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權泳臻 大邱市長 “‘壓倒的 촛불’로 當選된 文, 國民들 조금만 包容했더라면…”|신동아

權泳臻 大邱市長 “‘壓倒的 촛불’로 當選된 文, 國民들 조금만 包容했더라면…”

“保守, 痛烈하게 反省하고 다시 태어나야”

  • 배수강 記者

    bsk@donga.com

    入力 2020-11-2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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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確診者 741名, 38日間 野戰 生活

    • 敵은 보이지만 코로나는 보이지 않아…혹독한 惡夢

    • 偉大한 市民精神, 醫療陣의 獻身, 感染源 早期 隔離

    • 大邱·慶北 分割 40年…住民投票로 500萬 ‘메가시티’ 推進

    • 國民들로부터 고립시키는 保守, 사람 안 키우는 政治

    • “네가 벼슬할 동안 政治가 좋아졌느냐” 물으면 부끄럽다

    • 大權은 大邱市民이 決定…‘그만하라’면 집에 가야지

    권영진 대구시장. [지호영 기자]

    權泳臻 大邱市長. [지호영 記者]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擴散勢가 세 자릿數를 이어간 11月 11日, 記者는 大邱로 가는 KTX에 올랐다. 搭乘客들은 모두 마스크를 썼다. “列車 內에서는 飮食物 攝取가 禁止돼 있다”는 案內 放送이 注意를 喚起시켰다. 

    지난 1月 19日 中國人의 入國으로 國內 첫 確診者가 생긴 以後 코로나19는 우리의 認識과 日常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大邱의 惡夢’이 始作點이었다. 2月 18日 31番 確診者가 發生한 뒤 暴發的으로 增加했고, 2月 29日에는 하루 確診者가 741名(全國 909名)까지 치솟았다. 實體를 모르는 感染病에 對한 두려움은 大韓民國을 더욱 꽁꽁 얼어붙게 했다. 그로부터 8個月 뒤, 大邱는 平穩을 되찾은 듯 보였다. 이날 發生한 國內 確診者 146名 中 大邱에서의 確診者는 없었다. 

    “지난 4月 11日 以後 確診者는 한 자릿數로 安定的 趨勢를 보이고 있습니다. 7月 4日부터 8月 15日까지 43日間에는 單 한 名의 地域社會 感染 事例가 없었고요.” 

    權泳臻(58) 大邱市長의 表情도 平穩을 되찾은 듯 보였다. ‘코로나와의 戰爭’ 當時 38日間 野戰寢臺에서 지내며 戰鬪를 이끈 首長(首將)은 “아직 ‘코로나 終戰(終戰)’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防疫의 重要性을 再次 强調했다. 다음은 그와의 一問一答.


    市民들의 實踐力은 ‘K-防疫’ 核心

    권영진 대구시장이 7월 25일 코로나19 자원봉사에 참여한 의료진에게 감사의 뜻으로 큰절을 하고 있다. [대구시 제공]

    權泳臻 大邱市長이 7月 25日 코로나19 自願奉仕에 參與한 醫療陣에게 感謝의 뜻으로 큰절을 하고 있다. [大邱市 提供]

    - 首都圈을 中心으로 小規模 集團感染이 持續되고 있다. 大邱는 첫 確診者 發生 53日 만인 4月 10日 確診者 數 ‘0’을 만들었다. 祕訣은 무엇인가. 

    “그렇다. 世界 最高라고 自負하던 都市에선 如前히 팬데믹(世界的 大流行) 樣相을 보이는데, 大邱는 世界史에서 大流行을 가장 빠르게 安定化했다. 하루 確診者 數가 741名까지 치솟았고, 18日間 100名 以上 確診者가 發生했는데도 結局 ‘確診者 제로’로 만들었다. 여러 理由가 있겠지만 偉大한 市民精神과 醫療陣의 獻身, 感染源의 早期 隔離 措置 等 우리 스스로 ‘武器’를 갖추면서 積極的으로 對應한 게 危機 克服의 原動力이었다고 생각한다.”



    - 具體的으로 說明해 달라. 

    “大邱市民들은 백신과 治療劑가 없는 狀況에서 모두 防疫 主體가 됐다. 스스로를 封鎖하고 防疫守則을 지키며 서로 慰勞하는 偉大한 市民意識을 보여줬다. 全國 2500名 以上의 醫療陣은 感染 危險을 무릅쓰고 달려와 눈물겨운 死鬪를 벌였고, 國民들은 自發的으로 自願奉仕와 物品을 支援했다. 그 連帶와 協力이 큰 힘이 됐다. 여기에 첫 確診者 發生 다음 날 公務員 100餘 名이 投入돼 (첫 確診者가 다닌) 新天地 敎會 敎人 9336名을 全數 調査했다. 10個 感染專擔病院을 指定해 3124病床을 確保하고, 全國 地自體와 民間의 도움으로 15個 生活治療센터를 運營했다. 이는 醫療 시스템 崩壞를 막아낸 劃期的인 決定이었다. 丁世均 國務總理도 20餘 日間 大邱에 常住하는 等 公務員과 防疫 當局의 獻身도 컸다.”

    - 美國 애틀란타, 日本 고베 等 世界的 都市와 駐韓 外交公館에서 大邱市에 ‘K-防疫 노하우’를 共有해 달라는 要請이 잇따랐는데. 

    “그렇다. K-防疫 모델은 ‘對句型 防疫’이라고 생각한다. ‘對句型 防疫’ 核心은 政府 當局에 對한 信賴, 共同體를 지켜야 한다는 市民들의 獻身이자 스스로 實踐하는 市民 參與型이다. 그래서 K防疫 輸出은 不可能하다고 본다. 國民을 輸出하든지 國民들의 精神을 輸出해야 하니까(웃음). 마스크가 가장 重要한 防疫 手段이자 백신이라는 걸 깨닫고, 對人 接觸을 最少化하면서 社會的 距離두기에 積極 參與하는 ‘市民들의 實踐力’이 가장 重要하다. 3月 14日 始作된 ‘3·28 大邱運動’(모든 防疫 力量을 集中하고 市民 移動을 最少化해 確診者 한 자릿數 以下로 만들겠다는 運動)에서 보여준 大邱市民의 自發的 參與가 코로나19 克服에 效果를 나타내면서 現在 政府의 社會的 距離두기로 擴張됐다.”

    - 市廳으로 오다 보니 國債補償運動記念公園이 눈에 띄더라. 大邱·慶北 地域은 예부터 共同體에 對한 獻身과 危機 克服 DNA가 있는 거 같다(국채보상운동은 1907年 2月 日本에서 導入한 次官 1300萬 원을 갚아 主權을 回復자려는 主權守護運動이다). 

    “맞는 말이다. 大邱·慶北은 全國에서 가장 많은 抗日 愛國志士를 輩出했고, 國債補償運動을 主導하는 等 危機 克服 DNA가 있다고 본다. 洛東江 戰鬪에서 보여준 빛나는 護國精神과 배고픔을 이겨내려는 近代化 産業化 精神도 살아 있다. 그런 點에서 이番 코로나19街 大邱에서 流行한 것은 아픔이지만, 大邱였기에 早期 克服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드라이브스루 選別診療所를 運營하고 生活治療센터 導入을 建議한 醫療陣의 挑戰 精神, 오랜 時間 地域 醫療界와 돈독히 쌓아온 民官 協業關係 等도 重要했다.”

    38日間 野戰寢臺 生活…“잠도 안 왔다”

    - 心情은 어땠나. 코로나19街 急速히 擴散될 初期에는 病床 不足으로 宏壯히 힘들었을 거 같다. 

    “지난 2~3月에는 38日間 野戰寢臺 生活을 하면서 每日 ‘酷毒한 惡夢’을 꿨다. 普通 戰爭은 敵이라도 보지이만 코로나와의 戰爭은 敵이 보이지 않았다. 初期에는 ‘武器’도 없었다. ‘市民을 지켜야 한다, 全國으로 擴散되기 前에 大邱에서 코로나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루에 쪽잠 자봐야 두 時間이다. 잠도 안 왔다. 初期에는 病床이 不足하니 집에 待機하는 患者도 많았고, 醫師 160名이 스마트폰으로 집에 있는 患者를 遠隔 診療해야 했다. 民間 醫療機關들을 코로나 專擔病院으로 轉換하거나 한 甁洞 全體를 專擔 病棟으로 轉換하면서 不足한 病床을 確保해 나갔다.” 

    - 하루하루가 戰爭터였겠다. 

    “患者 發生 狀況을 綜合하면 밤 11時가 넘고, 以後 患者 狀態와 어렵게 求한 病室 데이터를 보고 來日 아침 어느 患者를 어떤 病室로 옮길지 計劃을 짜야 했다. 그러면 새벽 2時다. 現 狀況을 共有하는 메시지를 다듬으면 어느새 새벽이다. 브리핑에 따라 市民들이 個人 防疫을 取하기 때문에 브리핑 文句는 宏壯히 重要했다. 늦어도 午前 8時까지 移送 病院이 적힌 患者 名單을 消防本部에 傳達하면 消防本部가 患者 移送을 始作했다. 날마다 이런 일의 連續이었고, 患者들 死亡 報告를 들을 때는 正말 힘들었다.” 

    3月 1~15日 啓明大 大邱東山病院에서 보름間 醫療 奉仕活動을 한 安哲秀 國民의黨 代表는 當時 ‘신동아’와의 電話 通話에서 大邱의 狀況을 이렇게 傳했다.
     
    “醫療陣은 不足하고, 病室 入院 患者보다 바깥에서 待機하는 患者가 더 많다. 戰爭터가 따로 없다. 男便과 함께 確診 判定을 받은 女性 患者는 各各 다른 病院에 入院했는데, 어제 男便이 죽었다는 連絡을 받았다. ‘이 기막힌 狀況을 누구에게 하소연하나’라며 가슴을 치더라. 每日 患者의 하소연을 듣고 苦痛과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現場에서 함께하고 있다.” 

    - 코로나는 克服했지만 大邱는 製造業에서만 就業者 數가 2萬 名 減少하는 等 經濟 打擊도 深刻한데. 

    “코로나19로 가장 큰 苦痛을 겪은 데다, 大企業 없이 中小企業과 自營業 等 코로나에 脆弱한 産業構造이다 보니 여느 地域보다 더 酷毒한 試鍊을 겪었다. 이제는 大邱의 ‘經濟 防疫’도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大邱市 슬로건으로 ‘防疫의 模範 都市에서 이제는 日常 回復과 經濟 跳躍의 模範 都市로’를 定하고 日常 回復과 經濟 跳躍에 集中하고 있다.”

    大邱·慶北이 統合해야 하는 理由

    - 最近 大邱·慶北 行政統合 論議도 地域 經濟 活性化의 한 方便인가(대구시와 慶北道는 지난 9月 大邱·慶北 行政統合 公論化委員會를 出帆시켜 來年 6月 時·道民 住民投票를 통해 統合을 決定하기로 했다. 7月에 統合 地方政府를 出帆시킨다는 計劃이다). 

    “大邱와 慶北의 行政이 나누어진 지 來年이면 40年이다. 돌아보면 行政이 나뉜 탓에 協力보다는 消耗的인 競爭과 葛藤이 많았고, 經濟 沈滯와 人口 減少의 한 原因이 됐다. 어떻게 보면 切迫함과 未來에 對한 希望이 우리를 行政統合으로 가게 했다.” 

    - 大邱·慶北은 ‘한 뿌리’였는데 굳이 行政統合이 아니어도 充分히…. 

    “그렇지 않더라. 大邱市와 경북도가 ‘한뿌리 相生委員會’도 만들어 經濟統合 論議를 해봤지만 結局 行政이 나뉘어 있으니 안 된다. 廣域團體의 各種 統計가 行政 單位로 나오니까. 例를 들면 大邱 居住者가 隣近 慶北 慶山으로 移徙 가면 大邱의 人口 流出로 잡힌다. 이를 土臺로 財政과 政策이 決定된다. 現在의 全國 17個 廣域市·道 體制는 中央政府가 分轄 統治하기에 딱 맞는 構造이지, 地方分權과 均衡發展은 이룰 수 없다고 본다. (統合으로) 規模의 行政·經濟가 이뤄져야 한다는 건 時代精神이고, 메가시티’로 가야 未來가 있다고 判斷했다.” 

    - 文在寅 政府는 聯邦制에 버금가는 地方分權과 均衡發展을 約束했는데. 

    “노무현 政府 때 始作한 分權과 均衡發展, 그 精神은 옳다고 본다. 그런데 세종特別視 設立 以後 8年餘를 돌아보면 首都圈 年談話 現象(Conurbation·中心都市 膨脹으로 周邊 都市와 함께 巨大 都市가 形成되는 現象)으로 世宗市 等 忠淸圈 一部에선 人口가 늘었지만, 秋風嶺 以南 모든 市·道는 全部 人口가 줄고 産業이 沈滯됐다. 現 政府가 分權과 均衡發展을 위해 애쓰지만 17個의 ‘작은’ 時·道路는 效果가 없다. 내가 (2019年 7月부터 1年間) 市道知事協議會 會長을 하면서 地方消費稅 比率을 (附加價値稅의 15%에서) 21%로 올리는 것도 宏壯히 어려웠다. 以後 30%로 올리려고 하니 市·道 간 處地에 따라 合意가 잘 안됐다. 이 例만 봐도 現在 17個 市·道 體制로는 地方分權이 不可能하다.” 

    中央政府가 地方政府에 넘겨주는 地方消費稅 比率은 지난해 附加價値稅의 15%에서 올해부터 21%로 6%포인트 올랐다. 그러나 人口가 많고 去來가 많이 發生해 民間最終消費支出이 많은 廣域市는 상향된 比率만큼 支援받기에 歡迎한다. 反面 도(道)의 境遇 地方稅率을 높이면 相對的으로 國稅 比率이 줄고 地方交付稅度 減少할 수밖에 없어 反撥한다. 權 市長은 이 部分을 指摘하면서 “結局 市·道 統合이 돼야 財政 問題도 解決될 수 있다”고 强調했다. 

    - 權 市場 말대로 犧牲과 獻身 等 大邱의 精神은 잘 알겠지만, 한便으로 大邱·慶北은 늘 保守政黨에 票가 쏠리고, 權威主義와 閉鎖性을 指摘하는 사람들도 있다. 

    “政治 프레임이다. 전두환·노태우 政權을 거치면서 地域主義로 民主主義를 歪曲시킨 過程에서 大邱의 革新成果 民主性이 가려진 側面이 있다. 흔히 大邱·慶北을 保守的 都市라고 생각해 民主主義와 距離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憲政 史上 最初의 民主化運動人 2·28 大邱民主化運動(自由黨 政權이 當時 野黨 場面 副統領 候補 演說會에 學生 參與를 막은 게 發端이 돼 일어난 學生 義擧로 4·19革命의 起爆劑가 됐다)도 大邱에서 일어났다. 올해 總選에서 大邱 地域 (12個 選擧區에서) 保守政黨 候補가 많이 當選(未來統合黨 11名, 無所屬 1名)된 것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狀況과 한便으론 大邱·慶北이 孤立되면서 抵抗하는 側面의 投票 傾向도 있었다. 앞서 20代 總選에서는 더불어民主黨 1名(金富謙),無所屬 3名(朱豪英, 劉承旼, 洪宜洛)李 選出됐다. 서울처럼 민주당이 多數가 돼야 脫(脫)保守, 脫守舊인가. 政黨이 하기에 따라 政治的 多樣性이 가장 잘 살아 있는 곳이 大邱다. 湖南과 달리 大邱에서 민주당 候補들이 當選되기 어려운 것은 민주당 政策이나 候補 面面이 市民 期待에 副應하지 못한 側面도 있다. 大邱에서 왜 이런 投票 性向이 나오는지 잘 생각해야 한다.”

    “민주당이 多數가 돼야 脫(脫)保守인가”

    - 保守 有權者들은 變化에 對한 熱望은 큰데 保守政黨과 政治가 그 熱望을 담아내지 못하는 側面도 있는 거 같다. 

    “내가 2014年 市場에 挑戰할 때 모두들 ‘턱도 없다’고 했다. 나는 大邱에서 高等學校(청구고)만 卒業하고, 地域 基盤도 없었으니까. 朴槿惠 政府에서 再選, 3線 ‘元祖 親朴’ 議員 出身 候補들과 競爭했으니 그럴만 했다. 그래도 ‘競爭의 無風地帶에 새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政治的 變化만을 생각해 挑戰했는데, ‘덜커덕’ 當選됐다. 그건 大邱市民들의 變化에 對한 渴望이라고 본다. 問題는 結局 政黨이 바뀌지 않으면 政治를 바꿀 수 없다는 點이다. 그동안 保守 政治人들은 票는 有權者가 주는데 ‘黨 보스’에게만 잘 보이려고 했고, 特히 大邱·慶北은 公薦만 되면 當選이 保障되는 慣行이 反復되다 보니 競爭力 있는 政治人들을 키워내지 못했다. 只今은 大韓民國에 제대로 된 報酬가 있느냐는 물음을 던져봐야 할 때다.”

    - 어떤 意味인가. 

    “요즘 自稱 保守라는 사람들은 保守가 뭔지도 모르고 떠든다. 保守의 價値와 行動樣式, 倫理에 對해 歪曲된 認識을 갖고 있는 거 같다. 分斷과 冷戰을 거치면서 反共主義와 自由民主主義를 口號로 외치면 保守인 줄 안다. 便하게 保守 行世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保守는 自由民主主義와 市場에 對한 挑戰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려고 끊임없이 變化해 왔다. ‘持續可能한 福祉’도 保守가 만들어가는 건데, 우리는 成長과 福祉를 對立 槪念으로 놓고 보니까 포퓰리즘이라고 辱하면서도 끌려간다. 自由民主主義 歷史는 熾烈한 苦悶과 鬪爭의 歷史인데, 그런 苦悶과 鬪爭보다는 現在 保守 (政治) 勢力은 保守 全體를 國民들로부터 漸漸 고립시키는 政治를 한다. 國民의힘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사람을 안 키운다. 保守 政治는 곧 議會民主主義이고, 對話하며 妥協해 가는 政治인데도 權力 獨占으로 끊임없이 系派 싸움을 하다 보니 새人物의 ‘씨’가 말랐다. 只今도 ‘이 사람은 이래서 안 된다’는 排除의 政治를 하고 있지 않나. 끝으로 保守政治는 品格이 있어야 한다. 막말로 相對를 刺戟하고 貶下하는 게 容認되는 政治는 國民 多數의 支持도 얻지 못한다. 이제라도 保守는 痛烈하게 反省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

    - ‘씨’가 말라서인지 現在 保守 政治權에서는 次期 大選 候補가 보이지 않는다. 權 市場의 大權 出馬說도 나오는데. 

    “나는 廣域團體長은 國家를 위해 일할 準備와 召命意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點에서 廣域團體長들은 潛在的 大權走者다. 다만 大權 挑戰이 個人 欲心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다. 大邱市長이 되는 瞬間부터 나의 政治的 運命은 大邱市民의 것이다. 大選으로 갈지, 3線 出馬를 할지, 아니면 집으로 갈지는 市民이 定해주는 거다. 1年 程度 經濟 回生에 專念하다보면 市民들이 길을 提示해 줄 거라고 본다. 市民들이 ‘그만하라’면 집에 가야 한다.”

    暫時 뭔가를 생각하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個人的으로 1999年 이회창 當時 한나라당 總裁를 통해 政治에 入門해 서울市 政務副市長과 (18代) 國會議員 等 國民 恩惠를 많이 입었다. 그런데 問題는 ‘네가 벼슬할 동안 우리 政治가 좋아졌느냐’고 물으면 率直히 부끄럽다. 政治할 時間이 많이 남은 나이도 아닌 만큼 ‘좋은 政治를 만드는 데 밀알이 돼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를 包含해 旣成 政治人들이 너무 부끄러운 (政治的) 結果를 낳았다. 그리고 文在寅 政府도 ‘촛불革命’이라는 壓倒的 雰圍氣를 몰아 當選된 만큼 조금만 包容했다면 國民 大統合으로 갈 수 있었는데 너무 아쉽다. 남은 任期만이라도 다른 건 몰라도 統合의 政治를 했으면 좋겠다. 더 詳細하게 말하면 市場이 너무 政治的 發言을 한다고 할 거니까 여기까지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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