戰 初期의 攻擊 氣勢를 維持하지 못했으며 美軍 增員과 仁川上陸作戰을 許容한 탓에 京釜本路를 遮斷當해 潰滅했다. 

    朴正熙와 김일성은 戰爭의 勝敗를 左右하는 開戰 初期 戰略을 살폈으며 美軍 增員에 對한 對策 樹立에 沒入했다. 김일성은 6·25戰爭에서 成功하지 못한 까닭을 △美軍 參戰 對策 不在 △戰爭 初期 包圍 擊滅 失敗 △韓國 內 民衆蜂起 霧散 △釜山 早期 占領 失敗로 나눠 分析했다. 그러곤 正規戰-非正規戰 配合, 先制奇襲, 速戰速決을 통해 美軍의 介入 以前 戰爭을 終結하는 速度戰 戰略을 樹立했다. 

    北韓은 美軍과 日本 自衛隊 增員 및 支援을 根本的으로 遮斷하고자 미사일과 核 開發을 始作했다. 釜山 早期 占領을 위해 西部·東部戰線에서 機械化部隊로 同時에 攻擊해 開戰 3日 以內 서울 防禦線을 突破하고 7日 以內 釜山을 占領할 수 있는 軍事力 建設에 邁進했다. 김일성은 國內總生産(GDP)의 30% 異常을 國防費에 投入했으며 1980年代에 이르러서는 兵力 120萬, 戰車 4000餘 臺, 野砲 1萬4000餘 門 等의 大規模 軍事力을 建設하는 데 成功했다. 

    美國의 援助로 經濟를 발전시켰으며 駐韓美軍에 安保를 依存한 韓國에 1969年 닉슨 독트린(‘아시아 問題는 아시아人끼리’라는 主張이 담겼다) 發表와 1970年代 불거진 ‘駐韓美軍 撤收’ 論議는 6·25戰爭 以後 最大 安保危機였다. 朴正熙 大統領은 北韓의 侵攻을 沮止하고 美軍의 增員을 保障하고자 戰力 增强, 前方地域 要塞化 等을 밑거름으로 韓國 地形에 맞는 防禦作戰體系를 構築했으며 1978年 11月 7日 韓美聯合司를 創設해 韓半島 戰區作戰(operation of theater) 土臺를 構築했다.

    速度戰 : 땅窟로 DMZ 突破

    2015년 9월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중국 항일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대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함께 열병식을 참관하고 있다. [동아일보 변영욱 기자]

    2015年 9月 3日 中國 베이징 톈안먼 廣場에서 열린 ‘中國 抗日 및 世界 反(反)파시스트 戰爭 勝利 70周年 記念 大會’에서 朴槿惠 大統領이 시진핑 中國 主席과 함께 閱兵式을 參觀하고 있다. [동아일보 변영욱 記者]

    朴正熙 大統領은 開戰 初期 3日間 서울 강북구 미아동 一帶를 連하는 線에서 北韓軍의 初期 攻勢를 막아내야 한다고 봤다. 그래야만 後方의 國軍과 釜山을 통해 增員된 美軍이 京釜高速道路를 거쳐 北上해 反擊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朴正熙 大統領은 國軍에 미아동 北方을 連하는 線에서 北韓軍의 初期 攻勢를 3日間 沮止할 特段의 對策을 세우라는 特命을 下達했다. 

    國軍은 서울 北方의 防禦縱深(最前線에서부터 다른 部隊나 豫備隊가 配置된 곳까지의 길이)李 짧은 탓에 戰爭 開始 때부터 ‘戰線을 固守한다’는 原則을 樹立했다. 이에 따라 戰爭 勃發 時 撤收하는 一般前哨(General Observation Post)를 前方防禦陣地(Foward Defense Position)로 轉換했다. 또한 北韓軍 戰車와 兵力의 前進을 막는 防壁과 固守防禦(決戰의 意志로 防禦地域 喪失을 最大限 抑制하는 것)陣地를 構築했다. AN-2基를 타고 浸透하는 特殊戰部隊를 打擊하기 위한 對空觀測所 및 火器진지도 設置했다. 美軍이 增員되는 道路인 京釜高速道路를 防護하고자 兵站線 防護計劃과 警備大隊를 創設했다. 

    김일성은 朴正熙의 戰爭 對備 戰略에 對應하고자 DMZ 地下에 땅窟을 뚫어 特殊戰部隊를 國軍 後方에 침투시키는 奇想天外한 方法인 ‘땅窟浸透戰術’을 構想했다. 第1攻擊梯隊人 步兵·機械化部隊의 損失을 最少化하고 奇襲을 達成해 國軍의 前方防禦 體系에 決定的 打擊을 加하는 祕策이다. 

    北韓은 김일성의 命令에 따라 1971年 9月 25日 ‘땅窟作戰’을 開始했다. 이른바 ‘9·25校時’가 그것이다. 北韓軍은 軍團別로 땅窟作戰을 遂行했는데 只今껏 20餘 個의 땅窟을 掘鑿한 것으로 推定된다. 北韓의 南侵用 땅窟은 1974年 11月 15日 高浪浦(京畿 漣川郡)에서 처음으로 發見된 後 1975年 3月 19日 鐵原, 1978年 10月 17日 板門店 附近에서 次例로 發見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北韓의 땅窟은 西部와 中西部戰線에 集中된 것으로 判斷됐으나 1990年 3月 3日 江原 楊口郡 北方에서 4番째 땅窟이 發見됨에 따라 東部戰線에도 땅窟이 存在한다는 것이 確認됐다. 北韓이 掘鑿한 땅窟은 發見 順序에 따라 第1, 第2, 第3, 第4땅窟로 命名됐다.

    統一大田 : 機械化部隊로 DMZ 講習突破

    金正日은 韓美聯合 戰力에 對한 構造的 劣勢를 克服하고자 經濟難을 겪으면서도 旣存의 在來前 中心의 軍事·戰力構造를 核 및 大量殺傷武器(WMD)·長射程砲·機械化部隊 및 特殊戰 中心으로 改編했다. 이를 위해 김정일은 强盛大國 建設期間(1991~2011)에 群團級 部隊를 大幅 줄이고, 地上軍 師團 60餘 개를 80餘 個로 增便했다. 

    北韓은 砲兵軍團을 解體해 最前方 師團에 配置함으로써 砲兵火力을 强化했다. 第2祭臺의 機甲·機械化 軍團도 師團으로 改編해 第1祭臺 前方軍團으로 推進配置했다. 特殊戰 部隊를 3萬 名(1970年代)→10萬 名(1990年代)→20萬 名(2000年代)으로 增便했다. 特히 前方軍團 內 警報兵 師團과 連帶를 10餘萬 名 水準으로 增强했다. 師團級 規模이던 미사일 前歷은 群團級으로 擴大했다. 

    國軍의 땅窟 發見 德分에 北韓軍의 땅窟浸透作戰은 再檢討될 수밖에 없었다. 땅窟浸透는 戰鬪力을 保存해 國軍 後方에 軍事力을 投入하는 게 長點인데, 國軍이 땅窟의 存在가 豫想되는 地域에서 驛(逆)埋伏作戰에 나설 境遇 땅窟로 浸透한 北韓軍이 沒殺될 수 있는 致命的 弱點이 있다. 또한 大規模로 兵力·張飛를 이동시키는 데 限界가 있어 速度戰을 追求하는 作戰 體系와도 符合하지 않는다. 

    旣存의 땅窟浸透作戰을 代替한 北韓軍의 DMZ 講習突破 作戰은 ‘민경대代가 機械化部隊가 移動할 DMZ 通路를 開拓’ ‘機械化部隊가 强力한 砲兵火力의 掩護를 받으면서 講習으로 DMZ 突破’로 이뤄져 있다. 3日 以內 前方 防禦縱深을 突破해 釜山을 早期에 占領하고, 西部戰線 防禦體系를 붕괴시켜 京畿道 以北에서 韓美聯合軍의 主力을 擊滅하는 게 ‘金正恩 統一大田’의 骨子다. 

    北韓은 統一大田 戰略을 2015年까지 完成하고자 2010年 天安艦·延坪島 攻擊에 나섰다. 이를 통해 特殊戰 兵力 5000餘 名의 仁川·平澤地域 上陸을 保障하는 火力 및 海上作戰 體系를 完成했다. 이어 2014年 3月~2017年 5月 11回에 걸쳐 無人機를 침투시켜 要塞化된 西部戰線 防禦體系를 迂廻해 釜山을 早期 占領할 수 있는 統一大田의 新(新)남針路를 偵察했다. 8·4 地雷 및 砲擊 挑發은 機械化部隊의 DMZ 講習突破 作戰을 最終的으로 試驗한 것이다.

    8·4挑發, 展示 DMZ 作戰體系 試驗

    1975년 2월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땅굴공사 착암기 기술자 김부성 씨가 판문점 서남방 4㎞ 지점의 제3땅굴 공사내용의 도면을 가리키고 있다. [동아DB]

    1975年 2月 韓國으로 歸順한 北韓 땅窟工事 鑿巖機 技術者 김부성 氏가 板門店 西南方 4㎞ 地點의 第3땅窟 工事內容의 圖面을 가리키고 있다. [東亞DB]

    北韓軍 最前方 步兵師團은 第1攻擊梯隊로서 GP(戰鬪前哨)·GOP(一般前哨)·前方防禦地帶를 攻擊해 第2梯隊인 機械化部隊의 攻擊을 保障하는 任務를 遂行하며 그中 민경대臺는 步兵部隊의 通路 開拓 任務를 맡는 것으로 分析돼왔으나 이 같은 戰略에 變化가 있었다. 統一大田에 따르면 민경대代가 機械化部隊의 攻擊路를 開拓하며 步兵師團은 민경대代의 國軍 GP·GOP 攻擊을 火力으로 支援한다. 

    北韓軍은 8·4 地雷 및 砲擊 挑發을 통해 1次的으로 민경대代와 前方師團의 DMZ에서의 作戰 能力을 試驗했다. 北韓軍 민경대代가 國軍 搜索部隊의 偵察路를 豫測해 地雷를 設置한 것은 北韓의 DMZ 作戰 能力이 相當한 水準임을 傍證한다. 또한 北韓軍이 國軍의 心理戰 再開에 對應해 最前方 師團의 14.5㎜高射砲와 76.2㎜直射砲로 南側 地域을 打擊韓 것은 火力 支援 能力을 試驗한 것이다. 

    2015年 8月 10日 國軍의 心理戰 再開에 對한 對應 砲擊이 8月 20日 이뤄진 것은 그날 朴槿惠 大統領의 中國 전승절 參席이 發表됐기 때문이다. 北韓으로서는 最前方 師團의 展示 火力 支援 能力을 試驗하고 전승절 參席도 沮止하는 一石二鳥의 作戰이었다. 

    北韓軍의 地雷 挑發에 對해 韓民求 當時 國防長官이 挑發 原點인 민경부臺를 打擊하지 않고 心理戰 再開로 對應함으로써 挑發의 元兇인 김정은을 겨냥한 것은 北韓軍의 對應 砲擊을 萎縮시키고 擴戰 意圖를 挫折시킨 決定的 要因이었다. 

    北韓은 8月 21日 午後 5時 ‘48時間 內 對北放送을 中斷하지 않으면 軍事的 行動을 開始하겠다’는 傳通文을 보냈다. 그 直前인 午後 4時 50分에는 김양건 勞動黨 祕書 名義로 ‘現 事態를 收拾하고 關係 改善의 出路를 열기 위해 努力할 意思가 있다’는 內容이 담긴 傳通文을 보냈다. 이 같은 強穩 兩面術은 김정은을 겨냥한 國軍의 心理戰 再開에 北韓 軍部와 官僚가 勞心焦思했음을 傍證하는 것이다.

    美國 朝野의 韓半島 戰爭 威脅 評價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사수 쌍방기동훈련’에 참관해 훈련을 지휘했다고 노동신문이 2016년 2월 21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金正恩 國務委員長이 ‘平壤 射手 雙方機動訓鍊’에 參觀해 訓鍊을 指揮했다고 勞動新聞이 2016年 2月 21日 報道했다. [勞動新聞]

    美國은 韓半島에서 北韓의 全面戰 挑發 可能性을 낮게 봐왔다. 오바마 行政府 時節 제임스 클래퍼 國家情報局(DNI) 局長은 上院 聽聞會(2013年 3月 12日)에서 “北韓 政權은 生存의 威脅을 感知할 境遇에만 核武器를 使用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北韓이 그런 威脅을 어떻게 定義하고 있는지는 不確實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行政府의 마이크 폼페이오 國務長官은 中央情報局(CIA) 局長 時節 上院 聽聞會(2017年 5月 11日)에 出席해 “(韓半島는) 火藥庫와 같은 威脅에 直面해 있으며 이는 在來式 戰爭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評價했다. 金正恩의 統一大田에 對한 워싱턴의 評價가 以前과는 달라진 것이다. 

    2017年 5月 22日 美國 軍事 專門 媒體 ‘밀리터리 타임스’는 ‘完全히 改編된 金正恩의 統一大田 南侵攻擊 시나리오’와 ‘韓美聯合軍의 對應策’을 엮은 ‘2次 韓國戰爭 시나리오’를 公開했다. 이 媒體는 北韓 關聯 情報와 專門家 見解를 綜合해 “美國이 中國의 도움을 받아 北韓의 核 挑發을 멈추려는 試圖를 持續하고 있지만 이런 外交的 努力이 失敗한다면 韓半島에 戰爭이 勃發한다”면서 “이럴 境遇 美國과 韓國 兵力이 大規模로 動員되고 戰爭이 數個月 또는 그보다 긴 期間 持續될 것”이라고 展望했다. 媒體는 이어 “北韓이 先制攻擊을 敢行할 것”이라고 豫想하면서 侵攻 첫날 韓美 空軍基地를 攻擊할 可能性이 높다고 分析했다. 

    北韓軍은 第2次 世界大戰 때 獨逸軍의 낫질 作戰(Sichelschnitt)을 模倣해 統一大田을 構想했다. 獨逸軍은 프랑스 國境의 ‘슐리펜 要塞地域’을 迂廻한 後 벨기에와 프랑스 國境線上의 아르덴(Ardennes) 丘陵地帶에 機械化 및 空軍部隊를 投入해 파리와 大西洋 沿岸을 早期 占領하면서 初期 戰爭을 勝利로 裝飾했다. 

    北韓軍은 統一大田에서 이를 模倣해 6·25戰爭 때 1·4·3·105땅크師團을 投入한 문산·漣川·抱川에는 前方師團의 步兵·戰車部隊를 第2除隊로 投入한다. 이 軸線에는 아르덴 地域처럼 韓美聯合戰力의 防禦態勢가 鞏固하게 構築돼 있다.

    北韓版 아르덴 地域 : 金浦·시변리·廣德山·華川·楊口·書畫軸線

    統一大田은 山岳이거나 相對的으로 防禦密度가 낮은 金浦·시변리(國軍 28師團)·廣德山·華川·楊口·書畫軸線(尿道1 參照)에 815·425機械化部隊를 第1除隊로 投入한다. 金浦軸線은 平澤을 占領할 수 있는 最短距離 남針路이며, 廣德山 軸線은 機械化部隊가 西部戰線을 迂廻해 서울을 包圍하고 釜山을 早期에 占領할 수 있는 戰略的 남針路이기 때문이다. 

    北韓軍이 문산軸線(國軍 1師團)에서 地雷로 挑發하고 시변리軸線(國軍 28師團)에서 心理戰 再開에 對한 膺懲砲擊을 加한 것은 核心 攻擊 方向을 속이기 위한 聲東擊西(聲東擊西·東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西쪽을 친다)였다. 統一大田에 對한 金正恩의 執拗한 意志는 廣德山 軸線에 이어 金浦半島 地域 渡河作戰의 核心 部隊인 815땅크師團을 隨時로 訪問해 作戰 遂行 態勢를 確認한 데서도 드러난다. 

    2015年 8月 21日 金正恩은 勞動黨 中央軍事委 非常擴大會議를 召集해 “21日 午後 5時를 期해 休戰線에 隣接한 電線(戰線) 部隊들은 完全武裝한 戰時 狀態로 移轉하며, 戰線 地帶에 準(準)戰時 狀態를 宣布한다”고 最高司令官 命令을 下達했다. 그러고는 午後 11時를 基準으로 戰線 部隊들의 ‘作戰 進入 準備 實態’를 點檢했으며, 戰線司令部의 攻擊 作戰 計劃을 直接 批准했다. 

    2015年 8月 22日 南北 高位級 接觸이 이뤄지기 前까지 北韓軍은 國軍 28師團 防禦地域 DMZ에만 23門의 高射砲를 前進配置하는 等 全體 戰線의 砲兵火力을 2倍 넘게 增强했다. 北韓 潛水艦 50隻이 監視網을 벗어나 潛行했으며 平安北道 鐵山郡 基地에 있던 空氣浮揚艇 20餘 隻을 西海 南浦 海上까지 前進配置했다. 警報兵部隊도 DMZ에 投入된 것으로 알려졌다. 統一大田의 3大 核心 浸透前歷인 特殊戰部隊, 潛水艦情, 空氣浮揚艇을 大規模로 動員한 것은 8·4地雷 및 砲擊 挑發이 單純한 局地 挑發이 아니라 統一大田의 南侵計劃 點檢 次元에서 施行됐음을 傍證한다.

    韓民求의 心理戰·GP地域 砲擊

    [뉴시스]

    [뉴시스]

    유승민 議員(當時 새누리黨)은 2015年 8月 12日 國防委員會 全體會議에서 地雷 挑發 다음 날인 8月 5日 朴槿惠 大統領이 京元線 南側 區間 起工式에 參席해 “北韓은 우리의 眞情性을 믿고 勇氣 있게 南北 和合의 길에 同參해주길 바란다”고 言及한 것과 홍용표 統一部 長官이 高位級 會談을 提案한 것을 批判했다. 政治權은 勿論 一部 言論에서도 地雷 挑發에 對한 膺懲으로 原點打擊이 아닌 心理戰을 再開한 것은 消極的이라는 批判이 나왔다. 

    政治權이나 一部 言論의 主張처럼 韓民求 長官의 國防部가 地雷 挑發에 對應해 北韓軍 민경대臺를 直接 砲擊하거나 8月 20日 砲擊 挑發에 對해 挑發原點人 14.5㎜高射砲 陣地와 76.2㎜平射砲 진지를 直接 打擊했다면 어떤 狀況이 發生했을까. DMZ가 南北 間 砲擊으로 阿修羅場이 됐을 것이며 南北關係는 最惡의 狀況에 直面했을 것이다. 또한 朴槿惠 大統領의 中國 전승절 參席도 不可能해졌을 것이다. 

    韓民求 長官은 就任 後 前方戰鬪態勢를 集中 點檢하고, 攻勢的 DMZ 搜索作戰과 사·군단급 砲兵의 集中 運用을 통해 火力 對應態勢를 强化해왔다. 攻勢的 DMZ 搜索作戰을 통해 北韓軍 最前方 師團이 14.5㎜高射砲와 76.2㎜平射砲를 DMZ로 前進 配置해 國軍 GP·GOP攻擊을 準備하는 것을 事前에 把握해냈다. 

    韓民求 長官은 北韓軍 진지를 直接 打擊해 狀況을 擴大시키기보다는 155㎜K55A1을 北側 GP들 사이에 射擊함으로써 北韓軍이 狀況을 早期 終結하도록 誘導했다. 北韓軍은 왜 GP를 直接 打擊당하지 않고도 狀況을 終了했을까. 

    北韓軍은 國軍의 砲兵射擊으로 大規模 人員이 殺傷된 뼈아픈 經驗을 갖고 있다. 國軍 3師團의 北韓軍 GP砲擊 事件이 그것이다. 1973年 3月 7日 北韓軍이 DMZ 表紙 作業을 마치고 復歸하던 3師團 兵力에 銃擊을 加해 2名의 將校와 副士官이 부상당하는 事件이 發生했다. 當時 박정인 3師團長은 155·105㎜曲射砲로 北韓軍 599GP와 射擊을 加한 陣地를 焦土化하고 80餘 名을 射殺했다. 2010年 10月 延坪島 砲擊 때도 海兵隊의 K-9 射擊으로 北韓軍이 相當한 被害를 본 것으로 傳해졌다. 

    韓民求 長官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北韓의 脅迫에 對應해 3軸 體系의 하나로 大量膺懲報復體系(KMPR)를 構想해 金日成·김정일 銅像을 精密打擊하거나 一定 地域을 불바다로 만드는 火力對應體系를 발전시켰다. 3軸 體系는 KMPR과 킬체인(Kill Chain), 韓國型 미사일防禦體系(KAMD)로 構成돼 있다.

    螺絲 풀린 國軍, 緊張하는 美軍

    2015年 8月 21日 朴槿惠 大統領은 競技 龍仁市 第3野戰軍司令部를 訪問해 “우리 將兵과 國民의 安全을 위해하는 北韓의 그 어떤 挑發도 決코 容納할 수 없다”며 “軍은 北韓의 追加 挑發에 對해 假借 없이 膺懲하라”고 指示했다. 또한 “狀況이 發生했을 때는 선(先)조치, 後(後)報告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朴槿惠 大統領의 强勁 對應 指示 直後 김양건 北韓 統一戰線部長은 김관진 國家安保室長에게 “板門店에서 만나자”고 提議했다. 8月 22日 2+2 南北 高位級 接觸 開始, 김관진 安保室長과 황병서 北韓 總政治局長 間 板門店 會談에 이어 8月 25日 南北 高位級 協商이 妥結됐다. 朴 大統領은 南北 高位級 協商 妥結과 9月 3日 中國 전승절 閱兵式 參席을 전후한 時期에 가장 높은 支持率을 記錄했다. 

    韓美 軍 當局은 2016·2017年 열린 第48·49次 韓美安保協議會議(SCM)에서 共同의 價値와 相互 信賴에 基盤을 둔 兩者·地域·汎世界的 範疇의 包括的 戰略同盟을 確固히 했다. 韓美同盟은 北韓의 侵略 또는 軍事的 挑發, 西北 島嶼 및 北方限界線(NLL) 一帶에서의 挑發, SLBM(潛水艦發射彈道미사일) 試驗 發射 等의 進化하는 威脅에 共同으로 對應하기로 했다. 

    特히 美國은 ‘새로운 核 政策’(2017年 3月)에서 北韓이 美國 本土 打擊用 大陸間彈道미사일(ICBM)을 抛棄하지 않으면 低强度 核武器를 使用해 金正恩의 隱身處를 精密 打擊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B61 戰術 核爆彈 中 最新型人 B61-12는 正確度가 30m 以內여서 外科手術式 精密打擊이 可能하다. 終戰 B61 系列 核爆彈의 正確度는 100m였다. B61-12는 땅속으로 뚫고 들어가 깊이 100m 以上의 地下 벙커를 破壞할 수 있으며 落塵 被害도 最少化할 수 있다. ‘核 벙커버스터’로 불리는 理由다. 

    이렇듯 美國이 先制打擊을 考慮했을 만큼 北韓에 對한 美國 朝野 및 軍部의 威脅 認識은 緊迫했다. 美國과 中國은 2008年부터 北韓의 急變事態에 對應하기 위한 方案을 論議하는 會議를 해마다 1回씩 열고 있다. 特히 2017年 8月에는 조지프 던포드 美國 合參議長이 中國 北部戰區 79集團軍 野外機動訓鍊을 直接 參觀한 後 그곳에서 急變事態 關聯 論議를 進行했다. 

    2017年 11月 제임스 매티스 當時 美國 國防長官은 北韓의 軍事態勢를 點檢한 後 集束彈(韓 個의 爆彈 안에 또 다른 小型 爆彈들이 들어 있는 武器로 爆發力이 强하다) 全量 廢棄 措置를 取消했다. 集束彈이 北韓의 機械化部隊를 打擊하는 데 效果的이기 때문이다. 言論 報道에 따르면 美國은 2019年 말 저威力 核彈頭(5kt) W76-2를 오하이오級 核潛水艦에 裝着한다. 이 核彈頭는 射距離 1萬2000㎞인 트라이던트 미사일에 8~12個가 搭載되는데 避해 範圍는 1.3㎞, 名中誤差는 10m다. 核潛水艦에 저威力 核彈頭를 裝着하는 것은 北韓을 겨냥한 措置이기도 하다.

    安保 내팽개친 9·19軍事合意

    駐韓美軍은 緊張의 끈을 놓지 않고 있으나 國軍은 軍統帥權者에 依해 國防 態勢가 무너지고 있다. 代表的인 게 9·19 軍事合意다. 北韓軍 前方 師團의 민경대臺는 展示에 攻擊部隊의 前進을 保障하기 위해 DMZ의 地雷를 除去하고 GP와 GOP를 襲擊하는 任務를 遂行한다. 

    現在 休戰線 100㎞ 以內에 前進 配置된 北韓軍 70餘萬 名 中 警報兵部隊가 10餘萬 名에 達한다. 攻擊 開始 直前 警步兵部隊는 國軍 最前方 地域에 浸透한다. 警報兵部隊가 指揮 및 通信施設, 砲兵部隊 等을 襲擊해 前方 防禦態勢를 無能化한 後 機械化部隊가 强力한 砲兵火力의 支援下에 DMZ를 講習突破하는 게 北韓軍의 戰略이다. 

    休戰線 155마일(250㎞)에 國軍 GP는 60個다. 1個 GP가 大略 4㎞ 區間을 警戒한다. 展示에는 北韓軍 민경대臺 1個 中隊가 國軍 1個 GP를 攻擊한다. 9·19軍事合意에 따라 10個의 國軍 GP가 除去됨으로써 10個 민경중대로 GP 代身 GOP를 攻擊할 수 있게 됐다. 또한 北韓軍 機械化部隊는 國軍의 GP 破壞 및 撤收로 인해 생긴 警戒死角 空間을 따라 高速으로 GOP까지 進出할 수 있다. 

    DMZ 內 GP 撤收는 攻擊 開始 前 隱密하게 浸透하는 北韓軍 警步兵部隊와 攻擊 開始 後 DMZ를 講習突破하는 機械化部隊에 對한 GP의 早期警報 및 火力誘導 機能을 根源的으로 不可能하게 한다. 게다가 國軍이 스스로 除去한 地雷 地帶와 넓어진 GP 사이 空間은 北韓 特殊戰·機械化部隊가 安全하게 移動할 수 있는 通路가 됐다. 

    9·19軍事合意를 통해 南北은 軍事分界線으로부터 5㎞ 안에서 砲兵射擊訓鍊 및 聯隊級 以上 野外機動訓鍊을 全面 中止하기로 했다. 軍事分界線에서 5㎞ 內에 配置된 國軍 兵力은 北韓軍 攻擊 詩 第1防禦力을 提供하는 部隊다. 韓國은 首都 서울과 DMZ를 잇는 縱深이 짧은 터라 GOP部隊가 페바地域(FEBA·戰鬪地域傳單) 部隊와 함께 北韓軍의 第1攻擊梯隊人 特殊戰·機械化部隊의 攻擊을 막아내야 한다.

    ‘統一大田’에 날개 달아준 文政府

    2013年 11月 5日 조보근 當時 國防部 情報本部長은 國會 情報委員會 國政監査에서 統一大田을 위한 北韓軍의 軍事力 配置를 公開하면서 “北韓軍이 休戰線에서 100㎞ 以內(黃海道 沙里院~江原道 通川 라인 以南)에 兵力의 70%(70萬 名), 火力의 80%를 前進配置하고 있다”고 報告했다. 過去 北韓軍은 休戰線에서 150㎞ 以內(平壤~元山 라인 以南)에 兵力의 70%가 配置돼 있었다. 

    文在寅-金正恩 頂上會談의 結果物인 9·19軍事合意에서 空中敵對行爲 中斷은 統一大田의 南侵計劃에 依해 前進配置된 北韓軍 最前方 攻擊部隊의 平時 活動에 對한 監視를 不可能하게 한다. 文在寅 政府는 또 西海 南側 德積島 以北에서 北側 草島 以南까지의 水域, 東海 南側 束草 以北에서 北側 通川 以南까지의 水域에서 砲 射擊 및 海上 機動訓鍊을 中止하고 海岸砲와 艦砲의 浦口와 砲身에 덮개를 設置하고 砲門을 閉鎖하는 措置를 取하기로 北側과 合意했다. 

    또한 漢江 河口를 南北이 共同으로 調査한 結果를 北側에 넘겨줬는데 이는 渡河 作戰의 河床 情報를 北韓軍에 넘겨줘 김포반도 侵攻을 容易하게 한 行爲다. 金浦·江華地域은 都下 能力을 保有한 北韓 機械化部隊의 核心 侵攻路인데, 이 一帶를 防禦하는 海兵隊의 눈을 가리고 손발을 묶는 合意를 했다. 

    要컨대 深刻한 問題는 文在寅-金正恩 會談의 結果物인 9·19軍事合意가 金正日·金正恩이 代를 이어 推進해온 統一大田 戰略을 돕고 있다는 點이다. 統一大田에 有利한 環境을 造成하고자 그런 式으로 合意한 게 아니냐는 誤解마저 불러일으킬 만큼 9·19軍事合意는 精巧한 方式으로 前方防禦體系를 無力化했다.

    홍성민
    ● 1961年 서울 出生
    ● 陸士 41期
    ● 國防大學院 國際關係學 석사
    ● 前 國軍情報司令部 對北分析官
    ● 조성태(前 國防長官) 議員 補佐官, 디앤디 포커스 發行人
    ● 現 安保政策네트웍스 代表
    ● 著書 : ‘北韓의 統一大田과 對應策’ 等 非公開 安保政策서, ‘이명박 政府의 國防改革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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