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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年 11月
)
|
순욱
(荀勖, ? ~
289年
)은
中國
三國時代
位
와
西進
時代의 官僚로,
者
는
公證
(公曾)
[1]
또는
功勞
(公魯)
[2]
이며,
醴酒
永川郡
詠吟縣(潁陰縣) 사람이다. 어머니는
宗會
의 누이이다.
生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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位(魏)나라의 臣下였으나,
司馬所
의 側近이 되어 王位 簒奪 計劃에 協助하였다.
263年
,
司馬所
가
蜀漢
을 攻掠할 때 大將을 누구로 삼을 것인지 묻자
等愛
와
宗會
를 薦擧하였다.
265年
,
司馬炎
이 皇帝가 되었을 때(無題)
가충
·
王鍼
·
良好
·
排水
等과 함께 中心 役割을 맡았으며, 無題의 寵愛를 받았다.
良好
가
동오
를 征伐할 것을 主張하자
가충
과 함께 이에 反對하였다. 또한 眞意 制度인 〈
太始律令
〉(泰始律令)의 制定에 關與하는 等 武帝의 政治에 貢獻하였다. 同僚
長靴
가
진수
의 才能을 높이 評價하여 그를 승진시킬 것을 武帝에게 상주하였을 때,
진수
가 著述한 《魏志》(魏志)의 內容에 不滿을 품고 武帝에게 讒言하여
진수
를 閑職으로 내쫓았다. 또한 音樂에도 造詣가 있었던 순욱은 音律에 對해
阮咸
과 論爭을 벌였는데,
阮咸
의 相對가 되지 못하자 이에 不滿을 품어
阮咸
도 閑職으로 내쫓았다.
以後에도 無題의 最側近으로 重用되었으나, 倨慢한 態度 等으로 인하여 結局 無題의 寵愛를 잃어 相서(尙書)로 昇進하고도 政治的으로 疏外되었다. 마지막에는 儀同三司(儀同三司 : 三公 다음가는 벼슬)의 待遇를 받았으나 政治 一線에서 疏外되어 失意에 빠져 쓰러졌고, 289年에 죽었다.
評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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靜寂에 對한 讖言과, 武帝에게 阿諂한 것 等으로 인하여 《
陳書
》에서는 凶神(凶臣)으로 描寫되어있다.
家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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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聯 人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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順心
順延
순욱(荀彧)
순유
純黃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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各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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