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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 中心의 世界觀 허물고 人間·科學의 世界를 열다|신동아

神 中心의 世界觀 허물고 人間·科學의 世界를 열다

  • 김학순 | 高麗大 미디어學部 招聘敎授·北칼럼니스트 soon3417@naver.com

    入力 2014-05-21 09: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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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 중심의 세계관 허물고 인간·과학의 세계를 열다

    天體의 回轉에 關하여<br>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지음, 서해문집

    “닉,자네 冊일세! 方今 뉘른베르크에서 到着했어. 完成되었네!” 그러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의 손은 거의 느낄 수 없는 힘으로 冊을 지그시 눌렀다. 그는 몹시 애쓰는 목소리로 말했다. “完成되었군!” 이루 形言할 수 없는 悅樂(悅樂)의 빛이 蒼白하고 야윈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완-性-되었어!” 그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다시 한 番 이렇게 말했다. 얼마 後 그의 머리가 갑자기 툭 떨어졌다. “돌아가셨습니다.” 房 안의 누군가가 조용히 말했다. “죽다니? 아니야, 코페르니쿠스 같은 사람이 죽을 수는 없어! 그는 이 冊 속에서 살아 있어!” (‘코페르니쿠스의 硏究室’ 데이바 소벨, 熊進知識하우스)

    地動說을 처음 主張한 폴란드 天文學者 코페르니쿠스는 科學革命의 序幕을 연 力作 ‘天體의 回轉에 關하여’(원제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가 구텐베르크의 活版印刷로 막 出刊되던 1543年 5月 24日 世上을 떠났다. 冊의 誕生과 著者의 죽음이 공교롭게 交叉한 것은 宿命인지도 모른다. 科學 暗黑期인 中世에는 地球가 太陽 周圍를 熱心히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이 無嚴하기 그지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스러운’ 地球를 中心으로 宇宙가 回轉한다는 優雅하고 莊嚴한 聖經의 世界觀에 비기면 지나치게 ‘革命的’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冊이 나오기 30餘 年 前 地動說을 처음 떠올리고 20餘 年 뒤 原稿를 完成했으나, 宗敎界의 抵抗과 彈壓이 두려워 出版을 꺼렸다. 宗敎改革家人 마르틴 루터의 言及은 코페르니쿠스의 學說에 對한 改新敎界의 抵抗 가운데 하나다. “어떤 新出내기 天文學者가 이 하늘, 해, 달이 아니라 地球가 움직인다고 主張하는 것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 바보는 모든 天文學을 反對로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神聖한 聖經에서 이르기를 여호수아는 地球가 아닌 太陽에게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고 말하였다.”

    宇宙는 求刑이다, 地球도 둥글다

    이 冊은 出刊 當時 雰圍氣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主張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內容 自體도 一般人이 理解하기 어려운 理論으로 가득하다. 修理天文學 專門敎育을 받은 사람만 理解할 수 있는, 至毒하게 難解한 內容이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宇宙는 求刑이다’ ‘地球도 亦是 求刑이다’ ‘땅과 물이 어떻게 하나의 具體를 形成하는가’ ‘地球의 세 가지 運動의 證明’ 等을 통해 地球가 둥글고 움직인다는 걸 論證했다. 地球의 세 가지 運動說은 地球가 하루에 한 바퀴씩 自轉하며, 太陽 周圍를 1年에 한 番 公轉하고, 地球 軸이 回轉한다는 內容이다.

    그는 地球가 太陽을 中心으로 回轉한다는 事實을 다른 行星과의 關係 속에서 數學的으로 證明한다. 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主張했던 地球 中心 體系와 ‘地球-달-金星-水星-太陽-火星-木星-土星’이라는 天體 順序를 否認했다. 太陽 中心 體系에 따라 水星-金星-地球-火星-木星-土城의 順序를 主張했다. 完璧한 球 模樣을 띤 모든 天體가 일정한 中心을 지니고 등속 圓運動을 한다는 理論도 들어 있다.

    地軸의 旋回 運動에 依한 洗車 運動을 包含한 地球의 運動, 春分點의 移動에 對한 數學的인 說明도 담았다. 달의 運動과 行星의 京都 方向 運動, 行星의 緯度 方向 運動에 對해서도 證明으로 보여준다. 이 冊에는 現代에 밝혀진 誤謬도 있지만, 後날 요하네스 케플러가 行星의 楕圓 運動을 體系化해 코페르니쿠스의 地動說의 短點을 補完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더욱 精密한 觀測으로 地動說을 뒷받침했다. 아이작 뉴턴의 ‘萬有引力 法則’에 依해 마침내 地動說은 定說로 굳어지게 됐다.

    그가 天動說에 疑問을 갖기 始作한 것은 觀測 事實과 傳統的 學說의 不一致 때문이었다. 새로운 天體館을 찾던 그는 古代 文獻으로부터 地動說을 어렴풋이 斟酌하게 됐다.

    이 冊에는 天文學的 內容 外에 敎皇과 敎會를 刺戟하지 않기 위한 글이 많이 담겨 있다. 코페르니쿠스는 周圍의 勸誘에 못 이겨 이 冊을 出版하며, 敎會가 곤란해 하던 曆法의 問題를 解決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애써 强調한다. 그뿐 아니라 敎會와 論爭거리가 될 만한 內容은 모두 뺐다. 序文과 敎皇에 對한 憲政史를 읽으면 이 冊 곳곳에서 異端으로 몰리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苦惱가 엿보인다. 그럼에도 이 冊은 루터파 敎人들로부터 엄청난 攻擊을 받았다. 코페르니쿠스가 가톨릭 司祭였기 때문이다.

    著名한 言論人이자 小說家인 아서 케스틀러는 ‘夢遊病者들’에서 이 冊을 ‘歷史上 가장 販賣價 神通치 않은 冊’이라고 낙인찍는 것으로 不足해 ‘아무도 읽지 않은 冊’이라고 別名을 지었다. 지나치게 어려웠던 탓이다. 事實 코페르니쿠스 스스로도 冊에 矛盾되는 部分이 많고 아직 解決되지 않은 問題가 적지 않아 自身의 大作이 비웃음의 對象이 되거나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冊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한다.

    그의 唯一한 弟子 레티쿠스는 스승에게 冊의 出版을 說得하기 위해 3年 앞서 코페르니쿠스의 天文學을 紹介하는 小冊子를 펴낸다. 이 小冊子는 隱密하면서도 暴發的인 人氣를 누려 이듬해 裁判이 發行된다. 레티쿠스는 出版을 망설이는 스승을 아랑곳하지 않고 當代 最高의 印刷業者인 뉘른베르크의 페트레이우스에게 最終 原稿를 가지고 간다. 世上을 바꾼 이 冊은 이런 迂餘曲折을 겪은 끝에 世上으로 나온다.

    코페르니쿠스的 轉換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은 杞憂에 그치지 않았다. 初版 400部도 다 팔리지 않았다. “購入해서 읽고 活用하시기 바랍니다”라는 宣傳文句가 無色하게 當時 讀者로 推定할 수 있는 사람은 케플러, 갈릴레이, 튀코 브라헤 같은 天文學者와 出版業者 9名에 지나지 않았다는 說도 있다.

    이런 評價에 對해 깅거리치 前 하버드대 敎授는 여러 證據를 대며 ‘아무도 읽지 않은 冊’의 主張이 틀렸다고 反駁한다. 깅거리치는 갈릴레이와 케플러, 미하엘 마에스틀린 같은 一級 天文學者가 所有하고 메모가 적힌 ‘天體의 回轉에 關하여’를 紹介하면서 天文學者 사이의 激烈한 다툼과 더불어 새로운 現實에 對處하기 위해 敎會가 벌인 檢閱의 痕跡까지 있음을 알려준다.

    地球가 다른 行星들과 더불어 太陽 周圍를 回轉한다는 코페르니쿠스의 結論은 科學 歷史뿐 아니라 人類의 삶에 엄청난 波紋을 일으켰다. 劃期的인 思考方式의 變化를 흔히 ‘코페르니쿠스的 轉換’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알 만하다. 獨逸 哲學者 이마누엘 칸트가 처음 使用한 ‘코페르니쿠스的 轉換’이라는 用語는 이제 世界人의 話頭가 될 程度다. 칸트는 認識이 對象에 依據하는 것이 아니라 人間의 主管 構成에 根據한다는 自身의 認識論的 立場을 ‘코페르니쿠스的 轉換’이라는 말로 表現했다.

    西洋이 神(神) 中心의 世界觀을 克服하는 데 가장 크게 貢獻한 게 바로 이 冊이다. 이 冊을 契機로 宇宙에서 神을 除去하고 宇宙와 地球에서 일어나는 모든 運動을 物理法則으로 說明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됐다. 이를 바탕으로 人間은 自然의 支配者로 登極했다. 聖書에 따라 宇宙를 解釋하고 科學을 말하던 世界에 平凡한 人間의 非凡한 想像이 介入되면서 새로운 科學의 世界가 열린 것이다.

    世上에서 가장 비싼 冊

    地動說에 對한 獨逸 文豪 괴테의 言及이 興味롭다. “地球는 宇宙의 中心點이라는 엄청난 特權을 抛棄해야 했다. 이제 人間은 크나큰 危機에 逢着했다. 樂園으로의 復歸, 宗敎的 믿음에 對한 確信, 거룩함, 罪 없는 世上, 이런 것들이 모두 一場春夢으로 끝날 危機에 놓인 것이다. 새로운 宇宙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史上 類例가 없는 事故의 自由와 感性의 偉大함을 일깨워야 하는 일이다.”

    코페르니쿠스가 使用한 ‘回轉’이란 用語 ‘Revolution’은 後날 ‘革命’이라는 政治社會的 單語로 變容된다. 라틴語에서 由來한 이 單語는 回戰, 循環, 周忌, 反復 等의 뜻을 지녔으나 天體의 回轉처럼 政治社會的 變化도 어떤 法則에 따라 必然的으로 反復되는 일로 보고 比喩的으로 쓰이기 始作했다. 政治學者 한나 아렌트는 ‘Revolution’을 革命이라는 政治的 用語로 使用한 게 17世紀에 일어난 英國 名譽革命부터였다고 말한다.

    地球가 움직인다는 것을 深刻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當付한 코페르니쿠스의 親舊 앤드루 오시안더 序文 때문인지 가톨릭 敎界에서도 이 冊이 나온 直後에는 威脅이 있었을 뿐 禁書 措置는 없었다. 오히려 루터파를 中心으로 한 改新敎의 威脅이 더 컸다. 하지만 地動說을 立證하는 學說이 亂舞하자 敎皇廳은 1616年 마침내 이 冊을 禁書로 指定했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은 지 70餘 年이 흐른 뒤의 일이다.

    敎皇廳은 ‘움직일 수 없는 科學’으로 證明된 1835年에 들어서야 禁書에서 解除했다. ‘코페르니쿠스的 轉換’ 以後 時代에도 虛像 바로잡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大衆의 잘못된 認識을 바로잡는 데 3世紀나 지나야 했다. 올바른 科學을 규탄당한 코페르니쿠스가 復權되는 데 5世紀가 걸린다. 로마 가톨릭이 地動說과 關聯된 誤謬를 認定한 것은 1992年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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