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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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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윤 (董允, ? ~ 246年 )은 蜀漢 의 官僚로, 는 休소(休昭)이며 南軍 지강현(枝江縣) 사람이다. 蜀漢의 將軍中郞將(掌軍中郞將) 童話 의 아들로, 報國將軍·皇門侍郞을 歷任했으며, 諸葛亮 · 장완 · 비의 와 함께 史上 (四相)이라 불렸다.

倍잠 (裴潛)은 동윤은 有線 (劉禪)李 蜀漢의 皇太子(皇太子)가 되었을 때 太子사인(太子舍人)이 되었으며 有線(劉禪)李 皇帝에 卽位하자 皇門侍郞(黃門侍郞)李 되어 諸葛亮 (諸葛亮)의 信任을 받았다고 評했다.

生涯 [ 編輯 ]

매우 謙遜하고 公正한 性品을 지녔다. [1] 劉備 (劉備)가 太子 有線 (劉禪)을 세울 때에 太子의 사인으로 뽑혀 蜀漢의 官僚가 되었고, 有線이 卽位하자 皇門侍郞으로 昇進하였다. 諸葛亮 이 北伐에 나설 때에 省都에서 市中 兼 號墳中郞將으로서 蜀漢의 近衛兵을 總括하였다. 장완 이 病死하자 그의 뒤를 이어 鏃의 全權을 이어받았으나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病으로 죽었다. 동윤이 살아있었을 적엔 宦官 황호 (黃皓)도 함부로 설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有線이 執權하는 동안 有線을 補佐하며 蜀漢을 훌륭하게 다스렸고 내政敵인 側面에서 亦是 많은 業績을 남겼다. 有線이 그다지 뛰어난 能力을 지닌 사람이 아님에도 不拘하고 42年 동안이나 執權할 수 있었던 것은 동윤이 補佐를 훌륭하게 해줬기 때문이였다.

장완 事後에 비의 (費?)를 代身하여 國務를 總括했다. 장완 生存 當時에 동윤은 非意의 業務에 對한 熱情이 疏忽한 것에 對하여 批判했었다. 그러나 장완 事後에 尙書令 (尙書令)에 오르자 체 두 달이 안되어서 "이렇게까지 사람의 能力이 差異가 나는구나."라며 恨歎했다고 한다. '동윤은 비의만큼은 못했다.' 하지만 그의 平素 性格 때문에 內政敵인 側面에서 安定的인 面을 維持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동윤의 親族 關係 [ 編輯 ]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桐留馬振動如前(董劉馬陳董呂傳)

外部 링크 [ 編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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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任
비의
蜀漢 尙書令
244年 ~ 246年
後任
餘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