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桂陽의 李在明은 湖南人에게 審判 받았다|신동아

桂陽의 李在明은 湖南人에게 審判 받았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首都圈 票心이 들춰낸 地域主義 2.0 時代

  • 노정태 經濟社會硏究院 專門委員·哲學

    basil83@gmail.com

    入力 2022-06-04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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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루스의 勝利 或은 傷處뿐인 榮光

    • 城南, 首都圈 湖南人들의 集結地

    • 젊고 세련된 高學歷者들의 政黨?

    • 光州의 衝擊的 投票率 37.7%

    • ‘積極的 棄權’으로 意思를 表示하다

    5월 27일 당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 이재명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후보가 경기 김포시 고촌읍 아라 김포여객터미널 아라마린센터 앞 수변광장에서 ‘김포공항 이전 수도권 서부 대개발’ 정책협약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月 27日 當時 宋永吉 더불어民主黨 서울市長 候補(왼쪽), 李在明 仁川 桂陽乙 國會議員 候補가 京畿 김포시 고촌읍 아라 金浦旅客터미널 아라마린센터 앞 水邊廣場에서 ‘金浦空港 移轉 首都圈 西部 大開發’ 政策協約 記者會見을 하고 있다. [寫眞共同取材團]

    “桂陽에는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第8回 全國同時地方選擧 期間 동안 國會議員 補闕選擧가 열린 仁川 桂陽乙 選擧區에 울려 퍼진 노래의 歌詞다. 城南市長과 京畿知事를 거친 李在明 前 더불어民主黨 大選候補가 大選이 끝난 지 不過 두 달 만에 아무 緣故 없는 桂陽乙 選擧區에 出馬한 것을 꼬집는 內容이다.

    송영길 前 民主黨 代表는 桂陽에서 總 다섯 番이나 國會議員을 했다. 그랬던 그가 繼養을 버리고 서울市長에 挑戰했다. 李在明은, 다시 한 番 强調하지만, 아무런 緣故도 明白한 理由도 없이 바로 그 繼養에 갑자기 생긴 國會議員 補闕選擧에 出馬했다. 李在明 스스로도 言論뿐 아니라 거리 遊說에서 만나는 支持者들의 質問에 뚜렷한 答을 하지 못했다. 國會議員의 不逮捕 特權을 얻음으로써, 大庄洞 事件을 비롯해 李在明을 겨눈 다양한 刑事 事件의 칼날을 비켜가기 爲해서 出馬한 것이 아니냐는 疑惑이 提起될 수밖에 없는 狀況이었다.

    不滿의 民心이 쏠린 탓이었을까. 李在明의 첫 國會議員 選擧 結果는 실망스러웠다. 그는 競爭者인 윤형선 國民의힘 候補를 相對로 10.49%포인트 差異로 이겼다. 不過 두 달 前에 大選을 치렀고, 0.73%포인트 差異로 尹錫悅 國民의힘 大選候補(現 大統領)를 턱 끝까지 몰아붙였던 李在明이 거둔 成果라고 말하기에는 多少 초라하다. 桂陽乙은 宋永吉이 20代 總選에서 12.03%포인트, 21代 總選에서는 19.93%포인트 差로 壓勝을 거둔 곳이니 말이다.

    李在明의 國會 入城은 피루스의 勝利, 或은 傷處뿐인 榮光이다. 몇몇 輿論調査에서는 李在明이 윤형선에게 誤差範圍 內에서 逆轉 當했다는 結果가 나오기도 했었으니, 이 程度면 李在明 本人으로서는 善防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 큰 問題는 따로 있다. 李在明의 政治的 基盤이던 京畿道가 무너진 것이다. 京畿道에 걸린 總 31席의 基礎團體長 자리 中 22席을 國民의힘이 가져갔다. 李在明의 政治的 故鄕인 城南市長마저 國民의힘에 넘어가고 말았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接戰 끝에 金東兗 前 經濟副總理 兼 企劃財政部 長官이 京畿知事에 當選되면서 李在明과 民主黨은 體面치레를 했지만, ‘李在明 한 사람 살리기 위해 민주당이 다 죽는 選擧를 했다’는 非難을 避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李가 기댄 桂陽乙 票心의 根幹

    5월 18일 인천 계양구 양궁체육관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 벽보를 확인하고 있다. [뉴스1]

    5月 18日 仁川 桂陽區 洋弓體育館에서 選擧管理委員會 關係者들이 仁川 桂陽乙 國會議員 補闕選擧에 出馬한 李在明 더불어민주당 候補와 윤형선 國民의힘 候補 壁報를 確認하고 있다. [뉴스1]

    仁川 桂陽, 더 나아가 首都圈 中에서도 特히 西部 地域은 민주당의 ‘텃밭’으로 통한다. 理由는 簡單하다. 민주당의 傳統的 支持 勢力인 湖南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이다. 解放 後 産業化 過程을 거치며 京畿道는 서울에서 밀려난 工場과 産業 團地를 吸收했다. 그 過程에서 湖南人들이 京畿道로 大擧 移住했다. 嶺南圈에는 重化學工業 團地가 크게 자리 잡으며 自體的 地域 經濟가 作動한 反面, 湖南은 京釜高速道路를 軸으로 하는 大韓民國 産業化의 發展 軌道에 올라타지 못한 것이다.

    1970年부터 1979年까지 市道別 人口 純移動을 集計하면 全北과 全南에서 全北과 全南 外 다른 地域으로 빠져나간 사람들은 銃 163萬 名이다. 1970年 湖南 人口는 644萬 名이었다. 卽 湖南 사람 中 4分의 1이 他鄕살이를 擇하고 故鄕을 등졌다는 말과 같다. 光州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大學 入學 後 서울에 살고 있는 湖南인 조귀동은 ‘全羅디讞議 굴레’에서 이러한 現象을 다음과 같이 說明하고 있다.

    “1970年 當時 湖南 사람들이 移動한 곳은 서울(61.2%)이 壓倒的이고, 競技도(16.6%)가 그 뒤를 이었다. 다음은 釜山(11.1%), 慶南(3.5%), 慶北(3.0%) 順이었다. 일자리를 찾아 東南 海岸 工業 地帶로도 向한 것이다. 이는 忠淸道 純移動 人口의 95.2%가 서울·京畿道를 向했던 것과 對比되는 部分이기도 하다. 釜山과 蔚山, 大邱로 移住한 全羅道 사람들이 下層 勞動者로 編入되었음을 豫想하기란 어렵지 않다.”

    서울로 向한 湖南인 中 相當數는 서울에 자리 잡지 못하고 그 外郭인 京畿道로 밀려났다. 假令 1971年에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서울市長 김현옥은 서울 內의 無許可 板子村을 撤去하고 住民들을 城南 受精丘와 中院區로 强制 이주시켰다. 問題는 當時 그곳에는 水道와 電氣 같은 基本的 인프라조차 設置돼 있지 않았고, 食糧과 食水의 支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갑자기 삶의 터전을 빼앗긴데다 굶주림에 시달리게 된 板子村 移住民은 公權力을 無力化하고 都市를 占據했다. 그 有名한 ‘光州大團地事件’이다.

    城南의 有名한 傳統市場인 ‘星湖市場’은 城南의 ‘性’字와 湖南의 ‘湖’字가 합쳐진 이름이다. 慶北 安東 出身의 政治 志望生 辯護士 李在明이 城南에 자리를 잡은 後, 비록 非主流였으나 민주당 內에서 빠른 成長을 할 수 있던 理由를 斟酌하기란 어렵지 않다. 城南은 産業化 過程에서 疏外되고 國家 暴力에 시달린 首都圈 湖南人들의 集結地 中 하나였다.

    이는 非但 城南에만 該當되는 일이 아니다. 서울과 京畿道에서 ‘民主黨 텃밭’으로 여겨지는 選擧區 大部分이 그렇다. 이番 國會議員 補闕選擧에서 가장 注目 받은 選擧區였던 仁川 繼養을 또한 마찬가지다. 京仁高速道路를 動脈 삼아 효성동 작전동 一帶에 電子, 纖維, 機械 等의 工業이 發達해 있다. 湖南에서 移住해온 勞動者가 密集해 居住하면서 민주당 優勢 地域이 됐고 그 投票 性向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中이다.

    宋永吉이 都合 5線을 하며 仁川을 넘어 中央 政界의 巨物로 떠올랐던 것은 그런 튼튼한 地域 基盤 德이다. 李在明, 宋永吉 더 나아가 민주당이 地域區 ‘물려주기’ 疑惑을 받을만한 움직임을 보이면서까지 李在明에게 金배지를 달아주고자 한 點도 놀랄 일은 아니다. 要컨대 李在明이 기대고자 한 桂陽乙 票心의 近間에는 結局 湖南 地域主義가 자리 잡고 있다.

    ‘首都圈 民心’의 속살

    이 明白한 事實은 一種의 公公然한 祕密처럼 取扱되고 있다. 民主黨과 그 支持者들은 本人들이 首都圈에서 얻는 票가 어느 곳과 어느 곳에서 나오는지 直視하고 싶어 하지 않는 傾向이 있는 것 같다. ‘늙은 民主黨’은 湖南 地域黨이지만 ‘首都圈 民主黨’은 젊고 세련된 高學歷者들의 政黨으로 湖南의 老人들과는 어쩔 수 없이 함께 하고 있을 뿐이라는 式의 世界觀이 깔려 있는 셈이다.

    적어도 나의 經驗에 따르면 그렇다. 민주당 或은 進步政黨의 支持者들, 特히 서울대生들은 冠岳區의 높은 民主黨 支持率을 ‘서울대生들이 많이 살아서’라는 式으로 說明하고자 하는 傾向이 있다. 그보다 훨씬 많은 人口數를 차지하는 財經 湖南人들에 對해, 다른 이가 옆구리 찌르기 前에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을 본 記憶은 아무리 되짚어 봐도 찾을 수 없다. ‘冠岳에는 서울대가 있고 서울대生들은 學校를 卒業한 後에도 學校 近處를 떠나려 들지 않는다’는 式의 說明만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現實과 全혀 동떨어진 소리다. 다시 한 番 ‘全羅디讞議 굴레’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서울 都心의 無許可 板子村이 헐려 나가면서, 元來 그곳에 살던 이들이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으로 밀려 나가면서 관악구는 湖南 出身 比重이 住民의 折半을 차지할 程度로 ‘서울 속의 湖南’이 됐다. 1971年 高校 卒業 後 全南 高興에서 上京해 쭉 봉천동에서 살았던 박동석 氏(前 서울 관악구議會議長)는 無許可 板子村 出身이 봉천동에 定着한 以後에 ‘故鄕 사람들이 사는 곳 가까이에서 함께 살기 위해 이곳에 터전을 잡으려는 全羅道 사람들이 더해졌지요.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이 家族 生計를 책임지며 살다 보니 只今까지 이곳에 定着해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라고 말한다.”

    勿論 競技도 票心을 湖南人과 그 2歲들만을 理由로 單純化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首都圈 民心’이라고 부르는 서울·京畿道 票心을 說明할 때 湖南이라는 要素를 排除하는 것은 不可能하고 無意味하다. 當場 이番 選擧 結果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이番 地方選擧는 지난 大選뿐 아니라 4年 前 地方選擧에 비해서도 投票率이 낮았다. 가까스로 50%를 넘기는 程度에 지나지 않았다. 더 衝擊的이며 有意味하게 보아야 하는 數字도 있다. 光州의 投票率이다. 37.7%로 全國 投票率 50.9%에 한참 未達한다. 全國 廣域市道 가운데 가장 낮은 數値다.

    湖南에서 ‘野黨’으로 認定받은 國民의힘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강기정(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주기환 국민의힘 광주시장 후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5月 18日 光州 北區 國立5·18民主墓地에서 제42주년 5·18民主化運動 記念式이 열린 가운데 姜琪正(오른쪽) 더불어民主黨, 주기환 國民의힘 光州市長 候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寫眞共同取材團]

    이는 只今까지 光州와 湖南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너무도 다르다. 光州와 湖南은 1987年 大統領 直選制 改憲 以後, 언제나 戰略的이면서 團合된 投票 行態를 보여 왔다. 金大中 前 大統領이 出馬할 때마다 全國에서 가장 높은 水準의 投票率, 그리고 그 한 사람의 候補를 向한 90% 以上의 支持率을 보여 왔다. 그랬던 湖南의 心臟 光州가 이제는 全國에서 가장 낮은 投票率을 記錄하는 都市가 됐다.

    이러한 現象을, 民主黨이 首都圈에서 얻은 慘澹한 成績表와 떼어놓고 解釋할 수 있을까. 選擧 結果가 나온 後 李洛淵 前 民主黨 代表는 페이스북 揭示物을 통해 “光州 投票率 37.7%는 現在의 민주당에 對한 政治的 彈劾”이라며 “민주당은 大選을 지고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地方選擧를 치르다 또 敗北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에 對한 失望과 憤怒로 가득 차 있지만, 그래도 차마 自己 손으로 國民의힘을 찍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 많은 이들이, 投票場에 가지 않음으로써 無言의 示威를 했다는 뜻이다. 이番 選擧는 光州의 市民뿐 아니라 수많은 首都圈 湖南人들 亦是 ‘積極的 棄權’을 통해 민주당을 審判한 選擧라고 봐야 한다.

    無效票, 더 나아가 投票 棄權이 政治的으로 有意味한 意思 表現이 될 때가 있다. 이番 選擧도 그랬다. 全羅北道와 全羅南道 道知事, 光州市長 選擧에서 國民의힘 候補들은 모두 苦杯를 마셨다. 하지만 이番에는 全北 趙培淑 候補가 17.88%, 全南 李貞鉉 候補가 18.81%, 光州 주기환 候補가 15.90%를 得票했다.

    민주당의 傳統的 支持層이 投票場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國民의힘 支持層의 投票가 相對的으로 더 높은 比重을 차지하게 됐다고 假定해 보자. 民主黨 支持者들의 棄權은 向後 國民의힘 湖南 政治에 적지 않은 影響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세 候補 모두 得票率 15.0%를 넘김으로써 選擧費用을 保全 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國民의힘은 이番 地方選擧를 통해, 그 前까지 事實上 完全히 排斥당해왔던 湖南에서도 ‘野黨’으로 認定을 받게 된 셈이다.

    ‘父母님의 故鄕’ 넘어선 다른 正體性

    只今껏 大韓民國을 支配해왔던 가장 强力한 政治 文法인 地域主義가 이番 選擧를 契機로 單番에 完全히 사라질 것이라고 期待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鐵甕城 같던 게임의 規則이 조금씩 움직이는 모습을 目擊하고 있다. 旣存의 湖南差別과 嶺南 霸權主義, 그리고 3金이라는 보스 政治人으로 代辯되는 ‘地域主義 1.0’ 時代가 終焉을 告하고 있다.

    筆者는 政治를 論하는 多數의 評論家들과 立場이 다르다. 地域主義가 完全히 사라지는 것은 可能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터넷 揭示板과 ‘團톡房’이 아니라 現實 속에 살고 있다. 발을 딛고 집에서 잠을 자며 交通手段을 타고 出退勤을 한다. 앞으로 아무리 IT(情報技術)가 發展하고 所謂 ‘메타버스’ 時代가 온다 해도 우리의 몸은 어딘가에 있어야 한다. 只今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地域을 떠난 政治, 오직 ‘空中戰’만으로 이루어진 政治는 不可能하다.

    이 當然한 眞理를 連거푸 힘주어 强調해야 하는 理由가 있다. ‘地域主義’라는 單語에 너무도 나쁜 語感이 많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1987年 直選制 改憲 以後 ‘3金 政治’ 時代가 낳은 否定的 遺産이다. 하지만 ‘地域’이라는 單語를 ‘民生의 現場’ 같은 表現으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政黨과 政治人이 地域의 懸案을 잘 把握하고, 地域의 民心에 귀를 기울이며, 그러한 現場의 목소리를 巨視的 國家 談論과 有機的으로 結合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主張에 反對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올바른 答을 얻기 위해 제대로 된 質問을 던져야 한다. 只今 大韓民國 政治에는 ‘어떤’ 地域主義가 必要한가. 國民의 意思를 最大限 反映하는 政治, 그러면서도 大韓民國의 먼 未來를 苦悶하고 具體的인 方案을 찾아내어 實踐하는 政治를 위해, ‘地域主義 2.0’은 어떤 方向을 志向해야 할 것인가.

    筆者는 그 실마리를 “桂陽에는 왜 왔니”라는 노래 歌詞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桂陽乙, 더 나아가 首都圈에 살고 있는 湖南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正體性이 있다고 볼 수 있다. 本人이 가지고 있거나 父母로부터 물려받은 湖南人으로서의 正體性이 첫 番째다. ‘地域主義 1.0’은 바로 그 正體性을 根幹에 둔 政治 시스템이다.

    이제는 首都圈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들이 人口의 相當數를 차지하는 世上이다. 首都圈 居住民, 京畿道 사람들, 仁川이나 富川 市民들에게 ‘父母님의 故鄕’을 넘어서는 또 다른 正體性이 자리 잡기에 充分한 歲月이 흘렀다고 볼 수 있다. 最近 好評을 받으며 終映한 드라마 ‘나의 解放日誌’는 ‘鷄卵 흰자 같은’ 京畿道 外郭에 살면서 ‘鷄卵 노른자’인 서울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이들을 主人公으로 삼고 있다. 앞서 말한 새로운 正體性을 지닌 主體들의 이야기다.

    “桂陽에는 왜 왔니”

    “桂陽에는 왜 왔니”라는 노래는 바로 그런 情緖의 産物이다. 대뜸 이곳으로 온 것이 얄밉긴 하지만, 그래도 민주당 候補로 大選까지 나갔던 사람이니 찍어주자. 이것이 ‘地域主義 1.0’의 思考方式이다. 反面 ‘地域主義 2.0’은 湖南 嶺南 같은 旣存의 巨大恨 地域 正體性과는 差異가 있다. “桂陽에는 왜 왔니?” 仁川이라는 都市, 그 中에서도 桂陽이라는 그리 크지 않은 한 地域에 正體性의 基準을 두는 이들로서는, 李在明의 出馬가 너무도 自尊心 傷하는 일이기에 참亞週期 어렵다는 소리다. 膺懲投票에 나서거나, 鄭 國民의힘을 찍을 수 없다면 차라리 棄權하고 만다.

    이番 選擧를 통해 민주당이 가지고 있던 서울의 區廳長 24席은 8席으로 쪼그라들었고, 代身 國民의힘이 고작 1席에서 17席으로 大幅 힘을 키웠다. 京畿道의 基礎團體長 亦是 마찬가지다. 民主黨의 22席은 9席으로 줄었고 國民의힘 2席은 22席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大激變이 벌어진 데는 여러 理由가 있겠지만, 李在明의 ‘防彈 出馬’가 서울과 首都圈 住民들의 自尊心을 건드렸다는 點을 빼놓고는 穩全한 說明이 어렵다. 이렇게 우리는 ‘地域主義 1.0’을 넘어 ‘地域主義 2.0’의 時代로 向하는 것이다.


    노정태
    ● 1983年 出生
    ● 高麗大 法學科 卒業, 서강대 大學院 哲學科 碩士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韓國語版 編輯長
    ● 著書 : ‘不良 政治’ ‘論客時代’ ‘탄탈로스의 神話’
    ● 曆書 : ‘밀레니얼 宣言’ ‘民主主義는 어떻게 망가지는가’ ‘모던 로맨스’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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