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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朱豪英 “議會 獨裁 始作…忠武公 精神으로 싸우겠다”|신동아

돌아온 朱豪英 “議會 獨裁 始作…忠武公 精神으로 싸우겠다”

  • 배수강 記者

    bsk@donga.com

    入力 2020-06-26 1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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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公搜處·檢察 掌握하려니 法司委員長 목매

    • 1黨 獨裁 完成, 議會 獨裁 始作됐다

    • 金太年과 ‘어깨동무’? 뭔가 보여주려 演出한 寫眞

    • 院內 戰略은 팩트, 論理, 代案, 國民 輿論의 힘

    • 12隻 忠武公 精神, 103席 우리가 배워야할 精神

    • 徹底한 準備, 正確한 狀況 判斷, 團結力, 愛民精神

    • 統合黨은 弘報戰, 弱者 同行, 國民 아픔 共感에 失敗

    • 尹美香·祖國 事態 똑같아…불의 덮고 自己便 擁護

    • 白善燁 顯忠園 安葬 反對는 人間事에 對한 沒理解 탓

    • 洪準杓 等 無所屬 議員들 復黨 反對 목소리 귀 기울여야

    • 勢力이 있다고 다 부리진 말라(勢不可使盡)

    • 北 連絡事務所 爆破했는데도 終戰宣言…精神 나간 黨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朱豪英이 돌아왔다. 

    全國 寺刹을 돌며 蟄居하던 朱豪英 未來統合黨 院內代表가 6月 25日 國會로 돌아왔다. 未來統合黨은 이날 國會에서 緊急 議員總會를 열고 朱 院內代表의 再信任을 滿場一致로 追認했다. 6月 15日 더불어民主黨의 6個 常任委員長 單獨 選出과 常任委員 强制 配定에 抗議해 辭意를 表明한 지 11日 만이다. 

    朱 院內代表는 이날 午後 ‘신동아’와 電話인터뷰에서 膈한 表現을 써가며 그동안의 마음苦生과 더불어민주당에 對한 背信感을 드러냈다. 목소리에서는 결氣가 묻어났다. 앞서 6月 10日 ‘신동아’는 國會 未來統合黨 院內代表室에서 그를 만난 對面 인터뷰를 했다. 朱 院內代表는 4·15 總選을 앞두고 地域區를 옮겨(대구 壽城甲→壽城乙) 與黨 巨物 김부겸 候補를 잡았고, 내친김에 院內代表 자리를 꿰찼지만 表情은 굳어 있었다.

    李舜臣 將軍과 12隻의 배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6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비상의원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朱豪英 未來統合黨 院內代表가 6月 25日 서울 汝矣島 國會에서 열린 緊急 非常議員總會에 參席하고 있다. [뉴시스]

    -그동안 全國 寺刹을 돌며 蟄居 아닌 蟄居를 했는데. 생각을 整理했나. 

    “한곳에 있으면 자꾸 찾아오니까, 사람들을 避해 다닌 것이지 査察 巡禮를 다닌 건 아니다. 처음 牙山 顯忠祠와 大田 顯忠院 들렀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버렸는데, 果然 只今 政治하는 사람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大統領이나 이런 사람들이 목숨 버린 사람들의 切切함을 제대로 알고 政治를 하는지 묻고 싶었다. 壬辰倭亂 當時 倭軍은 李舜臣 將軍에 連霸를 當하니 그 憤풀이로 (忠武公의) 牙山 生家까지 쳐들어와서 아들을 죽였다(명량해전에서 大敗한 倭軍은 忠武公에 對한 復讐를 위해 牙山을 攻擊했다. 이때 忠武公의 셋째 아들 裏面은 倭軍에 맞서 싸우다 戰死했다). 個人的으론 그렇게 悽絶하게 當했지만 公的價値에 獻身하는 忠武公 精神은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明朗海戰에서) 12隻의 배로 倭軍의 133隻을 擊破했다. 只今 우리 處地가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마주한 數的 劣勢를 어떻게 克服할 것인가지 苦悶했고, 忠武公 精神을 배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忠武公 精神은 뭔가. 

    “徹底한 準備와 正確한 狀況 判斷, 組織員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團結力, 그리고 軍人이 아닌 수많은 百姓을 하나로 모으게 한 愛民(愛民)精神. 이걸 배우는 게 우리의 살길이 아닐까. 나머지 (蟄居) 期間에는 이것만 생각했다. 



    -少數 野黨 院內 司令塔으로서 向後 貸與 戰略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國會先進化法이 있어 옛날처럼 積極 鬪爭하면서 몸으로 막을 수도 없다. 結局 팩트와 論理와 代案, 그리고 國民 輿論의 힘으로 막아야 한다. 言論 環境도 不利한 狀況에서 徹底하게 팩트, 論理, 對案에 集中해 持續的으로 國民에게 呼訴하는 것 外에는 方法이 없다. 여기에 우리 黨 議員들의 行態가 國民으로부터 絶對 指彈받는 일이 없고 좋은 評을 받는 言行으로 가득 차야 한다. 結局 國民을 보고 가야 한다.”

    金太年과 어깨동무한 理由

    6월 23일 강원 고성군 화암사를 찾은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대화하는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제공]

    6月 23日 江原 固城郡 화암사를 찾은 金太年 더불어民主黨 院內代表와 對話하는 朱豪英 未來統合黨 院內代表. [더불어民主黨 提供]

    -6月 23日 江原 高城 화암사를 찾은 金太年 民主黨 院內代表와 어깨동무를 한 寫眞이 報道되면서 院 構成 協商이 다시 始作된 게 아니냐는 觀測을 낳았는데. 
     
    ”全혀 아니다. 내가 每日 査察을 옮겨 다닌 것도 내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하도 찾아오겠다고 해서였다. 그날은 내가 잘 아는 큰스님이 서울 病院에 가셨는데 ‘午後에 暫時 보고 내려가라’고 하셔서 기다리다 그렇게 된 거다.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있었다. 나는 記事나 保佐陣 없이 혼자 運轉하고 다녔는데 暫時 밖에 나갔다 와서 駐車를 하려고 보니 내가 車를 대는 자리에 金 院內代表 車와 記事, 補佐官이 있더라. 내가 逃亡갈 必要는 없지 않나. 그래서 만나게 된 거다. 어떤 準備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地域 通信社 記者가 찾아온 것이고. 그 記者는 ‘왜 以來 語塞하냐. 어깨동무를 하라’ 했다. 一種의 演出된 寫眞이다. 자꾸 어깨동무를 하라고 한 걸 보니 斟酌컨대 記者를 미리 涉外한 거 같았다. 나를 만나고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 거 같다.” 

    -새로운 提案은 없었나. 

    “全혀 없었다. 나라事情이 이러하니 그냥 國會로 돌아가자는 거였다. ‘뭔가 變化된 게 있어야지 않느냐’고 했더니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오직 國民만 보고 가면 안 되느냐’고 하더라.” 

    -週 院內代表는 한 言論 인터뷰에서 金 院內代表의 모습이 ‘据銃(据銃·射擊 前 銃 개머리板을 어깨에 댐)을 하고 좋은 말 할 때 할래, 맞고 할래’ 式이었다고 했는데. 

    “딱 그런 式이었다. 金 院內代表와 協商을 한 게 하나가 (常任委員長) 18席을 다 가져가느냐 11代 7로 나누느냐 그것만 있었다.” 

    -法制司法委員長 자리를 野黨에게 준다는 말은 없었나. 

    “그건 처음부터 안 된다고 했고.” 

    -그렇다면 常任委員長 18席을 민주당에 다 내어 줄 건가. 아니면 法司委를 법제위와 司法위로 나누는 方案에 對해 민주당 ‘사인’을 지켜볼 건가. 

    “自己들(民主黨) 손아귀에 들어와 있는데 갈라서 주겠는가. 重要한 것은 每年 違憲法律審判(國會에서 制定한 法律이 憲法에 違反되는지 與否를 憲法裁判所가 審査) 提請 件數가 늘고 있는 狀況에서 常任委員長을 누가 가져가는지가 重要한 問題가 아니다. 只今 法査委에는 法制委員會와 司法委員會가 겹쳐있는데, 司法위만 해도 中央部處 外에 全國의 法院과 檢察, 法制處, 憲法裁判所, 高位公職者犯罪搜査處(公搜處), 監査院 等을 管轄한다. 이렇게 많은 機關을 맡고 있으면서도 法制 機能까지 맡고 있다. 法案小委 委員 7名이 4年間 2800餘 件의 法案을 다룬다. 그러니 법제위를 떼어내 法曹人 出身 議員들이나 法案을 審査했던 小委員長들이 모두 加擔해 立法의 質을 높여야 한다. 이걸 눈 감은 채로 일하는 國會를 만든다? 민주당이 말하는 일하는 國會는 違憲法律을 量産하는 國會를 말하는 거다.” 

    -그랬더니 反應은 어땠나. 

    “(法司委員長 자리가) 自己들 손에 들어와 있으니 안 내놓지. 一切 말을 안 한다.”

    “鷄卵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동안 野黨 몫이던 法司委員長職을 與黨이 끝까지 固執한 理由는 무엇이라고 보나. 

    “于先 目的을 위해선 手段 方法을 가리지 않는 政黨이라고 느끼고 있다. 우리가 法司委員長을 하더라도 巨大 與黨은 패스트트랙(迅速處理案件 指定)도 할 수 있고, (法査委에서) 120日 以內에 審査를 마치지 않으면 本會議에 가져가도(상정) 되는데 그마저도 싫어한다. 自身들이 願하는 모든 걸 해야 하고, 조그만 障礙도 두지 않겠다는 거다. 野黨이 最小限의 牽制 裝置 하나를 남겨두자는 게 어찌 無理한 要求인가. 여기에 斟酌건대, 法査委가 檢察과 公搜處를 管掌하니까 우리가 委員長을 하면 이들 機關 掌握에 問題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公搜處가 檢察을 掌握하기 위해 만들었고 自己便을 넣어야 하는데 委員長이 野黨 出身이면 껄끄럽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그래서 ‘議會 獨裁’라고 批判했나.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 1黨 獨裁의 完成이자 議會 獨裁의 始作이다. 42%의 國民을 代表하는 第1野黨 院內代表로서 무거운 責任感을 갖고 協商에 臨했지만 鷄卵으로 바위 稚氣였다. 나라의 未來를 위해 協値로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 마음도 이제 접어야 할 거 같다. 多數의 힘으로 野黨을 밀어붙이고 가는 게 쉬워 보이겠지만 結局 ‘勝者의 詛呪’ ‘權力의 詛呪’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다. 暴走 列車처럼 내달리다가 스스로 무너질 거다.” 

    -돌이켜보면 21代 國會 院 構成 協商은 처음부터 熾烈했다. 民主黨의 “18席 獨食” 主張에 “히틀러의 나치 政權도 ‘法대로’를 외치면서 獨裁를 했다”고 强하게 맞받았는데. 

    “21代 院 構成 協商은 처음부터 協商이 아니라 脅迫이었다. 議員의 常任委 强制 配定과 常任委員長 與黨 單獨 選出 試圖는 制憲 國會 以來 없었던 일이다. 民主黨은 制憲 國會부터 내려온 協治의 傳統을 無慘히 짓밟았다. 協商 狀況은 開院 때마다 바뀌었는데 그 때마다 自己(民主黨)에게 유리한 主張만 하니 混亂이 있었다. 따지고 보면, 1988年 13代 國會 以前에는 한 席이라도 많은 政黨이 全 常任委員長職을 獨食했다. 國會法에 常任委員長은 本會議場에서 表決한다고 돼 있으니 다 가져간 거다. 그런데 13代 國會가 與小野大 4黨 體制가 되니 어느 政黨도 過半이 안 나와 方法이 없어 議席別로 가르자고 한 거다.” 

    -민주당은 總選에서 177席을 얻어 國會 規則을 바꿀 수 있다고 主張했다. 

    “그럼 13代 以後 過半 政黨이 나왔을 때 예전처럼 全體 常任委員長職을 가져갔으면 되는데, 以後에도 議席別로 配分했다. 2008年 18代 國會에서도 민주당은 81席, 우리(當時 한나라당)가 153席, 親朴連帶 14席, 無所屬 等 等 汎與圈이 200餘 席이었다. 그 때도 議席 比率로 나누고 法制司法委員長은 野黨이 가져갔다. 이게 慣行이자 ‘룰’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를 잘못된 慣行이라고 뻔뻔하게 主張했다. 野黨을 單 한番이라도 協商 파트너로서 尊重했다면 이렇게 莫無可奈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일은 없었을 거다.”

    “牽制해야 하는 國會가 行政府 ‘백업’에 바빠”


    -與黨과 言論은 院 構成 法定時限(5月 8日)을 넘겼다고 不可避性을 强調했다. 

    “아주 나쁜 프레임이다. 國會法은 一般法과 다르다. 國會 議事規則을 法으로 定해놓은, 一種의 訓示規定, 勸奬 程度다. 强行規定이라면 當然히 定해진 날에 院 構成을 안 하면 效力이 없다. 그런데 이걸 자꾸 言論이 ‘法定時限을 놓쳤다’며 우리가 마치 協商을 遲延시키는 것처럼 報道했는데, 이는 國會法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院 構成이 4年間 國會 運營의 틀을 定하는 것인데, 國會의 本質的 機能을 巨大 與黨이 法대로 한다면 野黨은 할 게 없다. 國會는 基本的으로 行政府를 牽制하는 게 目的인데, 與黨 國會議員들은 그 機能을 抛棄하고 行政府를 ‘백업’하는데 바쁘다.” 

    -洪楠基 經濟部總理 兼 企劃財政部 長官은 6月 24日 國會를 찾아 朴炳錫 國會議長, 金太年 院內代表와 面談했다. 7月 3日까지 臨時國會에서 3次 追更 處理가 急하다며 朱 院內代表도 만나겠다고 했는데. 

    “다음 週 쯤에 온다고 하더라. 와서 징징거리면서 追更이 急하다고 하면 ‘민주당에 가서 얘기해라’고 할 거다.” 

    -돌이켜보면 院內代表 當選 後 첫 行步가 象徵的이었다. 5·18 光州民主化運動 記念式에 參席해 遺家族 等으로부터 感謝 人事를 받았는데. 

    “5·18 關聯 遺家族, 負傷者 모임 代表들과 歡談하고 고맙다는 얘기 들은 것은 처음일 거 같다. 事實, 政治가 國民 統合과 身元(伸?·가슴에 맺힌 怨恨을 풂), 或은 解冤(解?·원통한 마음을 풂)에 앞장서야지 葛藤 構圖를 助長하는 건 맞지 않다. 記念式에 參席하고 遺家族을 慰勞하는 것은 그동안 黨에서 할 수 없는 일을 내가 한 게 아니다.”

    ‘첫 行步’ 光州가 주는 意味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운데)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5월 18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단체로 참배하고 있다. [동아DB]

    朱豪英 未來統合黨 院內代表(가운데)를 비롯한 黨 指導部가 5月 18日 光州 國立5·18民主墓地를 찾아 團體로 參拜하고 있다. [東亞DB]

    -어떤 意味인가. 

    “우리가 執權했을 때 光州民主化運動으로 規定하고 國立5·18民主墓地度 만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 黨 代表들도 參席했다. 내가 한 일이 우리 黨의 平素 方向과 다른 게 아니다. 다만 몇 가지 行態, 例를 들어 ‘임을 위한 行進曲’을 提唱(齊唱)하느냐 마느냐 같은 일이 政治 爭點化가 됐다. 이 曲은 우리 政權 때도 불렸고, 合唱團이 合唱하고 參加者들은 자유롭게 부르도록 했다. 이 政權에선 義務的으로 부르게 한 게 差異다. 그런데 그게 무슨 意味가 있나. 노래가 禁止曲度 아니고, 노래를 못 부르겠다면 行事場에 參席 안 하면 된다. 國民 統合에 앞장서야 하는 政治人이 이런 걸로 分裂과 葛藤을 助長해선 안 된다.” 

    5·18은 김영삼(YS) 政府 때인 1995年 特別法에 依해 光州民主化運動으로 規定됐고, 1997年 國家記念日로 制定됐다. 民主墓地는 1994年 11月 工事를 始作해 1997年 5月 16日 完工됐다. 

    -統合黨은 金鍾仁 非常對策委員長 體制가 닻을 올렸다. 朱 院內代表는 金 委員長 迎入에 積極的인 모습으로 비쳤는데. 

    “金 委員長 體制가 最善은 아니다. 黨에서 收拾하는 게 最善이었다. 내가 金 委員長을 모시는 데 앞장선 것으로 보이지만, 나는 반드시 그분을 모셔야 한다는 姿勢가 아니었다. 5月 8日 院內代表에 選出됐을 때는 이미 非對委員長으로 모셔놓은 狀態(4月 28日 全國委員會에서 可決)였고, 任期 問題가 남아 있었다. 내가 어떤 選擇을 하려면 이 問題부터 整理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 過程에서 多數의 뜻이 任期 制限을 풀고 가자고 整理되면서 내가 모신 거다(5월 22日 當選人 워크숍에서 金 委員長 任期를 來年 4月 7日 再·補闕 選擧까지로 決定했다).” 

    -金 委員長 體制는 어떻게 보나. 

    “金 委員長의 經綸이나 여러 政策을 통해 우리 黨에 도움이 됐으면 좋고, 그런 點에서 期待가 크다. 問題는 推進 過程에서 우리의 傳統的 支持者들과의 葛藤 要素를 最大限 없도록 하는 게 重要하다. 成功 與否도 거기에 달렸다고 본다. 아무리 좋은 政策이라도 黨이나 傳統的 支持者들이 是非를 걸면 推進하기 어렵다.”

    “中道實用으로 가는데 자꾸 ‘左클릭’이라고 하니…”


    -保守라는 말을 쓰지 말자거나 基本所得, 終日保育第 等에 對해 傳統的 支持者들은 ‘左클릭’이라고 批判한다. 

    “‘左클릭’이니 (金 委員長의) 保守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말 때문에 誤解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左右 對決이라는 틀 안에 집어넣으니 問題가 생기는 거다. 우리나라의 가장 重要한 社會安全網人 國民年金, 健康保險制度 等은 모두 保守政權에서 導入한 것이고, 特히 健康保險制度는 더 가진 사람이 더 내서 없는 사람 治療하게 해주자는, 一種의 社會主義的 政策이었다. 保守는 市場經濟를 키우면서도 市場經濟의 失敗를 커버하는 役割도 해야 한다. 當面한 問題가 있다면 그리 가야 한다. 우리는 그걸 보고 가는데 밖에서 자꾸 ‘左클릭’이라고 하니 …우리가 座(左)쪽을 좋아해서 禹(右)쪽을 버리는 것처럼 비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中道實用일 뿐이다.” 

    -保守는 그동안 成功神話를 썼고 健康保險制度처럼 成長과 함께 弱者를 保護했지만, 4·15 總選 結果에서 보듯이 오늘날 保守는 걸맞은 評價를 못 받는 거 같다. 왜 그렇다고 보나. 

    “于先 ‘진지’를 構築하는 데 疏忽했다. 진지는 言論일 수도 있고 所謂 理論家들日 수도 있다. 弘報戰에 疏忽했다. 그리고 오늘날 大韓民國이 이룬 成就의 大部分은 保守가 이룬 것인데 現在 政權 잡은 사람들은 그 成就는 當然한 것처럼 여긴다. 그 過失을 누리면서도 成就 過程에 나타난 작은 欠만 集中 浮刻한다. 그런 點에서 國民이 傾倒된 側面이 있다. 또한 最近의 保守는 共同體에 對한 獻身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弱者와의 同行이라든지 國民 아픔이라든지, 이런 걸 함께하는 政治 集團이라는 認識을 심어주지 못했다.” 

    朱 院內代表의 말이 빨라졌다. 

    “저쪽(文在寅 政權과 민주당) 政策은 國家의 持續可能性이나 發展에 對해선 한창 뒤떨어졌지만 感性的으로 接近하다 보니 國民 情緖가 그쪽으로 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政策 方向이나 談論은 훨씬 나은데 傳達하는 사람들의 人間味, 疏通 能力이 많이 不足해서 (國民 感情과) 멀어진 거 같다.” 

    -그래서 김종인 委員長이 基本所得制(國民에게 最小 生活費 名目으로 一定 金額을 一括 支給하는 制度)나 終日保育第(國家가 저녁까지 初等 1~中 3 學生 敎育과 保育을 책임지는 制度) 等을 꺼낸 건가. 

    “旣存 福祉體系로는 新種 코로나바이러스 感染症(코로나19) 以後의 社會를 이끌어가는 데 限界가 있는 만큼 ‘포스트 코로나’ 時代에 맞는 福祉·賃金體系 定立은 必要하다. 이런 論議는 活潑하게 해나가야 한다. 徹底한 財源 對策, 持續可能性, 效用을 點檢하고 우리나라에 맞는 시스템을 가져올 수 있다면 우리 社會를 한 段階 發展시키는 좋은 裝置가 될 거다. 다만 基本所得制에 버그(bug·컴퓨터 프로그램의 吳動作 原因이 되는 프로그램)가 있다든지, 大選을 앞두고 포퓰리즘으로 흐른다면 亡國의 길로 갈 수 있다. 基本所得에 關한 論議는 黨利黨略에 빠지지 않고 專門家들을 中心으로 國民 認識과 行態에 맞는 制度를 만들 수 있느냐가 重要하다. 그리고 前日保育制는…예전부터 前日保育制를 했던 나라다. 大家族 農耕社會에서 아이들은 마을 사람들이 다 돌봐주지 않았나(웃음). 事實 福祉나 制度라는 게 그물처럼 얽혀 있어 어느 하나만 좋거나 나쁘게 할 수 없다. 徹底히 點檢하고 다른 領域에 負擔을 주지 않는 方向에서 論議해야 한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


    -與圈 大權 潛龍들도 基本所得制 導入 論議에 뛰어들었지만 國家債務 增加 速度와 韓國 財政 與件을 勘案하면 未來 世代에 相當한 負擔이 될 수도 있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고, 空짜라면 洋잿물도 마신다는 말도 있지 않나. 緊急災難支援金처럼 選擧에서 유리한 局面을 차지하는 포퓰리즘的 側面이 剛하니…. 그게 걱정이다. 結局은 持續可能性과 民度(民度)에 달렸다고 본다. 스위스는 2016年 國民投票를 해 壓倒的으로 否決(77% 反對)시켰다. 基本所得制를 제대로 設計하고 거품 要素를 빼면 오래갈 수 있지만 選擧 民心을 의식한다면 오래 못 간다.” 

    -이용수 할머니의 暴露로 觸發된 이른바 ‘正義連 事態’와 尹美香 더불어民主黨 議員의 處身에 對해선 어떻게 보나. 

    “尹美香 事態는 慰安婦 問題의 大義나 當爲性을 利用해 國民을 속여왔다는 點에서 國民들이 憤怒하고 있다. 國民 誠金을 被害者인 할머니들을 위해 쓰지 않고 正義連 運動 中心으로 썼기 때문이다. 全體的으로 보면 日本과 慰安婦 問題를 解決할 수 있었는데 解決을 妨害한 걸로 보인다. 둘째는 募金한 돈을 집을 사거나 딸 留學費 等 史跡으로 橫領한 疑惑을 받고 있다는 點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深刻한 問題는 陣營으로 나뉘어 이 事案을 擁護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게 現 政權 들어 옳고 그름 自體로 判斷하는 게 아니라 陣營이나 머릿數로 判斷하는 世上이 됐다. ‘曺國 事態’와 똑같다. 아주 不義한 일을 했음에도 不義를 덮고 擁護한다. 便을 가르고 事案을 흐지부지하게 만든다. 그러니 國民이 認識하지 못하는 사이에 法治主義, 民主主義는 곪고 무너지고 있다.” 

    -國民 統合은 文在寅 大統領 就任辭에서도 가장 强調한 部分이다. 

    “그러니까. 就任辭 앞部分에 나온다. 가증스러운 것은 就任辭는 너무나 至當한 美辭麗句인데 하는 行態는 아예 反對로 간다는 거다. 極端的 便 가르기, 自己便 덮기, 相對는 無條件 積弊…말과 行態가 너무나 極과 極이다.” 

    文 大統領은 2017年 5月 10日 就任式에서 “오늘부터 저는 國民 모두의 大統領이 되겠습니다. 저를 支持하지 않았던 國民 한 분 한 분도 저의 國民이고, 우리의 國民으로 섬기겠습니다. 저는 敢히 約束드립니다. 2017年 5月 10日, 이날은 眞正한 國民 統合이 始作되는 例로 歷史에 記錄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朱 院內代表는 이 部分을 引用했다. 

    -白善燁 將軍의 顯忠園 安葬 問題도 論難이다. 白 將軍의 肝도 特設對 活動을 理由로 민주당 一角에선 鞍裝을 反對하고, 一部 與圈 人士는 ‘親日 破墓론’까지 提起한다. 反面 김종인 委員長은 “到底히 默過할 수 없는 얘기”라고 했다. 

    “이 政權은 反日 프레임, 親日 烙印찍기를 政治에 活用한다. 積極的 親日은 當然히 批判받고 배척받아야 한다. 그러나 獨立이나 解放을 모르고 日帝下에서 태어난 普通 사람들에게 避할 수 없는 삶의 親日을 이런 式으로 낙인찍는 것은 人間事에 對한 沒理解다. 김대중(DJ) 前 大統領도 ‘도요타 다이쥬(豊田大中)’로 創氏改名하고 大學(滿洲 건국대학)에 進學하려 했다는 걸 自敍傳을 통해 밝히지 않았나. 그렇다고 親日派로 批判받아야 하나. 사람의 一生은 稱讚과 批判으로 點綴된 것인데 어느 하나만 떼놓고 評價하는 건 맞지 않다. 이 政權은 相對 陣營이 피땀으로 成就한 것은 當然한 것이고, 그걸 누리면서도 欠 하나를 찾아내 針小棒大한다. 그들 中에는 6·25戰爭 때 백선엽 將軍의 活躍이 없었다면 이 땅에 살 수 없거나 只今 누릴 수도 없었던 사람들도 있을 거다. 白 將軍은 ‘救國의 英雄’이기도 하지만 서울 동작동 國立墓地 터를 잡은 사람이기도 하다.”

    “對北政策은 破綻, 相對 善意에 期待서야…”

    [조영철 기자]

    [조영철 記者]

    -最近 北韓은 南北共同連絡事務所를 爆破하는가 하면 剛한 語調로 文 大統領과 우리 政府를 非難했다. 與黨은 終戰(終戰) 宣言 推進을 主張하는데. 

    “우리는 屈辱的 對北外交에 關한 國政調査를 剛하게 要求하고 있다. 大韓民國 運命을 大韓民國 國民 同意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憲法上 第一 重要한 게 國家를 保衛하는 일이다. 國立墓地에 가보면 숱한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는데 國家 安保에 關해 이렇게 허술하게 일하면 안 된다. 누구 말에 依하면 ‘粉飾(粉飾)平和’를 내세워서 國民들 속인 거 아닌가. 南北連絡事務所 爆破는 單純한 爆破가 아니라 大韓民國 自尊心과 象徵이 爆破된 거다. 이런 狀況이 눈앞에 있는 데도 終戰宣言을 하자, 板門店 宣言 國會 批准을 말하는데, 이런 精神 나간 黨이 어디 있는가.” 

    -존 볼턴 前 美國 白堊館 國家安保補佐官의 回顧錄이 불러온 波長도 만만찮다. 그는 “(2019年 6月 30日 板門店 自由의집 앞에서 南·北·美 3者 頂上이 만났을 때) 트럼프는 文 大統領이 近處에 없기를 바랐지만, 文 大統領은 頑剛하게 參席하려고 했고 可能하면 3者 會談으로 만들려고 했다”고 썼다. 

    “그의 말을 다 믿을 건 아니지만 메모狂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메모에 根據해서 回顧錄을 썼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相對國과 相對國 原水에 關한 일은 함부로 쓰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文 大統領은 이런 疑惑에 對해 國民에게 消詳히 밝히고 安保에 關해선 眞짜 精神 차리고 國民的 同意 아래에서 推進해야 한다. 국립현충원에 한番 가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與黨이 推進하는 ‘對北 傳單 撒布 禁止法’(假稱)에 對해선 어떻게 보나. 6月 4日 金與正 北韓 勞動黨 第1部部長의 談話가 나오자 法 制定을 公式化했는데.
     
    “이제는 아예 卑屈하다는 次元을 넘어 北韓이 한마디 하면 우리가 履行하지 않으면 안 되는 狀況이 됐다. 南北關係는 全혀 進展되지 않는데 數十 年째 저러고 있다. 이番 일은 文在寅 政權 等 左派 政權이 主張해 오던 南北關係 秩序와 對北政策 破綻을 말해 주는 事件이다. 우리는 진작 이러한 問題를 豫想하고 ‘이걸로 안 된다’고 얘기했는데, 그럴 때마다 ‘戰爭하자는 거냐’는 論理를 편다. 아니 世上에 戰爭하자는 사람이 어디 있나. 튼튼한 安保를 基盤으로 해야 對北 協商力이 생기는 것이지, 安保를 무너뜨리고 相對의 善意(善意)에 期待는 안보는 깨지기 마련이다. 

    實際 7·4南北共同聲明 等 保守政權 때 南北關係의 突破口를 마련했다. 더우면 스스로 옷을 벗는 게 아니라 아무리 더워도 옷을 안 벗겠다는 사람에게 햇볕政策은 더는 必要가 없다. 對北政策을 修正해야 한다.” 

    記者는 이즈음 한명숙 前 國務總理 事件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한 前 總理가 17代 大選候補 競選 費用 名目으로 한만호 前 한신건영 代表로부터 2007年 3次例에 걸쳐 9億 원을 받은 嫌疑로 起訴돼 懲役 2年을 山 事件이다. 2015年 8月 大法院 全員合議體는 9億 원 中 3億 원(1次 收受)은 大法官 13名 全員一致로, 6億 원(2, 3次 收受)은 8(有罪) : 5(無罪)로 나뉘었지만 亦是 有罪를 確定했다. 그런데 最近 親與 性向 媒體들이 한만호 前 代表의 獄中 備忘錄에 檢察이 僞證을 强要한 內容이 있다고 報道하자 與黨은 事件 再調査를 促求하며 無罪를 主張하고 있다. 

    -金太年 民主黨 院內代表는 5月 20日 한 前 總理에 對해 “檢察의 强壓搜査, 司法壟斷 被害者”라고 主張했다. 與黨은 事件 再調査를 促求했는데. 

    “韓 前 總理의 再審을 主張하는 사람들이 한 前 總理의 뜻을 確認하고 하는 말인지 묻고 싶다. 한 前 總理에게 確認을 하고 그런 主將을 하라고 勸하고 싶다. 이미 確立된 司法體制를 함부로 뒤집는 것은 司法 破壞다. 이 事件은 再審 節次를 거쳐야 하는데 再審 事由는 全혀 없다고 본다.” 

    -왜 그렇게 보나. 

    “(한만호 前 代表의 獄中) 備忘錄도 이미 裁判 過程에 證據로 提出됐다. 그 備忘錄 때문에 判決의 基本이 된 重要 證據가 僞證·僞造됐다는 確定 判決이 나야 再審이 可能하다. 法律的 用語로는 信憑性 或은 證明力이다. 그런데 備忘錄은 이미 裁判에서 다 反映됐다. (한만호 前 代表가 發行한) 1億 원짜리 手票가 한 前 總理 女同生 傳貰資金으로 使用한 金融 記錄도 있고, 檢察 搜査가 始作되기 前에 拘置所 接見에서 한만호 代表가 母親에게 ‘돈을 傳했다’고 한 事實 等이 있는데 이걸 再審을 한다고 다 公開한다? 實際 받지도 않은 돈을 받았다는 陋名을 썼다면 抑鬱해서 못 산다. 한 前 總理로서는 挽留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곤란한 處地일 거 같다.” 

    -野黨은 批判하지만 文 大統領 國政遂行 支持率은 如前히 높다. 

    “時間이 지나면 그 支持率이 國家的으로 엄청난 毒이 될 거다. 支持率이 낮으면 反省을 하는데 높다 보니 只今 잘하는 줄 錯覺한다. 불인 줄 알고 만지면 避하려는 意識에 火傷을 덜 입지만 모르고 만지면 큰 火傷을 입는다. 現在의 支持率이 ‘眞짜 支持率’인 줄 錯覺하면 고치거나 避할 契機도 없다. 여러 分析이 있지만, 支持率은 相對 非敎人 만큼 우리가 支持를 못 받으니 이런 일이 생겼다.” 

    -그렇다면 院內代表로서 責任感이 크겠다. 

    “院內代表가 다 하는 건 아니고(웃음). 黨 構成員 全體가 國民들 눈에 持續的으로 (肯定的으로) 비쳐야 한다. 그 一環으로 우리 黨 議員들의 歲費 30%를 社會에 還元하고, 獻血 및 臟器寄贈 運動을 持續的으로 펼칠 計劃이다. 國民들에게 ‘統合黨 國會議員은 감투를 누리는 게 아니라 奉仕하는구나’하는 認識이 심어질 때 受權政黨度 될 수 있다. 人才도 키우고 持續的으로 努力해야 한다.”

    “‘탈(脫)영남’과 ‘人(in)嶺南’은 區分이 안 된다”


    -一角에선 統合黨의 回生 戰略으로 脫營남, 脫理念, 脫財閥을 꼽는 목소리도 있다. 

    “우리 黨에서 ‘탈(脫)영남’과 ‘人(in)嶺南’은 區分이 안 된다. 우리 黨이 가는 方向을 脫營남 等으로 規定하니 그렇게 보이는 거다. 重要한 건 多數 國民이 생각하는 方向과 맞추는 거다. 財閥의 效用性과 順機能은 살리면서 잘못된 行態는 排斥하고, 北韓을 無條件 壓迫·封鎖하는 極右가 아니라 安保는 튼튼히 하면서도 여러 (政策) 變化가 있을 수 있다. 많은 國民 생각과 맞춰야 한다. 脫理念, 脫營남 이런 用語는 우리 變化 自體를 막는 프레임 用語다.” 

    -앞서 人材를 키운다고 했는데, 김종인 委員長은 最近 ‘40代 經濟專門家’ 大權 候補를 主張했다. 

    “海外의 40代 總理나 政治人들은 40代에 처음 政治를 始作한 게 아니라 이미 18살 때부터 靑年 黨員이 돼 充分히 政治 世界를 經驗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와는 環境이 다르다. 勿論 經驗이 있는 40代면 좋겠지만, 經驗으로만 보면 海外 40代 政治人은 우리나라 60代 政治人 程度 된다. 事實, 政治도 아주 複雜한 領域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테크닉과 技術이 必要한데 탤런트 뽑듯 해서는 안 된다. 政治人을 제대로 訓鍊하고 檢證하는 시스템이 必要하다.” 

    -無所屬 洪準杓, 金泰浩, 尹相現, 권성동 議員에 對한 復黨 問題는 어떻게 處理되는가. 

    “議員總會에서 드러난 議員들의 생각은 다양하고 複雜했다. 이들 無所屬 議員은 4線 以上으로 過去 우리 黨의 指導者級 議員들이다. 個人的으로는 우리 便 統合도 못 하는데 무슨 國民統合, 南北統一을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다만 無所屬 議員들도 復黨에 反對하는 목소리가 왜 나오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週 院內代表가 追求하는 政治는 어떤 政治인가. 

    “中道政治, 中道 相生 實用政治다. 우리나라 政治 風土에서 이런 政治가 자리할 場所가 작다. 理念·陳永 對決이 빨리 사라져야 하고, 妥協 없는 政治도 버려야 한다. 最大 多數 國民의 最大 幸福이 뭔지 眞摯하게 討論하고 結論을 내는 政治가 必要하다. 歲月이 흘러 그때 그 政治를 한 사람 때문에 우리나라가 繁榮했다는 評價를 받았으면 한다. 只今은 뭐, 平均 點數는커녕 完全 下(下)地 下(웃음).”

    法然스님의 沙溪(四戒)

    -次期 大權 挑戰은 어떤가. 總選 過程에서 州 議員이 出馬한 大邱 地域 新聞에 大權 挑戰 記事가 났었는데. 

    “아니 그건, 相對인 김부겸 候補가 大選 出馬한다고 하니 記者들이 내 생각을 묻기에 ‘大選 나가겠다는 사람을 壓倒的으로 이기면 나는 무엇을 해야겠나’라고 한 거다. 그랬더니 ‘朱豪英, 金富謙 꺾고 大選으로’라는 題目의 記事가 났다(웃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自己가 堪當할 짐이 100kg이라면 101kg만 져도 오래 못 간다. 99kg을 지면 오래 간다. 그동안 準備 안 된 大統領이 여럿 나와 나라가 어려워졌다. 이 말을 知人에게 했더니 ‘當身 그래선 將來性 없어’라고 하더라. 大統領이라는 자리는 하늘이 내린 자리이고, 只今은 院內代表하기도 벅차다. 생각할 餘裕도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주당이나 文 大統領에게 法然四季(法演四戒)를 들려주고 싶다. 오조 法然(?~1104) 스님께서 住持 所任을 맡아 떠나는 弟子 願오극근(1063~1135) 스님에게 내린 가르침이다. ‘勢力이 있다고 해서 勢力을 다 부리진 말고(勢不可使盡), 福을 다 받아 써서는 안 되며(福不可受盡), 法대로 다 施行해서는 안 되며(規矩不可行盡), 좋은 말을 다 말해서는 안 된다(好語不可說盡).’ 달이 차면 반드시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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