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年 美國 NBC 아카펠라 오디션 프로그램 ‘더 싱-오프’ 시즌3 舞臺에 스무 살을 갓 넘긴, 앳된 얼굴들이 登場했다. 이들은 텍사스에서 幼年時節부터 함께 어울리던 바리톤의 스캇 好剩, 카운터 테너의 미치 그래시, 소프라노의 커스틴 멀도나도와, 이들이 프로그램 參加를 위해 迎入한 베이스의 아비 케플런, 비트朴犀 케빈 올壘卒라. 핑크色 티셔츠 차림으로 케이티 페리의 ‘ET’를 부르며 語塞한 춤사위를 선보이던 이들은 想像이나 했을까. 自身들이 그래미 트로피를 세 番 들어 올리고 빌보드 메인차트인 ‘빌보드 200’ 1位를 차지한 뒤, 유튜브 購讀者 2000萬 名을 거느린 世界的인 팝 스타가 될 거라고. 이들이 프랑스 電子音樂 듀오 다프트 펑크의 曲을 混合한 ‘Daft Funk’ 유튜브 映像 照會數는 3億6500萬 回, 11世紀부터 2010年代 曲들을 부른 映像 ‘Evolution of music’ 照會數는 1億4200萬 回를 넘는다. 신보 ‘Holidays Around the World’를 發賣하고 世界투어 ‘Pentatonix: A Christmas Spectacular!’에 나선 好잉과, 케플런의 脫退 後 2017年 合流한 베이스의 맷 샐리를 12日 畫像으로 만났다. 검정色과 灰色 체크 무늬 자켓을 걸친 號잉, 검정色 자켓 차림의 샐리는 11月 17日 오클랜드에서 始作해 하루걸러 하루 公演을 하는 强行軍에도 不拘하고 “오늘 저녁 있을 내쉬빌 公演은 이番 투어에서 가장 規模가 크다”며 신나 했다. 好剩은 “韓國에서 했던 公演은 내게 最高의 公演 中 하나”라며 “이番 투어에선 韓國을 가지 못했지만 곧 韓國 팬들을 만나고 싶다”고도 했다. 이들은 美國을 始作으로 來年 5月까지 世界투어를 이어간다. ● “팬데믹이 만든 國家間 障壁, 音樂으로 허물고 싶었다” 10月 28日 發賣된 새 앨범은 障壁을 허무는 試圖였다. 아시아系 女性 最初 토니상 受賞者인 필리핀 歌手 레아 살롱가를 비롯해 콩고 가스펠 歌手 그레이스 로크와, 中國 피아니스트 랑랑, 日本 비트朴犀 히카킨&세이킨 等과 協業했다. 아프로비트(西아프리카 傳統音樂에 재즈, 펑크 等이 混合된 音樂 장르)부터 가스펠, 라틴음악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코로나 19로 國家 間 移動이 자유롭지 못해 錄音 파일을 주고받는 方式으로 曲을 完成했다. “팬데믹으로 國家 間 障壁이 鞏固했던 時期에 全 世界 사람들이 함께 앨범을 만들며 그 障壁을 허물어보고 싶었습니다. 錄音 過程은 서로 다른 音樂과 文化, 그리고 各 文化圈 사람들이 連休를 즐기는 다양한 方法들에 對해 實驗을 하는 過程이기도 했습니다. 살롱가는 제 約婚者가 宏壯히 좋아하는 歌手라서 直接 필리핀에 가서 그女를 涉外했죠.” (好剩) 스무 살을 갓 넘긴 大學生 때 만났던 멤버들은 이제 누군가의 配偶者이자 父母가 됐다. 멀도度도는 올해 딸을 낳았고, 올壘卒라도 지난해 得女해 아빠가 됐다. 맷은 올해 1月 結婚했다. 家族들도 이들과 함께 투어 길에 올랐다.“아이들이 언제나 저희와 함께 합니다. 아이들과 寫眞을 찍고, 아이들이 꺄르륵 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투어를 다니죠. 이건 새로운 다이내믹이면서도 宏壯히 特別한 다이내믹이에요. 이런 일이 只今 이 時期에 벌어질 거라고는 想像하지 못했지만 人生의 이런 季節에 와 있는 건 正말 아름다워요.” (샐리) 家族들과 다 함께 투어버스에 몸을 싣고 美國 全域은 勿論 英國, 濠洲, 獨逸, 프랑스, 스위스, 체코, 日本, 싱가포르까지 大陸을 옮겨다니며 公演을 하는 스타가 된 펜타토닉스. 이들은 人氣 팝송들을 獨創的으로 編曲해 自身들의 것으로 消化했고, 일렉트로닉 장르를 椄木하는 斬新한 試圖로 아카펠라의 大衆化를 이뤄낸 그룹이 됐다. 好剩은 유튜브와 아카펠라의 붐, 멤버 간 케미를 成功要因으로 꼽았다.“유튜브가 아티스트를 선보이는 主된 媒體가 된 時代에 저희가 있었어요. 例를 들어 Gotye의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를 커버해 올리면 유튜브만으로 그 映像은 世界에서 입所聞을 탈 수 있게 됐죠. ‘글리’와 ‘避치 퍼펙트’, ‘싱 오프’의 成功으로 아카펠라가 宏壯한 르네상스를 맞은 것도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저희 멤버들이 한데 어우러진다는 點이에요. 우리가 音樂을 만들 때 자연스럽고 本能的이며 創意的인 에너지가 생겨나요. 只今도 如前히 ‘한 番 놀아볼까? 樂譜 없이 音樂을 만들어 볼까?’라며 저희의 뿌리로 돌아가려고 해요.” (好剩) ● “펜타토닉스는 ‘언더독’, 모든 障壁들을 부수고 뛰어들었다”“다섯 名이 스무 名의 목소리를 낸다”는 審査委員들의 極讚 속에 거머쥔 오디션 優勝 트로피, 2015年 두 番째 正規앨범 收錄曲 ‘Daft Punk’로 받았던 첫 番째 그래미賞, 2016年 스티비 원더와 가졌던 그래미 施賞式 데뷔 舞臺까지. 12年次 그룹 펜打토닉스에게 가장 重要한 瞬間은 언제였을까. “맷이 저희 그룹에 合流했던 날이 제겐 最高의 記憶이에요. 그때는 그룹이 激變하는 무서운 時間이었어요. 맷이 들어왔을 때 모든 게 完璧하게 調和를 이뤘고, 如前히 저희를 支持해주는 팬들이 있었어요. ‘그룹이 끝날 수도 있겠구나’에서 ‘오, 이게 새로운 始作일 수 있어’라고 생각이 바뀌는 瞬間이었죠. 아, 얼마 前 필라델피아 公演에서 觀衆들에게 비틀즈의 ‘헤이 주드’ 後斂句를 베이스, 테너, 알토로 가르치고 和音을 맞춰 부르도록 한 瞬間도 못 잊어요. 1萬2000名이 ‘나나나’를 떼唱하던 瞬間은 마치 映畫 같았어요.” (好剩)“팀에 合流한 뒤 처음 가진 토론토 公演을 絶對 못 잊어요. 그때 正말 緊張했는데, 팬들이 잘할 수 있다며 저를 應援했죠. 그 때 저희가 노래를 正말 잘 했어요. 뜻밖의 發見이었죠. ‘이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일이야’라고 생각한 瞬間이에요. 高等學校 때 펜打토닉스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平凡한 學生이 그룹의 一員이 된 거죠.” (샐리) 이들에게 音樂을 抛棄할 뻔한 瞬間도 있었다. 오디션 優勝 뒤 멤버 全員이 로스앤젤레스로 건너와 所屬社와 契約을 맺었지만 얼마 못가 葛藤으로 契約이 破棄됐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새 레이블을 찾아야 했고, 소니뮤직과 契約하기까지 유튜브에 커버曲 映像을 올리며 팬들을 끌어 모았다. 2017年 케플런의 脫退도 그룹에게는 解體 危機였다. “音樂은 제게 治癒이자 北極星과도 같습니다. 제가 오롯이 沒入할 수 있는 對象이죠. 그와 同時에 音樂은 사람들에게 解放區가 되고 즐거움을 줍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이 제게 目的意識을 심어줍니다. 그 두 가지 滿足感 때문에 音樂을 만드는 일을 絶對 그만둘 수 없어요.” (好剩)“제가 펜打토닉스를 사랑하는 理由는 우리가 ‘언더독’ 스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카펠라 장르에서 試圖한 적 없던 것에 挑戰하고, 모든 障壁들을 부수고 뛰어들었습니다. 文化에 이토록 큰 影響을 끼치고, 사람들에게 가닿는 그룹의 一員이라는 건 正말 멋져요.” (샐리)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