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三星記事 削除 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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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星記事 削除 事件 은 〈 시사저널 〉 870號(2006年 6月 19日 發賣) 60쪽에서 62쪽 사이에 실리기로 되어 있었던 [1] "2人者 李鶴洙 의 힘, 너무 세졌다"는 記事를 쓴 이철현 記者가 2006年 6月 15日 三星에 確認 取材를 한 다음 三星 側으로부터 電話를 받은 금창태 <시사저널> 社長이 이 記者를 불러 李鶴洙 副社長과의 親分關係를 들며 記事를 뺄 것을 指示했으나 이 記者를 비롯해 編輯局長, 取材總括部長 等은 金 社長의 記事 削除 要求를 拒否했고 17日 새벽 金 社長은 印刷所에 直接 나가 該當 記事를 三星 廣告로 代替한 事件이다. [2]

經過 [ 編輯 ]

2006年 [ 編輯 ]

  • 6. 16 시사저널 經營陣, 深夜에 印刷所에서 三星 李鶴洙 副會長 關聯 記事 削除, 記者들, 編輯權 鬪爭 始作
  • 6. 29 시사저널 記者들을 主軸으로 한 時事저널 勞動組合 出帆
  • 10.12 市民團體와 言論 有關 團體로 構成된 ‘시사저널 正常化를 위한 共同對策위’ 出帆
  • 10.16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發足
  • 12.15 시사저널 勞動組合 團體協商 最終 決裂

2007年 [ 編輯 ]

  • 1.5 시사저널 勞動組合, 첫 罷業 (하루 한時 罷業)
  • 1.8 經營陣, 記者들 이름 빠진 시사저널 第899號 發行
  • 1.11 시사저널 勞組, 午後 1時부터 全面 罷業 突入
  • 1.22 經營陣, 午前 11時께 시사저널 勞組에 電話로 職場 閉鎖 通報
  • 1.25 시사저널 共對委 記者會見 開催
  • 5.16 시사저널 勞使 交涉 決裂
  • 6.18 勞組 委員長과 事務局長 無期限 斷食籠城 突入
  • 6.26 시사저널 勞動組合, 시사저널 訣別 記者會見
  • 7.2 讖言론實踐示唆記者團 出帆 및 新媒體 創刊 宣布式
  • 7.6 罷業 記者 22名과 操業 職員 6名, 會社에 辭表 提出

2012年 [ 編輯 ]

  • 9.27 三星그룹 記事 削除 事件으로 觸發된 이른바 ‘시사저널 事態’와 關聯해 武器正直 等의 重懲戒를 받았던 記者들이 懲戒無效確認 訴訟에서 最終 勝訴 [3]

事件의 餘波 [ 編輯 ]

이 事件을 契機로 記者들이 編輯權과 關聯된 鬪爭을 벌인 것으로, 記者들의 勞動組合 出帆 罷業이 이어졌으며, 1年後 勞動組合 參與 記者들이 退社하여 《 示唆IN 》을 만들게 되는 契機가 되었다. [4] 總 24名의 記者 中 3名을 除外한 21名의 記者가 參與했는데 시사저널에 남았던 記者는 김재태, 소종섭이다. 當時 問題의 記事를 作成했던 이철현 記者는 시사저널을 떠났고 時事人에도 合流하지 않았다. 自己 記事 탓에 벌어진 罷業 事態로 會社가 쪼개지는 狀況에서 그는 時事저널 殘留와 時事人 合流 모두를 抛棄하고 言論界를 떠났다. 그는 退職 後 3個月 뒤 美國系 不動産서비스 業體에 就職해 美國 뉴저지로 떠났다. 그는 2年 뒤 시사저널 經濟팀長으로 復歸했다.

參考 [ 編輯 ]

  1. 三星 李鶴洙 副會長 記事 削除 事件과 그 後 ,《프레시안》(2006-06-29)
  2. <시사저널> 事態 1年, 問題를 키운 '傍觀者들' 《프레시안》(2007-06-15)
  3. 김고은. 大法 “‘시사저널 事態’ 記者 懲戒 無效” [ 깨진 링크 ( 過去 內容 찾기 )] . 韓國記者協會. 2012年 9月 27日.
  4. 示唆IN이 創刊되기까지 걸어온 길 Archived 2011年 10月 15日 - 웨이백 머신 《시사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