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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렘브란트 夜間 巡察|新東亞

박상희의 美術科 마음 이야기

웃고 있는 렘브란트 夜間 巡察

렘브란트

  • 박상희 | 샤론精神健康硏究所 所長

    入力 2016-05-02 08:4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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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年 前 美國의 한 大學校에 房文學者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아이가 初等學校를 다니던 터라 美國 父母들과 이따금 交流했는데, 그때 美國은 基本的으로 個個人의 삶을 最優先으로 생각하는 個人主義 國家라는 點을 確然히 느꼈습니다. 프라이버시를 尊重하고 個人의 判斷과 選擇을 重視하는 方式이 깔끔하고 合理的으로 다가왔지만, 제겐 이런 個人主義的 人間關係가 虛空에 떠 있는 것처럼 多少 不安定하고 不便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共同體를 重視하는 韓國 文化 속에서 커왔기에 그럴 것입니다.

    傳統 社會가 共同體를 重視했다면, 近代社會는 共同體보다 個人을 더 重要하게 생각해왔습니다. 東洋보다, 美國이 包含된 西洋에서 個人主義 性向이 두드러진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는 무엇보다 西洋이 近代化를 먼저 始作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社會도 産業化와 民主化와 함께 漸漸 더 많은 意思決定과 行動方式이 個人主義的으로 이뤄지는 方向으로 가고 있습니다. 未來에는 이러한 現象이 더욱 深化할 것입니다.



    나르시시즘의 두 얼굴

    勿論 個人主義와 共同體注意 가운데 한 가지 方法만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두 思考方式 모두 빛과 그늘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社會에서 윗世代는 아무래도 傳統的인 共同體注意를 優先視하고, 아랫世代는 近代的인 個人主義를 選好합니다. 어른들은 家族이나 會社와 같은 組織을 위해 個人이 犧牲하며 寄與하기를 바랄 때가 많지만, 젊은이들은 自身의 삶을 最優先으로 하며 自身의 느낌과 趣向을 重視합니다.

    어른의 觀點에서는 個人主義가 利己的인 것으로 보이더라도 젊은 世代의 個人主義를 꼭 否定的으로만 볼 必要는 없습니다. 個人主義의 發展은 西歐 歷史에서 볼 수 있듯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人間이 社會的 存在라는 點에서 共同體가 重要하지만, 共同體가 個人의 選擇과 自由를 지나치게 制限하면 抑壓的 權威主義가 됩니다. 또한 지나친 個人主義 亦是 家族 안의 葛藤을 일으킬 수 있고, 會社와 같은 組織에서 協力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方式이 適切히 調和된 社會가 理想的인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相談師로서 제가 특별한 關心을 가진 單語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입니다. 우물 속에 비친 自己 自身을 사랑해서 죽고 말았다는 나르키소스의 神話에서 비롯된 나르시시즘은 自己 自身을 사랑하는 現象을 뜻합니다. ‘自己愛’라고도 하며 人間 心理의 가장 重要한 이슈 中 하나입니다.

    心理學的으로 나르시시즘은 肯定的으로도, 否定的으로도 使用됩니다. 健康한 나르시시즘이 自己 삶을 重要視하고 自身의 幸福을 위해 에너지를 沒入시키되 他人의 삶도 尊重하는 方式으로 나타난다면, 健康하지 못한 나르시시즘은 自身의 欲望을 이루기 위해 他人을 搾取하거나 無視하는 態度로 드러납니다. 肯定的인 나르시시즘은 自身의 삶을 발전시키고 周邊 사람들에게도 活力을 주지만, 否定的인 나르시시즘은 自己도 荒廢化할 뿐 아니라 옆에 있는 이들도 지치게 합니다.

    自身을 드러내고자 하는 이런 自己愛的 欲求가 그림으로 表現된 形態가 바로 自畫像이 아닐까 싶습니다. 現代人이 SNS 等을 통해 自身의 모습을 他人에게 보여주려는 方式으로 나르시시즘을 表出한다면 예전 사람들은 그림에 自身의 모습을 남김으로써 自己愛를 충족시킨 것이지요.



    ?‘自畫像의 靈魂’

    수많은 畫家가 自畫像을 그렸지만 그中에서도 代表的인 畫家들을 꼽는다면 알브레히트 뒤러, 빈센트 반 고흐, 下르먼손 판 레인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1606~1669)를 들 수 있습니다.

    自畫像이라는 장르를 西洋 美術史에 정착시키는 契機를 마련한 畫家는 뒤러입니다. 뒤러가 活動한 르네상스 時代에 畫家는 그저 事實的으로 그림을 그리는 機能人이라는 認識이 剛했지만, 그는 自意識이 豐富한 自畫像을 그려 많은 이에게 自畫像이라는 그림이 얼마나 獨創的이고 感動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예수의 얼굴을 聯想시키는 自畫像을 그린 것으로도 有名합니다.

    고흐는 强烈한 自畫像들을 그렸습니다. 自身이 자른 귀에 繃帶를 두르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파이프를 물고 귀에 繃帶를 한 自畫像’은 매우 印象的입니다. 그림 속의 그는 스스로 抑制할 수 없는 狂氣로 귀를 잘랐지만, 눈빛은 平靜心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의 놀라운 自畫像들에서는 ‘精神的으로 劇團의 苦痛 속에 있으면서도 그림을 그린다’는, 삶의 意味를 놓지 않는 天才 畫家의 熱望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고흐의 自畫像들과 比較할 때 렘브란트 自畫像들은 相對的으로 부드럽습니다. 그가 남긴 自畫像이 100點에 達한다고 하니 繪畫 歷史에서 렘브란트만큼 自畫像을 많이 그린 畫家를 찾기 어렵습니다. 質的으로도 卓越해서 그는 ‘自畫像의 靈魂’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렘브란트는 거의 每年 自畫像을 그렸습니다. 富와 名譽를 다 가진 젊은 時節부터 가난과 疾病으로 苦痛받던 老年期까지 自身의 모습을 率直하고 꾸준하게 畫幅에 남겼습니다. 近似하고 華麗한 自畫像은 젊은 時節의 모습을 그린 作品이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作品은 ‘웃고 있는 렘브란트’라고 불리는 老年의 ‘자화상’(Self-portrait·1665)입니다.

    어둠 속에 한 老人이 웃고 있습니다. 웃고 있지만 其實 虛脫해 보입니다. 그런데 虛脫해 보이는 그 모습을 다시 仔細히 들여다보면 무척 純粹해 보입니다. 삶의 모진 風波를 겪은 고단한 老年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입니다. 저는 이 作品에서 고통스러운 現實에 맞서 抛棄하지 않고 自身의 일에 熱情과 愛情을 쏟는 한 人間을 봤습니다.



    ‘集團 肖像畫’, 共同體的 個人主義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레이덴에서 태어났습니다. 大學을 暫時 다니면서 敎養을 쌓기도 한 그는 當時로선 異例的으로 敎育을 많이 받은 畫家입니다. 見習 畫家 生活을 거친 뒤 암스테르담에 定着한 렘브란트는 20代 때부터 名聲을 떨쳤습니다. 일찍이 當代를 代表하는 畫家가 됐을 뿐만 아니라 사스키아 판 윌렌브르흐와 結婚해 幸福한 家庭도 이뤘습니다.

    그러나 이 幸福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40代 以後 그의 삶은 苦痛의 連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고 經濟的으로 破産했습니다. 이런 狀況에서 그에게 힘이 돼준 것은 아들 티투스와 두 番째 아내 헨드리케 스토펠스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사람 모두 렘브란트보다 먼저 죽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疾病과 經濟的 困窮뿐이었습니다. 畫家로서의 名聲도 땅에 떨어지는 悲劇을 맛보게 됐습니다.

    저는 렘브란트의 電氣를 읽으면서 한 가지도 참기 어려운 悲劇이 그에게 연이어 일어났다는 事實에 놀랐습니다. 어쩌다가 젊은 나이에 이미 頂點을 찍은 天才 畫家에게 이런 삶의 悲劇이 주어졌을까요. 그러나 저를 더 놀라게 한 것은, 렘브란트가 이런 絶望의 狀況에서도 ‘웃고 있는 렘브란트’ 같은 自畫像을 그려낸 事實입니다. 어떻게 그는 自身의 슬픔과 苦痛을 끝까지 率直하고 淡淡하게 그려낼 수 있었을까요. 이 놀라운 自畫像을 보면 렘브란트는 그 어떤 瞬間에도 畫家로서의 自己 自身을 穩全히 받아들이고 眞情으로 사랑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의 作品을 紹介하고 싶습니다. ‘夜間 巡察’(The Night Watch·1642)이라는 題目으로도 알려진 ‘프란스 反닝 코크와 빌렘 班 라위텐뷔르흐의 民兵隊’라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암스테르담 民兵隊의 大將 프란스 反닝 코크와 隊員들이 作品의 製作 費用을 募金해 렘브란트에게 依賴한 作品입니다.

    이 作品을 紹介하는 까닭은, 렘브란트의 그림 中 가장 有名하고 큰 作品이기도 하지만, ‘集團 肖像畫’라는 특별한 構成으로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作品을 좋아하는 理由는 이 그림에서 個人이 잘 드러나는 同時에 集團도 强調된다는 點에 있습니다.

    프란스 反닝 코크 大尉와 빌렘 半 라이텐뷔르흐 中尉가 그림의 中央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다른 人物들 亦是 自身의 個性을 다양하게 드러내는 포즈를 取했습니다. 렘브란트는 이 作品에서 人物들을 意味 없이 配置하던 慣習을 깨고 力動的인 構成을 導入하는 革新을 통해 個個人의 多樣性을 살려냈습니다. ‘웃고 있는 렘브란트’가 個人主義의 心理的 次元을 생각하게 해준다면, ‘夜間 巡察’은 個人主義의 共同體的 次元을 注目하게 합니다.



    한 가지 正答은 없다

    오늘은 私的인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中學校에 막 入學한 제 아들은 겉보기엔 外向的이나 실은 內省的인 性格을 지녔습니다. 아이가 中學校에 들어가니 저는 每事에 勞心焦思하게 됩니다. 틈만 나면 모든 親舊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고 學級에서 活潑하게 잘 어울리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며칠 前 저를 不安케 하는 事件이 있었습니다. 擔任先生님과 相談하던 中에 저희 아이가 혼자 있을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의 많은 質問이 始作됐습니다. “왜 자주 혼자 있는데?” “너 或是 왕따니?” “새 學校에 適應이 어렵니?” 等等의 質問들을 연이어 쏟아냈습니다.

    참던 아이가 結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엄마, 난 親舊들과 너무 못 지내고 싶지도 않고, 너무 잘 지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냥 나답게 살고 싶어요. 왜 내가 혼자 있으면 안 되는 거야, 正말. 이런 式이면 幸福하게 學校 못 다니니까 더 以上 質問하지 마세요. 그리고 저는 제가 좋아하는 親舊 한두 名과 있을 때가 第一 幸福하니까 억지로 많은 親舊와 다니라고도 하지 마세요. 저 왕따도 아니고, 외롭지도 않아요. 正말 어른들은 왜 이러는 걸까.”

    思春期 少年의 父母가 되면서 저는 個人主義냐 共同體注意냐, 나르시시즘이냐 네트워크냐의 質問에서 한 가지 正答이란 結局 없다는 것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제게 말해준 것처럼, 저 亦是 아들에게 ‘힘든 狀況에서도 落心하지 말고 自身을 所重히 생각하고, 集團 안에서 너만의 포즈를 取하면서 잘 어울리도록 努力하면 그것으로 充分하다’고 혼잣말을 합니다.

    朴 上 喜


    ● 1973年 서울 出生
    ● 이화여대 基督敎學科 文學博士, 美國 스탠퍼드대 社會學科 房文學者
    ● 現 샤론精神健康硏究所 所長, JTBC ‘事件班長’ 固定 패널
    ● 著書 : ‘自己對象 經驗을 통한 逆機能的 하나님 表象의 變化에 對한 硏究’ 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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