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中國, 中國人|新東亞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中國, 中國人

상하이 2年 온몸 體驗記

  • 윤수정 우먼센스 生活팀 記者

    入力 2007-11-09 15:16: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홍콩 슈퍼마켓에서도 中國産이라면 退字
    • 假짜 배터리, 假짜 미역, 假짜 달걀…
    • 택시 技士 “나만 천천히 달리면 事故 난다”
    • “交通事故? 죽지 않았으면 얼른 일어나서 가라”
    • 外國語 能通한 앵벌이, 열쇠保證金 받고 안 내주는 호텔
    • “돈 얼마나 있나” 묻고 處方, 施術 範圍 달리하는 意思
    • 미치게 그리운 와이탄의 夜景, 新티엔디 레스토랑, 그리고 마사지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筆者는 元來 ‘상하이 禮讚論者’였다. “中國은 더럽고 싸구려뿐이며 아무튼 후지다”는 사람들에게 “상하이는 다르다”고 맞서곤 했다. 中國 사람들은 饅頭나 샹差異(香菜)가 들어간 飮食만 먹는 줄 알았으나, 몇 番의 旅行을 통해 상하이엔 特級 바리스타가 뽑아낸 카푸치노가 있으며, 韓國에 없는 海外 有名 브랜드숍이 櫛比하고, 世界 여러 나라 飮食을 韓國의 3分의 1 價格에 맛볼 수 있다는 點을 確認하곤 그 魅力에 푹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2年 前 職場을 그만두고 日常에서 脫出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먼저 상하이를 떠올린 건 當然했다. 상하이의 한 大學에서 語學코스를 밟으면서 僑民 子女를 對象으로 英語 課外指導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하루 5時間씩 週 5日 勤務만으로 韓國의 父母에게 손 벌리지 않고 집 月貰를 비롯한 滯在費를 充當하는 것은 勿論 골프 레슨까지 받고, 쇼핑에 外食까지 즐길 수 있으니 아예 상하이에 뿌리내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얼마 前 秋夕을 앞두고 짐을 싸서 歸國했다.

    “뭘 넣었는지 어떻게 알아?”

    느닷없이 ‘컴백홈’을 宣言한 가장 決定的인 理由는 基礎 生活에 對한 不安感이었다. 名品 雜貨는 勿論 自動車까지 ‘짝퉁’李 판을 치는 中國이라지만 假짜 달걀과 肺種이 饅頭, 夕會가루를 넣은 豆腐가 만들어진다는 報道에, 고양이 고기로 꼬치구이를 만든다는 얘기까지 듣고는 더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홍콩 사람들조차 ‘Made in China’를 避한다는 事實도 中國 脫出을 부추겼다. 지난 8月 홍콩에 사는 親舊 집을 訪問했을 때의 일이다. 슈퍼마켓에 함께 場을 보러 간 親舊는 菜蔬, 과일, 飮料 같은 食品은 勿論 샴푸, 齒藥, 稅制 같은 工産品을 고를 때도 原産地 및 製造國을 꼼꼼히 살폈다. 홍콩에선 ‘Made in China’가 그야말로 ‘國産’인데 “工産品까지 그럴 必要 있느냐”는 質問에 親舊는 “그 안에 뭘 넣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反問했다.



    賣場을 돌아보니 親舊의 行動이 特別히 유난스러운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現地人들도 하나같이 製品 情報를 살피고, 中國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온 것임을 크게 廣告하는 陳列臺가 눈에 띄었다. 放送에서도 連日 中國(本土)山 物件을 두고 불거진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다루는 것을 보고, 정작 中國에 살고 있는 내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했다. 中國産 製品이 미덥지 않긴 했지만 같은 中國에서까지 이렇게 不信의 골이 깊은지 몰랐다.

    液體 洗劑 덜어가는 사람들

    中國産 ‘짝퉁’의 範圍는 놀라울 程度로 넓다. 상하이에 定着하고 얼마 後에 携帶電話가 必要해 韓國의 S社 A製品을 購入했다. 흥정 끝에 販賣商은 “物件 값은 더 못 깎아주니 배터리를 하나 더 주겠다”며 善心을 쓰는 양 굴었다. 언뜻 보기에도 商標가 엉성했는데, 販賣員 스스로 “假짜”라고 했다. 荒唐했지만 더는 別 所得이 없겠다 싶어 받아들고 나왔다.

    ‘眞짜’라고 믿고 산 S社 携帶電話機와 ‘짝퉁’李 確實한 배터리를 함께 使用한 지 3個月餘 만에 携帶電話 안테나가 부러지고 圖章이 다 벗겨졌다. 筆者의 管理 잘못을 탓할 수 있겠으나, 2003年 韓國에서 購入한 携帶電話는 韓國에 돌아온 只今도 아무 問題없이 使用하고 있다. 배터리뿐 아니라 携帶電話 端末機마저 假짜가 아닐까 하는 疑心이 들 무렵, 周圍에서 “假짜 배터리를 끼운 N社 携帶電話가 터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結局 갖고 있던 携帶電話를 未練 없이 버리고 M社의 携帶電話를 새로 購入했는데, 通話 中에 ‘지잉~’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例事고, 손끝에 電流가 느껴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상하이의 大型마트. 筆者는 液體 洗劑를 덜어가는 사람을 보고 唐慌한 적이 있다.

    洞네 슈퍼마켓에서는 더 荒唐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韓國에도 잘 알려진 E社의 배터리 6個들이 묶음을 사서 그中 하나를 自鳴鐘時計에 끼웠다. 그런데 時計바늘이 꼼짝을 안 한다. 같은 묶음에서 다른 乾電池를 꺼내 바꿔 끼우니 바늘이 움직인다. 말로만 듣던 假짜 배터리다. 韓國人이 運營하는 슈퍼마켓에서는 ‘韓國 C社 브랜드 假짜 미역이 流通되고 있으니 眞짜와 꼭 比較하고 購入하라’는 案內文을 내붙일 程度이니 中國이 만들지 못하는 假짜가 있을까 싶다.

    場을 볼 때 골치 아픈 건, 假짜 속에서 眞짜를 찾아낼 때만이 아니다. 陳列한 物件의 80% 以上이 輸入品인 高級 슈퍼마켓에서조차 伏兵을 만난다. 상하이에서 알고 지낸 한 主婦는 슈퍼마켓에서 사온 뉴질랜드産 꿀이 담긴 甁 뚜껑을 열었을 때 安全幕(safety seal)李 없어 꺼림칙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鋪裝이 제대로 안 된 꿀을 누군가 입을 대고 먹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韓國에서라면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손사래를 치겠지만, 中國의 大型마트에선 現地人들이 미리 準備해온 甁에 液體 洗劑를 덜어가는 모습이 種種 눈에 띄는 터라 그 얘기를 들었을 때 筆者도 人相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纖維柔軟劑나 샴푸를 사려고 製品을 들어보면 標示된 容量보다 가벼운 느낌이 드는데, 뚜껑을 열어 그 量이 줄었는지 確認해볼 수 없으니 定量 製品을 사들고 나오면서도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다.

    사람보다 車가 絶對 于先

    親舊: “뭐해? 얼른 건너!”

    筆者: “저기, 저쪽에서 車가 오는데….”

    親舊: “步行 信號 켜졌으니 어련히 멈출까. 얘가 中國 다녀오더니 異常해졌어. 어서 건너!”

    며칠 前, 步行者 信號가 켜진 다음 셋을 세고 건너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지키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는 내게 親舊가 참다못해 한소리했다. 步行信號가 켜지면 自動車가 멈춘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몸이 믿지를 않는다. 상하이에선 儼然히 步行 信號가 들어와 있는데도 自動車들이 거리낌 없이 右回轉을 하고, 直進 信號에 냅다 左回轉하는 車輛 때문에 橫斷步道를 건너면서 極度로 몸을 사려야 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선 左回轉 信號가 없는 交叉路에서 直進 信號 때 左回轉할 수 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避하라는 式으로 全速力으로 달려와 左回轉하니 우리나라의 ‘非保護 左回轉’ 標示는 애교스럽기까지 하다.

    “천천히 달리면 事故 난다”

    中國의 交通法이 어떻게 規定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經驗에 비춰볼 때 中國은 사람보다 車가 優先인 곳이다. 車 한 臺 艱辛히 지날 만한 골목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손을 들고 멈춰달라는 信號를 보내면 ‘뭐하는 짓이야?’ 하는 視線으로 제 速力 維持하며 제 갈 길 가는 상하이의 運轉者들….

    橫斷步道가 있어도 全혀 保護받을 수 없으니 상하이 사람들은 굳이 橫斷步道를 찾지 않는다. 惡循環이라고 해야 할까, 無斷橫斷이 日常化되어 있다. 처음엔 어떻게 이렇게 無秩序할 수 있나 생각하지만, 상하이에서 여름과 겨울을 겪고 나면 참을性의 限界를 뼛속까지 體感한다. 40℃를 넘나들고, 濕度 80%에 이르는 무더위와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自動車들이 尊重하지도 않는 橫斷步道를 찾아가 步行 信號를 기다리기란, 天國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해도 抛棄하고 싶어질 만큼 힘든 일이다.

    그러나 道路가 閑散하다 싶으면 逆走行度 서슴지 않는 車輛, 그 속에 섞여 달리는 오토바이와 自轉車까지 걸러내며 無斷橫斷하려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것은 勿論이요 相當한 노하우가 必要하다. 그러니 觀光客이라면 괜히 現地人들의 無斷橫斷 隊列에 끼지 말고, 그나마 事情이 좀 나은 橫斷步道를 利用하는 便이 낫다. 接觸事故라도 當하면 몸 傷한 것도 抑鬱한데, 責任을 뒤집어쓰고 金錢的 被害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상하이에 “交通事故를 當해 죽지 않았다면 얼른 일어나서 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筆者가 상하이에 머문 2年 동안 知人 여러 名이 出張이나 休暇次 상하이를 訪問했다. 그때 그들 大部分이 택시를 타고 移動했는데, 처음엔 택시費가 싸서 반색했다가 이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經驗談을 털어놓곤 했다. 信號 無視, 車線 無視, 옆 車 無視에 번쩍이는 上向燈은 基本, 警笛은 늘 누르다가 가끔 손을 떼는 건가 싶을 程度로 시끄럽게 울려대는 亂暴 運轉 때문이다. 高架道路라도 만나면 더 可觀이다. 進入路와 出口에서 먼저 들고 나려는 自動車끼리의 몸싸움이 熾烈하다. 그 光景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눈을 감고 祈禱했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도 自動車끼리 부딪치는 일이 거의 없으니 神奇할 따름이다. 엔진이 터질 듯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速力을 내고, 깜빡이 켤 새도 없이 車路를 휙휙 바꾸다가도 決定的인 瞬間에 놀라운 反射神經으로 브레이크를 밟는다. 상하이 定着 初期, 筆者가 “都大體 運轉을 왜 이렇게 하느냐. 늦게 到着해도 좋으니 제발 천천히 가자”고 했을 때 택시技士는 한 手 가르쳐준다는 式으로 “모두가 빨리 달리는데 내 車만 천천히 달리면 오히려 事故가 난다”고 말하며 速度를 냈다.

    地下鐵 앵벌이, 소매치기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앵벌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깔끔하기만 한 상하이 地下鐵.

    市內 道路는 다이내믹하다. 막힌다 싶으면 中央線을 휙휙 넘어 유턴하고, 中央分離帶로 막아놓아도 期於코 車 한 臺 通過할 틈을 찾아낸다. 그러니 兩쪽 車路가 꽉 막히고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警笛 소리에 귀가 멍해질 地境이 돼도 택시技士는 絶望하지 않고 느긋하다. 손님을 태울 때는 또 얼마나 積極的認知, 進行 方向의 反對쪽에서 택시 기다리는 사람을 發見하면 瞬息間에 中央線을 가로질러 손님 앞에 車를 댄다. 이런 狀況을 反復的으로 겪고 나니 서울로 돌아올 즈음엔 黃色 信號에 車를 멈추는 택시 技士가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아니, 왜 멈추는 거야, 그냥 가자고요, Go~Go!”

    高速道路는 마치 레이싱 競技場 같다. 땅이 넓으니 道路도 널찍해 웬만해선 停滯 區間이 없는데, 異常하게 막힌다 싶으면 어김없이 50m 前方에 톨게이트가 있다는 信號다. 한 치의 讓步 없이 서로 먼저 通過하겠다고 車를 들이밀기 때문. 톨게이트를 通過하면 自動車들은 出發 信號를 받은 레이서模樣 다시 달리기 始作한다. 이런 때는 그냥 마음을 비우고 運轉技士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上策이다. 緊張하고 不安한 狀態로 있으면 어깨가 뻐근해지고, 다리는 힘이 쭉 빠진 채로 車에서 내려야 할 것이다. 時速 150km 以上의 速力으로 車線을 지그재그 바꿔가며 달리는 車 안에서 잠을 請하는 건 2年餘 쌓은 內功으로는 力不足이었다.

    國際都市답게 상하이의 地下鐵은 그야말로 最尖端이다. 2003年 12月 베이징에서 地下鐵을 탈 때만 해도 驛務員이 一一이 종이로 된 票에 펀칭을 하던 것과 比較하면 完全 딴 世上이다. 터치스크린 方式의 自動賣票機는 作動法이 英語로도 씌어 있어 願하는 目的地의 料金을 한눈 確認할 수 있다. 플랫폼엔 安全을 위한 스크린 도어가 設置되어 있고, 다음 列車가 到着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알려주는 모니터도 걸려 있다. 客車 안은 冷暖房 施設이 잘 돼 있어 快適하고, 英語로도 案內放送이 나오니 서울의 地下鐵 事情과 別般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몇몇 아이가 登場하면 狀況은 急反轉된다. 어린아이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을 때 뭣 모르고 銅錢을 쥐어주면 困辱을 치르기 十常이다. 어디선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너도나도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미는 통에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수 없을 程度다. 中國人 親舊 말로는 앵벌이를 職業으로 삼은 아이들이 大部分이라는데, 무릎을 꿇고 앉아 求乞하면서 乘客의 다리를 끌어안고 놔주지 않으니, 돈을 내주지 않고는 배길 道理가 없다. 이런 아이들은 地下鐵뿐 아니라 外國人이 많이 몰리는 밤거리에 陣을 치고 있다. 甚至於 택시 타는 사람에게 求乞하다 택시가 出發하면 門을 잡고 같이 뛰기도 한다. 이쯤 되면 불쌍해 보이던 아이들은 두려운 存在가 된다.

    “Please, give me money”

    地下鐵 안에서 아이들이 한바탕 騷動을 피우고 지나가면 으레 傳單紙 뿌리는 靑少年(늙수그레해 보이지만 大部分 10代 後半이다)들이 登場한다. 旅行社, 마사지숍 等을 廣告하는 名銜 크기만한 傳單紙를 乘客들에게 던지듯 나눠주고 悠悠히 사라지는 이들 亦是 距離 營業(?)도 竝行한다. 누군가 傳單紙를 받아주는 모습이 捕捉되면 우르르 몰려가 一齊히 傳單紙를 내밀며 自己네 것도 받으라고 成火다. 外國人이나 觀光客에게는 옷소매나 깃, 甚至於 가방에도 積極的으로 찔러 넣는다.

    地下鐵 안에서 가방을 꼭 끌어안거나, 앞으로 멘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는데, 다름 아닌 소매치기 때문이다. 상하이 소매치기는 아주 堂堂하다. 筆者의 가방에 손을 넣는 瞬間 눈이 마주치자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을 빼고 돌아서 걸어가는 女人이 있는가 하면, 상하이에 놀러 온 後輩의 가방에 한 아이가 손을 넣는 걸 보고 筆者가 소리를 지르자 ‘營業 妨害’가 不快하다는 듯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상하이에 있는 동안 하루에도 몇 番씩 中國人의 거짓말과 詐欺性 짙은 商術을 겪다보니 “지겨워, 지겨워”란 말이 입에 붙었다. 어느 날인가 臺灣人 親舊를 만나려고 서울의 鳴動 格인 화이하이루(淮海路) 홍콩플라자 앞에 서 있을 때의 일이다. 20代 初盤의 한 靑年이 다가와 또박또박 얘기했다. “워 總 베이징 라일러. 워더 치엔빠오 띠울러. 수오이 시엔짜이 메이요 齒엔. 으어쓸러. 게이워 이디얼 치엔바, 샤오誌에.” 筆者가 外國人임을 알아보고 短文으로 천천히 한 말은, “나는 베이징에서 왔습니다. 그런데 紙匣을 잃어버려서 돈이 없어요. 배고파 죽겠으니 돈을 조금만 주세요”다. 앵벌이를 業으로 하는 사람이 分明해 보여 中國語를 할 줄 모른다고 英語로 말하니 그의 對處法이 놀랍다. “Oh, excuse me. I came from Beijing. Please give me money.” 애써 外面하고 臺灣人 親舊를 만났는데, 親舊도 ‘英語로 求乞하는 靑年’을 알고 있었다. 이 앵벌이 靑年은 그 親舊가 臺灣사람인 것을 용케 區別해내 臺灣語로 接近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아름다운 상하이 夜景.

    호텔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場所다. 한番은 상하이로 旅行 온 知人들이 묵고 있는 觀光호텔을 찾았다. 知人들에게서 프런트데스크에서 열쇠保證金을 받더라는 얘기를 듣고 異常했지만, 保證金이라면 於此彼 돌려받을 돈이니 神經 쓰지 않기로 했다. 旅行 마지막 날 一行이 체크아웃을 하고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데 퍼뜩 ‘保證金’李 떠올라 돌려받았느냐고 물으니 모두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프런트데스크에 가서 保證金 얘기를 꺼내니 職員이 “아, 맞다” 하면서 내준다. 無慮 500위안(藥 6萬5000원). 房마다 열쇠保證金을 받는 것이 호텔의 規定이라면 退室할 때 當然히 알아서 돌려줬어야 맞다. 職員의 뜻하지 않은 失手였을 수도 있으나 筆者의 입에선 또 한 番 “지겨워, 지겨워”가 흘러나왔다.

    안겨준 건 特級 호텔도 마찬가지다. 옛 職場 同僚가 取材次 상하이에 왔을 때 5性級 호텔에 묵었다. 冷藏庫 附近에서 異常한 냄새가 나기에 冷藏庫 門을 열어보니 눈과 코를 甚하게 刺戟하는 惡臭가 뿜어져 나왔다. 그 程度가 너무 甚해서 到底히 房안에 있을 수 없을 地境이라고 프런트데스크에 電話했지만 별다른 措置가 없었다. 한참 만에 메이드, 벨보이, 客室 매니저가 次例로 나타나 똑같은 質問만 反復했다. 맨 마지막에 나타난 不總支配人이 “아무도 안 다쳤네” 하며 빙긋 웃을 땐 말門이 막혀버렸다. 惡臭는 冷媒가 터진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옛 同僚는 호텔의 對應 方式에 憤痛을 터뜨리며 警察에 申告하자고 했지만, 中國에서 오래 살 거라 생각하던 나는 幸여 害코지를 當할까 두려워 그럴 수 없었다.

    旅行次 中國에 잠깐 머물고 가는 사람들은 價格 흥정하는 재미에 쇼핑을 즐긴다. 그러나 中國에서 ‘生活’을 하다 보니 값을 한참 깎고서 物件을 사도 ‘바가지 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깎아도 氣分 나쁜 흥정

    상하이에 定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學校 안에 各其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하는 과일 露店商이 두 군데 있었는데, 나보다 먼저 留學 와 있는 學生들 사이에 아주머니는 種種 바가지를 씌운다고 所聞이 나 있었다. 普通 같은 業種이 나란히 營業할 境遇 손님을 더 끌어들이려고 價格引下 競爭을 하는데, 눈앞의 利益만 생각하고 바가지를 씌운다니…. 一部 留學生은 學校 近處 장사꾼들이 自身들을 ‘鳳’으로 생각한다며 不快하다고 했다. 나보다 1年 먼저 留學 온 韓國人은 아저씨가 主人인 과일가게에서 沙果 3個를 사면서 4위안 달라는 걸 3위안만 받으라며 흥정한다. 고작 韓國 돈 150원도 안 되는 걸 갖고 그렇게 흥정해야 하나 싶어 그냥 4위안 주고 가자고 하면, 나를 寒心하다는 듯 쳐다본다.

    “언니, 中國 生活에 빨리 適應하려면 物件 값을 韓國 돈으로 計算하는 習慣부터 버려요. 여기선 1, 2위안이 작은 돈이 아니란 말이죠. 2위안이면 버스를 타고, 주먹만한 饅頭도 두 個나 먹을 수 있어요. 願하는 곳을 가거나 한 끼 食事를 解決할 수 있는 金額이란 말이죠. 그리고 저 아저씨, 留學生들 相對로 장사하니까 ‘얘가 中國 物情을 얼마나 알겠나’ 하면서 價格을 아예 높게 부른다고요.”

    이 學生은 그날 午前에 自身의 中國人 親舊가 같은 謝過를 3위안에 사는 걸 보았기 때문에 3위안만 받으라고 흥정하는 게 當然하다고 했다.

    “난 모르는 일, 어쩌라고?”

    韓國人 觀光客이 몰려드는 所謂 ‘짝퉁市場’에서는 ‘제값’이 얼마인지 到底히 알 수 없다. 觀光客들은 처음엔, 韓國 物價와 比較해 싸게 샀다고 좋아하지만 이내 같은 物件을 더 싼 값에 산 사람이 나타나고, 그보다 더 싼 값을 부르는 장사꾼을 만나면 누구나 바가지를 쓴 게 아닌가 하는 疑心에 젖는다. 그나마 僑民들이 많이 購入하는 品目은 適正한 價格帶가 形成되어 있어 大略 거기에 맞춰 購入하면 크게 損害 본 건 아니라고 慰安을 삼는다. 그런데도 50위안(藥 6500원)李 適正線인 面 티셔츠를 “特別히 150위안(藥 2萬원)에 주겠다”며 善心 쓰는 듯한 表情을 짓는 商人이 있으며, 내 입에선 어김없이 “御宇, 正말 지겹군요. 나 여기 살아서 價格 다 알아요”가 나온다.

    中國 商人이 觀光客을 相對로 바가지를 씌운다는 얘기를 듣고 온 韓國人 觀光客 中엔 부르는 값의 5分의 1, 8分의 1萬 받으라고 떼를 쓰는 境遇가 있다. 부르는 값을 다 주고 사면 바가지를 쓰는 것이 틀림없지만, 터무니없이 깎으려고 덤벼서도 안 된다. 中國人 商人과 韓國人 觀光客 사이에 種種 憾情싸움이 빚어지는 것은 勿論이요, 中國人들은 애初에 높은 값을 부르는 理由가 觀光客들이 너무 많이 깎기 때문이라고 責任을 돌린다. 짝퉁은 짝퉁日 뿐이고 제값도 모르면서 깎아봤자 싸게 샀다고 볼 수 없으니, 事故도 찜찜한 ‘짝퉁市場’은 決코 勸하고 싶지 않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韓國産 兩班김(왼쪽)과 中國産 假짜 兩班김, 초코파이를 흉내 낸 中國 製品과 ‘짝퉁’ 燒酒까지 中國에서는 못 만드는 假짜가 없는 듯하다.

    中國에 살면서 中國人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어쩌라고(쩐머빤)’와 ‘몰라(부즈다오)’다. 갈 길이 바쁜데 잔돈이 없다며 “어쩌라고”만 되풀이하던 끝에 結局은 “잔돈 가져가고 싶으면 가게에 가서 物件을 사고 작은 單位로 바꿔오라”던 택시 技士. 修理한 바로 다음날 또 故障 난 自轉車를 다시 손봐달라고 하니 뒷짐 진 채 “나는 모른다, 어쩌라고?” 하는 自轉車舖 主人. 中國人의 이런 態度는 世界的으로 有名한 大型 割引마트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도 別般 다르지 않다. 지난 늦여름, 망고스틴을 고르면서 職員과 나눈 對話다.

    “잘 익은 것 좀 골라주시겠어요?”

    “어디 보자, 이건 썩었고, 이건 괜찮고, 어라 이것도 썩었네….”

    “썩은 건 골라내야 하지 않아요? 썩은 걸 사가게 두면 안 되잖아요.”

    “어쩌라고요?”

    상하이 大型마트엔 冷凍食品을 넣어 移動할 때 쓰는 보랭백을 판다. 그런데 價格表는 勿論 바코드조차 찍혀 있지 않아서 前에 購入한 보랭백을 가지고 들어가면 計算 안 된 物件으로 誤認받을 念慮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冷凍食品을 사려고 보랭백을 들고 마트에 갔더니 安全要員이 불러 세운다.

    “보랭백은 保管函에 맡기시죠.”

    “네? 冷凍食品을 사서 바로 담으려고 하는데요.”

    “안 됩니다. 計算員은 새로 購入하는 것으로 볼 거예요.”

    “녹을 念慮가 있는 物件을 담으려고 山 보랭백을 못 쓰게 하면 어떻게 해요? 이미 計算된 物件이라는 表示를 해주시면 되잖아요.”

    “그럼, 이 비닐에 담아가세요.”

    “그럼 보랭백을 使用할 수 없잖아요.”

    “저더러 어쩌라고요?”

    집에서 쓰던 보일러가 故障이 났다. 아파트 管理所 職員을 불렀으나 原因을 모르겠다며 보일러 會社에 電話해보란다. 하지만 보일러 會社에서도 自己네는 모르는 일이라며 가스 會社에 물어보라고 했다. 가스 會社도 시원한 解決策을 내놓지 못한 바람에 結局 不動産과 中國人 집主人을 닦달해 사흘 만에 보일러를 고쳤다.

    學校 事情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다닌 語學 코스의 午前 授業이 끝나는 時間은 12時. 그러나 留學生을 管理하는 事務室은 午前 11時30分부터 午後 2時까지 點心時間이라 用務가 있는 學生은 授業 中에 나와 事務室에 들르든지 2時까지 기다려야 한다. 門 닫을 時間이면 기다리던 사람들을 無視하고 業務를 끝내버리는 銀行, 코앞에서 기다리는 손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電話 수다를 繼續하는 通信社 職員, 領收證과 잔돈을 집어 던지는 郵遞局 아가씨…, 그들 表情에 “그래서 어쩌라고요?”라고 씌어 있다.

    시키지 않으면 안 한다

    처음엔 荒唐해서 말門이 막혔지만, 얼마 前부터는 나도 “그럼 난 어쩌라는 건데?” 하고 應酬했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結局 抛棄하고 돌아서는 일이 茶飯事였지만.

    中國 사람들이 “몰라” “어쩌라고?” 하는 反應을 보이는 게 때론 내 탓일 때도 있다. 中國은 韓國이 아니란 事實을 忘却한 채 ‘말 안 해도 알겠지’ 하고 要求事項을 두루뭉술하게 얘기하니 中國 사람이 그 깊은 뜻을 알 理 없다. 中國에서 願하는 것을 얻으려면 지나치다 싶을 程度로 仔細하게, 具體的으로 說明해야 한다.

    中國에서 韓國飮食店을 하는 知人의 經驗談이다.

    절레절레, 부글부글… 나를 미쳐버리게 하는 중국, 중국인

    個性 있는 숍들이 모여 있는 타이캉루.

    “營業이 끝나면 淸掃를 하는데, 每日같이 너는 廚房, 너는 化粧室 이런 式으로 區域을 定해 淸掃 指示를 해야 한다. 한 사람이 늘 같은 場所를 맡아 하는데도 每日같이 指示해야만 淸掃를 한다. 하루는 여느 때처럼 淸掃 指示를 한 다음 最終 點檢을 하는데 홀 한구석이 지저분했다. 그 區域을 늘 맡아 淸掃하던 職員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으니 ‘오늘은 指示를 안 받았다’는 對答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淸掃 指示를 할 때 그 親舊가 자리를 비우고 없었던 것. 다른 職員들이 모두 淸掃할 때 自身도 淸掃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왜 못했는지, 아니면 淸掃를 해야 하냐고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하는 것 아닌지, 理解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람을 機械에 比喩하는 게 適切하진 않지만 中國人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作動시켰을 때 入力된 일 外엔 하지 않는 機械가 聯想된다. 中國을 旅行해본 사람들은 經驗했을 것이다. 큰 食堂에 가면 從業員 여럿이 나란히 壁에 붙어 서 있지만, 손님들이 뭘 要求해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물 따르는 일, 飮食 나르는 일, 飮食을 卓子에 내려놓는 일, 入口에서 人事하는 일 等으로 從業員의 任務가 細分된 境遇가 많기 때문이다.

    客地에서 病이 나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상하이에 定着한 지 얼마 안 돼 自轉車를 타다 넘어져 學校 內 病院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醫師의 가운은 지저분했고, 한쪽 구석엔 看護師의 것으로 보이는 스타킹이 널려 있었다.

    僑民들이 利用하는 病院은 좀 낫다. 僑民을 위한 病院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中國人이 다니는 病院에 外國人을 診療하는 ‘國際部’가 있다. 通譯 서비스나 外國 醫療陣의 診療를 받을 수 있어 僑民들이 主로 利用하는데, 施設이 훨씬 좋은 代身 診療費가 몇 倍 비싸다. 이곳에서도 外國人이 ‘鳳’인 셈이다. 醫師가 診療 中에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묻고는 患者의 對答에 따라 處方과 施術 範圍, 그리고 費用을 달리한다.

    같은 語學코스를 밟은 韓國人의 經驗談이다. 아들이 귀가 아프다고 하여 ‘國際部’에 데리고 갔더니 ‘귓속에서 뼈가 자라고 있으니 手術을 해서 除去해야 한다’는 診斷이 내려졌다. 中國에서 手術받기가 두려워 아이 學校에 缺席屆를 내고 韓國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耳鼻咽喉科 診斷 結果 귓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뼈’의 正體는 딱딱한 귀지였다.

    水因性 傳染病, 머릿니

    상하이엔 韓國 醫療陣이 있는 病院도 있다. 僑民이 많이 利用하는데 얼마 前엔 韓國 藥을 안 쓰고 中國 藥을 쓰면서 診療費를 비싸게 받는다는 所聞이 돌아 僑民社會가 시끄러웠다. 中國 醫療法에서 輸入藥을 쓸 수 있는 境遇와 아닌 境遇를 規定하고 있어서 거기에 따를 뿐 不當한 利得을 챙기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病院 側의 解明이 있고서야 潛潛해졌다. 筆者가 歸國길에 오를 準備를 할 무렵, 베이징에 있는 駐中 韓國大使館 政務公使가 腹痛으로 病院에 갔다가 突然死했다는 안타까운 消息이 傳해지자 가깝게 지내던 僑民들은 남 일이 아니라는 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劣惡한 醫療施設보다 더 두려운 건 미덥지 않은 病院 身世를 지게 만드는 環境汚染과 衛生不良, 異常氣候다. 여름이면 이웃 住民이 사나흘씩 안 보일 때가 있는데, 그 뒤에 만나면 腸炎으로 苦生했다는 얘기를 한다. 나도 여름마다 腸炎에 걸렸다. 아파트 水泳場에서 놀고 난 아이들 사이엔 水因性 傳染病이 돌고, 그 무렵 學校에선 “머릿니가 번지고 있으니 注意하라”는 家庭通信文을 各 家庭에 보낸다. 月 賃借料가 2000달러(藥 200萬원)線인 아파트, 年間 學費가 2萬달러(藥 2000萬원)線인 國際學校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毒感豫防注射를 맞아도 겨울이면 感氣를 避하기 어렵다. 날씨가 춥기도 하지만, 집안에 溫突이나 斷熱材가 없어 連日 溫風器를 틀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環境 基準이 嚴格하지 않아 마구잡이로 排出되는 自動車 排氣가스와 産業施設의 煤煙 때문에 아이들은 肺疾患을 앓기도 한다. 僑民 家庭에서는 냄새 나는 水道물 代身 硏修記나 淨水器로 걸러낸 물을 쓴다. 勿論 낡은 아파트에 살았던 筆者는 냄새 나는 물로 샤워도 하고, 양치질도 했다.

    발목 붙잡은 상하이의 魅力

    이렇게 不滿이 많으면서도 2年이나 상하이에 머무른 건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워 때문에 마음 졸이지 않고, 싼값에 맛있는 飮食 골고루 먹어보고, 韓國의 4分의 1 價格에 마사지도 받을 수 있는 環境이 나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뿐인가, 와이탄의 夜景은 正말 끝내주고, 유럽風 建築物과 雰圍氣 좋은 카페가 櫛比한 興産루, 갤러리와 작지만 個性 있는 숍들이 모여 있는 타이캉루와 모간산루, 이름값 하는 宏壯한 規模의 슈퍼브랜드몰, 시원스러운 空間 活用이 돋보이는 名品 百貨店 플라자66은 갈 때마다 새로웠다. 語訥하지만 韓國말로 “安寧하세요” “맛있어요?” 하고 親近하게 對해주던 新티엔디 레스토랑의 從業員은 只今도 그립다. 異國的인 雰圍氣를 내는 洞타이壘 骨董品 距離의 小品과 中國 스타일의 앤티크 家具店은 통째로 들고 오고 싶을 만큼 魅力的인 곳이다. 歸國길을 서두르느라 치파오(女性用 中國 傳統 衣裳) 한 벌 맞춰 오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中國말을 全혀 몰라 津땀 빼던 나를 “내 큰딸”이라 부르며 “괜찮다, 천천히 해라” 激勵해주던 中國人 先生님, 집 管理는 勿論 通譯 노릇까지 마다하지 않던 不動産仲介所 職員, 내 입에 맞을 만한 飮食들을 親切하게 골라준 中國人 親舊, 英語課外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事實 萬으로 나를 ‘先生님’ 待接해준 아파트 警備 아저씨까지, 가슴 따뜻한 그들이 있었기에 2年餘 상하이 生活이 可能했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니 훠궈(火鍋·中國式 샤브샤브)와 바이주(白酒·高粱酒) 생각이 懇切하다. 筆者는 곧 서울市內 ‘正統 中國式’을 내세운 飮食店을 찾아다니며 “상하이에서의 그 맛이 안 난다”며 不平할 게 뻔하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