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몽룡
(閔夢龍,
1550年
~
1618年
)은
朝鮮
中後期의 文臣이며,
이이첨
과
광해군
을 後援했던 對北勢力의 元老였다. 또
정인홍
의 側近이었다. 字는 치운(致雲), 號는 雲臥(雲窩). 本貫은
餘興
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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靖國功臣
민효증
의 曾孫으로 宣祖 때 文科에 及第하여 正言이 되고 以後 壬辰倭亂 渦中에 司憲府掌令이 되었다. 以後 北人의 便에 서서 司憲府掌令, 司諫院사간, 成均館司藝를 거쳐 집義가 되는데 丁酉再亂 때
同副承旨
로 任命되어 堂上官에 昇進했다. 以後
右副承旨
로 昇進했으며 以後 壬辰倭亂이 終戰되자 바로 兵曹參知가 되었다. 以後 五衛將을 거쳐
병조참의
를 하다가 바로
左承旨
로 任命되었다. 연이어서 광해군 勢力인 北人의 後援으로 바로
禮曹參議
가 되고 곧
司諫院
大司諫
을 거쳐 다시
承政院
左承旨
가 되고 連이어
好調參判
으로 昇進,
司憲府
大司憲
을 거쳐 以後
大司憲
이 되고
刑曹判書
와
大司憲
을 번갈아하며 北人의 核心으로 西人과 南人을 逐出해냈다. 當時
領議政
윤두수
,
領議政
유성룡
等 庶人과 南人의 巨頭들을 各各 肅淸했으며, 以後 北人이 分裂되자 鄭仁弘의 뜻에 따라 對北이 되었다. 그러나 小북 大臣들의 攻擊으로 左遷과 復歸를 反復하다 知中樞府事가 되고 以後 光海君 卽位 以後
刑曹判書
,
吏曹判書
를 거쳐
左參贊
이 되고 以後 바로 光海君의 特旨로
右議政
이 된다. 以後 廢母論을 실현시켰고, 光海君의 信任으로
左議政
이 되지만 곧 死亡한다. 仁祖反正 以後 官爵이 追奪되었다.
家族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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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父親
: 민상(閔祥)
- 母親
: 이예원(李禮元)의 딸
- 丈人 : 留任(柳?)
- 장某 :
胤裔은
(尹禮殷, 1536 ~ ?)
[1]
- 否認
:
類女警
(柳餘慶, 1552 ~ ?)
- 長男
: 민준철(閔濬哲, 1574 ~ ?) - 縣令(縣令)
- 子婦 : 監役(監役) 性徹(成哲)의 딸
昌寧 姓氏
- 孫子 : 민영재(閔英才)
- 孫子 : 民宏才(閔宏才, 1603 ~ ?)
- 孫女 :
稷山 조氏
直講(直講) 조성달(趙聖達)의 妻
- 次男
: 민명철(閔明哲, 1578 ~ ?)
- 子婦 : 僉使(僉使) 김양서(金良恕)의 딸 落雁 金氏(樂安 金氏)
- 孫子 : 民記載(閔奇才, 1595 ~ ?)
- 孫子 : 民無財(閔茂才)
- 孫子 : 民報再(閔輔才)
- 孫子 : 民未裁(閔美才)
- 孫子 : 民庫再(閔高才)
- 3男
: 民選鐵(閔宣哲, 1584 ~ ?) - 奉仕(奉事)
- 子婦 : 道士(都事) 김진선(金盡善)의 딸
金海 金氏
- 孫女 : 領議政(領議政)
정태화
(鄭太和)의 妻
- 4男
: 民유철(閔迪哲, 1587 ~ ?) - 察訪(察訪)
- 子婦 : 監役(監役) 김준두(金遵?)의 딸
熙川 金氏
- 孫子 : 民主再(閔周才, 1607 ~ ?) - 忠義衛(忠義衛)
- 孫子 : 民筆才(閔畢才, 1617 ~ ?) - 忠義衛(忠義衛)
- 孫子 : 民餘在(閔呂才, 1624 ~ ?)
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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