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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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시경
學者 情報
本名 주시경(周時經)
出生 1876年 12月 22日 ( 1876-12-22 )
朝鮮 黃海道 봉산군
死亡 日帝强占期 漢城府
職業 言語學者
言語 韓國語
國籍 조선의 기 朝鮮 (1876-1897)
대한제국의 기 大韓帝國 (1897-1910)
일본 제국의 기 日本 帝國 (日帝强占期)(1910-1914)
民族 韓民族
本館 尙州 朱氏
宗敎 改新敎 ( 監理敎 ) → 大倧敎 改新敎 ( 監理敎 )
筆名 號 한힌샘, 한흰메
두루때글, 駐보다리
父母 部 주학원(周鶴苑) / 某 沿岸 李氏 이성수(李聖壽)의 딸 / 養父 주학만(周鶴萬)

주시경 (周時經, 1876年 12月 22日 ( 陰曆 11月 7日 ) ~ 1914年 7月 27日 )은 朝鮮 말 開化期에 韓國語와 한글을 科學的으로 硏究한 國文學者이자 言語學者 이다. 專門的인 理論 硏究를 통해 한글 標準化를 推進하였고, 後進養成과 더불어 民族自主 次元에서 한글 普及運動을 펼치며 한글의 大衆化와 近代化에 努力한 開拓者이자 先覺者다. [1]

本貫은 尙州 , 初名은 相互(相鎬), 字는 경재(經宰), 號는 한힌샘, 백천(白泉)이다. 獨立協會 活動 中 한글 表記法 統一의 必要性을 切感하고 韓國語 文法을 整理하였다. 獨立新聞 發行과 各種 討論會, 萬民共同會 의 資料를 民衆이 쉽게 接近할 수 있게 한글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忽待 받던 우리글 訓民正音을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란 뜻을 지닌 '한글' 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를 것을 提案하여 [2] [3] [4] 使用하게 하였다. [5] 현대 한글 體系를 定立하고 普及하였으며, 韓國語 硏究에 貢獻하였다. 民族主義 思想을 지녀 한글 敎育에도 힘썼으며, 改新敎 에서 大倧敎 로 改宗한 것 또한 民族的인 正體性 追求 때문이었을 거라 推測된다. 近現代 한글 硏究에 있어 崔鉉培 와 함께 가장 큰 影響을 주었다.

周時經은 "나무가 자라는 것은 하늘이 하는 일이요, 그 나무를 가꾸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우리말을 다듬어서 바르게 말하고 적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政府에서는 先生의 功勳을 기리어 1980年 建國訓長 大統領章을 追敍하였다. [6]

生涯 [ 編輯 ]

講義活動 [ 編輯 ]

弟子 [ 編輯 ]

周時經 先生에게 職·間接으로 배운 사람들은 김두봉 ·[/이규영]· 崔鉉培 · 김윤경 · 권덕규 · 신명균 · 장지영 · 이필수 · 김원우 · 정열모 · 이윤재 · 李丙琪 · 金斗宗 · 백남규 等이다. 이들 中 李允宰, 崔鉉培는 朝鮮語學會 에서 會員으로 活動한 한글學者들이다.

家族 [ 編輯 ]

  • 祖父 : 駐芳烈 (周方烈) - 처음 이름은 봉래(鳳來)였다. 嘉善大夫와 金浦郡守를 지냈다.
    • 伯父 : 주학영(周鶴英)
    • 中部 : 주학만(周鶴萬) - 처음 이름은 免震(冕鎭)이었다.
    • 生父 : 學院 (周鶴苑) - 처음 이름은 免席(冕錫)이었다.
      • 兄 : 注視桶(周時統) - 伯父의 養子가 되었다.
      • 本人 : 주시경(周時經) - 中部의 養子가 되었다.
      • 아우 : 注視强(周時綱)
      • 아우 : 주시종(周時綜)



  • 妻 : 金海 金氏 김종순(金鍾舜)의 딸 김명훈
    • 長男 : 駐三山/세메
    • 次男 : 駐白山/흰메(1904) - 族譜에 올라간 이름은 廉回(濂會), 者는 白山(白山)이다.
      • 孫子 : 주영철 (1934 - 2006)
      • 孫女 : 주영신
      • 孫女 : 주영애
      • 孫女 : 주영옥
    • 長女 : 駐松山(1902)/솔메 - 男便은 光州 李氏 이종우(李鍾禹)
    • 次女 : 駐春山/봄메 - 男便은 濟州 高氏 고태윤(高泰胤)
    • 三南 : 周王山(1912)/林메 - 族譜에 올라간 이름은 秦檜(晋會), 者는 王山(王山)이다.


      • 孫子 : 주영일(1939)
      • 孫子 : 주소영(1942)
      • 孫子 : 주영석(1945)

參考 : 子女들의 이름을 純 우리말로 지었으나 日帝時代에 戶籍을 한글로 올릴 수 없어 漢字로 戶籍에 올렸다.

著書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周時經을 演技한 俳優 [ 編輯 ]

外部 링크 [ 編輯 ]

各州 [ 編輯 ]

  1. <no잉wiki>[네이버 知識百科 주시경 [周時經] (두산百科)</nowiki>]
  2. [韓國民俗 大百科事典] 한글날 (文化體育觀光部, 國立民俗博物館) ...한글이라는 이름은 諺文, 半切, 가갸글 等으로 불러 오던 訓民正音을 1910年代에 周時經(周時經)을 中心으로 한 國語 硏究家들이 으뜸가는 글, 하나 밖에 없는 글이라는 뜻으로 지어서 쓰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 쓰임이 普遍化되지 않았다.
  3. [네이버 知識百科] 한글 - 世上에서 가장 神祕한 文字 (偉大한 文化遺産, 최준식) ....‘한글’이라는 이름은 1910年代 初에 周時經 先生을 비롯한 한글學者들이 쓰기 始作한 것입니다. 여기서 ‘韓’이란 크다는 것을 뜻하니, 한글은 ‘큰 글’을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4. [네이버 知識百科] 訓民正音 - 世界가 認定하는 우리글 (醬콩 先生님과 함께 묻고 答하는 世界文化遺産 이야기(韓國篇), 2011. 3. 15., 張龍峻(醬콩), 조성덕, 양희석, 株狀態) ....한글學者 周時經 先生은 1913年 어린이 雜誌 〈아이들보이〉에 글을 쓰면서 ‘한글’이라는 이름을 最初로 使用하여 ≪訓民正音≫의 現在 이름인 ‘한글’을 탄생시켰어요.
  5. [네이버 知識百科] 한글 價値의 再發見, 주시경 (우리말의 수수께끼, 2002. 4. 20., 박영준, 시정곤, 정주리, 최경봉) ...'한글'이라는 名稱은 周時經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에 對한 明確한 記錄은 없으나, 1913年 刊行된 《아이들 보이》라는 雜誌의 끝에 題目으로 '한글'이라 한 것이 있다. 이 名稱은 朝鮮語學會가 訓民正音 頒布 8回甲이 되는 해(60×8=480)인 1926年 陰曆 9月 29日을 盤浦記念日로 定하여 '가갸날'로 부른 뒤, 1928年에는 가갸날을 한글날로 고쳐 부르게 되면서 一般人에게 널리 알려진다. '한글'은 '韓(韓) 나라의 글', '큰글', '世上에서 첫째가는 글' 等으로 解釋될 수 있다.
  6. [네이버 知識百科] 주시경 [周時經] - 實踐的 國語學者 (獨立運動家, 이달의 獨立運動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