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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바디스? 大混沌의 汎與圈|新東亞

쿼바디스? 大混沌의 汎與圈

“權力 끈 놓치면 곧장 失業者, 泥田鬪狗 아닌 死生決斷!”

  • 調印職 동아일보 政治部 記者 cij1999@donga.com

    入力 2007-11-10 17: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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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야말로 ‘뒤죽박죽 한 달’이었다. 大統合民主新黨 大選候補 競選은 그렇게 幕을 내렸다. 期待만큼의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다는 坪부터, 마지막에 터진 ‘모바일 投票 興行’李 汎與圈의 本選 可能性에 希望을 줬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大統合民主新黨 競選은 大選 政局에 무엇을 남겼을까.
    쿼바디스? 大혼돈의 범여권

    정동영 前 議長 캠프 事務室에 對한 警察의 押收搜索을 막기 위해 入口를 지키는 支持者들.

    이른바 ‘名義盜用’ 事件으로 얼룩진 否定·不法·동원·組織 選擧 攻防은 그동안 民主平和改革勢力으로 自稱해온 大統合民主新黨의 道德性에 打擊을 입혔다. 願하는 모든 國民에게 門戶를 開放한다는 趣旨에서 ‘完全國民競選’(오픈 프라이머리)을 導入했지만 實狀 有權者의 自發性은 모바일 投票를 除外하고는 極히 微微한 것으로 드러났다. 及其也 ‘完全國民動員競選’이란 말까지 膾炙됐다.

    이런저런 ‘名簿’들이 當事者도 모르게 接受되며 投票率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온-오프라인 選擧人團이 196萬餘 名이었고, 輿論調査 10% 反映率을 有權者 數로 換算해도 結局 55萬名 남짓한 有權者만 實際로 ‘한 票’를 行使한 셈이다. 이는 17代 大選 全體 有權者 3754萬7000餘 名 中 1.7%에 不過한 數値다. 55萬餘 名 中 全北을 包含한 湖南 有權者가 約 15萬名에 이르는 等 地域別 偏差도 커서 이래저래 ‘오픈 프라이머리’ 搜査(修辭)는 無色하게 돼버렸다.

    ‘名義盜用’ 事件의 後暴風

    여기에 더해 候補者들 間의 葛藤 樣相이 한나라당 競選 때의 不和보다 더 深刻한 水準이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親盧(親盧) 新黨 創黨이나 문국현 前 유한킴벌리社長이 이끄는 創造韓國當(假稱)으로 政治勢力이 合從連橫(合縱連衡)하면서 그야말로 大統領候補만 서로 共有하는 政黨·政派間 ‘選擧聯合體制’가 擧論되기도 한다.

    이番 競選의 最大 話頭는 ‘東亞日報’ 單獨 報道로 불거진 盧武鉉 大統領 名義盜用 事件이었다. 앞서 豫備競選 때도 ‘東亞日報’는 出入記者 名單이 選擧人團 名簿에 올라있다는 事實을 單獨 報道해 이른바 ‘名簿떼기’의 眞相을 밝혀낸 바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盧 大統領의 이름은 서울 鍾路區 區議員인 정인훈氏가 미리 入手한 옛 열린우리당 黨員 名簿를 自身의 아들과 아들의 親舊 2名에게 시켜 選擧人團으로 登錄하는 過程에서 盜用됐다.



    다른 候補側에서는 鄭氏가 ‘鄭東泳 競選候補 女性選擧對策委員會’ 所屬으로 된 名銜을 使用하고 있었다는 點과 정동영 前 열린우리당 議長의 外郭 組織인 ‘平和와 經濟를 여는 포럼(平鏡포럼)’의 核心人士로도 活動했다는 點 等을 擧論하며 鄭 前 議長이 ‘背後’에 있다고 主張했다. 그러나 鄭 前 議長側은 “熱烈 支持者의 偶發的 行動에 對해 道義的 責任을 느끼지만, 一介 下部 組織員의 過剩 忠誠에서 빚어진 일을 어떻게 候補가 堪當하느냐”고 反駁했다.

    及其也 競選 末尾에 가서는 警察이 平鏡포럼 事務室을 押收搜索했다. 大統領 名義盜用뿐 아니라 信用情報業體와 連帶해 個人信用情報를 盜用한 것 아니냐는 疑惑 때문이었다. 이에 鄭 前 議長側에서는 “親盧 陣營과 權力層이 結託해 ‘鄭東泳 죽이기’에 나선 것”이라고 强力히 反撥했다. 特히 이해찬 前 國務總理가 이택순 警察廳長과 용산고 先後輩 사이라 李 廳長 任命 當時부터 ‘봐주기 人事’라는 말이 돌았던 만큼, 빠르게 進行된 이番 搜査에 李 前 總理側이 影響力을 行使했을 거라고 主張했다.

    實際도 警察은 大統領 名義盜用에 對한 報道(9月17日) 直後인 9月18日 大統合民主新黨으로부터 正式 搜査依賴를 받고 12日 만인 9月30日 容疑者인 大學生 3名을 檢擧하는 데 成功했다. 그리고 다음날 主動者인 정인훈氏의 人的事項도 公開했다. 인터넷 住所(IP) 追跡 結果 ‘종로구 PC房’이라는 것까지는 今方 나오지만 單純히 CCTV 判讀만으로 犯罪經歷度 없는 容疑者 檢擧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勿論 警察과 李 前 總理側은 펄쩍 뛰었다. 警察에 따르면 檢擧된 大學生 中 한 名이 選擧人團 登錄 아르바이트 途中 有名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 接續해 長時間 게임을 했으며, 이 게임 사이트를 통해 該當 大學生의 身元情報를 빠르게 入手했다고 한다. 또한 最高權力者가 結付된 事件인데다가 천호선 靑瓦臺 代辯人조차 “大統領도 搜査狀況에 對해 報告를 받고 있다”고 할 程度이니 搜査 速度를 내지 않을 수 없다는 게 警察側 抗辯이다. 李 前 總理側은 “押收搜索 事實을 包含해 搜査狀況 全般에 對해선 오로지 연합뉴스와 인터넷 等을 통해 把握했을 뿐”이라고 强調했다.

    정동영과 李海瓚의 ‘금 간 友情’

    名義盜用 事件은 小康狀態를 맞고 있다. 이미 候補者가 確定된 狀態라 政治的으로 撫摩될 것이라는 分析이 支配的이다. 單純히 한 競選 候補者의 問題가 아니라 ‘民主改革勢力’의 支持基盤, 나아가 20餘 年間 나름대로 鞏固하게 굳어져 내려온 大選 構圖가 무너질 境遇 汎與圈의 存立根據 自體가 흔들릴 憂慮도 있기 때문에 다른 候補者들이 섣불리 다시 問題 提起에 나서기 힘들 것이라는 展望이 說得力을 얻고 있다.

    쿼바디스? 大혼돈의 범여권

    競選이 치러지는 동안 大學 同期인 정동영 前 議長과 이해찬 前 總理 사이에 골이 깊어졌다.

    다만 이 前 總理側 關係者는 “黨規를 보면 ‘選出된 候補者에게 候補者 地位를 持續할 수 없는 問題가 생길 境遇’ 競選 車順位 得票者가 候補職을 承繼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競選을 하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萬의 하나 名義盜用 部分에서 只今껏 豫想치 못했던 搜査結果가 밝혀질 境遇 競選結果 自體가 無效가 될 可能性도 없지 않다는 希望 섞인 얘기다.

    이番 競選에서 줄곧 膾炙된 것이 정동영 前 議長과 이해찬 前 總理의 ‘금 간 友情’이다. 우정만 금이 간 것이 아니라 競選 後 鄭 前 議長側과 李 前 總理 勢力과의 化學的 結合은 고사하고 物理的 結合도 힘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만큼 感情다툼이 熾烈했다. 當事者인 두 候補는 勿論 두 候補 陣營의 感情對立이 걷잡을 수 없이 激化된 것. 나아가 한나라당 競選 때 李明博-朴槿惠 두 走者의 關係보다도 훨씬 深刻한 水準이라는 評도 나온다. 이에 對해선 解釋이 紛紛하지만 그 中 大統合民主新黨 한 關係者의 말이 信憑性 있어 보인다.

    “한나라당 人士들은 現役 議員이건 保佐陣이건 競選이 끝나면 돌아갈 ‘둥지’가 있는 사람이 大部分이다. 하지만 汎與圈엔 權力과의 因緣을 끊는 瞬間 바로 失業狀態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 意味에서 泥田鬪狗가 아니라 死生決斷式 勝負에 익숙해 있고, 그렇기 때문에 實戰에 가서도 한나라당보다 凝集力이 剛한 것이다.”

    鄭 前 議長과 李 前 總理는 서울대 文理大 72學番 同期生으로 1學年 때부터 運動圈 서클 活動을 통해 親分을 쌓아왔다. 1974年 民靑學聯 事件 때는 함께 警察署에 잡혀가 獄苦를 치르기도 했다. 鄭 前 議長은 MBC 記者로 活動할 때도 當時 國會議員이던 이 前 總理와 友情을 이어갔고, 鄭 候補가 1996年 總選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入黨함으로써 政界에 入門하는 過程에 이 前 總理가 積極 關與한 것으로 알려졌다.

    “親舊란 얘기 좀 그만 하세요”

    1996年 當時 국민회의 代辯人室 行政職으로 勤務했던 김현미 議員(正 前 議長側 代辯人)은 “當時 李 前 總理가 鄭 前 議長과 함께 事務室에 와서 ‘내 親舊야’라고 紹介하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職員들이 ‘정동영氏가 훨씬 어려 보이는데 眞짜 親舊 맞냐’고 弄을 건네기도 했다”고 말한 적 있다.

    2004年 5月 열린우리당 院內代表 競選 때 鄭 前 議長이 黨內 初期 파워그룹이던 ‘千·申·政(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千 議員을 도왔을 때, 그리고 2006年 3月 ‘李海瓚 總理 골프 波紋’ 當時 열린우리당 議長으로서 盧 大統領에게 總理 辭退를 建議했을 때도 “두 사람 사이에 感情의 골이 패기 始作했다”는 말이 나왔지만 “서로 政治的 處地가 있으려니…” 하는 雰圍氣가 大勢였다.

    競選 前, 그리고 初期만 해도 두 走者는 TV討論 等에서 손학규 前 京畿知事를 挾攻하며 戰線을 形成했다. 鄭 前 議長은 “李 前 總理가 大學時節 留置場에 있을 때 管式의 質이 나쁘다며 警察과 싸우는 凜凜한 氣像을 보였다”고 했고, 이 前 總理는 “民主改革勢力의 根幹을 維持하기 위해서는 나 아니면 鄭 前 議長 中 한 名이 候補가 돼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前 總理는 競選 中盤부터 鄭 前 議長을 向해 集中的으로 攻擊의 날을 세웠다. 9月27日 TV討論에선 이 前 總理가 ‘正말 나쁜 사람’이라며 鄭 前 議長을 몰아붙였다. 當初 이 前 總理側 實務陣 會議에서는 박근혜 前 한나라당 代表가 노무현 大統領을 向해 ‘참 나쁜 大統領’이라고 말한 것에 着眼, 鄭 前 議長을 ‘참 나쁜 사람’으로 指稱하기로 企劃했었다. 鄭 前 議長이 “李 候補와 저는 서울대 動機로…” 하며 雰圍氣를 가라앉히려 하자, 李 前 總理는 “아, 그 親舊 이야기 좀 그만 하세요. 公的인 자리에서…” 하며 火를 버럭 냈다. 鄭 前 議長이 “유시민 前 保健福祉部 長官이 選擧對策委員長을 맡으면서 李 前 總理도 變한 것 아니냐”고 다시 弄談調로 말을 이었지만, 險한 雰圍氣는 좀처럼 收拾되지 않았다.

    李 前 總理는 ‘슈퍼 4連戰’으로 불린 秋夕 以後 光州 全南 釜山 慶南 競選에서 모두 大敗하자 10月2日 ‘絶對 候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손학규 前 知事와 손을 잡고 黨에 競選 暫定 中斷을 要求하는 超强手를 던졌다. 다시 競選에 復歸하기 直前인 10月7日엔 國會에서 親盧 外郭 組織員 600餘 名이 參席한 가운데 ‘民主改革勢力大討論會’를 열었다. 말이 討論會地 事實上 不法 組織 動員選擧 主導 疑惑을 받고 있는 鄭 前 議長 糾彈大會나 다름없었다. 李 前 總理는 “眞實이 사라지면 妖怪가 판을 친다”며 非難水位를 올렸다.

    이에 鄭 前 議長側 關係者는 “釜山·慶南 競選에서 親盧 組織을 總 稼動해 20萬 選擧人團 中 10萬名을 李 前 總理側에서 모았다는 이야기가 競選 中盤에 이미 廣範圍하게 돌았다. 똑같이 모았지만 그쪽 支持者들엔 內部 動力이 없었던 것을 갖고 누구를 탓하나”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 點에 對해선 이 前 總理側 關係者도 一部 認定했다. “(親盧 核心組織인)참여정부평가포럼에 벌써 1萬 會員이 모였다고 하기에 그 사람들이 10票씩만 動員해도 너끈하게 이길 줄 알았다. 우리 側에서 放心한 탓도 있다”는 것.

    “後遺症이 相當할 겁니다”

    쿼바디스? 大혼돈의 범여권

    李 前 總理側 選對委員長을 맡았던 유시민 前 長官의 行步도 關心을 끈다.

    果然 大統合民主新黨의 모든 競選 走者가 힘을 합쳐 이명박 候補에게 對抗할 것인지에 對해선 아직까지 懷疑的인 雰圍氣다. 李 前 總理에 對해선 來年 總選에서 ‘民主改革勢力’을 親盧 陣營 主導로 再編하기 위해 黨權을 쥠으로써 確實한 持分을 챙기려고 努力할 것이라는 展望이 大勢다. 大統合民主新黨은 黨規上 大選을 치르고 난 來年 1月 全黨大會를 열고 黨 體制를 再編하게 돼 있다.

    그와 政治的 同志 關係인 柳時敏 選對委員長은 이미 選擧期間 내내 “民主改革勢力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함께 가기 어려울 程度로 鄭 前 議長側과 멀어졌다. 그쪽에서 이렇게 不法, 脫法 選擧를 할 줄은 몰랐다”고 말한 바 있다.

    李 前 總理는 10月10日 記者들과의 午餐 懇談會에서 “競選 結果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承服하고, 競選 結果 以後에는 따로 法的인 問題提起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分明히 밝혔다. 하지만 鄭 前 議長이 當選될 境遇 選擧對策委員長 等으로 協力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後遺症이 相當할 겁니다. 民主改革勢力이 제대로 합치려면 名分이 있어야 하고, 名分이 있어야 候補를 돕는 自發的 動力(動力)李 될 텐데 그러기가 쉽겠어요?”라고 答했다. 캠프 內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前 代表처럼 選擧對策委員會 顧問 程度의 象徵的인 자리라면 모를까 選擧對策委員長을 맡긴 힘들다는 게 支配的 觀測이다.

    李 前 總理는 記者懇談會에서 黨權만큼은 호락호락 내주지 않겠다는 意志도 내비쳤다.

    “來年 總選도 이런 式으로 組織 動員 選擧해서 公薦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5選인)내가 김원기 先輩 程度 除外하면 우리 陣營에서 벌써 最古參 아닌가. 우리 民主改革勢力이 崩壞하지 않도록 내가 役割을 할 것이다.”

    李 前 總理側 核心 關係者에 따르면 이 前 總理는 마지막 TV討論을 앞둔 時點에 손학규 前 知事로부터 電話를 받았다. 候補者間 直接 通話連結 市道에 李 前 總理도 若干 唐慌했다고 한다. 孫 前 知事는 ‘鄭 前 議長이 競選 再開 意味로 候補者間 3字 모임을 갖자고 提議해왔는데 나갈 거냐’고 물었고, 이에 이 前 總理는 ‘參謀들과 決定한 뒤 連絡하겠다. 나가서 模樣을 만드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傳해진다.

    하지만 鄭 前 議長側에서 ‘鄭 候補가 現在의 競選局面 打開와 民主勢力의 和解 結集을 위해 3者 會同을 提議하기로 했다’는 消息을 記者들에게 흘리고, 이것이 記事化하자 이 前 總理는 대로(大怒)했다고 한다. 캠프 關係者는 “속이 뻔히 보이는 言論 플레이에 感情이 무척 傷한 것 같았다. (李 前 總理가) ‘이래서 얘는 안 된다니까’라는 말을 反復했다”고 傳했다.

    李海瓚 半, 柳時敏 半

    李 前 總理側 選對委員長을 맡았던 유시민 前 長官은 初期부터 정동영 前 議長을 集中 攻擊했다. “參與政府 그 自體이면서도 늘 곶감만 빼먹고 간 곶감 동영” “黨議長을 두 番이나 한 사람이 沈沒하는 타이타닉호에서 가장 먼저 뛰어내렸다” “正말 信義 없는 政治人” “이런 式으로 하면 眞情性을 갖고 함께 大選을 치르기 어려울 것” 等等.

    鄭 前 議長과 親盧 陣營의 代名詞 格인 兪 前 長官은 ‘參與政府’ 初期만 해도 敦篤한 關係를 維持했다. ‘노무현 지킴이’라는 共通 코드가 있었고 以心傳心 ‘次期 候補는 鄭東泳’이라는 데 對해 柳 前 長官도 共感했다고 한다. 鄭 前 議長도 열린우리당 創黨 當時 兪 前 長官에게 政治改革分野 팀長을 맡기며 期間黨員제로 代辯되는 그의 意見을 大幅 受容했다. 兪 前 長官과 함께 改革當 時節을 지낸 이 前 總理側 허동준 公報特報는 “열린우리당 創黨 當時 兪 前 長官이 鄭 前 議長을 次期 大統領候補로 생각하고, 黨議長 選擧 等에서도 積極的으로 밀겠다는 意思를 表示해 나 같은 改革黨派 出身들은 反對를 많이 했다. 그만큼 兪 前 長官과 鄭 前 議長의 信賴는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傳했다.

    두 사람이 決定的으로 틀어진 契機는 2004年 總選 때로 알려진다. 兪 前 長官이 比例代表 몫으로 女性團體 核心人士인 고은광순氏 等 2, 3名을 推薦했으나, 鄭 前 議長이 이를 모두 拒絶한 것. 兪 前 長官은 이때부터 鄭 前 議長이 黨을 統合하려 하지 않고 ‘自己 사람 심기’만 하려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한다. 以後 黨 運營에서 事事件件 鄭 前 議長과 부딪쳤고, 鄭 前 議長도 일찌감치 兪 前 長官과는 關係 整理가 必要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兪 前 長官은 ‘親盧 候補 單一化’ 宣言 다음날 저녁 各 言論社 ‘마크맨(擔當記者)’ 몇 名과 술자리를 가졌다. 여기서 比較的 率直한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兪 前 長官은 “내가 왜 故鄕인 慶州나 父母님이 살고 계신 大邱 수성구에서 來年 總選에 出馬한다고 公開的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는지 아느냐”면서 “鄭 候補가 大選候補가 되고 黨權을 잡더라도 설마 내가 TK(大邱 慶北)에 ‘죽으러 간다’고 하는데 公薦을 안 주거나 하지는 않을 거 아니냐”고 말했다.

    10月12日 마지막 서울 演說會場에서 兪 前 長官과 獨對할 機會가 있었던 記者는 다시 한 番 그의 속내를 들어봤다.

    “鄭 前 議長側이 거의 1年 前부터 名簿란 명부는 다 모았던 것 같다. 다른 勢力은 大統合 準備다 뭐다 시끄러울 때 그쪽에서는 이미 大統領選擧를 念頭에 두고 이런저런 計劃을 짠 거다. 競選 몇 週 前에 ‘룰 미팅’을 했으니, 當時 大統合民主新黨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國民競選 選擧人團)門턱을 낮춰야 한다. 이름과 住民番號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 그쪽 主張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名簿란 명부는 다 싹쓸이해서 집어넣고 執拗하게 選擧運動 하는데, 이런 非正常的 不法 組織選擧를 어떻게 이기겠나. 信用情報 盜用 等도 막판에 問題가 되고 있는데 저게 萬若 우리 判斷대로 搜査機關에서 事實로 밝혀지면 正말 큰 問題다. 狀況이 이런데 鄭 候補가 大選候補가 되면 내가 大邱 慶北에 가서 同窓이며 親知들 만나서 ‘내 面을 봐서라도 鄭 候補 찍어라’고 愉快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나. 이미 襟度를 넘어버려서 陣營을 하나로 모으기는 正말 힘들 것이다.”

    鄭 前 議長의 兪 前 長官에 對한 비토 心理도 이에 못지않다. 鄭 前 議長은 競選 初期 光州 TV討論 때 이 前 總理로부터 ‘참 나쁜 사람’이란 말을 듣자 “劉 前 長官이 選對委를 맡더니 이 前 總理가 ‘離叛鍮盤(李半柳半·이해찬 半 柳時敏 半)’李 됐다”고 맞받아쳤다. 이미 候補 辭退한 兪 前 長官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鄭 前 議長은 當日 記者들과의 點心食事 자리에서 當時 狀況을 說明하다 “‘離叛鍮盤’이라고 한 건 꼭 써달라”며 弄半眞半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李 前 總理보다 兪 前 長官이 더 탐탁지 않다는 뜻으로 들렸다.

    求心點 確保, 獨自勢力化

    大統合民主新黨은 앞으로 熾烈한 黨權 紛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大選 後에는 當場 總選 體制를 앞둔 全黨大會가 있고, 來年 2月이면 公薦에 들어가야 한다. 2002年 大選 狀況이 再演되기는 어렵다는 어두운 展望이 짙어지는 마당이어서 더 그렇다. 누가 候補로 選出되건 黨의 總力을 모을 수 없는 狀況에 이른 만큼 來年 總選을 겨냥한 힘겨루기가 本格化할 것이다.

    정대철 顧問이나 김원기·문희상·유인태 議員 等 黨內 重鎭이 競選 途中 事實上 정동영 前 議長側의 獨走에 制動을 걸고 迂廻的으로 이해찬 前 總理나 손학규 前 知事 쪽을 支援했던 것이나, 重鎭그룹에서 意圖的으로 이른바 ‘金한길 그룹’과 鄭 前 議長側의 黨權密約說을 흘려 公論化한 것도 따지고 보면 向後 鄭 前 議長側을 中心으로 黨權이 再編될 것에 對備한 牽制心理에서 비롯된 것이다.

    ‘金한길 그룹’側에서는 “어떻게 美國에서 아들賞(喪)을 當한 뒤 茫然自失해 있는 김한길 議員을 向해 ‘黨權을 위해 密約을 했다’는 式의 말을 퍼뜨릴 수 있느냐”며 憤怒하고 있다. ‘黨權 密約說’은 애初 實體가 不透明한 것이어서 競選 中盤 以後론 쏙 들어갔다.

    黨內에선 벌써부터 來年 總選을 앞두고 ‘殺生簿’가 돌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重鎭그룹 人事는 “鄭 前 議長側에 對한 再選·3線 그룹의 비토 雰圍氣가 相當하다. 主로 鄭 前 議長側의 ‘自己 사람 심기’를 憂慮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李 前 總理側에서는 “競選 不服은 없지만 法的 瑕疵가 發見될 境遇 누군가 候補者 資格 停止 假處分申請 같은 것을 提起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을 흘리고 있다. 競選이 끝나고 난 뒤라도 李 前 總理 陣營을 함부로 對해선 안 된다는 뉘앙스다. 李 前 總理 本人도 거듭 競選 僧服을 다짐하면서도 “競選에 法的 瑕疵가 있으면 (候補로서의) 正統性이 없는 것”이라며 餘地를 남기고 있다. 8個 地域을 한꺼번에 묶어 投票한 ‘원샷 競選’이 있기 하루 前인 10月13日 李 前 總理가 김근태 前 열린우리당 議長의 要請으로 非公開 만남을 가진 것도 살펴볼 대목이다.

    1時間30分假量의 單獨面談에서 이 前 總理와 金 前 議長은 “民主改革勢力의 이미지가 競選을 통해 크게 毁損됐다”는 데 共感하고 向後 民主改革勢力 陣營의 求心點 確保를 위해 積極的으로 나서자는 데 意見을 같이한 것으로 傳해졌다.

    嶺南圈 一部 親盧 그룹 人士들은 ‘獨自勢力化’에 對한 未練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수성 前 國務總理가 推進 中인 ‘和合과 跳躍을 위한 國民平和連帶’는 勿論, 일찌감치 競選을 抛棄하고 議員職을 버린 김혁규 前 慶南知事까지 아우르는 模樣새를 念頭에 둔 것으로 보인다.

    ‘李-孫’ 連帶, 持續될까

    競選 末尾에 접어들며 演說會에서 唯獨 “新黨을 내 힘으로 살리겠다” “남의 子息 取扱 말아달라. 손학규가 新黨의 主人”이라며 黨에 對한 所屬感과 主人意識을 强調했던 손학규 前 知事의 行步도 關心거리다. 現在로서는 讀者勢力이 없는 손 前 知事가 汎與圈 場外 走者인 문국현 前 유한킴벌리 社長과의 單一化에 어느 程度 寄與를 하고, 首都圈 初·再選, 中道性向, 386議員그룹을 中心으로 貰를 擴張시킬 것이라는 展望이 說得力을 얻는다. 於此彼 민주당 이인제 候補와의 連帶 乃至 候補 單一化는 鄭 前 議長側에서 攻勢的으로 커버할 것으로 보여 孫 前 知事가 더 實益을 챙길 것이라는 分析도 있다. ‘이인제 候補와의 單一化’는 이슈 自體가 陳腐하기 때문에 시너지 效果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 理由다.

    이런 脈絡에서 보면 競選 막판에 ‘豫想을 깨고’ 事實上 느슨한 形態의 連帶를 圖謀한 ‘李-孫’ 連帶가 繼續 이어질지도 觀戰 포인트다. 이렇게 되면 事實上 大選結果에 따라 정동영 前 議長 陣營이 孤立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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