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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艦 建造는 高級 레스토랑 料理 過程과 닮았다|신동아

軍艦 建造는 高級 레스토랑 料理 過程과 닮았다

海戰의 勝負手 軍艦①

  • 정재민 防衛事業廳 統合事業管理팀長, 作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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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入力 2020-07-11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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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人類의 歷史를 바꾼 海戰(海戰)과 그 勝負의 열쇠가 된 軍艦을 紹介하는 連載物을 始作한다. 筆者 정재민은 軍艦 만드는 事業을 擔當하는 防衛事業廳의 統合事業管理팀長이다. 登壇 作家이자 前職 判事이기도 한 그가 卓越한 글솜씨와 銳利한 分析力을 더해 歷史의 물줄기를 바꾼 海戰과 그때 使用된 軍艦의 祕密, 그리고 世界情勢와 國際政治에 對한 이야기를 興味津津하게 풀어낼 것이다.
    군함을 건조하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전경. [한진중공업 제공]

    軍艦을 建造하는 汗疹重工業 영도造船所 前景. [한진중공업 提供]

    海戰과 軍艦 이야기를 本格的으로 하기 前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조금 紹介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무슨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으면 多少 巨創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簡單히 말해서 軍艦 만드는 일을 합니다”라고 答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의 移轉 職業을 아는 境遇에는 더더욱) 疑訝해하면서 “예에? 軍艦을 만들 줄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勿論 내가 造船所에서 作業服을 입고 船體를 鎔接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로 가로세로 線을 無數히 그리면서 設計圖面을 만들 줄도 모른다. 

    그럼에도 軍艦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하는 것은 陷穽 事業을 擔當하는 防衛事業廳 統合事業管理팀(IPT·Integrated Project Team) 팀長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事業’은 物件을 팔아 돈을 버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防衛事業’을 가리킨다. 防衛事業은 軍이 必要한 武器體系를 ‘獲得’하는 일을 말한다. 이것을 擔當하는 機關이 防衛事業廳(‘防衛産業靑’이 아니다)이다.

    大韓民國 武器 獲得 擔當者

    武器體系 硏究 開發 作業을 料理에 比喩한다면 레스토랑에는 防衛事業廳, 國防科學硏究所, 防産業體, 協力業體가 일한다. 손님은 그 武器體系를 使用할 軍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레스토랑은 顧客이 願하는 飮食을 맞춤型으로 만들어주는 원테이블 레스토랑에 가깝다. 顧客이 國內에 드문 正統 프랑스 料理나 近來 北유럽에서 流行한 最新 노르딕쿠진을 要求할 때가 많다. 이 境遇 國內에 材料, 레시피, 셰프가 없다면 外國에 나가서라도 求해 와야 한다. 그러면 돈과 時間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顧客이 注文 水準을 낮출 수도 있다. 이 레스토랑에서 만드는 것은 普通 처음 만들어보는 어려운 料理이기 때문에 調理 過程에서 豫想치 못한 일이 無數히 일어날 수 있다. 그때마다 레스토랑 사람들이 모여서 對策을 論議하고 材料, 양념, 소스, 火力 等을 調整한다. 

    統合事業管理팀長으로서 나는 따지자면 레스토랑 總支配人과 總括 셰프 사이 어느 地點에 있다. 나는 한두 달에 한 番씩 艦艇이 만들어지는 造船所를 찾아가 事業管理會議를 主宰한다. 이 會議에는 造船所의 各 部署 任職員, 軍艦에 들어갈 搭載裝備를 만드는 業體 職員, 軍艦을 使用할 海軍, 國防科學硏究所와 國防技術品質院, 防産技術센터의 陷穽 專門家들이 參席한다. 우리 팀에도 造船所에서 十數 年間 陷穽을 設計하던 엔지니어 出身 職員들이 있다. 나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는 過程에서 異見이 생기면 調律하고, 問題가 생기면 解決策을 提示하고, 스케줄 調整이 必要하면 上級者나 部處에 報告해 調整하고, 追加 豫算이 必要하면 國會나 企劃財政部에 가서 豫算을 따오는 일도 한다. 그 밖에 擔當 武器體系가 世界的으로 어떻게 發展하고 있고 未來에는 어떤 方向으로 가야 하는지 硏究하고, 外國에 우리 軍艦을 輸出할 方案을 찾고, 天文學的인 豫算을 國家經濟에 좀 더 도움이 되는 方向으로 執行하는 일도 한다.

    軍艦을 만드는 時間

    조선소에서 배를 용접하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지호영 기자]

    造船所에서 배를 鎔接하는 모습. 記事 內容과 直接 關聯 없음. [지호영 記者]

    事務室에서 會議가 끝나면 나는 造船所 야드(作業場)에 나가 우리가 만들고 있는 陷穽을 둘러본다. 노란 크레인이 구름을 찌를 듯 우뚝 서 있는 廣闊한 야드 위에는 組立 中인 鐵製 블록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마치 이탈리아 폼페이 遺跡 터 같다. 얼핏 系統 없이 어수선해 보이지만 야드 위 作業場 配置는 作業 效率을 極大化하는 方向으로 오랜 歲月에 걸쳐 施行錯誤를 거듭하면서 다듬어 온 것이다. 그래서 造船所의 야드 配置는 그 自體가 營業祕密이다. 



    파란 作業服을 입은 造船所 職員들이 블록을 둘러싸거나 블록에 달라붙어 作業에 沒頭해 있다. 各各의 블록은 鋼板을 자르고, 자른 鋼板을 굽혀 必要한 模樣으로 加工하는 節次를 거쳐 만든 것이다. 每달 올 때마다 이 블록들이 헬스場을 熱心히 다니는 사람 筋肉처럼 確然하게 커지고 단단해지는 것을 確認한다. 

    블록들이 完成되면 도크 안이나 物價 船臺 위에 받침(反目)을 깔고 그 위에 블록들을 레고처럼 組立한다. 이때 배의 가장 아래, 배의 脊椎에 該當하는 블록부터 쌓고 鎔接하는데 이를 龍骨据置(Keel Laying)라고 한다. 以後에는 선미부터 始作해서 選手를 向해 블록을 垂直으로 내리꽂은 다음(마치 도마 위에서 토막 낸 고등어 조각을 꼬리에서부터 다시 붙이듯이) 배 안에 들어갈 裝備들을 집어넣는다. 블록 조각이 組立돼 배의 模樣을 갖춰가는 現場을 보고 있으면 송아지가 황소가 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처럼, 병아리가 巨創한 벼슬을 單 닭이 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뿌듯하다. 그동안 造船所까지 먼 길을 오가고, 수많은 公文을 作成하고, 討議를 하고, 電話通話를 한 일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判事日 때는 말과 글로만 일했다. 法廷에서 오가는 말과 글은 過去의 特定 事件을 復元하기 爲한 것이다. 判決文을 쓴다는 것은 이런 말과 글을 材料로 ‘過去 事件’이라는 배를 乾燥하는 것이다. 이 배는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오로지 그것을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劇場 映寫機가 스크린에 비추는 畵面처럼 暫時 펼쳐졌다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 머릿속에 旣存에 뭐가 들었는지에 따라 다른 映像이 再生되곤 한다. 그러나 軍艦은 現場에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直接 타볼 수 있다. 그 模樣이 사람들 價値觀이나 利害關係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무엇인가를 해낸 것 같은 느낌, 뭔가가 남는 것 같은 느낌이 한결 鮮明하다. 

    블록 鎔接이 끝나고 배가 完成되면 배를 바다에 띄운다(진수). 以後 곧바로 배가 出發하는 것은 아니다. 各 船室의 인테리어나 配管 等 雜多한 工事(議長)를 하고, 試驗評價나 試運轉을 하고, 마감工事를 해야 비로소 軍艦이 完成돼 海軍에 引導된다. 軍에서 어떠한 軍艦을 만들어달라고 公式 要請한 時點부터 여기까지 普通 10年은 걸린다. 

    印度式을 마친 뒤 軍艦이 마침내 안壁(岸壁)을 박차고 바다를 向해 첫 出發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마치 아기가 子宮壁을 박차고 처음 世上으로 나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不安하면서도 가슴이 뭉클하다. 鐵과 플라스틱과 고무 같은 無生物 덩어리가 設計圖面에 따라 組立된 뒤 마치 生命을 附與받은 것처럼 스스로 움직인다는 것이, 關聯 科學技術 法則을 따지고 보면 當然한데도, 마치 손手巾이 비둘기로 變하는 魔術을 보는 것처럼 神奇하다. 

    배를 만드는 사람들은 이날을 ‘배를 시집보내는 날’이라고 한다. 東西洋을 莫論하고 배가 女性으로 取扱돼 왔고 배를 만드는 것이 마치 子息 낳고 키우는 것처럼 오래 걸리는 데다, 배가 故障 나서 修理해 달라고 ‘親庭’으로 돌아오는 일이 없기를 懇切히 바라기 때문이다.

    살라미스 海戰의 序幕

    기원전 490년경 벌어진 마라톤 전투를 형상화한 그림. [GettyImage]

    紀元前 490年頃 벌어진 마라톤 戰鬪를 形象化한 그림. [GettyImage]

    世界 4代 海戰이 무엇인지에 對해서는 異見이 없지 않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사이의 살라미스 海戰(紀元前 480), 유럽 同盟과 오스만투르크 사이의 레판토 海戰(1571), 英國과 스페인 사이의 칼레 海戰(1588), 英國과 프랑스 사이의 트라팔가르 海戰(1805) 中 세 가지를 꼽은 다음 나머지 하나는 自國 海戰을 追加하는 境遇가 많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李舜臣 將軍의 閑山島大捷(1592)을, 美國은 日本과 싸운 미드웨이 海戰(1942)을, 日本은 러시아 발틱艦隊와 싸운 쓰시마 海戰(1904)을 包含시킨다. 이 中 어느 해顚倒 重要하지 않은 것이 없다. 該當國의 運命을 갈랐을 뿐만 아니라 世界史의 물줄기를 틀어놓은 海戰들이다. 이 글은 여기 擧論된 7代 海戰을 時代順으로 모두 다루고자 한다. 

    가장 오래된 海戰의 記錄은 歷史學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페르시아 戰爭을 記錄한 ‘歷史’에 나온다. 大帝國 페르시아의 다리우스王은 自國 領土의 叛亂을 支援한 그리스를 征伐하려고 紀元前 490年頃 軍艦 600隻에 軍士 2萬 5000名을 태워 그리스 마라톤 海岸에 上陸시켰다. 이에 맞서 아테네의 밀티아데스 將軍은 當時 加用한 最大 兵力인 9000餘 名의 步兵을 이끌고 걸어서 마라톤 平原에 到着했다. 그러자 페르시아軍은 自國 軍隊를 두 갈래로 나눠 1萬5000名은 마라톤 平原에 남기고 1萬 名은 배에 태워 南쪽 바닷길을 돌아가 아테네로 進擊하도록 했다. 

    아테네군은 難處한 處地에 빠졌다. 마라톤 平原에서 싸우고 있으면 그사이 배를 타고 出發한 페르시아軍이 無防備 狀態인 아테네로 치고 들어갈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까지 와서 그냥 다시 아테네로 後退할 수도 없었다. 여기서 아테네군이 이들 두 牌의 페르시아 軍隊를 모두 막을 方法은 무엇이겠는가. 理論上으로는 마라톤 平原에 있는 페르시아軍을 재빨리 擊破한 다음 배를 탄 페르시아軍이 아테네 海岸에 到着하기 前 아테네性까지 뛰어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테네군이 마라톤 平原의 페르시아軍을 擊破하기도 어렵고 擊破한다 하더라도 오랜 時間이 걸릴 수 있다. 泄瀉 瞬息間에 페르시아軍을 擊破한다 하더라도 投球, 甲옷, 防牌로 重武裝한 아테네 중장步兵이 40餘 km 떨어진 아테네까지 서너 時間 안에 달려가야 했다. 

    그럼에도 當時 아테네군은 이 모든 것을 實際로 具現해내 페르시아軍을 물리쳤다. 마라톤 平原 戰鬪에서 페르시아軍 死亡者가 6400名인 反面, 그리스軍 死亡者는 192名이었다. 아테네의 大勝이었다. 當時 페이디피데스라는 傳令이 마라톤 平原에서 아테네까지 40km를 全速力으로 달려 勝戰譜를 알린 直後 숨을 거둔 것이 오늘날 마라톤 競技의 由來가 됐다고 알려졌다(그러나 事實 이 逸話는 잘못 傳해진 것이다. 페이디피데스는 페르시아軍이 侵攻했을 때 스파르타에 도움을 求하러 간 傳令으로 멀쩡하게 달려갔다가 거절당하고 멀쩡하게 돌아왔다). 當時 慘敗한 페르시아의 後裔 이란은 只今까지도 마라톤 競技를 하지 않는다(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때도 마라톤 競技는 없었다).

    마라톤 戰鬪와 그 後

    많은 아테네人이 勝利의 기쁨에 젖었지만 마라톤 戰爭에 參戰했던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렇지 않았다. 까딱했으면 아테네가 정복당할 뻔한 아찔한 狀況이었던 것이다. 그는 아테네 廣場에서 사람들에게 呼訴했다. “페르시아는 반드시 다시 侵攻해 옵니다, 페르시아를 막기 위해서는 海軍을 建設해서 먼바다에부터 막아야 합니다.” 當時 保守層은 反對했다. 그 代表 格인 아리스티데스는 마라톤 戰鬪에서처럼 그리스의 중장步兵만으로 페르시아軍을 물리칠 수 있다는 意見이었다. 마라톤의 大勝이 不過 10年 前인데 甲옷을 벗고 배를 타야 한다는 것을 쉽게 納得할 수 없던 것도 當然하다. 여기에는 階級 問題도 있었다. 중장步兵은 戰鬪裝備를 살 수 있는 富裕層 市民으로 構成된 反面, 海軍의 櫓잡이는 下層民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論爭 끝에 테미스토클레스가 多數를 說得하는 데 成功했고 아리스티데스는 陶片追放됐다. 마침 銀鑛이 發見돼(기원전 483) 海軍 建設에 必要한 財力도 뒷받침됐다. 이를 바탕으로 테미스토클레스는 짧은 期間에 軍船 200餘 隻을 乾燥해 海軍을 創設했다. 테미스토클레스의 豫想은 곧 的中했다. 다리우스王을 이어 페르시아의 王이 된 크세르크세스가 4年間의 切齒腐心 끝에 紀元前 480年 70餘萬 名의 軍隊와 4000餘 隻의 軍船 및 輸送船과 함께 그리스로 쳐들어온 것이다(군사 數가 16萬, 36萬 名이었다는 說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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