以後
(李
??
,
1694年
~
1761年
)는 朝鮮 後期의 文臣이며, 本貫은
沿岸
이다. 者는 後玉(厚玉), 號는 구옹(?翁).
領議政
이시백
의 5代孫으로 英祖 때
左議政
을 지냈지만, 思悼世子 原油 事件에 責任을 지고
領議政
이천보
,
右議政
민백상
과 同伴 自殺했다.
生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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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音步로 官職에 進出해서 牧師를 지내다가 以後 文科에 及第해 英祖의 寵愛로 湖南菌傳貰사 等을 지내고 承旨, 慶尙道觀察使, 湖南均勢史를 거쳐 大使間, 同知義禁府事에 이어
漢城府
右尹
,
京畿道
觀察使
를 거쳐
吏曹參判
을 지내고
兵曹判書
,
吏曹判書
를 지내다
右議政
을 거쳐
左議政
에 이르렀는데 思悼世子를 保護했지만, 思悼世子 平壤 原油事件이 터지며 世子를 제대로 輔弼하지 못한 責任을 지고 領議政, 右議政과 飮毒自殺을 했다.
김상로
,
홍봉한
,
神만
,
김약로
,
정석오
,
燼灰
,
이천보
,
민백상
과 가까웠다. 諡號는 정익(定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