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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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의 (李昌誼, 1704年 ~ 1772年)는 朝鮮 後期의 文臣이며, 英祖 때 左議政을 지냈다. 김상복 , 김상철 , 한익모 , 김양택 , 神만 , 燼灰 , 홍봉한 , 홍인한 等과 蕩平黨 勢力의 主要人物이었다. 本貫은 全州(全州). 字는 成方(聖方), 諡號는 익헌(翼獻)이다.

生涯 [ 編輯 ]

英祖 때 文科에 及第했고 說書, 地平, 정언, 文學, 副修撰을 지내고 正言, 地平, 敎理를 거쳐 毒韻어사와 北關御史로 나가 民情을 다스렸고, 副校理, 兼司書, 副修撰, 修撰, 檢詳을 거쳐 承旨로 堂上官에 오른다. 以後 大司諫 으로 있다가 忠淸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가서 민정을 다스렸고 以後 大司諫 , 兵曹參判 을 거쳐 全羅道觀察使로 다시 外職에 나가 民情을 다스린 뒤 刑曹參判 , 禮曹參判 等을 지내고 好調參判 을 거쳐 都承旨 가 되었다.

戶曹判書 로 昇進해 製造를 겸하고, 戶曹判書 , 兵曹判書 를 하며 禁衛大將을 겸한다. 以後 兵曹判書 로 있다가 光州留守로 外職에 나갔고, 左參贊 , 判義禁府事 , 吏曹判書 를 하며 山陵都監製造로 있다가 京畿道觀察使로 外職에 나가 다시 民情을 다스리고, 左賓客으로 있다가 吏曹判書 , 右參贊 에 이어 咸鏡道觀察使로 外職에 다시 나갔다.

禮曹判書 , 左參贊 에 이어서 판돈녕府使로 있다가 以後 兵曹判書 로 左賓客을 겸하고 兵曹判書 로 있다가 판돈녕府使로 다시 물러났다가 知經筵事로 禮曹判書 , 戶曹判書 를 한 뒤 右議政 이 되고 藥房都提調를 겸했다. 以後 判中樞府事로 轉職되었다가 以後 左議政 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