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머스 에디슨·니콜라 테슬라 電流 戰爭, 最終 勝者는?|주간동아

週刊東亞 1318

..

토머스 에디슨·니콜라 테슬라 電流 戰爭, 最終 勝者는?

[軌道 밖의 科學] 發明王 vs 天才 工學者 100年 만에 2次 戰爭 始作

  • 科學 커뮤니케이터 軌道

    nasabolt@gmail.com

    入力 2021-12-16 10:00:01

  • 글字크기 설정 닫기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대결을 소재로 한 영화  ‘커런트 워’(왼쪽)와 ‘테슬라’. [네이버 영화]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對決을 素材로 한 映畫 ‘커런트 워’(왼쪽)와 ‘테슬라’. [네이버 映畫]

    2019年과 2020年 같은 人物을 다룬 映畫 두 便이 各各 開封했다. 主人公이 얼마나 대단한 人物이기에 비슷한 內容을 連달아 觀客에게 선보였을까. 시나리오 完成度나 監督 演出力에 따라 興行 與否는 갈렸지만, 確實한 건 劇에서 對立하는 두 人物은 그야말로 人類가 只今처럼 便利한 生活을 누리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事實이다. 發明王 토머스 에디슨(1847~1931)과 天才 工學者 니콜라 테슬라(1856~1943) 얘기다.

    傳說的 事業家로 널리 알려진 에디슨은 어린 時節 알을 품어 병아리를 孵化시키려 했던 逸話가 有名하다. 好奇心이 많아 平凡한 敎育에는 適應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獻身的 努力으로 에디슨은 平生 自身의 才能을 充分히 發揮할 수 있었다. 그는 世界에서 가장 많은 發明品을 남겼는데, 美國에서 낸 特許 1093個를 包含해 全 世界的으로 總 2332個 特許를 保有했다.

    莫大한 富와 名譽를 가진 에디슨은 “天才는 1% 令監과 99% 努力으로 만들어진다”라는 名言을 통해 努力의 重要性과 令監의 價値를 說破했다. 한동안 수많은 偉人傳이 그가 얼마나 偉大한 人物인지를 詳細하게 記錄했다. 反面 니콜라 테슬라라는 세르비아系 오스트리아 出身 美國 工學者에 對해서는 꽤 오랫동안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에디슨에 對한 끝없는 讚辭가 멈출 때쯤 사람들은 그의 뒷얘기에 關心을 두기 始作했고, 그러면서 世紀의 發明家 뒤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天才가 徐徐히 모습을 드러냈다.

    테슬라를 偉大한 英雄으로 稱頌하는 세르비아에는 그의 이름을 딴 國際空港이 首都 베오그라드에 있다. 工學에서는 磁氣場 單位로 테슬라(T)가 가우스(G)만큼 많이 쓰인다. 게다가 1982年 美國 캘리포니아州에서 結成된 美國 록 밴드와 슬로바키아의 眞空管 製造業體도 테슬라 業績을 기리고자 同名의 이름을 使用했다. 水素燃料電池를 基盤으로 大型트럭을 만드는 會社 니콜라와 電氣自動車 會社 테슬라는 旣存 內燃機關을 代替할 世上을 꿈꾸며 니콜라 테슬라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마도 電氣의 大衆化를 통해 全 世界 모든 곳에 痕跡을 남긴 그를 기리려는 意圖일 것이다.

    이 製造業體들이 大衆에게 테슬라 이름을 刻印한 건 事實이지만, 分明히 알아야 할 것은 적어도 니콜라 테슬라는 平生 돈을 벌 수 있는 技術特許 使用料 體系나 投資者들에게 提示할 直接的인 收益모델은 만들지 못했다는 點이다. 그 代身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惠澤을 받을 것인지에 關心을 쏟았다. 테슬라의 意志를 제대로 잇고자 마음먹은 企業이라면 그가 해낸 技術 革新 브랜드를 내세워 돈 벌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죽는 瞬間까지 그가 世上에 남기고자 했던 膳物이 무엇이었는지를 苦悶해야 한다.




    平生 硏究에만 邁進한 科學者이자 發明家

    천재 공학자 니콜라 테슬라. [사진 제공 · The Tesla Collection]

    天才 工學者 니콜라 테슬라. [寫眞 提供 · The Tesla Collection]

    니콜라 테슬라는 1856年 當時 오스트리아帝國의 스밀랸이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세르비아人 父母 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에게서 놀라운 記憶力과 機械를 만드는 才能을 물려받은 그는 3歲 무렵 마차크라는 이름의 검은 고양이를 키웠는데, 춥고 乾燥한 어느 겨울날 고양이 等을 쓰다듬다 갑자기 發生한 靜電氣를 經驗했다. 當時 聖職者였던 아버지로부터 이러한 現象이 하늘에서 치는 번개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테슬라는 그렇다면 自然은 巨大한 고양이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神이 그 巨大한 등을 쓰다듬을 것이라고 結論 내린 것. 이러한 經驗은 어린 테슬라에게 永遠히 잊을 수 없는 靈感을 불어넣었고 平生을 電氣 硏究에 邁進하게끔 했다.

    1870年 우리나라로 치면 中學校에 該當하는 김나지움(Gymnasium)에 入學한 테슬라는 當時 積分을 暗算으로 計算할 수 있었는데, 그를 가르치던 數學 敎師가 正答을 훔쳐본 것으로 誤解할 程度였다. 그로부터 3年 後 테슬라는 故鄕 스밀랸으로 돌아왔다. 歸國과 同時에 콜레라에 걸려 9個月間 몇 番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自身의 뒤를 이어 聖職者가 되길 願하던 아버지에게 테슬라는 工學을 工夫할 수 있게 해달라고 要請했다. 아버지는 ‘죽은 사람 所願도 들어주는 마당에 산 사람 所願을 못 들어주겠나’라는 心情으로 가장 좋은 工大에 보내주겠다고 約束했다.

    以後 健康을 되찾은 테슬라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있는 工大에 奬學金을 받고 入學했다. 하루에 4時間씩만 자며 工夫한 그는 첫해에 모든 試驗에서 最高 點數를 받았다. 甚至於 어떤 敎授는 “테슬라가 이렇게 工夫하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內容의 便紙를 그의 아버지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두 番째 해가 끝나갈 무렵 테슬라는 賭博으로 奬學金과 用돈을 蕩盡했다. 成跡도 형편없어 卒業이 不可能한 狀況에까지 이르렀다. 以後 家族 얼굴을 보기 부끄러워진 그는 모든 關係를 끊고 賭博만 하다 神經衰弱에 시달렸다. 結局 警察의 護送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가 死亡하고 나서야 精神을 차렸다. 以後 그는 프라하臺에서 自身이 좋아하던 戰記를 다시 工夫하기 始作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사진 제공 · 미국 의회도서관]

    發明王 토머스 에디슨. [寫眞 提供 · 美國 議會圖書館]

    當時 에디슨은 이미 ‘에디슨 컴퍼니’라는 製造 會社를 세워 乘勝長驅하고 있었다. 이 企業의 프랑스 파리 支社에 테슬라가 入社하게 됐다. 그곳에서 테슬라는 發電機 性能을 改善하며 頭角을 나타내기 始作했다. 파리 支社 責任者로부터 ‘에디슨에 버금가는 人物’이라는 推薦을 받은 테슬라는 파리에서 美國 뉴욕 本社로 자리를 옮겼다. 美國에 到着한 테슬라는 電氣를 直流로 變換하는 過程에서 不必要한 裝置가 많이 달린다는 點을 깨닫고, 交流를 使用하면 效率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判斷했다. 하지만 이미 直流 設備에 많은 投資를 한 에디슨은 갓 들어온 新入社員의 主張에 코웃음을 쳤다. 그 代身 테슬라에게 直流 發電機를 只今보다 발전시키면 5萬 달러를 주기로 約束했다. 테슬라는 몇 달 밤샘 作業 끝에 直流 發電機가 가진 많은 短點을 改善하는 데 成功했다. 하지만 에디슨은 “美國式 유머를 理解하지 못한다”며 約束된 成果給을 주지 않았다. 自尊心이 傷한 테슬라는 卽時 辭表를 提出했다. 그리고 테슬라가 硏究한 交流에 關心을 보인 웨스팅하우스는 그에게서 特許權을 사들였다. 드디어 1885年 웨스팅하우스와 테슬라의 交流(AC), 그리고 에디슨의 直流(DC)가 電力 시스템 標準 자리를 놓고 競爭하는 電流 戰爭(Current War)이 勃發했다.

    모두가 勝利者 될 새로운 電流 戰爭

    니콜라 테슬라의 전구 실험. [GettyImages]

    니콜라 테슬라의 電球 實驗. [GettyImages]

    直流는 電氣를 使用處와 매우 가까운 곳에서 供給받을 수 있으면 더 效率的이다. 反面 交流는 高電壓을 使用할 수 있고 電壓 變化도 比較的 簡單해 멀리서 電氣를 보내도 損失이 덜하다. 이 둘 사이에 熾烈한 싸움이 벌어졌다. 하지만 當時 흐름은 職類였다. 에디슨을 支持하는 側은 交流가 高電壓이라 危險하다며 遺棄動物들을 交流로 죽이는 모습을 試演하기도 했다. 交流 電氣椅子를 設計해 觀客 數千 名이 보는 앞에서 코끼리를 交流로 感電死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훨씬 低廉하게 電氣를 供給할 수 있는 交流가 조금씩 人氣를 얻기 始作했고 結局 電流 戰爭 勝者는 테슬라가 됐다.

    只今 우리가 不足함 없이 電氣를 活用할 수 있는 것도 테슬라가 發明한 交流 德分이다. 發電所에서 만들어진 電氣가 各自 집까지 到達하는 모든 過程은 테슬라가 같은 周波數에서 位相은 達理하도록 設計한 多相交流 方式을 基盤으로 한다.

    직류와 교류 전쟁을 형상화한 이미지 [GettyImages]

    直流와 交流 戰爭을 形象化한 이미지 [GettyImages]

    재미있는 事實은 100年 만에 2次 電流 戰爭이 始作되고 있다는 것이다. 當時 電氣를 效率的으로 멀리까지 보내기 어려웠던 에디슨의 直流 送電 方式이 테슬라에게 敗北했고, 現在 構築된 全 世界 電力網은 交流 送電 方式이다. 하지만 最近 技術 發展으로 直流의 長點이 다시 두드러지는 趨勢다. 一般的으로 電力 損失을 最少化하면서 먼 地域까지 電氣를 보내려면 電氣 世紀인 電壓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過去에는 直流 電壓을 쉽게 높이는 技術力이 不在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電壓을 바꾸기 수월한 交流를 活用했다. 理論的으로는 直流가 交流보다 電力 損失이 적고, 或是 事故가 났을 때도 손쉽게 電力網을 分離할 수 있다는 長點을 지닌다. 하지만 發電所를 都市 近處에 지을 수 없는 게 短點이었다. 이제는 높은 電壓의 交流를 直流로 바꿔 送電할 수 있는 技術이 開發됐다.

    니콜라 테슬라가 미국 뉴욕에 세운 워든클라이프 타워. [GettyImages]

    니콜라 테슬라가 美國 뉴욕에 세운 워든클라이프 타워. [GettyImages]

    거리 制限에서 自由로운 直流가 登場한 것. 이렇게 되면 效率性뿐 아니라, 家庭에서 使用하는 電子製品도 크기를 줄일 수 있다. 家電은 普通 直流를 使用하기에 內部에 交流를 다시 直流로 바꿔주는 어댑터가 있어야 하는데, 直流 方式을 適用하면 어댑터가 必要 없기 때문이다.

    甚至於 最近에는 테슬라와 에디슨 모두가 勝者라는 主張도 나온다. 電氣車 時代엔 두 方式의 電氣가 모두 重要해서다. 限定된 電氣를 알차게 使用하는 데 特化한 電氣車는 于先 交流를 直流로 바꿔 貯藏한다. 쉽게 빠져나가는 特性이 있는 交流보다 直流를 貯藏해두는 便이 效率的이기 때문이다. 또한 電氣車를 制御하는 데 쓰이는 電子裝置에는 直流가 使用된다. 하지만 電氣車에서 가장 重要한 모터에는 다시 交流가 必要하다. 直流 모터를 使用하면 시끄럽고 非效率的이라 安定的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交流로 變換해 모터로 보내야 한다. 充電 方式 亦是 交流와 直流를 모두 쓴다. 배터리 壽命을 短縮하는 急速 充電은 別途의 變換 없이 直流를 使用하고, 時間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比較的 壽命에 影響을 적게 미치는 緩速 充電은 交流를 操心스럽게 直流로 變換해 貯藏한다.

    그리스 神話에서 ‘앞을 내다본다’라는 뜻의 이름으로 늘 人間 便에 서서 도움을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人間에게 最初로 불 代身 마음껏 쓸 수 있는 電氣를 가져다준 니콜라 테슬라 亦是 不幸하게 삶을 마감했다. 어린 時節 나이아가라 瀑布를 그린 版畫를 보며 물의 힘으로 電氣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그는 世界 最初 水力發電所를 통해 뉴욕에 電氣를 供給하면서 꿈을 이뤘다. 테슬라는 8個 國語를 能熟하게 할 만큼 머리가 좋고 말솜씨도 뛰어났다. 키도 훤칠한 데다 美男이었다. 하지만 그는 理性에는 關心도 없고 오직 새로운 發明에만 沒頭했다. 末年까지 테슬라는 自然으로부터 無限한 에너지를 永遠히 얻을 수 있는 方法을 찾았다. 뉴욕에 ‘워든클라이프 타워(Wardenclyffe Tower)’라는 無線 電力 電送 裝置를 建設해 人類에게 無料로 電氣를 나눠주려는 試圖도 했다. 勿論 그의 夢想은 投資者들의 拒否로 中斷됐다.

    結局 테슬라는 가난에 시달리다 87歲 나이로 쓸쓸하게 世上을 떠났다. 一平生 獨身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가 最初로 만들어낸 偉大한 科學技術 結果物들은 全 人類에게 永遠히 남아 있다.

    軌道는… 연세대 天文宇宙學科 學部 및 大學院을 卒業하고 韓國天文硏究院 宇宙監視센터와 연세대 宇宙飛行制御硏究室에서 勤務했다. ‘軌道’라는 藝名으로 팟캐스트 ‘課長窓’,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進行 中이며, 著書로는 ‘軌道의 科學 虛勢’가 있다.



    댓글 0
    닫기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