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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記者의 ‘尹美香 事態’ 40日 取材記|新東亞

김건희 記者의 ‘尹美香 事態’ 40日 取材記

李할머니, 非理 暴露 1年 前부터 苦悶…毅然한 態度로 記者會見場 壓倒

  • 김건희 客員記者

    kkh4792@donga.com

    入力 2020-06-2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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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수 할머니와 ‘22秒’ 通話

    • 李할머니 最側近 收養딸 郭氏와 事業家 朴氏

    • 尹美香에 宿所 情報 알려준 사람 누구?

    • 흥 많고 活動的인 스타일…‘女子의 一生’ 즐겨 불러

    • 30年 만에 問題 提起할 수밖에 없었던 理由

    • 할머니와 連絡도 주고받지 않는 사람이 背後라니?

    • 2次 記者會見文 作成 過程 顚末

    • 議員 任期 始作 10時間 앞두고 나타난 尹

    • 구글 뒤지다 發見한 寫眞, 電話 끊지 않은 不動産仲介人

    [GettyImage]

    [GettyImage]

    5月 大韓民國을 뒤흔든 ‘尹美香 事態’는 現在 進行形이다. 記者는 한 달 넘게 이 事態의 眞實을 쫓고 있다. 取材 過程에서 10件의 記事를 報道했고, 그中 6件의 單獨 記事를 썼다. ‘신동아’ 讀者에게 40餘 日間의 取材記를 公開한다. 

    “할머니가 인터뷰 要請을 拒否하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5月 21日 午後 6時, 서혁수 ‘挺身隊할머니와 함께하는 市民모임’ 代表로부터 電話 한 通이 걸려왔다. 앞서 徐 代表는 記者에게 “이용수 할머니가 머물고 있는 호텔로 案內해 주겠다”고 約束한 터였다. 하지만 現在 할머니가 言論과 接觸하기를 願치 않아 當場은 인터뷰하기 어렵다는 게 徐 代表가 記者에게 電話限 理由였다. 

    記者가 徐 代表에게 連絡을 取한 건 5月 7日 이용수 할머니가 1次 記者會見을 통해 正義記憶連帶(正義連) 理事長을 지낸 尹美香 더불어民主黨 議員과 正義連의 寄附金 流用 疑惑을 提起하면서다. 記者는 徐 代表에게 “이 할머니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바람을 披瀝했다. 하지만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쉽게 成事되지 않았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때마침 이 할머니가 5月 25日 2次 記者會見을 열겠다고 豫告한 터였다. ‘어쩌면 記者會見 前 이 할머니를 먼저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24日 새벽 6時, 記者는 노트북을 챙겨 大邱行 汽車에 몸을 실었다.



    李할머니와의 ‘22秒’ 通話

    서울驛에서 汽車로 4時間 남짓 달려 大邱驛에 到着한 時間은 午前 11時 4分. 대구역 앞에서 徐 代表의 電話가 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에게서 連絡이 왔다. 

    “어쩌죠. 할머니가 오늘 아침 일찍 大邱를 떠나셨대요. 저도 方今 連絡받았어요.” 

    豫想 못 한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어디로요? 大邱를 떠나 다른 地域으로 가신 건가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來日 記者會見해야 하니까 大邱로 돌아오시겠죠.” 

    “그럼 記者會見은 어떻게 되나요?” 

    “元來는 오늘 午後에 할머니와 만나 記者會見 時間과 場所를 最終 決定할 豫定이었어요. 會見 核心 內容도 調律하고요. 그런데 只今 할머니가 안 계시니 記者會見도 確實치 않네요.” 

    그사이 이 할머니 素材를 두고 다양한 記事가 쏟아졌다. 한 媒體는 이 할머니가 2次 記者會見을 準備하기 위해 知人들과 함께 競技 수원시로 移動하고 있다는 具體的인 報道까지 내놨다. 

    事實을 確認하기 위해서는 이 할머니에게 直接 連絡하는 수밖에 없었다. 搜所聞 끝에 이 할머니의 携帶電話 番號를 알아냈다. 受話器 너머 들려오는 이 할머니의 목소리에선 지친 氣色이 歷歷했다. 이 할머니는 “나 只今 말할 힘도 없어요. 나중에 通話해요”라며 電話를 끊었다. 이 할머니와 通話한 時間은 고작 22秒. 인터뷰 趣旨조차 傳하지 못했다. 다시 連絡을 試圖했지만 더는 連結되지 않았다. 文字메시지와 카카오톡 메시지도 여러 番 남겼으나 答狀은 오지 않았다.

    尹美香에 宿所 情報 알려준 사람 누구?

    ‘신동아’가 보도한 ‘윤미향 사태’ 관련 기사들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신동아’가 報道한 ‘尹美香 事態’ 關聯 記事들이 온라인上에서 큰 話題를 모았다.

    5月 19日 저녁 尹美香 議員은 이 할머니가 머무는 大邱의 한 호텔로 찾아와 10分假量 머물렀다. 當時 尹 議員은 이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채 “罪悚하다”며 容恕를 求한 것으로 言論에 報道됐다. 이와 關聯해 記者는 A氏로부터 이 할머니 宿所 情報 流出에 關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동안 鐵桶 保安 속에 管理되던 이 할머니 宿所 情報가 누구에 依해 어떤 經路로 流出됐는지 確認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였다. 

    當時 이 할머니의 宿所에는 朴氏와 郭氏, 몇 名의 市民모임 活動家 以外에는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고 한다. 尹 議員과 正義連 側이 事態를 마무리하고자 懷柔할 수도 있다고 보고 出入을 徹底하게 制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宿所 情報가 外部로 流出돼 尹 議員이 찾아오기까지 하자, 이 할머니는 周圍 사람들에게 “누가 내 宿所를 알려준 것이냐”며 크게 火를 냈다고 한다. 

    當時 記者는 이 內容을 取材해 5月 25日 記事(“누가 尹美香 側에?” 이용수 할머니 宿所情報 流出 論難’)를 報道했다. 온라인에서 照會數 6萬 回, 댓글 150餘個가 달렸다. 當時 이 할머니 周邊 사람들은 이 할머니와 오래 알고 지냈지만, 할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C氏를 疑心하고 있었다. 

    A氏에 따르면 C氏와 이 할머니는 慰安婦 運動 方向에 對한 생각이 서로 달랐다. A氏는 “C氏가 言論과 인터뷰하면서 慰安婦 運動에 對한 自身의 見解를 이 할머니의 見解인 것처럼 말해 이 할머니가 C氏의 이런 態度를 못마땅해했다”고 말했다. 

    며칠 뒤 이 할머니의 健康이 惡化됐다는 言論 報道가 나왔다. 한 通信社는 이 할머니 周邊 사람의 말을 引用해 이 할머니가 平素 오른팔 狀態가 좋지 않아 韓方 治療를 받아왔고, 尹 議員의 ‘突發 訪問’ 以後 가슴 痛症까지 생겼다고 報道했다. 오른팔에 針 施術을 받았으나, 健康이 많이 안 좋은 狀態라고도 했다. 

    記者는 바로 朴氏에게 電話를 걸어 이 할머니의 健康 狀態를 確認했다. 朴氏는 “病院에 入院해야 할 만큼 나쁜 狀態는 아니지만 1次 記者會見 以後 살이 많이 빠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서 우리가 할머니에게 檢査라도 받아보라 勸했지만, 할머니는 남의 耳目을 끄는 걸 願치 않는다며 病院에 가지 않겠다고 하신다”고 傳했다. 代身 이 할머니는 側近들에게 “當場은 몸을 추스르는 것보다 생각을 整理하는 게 于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의 周邊人들은 이 할머니에 對해 “興이 많고 活動的”이라고 評했다. 歌手 이미자의 노래 ‘女子의 一生’을 즐겨 불렀으며 浦項 竹島市場에서 回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흥 많고 活動的인 스타일…‘女子의 一生’ 즐겨 불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5월 25일 대구 수성구 인터불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 이용수 할머니가 5月 25日 大邱 壽城區 인터불고호텔에서 記者會見을 하고 있다. [寫眞共同取材團]

    記者는 大邱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5月 25日로 豫定된 2次 記者會見 現場을 取材하기 위해서였다. 當初 豫定됐던 記者會見 場所는 처음 이 할머니가 記者會見을 연 大邱 南區의 한 茶집이었다. 이곳은 2次 記者會見 當日 午前 7時부터 取材陣으로 人山人海를 이뤘다. 正午가 넘어서는 取材陣이 100餘 名으로 늘어났다. 國內 言論社는 勿論이고 日本 主要 媒體에서도 取材를 나왔다. 多數의 유튜버度 取材 隊列에 合流해 있었다. 이 茶집은 이 할머니의 단골집으로, 茶집 社長은 이 할머니는 勿論 郭氏와도 親分이 깊다. 

    午後가 되자 記者會見 場所가 바뀌었다. 茶집에서는 많은 取材陣을 한꺼번에 受容하기가 不可能했기 때문이다. 徐 代表는 “할머니가 마음 便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空間을 願한다”면서 “場所가 너무 狹小해 安全賞에도 問題가 있을 것 같아 場所를 大邱 수성구 守城호텔로 옮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以後에도 다시 한番 場所가 바뀌었다. 結局 記者會見은 豫想보다 40分 늦어진 2時 40分 壽城區 인터불고호텔에서 開催됐다. 記者는 會見場 앞쪽 바닥에 자리를 잡았다. 그 德에 이 할머니를 近接距離에서 볼 수 있었다. 

    記者會見이 始作되자 이 할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登場했다. 所聞대로 1次 記者會見 때에 비해 살이 많이 빠지고 氣力이 衰한 모습이었다. 이 할머니는 朴氏 等 周邊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서 일어나 壇上에 올랐다. 緊張한 모습이 歷歷했다. 感氣 기운이 있는지 물과 함께 液狀龍 感氣藥도 마셨다.

    30年 만에 問題 提起할 수밖에 없었던 理由

    하지만 막상 會見이 始作되자 할머니는 ‘쩌렁쩌렁’韓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아흔둘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聲量이었다. 하루 前 記者와 通話하면서 “말할 힘도 없다”고 한 분이 맞나 싶을 程度였다. 이날 이 할머니는 1次 記者會見 때와 마찬가지로 正義連 側의 잘못을 强調했다. “正義連과 尹 議員을 容恕할 수 없다. 檢察 調査를 받아야 한다”고 主張했다. 過去 事件들을 言及할 때면 時間, 場所, 關係者들의 이름까지 正確하게 밝혔다. 尹 議員이 “할머니의 記憶이 달라졌다”고 한 것과는 相反되는 모습이었다. 

    記者는 이날 이 할머니에게 ‘이제야 問題 提起를 할 수밖에 없었던 理由는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 할머니는 “갑작스럽게 내린 決定이 아니다. 내가 무엇이든지 바른말을 하니까, 挺對協(正義連 前身)과 尹美香이 나한테 제대로 얘기도 안 해주고 全部 다 감췄다. 狀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니 水曜集會를 그만두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1年 前부터 苦悶하고 苦悶하다가 이제야 말하기로 決心했다”고 答했다. 

    記者會見 後 이 할머니는 단골 茶집에서 저녁食事를 마치고 1時間假量 休息을 取한 뒤 宿所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記者는 朴氏와의 電話通話에서 “할머니가 取材陣과 카메라 洗禮에 緊張한 나머지,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하지 못해 아쉬워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記者의 記憶은 다르다. 自身의 생각을 確實하게 말하면서도 不必要한 이야기는 一切 꺼내지 않는, 剛斷 있는 이 할머니의 모습이 只今도 잊히지 않는다. 

    이튿날, 이 할머니의 2次 記者會見을 두고 背後說이 提起됐다. 放送人 金於俊 氏가 自身이 進行하는 라디오放送(TBS ‘金於俊의 뉴스工場’)에서 이 할머니의 背後에 최용상 가자平和人權當 代表가 있다고 主張한 것. 金氏는 “只今까지 할머니가 얘기한 것과 崔 代表의 主張이 비슷하다”며 “할머니가 宏壯히 뜬금없는 얘기를 하셨는데 여기서부터 누군가의 意圖가 反映돼 있다”고 主張했다.

    할머니와 連絡도 주고받지 않는 사람이 背後?

    金氏가 言及한 崔 代表는 이 할머니가 尹 議員의 日本軍 慰安婦 誠金 流用 疑惑을 暴露한 1次 記者會見을 周旋한 人物이다. 崔氏가 屬한 가자平和人權黨은 日本軍 慰安婦 및 强制動員 被害者 人權을 守護하고자 만든 進步 性向 政黨이다. 崔 代表는 4·15 總選 當時 더불어市民黨에 少數 政黨 몫 公薦을 申請했다가 候補 檢證 過程에서 탈락한 바 있다. 이에 對해 崔 代表는 한 言論과 인터뷰하면서 민주당이 自身을 公薦에서 排除한 理由가 尹 當選者 때문이라는 趣旨로 發言하기도 했다. 이런 點을 들어 尹 議員은 5月 13日 金氏가 進行하는 라디오에 出演해 “더불어市民黨 比例代表 公薦에서 排除된 崔 代表가 怏心을 갖고 할머니의 記者會見을 도운 것 같다”고 主張했다. 

    이 같은 金氏 主張에 對해 서혁수 代表는 “最近 할머니와 최용상 代表가 連絡을 주고받지 않는데, 都大體 어떻게 (記者會見 核心 內容에) 崔 代表의 意圖가 反映될 수 있느냐”고 反問했다. 復讐의 關係者는 이 할머니가 3月 末부터 記者會見을 準備해 왔고, 崔 代表는 1次 記者會見 때 記者들을 모아주는 役割만 맡았다고 主張했다. 

    徐 代表는 記者에게도 “할머니 스스로 記者會見을 企劃하고 核心 內容을 整理했다”며 “할머니는 性格이 大膽하고 自己主張이 분명한 분이다. 누군가 옆에서 부추긴다고 해서 떠밀려 記者會見을 할 만큼 어수룩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할머니가 ‘記者會見 背後說’ ‘記者會見 使嗾說’이 또다시 提起된 데 對해 不快해하며 크게 火를 냈다”고 덧붙였다. ‘記者會見 背後說’을 提起하는 金於俊 氏의 主張과 달리, 記者가 取材한 바에 따르면 崔 代表는 2次 記者會見에는 關與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記者會見場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內容의 ‘신동아’ 記事(2020年 5月 26日子 ‘[單獨] 金於俊 ‘背後說’에 “李할머니 不快해하며 크게 火내”’)는 온라인에서 照會數 45萬 回, 댓글 5600餘 個를 記錄하며 누리꾼의 注目을 받았다.

    2次 記者會見文 作成 過程 顚末

    그즈음 日帝强占期 被害者 關聯 團體 代表로 活動 中인 D氏로부터 “할머니가 1次 記者會見 前까지, 두 달 가까이 暴露 決心을 飜覆하며 苦悶해 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할머니가 尹 議員에 對한 寄附金 流用 疑惑을 暴露하기까지 오랜 時間 苦悶해 왔다는 얘기였다. D氏는 이 할머니의 記者會見을 支援하기 위해 서울과 大邱를 오가며 郭氏와 朴氏 等과 意見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D氏는 “3月 末 할머니가 ‘大邱에서 記者會見을 열고 싶다’고 要請해 왔다”며 “나를 비롯한 日帝强占期 被害者 關聯 團體長들과 최용상 代表가 할머니의 記者會見을 돕기로 하고, 崔 代表가 記者들을 直接 불러 모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할머니가 ‘記者會見을 取消해 달라’고 諒解를 求했다. 1次 記者會見을 열기까지 이런 일이 3~4次例 있었다”고 말했다. D氏는 “할머니가 오랫동안 苦悶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1次 記者會見을 열게 된 것인데, 金於俊이 背後說을 내놓으면서 할머니를 侮辱하고 있다. 自己 陣營에 不利하다 싶으면 背後說을 꺼내며 陰謀論을 提起한다. 아흔이 넘은 慰安婦 被害者에게 뭐 하는 짓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던 5月 27日 눈에 띄는 記事가 나왔다. 한 通信社는 D氏의 말을 引用해 “2次 記者會見 前날 밤(5月 24日) 7~8名이 모여 會見文을 共同으로 作成했다”고 報道했다. 該當 記事에는 ‘會見文 作成 專門家’도 知人 中 한 名으로 包含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事實이 아니다. 

    그 報道가 事實로 굳어질 무렵 어렵사리 收養딸 郭氏와 連絡이 닿았다. 郭氏는 “金於俊이 提起한 ‘記者會見 背後說’ 疑惑을 解消하고, 一部 言論의 報道로 根據 없이 퍼지고 있는 假짜뉴스를 바로잡겠다”며 ‘신동아’의 電話인터뷰에 應했다. 郭氏에 따르면 記者會見文 作成 過程 顚末은 이렇다. 

    5月 24日 아침 이 할머니가 朴氏에게 답답하다며 大邱를 벗어나고 싶다고 要請했다. 郭氏는 그날 서울에 볼일이 있어 혼자 自動車를 몰고 大邱에서 서울로 移動했고, 두 사람은 이 할머니의 男동생이 居住하는 競技 수원시로 向했다. 볼일을 본 뒤 郭氏는 그날 午後 이 할머니, 朴氏와 合流했다. 이 할머니가 時間이 늦었으니 서울에서 하룻밤 묵고 가자고 해서 서울 鍾路區廳 隣近 S호텔로 移動했다. 正確한 時間이 기억나지 않지만 호텔에 到着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었다고 한다. 當時 호텔 房을 2個 잡았는데, 房 한 곳에서 이 할머니와 郭氏가 묵었고, 나머지 房은 朴氏와 知人이 使用했다고 한다. 그날 저녁 호텔에 모인 知人은 郭氏와 朴氏, 서울에 머물던 이 할머니의 一代記를 찍는 다큐멘터리 作家, 그리고 曹溪寺 所屬 秦觀 스님이었다.

    議員 任期 始作 10時間 앞두고 나타난 尹

    이날 할머니는 호텔 房에서 郭氏에게 “記者會見文을 作成해 보라”고 일렀다. 이 할머니는 市民모임 側에서 準備한 記者會見文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郭氏가 읽어보니 첫 대목부터 ‘尹美香’이 登場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自身이 2次 記者會見에서 强調하고 싶은 內容부터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核心 要旨만 추려서 整理하기로 했다. 이 할머니가 불러주는 대로 郭氏가 받아 적은 뒤 이를 이 할머니한테 다시 보여주는 方式으로 여러 次例 確認을 받았다고 한다. 郭氏가 內容을 追加하거나 文章을 고쳐 쓰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7~8名이 모여 會見文을 共同으로 作成했다’는 言論 報道는 事實이 아닌 셈이다. ‘신동아’는 이 內容을 5月 27日子 記事(‘[單獨] 李할머니 收養딸 “내 身上 公開한 사람들 告訴하겠다…합의·선처 없다”’)로 報道했다. 照會數가 4萬 回를 記錄하고, 댓글은 250餘 個가 달렸다. 

    그사이 尹 議員이 2012年 이 할머니의 國會議員 出馬 意思를 挽留하는 情況이 담긴 通話 錄取錄이 公開됐다. 5月 27日 CBS노컷뉴스에 따르면 이 할머니와 尹 當選者가 2012年 3月 8日 通話하면서 나눈 對話였다. 그러나 朴氏는 “當時 어머니가 尹 議員과 通話를 錄取한 일도 錄取를 다른 사람에게 건네준 일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當事者 同意나 許諾 없이 어머니와 尹 當選者의 通話를 第3者가 錄音하거나 錄畫했다면 明白한 不法 行爲다”라고도 했다. 이러한 內容을 報道한 ‘신동아’ 記事는(2020년 5月 28日子 ‘이용수 할머니 “尹美香과 通話, 錄取하거나 錄音파일 준 적 없다”’) 照會數 27萬 回, 댓글 1500餘 個를 記錄했다. 

    5月 28日 午後 6時, 10日째 潛行을 이어가던 尹 議員이 記者會見을 열기로 했다는 消息이 傳해졌다. 記者도 이튿날(5月 29日) 서울 汝矣島 國會 疏通館으로 向했다. 午後 2時 尹 議員은 검은色 재킷에 검은色 바지를 입은 채 保佐陣과 함께 登場했다. 尹 議員은 “그동안 저에게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분들의 일을 믿고 맡겨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傷處와 心慮를 끼친 點에 對해 眞心으로 謝罪드린다”고 밝히면서도 議員職에서 물러날 뜻이 없음을 分明히 했다. 그는 國會議員 任期 始作을 不過 10時間 앞두고 公開 席上에 모습을 드러냈다.

    記者의 電話 끊지 않은 不動産仲介人

    윤미향 의원이 5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 활동 기간에 불거진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尹美香 議員이 5月 29日 서울 汝矣島 國會 疏通館에서 正義記憶連帶 活動 期間에 불거진 疑惑에 對한 記者會見을 하고 있다. [寫眞共同取材團]

    尹 議員은 記者會見 내내 이 할머니에 對해서는 極度로 말을 아꼈다. 記者會見文 專門을 통틀어 尹 議員은 이 할머니에 對해 單 세 次例만 言及했다. 記者會見文에 이 할머니에 對한 公式 謝過는 없었고, 記者會見 後 記者들과 만난 자리에서 謝過의 뜻을 밝혔다. 尹 議員은 記者會見 내내 땀을 많이 흘렸다. 

    記者會見을 마친 뒤 記者들이 다가가자 尹 議員은 “質問을 해도 좋다”며 微笑를 지어 보였다. 한 記者가 尹 議員에게 물었다. “21代 國會 開院을 하루 앞두고 記者會見에 나선 理由가 뭡니까.” 尹 議員은 “오늘 (記者會見을) 하게 된 特別한 理由는 없습니다. 이때쯤이면 제 立場을 發表해야 한다는 要求가 剛했기 때문입니다”라고 答했다. 

    記者會見을 마친 뒤 記者와의 電話 通話에서 朴氏는 “尹美香이 國民들께 謝過를 드리면서도 어머니(李 할머니)께는 直接 謝過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朴氏는 “(尹 當選者에 對해) 어머니는 別말씀이 없으시다”고 덧붙였다. 一角에서 提起한 寄附金 流用 疑惑에 對한 尹 議員의 召命에 對해 朴氏는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檢察이 밝혀야 할 일”이라고 했다. 

    記者는 尹 議員의 記者會見 以後 景氣 안성시에 位置한 慰安婦 被害者 힐링센터 ‘平和와 治癒가 만나는 집’(安城 쉼터)을 集中的으로 取材했다. 이미 記者들이 安城 쉼터를 取材하면서 關係者들을 相對로 取材를 벌이고 난 뒤라 새로운 內容을 찾아내기 쉽지 않았다. 인터넷 ‘구글’ 檢索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던 中에 安城 쉼터 1層 居室 인테리어와 恰似해 보이는 寫眞이 올라온 블로그를 偶然히 發見했다. 有心히 살펴보니 한 不動産仲介事務所가 賣物을 紹介하려고 2019年 11月 28日 올린 揭示物이었다. 1層 玄關門과 테라스를 찍은 다른 寫眞을 보니 安城 쉼터가 確實했다. 곧바로 不動産仲介人 E氏에게 連絡을 取했다. 

    “??不動産 所長님이시죠. 月刊 ‘신동아’ 記者입니다”라고 말하는 記者 목소리를 듣자 仲介人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尹美香 事態, 그 끝에는 뭐가 있을까

    앞서 言論은 正義連이 安城 쉼터 敷地와 建物을 7億5000萬 원을 주고 산 것을 두고 ‘高價 買入’했다는 疑惑을 提起했다. 安城 쉼터는 800㎡(242坪) 敷地의 2層 建物(195.98㎡·59坪)이다. 記者는 E氏가 正義連으로부터 安城 쉼터 賣却을 依賴받은 時期와 價格 等을 確認하고자 質問을 이어갔다. 그러자 E氏는 “2019年 6月頃 한경희 事務總長이 쉼터를 賣却하고 싶다며 直接 連絡해 왔다. 7億5000萬 원에 物件을 샀다고 하기에 ‘왜 그렇게 높은 價格에 샀느냐. 그런 物件은 못 판다’고 했더니 ‘몰랐다’는 式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하더라”라고 當時 狀況을 說明했다. 

    이어 E氏는 “安城 地域 不動産 業界에 安城 쉼터가 賣物로 나왔다고 알려진 時期는 언제냐”라는 記者의 質問에 “쉼터가 賣物로 나왔다는 얘기는 그 以前에는 들은 바 없다”고 答했다. 記者가 再次 “2013年 當時 安城 쉼터 買入 適正價는 얼마인가”라고 묻자 E氏는 “4億 원 程度. 아무리 價格을 높게 잡아도 4億 원 初盤代價 適正價”라고 答했다. 이어 “7億5000萬 원에 그 物件을 샀다는 건 말도 안 된다. 正義連이 터무니없이 비싼 價格에 物件을 산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正義連이 直接 賣却을 依賴한 仲介人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技士로서 더욱 價値가 있었다. 

    이 內容은 ‘신동아’ 記事 ‘尹美香이 ‘安城 쉼터’ 賣却 依賴한 仲介人 “7億5000萬 원 말도 안 돼…매입 適正價는 4億 初盤”(2020年 6月 4日子·2020年 7月號)을 통해 報道됐다. 該當 記事는 照會數 133萬 回, 댓글은 7400個를 記錄하며 누리꾼들로부터 큰 關心을 받았다. 

    그리고 이틀 뒤인 6月 6日 日本軍 慰安婦 被害者 쉼터 ‘平和의 우리집’(麻布 쉼터) 所長 孫某 氏가 京畿道 坡州 自宅에서 숨진 채 發見됐다는 消息이 傳해졌다. 그의 죽음이 世間의 注目을 받은 理由 中 하나는 正義連과 尹 議員을 둘러싼 會計 不正 疑惑을 檢察이 搜査하고 있기 때문이다. ‘尹美香’ 事態 40餘 일,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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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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