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詐欺 結婚, 10億 원의 빚… 그럼에도 낸시 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理由 [復讐者들]|東亞日報

詐欺 結婚, 10億 원의 빚… 그럼에도 낸시 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理由 [復讐者들]

  • 東亞日報
  • 入力 2023年 12月 16日 16時 00分


코멘트
〈복수자들〉에 출연한 낸시랭. 복수자들 캡처
〈復讐者들〉에 出演한 낸시랭. 復讐者들 캡처
고양이 人形을 어깨에 얹고 ‘키티 섹시 낸시 앙’을 외치는 潑剌한 女性이 있습니다. 이 文章만 보고도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팝 아티스트 낸시 랭입니다. 20年 前부터 各種 藝能 프로그램에 出演해온 그를 放送人으로 아는 이도 많지만 낸시 랭의 本業은 ‘팝 아티스트’입니다.

7年 前 詐欺 結婚 被害를 겪고 人生의 危機에 逢着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팝아트’라고 합니다. 家庭 暴力, 不法 撮影物 脅迫 等 누구보다 苛酷한 苦痛을 겪은 그가 全 世界 女性을 慰勞하는 ‘스칼렛’ 시리즈를 선보인 데에 이어 올여름엔 ‘스페이스 아트’를 主題로 個人展을 열었습니다. 삶의 苦痛을 藝術로 昇華해 살아갈 힘을 얻게 된 낸시 랭을 〈復讐者들〉李 만났습니다. 東亞日報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dKpwI2elMx0?si=AJk35xjIdXLZ09Cp )



우주 산업과 팝아트를 결합한 ‘스페이스 아트’를 선보인 낸시 랭. 복수자들 캡처
宇宙 産業과 팝아트를 結合한 ‘스페이스 아트’를 선보인 낸시 랭. 復讐者들 캡처
―2023年은 ‘팝아티스트’로서 바쁜 한 해였습니다.
“올여름 ‘스페이스 아트’를 主題로 展示會를 열었어요. 백남준 先生님이 비디오 아트를 創始했다면 낸시랭은 스페이스 아트를 創始하겠다는 目標로 野心차게 準備한 展示입니다. 누리號에 搭載된 큐브 衛星을 開發한 硏究팀을 이끈 韓國航空大 오현웅 敎授(航空宇宙 및 機械工學部)와 ‘나라 스페이스’ 박재필 代表와 協業韓 展示였어요.”

―‘스페이스 아트’는 낯선 장르인데요, 처음 着眼한 契機가 궁금합니다.
“말 그대로 宇宙와 팝아트를 結合한 藝術의 한 장르라고 생각해주심 돼요. 宇宙와 팝아트를 椄木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2年 前 누리號 1次 發射 失敗 때였어요. 宇宙 産業은 過去엔 國家가 主導하는 巨大한 프로젝트였잖아요.
하지만 最近엔 宇宙 産業이 漸漸 民間으로 넘어오고 있어요. 일론 머스크의 事例를 봐도 알 수 있죠. 國家라는 少數 權力이 占有했던 宇宙 技術을 漸漸 民間으로 넘어오는 現象이, 大衆的 이미지를 藝術의 領域으로 끌고 오는 ‘팝아트’ 精神科 맞닿아있다고 생각했어요.”

낸시랭의 시그니처 작품 ‘터부요기니’를 활용한 작품.  동아DB
낸시랭의 시그니처 作品 ‘터부療飢니’를 活用한 作品. 東亞DB
大衆的으로 널리 消費된 이미지를 借用해 藝術 作品으로 昇華하는 ‘팝아트’는 美國의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等으로 國內에 알려진 現代美術의 한 장르입니다. 홍익대에서 西洋畫를 專攻한 낸시랭이 專攻과 無關한 팝아트를 選擇한 건 그것이 大衆的이고 商業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藝術과 大衆, 商業은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합니다.

―大衆的이고 商業的인 藝術, 팝아트에 魅了된 理由는요?
“우리가 다 익숙하게 알고 있는 大衆的인 오브제를 活用해, 自身의 생각을 담아 作品으로 表現한 게 ‘팝아트’라는 장르예요. 이미 大衆들의 눈에 익은 어떤 이미지를 하나의 作品으로 탄생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商業的이고 가장 大衆的이죠. 그렇기에 모든 사람이 함께 共有하고 享有할 수 있어요. 팝 아트는 藝術 앞에서 階級과 階層, 性別과 나이 等의 境界를 허물어 줍니다. ‘그들만의 藝術’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藝術’을 志向하죠.”

낸시랭이 팝아티스트로서 첫발을 뗀 건 2003年입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當時 韓國 代表로 選定되지 못하자, 山 마르코 大聖堂 앞에서 빨간 속옷을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2006年 8月 KBS ‘人間劇場’에 出演하면서 本格的으로 放送活動을 竝行하는데요, 當時엔 演藝人이 아닌 一般人이 放送에 出演한 건 極히 드문 일이었습니다.

2003년 베이스 비엔날레에서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팝아티스트로 유명해진 낸시 랭의 과거.
2003年 베이스 비엔날레에서 破格的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팝아티스트로 有名해진 낸시 랭의 過去.
―只今이야 演藝人 아닌 一般人들도 放送에 많이 나오지만 2000年代 初盤 낸시랭이 처음 放送에 나왔을 때는 破格的이었어요.
“그때 辱을 엄청 많이 먹었어요. 當時만 해도 歌手, 俳優, 앵커, 개그맨 같은 사람만 텔레비전에 나왔거든요. 사람들은 演藝人도 아닌데 왜 放送에 나오냐면서 엄청난 辱과 惡플에 시달렸어요. 근데 只今은 보세요. 醫師, 辯護士, 甚至於 一般人들도 다 TV에 나오잖아요. 先驅者的인 무언가를 試圖했다고 생각해요. 처음이었기에 辱을 많이 먹었던 거죠.

그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生計 問題도 있었어요. 돈을 벌지 않으면 作品 活動을 할 수 없었죠. 放送을 한 건 돈을 벌기 위한 目的이기도 했어요.”

―20餘年間 26回의 個人展을 열었을 程度로 作品 活動을 꾸준히 하셨어요. 하지만 많은 이들이 낸시 랭을 藝術家 보다는 放送人, 口舌數로 알고 있어요.
“美國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한 有名한 말이 있어요. 그땐 아날로그, 黑白TV의 時代였는데요, ‘未來에는 누구나 15分 동안은 世界的으로 有名해질 것이다.’(1968년 展示 브로셔에 直接 쓴 文句) 앤디 워홀은 그 時代에 그런 慧眼을 가졌을 程度로 時代를 앞선 아티스트였어요. 근데 앤디 워홀의 人生을 보면 할리우드 스타級으로 파파라치, 스캔들, 口舌數, 話題를 몰고 다녔단 말이에요. 지나고 보면 저의 人生 軌跡도 비슷한 評價를 받을 거라 생각해요.”

―普通 作品 活動하실 때 令監은 어디에서 받나요.
“삶의 특정한 瞬間, 저의 內面 깊숙이 꽂힌 아이디어에 充實한 便이에요. 팝아트 作家라고 해서 팔릴 만한 作品만 하진 않아요. 저의 꿈, 想像力, 時代의 問題, 哲學…. 모든 게 令監이 될 수 있어요. 最近의 제가 ‘宇宙’에 꽂혀있는 것처럼요.”

팝 아티스트로 乘勝長驅하던 낸시랭에게 堪當하기 힘든 苦痛이 찾아온 적도 있습니다. 2017年 詐欺 結婚 被害를 當한 것인데요. 當時 낸시랭이 當한 詐欺 結婚 事件은 세간을 뜨겁게 달궜고 하루에도 100件 以上의 記事가 報道됐습니다. 이 일로 그에겐 마음의 傷處뿐 아니라 10億 원의 빚까지 생겼습니다다.

極端的인 選擇을 苦悶할 程度로 괴로웠다는 그가 다시 일어서게 된 것은 팝아트 德分이었습니다. 家庭 暴力, 不法 撮影物 流布 脅迫 等의 被害를 겪은 낸시 랭이 自身의 苦痛을 藝術로 昇華한 ‘스칼렛’ 시리즈를 2020年 선보인 겁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터키 이스탄불, 美國 마이애미, 싱가포르 等에서 展示를 열었습니다.

국내에서 열린 ‘스칼렛’시리즈 전시회에서의 낸시 랭
國內에서 열린 ‘스칼렛’시리즈 展示會에서의 낸시 랭
―‘스칼렛’ 시리즈에 담긴 意味가 궁금합니다.
“스칼렛은 彩度가 宏壯히 높은 빨간色을 뜻하는 말인데, 데미 무어가 主人公인 映畫 ‘스칼렛’이 있어요. 그 映畫가 우리나라에서 上映할 때 ‘朱紅글씨’로 飜譯됐어요. ‘낙인찍히다’는 意味죠. 映畫 속 主人公은 그럴 理由가 全혀 없는 女性인데 魔女사냥을 當하고 烙印이 찍힌단 말이에요. 제가 詐欺結婚과 여러 犯罪의 被害者가 되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몰아쳐 왔었어요. 그때의 전 極端的인 選擇을 考慮했을 程度로 暗澹한 苦痛 속에 있었거든요.

그때 처음 眞摯하게 苦悶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當한 일들, 저 혼자 當한 게 아니더라고요. 같은 苦痛을 겪은 全 世界 女性들을 떠올리며 作業했어요.”

―‘스칼렛’을 全 世界에 선보인 理由는요?
“各 나라의 文化와 法이 다르잖아요. 같은 狀況을 두고도 어떤 나라에선 加害者를 處罰하지만 어떤 나라에선 被害 女性에게 더 큰 罰을 주곤 해요. 各 나라의 文化, 慣習, 法이 달라서 옳다 그르다 말할 순 없지만 藝術로는 可能하다고 생각했어요. 全 世界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른 人種, 慣習, 文化를 가졌음에도 ‘이건 잘못된 것이다’라는 良心이란 게 있지 않을까. 그걸 건드리는 게 藝術의 役割일 거예요.
사람들이 저의 作品과 퍼포먼스를 통해 本人 스스로의 良心을 들여다보고 判斷하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스칼렛’은 제게 正말 重要한 作業이었어요. 제 人生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時期에 藝術이 있었기 때문에 克服할 수 있었고, 只今 여기 살아있을 수 있었어요.”

―作品을 통해 回復, 治癒를 經驗하신 거네요.
“사람이 極端的인 選擇을 하게 되는 理由가 너무 堪當하기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에만 埋沒된단 말이에요. 周邊에서는 가만 놔두질 않죠. 끝없는 苦痛 속에 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그런 選擇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게도 그런 時期가 있었어요. 多幸히 옆에서 節 붙잡아주고 도와준 고마운 知人이 있었기 때문에 只今 여기 살아있을 수 있었죠. 1秒가 100年처럼 너무 길게 느껴질 程度로 힘들었던 時期, 作品에 沒頭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10億원의 빚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作品 活動을 꾸준히 하고 계시거든요.
“正말 熱心히 살고 있는데 元金은 1원도 못 갚았어요. 每달 千萬 원 넘게 나가는 利子를 갚고 있어요. 제가 事業하는 사람도 아니고, 固定 收入이 없는 藝術家가 堪當하기 너무 버겁죠. 展示會에서 作品이 모두 팔려도, 그 돈을 제가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다 利子 갚는 데만 다 나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意欲이 꺾이는 時期가 있었어요.”

―只今은 克服하셨나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제가 쓰지도 않은 社債 利子 갚느라 6年, 7年을 살았는데 元金은 하나도 못 갚았잖아요. 作品이 잘 팔려도 幸福하지 않고 저는 써보지도 못하고 虛無하게 빼앗기니까…. 한동안은 너무 죽고 싶은 생각이 들 程度로 絶望的이었어요. 이게 언제 끝날까.

하지만 只今은 괜찮습니다. 肯定的으로 생각해보려고 해요. 元金은 한 푼도 못 갚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지난 6年間 每달 1000萬 원 以上의 돈을 벌었다는 뜻이잖아요. ‘낸시랭 正말 熱心히 살았다’ 이렇게 다독여주고 싶어요. 앞으로도 씩씩하게 살아갈 거예요.“

李지훈 記者 easyhoon@donga.com
김재희 記者 j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火나요
    0
  • 推薦해요

댓글 0

只今 뜨는 뉴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