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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비타 람다스 오픈소사이어티財團 女性權利 디렉터 “‘82年生 김지영’에 對한 解法에 世界가 注目하고 있다”|주간동아

週刊東亞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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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카비타 람다스 오픈소사이어티財團 女性權利 디렉터 “‘82年生 김지영’에 對한 解法에 世界가 注目하고 있다”

世界的으로 有名한 페미니스트…“兩性平等 實現에 必要한 건 惻隱之心”

  • 강지남 記者

    layra@donga.com

    入力 2019-11-03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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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남 기자]

    [김성남 記者]

    姑母가 寡婦가 됐다. 사람들은 “女子 때문에 男子가 죽었다”고 손가락질했다. 親戚들이 姑母에게 몰려가 그女의 形形色色 事理를 벗기고 흰色 사리를 입게 했다. 긴 머리는 잘려나갔고, 結婚한 女性이 이마에 붙이는 빈디(Bindi)도 빼앗겼다. 海軍 提督人 아버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數次例 戰爭을 이끈 아버지도 自己 누이를 求하지 못하는구나….” 열한 살 印度 少女가 女性人權 問題에 눈뜬 것은 그 무렵부터다.

    서울大 包容社會센터와 協業

    카비타 람다스(57·寫眞)는 世界的인 女性運動家다. 印度에서 태어난 그는 海軍 提督 아버지를 따라 印度, 英國, 獨逸, 미얀마에서 자랐다. 印度 델리代와 美國 매사추세츠주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를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國際開發 硏究로 碩士學位를 取得한 後 줄곧 女性 關聯 機關에서 일하며 世界 各地의 女性運動 現場에 參與해왔다. 1995年 中國 베이징에서 열린 世界女性會議에 參席한 當時 힐러리 클린턴 美國 令夫人이 “女性의 權利는 人間의 權利”라는 歷史的인 演說을 할 때 그도 世界女性基金(Global Fund for Women) 代表로 그곳에 있었다. 2009年 女性運動에 關한 그의 테드(TED) 講演은 57萬 回 以上 照會되고 23個 言語로 飜譯됐을 程度로 큰 反響을 일으켰다. 

    10月 28日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람다스를 만났다. 서울대 國際大學院 내 國際學硏究所 傘下에 國際移住와포용사회연구센터(센터장 은기수 서울대 國際大學院 敎授·以下 包容社會센터)가 새로 設立됐는데, 여기에 든든한 支援軍 役割을 한 곳이 오픈소사이어티財團(Open Society Foundation·OSF)이다. 지난해 8月 女性權利(Women’s Rights) 프로그램 디렉터로 OSF에 合流한 람다스가 이番 支援을 主導했다. 서울大 包容社會센터는 젠더, 人種, 年齡, 障礙 等을 理由로 差別받지 않는 包容 社會(Inclusive Society)를 위한 學問的·實踐的 努力을 기울이겠다는 計劃이다. 

    記者가 冊 ‘82年生 김지영’을 膳物하자 그는 “이 小說을 잘 안다. 同名 映畫를 보고 많은 韓國 女性이 울었다는데, 그 理由 또한 잘 안다. 世界 女性들도 같은 理由로 울고 있다. 이番에 서울대와 協力하는 것도 世界의 김지영을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빌&멀린다게이츠財團(게이츠財團)의 諮問團 一員으로도 活動한 바 있는데, 두 財團의 差異는 뭔가. 

    “世上을 바라보는 觀點이 다르다. IT(情報通信) 業界에서 大成한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 視角으로 問題에 接近한다. 사람들의 營養이 不足하다면 ‘乾燥한 氣候를 잘 견디는 씨앗을 開發하자’는 式이다. 사람들이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묻지 않는다. OSF를 세운 ‘投資李 代가’ 조지 소로스는 헝가리 胎生의 홀로코스트 生存者다. 東유럽 共産主義를 보고 겪은 그는 社會가 繁榮하려면 討論이 活潑하게 벌어지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提示되는 열린社會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民主主義 擴散이 最善의 接近法이라고 생각한다. 技術은 魔法이 아니다. 不平等과 不義까지 바꾸진 못한다.” 



    소로스가 私財 20兆 원을 털어 세운 OSF는 게이츠財團에 이어 美國에서 두 番째로 큰 民間 慈善團體다. OSF는 1980年代부터 東유럽國家의 民主化運動을 支援하기 始作해 現在는 南아메리카, 中央아시아, 南美 等 120餘 個國에서 正義와 人權, 民主主義 擴散을 目標로 다양한 支援 事業을 벌이고 있다. 韓國에도 2年 前 事務所를 마련했다. 이 團體의 年間 事業費는 지난해 基準으로 10億8370萬 달러(約 1兆2700億 원)다. 

    女性權利 프로그램을 紹介해달라. 

    “過去 ‘女性 네트워크 프로그램(Network of Women’s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學問的 硏究와 女性運動 現場을 함께 支援해왔다. 主로 수단, 아프가니스탄 等에서 戰爭으로 삶이 망가진 女性에 集中했다. 그러다 最近 ‘女性權利’로 이름을 바꿨고, 내가 디렉터를 맡은 以後 3個 分野에서 事業을 펼치고 있다. 

    첫째, 女性의 몸에 對한 權利를 되찾는 活動이다. 性的 權利, 出産할 權利, 落胎 및 暴力 問題 等 國家와 社會가 女性의 몸을 統制하는 方式에 對해 問題를 提起한다. 둘째, 돌봄(care) 이슈다. 國內總生産(GDP)에 돌봄 費用이 反映되지 않을 程度로 돌봄 勞動은 보이지도, 測定되지도 않는다. 이를 바꾸고자 한다. 셋째, 다양한 女性運動을 支援한다. 普通 女性을 被害者, 苦痛받는 者, 힘없는 者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女性이 本來 宏壯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團地 빼앗겼을 뿐이지.”

    發展 國家의 젠더 不平等에 ‘注目’

    10월 28일 카비타 람다스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성운동에 관해 강연했다. [김성남 기자]

    10月 28日 카비타 람다스는 서울대 國際大學院에서 靑年들을 對象으로 女性運動에 關해 講演했다. [김성남 記者]

    第3世界와 比較해 韓國 女性은 差別 없이 敎育받고 社會 參與率도 높은 便이다. 그러한 韓國에서 支援 活動을 벌이는 理由는. 

    “韓國 經濟는 매우 發展했고 女性의 敎育 水準 또한 매우 높다. 그런데 그렇다고 젠더 不平等이 解消됐나. ‘女子는 예뻐야 한다’는 强要는 如前하고, ‘미투(Me Too)運動’은 活潑하다. 女性에게 加해지는 暴力도 深刻한 水準이다. 2014年 유엔 報告書에 따르면 殺人 犧牲者 中 女性 比率이 높은 國家 順位에서 韓國은 3位다. 2017年 韓國刑事政策硏究院은 80% 가까운 韓國 男性이 肉體的·精神的으로 女子親舊를 虐待한 적 있다는 硏究 結果를 내놨다. 南美와 南아메리카 低開發國家들이 韓國을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 經濟發展을 해나가면서 自身들도 맞닥뜨릴 問題이기 때문이다. 韓國 社會가 이를 어떻게 解決하는지가 이들에게 좋은 參考가 될 것이다.” 

    서울大 包容社會센터에 어떤 期待를 하나. 

    “韓國이 돌봄 이슈를 리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2年生 김지영’에서 보듯 돌봄 問題를 解決하지 않고서는 兩性平等 및 高齡化-低出産 問題를 解消할 수 없다. 韓國 女性들을 만날 때마다 各自 子女와 老衰한 父母의 돌봄 問題로 孤軍奮鬪하는 모습을 본다. 이는 危機고, 危機는 機會다. 韓國이 찾아낸 解決策이 世界로 뻗어나갈 수 있다. 女性權利 프로그램의 年間 豫算은 530萬 달러(藥 61億 원)로 적은 便이어서, 적은 돈으로 큰 效果를 거둬야 한다. 그래서 韓國을 찾아왔다. 韓國을 돕겠다는 게 아니라, 韓國의 社會學者, 經濟學者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자 한다. 우리로서는 韓國에 巨額의 판돈(big bet)을 건 셈이다.(웃음)” 

    印度 社會는 韓國보다 더 保守的이다. 람다스는 “女性이 24歲가 넘었는데도 結婚하지 않으면 ‘大體 뭐가 問題야?’라는 얘길 듣는다”며 “高等敎育을 받은 印度 女性들도 ‘김지영’과 같은 問題提起를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비록 美國에서 자리 잡았지만 如前히 印度 文化圈에 屬하는 그는 印度 사람이 보기에 ‘挑戰的인’ 삶을 살아왔다. 于先 파키스탄 男子와 結婚했고(그의 아버지는 印度-파키스탄 間 戰爭에 세 次例 參戰한 바 있다), 딸을 出産한 後 男便이 일을 그만두고 살림과 育兒를 도맡았다. 그는 “出産하고 2個月이 지나자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미치겠더라. 反面 男便은 아이를 돌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 夫婦는 ‘셸 位 스위치(Shall we switch)?’ 하며 果敢하게 傳統的인 性(性) 役割을 바꿔버렸다”고 했다. 1995年 그가 20名의 女性代表를 이끌고 2週間 베이징 世界女性會議에 參席했을 때도 男便은 집에서 한 살 半짜리 어린 딸을 돌봤다. 

    아내가 밥벌이를 하고 男便이 專業主婦 役割을 하는 것은 韓國 社會에서도 아직 낯선 일이다. 

    “甚至於 페미니스트인 내 親舊들도 ‘뭐라고? 男便이 ‘全혀’ 돈을 벌지 않는다고?’라며 놀라더라. 이 亦是 不當하다. 男子아이는 ‘돈을 벌어라’, 女子아이는 ‘사람보다 못한 存在(less than human being)’라는 圖章을 이마에 찍고 태어나는가. 男性도 家父長制 아래서 抑壓을 받는다. 全 世界的으로 男性이 女性보다 平均 콜레스테롤 數値와 心臟痲痹 死亡率이 높은 것도 過度한 스트레스에서 起因한다. 男性을 家父長制의 傭兵으로 만들지 말고, 男性 亦是 眞情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自由를 누리게 해줘야 한다.” 

    大學生이던 18歲의 람다스는 거리로 뛰쳐나가 印度 女性들과 함께 “우리는 꽃이 아니다. 變化의 불꽃이다”라는 口號를 외쳤다. 當時 17歲 少女가 父母가 보는 앞에서 警察에 集團强姦을 當하는 事件이 벌어지자, 權力을 가진 男性에 依한 强姦을 罪로 보지 않는 法律 改正을 要求하는 示威가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當時 그보다 더 積極的으로 女性運動에 나선 사람은 어머니였다. 警察이 “警察署로 잡혀온 웬 미친 女子가 海軍 提督의 아내라고 主張한다”고 電話를 걸어오면 그의 아버지가 “내 아내가 맞다”고 答하는 일이 여러 次例 있었다고 한다.

    페미니즘이란 ‘귀 사이의 무엇’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사진 제공 ·(주)봄바람영화사]

    映畫 ‘82年生 김지영’의 한 場面. [寫眞 提供 ·(週)봄바람映畫社]

    勇敢한 어머니가 롤모델이었겠다. 

    “어머니는 家父長制에 익숙한 아버지를 ‘다른 사람이 됐다’고 表現할 程度로 크게 변화시켰다. 勿論 어머니가 아버지 귀에 대고 소리를 많이 질러야 했지만.(웃음) 비록 아버지는 寡婦가 된 自身의 누이를 不當한 抑壓으로부터 求해내진 못했지만, 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많이 努力했다. 파키스탄人 사위를 받아들였고, 그 사위가 돈을 버는 代身 집에서 살림하는 것 亦是 時間이 오래 걸리긴 했어도 結局 理解하게 됐다. 내 아버지처럼 男性의 變化와 支持가 페미니즘 運動에 큰 役割을 한다고 생각한다.” 

    最近 韓國 페미니즘 運動은 男性 嫌惡 等 極端的 方向으로 展開되고 있다. 

    “모든 社會運動이 처음에는 極端으로 흐른다. ‘음, 罪悚한데요, 우리 女性들을 그렇게 對하지 말아주시겠어요?’라고 상냥하게 말하면 누가 듣기나 할까.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男性이 없는 女性은 自轉車 없는 물고기와 같다’고 말한 것과 같이 初期 페미니즘 運動이 極端的인 方式으로 展開되는 것은 當然하다. 하지만 다음 段階로 나아가려면 協商이 必要하다. 印度도 英國을 相對로 獨立運動을 펼치며 200年間 武力鬪爭을 벌였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한 뒤에야 비로소 간디의 非暴力抵抗이 登場했다.” 

    람다스는 ‘미러링’(mirroring·되받아치기)에 對해 “女性이 그間 겪어온 苦痛과 傷處를 表出하는 하나의 方式”이라고 말했다. 누구든 化粧室에서 볼일을 볼 때 露出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恐怖를 直接 겪는다면 어떤 氣分이 들지 조금이라도 느껴보라는 게 미러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點은 이 方式으로는 世上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主人의 집을 主人의 裝備로 解體할 순 없다. 새로운 方法을 찾아야 한다”고 强調했다. 

    ‘女性運動의 간디’는 어느 時點에 登場할 수 있을까. 

    “모든 社會運動은 直線으로 흐르지 않는다. 세 걸음 앞서 나가다 두 걸음 물러나기를 反復하며 前進한다. 溫和한 方法을 쓰다 效果가 없으면 ‘됐다, 武器 꺼내(Forget it, Bring me a weapon)’ 하는 것이다. 17歲 少女가 强姦을 當한다면, 當場 門을 부수고 달려들어야 한다. 그러나 繼續 急進的으로 나가며 世上의 折半을 排除해서는 새로운 世上을 만들 수 없다.” 

    람다스는 “내게 페미니즘이란 兩다리 사이에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귀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問題”라고 말했다. 젠더 葛藤은 結局 相對를 理解하려는 마음에서 그 解法을 찾을 수 있다는 意味다. 그는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男性은 곧 女性이 미워하거나 敵對視해야 하는 存在가 아니라 우리가 낳은 存在라는 事實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韓國 靑年에게 傳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後날 父母가 되면 只今까지와는 다른 方式으로 子女를 키우길 바란다. 어린 아들이 장성해 집에서 아내와 子女 돌보기를 願한다면 그러한 아들의 決定에 幸福해하는 父母가 됐으면 좋겠다. 社會運動은 進化할수록 成熟해진다. 男女가 함께 더 나은 世上을 만드는 데 가장 必要한 道具가 惻隱之心(tools with compassion)이라는 것을 銘心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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