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目標에 壓倒돼 試圖조차 하지 않는다.②남의 勝利는 나의 敗北로 느껴진다.③새로운 挑戰을 하려는 原動力이 없다.위의 세 가지 項目 中 讀者 여러분은 몇 가지에 該當하시나요? 全部 다 該當한다고 自責할 必要는 없습니다. 韓國에서 나고 자랐다면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같은 目標를 向해 競走馬처럼 달리는 것에 익숙해졌을 테니까요. (저를 包含해서요.)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것에 對한 두려움을 果敢히 내던진 이가 있습니다. 그는 韓國살이 14年 次 放送人 타일러 라쉬(36)입니다. ‘非正常會談’에 나온 ‘大寒美國人’, 9個 國語가 可能한 ‘腦섹男’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를 한 單語로 定義하긴 힘듭니다. 碩士 過程 大學院生으로 韓國에 온 그의 職銜은 放送人, 作家, 英語 講師, 環境運動家, 에이전시 代表, 한글 菓子 事業家로 끊임없이 바뀌고 있습니다. 安定과 認定을 바랐다면 擇하지 않았을 길입니다.그는 어떻게 남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까요? 答은 ‘實驗’에 있습니다. 巨創한 挑戰보다 當場 實行할 수 있는 最小 單位의 實驗을 해 보는 것이 慣性을 깨는 첫걸음이라는 게 그의 說明입니다. 그의 머릿속 實驗室은 每日 바쁘게 돌아갑니다. 아티스트와 會社의 收益 配分率이 9代 1人 에이전시 ‘웨이브 엔터테인먼트’의 創業, 韓國人도 만든 적 없는 한글菓子 出市…. 모두 머릿속 實驗室에서 작게 始作한 아이디어였습니다. ※인터뷰는 타일러가 放送 等을 통해 선보였던 그의 獨特한 韓國語 表現 스타일을 最大限 살렸습니다.―한국에 온 지 14年 茶가 되셨어요. 어쩌다 韓國에 오래 눌러앉게 되신 건가요?3년 程度 있다 가려고 했어요. 元來 人生은 計劃대로 되지 않잖아요. 學校를 다니다 ‘非正常會談’이란 프로그램에 出演하며 放送을 始作했고, 創業 等 여러 일을 하게 되면서 돌이킬 수 없는 段階까지 왔네요. 3年 前 領主權도 取得했고요. “韓國에서 繼續 살 거냐”는 質問을 많이 받는데요, 最終 定着地라는 게 있을까요? 유럽에서 創業할 수도, 발리에서 쇼핑몰을 차릴 수도 있는 時代잖아요.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어요.―미국에선 外交官을 꿈꾸셨다고요? 大學 時節 外交官이 꿈이었어요. 外交官 試驗에 支援했고, 어렵게 마지막 關門인 3次까지 갔는데 아슬아슬한 點數 差異로 떨어졌어요. 不合格 事由를 알려주는데 그 理由가 荒唐했어요. ‘經歷이 너무 不足하다’는 것이었죠. 전 어렸고, 大學 卒業도 안 한 狀態라 經歷이 없을 수밖에요. 納得할 수 없는 事由로 落榜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습니다. ‘남이 定한 길대로 가는 方式에는 내가 統制할 수 없는 變數가 宏壯히 크다.’ 他人의 基準에 맞추면서 結果도 保障받지 못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나만의 길을 開拓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外交官 試驗 落榜은 그에게 뜻밖의 膳物을 안겼습니다. 내가 眞正 願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機會가 된 겁니다. ‘내 삶의 選擇權과 主導權을 갖고 싶다’는 確信을 갖게 된 그는 本格的인 ‘實驗’을 始作합니다. 누가 시켜서, 남들이 좋다고 해서가 아니라 내 안에 들끓는 好奇心과 熱情이 가리키는 대로 가보기로 합니다. 2011年 美國 國務部 奬學生으로 韓國에 와 서울대 外交學 碩士 課程을 밟던 外交학도는 變化를 擇했습니다.‘도전’하지 마세요. 當場 實行 可能한 最少 規模의 ‘實驗’을 하세요. ―放送人, 環境運動家, 作家, 엔터테인먼트 代表, 한글菓子 事業까지… 大學院生으로 韓國에 와서 ‘N잡러’ 그 自體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元來 挑戰을 두려워하지 않는 性格인가요? ‘挑戰’이라고 하면 巨創한 目標를 設定해야 할 것 같잖아요. 前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이걸 實行할 수 있는 最小限의 行爲 規模가 뭘까?’를 가장 먼저 생각합니다. 始作부터 巨創한 目標를 잡으면 그 規模에 壓倒돼 抛棄하거나, 時間과 費用이 많이 投入돼서 非效率的이죠. 글을 쓰고 싶다고 ‘冊을 내자’거나, 創業을 하고 싶다고 ‘10億 원을 投資받자’고 마음먹을 必要가 있을까요? 最小 單位의 實驗을 基準으로 보면,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어요.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內面에서 궁금한 것을 꺼내 實驗해나가는 過程 自體가 삶의 樂이에요. ―韓國 社會에선 雰圍氣나 여러 狀況上 最小限의 實驗을 試圖하기 어려운데요.한국 社會의 劃一性이 根本的 原因 같아요. 進路, 投資, 甚至於 創業에도 틀이 있고, 그걸 벗어나면 危險하다는 恐怖에 사로잡혀요. 한 가지 結果物을 向해 모두 달려가니까요. ‘남이 이긴 바는 내가 진 바’가 돼요. 大部分의 사람이 社會가 定한 ‘올바른 길’로 가려 하기 때문에, 그 領域은 레드오션을 넘어 아예 낄 틈조차 없는 그런 바다가 돼 버려요. 死角地帶를 바라봐야 機會가 생깁니다. 블루오션을 봐야 한다고 하는데요. 그러면 普通 우리가 ‘어떤 걸 더 배워야 할까요?’라고 되물어요. 나한테 없는 能力을 取得해야 블루오션을 開拓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덧붙이기의 問題가 아닙니다. 觀點을 더하는 게 아니라 旣存 觀點을 깨뜨려야 해요. 不動産을 例로 들어 볼게요. 平生 일해도 貸出 없인 집을 못 살 程度로 韓國 不動産 市場이 어려운데, 굳이 韓國에서 집을 사야 하나요? 日本 나가사키의 落後된 住宅이 5000萬 원 程度에 去來된대요. 그걸 親舊들과 돈을 모아 사서 에어비앤비로 運營할 수도 있고, 老後가 苦悶이라면 隱退 移民 制度가 잘 갖춰진 말레이시아로 가도 돼요.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으면 結局 레드오션밖에 안 보입니다. 스스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봐야 해요. ―말처럼 쉬운 건 아닌 것 같은데요. 블루오션으로 눈을 돌리고, 뭐든 實驗해보는 性格을 어떻게 갖게 됐는지 궁금해요. 幼年 時節에 받은 ‘學習者 中心 敎育’의 影響이 커요. 버몬트에서 다닌 學校에선 試驗 代身 自己가 하고 싶은 것을 直接 企劃해 課題를 하도록 했어요. 첼로, 數學, 뜨개질을 좋아하던 제 親舊는 모차르트의 여러 交響曲을 數學的으로 分析해 패턴을 만든 뒤, 패턴에 맞춰 原緞을 짰어요. 뭘 하고 싶을 때 ‘이래서 안 돼’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워요. 또 그냥 할 수밖에 없는 立場이 됐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은 特異하거나, 남들이 안 해 본 일이라 누군가가 方向을 提示해줄 수 없거든요. 제가 0부터 만들어 나가야 해요. 낄 틈도 없는 레드오션을 果敢히 버리세요. 블루오션으로 果敢히 눈을 돌려라. 그 바다에 뛰어드는 代身 발부터 적셔 봐라. 타일러는 두 段階를 거쳐 새로운 길로 들어섭니다. ‘물이 너무 차가운 건 아닐까? 다리도 넣어도 될까?’ 조금씩 變數를 調整해보면서 말이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블루오션에서 자유롭게 游泳하고 있는 自身을 發見할 수 있습니다. 타일러가 벨기에 出身 放送人 줄리안 퀸타르트와 함께 만든 에이전시 웨이브 엔터테인먼트도 그렇게 始作됐습니다. 外國人이 代表인 엔터테인먼트 業體는 이곳이 처음이라고 합니다.―지난해 3月 웨이브 엔터를 만드셨어요. 그 契機가 궁금합니다. 2014年 放送을 始作했는데, 涉外 問議가 SNS, 카톡, 知人, 이메일 等 다양한 經路로 들어왔어요. 매니저가 自體的으로 拒絶하는 境遇도 있었고, 仔細한 情報를 몰라 決定하기 어려운 境遇도 많았어요. 답답함을 느껴서 2017年에 直接 스케줄 管理 시스템을 開發했어요. 시스템으로 涉外 要請을 받는 ‘窓口 一元化’를 한 거죠. ‘일이 줄지 않을까’라는 周邊 憂慮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 反對였어요. 漏落되는 涉外가 없었거든요. 더 큰 長點은 이 일에 관여된 모든 사람이 시스템을 통해 涉外가 들어온 콘텐츠의 內容, 場所, 出演料, 日程까지 同一한 情報를 共有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2022年 비슷한 苦悶을 하던 줄리안에게 이 시스템을 適用해봤고, 結果는 成功的이었어요. 여러 實驗 끝에 시스템이 效果的이란 確信이 생겨 創業했습니다.―섭외하는 사람 立場에서도 便利한 시스템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涉外하고 싶은데 連絡處가 없거나, 이메일을 보내놓고 答이 올 때까지 無期限 기다리는 境遇 많잖아요. 전 이게 꼭 限定版 戰略 같아요. 製品을 만들었는데 어디서 팔지는 안 알려주는 거죠. 아티스트를 涉外할 수 있는 裝置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합니다. 홈페이지에 있는 樣式에 內容을 넣어 提出하면 저희와 連絡을 주고받을 수 있어요. 모든 이의 涉外 要請이 接受되고, 모두에게 答狀이 갑니다. ―아티스트가 涉外 內容을 直接 確認하고 日程을 選擇한다는 點도 新鮮했습니다. 우리 會社에선 아티스트가 王입니다. 아티스트에게 알 權利와 決定權을 穩全히 줍니다. 自身에게 들어오는 모든 涉外 內容을 實時間으로 確認하고, 本人이 決定해요. 代表 立場에서 좋은 機會라고 생각해도 意見만 줄 뿐, 絶對 强要하진 않습니다. 單 責任도 따릅니다. 들어오는 涉外를 通해 ‘市場이 나를 이렇게 바라보고 있구나’를 理解하고, 어떻게 發展할 수 있을지 苦悶해야 하죠. 아티스트와 會社의 收益도 9代 1입니다. 普通 6代4, 7代3人 것과는 다르죠. 매니지먼트와 에이전시, 企劃社 役割을 모두 하는 韓國 엔터테인먼트 業體와는 다르게 에이전시 役割만 하기 때문에 이런 分配가 可能합니다.그의 實驗室은 每日같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지난해 10月엔 ‘한글菓子’를 出市했습니다. ‘알파벳 菓子는 많은데 한글菓子는 왜 없지?’라는 궁금症이 發端이었죠. 쉬지 않고 일을 벌이는 原動力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안 하고 어떻게 넘어가느냐’고 反問했습니다. 그를 움직이는 건 巨創한 原動力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어떻게 꽃 피울지 궁금해하는 ‘好奇心’입니다.내 아이디어를 實行할 사람은 나 뿐입니다. 내가 아니면 아이디어는 죽습니다.―지난해 演藝企劃社를 꾸린 지 얼마 안 돼서 또 ‘한글菓子’라는 새로운 挑戰을 하셨습니다.영어 學習 프로그램 ‘Speak Up Meet Up’을 進行하던 中 參加者들에게 줄 商品이 必要했어요. 알파벳 菓子를 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문득 ‘한글菓子는 있나?’라는 궁금症이 들었어요. 인터넷에 檢索해보니 없는 거예요! 너무나 衝擊이었어요. 印度人 親舊 니디에게 連絡해 한글菓子가 없다고 하니, “말도 안 돼!”라며 놀라더군요. 그렇게 둘이 같이 한글菓子를 만들기로 했어요. 8月 집 부엌에서 만들어보기 始作했고, 10月 9日 한글날에 商品을 냈어요. 檀君神話를 모티브로 해 쑥맛, 마늘맛을 냈고, 最近 쌀 맛, 초콜릿 맛을 追加했습니다. ―美國人이 만든 한글菓子라는 게 新鮮합니다. 韓國人도 關心을 갖지 않았던 거잖아요. 제가 한글菓子를 만들려고 한다니까 “韓國人들 關心 없을 것 같은데?”라는 피드백을 준 사람도 있어요. 한글博物館까지 만든 나라가 한글菓子에 關心이 없다고요? 그 말을 들었을 때 正말 衝擊받았어요. 한글菓子가 없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活用할 수 있는 方法이 無窮無盡해요. 알파벳 菓子를 먹으면서 英語 工夫를 했듯 한글 敎育에 活用할 수 있고, 海外 親舊들한테 膳物 주기도 좋고요. 最近 한 와인바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고 한글 菓子를 利用해 주어진 單語를 빨리 만드는 게임을 進行했어요. 게임이 10時에 끝났는데 와인바 社長님이 職員들이랑 새벽 3時까지 했대요. 한글菓子를 갖고 3時까지 놀았다는 말에 幸福했습니다.―새로운 것에 끊임없이 挑戰하는 原動力이 뭔가요?‘이 아이디어가 實現되면 어떨까?’라는 궁금症이 죽도록 커요. ‘이게 可能할까?’ 라는 否定的 感情에 壓倒돼 抛棄하는 境遇가 많은데, 그 感情을 이겨내고 ‘한 番 해보자’라는 마음을 먹어야 해요. 한番 해 보면, 내 觀點에서만 보이는 아이디어를 試圖하는 것에 中毒돼요. 이걸 안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오거든요. 이 아이디어를 責任지는 사람은 나 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안하면 아이디어는 죽잖아요. 世上에 태어나서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 可能性을 열어주고 싶어요. 아침 食事가 왜 英語로 Breakfast인지 아시나요? Fast는 ‘禁食’이란 뜻입니다. Break Fast는 ‘禁食을 깬다’는 意味죠. BreakFirst는 이른 아침 當身의 虛飢를 가장 먼저 깨주는 뉴스레터입니다. 初心을 잊은 當身, 慣性에 埋沒된 當身을 위해 多樣한 業界에서 ‘처음’을 만들어낸 이들을 만납니다.매주 月曜日 午前 7時 30分 發送되는 ‘慣性을 깨는 1分, BreakFirst’ 뉴스레터를 購讀하고 倦怠와 졸음을 靈感과 革新으로 채워 보세요. 購讀者에게만 公開된 映像 인터뷰도 確認할 수 있습니다.▶뉴스레터 購讀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p0=70010000001050&m=list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