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명
(李健命, 1663年~1722年)은
朝鮮
後期의
文身
이다.
領議政
이경여
의 孫子이자
이민서
의 아들이다. 字는 중강(仲剛), 號는 한포재(寒圃齋), 本貫은
全州
이다.
肅宗
때 文科에 及第하였으며, 1698年
書狀官
으로
靑
에 다녀온 後
承旨
,
吏曹參議
,
大司諫
,
大司成
, 江華留守,
吏曹參判
,
都承旨
,
副提學
을 거쳐
大司成
,
吏曹參判
,
漢城府
右尹
을 지내고 다시
吏曹參判
,
好調參判
,
大司成
을 거쳐 京畿道觀察使를 지낸 뒤
副提學
,
吏曹參判
,
大司成
,
大司憲
을 거쳐
吏曹判書
,
右參贊
,
刑曹判書
를 지내고 다시
吏曹判書
,
戶曹判書
,
弘文館
提學
을 두루 지낸 뒤 다시
兵曹判書
를 지내고
左參贊
,
大司憲
,
右參贊
,
刑曹判書
,
弘文館
提學
,
禮曹判書
를 거쳐
右議政
,
左議政
을 지냈다. 1721年
老論
4大臣의 한 사람으로 稅制(英祖)의 冊封을 主張했으며 冊封 주청자로 請에 다녀왔다. 그때
辛壬士禍
가 일어나 老論이 쫓겨나자, 流配되었다가 死藥을 받고 죽었다. 그는 性味가 溫順한 反面 剛直하여 王을 섬기되 阿附하지 않았다. 글씨가 뛰어났는데 特히 松雪體로 이름을 떨쳤다. 著書로 <寒圃齋集>이 있다.
諡號는 忠民(忠愍)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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