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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統領 相對 解任無效 訴訟 강규형 前 KBS 理事 [直擊 인터뷰]|新東亞

大統領 相對 解任無效 訴訟 강규형 前 KBS 理事 [直擊 인터뷰]

“죽을힘 다해 버틴 理由? 文 政權 言論 掌握, 歷史에 남길 것”

  • 金賢美 記者

    khmzip@donga.com

    入力 2021-10-2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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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 社長 交替 위해 野圈 理事들에게 全方位로 辭退 壓力

    • 그만둘 때까지 괴롭히기, 侮辱 周忌, 無差別 告訴·告發

    • 大統領 相對로 한 解任處分取消 訴訟 ‘달걀로 바위치기’

    • “解任은 裁量權 逸脫·濫用” 大法院 判決에도 靑瓦臺 謝過 없어

    • 野黨, ‘放送 掌握 막은 最後의 1人’ 擁護

    • 4年 半 동안 訴訟만 30餘 件, 年金保險 깨며 버틴 건 自尊心 때문

    • ‘言論재갈法’과 大衆 動員, ‘類似 全體主義’ 疑心

    • 서울市響 理事長 就任, 世界 水準의 交響樂團 만들 것

    [지호영 기자]

    [지호영 記者]

    “내가 人生에서 第一 좋아하는 것은 나의 天職인 가르치는 것과 公演藝術을 통해 餘暇를 즐기는 것이다. 元來 專攻인 歷史·文明 以外에도 公演藝術에 對한 科目을 가르치고 있고, 또 音樂·演劇·映畫·스포츠 等을 즐기며 그것들에 對해 글을 쓰는 것이 내 日常의 一部分이기도 하니, 나야말로 下魏徵아가 얘기한 眞正한 호모 루덴스 아니겠는가?”(강규형 ‘어느 호모 루덴스의 音樂사랑 이야기’ 中에서)

    강규형(57) 명지대 敎授는 “저는 일을 잘하기 위해 餘暇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餘暇를 잘 즐기기 위해 일을 합니다. 제 人生은 餘暇 自體”라는 말로 自己紹介를 代身하곤 했다. 1978年 世宗文化會館 開館記念音樂祭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指揮 有進 오르먼디)가 들려준 生疏한 레퍼토리(버르토크의 ‘玄과 打樂器와 첼레스타를 위한 協奏曲’ 外)와 流麗한 音響에 魅惑됐던 까까머리 中學生은, 大學에서 史學을 專攻하고 美國 留學을 떠나 西洋 現代史, 러시아史, 國際關係 專門家가 돼 돌아왔다.

    講壇에 선 後에도 音樂에 對한 熱情은 식지 않았다. ‘歷史와 文明’ ‘音樂鑑賞法’ ‘西洋音樂의 理解’ ‘西洋音樂史’ ‘現代世界의 理解’ 等 歷史와 音樂의 世界를 넘나들며 講義 콘텐츠는 豐富해졌고, 活動 舞臺는 넓어졌다. 2005~2006年 KBS交響樂團 運營委員, 2006~2010年 서울스프링室內樂祝祭 共同創立者 兼 執行委員, 2012~2014年 龜尾國際音樂祭 組織委員會 諮問委員 等으로 活動하며 프로페셔널 音樂人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08年에는 ‘어느 호모 루덴스의 音樂사랑 이야기’로 ‘隨筆春秋’에서 新人賞을 받으며 登壇하기도 했다.

    彈劾당한 大統領이 임명한 積弊 理事

    그러나 2017年 文在寅 政府의 出帆과 함께 호모 루덴스의 삶은 마침標를 찍었다. 새 政府의 KBS 社長 交替 作業이 始作되면서 2015年 朴槿惠 大統領 時節 自由韓國黨(國民의힘 前身) 推薦 KBS 理事 中 大學校나 大型 로펌에서 일하는 理事들을 골라서 괴롭혔다. MBC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터나 敎會로 찾아가 退陣을 要求했다. 標的이 된 理事들이 與黨과 민주노총 傘下 言論勞組員들의 辭退 壓迫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떠났지만, 姜 敎授는 끝까지 버텼다.

    그러자 放送通信委員會는 그해 12月 27日 聽聞會를 열고 강규형 理事 解任 建議案을 議決했다. △業務推進費 327萬 원을 私的 用途로 使用하고 △自身의 辭退를 促求하는 示威隊를 嘲弄했으며 △도그쇼에서 愛犬 同好會員을 暴行하는 等 KBS 理事로서 不適切한 處身으로 KBS의 名譽를 失墜하고 國民의 信賴 低下를 招來했다는 理由였다. 바로 다음 날 放通委의 建議를 文在寅 大統領이 裁可했다. 文在寅 政府 出帆 7個月 만에, 理事 任期를 8個月 남기고 解任됐다.



    姜 敎授는 “解任腸이 到着한 것은 이듬해 1月 3日이다. 到達主義 原則에 따라 解任 效力은 1月 3日부터 發生한다고 하더라. 곧바로 KBS 理事 任免權者인 文在寅 大統領을 相對로 解任處分取消 訴訟을 提起하고, 解任處分 執行停止 申請을 했는데 1月 15日 棄却됐다. 任期가 얼마 남지 않은 狀況에서 解任은 ‘回復하기 어려운 損害’였음에도 法院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當時 裁判部는 “解任處分으로 因해 한국방송공사 理事로서의 職務 遂行에 支障이 있다고 해 回復할 수 없는 損害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解任處分의 執行을 停止할 緊急한 必要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執行停止 申請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解任處分取消 訴訟만 남았다. 大韓民國 最高 權力者를 相對로 한 싸움은 길었다. 2020年 6月 15日 1審에서 勝訴할 때까지 2年 半이 걸렸다. 올해 4月 28日 2審에서 勝訴할 때까지 다시 10個月이 흘렀다. 그리고 9月 9日 大法院은 最終的으로 그의 손을 들어줬다. 大法院 判決은 ‘審理不續行 棄却’. 上告 對象이 아니라고 判斷되는 事件에 對해 더는 審理하지 않고 上告를 棄却하는 것이다. 心理를 열 必要조차 없다는 意味다. 大統領을 相對로 해 3年 8個月에 걸쳐 이어간 訴訟戰은 姜 敎授의 完勝으로 끝났다.

    1審 裁判部(서울行政法院 行政7部)는 “監査院 監査 結果 KBS 理事 모두에게서 業務推進費 不當執行 現況이 指摘됐고, 原稿의 不當執行 額數가 餘他 理事들에 비해 顯著히 크다고 보기 어렵다. KBS에서 業務推進費 不當執行을 理由로 懲戒한 事例도 없으며 原稿가 業務推進費 不當執行額을 모두 返還한 點 等을 考慮했다”며 原告 勝訴 判決했다.

    “幸여 ‘三세番’이라고 上告를 檢討한다면”

    2審 裁判部(서울高等法院 行政11部) 亦是 “原告가 示威者에게 取한 言動에 辱說이나 侮辱的인 行動이 없었고, 原稿는 暴行의 公訴事實로 起訴된 刑事事件의 抗訴審에서 無罪判決을 받고 그 判決이 確定돼 이런 思惟 等으로 KBS의 名譽失墜가 發生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原審 判決을 維持했다. 姜 前 移徙 解任處分을 (大統領의) 裁量權 逸脫·濫用으로 判斷한 것이다. 姜 敎授는 거꾸로 言論勞組員들이 自身에게 無差別的인 嘲弄과 脅迫을 했다고 말한다.

    2審 判決 以後 本格的인 野黨의 反擊이 始作됐다. 全珠惠 國民의힘 院內代辯人은 “姜 前 理事는 문재인 政權의 ‘放送 掌握’에 맞서 싸운 最後의 1人”이라며 “姜 前 理事의 解任이 不法으로 判明 났으니 그 자리에 補闕로 들어간 김상근 理事長은 不當하게 얻은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야 하다”고 促求했다.

    박대출 國民의힘 議員은 페이스북에 “이제 애먼 사람 놓아주시라”는 題目의 글을 올렸다. “文在寅 大統領이 上告할 건지, 上告 抛棄할 건지 아직 速報가 나오지 않습니다”로 始作된 글에서 朴 議員은 大統領이 上告를 抛棄하고 姜 前 理事에게 ‘마음의 빚’을 갖는 게 常識이라고 했다.

    “幸여 ‘三세番’이라고 上告를 檢討한다면 抛棄를 勸합니다. ‘코드’ 大法院에 期待를 걸 事案이 아닙니다. 任期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時間벌기용으로 던져놓고 보자는 心算이라면 苛酷하고 無責任한 處事입니다. 文在寅 政府 잣대로 하면 나중에 求償權 對象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朴 議員의 憂慮는 現實이 됐다. 文 大統領은 2審 判決에 不服해 上告했고 敗訴했다. 裵賢鎭 國民의힘 最高委員은 姜 前 移徙 解任에 對해 “言論掌握 시나리오의 먹잇감으로 肅淸당한 것”이라고 規定하고 “文 大統領은 누가 봐도 敗訴가 분명하다는 助言이 이어져도 마지막까지 上告하는 불꽃 鬪魂을 發揮했지만 (大法院은) 더 들여다볼 理由도 없다며 審理不續行 棄却 處理해 姜 前 移徙가 最終 勝訴했다”며 文 大統領의 謝過를 要求했다.

    ‘積弊言論 淸算이냐, 言論彈壓이냐, 放送 新(新)積弊냐’ 陳永 싸움에 낀 個人 강규형은 疲弊해졌다. 그를 아는 이들은 4年 만에 “몰라볼 程度로 폭삭 늙었다”고 안타까워한다. 臺詞症候群으로 KBS 理事 始作할 때 30인치였던 허리가 36이 됐다. 얼굴엔 疲勞의 痕跡이 歷歷했다. 大統領과의 訴訟은 끝났지만 아직도 10餘 件의 訴訟이 進行 中이다. 그 渦中에 반가운 消息도 있었다. 吳世勳 서울市長이 姜 敎授를 서울시교향악단(서울시향) 理事長으로 임명한 것. 10月 1日부터 任期 3年의 서울市響 理事長職을 遂行하고 있다.

    “내가 얻은 것은 自尊心 回復뿐”

    - 大統領을 相對로 한 解任 無效 訴訟이 3審까지 갈 것이라고 豫想했나.

    “半半이었다. 1, 2審에서 내리 靑瓦臺가 졌을 때 上告를 못 한다는 意見이 半, 相考해서 大統領 任期 내내 이 裁判을 끌고 간다는 쪽이 半이었다. 그런데 大統領이 後者를 擇했다. 敗訴하더라도 大統領 任期가 끝날 무렵 宣告가 나올 거라 期待한 것 같다. 大統領 任期 中 敗訴하는 것과 任期 後 敗訴하는 것은 하늘과 땅 差異다. 大法院 2部에 配當됐는데 豫想을 깨고 9月에 宣告했다. 4名 中 3名이 文在寅 大統領이 임명한 大法官이었음에도 解任이 不當하다는 原審 判決을 엎지 못했다.”

    - KBS 理事 任期는 2018年 8月로 끝났다. 勝訴했다고 復職하는 것도 아닌데 왜 끝까지 싸웠나.

    “내가 얻은 것은 名分과 自尊心 回復밖에 없다. 殘餘 任期에 對해 損害賠償 民事訴訟을 한다 해도 KBS 理事 手當이 얼마나 되겠나. 實益이 없다. 그러나 政權의 壓力에 屈服하고 싶지 않았다. 自由右派에서 버틴 사람이 한 名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것을 歷史에 記錄으로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 4年 前으로 돌아가 보자. 2017年 文在寅 政府가 고대영 KBS 社長을 交替하기 위해 無理하게 舊與圈 推薦 理事들을 辭退시킨 理由는 뭔가.

    “理事會가 社長에 對한 任命·解任 推薦權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當時 KBS 理事 11名 가운데 7名이 朴槿惠 政府 때 推薦된 사람이었고 任期는 2018年 8月까지였다. 그러나 當場 2018年 2月 平昌 冬季올림픽이 열리고 6月에는 地方選擧를 치러야 해서 無理하게 放送 掌握을 決行한 것이었다. 理事 2名만 與圈 人士로 交替하면 與6 代 야5가 돼 政權이 願하는 사람으로 社長을 交替할 수 있었다.”

    實際로 2017年 10月 11日 강규형 敎授와 함께 辭退 壓迫을 받던 漢陽大 敎授인 김경민 理事가 放通委에 辭退書를 提出하자 民主言論市民聯合은 “旣存 7名의 舊與圈 出身 多數 理事들 가운데 한 名만 더 辭退하고 現在 與黨 몫으로 돌려놓을 境遇 現 經營陣에 對한 解任도 可能하다”는 意見을 냈다.

    - 當身이 最後의 1人이 돼 結局 解任을 위한 聽聞會까지 열렸다.

    “강규형이 이렇게 버틸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애初 業務推進費도 定期監査 때에는 아무 問題없이 通過됐다가 野圈 理事들 退陣시키기 위해 어거지로 再監査를 했고 ‘理事 全員 問題’라는 駭怪한 結論을 낸 것이다. 勞組를 통해 아무리 壓力을 넣어도 안 되니까 放通委가 나서 聽聞會를 열고 강규형 理事 解任 建議案을 議決했다. 그런데 이 聽聞會가 코미디였다. 當時 聽聞會 主宰者인 김경근 高麗大 名譽敎授가 귀를 疑心할 말을 쏟아냈다. ‘受信料 引上을 위해 왜 斷食鬪爭 안 했어요? 그거 理事로서의 任務를 다 안 한 겁니다’ ‘우리 理事님은 왜 나만 찍어서 그러느냐? 왜 나만? 敎授니까 그런 거죠 뭐. 敎授가 만만하다는 걸 모르세요?’ ‘힘센 놈이 먹게 돼 있어요, 放送은. 그게 放送의 屬性이에요. 100年 동안, 90年 동안 그래왔어요.’ ‘放送은 흔한 말로 예쁜 女子 보고…’ 等等. 나중에 이효성 放通委員長이 國會 法査委에서 ‘主宰者의 發言이 不適切했다. 聽聞 主宰者는 嚴正한 中立을 지켜야 하는데’라고 是認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나를 解任한 자리에 김상근 牧師가 補闕理事로 들어가 KBS 理事會는 一瀉千里로 고대영 社長에 對한 解任提請案을 냈다.”

    敎授職 抛棄해서라도 지키려던 것은

    - 왜 敎授가 만만한가.

    “隨時로 學校로 찾아와 카메라 들이대며 ‘辭退할 意思가 없느냐’고 묻거나 總長室로 電話를 걸어 ‘姜 敎授를 그만두게 하라’고 壓力을 넣었다. 學校에서 解任되면 KBS 理事職도 自動 解任이다. 當時 國會 敎育委員會 所屬이던 유은혜 議員이 내가 入社했을 때부터 그때까지의 모든 資料를 탈탈 털었다고 들었다. 오죽하면 9月 末쯤 副總長께서 불러 ‘KBS 理事를 그만두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라. 學校에 너무 큰 負擔을 주는 것 같아 停年이 11年이나 남았지만 敎授職을 그만두겠다고 했더니 ‘學校가 좀 더 버텨보겠다’고 해서 고마웠다. 그때 KBS 理事를 自進 辭退했다면 大統領을 相對로 解任處分取消 訴訟을 하는 게 不可能했다.”

    - 訴訟을 하면서 “個人이 巨大 權力과 싸우는 것은 正말 못할 짓”이라고 했다.

    “나를 돕는 사람은 個人 辯護士 한 名인데 大統領 쪽은 當時 公搜處長 1順位로 擧論되던 이광범 辯護士를 包含해 5名이었다. 이런 裁判이니 내 周圍 사람들이 法理로는 이겨도 現實에서 敗訴할 可能性이 높다고 했다. 달걀로 바위 稚氣라고도 했다. 裁判長이 두 番 바뀔 만큼 遲延되는 사이 勝訴하더라도 理事로 復職할 機會가 永永 사라졌다. 1審이 끝난 뒤 大統領 側 訴訟代理人이 政府法務公團 辯護士들로 바뀌더라.”

    - 고대영 前 KBS 社長도 文在寅 大統領을 相對로 解任取消 訴訟을 進行하고 있다. 姜 敎授와 달리 高 前 社長은 1審에서 졌다.

    “얼마 前 高 社長의 2審에 證人으로 出席했다. 大統領 側 訴訟代理人으로 이광범 辯護士가 直接 나왔더라. 高 前 社長이 KBS 在職 時節 잘잘못을 떠나, 解任 過程에서 節次上 違法性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 條目條目 說明했다. 內 케이스가 2審에 影響을 줄 거라고 본다.”

    - 解任處分取消 訴訟 말고도 여러 件의 訟事가 있지 않았나.

    “그렇다. 4年 半 동안 名譽毁損, 侮辱, 特殊傷害 等 告訴·告發로 인해 進行된 訴訟이 30餘 件, 訴訟料만 2億 원이 넘었다. 年金保險 두 個 깨서 버텼다. 한 例로 도그쇼에서 내가 愛犬同好人을 暴行했다며 訴訟이 進行됐다. 그 사람과 同調者들은 나를 辭退시키려는 勞組 側과 緊密히 協助하는 關係였다. 一方的으로 是非를 걸어놓고 오히려 내가 加害者인 것처럼 虛僞 證言을 한 사람이 7名이나 됐다. 裁判에서 내 辯護士가 證人들을 한 名씩 따로따로 불러달라고 要求했다. 강규형이 어떻게 被害者를 攻擊했느냐고 물었더니 앞에서 덮쳤다 뒤에서 덮쳤다 옆에서 덮쳤다 7名의 證言이 다 달랐다. 結局 暴行은 無罪가 났고 KBS 理事 解任 事由도 하나 없어졌다. 오히려 거꾸로 相對便이 暴行上海로 民刑事上 有罪를 받았다. 그런데 大統領 側 上告狀에서 暴行이 問題가 아니라 그 是非 때문에 記事가 난 것 自體가 品位 損傷이라는 어거지 論理를 提示하더라. 寒心한 일이었다.”

    - 文在寅 政府를 ‘類似 全體主義’라고 批判한 根據는 무엇인가.

    “내가 全體主義, 코민테른(共産主義 인터내셔널) 專攻者다. 獨裁라고 하면 다 같은 獨裁인 줄 아는데 權威主義와 全體主義는 根本的으로 다르다. 李承晩, 朴正熙, 전두환 政府는 權威主義 體制다. 權威主義 政府에는 强力한 野黨과 批判 言論이 存在한다. 全體主義에는 批判이 사라진다. 共産黨 1黨 體制에서 批判하는 言論에 재갈을 물리는 中國이 全體主義인 거다. 우리도 只今 全體主義로 가고 있다. 全體主義의 또 하나 特徵은 大衆 動員이다. 마오 體制와 스탈린 體制를 보라. 中國에선 紅衛兵이란 大衆煽動龍 前衛隊를 動員했다. 放送 掌握 過程에서 言論勞組員들이 바로 韓國版 紅衛兵들이었다. 文在寅 大統領에 對한 支持率이 80%일 때 이 政府는 무슨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新任 理事長으로 서울市響 리빌딩

    - 서울市響 理事長으로서 活動이 期待된다. KBS交響樂團 運營委員度 지냈고 서울스프링室內樂祝祭를 강동석 敎授 等과 共同 創設하고 運營했다.

    “初等學生 때 나의 첫 實況 音樂會 觀覽이 김만복 先生이 指揮하는 서울市響 演奏였다. 場所는 南山 國立劇場이고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序曲’ 等이었다. 서울시향은 우리나라를 代表하는 交響樂團임에도 最近 몇 年間 不美스러운 일로 位相이 많이 下落했다. 몇 年 後 音樂監督을 어떤 분으로 모셔올 것인지 論議해야 하고, 嚴格한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피를 輸血하고 演奏力을 높여야 한다. 서울市響 事務局과 團員들 間의 有機的 關係 設定, 協演者와 客員 指揮者 업그레이드, 레코딩 等 해야 할 일이 山積해 있다. 무엇보다 새 代表를 도와 韓國의 代表 오케스트라로서 탱글우드 페스티벌처럼 大衆 속으로 파고드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서울市響의 未來와 音樂에 對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姜 敎授는 비로소 환한 웃음을 지었다.

    #호모루덴스 #放送掌握 #KBS理事會 #서울市響 #新東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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