暫時 方向을 잃은 거라고 한다. 早晩間 다시 方向을 찾게 된다는 얘기일까. 나는 背囊을 벗어 바닥에 놓아두고. 停留場은 온통 수풀투성이야. 暫時 잃은 거라고 해. 그런 말들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걸까. 이쪽으로 오라는 말이 들리는 것이 믿음일까.
비가 온다는 건지 안 오고 말겠다는 건지 하늘을 봐서는 내 눈으론 알 수 없어. 비가
오겠지. 온다고 했으니까.
自身을 믿으라고 마지막으로 들었던 게 우리의 오래前 學生 時節이었던가? 半信半疑하면서도 雨傘을 가방에 넣을 때, 그런 걸 우리는 신중하다고 했던가? 投票를 하는 氣分이군.
選擇의 問題라는 式으로
누군가는 反復해서 말하곤 했지.
諦念하라는 表情인지, 그것만이 正答이라는 隱密한 確信인지, 盲信인지 슬픔인지 삶인지 언제나 못난 게 나란 건지
自身을 믿으라고들 해. 귀가 必要하다고. 너는 正말이지
反復해서 말하건대
人間의 귀와 動物의 귀와
나무의 귀와 풀의 귀와 물과 空氣의 귀들까지
온몸과 온 마음에 귀를 모아 붙이라고.
그만.
나는 아무 方向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더럽다. 일어날 수 없이 빛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氣分이. 믿음이 있는 사람처럼 나는 비어 있는 손을 끌어다가
움직여 볼 뿐이었다.
얼굴을 감싸려고. 別수가 없어서.
빛과 나 사이에서 불이 번지고 있어서.
제발.
온갖 풀 위에 놓인 채 울부짖는 것을 멈춘
케이지 속 더러운 들개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윤은성
● 2017年 ‘문학과사회’ 新人文學賞 受賞
● 2021年 9月 詩集 ‘住所를 쥐고’ 發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