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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靑瓦臺 主人들의 黃昏은 悲慘했을까|주간동아

週刊東亞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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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靑瓦臺 主人들의 黃昏은 悲慘했을까

全斗煥 政權 8年 발가벗긴 ‘5共 南山의 部長들’ 著者 김충식 敎授가 말하는 ‘權力者들’

  • 구희언 記者

    hawkeye@donga.com

    入力 2022-06-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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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공 남산의 부장들’의 저자 김충식 가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지호영 기자]

    ‘5共 南山의 部長들’의 著者 김충식 嘉泉大 미디어커뮤니케이션學科 敎授. [지호영 記者]

    ‘南山의 部長들’은 朴正熙 時代(第3共和國과 第4共和國) 18年 동안의 情報部長 10名을 다룬 列傳이다. 出刊 當時 55萬 部 넘게 팔린 히트作이다.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等 有名 俳優가 出演하고 ‘內部者들’의 우민호 監督이 演出한 同名의 映畫는 500萬 觀客을 動員했다. 著者는 김충식 嘉泉大 미디어커뮤니케이션學科 敎授. ‘東亞日報’ 記者 時節 1990年 8月부터 1992年 10月까지 2年 2個月 동안 동아일보 紙面에 人氣裡에 連載한 記事를 바탕으로 한 冊이었다.

    그가 이番에는 ‘5共 南山의 部長들’(블루엘리펀트)을 世上에 내놨다. 이 冊은 第5共和國의 起源이 된 1979年 12·12 쿠데타에서 始作해 全斗煥, 유학성, 盧信永, 장세동, 안무혁으로 이어지는 5名 時節의 南山 歷史를 다뤘다. 전두환 執權 8年間의 歷史를 南山의 部長들을 中心으로 살펴보는 2彈人 셈이다.

    6月 2日 동아일보 忠正路 社屋에서 金 敎授를 만나 激動의 大韓民國 史觀을 自處한 所懷를 들었다. 金 敎授는 “終戰 冊이 朴正熙 時代 10名의 情報部長을 다뤘다면, 이番에는 全斗煥부터 안무혁까지, 1980年부터 1988年까지 전두환 時代를 南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여주는 冊”이라고 말했다.

    未公開 特種 실려

    前作에 對해 “작두 위를 걸어가며 썼기 때문에 形容詞와 府使를 쓸 겨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番 冊은 어땠나요.

    “작두 위에 섰다는 氣分은 비슷합니다. 이番엔 宇宙 發射體를 組立하는 氣分으로 冊을 썼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內容이 100% 名譽毁損과 관계되는 部分이기도 하고, 相對方들은 相當한 法的 專門家이자 助力者度 많아서 이들을 相對로 名譽毁損이냐, 알권리냐를 두고 싸워야 했기에 執筆까지 적잖은 決心을 해야 했어요. 只今도 누가 어떤 致命的 問題를 提起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便으로는 是是非非에 맞설 覺悟도 돼 있습니다.”

    兩面的 評價를 받는 人物들을 다룬 冊입니다. 執筆하면서 가장 重點을 둔 部分은 무엇인가요.

    “朴正熙에 對해서도 批判的으로 썼지만 取材하며 憐憫하는 部分이 있었고, 이番에는 전두환에 對해 批判的 評傳을 쓴 셈이지만 그에게도 長點은 있었어요. 兩面을 다 살펴야 均衡 있게 바라볼 수 있고 지켜보는 이들도 共感할 거라고 생각했죠. 哲學에 追體驗(追體驗)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때 當時로 돌아가 ‘내가 朴正熙였다면 그 時節 先生을 하다가 軍人으로 滿洲에 갔을까’를 생각해보는 거죠. 只今 내 잣대가 아니라, 當時 그의 狀況에 들어가 보고 왜 그런 選擇을 했는지 생각해보면서 冊을 썼어요. 勿論 그 選擇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요.”



    實際로 그는 時代의 目擊者이자 參與者였다. 1985年 8月 亡命 操縱士 身柄處理를 特種 報道했다가 南山 安企部(國家安全企劃部)에 連行돼 3泊 4日間 苛酷한 拷問을 當했다. 當時 編輯局 記者들이 들고 일어나 政權에 抗議하는 聲明書를 내기도 했다. 聲明書 代表 執筆者가 當時 李洛淵 記者(前 國務總理)였다.

    한便으로 이 冊은 全斗煥의 波瀾萬丈한 成長 過程을 담은 最初의 全斗煥 評傳이기도 합니다. 全斗煥 政權에서 記者 時節 拷問을 當하기도 했는데 여러모로 惡緣 아닌가요. 記者 生活에 懷疑感이 들지는 않았는지요.

    “種種 記者는 僧侶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僧侶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木鐸을 치면서 經典을 外高 釋迦의 가르침을 向해 끊임없이 걸어가는 構圖자잖아요. 記者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讀者가 뭘 알고 싶어 하고 뭘 읽고자 하는지, 내가 알려야 할 게 무엇인지 取材源과 싸우고 自身과도 싸우는 職業이라는 點에서 비슷하죠. 그런 생각만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던 時節이었습니다. 顧問은 僧侶가 절로 돌아가다 길에서 逢變을 當할 수도 있지만 그다음 날 木鐸을 손에서 놓지 않듯이, 그런 一種의 ‘逢變’이었다고 생각합니다.”

    冊에 紹介된 特種 祕話를 몇 가지만 꼽아주세요.

    “南韓과 北韓, 美國이 3者會談을 하자고 北韓 側이 提案해온 걸 東亞日報와 한국일보가 報道했거든요. 그런데 外交部 長官을 했던 盧信永이 1984年 安企部長을 할 때 記事가 나가자 平生 같이 일한 外務部 次官, 次官補, 美洲局長 等을 데려다 地下室에서 拷問한 事件이 있었어요. 本人은 몰랐다고 하지만 南山 組織 形態로 봐서 部長 모르게 데려다 毆打하지는 않았을 테고, 전두환 大統領과 장세동 警護室長이 아주 憤怒한 事件이라서 挽留하지 못했을 거라고 봐요. 이 事件 自體를 最初로 活字化한 게 이 冊이죠.

    또 하나는 全斗煥, 장세동의 政治라는 게 暗黑의, 쩨쩨한 政治였기에 김대중이 다시 떠오르는 걸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1986年 7月 4日 美國 建國記念日에 정동에 있는 大使館에서 政治犯으로 家宅軟禁돼 있던 김대중을 부르려 하니 장세동이 招請하지 못하게 工作을 하라고 指示했죠. 그런데 失敗해 駐韓 美國大使館 側이 김대중을 데려다 歡談을 하자 當時 外交部 長官의 목을 치고, 美洲局長度 내쳤어요. 그렇게 恥事한 政治를 한 걸 이番에 처음으로 活字化했습니다.”

    尹錫悅 大統領도 冊에 登場한다고요. 어떤 파트인지 살짝 紹介해주세요.

    “1980年 5月 서울對 法大生 尹錫悅이 光州民主化運動 關聯 模擬裁判을 하는 逸話가 나와요. 當時 檢査 役割을 맡아 전두환 大統領에게 無期懲役을 求刑했죠. 事實 尹錫悅 政府는 國家情報院(國精院)의 그림자에서 싹튼 거라도 봐도 無妨합니다. 이름 없는 늦깎이 檢事가 國精院 댓글 造作 事件을 搜査할 때 主任檢事가 되고 一介 檢査가 國民的 關心 對象이 된 거죠. 以後 尹錫悅이 驪州支廳長으로 쫓겨나면서 正義롭고 抵抗하는 檢査 이미지를 깊이 刻印시켰어요. 그런 이미지가 2022年 大統領이 되는 뿌리가 된 거라고 봅니다. 最近 1~2年 사이 大選 候補로 擧論된 게 아니라 10年 歷史가 있었다고 봐야겠죠.”

    ‘남산의 부장들’에 이어 이번에 낸 ‘5공 남산의 부장들’에는 전두환 집권 8년간의 역사가 담겼다. [지호영 기자]

    ‘南山의 部長들’에 이어 이番에 낸 ‘5共 南山의 部長들’에는 전두환 執權 8年間의 歷史가 담겼다. [지호영 記者]

    權力은 永遠한 觀察 對象

    記者 生活을 30年間 했는데 記憶에 남는 取材源이 있나요.

    “運 좋게 政治部 記者를 오래해 國會, 靑瓦臺, 外交部 等에 出入했고 그때 만난 이들과 因緣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은 現 事案에 對해 물어보면 答을 잘 해주지 않아요. 그런데 옛날이야기는 재밌게 잘해요. 이番 冊도 그런 取材를 바탕으로 쓴 거죠. 取材源과 關係는 不可近不可遠이라지만, 信賴와 相互 認定이 있을 때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거 같아요. 이番에도 30年 만에 電話限 取材源이 過去 이야기를 곧잘 해줬죠. 저는 自廢的으로 問題를 보는 사람이 좋은 記者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事件이 날 때마다 一喜一悲하며 取材하는 것도 記者의 일이지만, 불은 늘 나게 되니 거기서 消防官은 뭘 하고 警察廳長은 어떻게 뛰는지를 觀照할 때 悠長한 呼吸의 좋은 記事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記者가 같이 興奮하는 게 아니라요.”

    前作은 臺灣에서도 中國語로 飜譯 出刊됐습니다. “韓國의 經濟復興을 이룬 朴正熙 指導者를 獨裁와 人權彈壓의 어두운 行跡까지 立體的으로 照明한 이 冊은 臺灣에서도 他山之石이 될 것”이라는 紹介文이 印象的인데, 그 外에 이 시리즈를 꼭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映畫 ‘南山의 部長들’이 開封했을 때 中國에서 評을 많이 썼더라고요. 正式 開封한 적은 없지만(웃음). 大部分 韓國은 이런 걸 映畫로 만들 수 있구나, 부럽다 같은 反應이 主流였어요. 世上은 進化하는데 權力은 退化하는 境遇가 많죠. 大明天地에 푸틴의 戰爭이나 金正恩의 存在 같은 거처럼요. 權力은 記者들의 永遠한 觀察거리이자 記者가 永遠히 存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기도 하죠. 누군가는 끊임없이 權力에 警鐘을 울리고 叱咤를 해야 하거든요. 그 때문에 中國人들이 언젠가 이 冊을 읽어주기를 期待하고 있어요. 北韓 사람들도요. 北韓에서 이 冊을 읽을 때가 北韓이 正常化되는 때가 아닐까요.”

    잘못된 權力 運用의 結果

    冊에는 “靑瓦臺 主人들의 黃昏은 悲慘했다”는 文章이 있습니다. 悲慘하지 않은 黃昏을 위해 靑瓦臺 主人이 된 사람 또는 主人이 되길 꿈꾸는 이에게 時代의 觀察者로서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過渡期 때 大統領을 한 이들을 除外하면 只今까지 10名인데, 7名의 人生이 悲慘했어요. 客地에서 죽거나, 銃에 맞거나, 死刑宣告를 받는 等 말이죠. 靑瓦臺 집터가 좋지 않은 걸까요. 그건 巫俗 觀點이고, 저는 權力을 잘못 運用했기에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當代 最高 엘리트들이 關與했음에도 그런 結果가 나온 거죠. 世上은 鎭火해도 權力은 退行할 수 있다는 點을 銘心하고 權力者들의 悲慘한 말로에서 敎訓을 얻어야 합니다. 權力은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고 바보로 만들거든요.

    長斫을 도끼로 팰 때 결대로 도끼날을 넣으면 쫙 갈라지는 게 常識이고 公正입니다. 결대로 도끼질夏至 않고 옆쪽으로 자꾸 날을 집어넣으면 絶對 갈라지지 않죠. 國民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이니 답답한 거예요. 보이는 결대로 날을 집어넣는 게 權力 運用이고 政治人데, 後援會나 支持 勢力, 댓글 部隊 等이 곁다리에서 잘못된 方向으로 도끼질을 하다 보니 어긋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悲劇의 다음 走者가 되지 않으려면 銘心해야 할 部分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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