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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統一 最大 障礙物은 ‘文明隔差’ 統一 後 聯邦制로 가야”|신동아

“統一 最大 障礙物은 ‘文明隔差’ 統一 後 聯邦制로 가야”

北韓 民主化 運動家 金榮煥

  • 구해우 | 未來戰略硏究院 院長 송홍근 記者 | carrot@donga.com

    入力 2015-09-22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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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國에 ‘統一 韓半島는 中立’ 確信 줘야”
    • 美·中 사이 中立모델, 韓 國益 背馳 안돼
    • 北 經濟難 好轉…過去 잣대 分析 말아야
    • 北 住民, 體制不滿·反體制意識 弱해
    “통일 최대 장애물은 ‘문명격차’ 통일 후 연방제로 가야”
    그는 哲學·史上型(型) 人間이다. ‘革命’을 꿈꾸지 않았다면 ‘이데올로그’로 남았을 것이다. 그의 著述을 읽지 않고, 그와 말 섞어 討論해보지 않으면 그를 誤解하기 쉽다. 왼쪽 劇團에서 오른쪽 極端으로 移動했다는 式의 ‘띄엄띄엄 人物評’이 代表的이다. 그는 사람됨을 갖춘 哲學·思想家다.

    金榮煥(53). 서울大 法大 82學番. 1986年 팸플릿 ‘鋼鐵書信’을 썼다. ‘主思派 代父.’ 運動圈에 反美親北 雰圍氣를 擴散했다. 1991年 潛水艇을 타고 密入北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듬해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創黨했다. 北韓의 實際에 幻滅을 느껴 1997年 민혁당을 解體했다. 只今껏 北韓 民主化 및 人權 運動에 穿鑿했다.

    “信念에 反해 行動한 적 없다”

    그는 30年 넘게 現場에서 平壤을 들여다본 손꼽히는 北韓 專門家다. 이따금 페이스북에 남기는 北韓 懸案 分析에 놀랄 때가 있다. 根據가 살아 있고 論理가 날카로운 데다 後날 的確한 것으로 確認돼서다. 9月 9日 서울 中區 태평로에서 그를 만났다.

    ▼ 1980年代 主思派의 常直 格인 人物입니다. 1990年代 末 北韓 民主化 運動家로 變身한 것으로 압니다. 轉向이다, 變節이다, 路線 轉換이다, 말이 많은데요.



    “旣存에 가진 進步觀이랄까, 歷史 發展에 對한 생각이 社會主義 崩壞를 보면서 흔들렸습니다. 韓國 社會의 民主化 過程을 보면서 韓國에서 革命家로 사는 게 옳으냐 하는 懷疑도 들었고요. 北韓 人權 狀況이 極端的으로 劣惡하다는 것을 다양한 經路로 確認, 再確認했습니다.

    變節은 確實히 아닌 게, 信念에 反해 行動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에 對한 생각이 바뀐 것은 분명합니다. 北韓 問題는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니라 北韓의 眞實을 깨달은 것이고요. 民衆의 自由와 平等, 解放을 위해 鬪爭해온 이들이 民衆의 人權을 짓밟는 北韓을 支持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죠”

    ▼ 北韓의 主體思想과 황장엽(1923~2010) 氏의 ‘人間中心의 哲學’은 다르다는 見解를 밝혔더군요.

    “오랫동안 硏究해본 結果, 北韓 主體思想은 論理的 完結性을 갖지 못한 것 같아요. 김일성式 民族共産主義, 황장엽 先生의 主體哲學, 首領論이 뒤섞였습니다. 예컨대 마르크스주의는 辨證法的 唯物論, 史的 唯物論, 階級鬪爭論이 連結고리에 따라 論理的으로 이어집니다.

    民族共産主義, 主體哲學, 首領論은 그렇지 못해요. 황장엽 先生이 만들어 놓은 腦髓론(首領은 社會의 腦髓) 等이 連結고리가 되기는 하는데, 억지로 끼워 넣었다고 하겠습니다.

    마르크스의 唯物論은 人間의 精神的 要素를 意圖的으로 排除했는데, 中世의 觀念論을 排斥하고자 일부러 그렇게 한 것입니다. 황장엽 先生의 主體哲學은 過度한 唯物論을 牽制하고자 人的인 要素, 精神的인 側面을 强調한 것으로 理解합니다. 重要한 點은 北韓에서 主體哲學을 제대로 理解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김일성 一家를 神格化하는 것 以外에는 關心을 갖지 않아요.”

    ▼ 황장엽 氏의 主體哲學, 그러니까 人間中心의 哲學이 本人의 哲學·思想的 見解와 비슷합니까.

    “基本的으로 거의 같다고 봅니다. 다만 황장엽 先生은 1940~50年代에 哲學 工夫를 集中的으로 하셔서인지, 마르크스의 歷史發展論에 相當히 肯定的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저는 마르크스의 階級論과 歷史發展 5段階(原始共産社會-古代奴隸制社會-中世封建社會-資本主義社會-共産主義社會)를 批判하는 硏究를 集中的으로 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황장엽 先生과 생각이 다르기는 한데, 哲學의 根本은 비슷합니다.”

    “西歐 分類表로는 ‘進步’인데…”

    ▼ 7月 31日 作故한 金隨行 서울대 名譽敎授(마르크스주의 經濟學者)에 對한 進步 陣營의 追慕 雰圍氣가 相當했습니다. 歷史發展 5段階에 對해 現在는 어떤 見解를 가졌습니까. 補修, 進步를 가르는 基準 中 하나인 ‘人間 存在의 不完全性’에 對한 생각도 듣고 싶습니다.

    “歷史發展 5段階 主張에 宏壯히 批判的입니다. 마르크스 理論이 그 나름의 成果가 있었고, 現實에서도 一部 肯定的 寄與를 했다고는 하지만 人間 社會의 發展 過程을 올바르게 說明해주지 못합니다. 特히 東아시아 歷史를 歷史發展 5段階에 억지로 끼워 맞추느라 張皇한 理論이 덧붙여지곤 했습니다. 原始共同體라는 表現이 適切하지 않을 수 있겠으나 文明 以前의 原始 社會는 存在했다고 봅니다. 原始 社會와 文明 社會는 前近代와 近代로 나뉩니다. 저는 遠視, 前近代, 近代 3段階로 文明 發展을 나눠요. 마르크스가 밝힌 封建社會는 普遍性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 人間 存在의 不完全性에 對해서는….

    “人間은 進化하는 過程에 있으며 아무리 鎭火해도 完全해질 수 없어요. 人間이 完全해진다는 것은 論理的 矛盾입니다. 完全해지는 것은 進化를 멈추는 것인데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 품에 가진 哲學·思想的 및 政治的 見解를 評價할 때 本人이 保守라고 생각합니까, 進步라고 생각합니까.

    “韓國 社會 基準으로는 宏壯히 曖昧한 사람인 것 같아요. 西歐에서 基準으로 삼는 安樂死, 落胎, 銃器 所有, 多文化 包容 같은 社會的 問題 分類表를 보면 제 생각이 進步와 거의 一致하더군요. 市場과 安保를 重視한다는 點에서는 保守로 分類될 餘地가 많겠고요. 急進的 革命이 아닌 漸進的 變化를 志向하는 側面도 保守라고 볼 수도 있을 터인데, 그렇다고 韓國 社會의 進步라는 분들이 急進的 變化를 追求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北韓을 普遍的 人權을 重視하는 方向으로 변화시키는 運動을 하는 것은 進步라고 하겠는데, 韓國에서 그 反對로 分類되는 것은 神奇한 일입니다.”

    “從北보다 親北이 더 問題”

    ▼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해 社會主義 或은 共産主義 社會를 建設하겠다는 程度는 아니지만, 더욱 平等한 社會, 理想的인 社會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進步的으로 思考하는 이들의 一般的 特徵 아닐까요.

    “完全히 理想的인 社會라는 건 있을 수 없지만, 現實 社會보다 理想的인 社會를 計劃하는 것은 매우 肯定的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國家의 政策 執行이 急進的이어서는 안 됩니다. 市民運動도 마찬가지고요.

    政府에서 하든, 民間에서 하든 더 나은 世上을 만들기 위한 實驗的 努力은 꾸준히 할 必要가 있다고 봐요. 實驗이 蓄積되면 資産으로 남을 겁니다. 20世紀 社會主義 國家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社會 全體를 相對로 한 實驗은 反對합니다.”

    ▼ 민혁당을 建設해 指導했습니다. 함께 活動한 李石基 氏는 內亂煽動罪로 懲役 9年을 宣告받았습니다. 李石基 氏가 헤게모니를 가졌던 統合進步黨은 憲法裁判所 決定으로 解散됐습니다. 從北 勢力에 對해서는 어떻게 봅니까.

    “從北 勢力이 宏壯히 많은 것처럼 알려졌지만 20年에 걸쳐 꾸준히 줄었다고 봅니다.

    마지막 從北 勢力이 李石基를 中心으로 하는 構造였다고 생각해요. 李石基가 拘束되면서 求心點과 動力을 거의 잃었습니다. 從北은 精神文明 發展過程을 보더라도 容納하기가 어렵습니다. 1980年代처럼 情報가 制限돼 있다면 모를까, 人民을 彈壓하고 人權을 蹂躪하는 政權을 追從한다는 게…. 知性의 極甚한 痲痹에서 起因한 것이라고 봅니다.”

    ▼ 從北은 李石基 氏 事態로 實體가 알려지면서 甚大한 打擊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親北’이라고 表現할까요. 反美親北的 思考를 갖고 政治·社會活動을 하는 이들은 如前히 남아 있습니다.

    “어떤 面에서는 그 사람들이 더 問題라고 볼 수 있어요. 從北은 北韓에 心醉해 左右 가리지 않고 그것에만 매달리거든요. 親北이라는 表現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람들은 左右를 살펴봅니다. 北韓에 對해 어느 程度 알면서도 政治的 立地와 利害關係 때문에 그런 스탠스를 取하는 境遇도 있다고 생각해요. 正直하지 못하다고나 할까요.”

    “韓·中 利害關係 相衝 없다”

    ▼ 9月 2日 中國 베이징 톈안먼廣場에서 變化하는 東아시아를 象徵하는 行事가 열렸습니다. 中國의 抗日戰勝 70周年 閱兵式에 朴槿惠 大統領도 參席했습니다. 朴槿惠 政府 外交 戰略의 核心 中 하나가 親中政策이라고 봅니다. 親中政策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 얻을 것은 뭐라고 보는지요.

    “北韓 問題를 解決해 韓國 主導로 統一하는 것이 우리 外交의 長期的 目標가 돼야겠지요. 北韓이 威脅이 되지 않게 管理하는 것도 重要하고요. 中國은 韓國과 北韓 둘 다 友好國家로 만들려고 할 겁니다.

    北韓이 美國 勢力을 牽制하는 緩衝地帶 노릇을 하고 있으나 마음에 안 드는 緩衝地帶日 겁니다. 말썽도 자주 일으키고 中國의 國際的 威信도 떨어뜨립니다. 落第點의 緩衝地帶라고 하겠습니다.

    中國의 國益과 利害關係로만 보면 가장 좋은 것은 韓國 主導로 統一된 韓半島가 北韓보다 高級스러운 緩衝地帶가 되는 겁니다. 韓國의 國益, 利害關係를 봅시다. 韓國 主導로 統一을 이루고 美國과 中國 사이에서 中立化 路線을 選擇한다? 그것이 우리의 理解關係에 크게 背馳되는 것은 아닙니다. 韓國 處地에서 憂慮되는 點이 있겠으나 美國과 同盟關係를 맺은 것은 基本的으로 北韓의 侵略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韓美同盟을 維持하는 것도 같은 脈絡이고요. 따라서 韓中關係의 長期的 利害關係가 相衝되거나 背馳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問題는 韓國과 中國 사이에 아직 信賴가 形成되지 않은 것입니다. 韓半島 統一 以後에도 韓美同盟이 維持되고 駐韓美軍이 駐屯하면서 統一韓國이 美國에 傾倒된 政策을 펼치는 狀況을 中國은 憂慮합니다. 韓國은 短期的으로 中國이 北韓 便만 드는 것을 걱정하는 데다, 長期的으로는 中國이 統一 後 韓半島에 强壓的인 政策을 펴지 않을까 憂慮할 것이고요. 이런 不信 탓에 서로 눈치만 보는데, 統一 以後 中國이 韓國에 어떤 態度를 보일지는 統一로 가는 過程과는 完全히 別個의 問題고, 約束했다고 해서 지켜진다고 壯談할 수도 없습니다.

    確信은 없더라도 어느 程度의 믿음과 信賴가 形成되면 韓國과 中國의 利害關係가 近接할 수 있습니다. 信賴關係를 形成하는 데는 臨界點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은 臨界點에 到達하지 않았고요.

    中國은 統一韓國이 어느 程度 中立的인 緩衝地帶 役割을 하리라는 믿음을 確實히 갖고, 韓國은 中國이 統一 過程에서 우리를 支援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는 瞬間이 臨界點입니다. 그 臨界點에 到達하는 것이 매우 重要하다고 생각해요. 中國이 韓國 主導의 統一 過程에서 일정한 役割을 해야 합니다. 朴槿惠 政府의 大衆政策을 아주 肯定的으로 봅니다.”

    現實에 基盤 둔 外交

    ▼ 親中政策에 對해 懷疑的인 視角도 많습니다.

    “中國에 統一 以後 韓國이 親美 一邊倒 政策을 펴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게 아주 重要합니다. 完全 中立은 아닐지라도 美國에 6, 中國에 4 或은 美國에 5, 中國에 5 程度…. 그러니까 美國에 若干은 가깝지만 中立을 取할 것이라는 믿음을 줘야 해요. 中國 處地에선 北韓이 골치 아픕니다. 韓國이 中立만 取해준다면 韓國 主導로 統一되는 게 中國의 利害關係에 도움이 돼요. 시진핑 政府는 이런 可能性을 자주 내비쳤습니다. 시진핑 主席 任期 內에 變化가 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韓國 主導의 統一을 支持하는 쪽으로 中國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 保守陣營 一部에서는 朴槿惠 政府의 親中政策이 自由民主主義와 普遍的 人權이라는 價値에서 벗어났다고 봅니다. 韓美同盟을 龜裂시키고 있다고도 여기고요.

    “國家 間 外交를 人類의 普遍的 價値와 一體化해 接近하는 것도 問題라고 생각해요. 美國은 文化大革命의 矛盾이 最高潮에 이르렀을 때 中國에 接近했습니다. 엄청난 사람이 죽고 고문당할 때 中國과 外交關係를 맺은 겁니다. 批判的으로 볼 순 있겠죠. 批判할 수는 있으나 外交 政策을 普遍的 價値와 지나치게 一體化하는 것은 適切하지 않다고 봅니다. 人權, 民主主義라는 價値를 내세워 中國과 距離를 두는 것은 適切하지 않아요.”

    “통일 최대 장애물은 ‘문명격차’ 통일 후 연방제로 가야”


    “美國 介入 容認했듯…”

    ▼ 作家 복거일 先生은 ‘신동아’ 이 시리즈 對談에서 韓國의 外交 戰略은 ‘民主主義’ ‘人權’ 같은 普遍的 價値를 中心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强調했습니다. 價値를 基盤으로 하지 않은 外交를 펼치면 洛東江 오리알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글쎄요. 普遍的 價値를 無視할 수는 없지만, 外交는 現實을 基盤으로 해야 합니다. 복거일 先生처럼 民間에서 中國의 人權, 民主主義 問題를 繼續 提起해야죠. 저만 해도 中國 情報機關에서 拷問을 받고 中國 監獄에서 收監 生活도 했지만, 國家의 外交는 달라야 합니다.”

    그는 2012年 中國에서 北韓 民主化 運動을 하다 公安에 붙잡혀 114日 동안 抑留돼 苦楚를 치렀다.

    ▼ 김동길 베이징大 敎授가 最近 “韓國 經濟가 中國에 甚하게 依存하는 狀況이어서 中國이 起枕하면 感氣 程度가 아니라 重患者室에 가야 한다. 따라서 中國이 韓國의 外交 政策을 調整할 지렛대를 갖고 있다”고 評價했습니다. 韓半島가 中國의 勢力圈으로 휘말려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게, 中國 市場이 큽니다. 依存할 수밖에 없어요. 멕시코가 經濟의 壓倒的인 部分을 美國에 依存하는 것과 비슷하겠지요. 經濟的으로 依存하다보면 政治, 社會 等 다른 部分에서도 影響을 받을 수밖에 없는 側面이 分明히 있습니다. 둘 中 하나를 選擇해야겠죠. 마이너스 成長을 甘受하면서라도 中國 依存度를 낮출 것인지, 앞으로도 中國 市場에 依存할 것인지 말입니다.

    韓國人 中 果然 몇 퍼센트가 經濟的 不利益을 甘受하려고 할까요. 어느 水準까지 中國으로부터 影響 받는 것은 甘受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勿論 强壓이나 지나친 干涉을 受容해서는 안 되겠죠. 어느 程度는 우리가 美國에 容認한 것처럼 中國에도 容認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個人的으로 갖고 있습니다.”

    ▼ 朴槿惠 政府가 親中政策에 나선 것은 中國을 통해 北韓의 變化를 推進함으로써 統一을 이룰 수 있다는 判斷에서 비롯된 듯합니다.

    “北韓은 國際的으로 孤立無援(孤立無援)의 國家예요. 그런데 中國을 통하면 世界의 物品을 輸入할 수 있습니다. 世界를 向해 物品을 輸出하지 않아도 돼요. 北韓 水準의 經濟 規模에서는 中國 한 나라에만 輸出해도 됩니다. 中國은 北韓이 숨 쉴 수 있는 唯一한 숨구멍이에요.”

    北韓 內 民主化 運動

    ▼ 러시아도 있죠.

    “아니에요. 러시아가 中國을 代替할 수 있는지 이모저모를 硏究해봤는데, 不可能할 것 같아요. 러시아는 極東에 對한 意志가 弱합니다. 石油 같은 것을 대줄 수는 있겠죠. 하지만 投資, 交易에서 中國의 役割을 代替하는 것은 不可能하지 않나 싶습니다.”

    ▼ 中國이 韓半島 統一에 決定的 役割을 할 수 있다고 보는 쪽이군요.

    “그렇죠. 構造가 그래요.”

    ▼ 2012年 中國에서 檢擧될 때까지 北韓 民主化 運動을 했습니다. 成果와 限界를 말씀해주시죠.

    “限界부터 말씀드릴게요. 北韓은 過去보다는 나아졌으나 나라 全體에 아주 촘촘한 監視網이 깔렸습니다. 작은 事案이라도 摘發되면 想像을 超越할 程度로 殘酷하게 處罰합니다. 家族에까지 禍가 미치고요. 처음 始作할 때 豫想했으나 活動하면 할수록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獨裁 政權에 對한 憤怒를 갖고 活動을 始作한 北韓 사람들이 어느 瞬間 恐怖感에 떠는 겁니다.

    非合法 運動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처음 始作할 때는 누구나 다 初步者예요. 祕密裏에 사람을 組織하는 일이 매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地下活動의 保安 守則에도 서투르고요. 4~5年 活動하면 베테랑이 됩니다. 北韓, 中國을 祕密裏에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쉽게 하고요. 이렇게 獨裁 政權에 對한 憤怒와 敵對感, 革命的 熱情으로 뭉쳐 있다가도 어느 날 恐怖가 밀려와 韓國行이라는 現實的 選擇을 한다든지, 北韓에서 그냥 平凡하게 산다든지 하게 됩니다. 뛰어난 活動家가 監視網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事例가 反復되면서 限界를 切感했죠.

    成果는, 犧牲됐거나 韓國行을 選擇한 이들을 除外한 사람들이 北韓에 눌러앉아 있다는 겁니다. 우리와 連繫가 없더라도 北韓에서 나중에 役割을 하겠죠. 連絡을 다시 取해 支援할 수도 있고요. 中國에서 우리의 敎育을 履修했으나 못하겠다고 그만둔 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분들께 ‘생각이 바뀌면 다시 連絡을 달라’고 했죠. 이런 분이 무척 많습니다. 如前히 北韓 內部에서 民主化 運動을 하는 분들도 있고요.”

    그는 北韓 內部에 民主化 네트워크를 構築하는 일을 했다. 韓國에서 結成한 민혁당 같은 ‘反政府 地下組織’을 꾸리려 한 것이다. 2012年 公安에 逮捕된 것은 中國 內에서 北韓人을 敎育하는 等의 活動을 했기 때문이다.

    ▼ 北韓에서 活動하는 이들 間에 橫的인 連繫도 構築했습니까.

    “그건 엄청나게 危險한 일이죠. 한 사람 걸리면 줄줄이 다 잡혀갑니다.”

    北 經濟難 時期 觀點의 誤謬

    ▼ 北韓 人權 問題와 關聯해 保守右派는 過度하게 政治的 人權을 强調하고, 進步左派는 過度하게 人道的 支援을 中心에 두는 것 같습니다. 北韓 住民 處地에서는 政治的 人權뿐 아니라 生存權的 人權도 重要하다고 보는데요.

    “北韓은 政治的 人權 側面에서 極端的으로 最惡이기에 그 部分에 焦點을 맞추는 게 當然하다고 봅니다. 飢饉 時期에 많은 사람이 굶어 죽은 것을 보면 生存權的 人權에 關心을 갖는 것도 必要하다고는 생각해요. 하지만 北韓 經濟 事情이 持續的으로 改善돼왔습니다. 最近 7~8年 동안 굶어 죽은 사람은 事實上 없는 것으로 確認됩니다.

    1990年代 經濟難 時期의 觀點으로 北韓의 生存權을 얘기하는 것은 適切하지 않은 側面이 있습니다. 經濟難이 解消되면서 貧富隔差가 심해졌습니다. 富裕한 사람은 所得이 엄청나지만 가난한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해요. 必要한 營養을 제대로 供給받지 못하는 이들을 타깃으로 한 救護活動이 現實的으로 可能하다면 神經을 써야 합니다. 補修, 進步 모두 經濟難 時期의 觀點으로 現在를 들여다보는 誤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김정은 體制의 崩壞 可能性은 어떻게 봅니까.

    “김일성, 김정일은 나라는 망쳐놨으나 權力을 掌握하고 維持하는 데는 卓越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이 獨裁에 卓越한 資質이 있대서 金正恩도 그렇다는 保障이 없습니다. 2代에 걸쳐 獨裁에 資質을 갖는다는 것도 무척 낮은 確率일 겁니다.

    金正恩이 비슷한 能力을 가졌는지에 疑問이 있습니다. 김정일은 恐怖와 包容을 아울러 均衡을 맞췄습니다. 金正恩의 行態는 均衡에서 크게 벗어나 있어요. 별을 뗐다 붙였다…말은 못해도 속으로 屈辱感을 얼마나 느끼겠습니까.

    壯談하긴 어렵지만 北韓 體制가 長期的으로 安定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一般 住民이 가진 不滿이나 反體制 意識은 弱합니다. 經濟가 持續的으로 好轉된 것도 影響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 韓半島 統一 戰略은 어떠해야 할까요.

    “김정은 政權이나 金正恩 政權에 準하는 大體 政權과 協商해 統一을 이루는 것은 1%의 可能性도 없다고 봅니다. 北韓 體制 崩壞가 統一의 前提 條件이 될 수밖에 없어요.

    “통일 최대 장애물은 ‘문명격차’ 통일 후 연방제로 가야”

    金榮煥(오른쪽) 氏는 9月 9日 對談에서 “統一 韓半島가 中立을 取하리라는 믿음을 中國에 줘야 한다”고 强調했다.

    “協商에 依한 統一 不可能”

    內容的으로는 吸收 統一的인 要素가 많겠으나 100% 吸收 統一을 追求해서는 안 됩니다. 北韓 體制 崩壞 直後 時差 없이 統一을 이뤄내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中國의 支持를 얻어내야 하고요. 北韓의 엘리트가 景況이 없는 狀況에서 韓國 政府 主導로 統一을 이뤄내는 形態일 수밖에 없지만 北韓의 시스템과 엘리트를 尊重해야 합니다. 完全히 吸收된다는 意識을 北韓 住民들이 가져서는 안 돼요.

    東·西獨의 例에서 보듯 社會主義, 資本主義라는 다른 體制에서 산 것은 길지 않은 時間에 克服할 수 있으나 文明的인 差異는 그렇지 않습니다. 文明 發展은 時間이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南北韓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統治하는 건 거의 不可能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最小 20~30年은 시스템이 分離돼야 해요. 聯邦制 形式이 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統一 過程을 聯邦制 形式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南北 協商으로 이뤄지는 統一은 거의 不可能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統一 以後 國家 運營은 聯邦制가 合理的입니다. 中國-홍콩式 2體制 形式도 長點이 많으나 北韓 住民의 主權을 制限한다는 側面에서 問題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法律的인 側面에서는 南北韓이 같은 權利를 갖는 形態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要컨대 統一 過程의 가장 큰 障礙物은 文明의 隔差이고, 統一 韓半島는 聯邦體制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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