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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은 어둠의 時代… 政策도 討論 아닌 學習 對象”|週刊東亞

週刊東亞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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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은 어둠의 時代… 政策도 討論 아닌 學習 對象”

[조경란의 21世紀 中國] 父 시중쉰 記憶 中國人 시진핑에 失望

  • 조경란 연세대 國學硏究院 硏究敎授

    入力 2021-12-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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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1일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 참석한 시진핑 국가주석(가운데). [신화=뉴시스]

    11月 11日 中國共産黨 第19期 中央委員會 6次 全體會議에 參席한 시진핑 國家主席(가운데). [神話=뉴시스]

    시진핑(習近平) 中國 國家主席은 도도한 歷史의 물줄기에 逆行하려는 것일까. 11月 11日 幕을 내린 中國共産黨 第19期 中央委員會 6次 全體會議에서 ‘黨 100年 奮鬪의 重大한 成就와 歷史 經驗에 關한 決意’가 採擇됐다. 中國共産黨 歷代 세 番째 ‘歷史決議’다. 黨이 歷史 解釋權을 獨占하는 中國에서 歷史決議는 政治·社會·文化 多方面에 莫大한 影響을 끼친다. 1981年 덩샤오핑(鄧少平) 當時 國家主席은 ‘建國 以來 黨의 若干의 歷史 問題에 關한 決意’를 發表했다. 마오쩌둥(毛澤東) 主席 時期에 벌어진 文化大革命을 “中國 民族을 災難에 빠뜨린 悲劇”이라고 規定한 것이 核心. 그런데 이番 全體會議에서 시 主席은 “改革·開放 以後 歷史로 改革·開放 以前 歷史를 評價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文化大革命, 大躍進運動 等 마오쩌둥 時代에 對한 評價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發言은 시진핑이 덩샤오핑의 先夫論(先富論)을 否定하고 自身의 政治 路線을 差別化하는 것 以上의 意味를 갖는다.

    “아름다운 社會主義 强國”

    시진핑은 2018年 3月 11日 國家主席 任期 制限을 없애고 長期 執權으로 가는 門을 열었다. 덩샤오핑 以後 中國共産黨은 國家主席 任期를 10年으로 制限했다. 이는 마오쩌둥 個人崇拜 弊端을 고치고자 어렵게 立案된 制度로 40年 가까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시진핑의 任期 規定 廢止는 中國 歷史에서 또 하나의 變曲點이 될 것이다. 시진핑 政府는 未來 國家發展 타임 라인을 第1段階(2020~2034)와 2段階(2035~2050)로 區別하고 있다. 1段階 目標는 ‘小康社會’를 이룬 基礎 위에서 15年을 더 奮鬪해 社會主義 現代化를 實現하는 것이다. 2段階는 ‘아름다운 社會主義 現代化 强國 建設’을 志向한다. 或者는 1段階까지 시진핑 自身이 中國을 統治하려는 것 아닌지 疑心하기도 한다.

    現在 中國에서는 시진핑을 마오쩌둥, 덩샤오핑 班列에 올리려는 ‘企劃’이 한창이다. 果然 可能한 일일까. 中國 外部 視角에서는 어설픈 作業처럼 보이지만, 共産黨 統治의 呪術에 걸린 中國 人民을 對象으로는 成功할 수도 있다. 中國 社會의 一般的 歷史 評價는 “마오는 社會主義로 申(新)中國을 建設했고 덩은 改革·開放으로 中國을 잘살게 했다”는 것이다. 두 國家主席이 土臺를 쌓은 오늘날 中國 모습은 어떤가. 온 나라가 오직 芙江(富强)에 邁進한 結果 所得 不均衡 指標인 脂膩係數는 世界에서 가장 높다. 經濟成長에 비해 一般 大衆 삶의 質은 크게 높아지지 않았다는 不滿도 높다. 시진핑이 共同富有(共同富裕)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理由다.

    시진핑 政府는 國家 大轉換을 노리는 듯하다. 單純히 芙江만 追求해서는 不可能한 일이다. 中國이 얼마나 魅力的인 現代 文明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關鍵이다. 이를 爲해서는 知性과 文化가 자유롭게 펼쳐질 수 있는 條件을 갖춰야 한다. 이런 條件이 達成돼야 中國共産黨이 追求하는 ‘새로운 社會主義’가 될 것이다. 너무나 當然하고 理想的인 價値가 現實 政治의 標語가 될 때 果然 그 底意가 무엇인지 疑心해봐야 한다. 中國 現代史의 悲劇인 反(反)右派 鬪爭과 文化大革命도 思想統一과 平等이라는 유토피아를 내세웠다. 다만 華麗한 口號에 감춰진 眞짜 目標는 權力 鬪爭이자 反對派 除去였다.

    시진핑이 내세운 밝은 靑寫眞 裏面에는 무엇이 있을까. 2014年 자오펑(趙峰) 중앙당교 敎授는 言論 인터뷰에서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이어 시진핑 思想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런 視角에서 본다면 시진핑 政府의 ‘黨憲 改正’은 2018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닐 수 있다. 黨 集團指導體制 次元에서 시진핑을 次期 指導者로 뽑을 때부터 當헌 改正에 어느 程度 共感帶가 形成된 것으로 봐야 한다. 中國 政治 風土에서 革命 元老의 子弟는 그 自體로 正統性과 權威를 갖는다. 막스 베버(Max Weber)가 分析한 支配의 여러 方式 中 ‘카리스마的 支配’에 該當한다. 시진핑은 革命 元老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태자당(太子黨: 中國 高位層 人士 子女로 構成된 政治勢力)으로 分類된다. 2012年 시진핑의 登場도 共産黨 指導體制 內部 元老 政治人과 파워 엘리트의 合意에 따른 것이다.



    시중쉰 전 중국 부총리(왼쪽)와 아들 시진핑 국가주석. [동아DB]

    시중쉰 前 中國 副總理(왼쪽)와 아들 시진핑 國家主席. [東亞DB]

    “후야오방 解任은 마오쩌둥 錯誤 反復”

    2015年 숨진 리콴유(李光耀) 前 싱가포르 總理는 美國 政治人들을 向해 “시진핑은 넬슨 만델라(前 남아프리카공화국 大統領) 같은 人物”이라고 評했다. 韓國에서도 시진핑 執權 後 中國이 過去보다 나은 方向으로 向할 것이라는 期待가 있었다. 이러한 肯定的 展望의 根據는 크게 두 가지였다. 于先 그가 文化大革命 때 下方(下放) 等 온갖 苦難을 겪었기에 民心을 잘 헤아릴 것이라는 豫想이었다. 또한 그의 아버지 시중쉰의 사람 됨됨이를 아는 이들은 그 아들에게도 期待가 컸다.

    시중쉰은 中國共産黨 元老 中에서도 특별한 캐릭터다. 저우언라이(周恩來) 前 總理의 最側近으로, 1958年 國務院 副總理 兼 祕書長을 지냈다. 1963年 失脚해 文化大革命 때인 1967年 紅衛兵에 依해 산시省으로 끌려갔다. 1968年 3月 베이징으로 移送된 後 拘禁돼 長長 8年 동안 監視 속에서 살았다. 덩샤오핑 執權 後 復權된 그는 如前히 最高 權力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1987年 후야오방(胡耀邦) 當時 總書記가 市民들의 民主化 示威를 强勁 鎭壓하지 않은 理由로 失脚했을 때 시중쉰 홀로 失脚에 反對했다. “黨內 民主的 節次를 거치지 않았다. 이 같은 解任은 마오쩌둥의 錯誤를 反復하는 것”이라며 所信을 굽히지 않은 것이다.

    아버지 시중쉰을 記憶하는 中國人은 시진핑 政府에 더욱 失望하고 있다. 筆者와 交流하는 一部 中國 知識人은 “韓國은 ‘平和의 時代’에 접어들었는데 中國은 ‘어둠의 時代’로 들어갔다”고 恨歎하기도 한다. 어둠의 代表的 徵候가 國家權力의 知識人 統制다. 2018年 中國을 訪問했을 때 筆者가 “黨 路線과 政策에 對해 討論하지 않느냐”고 묻자 中國 學者들은 “그것은 討論이 아닌 學習 對象”이라고 答했다. 當時만 해도 그 對答을 弄談으로 받아들였으나 只今 생각해보면 眞談이었으리라. 오늘날 中國에서 當局 指針은 唯一하게 合法的 言語가 되기 때문이다. 黨과 指導者의 말은 卽時 學習 對象이 될 뿐, 討論이나 學問 交流 對象이 아니다. 시진핑이 새로이 내놓은 黨 決意도 마찬가지로 學習과 追從 對象이 될 것이다. 前近代 中國에서 過去 工夫의 必須科目이 唐나라에서 由來한 黨八股文(唐八股文)이었다면, 現代 中國의 公認된 知識은 糖이 許諾한 ‘黨(黨)八股文’인 셈이다. 마오 時代에 마오 言語가 事由 準則이 된 것처럼 시진핑 統治 20年이 지나면 그의 言語도 法이 될 것이다.

    첸리췬(錢理群) 前 베이징大 敎授의 分析에 따르면 1957年 反右派 運動 後 마오쩌둥이 一黨 專制體制를 强化하면서 ‘57體制’가 誕生했다. 그 結果 中國 現代史의 悲劇인 大躍進運動과 文化大革命이 일어났다. 1989年 6月 4日 톈안먼 民主化 示威 虐殺도 또 하나의 歷史的 轉換點이 됐다. 톈안먼 示威를 流血 鎭壓하고 登場한 ‘6·4體制’는 57體制의 連續인 同時에 權威主義 政治와 市場經濟가 結合한 것이었다. 2018年 3月 11日 시진핑의 國家主席 任期 制限으로 具體化된 ‘3·11體制’는 移轉 레짐보다 社會와 人民에 對한 統制를 强化할 것으로 보인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 構築한 政治體制를 繼承하면서 技術的으로 더 촘촘한 디지털 統制 社會를 構築할 것이다.

    1989년 6월 4일 중국공산당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열린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했다. [GETTYIMAGES]

    1989年 6月 4日 中國共産黨은 베이징 톈안먼 廣場에서 열린 民主化 示威를 流血 鎭壓했다. [GETTYIMAGES]

    部(富)·權(權)·지성(知性)

    지난해 코로나19 危險性을 警告한 醫師 리원량(李文亮)의 運命은 3·11體制가 가져올 未來 統制 社會를 劇的으로 보여줬다. 리원량은 새로운 疾病인 코로나19 感染 事例를 確認해 公論化했다 公安當局의 彈壓을 받았다. 中國 政府는 코로나19 患者를 돌보다 感染돼 숨진 그에 對한 追慕마저 禁止했다. 醫療 專門家의 意見과 生命이 共産黨 統治 아래서 얼마나 가벼이 여겨지는지, 또 그것이 얼마나 큰 災殃을 招來하는지 中國人은 똑똑히 봤다.

    獨立運動家이자 思想家 咸錫憲은 4·19革命 後 知性의 未來를 이렇게 내다봤다.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戰略的인 地點이 셋 있다. 富(富)가 그 하나요, 卷(權)이 또 하나요, 마지막은 知性(知性)”이라는 것이다. 이 中에서 特히 눈여겨볼 것이 知性이다. 富나 卷만 믿는 國歌는 興할 것 같지만 이내 敗亡하고 만다. 自由롭게 門을 열면 마치 洪水처럼 混亂이 惹起될 것 같지만, 危機의 瞬間 共同體를 求하는 것은 健康한 知性과 文化다. 오늘날 中國이 魅力的인 文明을 이룩하려면 單純히 芙江뿐 아니라 百花齊放(百花齊放) 속 自由로운 知性과 文化를 許容해야 한다.

    조경란은… 연세대 國學硏究院 硏究敎授, 國務總理室 傘下 經濟人文社會硏究會 人文政策特別委員會 委員. 中國現代思想·東아시아 思想 專攻. 홍콩中文臺 房文學者·베이징大 人文社會科學硏究院 招聘敎授 歷任. 著書로는 ‘現代 中國 知識人 指導: 新左派·自由主義·新儒家’ ‘20世紀 中國 知識의 誕生: 傳統·近代·革命으로 본 라이벌 思想家’ ‘國家, 遊學, 知識人: 現代 中國의 保守主義와 民族主義’ 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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