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욱 (西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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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 (荀勖, ? ~ 289年 )은 中國 三國時代 西進 時代의 官僚로, 公證 (公曾) [1] 또는 功勞 (公魯) [2] 이며, 醴酒 永川郡 詠吟縣(潁陰縣) 사람이다. 어머니는 宗會 의 누이이다.

生涯 [ 編輯 ]

位(魏)나라의 臣下였으나, 司馬所 의 側近이 되어 王位 簒奪 計劃에 協助하였다.

263年 , 司馬所 蜀漢 을 攻掠할 때 大將을 누구로 삼을 것인지 묻자 等愛 宗會 를 薦擧하였다. 265年 , 司馬炎 이 皇帝가 되었을 때(無題) 가충 · 王鍼 · 良好 · 排水 等과 함께 中心 役割을 맡았으며, 無題의 寵愛를 받았다. 良好 동오 를 征伐할 것을 主張하자 가충 과 함께 이에 反對하였다. 또한 眞意 制度인 〈 太始律令 〉(泰始律令)의 制定에 關與하는 等 武帝의 政治에 貢獻하였다. 同僚 長靴 진수 의 才能을 높이 評價하여 그를 승진시킬 것을 武帝에게 상주하였을 때, 진수 가 著述한 《魏志》(魏志)의 內容에 不滿을 품고 武帝에게 讒言하여 진수 를 閑職으로 내쫓았다. 또한 音樂에도 造詣가 있었던 순욱은 音律에 對해 阮咸 과 論爭을 벌였는데, 阮咸 의 相對가 되지 못하자 이에 不滿을 품어 阮咸 도 閑職으로 내쫓았다.

以後에도 無題의 最側近으로 重用되었으나, 倨慢한 態度 等으로 인하여 結局 無題의 寵愛를 잃어 相서(尙書)로 昇進하고도 政治的으로 疏外되었다. 마지막에는 儀同三司(儀同三司 : 三公 다음가는 벼슬)의 待遇를 받았으나 政治 一線에서 疏外되어 失意에 빠져 쓰러졌고, 289年에 죽었다.

評價 [ 編輯 ]

靜寂에 對한 讖言과, 武帝에게 阿諂한 것 等으로 인하여 《 陳書 》에서는 凶神(凶臣)으로 描寫되어있다.

家計 [ 編輯 ]

關聯 人物 [ 編輯 ]

順心  順延  순욱(荀彧)  순유  純黃

같이 보기 [ 編輯 ]

各州 [ 編輯 ]

  1. 房玄齡 , 《 陳書 》 卷39
  2. 純白瓷 (荀伯子), 《荀氏家電》(荀氏家傳)[ 異邦 (李昉), 《 太平御覽 》 卷385에 認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