合理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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認識論 에서 合理論 (合理論, 英語 : rationalism ), 合理主義 (合理主義) 또는 이성주의 (理性主義)는 異性 을 知識의 第一의 根源으로 보는 見解를 말한다. 合理論에서의 眞理의 基準은 感覺的인 것이 아니라 理性的이고 演繹 敵人 方法論 이나 理論 으로 定義된다. 合理論者는 우리의 槪念 知識 이 感覺的 經驗 에서 獨立하여 얻어지는 方法이 存在한다고 主張하며, 經驗論者 는 感覺的 經驗이야 말로 우리의 槪念과 知識의 窮極的인 源泉이라고 主張한다. [1]

오랜 論爭에서 合理論은 經驗論에 反對하는 立場이었으며, 合理論者는 實際는 本質的으로 論理的인 構造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合理論者들은 어떤 眞理는 存在하며, 知性은 이러한 眞理를 直接的으로 捕捉할 수 있다고 主張하였다. 卽, 合理論者들은 根本的으로 참인 어떤 理性的인 原則이 論理 , 數學 , 倫理學 , 形而上學 에 存在하며, 이를 否定하는 者는 矛盾에 빠지게 된다고 主張하였다. 合理論者들은 異性에 매우 剛한 確信을 가지고 있어서 經驗的인 證據나 物理的인 證據는 眞理를 獲得하는 데에 不必要한 것으로 看做하였다. 다시 말해, 우리의 槪念과 知識이 感覺的 經驗으로부터 獨立的으로 얻어지는 두드러진 方法이 있다는 것이다. [2]  이러한 方法이나 理論을 强調하는 程度의 差異는 "知識을 獲得하는 다른 方法에 비해 優越함을 가지고 있다"는 溫乾한 立場부터 理性은 "知識을 向한 唯一한 길"이라는 極端的 立場까지 多樣한 合理主義的 觀點을 낳았다. 前近代의 理性에 對한 理解를 考慮할 때, 合理論은 소크라테스 의 質問하는 生涯나 權威에 對한 懷疑主義者 의 明快한 解說로서의 哲學 그 自體과 같다고 할 수 있다.

政治에서 啓蒙主義 以來로 合理論은 共和主義 , 世俗主義 , 無宗敎 (宗敎的 또는 無宗敎的 理念에 關係 없이 實現 可能한 多元論的 合理主義 方法論의 功利主義를 適用하여 修正된 後記 樣相의 反新論 ) [3] [4] 에 集中된 "理性의 政治"를 强調하였다. [5] 이러한 點에서, 哲學者 존 커팅햄(John Cottingham)은 方法論 으로서의 合理主義가 世界觀 으로서의 無神論 과 어떻게 融合되었는지를 强調하였다. [6]

過去에 特히 17世紀와 18世紀에 合理論者라는 用語는 種種 反聖職者的인, 反宗敎的인 觀點을 가진 자유로운 思想家를 말하기 위해 使用되었고, 時間이 지나면서 이 單語는 뚜렷하게 輕蔑的인 意味를 얻었다. (그래서 1960年에 샌더슨(Sanderson)은 '純全한 合理論子, 卽 普通의 英語에서 後記 判型의 無神論者'라고 얕잡아 말했다.) 超自然的인 것 을 위한 空間이 없는 世界觀을 특징짓기 위하여 合理主義者라는 딱紙를 使用하는 것은 오늘날 더욱 흔하지 않게 되었고, 人本主義者 唯物論者 같은 用語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오래된 用法은 아직 살아 있다.

歷史 [ 編輯 ]

古代 合理論 [ 編輯 ]

피타고라스 [ 編輯 ]

피타고라스 (Pythagoras)가 살았던 時代에 現代의 科學的 方法論이 發達하지 않았으나, 그는 肉體와 靈魂을 區分하고, 靈魂에 絶對的인 知性을 附與하는 古典的 合理主義 槪念을 創案하였다. 그는 著書를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生涯와 理論에 對해서 硏究한 李嵒블리코스 (Iamblichos)의 《피타고라스의 生涯》에 따르면, 피타고라스 는 靈魂中心的 合理主義와 神祕主義의 特徵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人間이 誤謬를 저지르는 理由는 靈魂을 감싼 肉體의 妨害 때문이며, 極限의 遂行을 통해 肉體에서 벗어나 靈魂으로 化하는 것이 人間의 目標라고 하였으며, 優越함과 劣等함을 나눈 다음, 靈魂(不變하는 永遠의 存在)으로 回歸하는 삶을 優越함, 肉體的 情熱에 이끌려지는 삶을 劣等함으로 보았다. 또한, 그는 靈魂에는 宇宙萬物의 眞理가 內在되어있지만, 그것이 輪廻를 통해 다른 肉體에 옮겨가게 되는 同時에 稀微해지기에 모든 人間을 태어날 때부터 普遍에 對한 漠然함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主張하기도 하였다. 後날 形成된 新피타고라스 學派 도 이 基盤 위에 成立되었으며, 이 學派에서 輩出된 필롤라오스 , 알크마이온 는 解剖學者 및 數學者로 有名하다.

플라톤 [ 編輯 ]

플라톤 (Platon)은 피타고라스 · 소크라테스 · 파르메니데스 의 思想을 深化 및 발전시켜 普遍者人 ' 이데아 '(idea) 槪念을 形成하였다. 그는 이데아라는 萬物에 內在된 普遍者를 아는 것이 事物의 運動과 特性을 把握할 수 있는 唯一한 길이며, 單純한 感覺으로 把握한 內容은 가지式(假知識)에 不過하기에 事物의 本質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志向性은 그의 著書 《 파이돈 》·《 티마이오스 》·《 饗宴 》에서 確認할 수 있다.

키티온의 제논 [ 編輯 ]

키티온의 제논 (Zenon of Kition)은 스토아주의 理論家이다. 그는 宇宙(眞理·普遍)를 小宇宙와 大宇宙로 나누고, 人間이 小宇宙의 部分的 참認識을 통하여 小宇宙를 完全히 把握할 수 있고, 確固히 把握된 小宇宙가 모여서 全體를 貫通하는 眞理인 大宇宙에 到達할 수 있다는 古代 合理論的 見解를 내보였다. 그는 여기서 플라톤 과 마찬가지로 人間의 認識을 情慾에 빠진 不完全한 認識인 感覺과, 참된 認識인 異性(logos)으로 나누었지만, 이 둘 모두 宇宙에서 派生된 것이며, 事實은 根本的으로 하나라고 하였다. 人間이 한 事物에 對해서 理性的인 思考를 하기 위해서는 現象에 對한 끊임없는 疑心이 同伴되어야 함을 强調하였으며, 여기서 '끊어지지 않는 疑心' 事物에 對한 完全한 定款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肉體的 認知人 感覺과, 合理的인 疑心과 끊어지지 않는 事由로 代辯되는 定款을 區分하였으므로 合理主義者라고 할 수 있다. 또한, 人間은 物質로 이루어져 있으며, 物質의 本然 屬性은 善하기에 物質에 對한 本然 屬性의 貫通은 곧 最高善과의 합치라고 하였다. 人間의 精神도 本院物質에서 비롯되었다고 主張했다는 點에서 唯物論的 合理主義者라고 할 수 있다. 그의 哲學은 合理主義者인 바뤼흐 스피노자 에 依해 繼承되었다.

플로티노스 [ 編輯 ]

플로티노스 (Plotinos)는 신플라톤주의 의 原形을 作業한 人物이다. 그의 일자(Hen 또는 To Hen, 一者)說은 그의 思想이 '流出說(Emanationstheory, 流出說)'의 큰 範疇 안에 包含되게 하는 原因이 되었다. 日子설 또는 日者論은 時間과 空間의 制約을 받지 않는 하나의 毁損될 수 없는 眞理 또는 絶對者가 萬物을 派生시킨다는 哲學 理論이다. 플로티노스는 이러한 槪念을 플라톤의 思想집에서 얻어냈으며, 自身의 著書(《 엔네아데스 》)에서 이에 對해 詳細히 論했다. 플라톤도 自身의 著書에서 '一字'라는 槪念을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日子에 對한 論議를 相當히 漠然한 水準에서 끝마쳤고, 이데아라는 形而上學的 普遍者에 集中했다. 플로티노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認識論的인 問題를 넘어서 世界 全體를 아우를 수 있는 日子라는 槪念에 相當한 關心을 가졌고, 이 日子라는 槪念의 派生 原理를 밝혀내기 위해 努力했다.

그는 여기에 創發(Emergence)이라는 槪念을 더하였다. 創發은, 日子에 依해 派生된 派生物들이 尙存하면서 生成되는 統一性, 自發性이다. 日子의 派生物에 不過한 人間이 스스로 能動的인 理性 思惟를 통해 美와 醜를 判斷하고 最高善으로 進入할 수 있는 理由는 모두 스스로가 가진 內的 創發性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理性的 判斷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그러했던 것처럼 觀照(觀想, Theoria)라고 稱했다. 또한, 이데아를 뛰어넘는, 甚至於 이데아를 派生시킨 日子에 關해 集中을 한 德에 새로운 局面을 맞이한 플라톤주의에서 '이데아'의 重要性은 相對的으로 稀薄해지게 된다. 反面, 모든 萬物을 派生시키는 에너지의 集積體人 일자, 卽 絶對者에 集中이 쏠리면서 그의 플라톤주의 體系는 더더욱 神祕主義的이면서 一元論的인 要素를 보이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의 이러한 屬性은, 後날 히포의 어거스틴(Augustine of Hippo)에 依해 基督敎의 世界論에 吸收가 되는 理論的 背景이다.

그의 論理에 따르면, 日子는 그 本源的 特性으로 '無限한 供給'(Fluxus, '無限한 넘침'이라고도 한다)이 있다. 日子에 依한 無限한 供給은 精巧한 精神(Nous)을 낳으며, 精神은 靈魂(Psyche)을 낳고, 靈魂은 物質(Hyle)을 낳는다. 靈魂의 派生物이자 부차物인 物質宇宙(以下 萬物)는 그 形象 너머의 그 本質을 보면 '先(善)'의 法則이 內在된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物質宇宙는 그 自體로 本質에서 멀어지는 惡(惡)의 屬性을 지니고 있다. 오직 이를 바로 잡고 本質, 卽, 選의 原理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觀照' 뿐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理性的 思惟의 重要性을 强調했다고 볼 수 있으며, 善意 法則이 內在된 要素는 '非存在'가 아닌 '存在'가 될 수 있는 要件이자, 이데아를 통해 本質이 知覺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萬物은 事實 日子의 德에 依한 派生物이다. 그러나, 精巧하지 못 한, 混沌의 狀態로 下向(下向)하는 '狀態'가 存在하는데, 이를 惡(惡)이라고 規定하였다. 卽, 그에게 있어서 線은 精巧함의 原因인 完全性의 追求, 그리고 그러한 狀態에 있으며, 이와 反對되는 混沌과 不調和, 卽, 이러한 것으로 가득한 狀態를 '暗黑'이라고 한다. 暗黑은 악에 屬하며, 하나의 根本的인 存在로부터의 充滿에서 完全히 멀어진, '非存在'이다. 그의 미추 理論에서도 이러한 立場을 주된 論點으로 넣었다. 또한, 그는 모든 것은 日子에 依해 派生된다는 것을 플라톤주의에서 明示함으로써 確固한 形而上學的 一元論의 立場을 固守하게 됐다.

中世 合理論 [ 編輯 ]

西歐 社會의 境遇 4世紀부터 始作하며, 5世紀에 접어들면서 基督敎 思考觀이 剛하게 자리 잡게 되었기에 合理論的 事故는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反面, 中東 地域의 境遇는 신플라톤주의 事故가 그대로 維持되고 있었기에 수많은 醫學者와 科學者가 排出되면서 合理論의 脈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는 7世紀부터 아랍 地域이 이슬람敎를 받아들인 뒤에도 維持되었는데, 學者들은 知識과 理性을 强調하는 이슬람敎 特有의 敎理 때문인 것으로 分析하고 있다.

自費르 이븐 하이얀 [ 編輯 ]

킨디 [ 編輯 ]

파라비 [ 編輯 ]

이븐 알하이삼 [ 編輯 ]

이븐 詩나 [ 編輯 ]

近代 合理論 [ 編輯 ]

르네 데카르트 [ 編輯 ]

데카르트 는 最初의 近代的 合理論者이자 近代 哲學 의 아버지로 불린다.

르네 데카르트 (Rene Descartes)는 最初의 近代的 合理論者이자 近代 哲學 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를 뒤따르는 西洋 哲學의 多數는 그의 著述에 對한 應答이다. 데카르트는 永遠한 眞理에 對한 知識은 오직 理性 單獨으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知識人 物理學에 對한 知識은 科學的 方法의 도움을 받은 世界에 對한 經驗을 要求한다. 그는 또한 꿈은 感覺的 經驗처럼 眞짜처럼 나타나지만 꿈은 사람에게 知識을 提供할 수 없다고 主張하였다. 또한 의식된 感覺的 經驗은 幻想의 結果일 수 있기 때문에 感覺的 經驗은 그 自體로는 疑心받을 수 있다. 이러한 結果로 데카르트는 合理的인 眞理를 追求하려면 모든 實際에 對한 믿음을 疑心해야 한다고 演繹하였다. 그는 이러한 믿음을 《 方法 序說 》 等에서 仔細히 說明하였다. 데카르트는 知性 또는 理性으로 認識될 수 없는 것은 知識으로 分類될 수 없다는 것에 따라 眞理를 얻기 위한 方法을 開發하였다. 이러한 眞理는 데카르트에 따르면 어떠한 感覺的 經驗도 없이 얻어진다. 理性으로 얻어진 眞理는 純粹한 演繹的 過程을 통하여 直觀으로 얻을 수 있는 要素로 쪼개질 수 있다.

데카르트는 그의 方法의 結果로서 理性은 單獨으로 知識을 決定할 수 있으며, 感覺으로부터 獨立的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主張하였다. 例를 들어, 데카르트의 有名한 宣言인 코기토 에르고 숨 은 物質에 對한 어떤 種類의 經驗에 앞서서 到達한 結論이며, 어떤 것의 存在를 疑心하는 것은 내가 思考하기 위해서 存在한 것을 證明한다는 것을 意味한다. 다시 말해, 어떤 것이 疑心하는 것을 疑心하는 것은 터무니가 없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에게 이것은 모든 形態의 知識이 어떤 것에 根據를 두어야 할지에 對한 疑心할 餘地 없는 原理였다. 데카르트는 몸의 本質과 마음의 本質을 區別하는 形而上學的 二元論을 堅持하였다. 데카르트의 體系에서 몸과 마음의 本質은 서로로부터 獨立的이기 때문에 이 重大한 區分은 解決되지 않은 채로 남았으며, 精神-肉體 問題를 惹起하였다.

바뤼흐 스피노자 [ 編輯 ]

르네 데카르트 의 方法的 會議를 받아들인 同時에 二元論을 批判하고, 唯物論的인 一元論的 合理主義를 主張한 近代 哲學者이다.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는 人間과 人間의 精神을 包含한 모든 存在를 宇宙物質의 一部라고 하였으며, 이러한 그의 뜻은 '神 卽 自然'(Deus sive Natura)이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다. 그는 認識되는 모든 事物은 能産的 自然(Natura naturans)인 本質과, 所産的 自然(Natura naturata)인 樣態(Modus)로 나뉜다고 보았으며, 이 樣態의 變化의 把握 與否에 따라 該當 事物에 對한 理解度가 달라진다고 하였다. 《 幾何學的 順序로 證明된 倫理學 》(Ethica)에 따르면, 情熱에 싸인 人間은 事物에 對해 受動的인 立場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事物 體系의 因果論的 原理에 歸屬되는 삶을 살게 된다. 反面, 한 事物에 對해 데카르트的 會議를 하게 될 境遇 이성지(理性知)的 側面이 發達하여, 事物의 眞僞를 가리는 定款의 狀態에 進入했다고 할 수 있다. 《 知性改善論 》에 따르면, 이 狀態에 進入한 境遇 事物의 整合性을 따지게 되며, 이는 直觀知(直觀知)로 나아가는 手順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神的 狀態에 들어서지 않은 모든 人間은 한 事物에 對해서 수많은 認識 狀態가 共存하고 있기에 部分的으로 受動的이며, 또한 部分的으로는 能動的인 立場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理性指摘 思考에 익숙치 않은 人間일 境遇 自然에 對해서 觀照的인 立場이라기보단 受動的인 立場을 取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立場은 그가 事物에 對한 이성지로부터 나오는 整合的 思考가 完全히 幾何學的 原理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主張한 것과 連結되며, 同時에 肉體的 感覺은 無作爲的이며, 任意的인 것이라고 判斷한 것과도 連結된다.

그의 思想에 影響을 준 데카르트가 心身二元論을 展開한 것과 달리 그는 心身平行論을 展開하였으며, 定礎主義 敵이라기보단 正合奏의 敵이었다. 그는 肉體와 精神은 하나이며, 이 두 가지 모두 宇宙物質에서 起源된 要素라고 보았다. 또한, 그는 그의 著書들에서 人間이 事物을 認識하는 것, 그리고 다른 事故를 接하는 것, 自身이 行하는 事故를 自身이 다시 接하는 것 等等 수많은 狀況을 나눠서 人間의 認識이 어떠한 原理를 갖고 있는지를 糾明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人間이 한 事物에 對해서 直觀指摘 立場을 갖는다는 것이 곧 最高善에 向하는 것과 같다고 主張했다는 點에서 키티온의 제논 을 包含한 스토아주의 者들의 思想과 類似點을 發見할 수 있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 編輯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Gottfried Wilhelm Leibniz)는 微積分學, 地質學 및 物理學에서 劃期的인 業績을 이루어낸 科學者이자 哲學者이다. 그의 理論에 따르면, 世界는 無數히 많은 單一不可分(單一不可分) 屬性을 갖춘 同時에 能動性을 지닌 普遍者에 依해 構成되며, 이를 모나드(Monad)라고 稱하였다.

모나드는 그 表象力이 程度差에 따라 無機的 自然物에서 神에 이를 수 있으며, 이 사이의 間隙에서 수많은 感情과 마음이 생겨난다. 모나드는 本來 各各 獨立的이고 서로 關係가 없는 普遍者이지만 이 모나드들이 世界의 統一을 形成할 수 있는 理由는 바로 神에 依한 '豫定造化'(豫定調和) 때문이라고 하였다. 世界가 神의 豫定造化이며 最善의 秩序를 얻고 있다고 보는 것에서, 樂觀主義的 立場을 堅持하고 있었으며, '理性'(Logos)이란 이 調和를 正確히 捕捉해낼 수 있는 能力을 뜻한다.

따라서, 그는 認識論에서는 感覺을 源泉으로 하는 經驗論에 反對하여, 合理論의 立場에서 모나드의 表象作用에 基礎를 둔 生得的 合理性으로부터 眞理의 成立을 說明하고, 眞理의 基準을 明白性과 無矛盾性에 두었다. 超時間的인 永遠의 眞理인 '理性의 眞理'의 體得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論理學으로 充分하지만, 다른 한便 經驗的인 自然法則 等의 '事實의 眞理'는 '充足理由의 原理'를 必要로 한다고 했다. 그의 論理學 思想은 數學的 思想의 基礎를 樹立한 것으로서 評價받고 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 編輯 ]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임마누엘 칸트 의 超越論的 觀念論을 批判한 哲學者이며, 르네 데카르트 定礎主義 敵 合理論을 固守 및 繼承하려고 한 學者이다. 그러나, 그의 哲學은 1809年 《人間 自由의 本質에 關하여》를 낸 起點으로 電氣 思想과 後期 思想으로 나눠서 봐야 할 만큼 時期에 따라 그 內容 差異가 甚하며, 스스로도 傳記 哲學을 否定的으로 評價하였다. 後期 思想의 境遇는 浪漫主義와 宗敎的 神祕主義의 影響을 剛하게 받았기에, 본 文書는 그의 電氣 思想만 다룬다.

《哲學의 原理로서의 自我》에서 그는 그間 哲學이 區分했던 主觀과 客館을 넘어선 絶對的 本質이 存在한다고 봤으며, 따라서 兩分論的 立場(피히테의 立場)을 强烈하게 批判했다. 그는 이러한 絶對者를 知的 直觀으로 把握하려 했으며, 이 地點에서 合理論者라고 할 수 있다. 그는 絶對者를 絶對的인 同一性을 지닌 存在로 說明했으며, 이것은 오로지 知的 直觀에 依해 把握되는 頑固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宇宙物質 卽, 自然의 配列과, 이 配列에 따른 모든 精神的 作用은 絶對者에서 비롯되며, 어떠한 見解가 誤謬인가 아닌가를 判斷하는 基準은 이 配列을 主導하는 絶對者의 흐름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라고 나눠져야 한다고 主張했다. 또한, 스피노자 로부터 樣態論을 얻고, 그것을 繼承하며, 自然은 저마다 다른 潛在性(Potenz)을 갖고 있으며, 이 潛在性이 無限에 가까워지면 그것이 精神을 構成하는 原理가 된다고 하였다. 卽, 그는 物質이 抽象的이고 同時에 存在論的인 '精神'의 位置에 到達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立場은 美(美)와 秋(醜)의 槪念에도 適用되었다.

現代 合理論 [ 編輯 ]

1960年代 末부터 近代主義에 對한 批判이 深化되면서 오늘날 合理論이라고 單純히 이름붙이는 것은 稀貴한 것이 되었으나, 感覺主義의 限界로 인해 1990年代 末부터 오히려 다양한 種類의 特殊化된 合理論이 確認되고 있다. 例를 들어 로버트 브랜덤 은 《아티큐레이팅 리즌스》( Articulating Reasons )에서 自身의 過程(programme)의 一面을 위한 이름으로서 合理論的 益스프레是非즘(rationalist expressivism)과 合理論的 프래그머티즘(rationalist pragmatism)이라는 用語를 使用하였고, 命題의 內容은 "必須的으로 前提와 推論의 結論으로서 모두 作用한다"는 主張인 言語的 合理論(linguistic rationalism)을 윌프리드 셀러스 의 主要 理論으로 認定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傾向은 어디까지나 言語哲學 內에서의 合理論的 傾向일 뿐, 綜合的인 意味에서의 合理主義라고 하기 어렵다. 綜合的인 意味에서의 合理論的 傾向과, 言語哲學的인 意味에서의 合理論的 傾向 사이의 折衷을 試圖하는(John McDowell) 흐름도 存在하며, 綜合的인 性格을 갖는 合理主義者度 現代哲學의 分派에서 少數의 位置를 占하고 있다.

言語的 合理論 [ 編輯 ]

노엄 촘스키 [ 編輯 ]
존 맥도웰 [ 編輯 ]
로버트 브랜덤 [ 編輯 ]

綜合的 合理論 [ 編輯 ]

브랜드 브랜샤드 [ 編輯 ]
비토리오 膾슬레 [ 編輯 ]
알랭 바디우 [ 編輯 ]

折衷的 立場 [ 編輯 ]

임마누엘 칸트 [ 編輯 ]

近代 哲學 의 核心的 人物 中 한 名으로서, 칸트 (Immanuel Kant)는 合理論이란 用語를 定立하였다. 칸트는 人間의 認識은 自然法 을 構築하며, 理性은 道德性의 源泉이라고 主張하였다. 이러한 그의 思想은 現代의 思想, 特히 形而上學 , 認識論 , 倫理學 , 政治 哲學 , 美學 과 같은 分野에서 主要한 影響力을 發揮하고 있다. [7]

칸트는 自身의 認識論을 超越的 觀念論이라 이름붙이고 自身의 有名한 著作인 《 純粹理性批判 》에서 이러한 觀點을 처음 提示하였다. 여기서 칸트는 合理論과 經驗論의 도그마 에는 둘 다 根本的인 問題가 있다고 主張하였다. 合理論者에게는 純粹 理性은 自身의 限界를 넘어, 神의 存在 , 自由 意志 , 人間 靈魂의 不滅과 같이, 可能한 모든 經驗의 領域을 넘는 것들을 認識한다고 主張할 때 誤謬를 일으킨다고 主張하였다. 칸트는 이러한 客體를 物自體 라고 불렀으며, 可能한 모든 經驗을 뛰어넘는 客體로서의 그들의 地位는 우리가 그것들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主張하였으며, 이러한 意味에서 "廣義의 理性(Vernunft)을 이성의 裁判臺에 세워야 한다."라고 主張하였다. 經驗論者에 對해서는 經驗이 基本的으로 人間의 知識에 必要하다는 것은 옳은 反面에, 理性은 一貫的인 생각으로 經驗을 바꾸기 위해서 必要하다고 主張하였다. 이렇게 칸트는 理性과 經驗은 둘 다 人間의 知識에 必要하다고 結論내렸다. 같은 方法으로 칸트는 思惟를 오로지 分析으로만 看做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主張하였다. 칸트의 觀點에서 " 아 프리오리 "한 槪念은 存在하지만, 그것들이 知識의 擴張으로 이어지려면, 經驗的 데이터와 關係를 맺어야 한다. [8]

合理論에 屬하는 思潮 [ 編輯 ]

折衷的 立場에 屬하는 思潮 [ 編輯 ]

合理論에 對立的인 思潮 [ 編輯 ]

各州 [ 編輯 ]

  1. Markie, Peter (2015年 1月 1日). Zalta, Edward N., 編輯. 《Rationalism vs. Empiricism》 Summer 2015板.  
  2.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Rationalism vs.
  3. Boyd, Richard, "The Value of Civility?," Urban Studies Journal , May 2006, vol. 43 (no. 5?6), pp. 863?78 Archived 2012年 4月 1日 - 웨이백 머신 Retrieved 2013-01-13.
  4. FactCheck.org .
  5. Oakeshott, Michael,"Rationalism in Politics," The Cambridge Journal 1947, vol. 1 Retrieved 2013-01-13.
  6. Cottingham, John. 1984. Rationalism. Paladi/Granada
  7. “Immanuel Kant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 Plato.stanford.edu. 2010年 5月 20日 . 2011年 10月 22日에 確認함 .  
  8. “Excerpt from the Encyclopedia Britannica” . 2012年 12月 27日에 原本 文書 에서 保存된 文書 . 2016年 5月 29日에 確認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