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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理라둔쿠스여 憤怒하라|新東亞

호모 理라둔쿠스여 憤怒하라

  • 정여울 | 文學評論家 suburbs@daum.net

    入力 2014-05-21 09: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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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이라둔쿠스여 분노하라

    古代 希臘·로마의 憤怒론<br>손병석 지음, 바다출판사

    憤怒하는 人間, 호모 이라둔쿠스는 21世紀의 뜨거운 話頭가 돼간다. 얼마 前부터 ‘憂鬱症’ 버금가는 頻度로 言論에서 자주 露出되는 心理的 症狀은 ‘憤怒調節障礙’다. 女性에게는 憂鬱症이, 아이들에게는 ADHD(注意力缺乏過剩行動障礙)가, 그리고 男性에게는 憤怒調節障礙가 精神健康의 리트머스 試驗紙가 돼가는 것일까. 醫學的으로 正確한 診斷을 받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이런 病이 아닌가’ 疑心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 問題의 深刻性을 보여준다.

    火를 안으로만 삭이는 이에게는 憂鬱症이라는 꼬리票가, 火를 時도 때도 없이 엉뚱한 對象에게 表出하는 이에게는 憤怒調節障礙라는 烙印이 찍히곤 한다. 憤怒를 憤怒의 原因이 되는 對象에게 直接的으로 表出하지 못하는 게 이 모든 問題의 뿌리일 것이다. 憤怒의 뿌리가 되는 問題 自體를 解決할 수 없는 狀況이 선량한 사람을 ‘뭔가 問題가 있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眞짜 問題는 各種 精神疾患 自體가 아니라 사람들을 괴롭고 아프게 만드는 社會構造에 있다.

    男女老少의 憤怒를 刺戟하는 모든 問題는 實狀 우리 社會의 潛在的 火藥庫다. 이 憤怒의 씨앗은 이미 우리 社會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이 憤怒는 抑鬱한 사람, 傷處 입은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 싹을 틔워 언제 魔法의 콩나무처럼 미친 듯이 자라나 하늘 높이 치솟는 무서운 불길이 될지 모른다. 어릴 때부터 極甚한 入試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힘들게 大學을 卒業하면 就業大亂에 내던져지고, 結婚適齡期에는 傳月貰 大亂을 겪으며, 結婚해 아이를 가지면 또 그 아이를 이 힘든 世上에서 키워내느라 育兒 스트레스에 짓눌리며, 中年부터 일찍이 老後資金을 걱정해야 하는 韓國人. 우리의 이 憤怒를 眞正한 共同體의 問題로 思惟하지 않는 限, 憤怒를 個人의 問題로만 限定하는 限, 憤怒를 發生시키는 社會의 根本 問題는 全혀 바뀌지 않을 것이다.

    社會의 健康 尺度 ‘憤怒’

    이 冊은 한 社會의 健康을 測定하는 尺度를 바로 ‘憤怒’로 바라본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에서 세네카의 ‘憤怒론’에 이르기까지, 이 冊은 憤怒라는 感情의 原因과 結果, 그 解決과 統制의 方式에 따라 人類의 歷史가 어떻게 요동쳐왔는지를 考察한다. 나아가 憤怒가 個人과 共同體에 어떤 意味를 갖는지 分析하고, 憤怒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社會의 統治方式이 달라져왔음을 證言한다.



    무엇보다도 憤怒의 統制와 實現은 英雄이 지닌 最高의 美德 中 하나였다. 예컨대 오디세우스는 險難한 旅程을 거쳐 집에 돌아와, 自身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온갖 甘言利說로 求婚한 男子들, 自身의 名譽를 毁損한 그 모든 男子를 殘忍하게 殺害한다. 오디세우스의 憤怒가 매우 殘忍하게 表出된 것은 事實이지만, 歷史가 그를 英雄으로 記憶하는 것은 自身의 憤怒를 沈着하게 統制하고 戰略的으로 利用해 마침내 自身이 願하는 것을 얻어내는 놀라운 理性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自身의 憤怒를 人間을 向한 利他的 憤怒로 승화시키고, 마침내 自身이 제우스의 憤怒를 穩全히 堪當함으로써 不滅의 英雄이 되었다. ‘憤怒를 어떻게 統制하고, 活用하고, 더 커다란 目的으로 승화시키는가’가 英雄의 偉大性을 가늠하는 尺度가 되었던 것이다.

    이 冊에서 特히 마음을 끄는 대목은 ‘정의로운 憤怒’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의 問題다. 憤怒를 自身이 當한 일에 對한 復讐의 快樂을 向한 눈먼 疾走로 이끌지 않고, 個個人의 私的인 憤怒를 共同體의 더 나은 삶을 向한 憤怒로 승화시키는 事例가 있다. 그中에서도 ‘뤼詩스트라테’의 憤怒 解決法은 社會的으로는 絶對的 弱者였던 女性이 私的 憤怒를 公的 憤怒로 智慧롭게 高揚시킨다는 點에서 現代人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늘 消耗的인 戰爭에 빠져 日常을 돌보는 일을 等閑視하는 男便들에 對한 憤怒로 똘똘 뭉친 아테네 女性들은 ‘家庭’이라는 最小單位의 共同體 運營을 罷業함으로써 男性들을 憤怒하게 만든다.

    이 作品은 男便과의 性關係를 拒否하는 女性들의 集團 罷業으로 有名하지만 問題의 本質은 ‘戰爭과 競爭과 支配에 沒頭하는 男性的 權力’에 對한 女性들의 憤怒다. 男性의 憤怒는 社會를 統制하고 維持시키는 生産的 感情으로, 더 나아가 ‘男性性’을 證明하는 强力한 徵標였다. 그런데 女性들의 憤怒는 ‘非女性的’이며, ‘女性답지 못한 것’이며 나아가 抑制하고 除去해야 할 쓸데없는 感情으로 置簿되었던 것이다. 서로 치고받고, 復讐하고, 죽이고, 斷罪하는 男性的 政治에 對한 代案으로서 그女들은 서로 챙기고, 감싸주고, 보듬어주는 治癒의 政治를 提案한다.

    아테네 女性들의 ‘잠자리 罷業’

    戰爭에만 沒頭해 집에 돌아오지 않는 男便들을 向해 集團 罷業으로 맞선 女性들에게 男便들은 復讐의 칼을 갈며 그女들을 沒殺시키자는 劇藥 處方까지 내놓지만, 그女들은 그런 男便들에게 또 다른 暴力으로 맞선 것이 아니라 사랑과 共感의 論理를 내세운다. 그女들은 自身들에게 統治의 權限이 주어진다면 모든 일을 ‘羊털 다루듯이’ 조심스럽고 細心하게 處理할 것이라고 宣言한다.

    그대들이 조금이라도 知覺이 있었더라면 우리는 모든 나랏일을 羊털 다루듯이 했을 거예요. 먼저 羊털을 물에 담가 羊의 汚物을 씻어내듯, 그대들은 都市에서 惡黨들을 털어내고 엉겅퀴들을 가려내야 해요. 그리고 함께 들러붙는 者들과 官職을 노리고 毛廛처럼 凝結되는 者들은 빗어내고 그 끄트머리들은 뽑아버려야 해요. 그런 다음 모두를 相互間의 善意라는 바구니 안에 빚어 넣되 在留外人들과 同盟者와 나라의 親舊도 한데 섞어야 하며, 누가 나라에 빚을 졌더라도 이들도 섞어 넣어야 해요. 그리고 제우스에 盟誓코, 이 나라의 植民地인 都市들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긴 하지만 그대들을 위한 羊털이라는 걸 알아두시오. 이들을 全部 모아 가지고 여기에 한데 쌓아놓으세요. 그런 다음 큰 羊털실뭉치를 만들어 거기서 百姓들을 위해 外套를 짜도록 하세요.

    -아리스토파네스, ‘뤼詩스트라테’中에서

    羊털을 다루듯이 操心스럽게, 思慮 깊게, 천천히, 그 짜임새와 섬세한 결들, 羊털의 過去와 現在와 未來를 아우르는 몸짓. 한때는 羊의 털이었던 것이 탄탄한 털실이 되고 언젠가는 外套가 되려면 精誠스러운 손길과 섬세한 配慮가 必要하다. 오래前 읽은 ‘뤼詩스트라테’는 아테네 女性 모두가 男便과의 잠자리를 拒否하는 史上 初有의 ‘사랑의 罷業’으로 眞正 願하는 삶을 爭取해낸, 奇想天外한 아이디어가 번득이는 作品이라고 생각했다. 作家 아리스토파네스의 才致와 基地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動力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只今 다시 읽어보니 그女들의 才致는 憤怒와 슬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이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함께 決定하고 함께 만들어가야 할 世上에서 ‘그건 너희들의 所管이 아니다’고 말하는 사람들. 정작 危機에 處했을 때는 ‘그건 내 所管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伏地不動, 無事안일주의를 일삼으면서 權力의 重責만을 맡으려 하는 男便들의 行態는 오늘날 國民의 목소리는 眼中에도 없고 自身들의 政治的 利權만을 固執하는 權力者들을 너무도 닮았다.

    世上을 바꾸는 革命의 에너지

    뤼詩스트라테와 그女의 同志들은 但只 ‘男便에게 입막음을 當해야 하는 婦人들’만을 代辯하는 것이 아니라 힘없고, 逼迫받는 弱者들의 憤怒를 代辯하는 存在들이다. 危急할 때일수록 하고 싶은 말이 눈덩이처럼 늘어나지만, 危急할 때일수록 더욱 서슬 퍼레지는 男便들의 暴壓에 숨죽여야 했던 女性들의 憤怒가 表出되는 瞬間. 오랫동안 삭여왔던 憤怒가 世上을 바꾸는 革命의 에너지로 轉換되는 瞬間이다.

    前에는 展示인 만큼 그대들 男子들이 무슨 짓을 하든 우리는 꾹 참았지요. 女子들이란 元來 얌전한 法이니까요. 그대들은 우리더러 不平도 못하게 했으니까요. 그렇다고 그대들이 우리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에요. 우리는 그대들의 形便을 잘 알고 있었고, 집안에서 가끔 그대들이 重大한 일을 잘못 決定했다는 所聞을 듣곤 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마음이 괴로워도 웃음을 지어 보이며 물었지요. (…) “여보, 왜 자꾸 그런 어리석은 政策을 固執하시오?” 그러면 그이는 대뜸 나를 노려보며 말하곤 했지요. “실이나 짜. 머리를 얻어맞아 크게 悲鳴을 지르고 싶지 않거든! 戰爭은 男子들의 所管이야.”

    -아리스토파네스, ‘뤼詩스트라테’中에서

    著者는 말한다. 憤怒는 暴力과 테러, 그리고 殺人을 저지르게 하는 原因이 되기도 하지만 正義를 實現하기 위해서는 必須的인 感情이기도 하다고. 이 冊은 憤怒의 二重性, 卽 社會를 破壞시키는 에너지와 社會를 변화시키는 에너지에 모두 注目하면서, 人類가 幸福해지기 위해 憤怒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摸索한다.

    憤怒는 統制가 어렵기에 否定的으로 評價받기 쉬운 感情이지만 그것이 公共의 利益을 위해 發散된다면 憤怒는 救援의 첫 番째 발걸음日 수도 있다. 그러니 아픔을 안으로만 삭여왔던 사람들이여. 火를 어디에다 表出할 줄 몰라 엉뚱한 곳에 火풀이를 했던 사람들이여. 우리 더 正確하게, 더 智慧롭게, 더 커다란 幸福을 위해 날카롭게 憤怒瑕疵. 正義를 위한 憤怒, 共同體의 더 나은 삶을 向한 智慧로운 憤怒만이 이 깊은 슬픔의 江을 건너 더 나은 世上을 만들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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