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이 두려운 건 擴聲器보다 全方位 同時多發 心理戰|新東亞

北이 두려운 건 擴聲器보다 全方位 同時多發 心理戰

南北 心理戰 幕前幕後

  • 송홍근 記者 | carrot@donga.com 주승현 | 前 北韓軍 心理戰 制壓助長, 政治學 博士

    入力 2015-09-18 11:08:00

  • 글字크기 설정 닫기
    • 新義州~咸興(北緯 40度)까지 KBS 送出
    • DMZ 미스코리아 競演…北 兵士 ‘헤벌쭉’
    • 軍 當局이 ‘뻥튀기’韓 擴聲器 效果
    • 情報機關의 한류 드라마·映畫 投入 工作
    北이 두려운 건 확성기보다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
    對北 心理戰은 獨裁 政權의 骨幹을 송곳으로 후비는 工作이다. 心理戰은 思想的 防火壁에 구멍을 뚫는 非對稱 武器다. 停戰(停戰) 以後 南北은 말과 論理로 戰鬪했다. 戰爭 後 南北 對立의 實體는 媒體 間 戰爭이다.

    軍事學은 心理戰을 ‘明白한 軍事的 敵對行爲 없이 敵軍이나 相對國 國民에게 心理的 刺戟과 壓力을 줘 政治, 外交, 軍事 面에서 아국에 유리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整理한다. 南北은 心理戰 現場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英國에서 일하다 亡命한 北韓 勞動黨 出身 人士는 이렇게 말한다.

    “1992年까지만 해도 海外에서 ‘南朝鮮’ 사람을 만나면 積極的으로 對話를 나누면서 主體思想을 宣傳하라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 體制에 自信感이 있었던 거죠. 以後엔 말을 섞지 말라더군요. 고꾸라진 것을 人民이 아는 게 싫은 거죠.”

    “여기는 서울입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

    1980年代 大學街는 붉게 물들었다. ‘救國의 소리’는 軍事獨裁 致賀 大學生들의 가슴을 후볐다. 서울 말套로 放送이 進行됐다. 放送 內容이 合理的인 것으로 느껴졌다. 韓國 言論에서 다루지 않는 뉴스를 傳했다. 國家權力을 批判하면서 行動 路線을 傳播했다.

    北韓 當局은 心理戰의 核心 手段으로 라디오를 使用했다. 統一戰線部는 傘下에 평양방송, 平壤FM放送, 救國의 소리, 開城TV放送을 두고 對南 心理戰을 指揮했다. KAL機 爆破 事件 때 “美國 CIA와 安企部의 陰謀다. 問題를 提起하라”고 行動 指針을 下達한 게 代表的이다. 全國大學生代表者協議會(전대협) 祖國統一委員會 幹部로 活動한 河泰慶 國會議員의 記憶이다.

    “救國의 소리 主張대로라면 라디오 放送의 主體는 韓國民族民主前線(한민전)이라는 韓國 內 前衛組織이었습니다. ‘여기는 서울입니다’라는 말로 放送을 끝냈기에 韓國에서 運營되는 地下放送이라고 잘못 안 이도 많았죠. 拉北者, 越北者를 動員해 서울말로 放送했거든요. ‘直選制로 改憲해야 한다’ ‘民主政府 樹立하자’ 같은 슬로건은 情勢에 적합한 것이었습니다. ‘라디오 키즈(kids)’들은 北韓 放送에 歡呼했고요.

    救國의 소리는 美國과 日本의 經濟浸透와 市場開放 壓力을 批判하거나 支配階層의 非理, 不正蓄財를 告發했습니다. 農漁民, 勞動者와 關聯한 問題를 銳利하게 指摘했고요. 主體思想이 不知不識間에 學生들의 精神世界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은 거죠. 對南放送을 聽取하고 그것을 指針으로 삼던 이들이 學生運動의 헤게모니를 掌握했습니다.”

    ‘北韓軍 觀覽用’ DMZ 水泳場

    非武裝地帶(DMZ) 陸軍 ○○師團 ○○重大에는 韓半島에서 가장 높은 곳에 位置한 水泳場이 있다. ‘하늘 水泳場’이라고 稱한다. 北韓의 心理戰 攻勢가 끄트머리로 치닫던 1992年 北韓軍 觀覽用으로 建設한 것이다. 開場 첫해 미스코리아 選拔大會 水泳服 콘테스트를 이 水泳場에서 進行했다. 俳優 李丞涓(47) 氏가 美(美)로 入賞한 競演이다. 北韓 軍人들은 南쪽에서 벌어지는 光景을 肉眼과 望遠鏡으로 뚫어져라 지켜봤다.

    前方部隊의 한 GOP(一般前哨) 大隊長은 “先輩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當時 北側 兵士들이 ‘헤벌쭉’ 했다고 하더라”고 傳했다. DMZ에서 服務하다 脫北한 한 人士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日氣豫報예요. 南쪽에서 ‘人民軍 將兵 여러분, 午後에 비가 내리니 빨래를 걷으세요’라고 放送하면 正말 어김없이 비가 왔습니다. 些少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南韓 放送 內容을 信賴하게 된 데는 日氣豫報가 큰 影響을 미쳤어요. 韓國에 實際로 와서 보니 放送 內容이 모두 事實은 아니더군요. 天國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여겨요.”

    1970~1980年代 首都圈에서 學校를 다닌 이들은 北韓에서 날아온 삐라를 記憶할 것이다. 初等學生이 派出所에 삐라를 가져가면 鉛筆 같은 것을 賞으로 줬다. 北韓은 더는 삐라를 보내지 못한다. ‘眞實의 戰場’에서 敗北한 탓이다. 韓國은 民主化를 이뤄냈으나 北韓은 곤두박질쳤으며 東유럽 社會主義圈은 崩壞했다.

    南北 心理戰은 1962年 北韓이 體制競爭에서 優位를 차지했다는 自信感을 바탕으로 “社會主義 樂園으로 오라”고 擴聲器 放送을 하면서 始作됐다. 이에 韓國이 맞불 放送으로 應戰하면서 對南·對北放送이 말과 論理의 戰鬪를 벌였다.

    “社會主義 樂園으로 오라”

    北이 두려운 건 확성기보다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

    北韓 노동신문은 8月 23日子 6面에서 ‘最後 決戰의 勝利가 눈앞에 있다’고 報道했다.

    北韓이 對南放送을 中斷한 때는 1990年代 中盤이다. 體制競爭에서 劣勢를 確認하면서 自信感을 잃었거나 國軍에게 “入北하라”고 해봐야 意味 없는 울림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反面 對北放送은 더 攻勢的으로 變貌했다. 北韓은 軍人과 住民이 對北放送을 못 듣게 하려고 ‘制壓放送’에 專念했다. 制壓放送으로 妨害한 탓에 對北放送 內容이 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制壓放送도 限界에 부닥친다. 經濟難을 겪으면서 放送裝備 老朽化와 電力難 때문에 制壓 活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2000年 김대중-김정일 頂上會談 以後 南北은 相互 誹謗 中斷에 合意했다. 2004年 將星級 軍事會談 6·4合의(서해 海上에서 偶發的 衝突 防止와 軍事分界線 地域에서의 宣傳活動 中止 및 宣傳手段 除去에 關한 合意書)에 따라 DMZ에서 擴聲器가 꺼졌다.

    2010年 李明博(MB) 大統領은 2004年 노무현 政府 때 撤去한 擴聲器를 天安艦 爆沈에 對한 報復으로 다시 設置했다. 北韓은 擴聲器를 照準 打擊하겠다고 威脅했다. MB 參謀들은 “擴聲器를 틀기에는 危險하다”면서 心理戰 放送 再開를 反對한 것으로 傳해진다.

    對北 心理戰은 獨裁 政權의 아킬레스腱을 겨냥한 匕首(匕首)지만 南北關係를 危險에 빠뜨리는 要因으로도 作用한다. 北韓은 南韓 民間團體가 날려 보내는 삐라에도 敏感한 알레르기 反應을 일으킨다.

    DMZ 擴聲器 心理戰 放送이 轉嫁의 報道인 양 主張하는 말과 글이 亂舞하는데, 이 中엔 誇張했거나 잘못된 內容도 적지 않다. ‘뻥튀기’ 水準의 主張도 나온다.

    “雄~웅 소리만 들렸다”

    南側 前方地域에서 擴聲器 出力을 높이면 낮에는 10㎞, 밤에는 24㎞ 떨어진 地域에서도 放送이 들린다는 게 心理戰 專門家들의 主張이다. 開城에서 北側 DMZ까지 8㎞, 軍事分界線(MDL)까지는 10㎞이므로 그렇다면 開城 市內에서도 擴聲器 放送 內容이 들려야 한다.

    開城 出身 脫北民은 “雄~웅~ 소리만 들렸을 뿐 內容은 알 수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DMZ에 隣接한 開城市 板門郡까지는 내려와야 아나운서가 男子인지, 女子인지, 歌謠 프로그램인지, 對談 프로그램인지 알 수 있었으나 그마저 放送 內容을 알아듣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最長 24㎞ 內 北韓軍과 住民이 擴聲器 放送을 듣는다는 主張은 事實과 距離가 있다.

    擴聲器 放送의 內容을 穩全하게 理解하려면 DMZ 隣接 地域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곳은 住民은 勿論이고 軍人도 자유롭게 接近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擴聲器 放送은 大略 4~6km 範圍까지만 影響을 미치는 것으로 봐야 한다.

    對北放送의 職·間接 影響을 받는 이들은 크게 세 部類다. 첫 番째는 MDL 北쪽 2km를 擔當하는 北韓軍 民警(民事行政警察) 隊員, 두 番째는 韓國의 GOP 部隊에 該當하는 ‘1祭臺’ 軍人이다. 1除隊는 DMZ 바깥쪽 2km 안팎을 擔當한다. 세 番째는 1祭臺 隣近에 居住하는 住民이다. 이들은 居住地域 以外 곳으로의 移動이 遮斷된 채 DMZ 隣近 땅에서 農事를 지으며 산다. 韓國의 民統線 以北 地域과 비슷하다.

    ‘黨員 아들’만 DMZ 勤務

    民警 隊員들은 北韓에서 出身 成分이 좋은 이들로 構成된다. 入隊 前부터 特需 兵科에 選拔돼 思想과 土臺를 檢證받는다. 또한 父母가 勞動黨員이어야 한다. 子息을 民警 隊員으로 入隊시키면 昇進할 때 유리하다. 民警 隊員은 北韓軍에서 最高의 待遇를 받으면서 除隊 後 勞動黨 幹部의 길을 걷는다.

    ‘1祭臺’ 所屬 軍人들도 階級的 土臺가 좋은 집안의 子息들로만 選拔한다. 民警 隊員과 마찬가지로 經費와 搜索을 擔當하지만 ‘끗발’은 떨어진다. 民警 隊員과는 待遇에서도 差別이 있다.

    民警 隊員이든, 1祭臺에 屬하든 心理戰에는 똑같이 露出된다. 新兵 訓鍊을 마치고 非武裝地帶에 配置되면 첫 두 달은 銃은 支給하되, 實彈은 支給하지 않는다. 過去 擴聲器 放送을 난生처음 들은 身柄이 ‘最高尊嚴’을 冒瀆하는 擴聲器에 대고 銃彈을 날려 指揮官을 당황스럽게 한 적도 있다. 13年의 軍 服務 期間 내내 擴聲器를 비롯한 心理戰에 露出된 古參 兵士들은 對北放送에 無神經하다.

    2002年 韓日 월드컵 때 擴聲器 放送을 통해 競技가 生中繼됐고 韓國 選手가 골을 넣으면 北韓 軍人이 ‘와’ 하고 喊聲을 질렀다는 얘기가 나도는데, 現實과 동떨어진 浪說일 뿐이다. 對北放送을 듣고 喊聲을 지른다? 銃殺감이다. 心理戰에 露出된 地域의 軍人과 住民을 相對로 思想敎育과 統制도 이뤄졌다. ‘心理戰의 검은 內幕’ ‘前哨線’ 같은 映像物을 利用해 動搖를 遮斷했다.

    1950年 6·25戰爭 以來 65年間 벌어진 心理戰은 南北이 때로는 攻擊하고 때로는 防禦한 歷史다. 前方地域에서 對北 心理戰은 擴聲器 放送, 傳單 撒布, 電光板과 立看板을 利用한 宣傳이 主를 이뤘다. 北韓의 戰術도 같았다. 對南放送과 傳單, 立看板을 통해 越北을 誘導하면서 體制 優越을 宣傳했다.

    對北放送을 듣고 수많은 北韓 軍人이 歸順했다는 主張도 根據가 貧弱하다. 2004年 擴聲器 放送이 中斷되기 前 10年 동안 休戰線을 통해 歸順한 軍人이 對北放送 中斷 後 10年間 歸順한 軍人보다 數字가 적다. 그렇더라도 擴聲器 心理戰의 影響力이 微微한 것만은 아니다. DMZ에서 勤務한 한 脫北 軍人은 이렇게 말한다.

    “對北 擴聲器 放送에서 뿜어내는 流行歌를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거나 化粧室에서 노래 歌詞를 노트에 옮겨 적다가 摘發된 軍人들이 非武裝地帶 勤務에서 除外되는 것을 봤습니다.”

    “傳單 만지면 손 썩는다”

    새벽에 放送된 宗敎 프로그램 時間에 讚頌歌를 따라 부르던 DMZ 隣近 地域 住民이 保衛部에 摘發돼 公開 銃殺되는 現場을 目擊한 사람이 있다는 얘기도 傳해진다. ‘적지물자(남쪽에서 보낸 傳單과 物品)’를 통해 韓國이 北韓보다 잘산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도 있고, “傳單을 만지면 손이 썩는다” “物品에 毒이 발라져 있다”는 當局의 宣傳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지물자를 使用하는 軍人들도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랩 歌詞나 情緖에 맞지 않는 最新 歌謠를 들으면서 無心코 “썩어빠진 놈들…”이라고 중얼거렸다가 北韓 處地에서 보면 ‘옳은 말’을 한 것이기에 無頉하祈禱 했다. 一部 韓國 人士들은 大型 電光板을 設置해 걸그룹 動映像만 틀어놔도 效果가 있을 것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逆效果가 날 수도 있다. 北韓 軍人들은 韓國의 靑年과는 全혀 다른 成長期를 보냈다.

    “國防部가 對應策으로 建議했고, 決心權者에 依해 確定됐다.”

    한민구 國防部 長官은 9月 10日 國會 國防委員會에서 이렇게 말했다. 朴槿惠 大統領이 擴聲器 放送 再開를 決定했다는 것이다. 國軍은 8月 4日 1師團 地域의 木函地雷 挑發에 對應해 11年 만에 擴聲器를 다시 틀었다. 北韓은 DMZ 南側 地域에 砲射擊을 하는 것으로 對應했다. 48時間의 最後通牒을 내놓고는 準戰時狀態에 突入했다. 一觸卽發의 緊張感이 造成됐으나 北側이 地雷 爆發에 遺憾을 表明하고 南側이 擴聲器 放送을 中斷하기로 하면서 一段落됐다.

    北韓의 遺憾 表明을 이끌어낸 擴聲器 放送에 關心이 集中됐으나 앞서 說明했듯 威力과 影響力이 誇張된 面이 있다. 挑發→危機→對話로 이어진 局面은 擴聲器 放送만이 아니라 複合的 要因이 結合된 것이다.

    2000年代 初盤만 해도 北側은 南側의 高出力 放送을 막을 裝備를 갖추지 못했다. 制壓放送에 動員된 北韓의 擴聲器는 粗惡했다. 消息通에 따르면 北韓이 海外에서 高性能 放送裝備를 購入하고 있다고 한다. 經濟難이 解消되는 狀況에서 電力만 保障된다면 南側의 擴聲器 放送을 맞불 放送으로 制壓할 수 있다.

    北韓이 實際로 敏感하게 생각한 것은 擴聲器 放送을 信號彈으로 삼은 다양한 心理戰 手段의 全方位的 同時多發 再開다. 2013年 2月까지 高位 安保 當局者로 일한 A氏는 이렇게 說明한다.

    “우리에겐 核 못지않은 非對稱 武器가 있습니다. 北韓 體制의 脆弱點은 ‘眞實’입니다. 北韓 政權은 世界로부터 住民을 隔離해 體制를 지켜왔어요. 外部 世界의 眞實, 內部의 眞實이 알려지는 것은 核으로 막지 못합니다.

    北이 두려운 건 확성기보다 전방위 동시다발 심리전

    北韓이 最後通牒을 限 8月 22日, 待避所에서 南北 高位級 接觸 關聯 뉴스를 지켜보는 延坪島 住民.

    北 體制 脆弱點은 ‘眞實’

    具體的으로 公開할 순 없지만 北韓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心理戰을 많이 驅使했습니다. 現在 新義州 라인(新義州~咸興·북위 40度)까지 北韓 住民이 韓國 TV 放送을 視聽하는 게 可能합니다. 受信이 잘되는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北韓 住民이 空中波로 우리 放送을 볼 수 있는 겁니다. 라디오의 境遇 過去엔 周波數가 固定돼 있었지만, 요즘엔 場마당에서 中國産 라디오가 팔립니다. 韓國 콘텐츠가 담긴 USB, DVD도 活潑하게 流通되고요.”

    北側은 “南側의 ‘最高尊嚴’을 辱하지 않을 테니 우리의 最高尊嚴을 건드리지 말라고 執拗하게 要求했다”고 한다.

    “北側은 心理戰 中斷을 要求한 會談이 있었던 事實을 公開하지 말아달라고도 要請했습니다. 北側의 要求에 對해 ‘民間團體에서 하는 일은 막기가 어렵다’는 趣旨로 對應했어요. 南側 政府와 相從하지 않겠다고 해놓고는 苟且하게 그렇게 나온 겁니다.”

    北韓이 느끼기에 全方位, 同時多發 心理戰은 南側이 吸收統一에 本格的으로 나섰음을 뜻한다. 擴聲器 放送뿐 아니라 라디오 放送, TV 放送, 移動式 放送, 傳單, 電光板, 立看板, 各種 宣傳物이 心理戰이라는 이름으로 無差別的으로 展開되면 南側의 攻擊을 無力化할 手段이나 方法이 存在하지 않는다. 北韓은 宣傳·煽動의 나라다. 無差別的 宣傳·煽動의 效果를 잘 안다. 河泰慶 議員은 이렇게 主張한다.

    經濟交流도 有用한 心理戰

    “韓國에서 잘 듣지 않는 AM 周波數 一部를 對北放送으로 돌려야 해요. 라디오 뉴스도 放送해야 합니다. 非公式的으로 國境地方을 통해 韓國 映畫, 드라마나 外部 消息이 담긴 USB, DVD, CD를 北韓에 大量으로 供給해야 하고요. 北韓 內部에서 寒流나 外部 消息에 對한 需要가 宏壯히 높아졌어요. 于先 TV 放送 等 北韓 言論媒體를 韓國에서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조선중앙TV 等 北韓 媒體를 先制的으로 開放해버린 後 우리도 北韓을 向해 더 剛한 TV, 라디오 電波를 쏘는 겁니다.”

    情報當局은 民間團體 等을 앞세워 韓國 映畫, 드라마를 北·中 接境을 통해 北韓에 大量으로 집어넣는 工作을 벌인 것으로 傳해진다.

    多數 專門家는 “北韓이 朴槿惠 政府를 信賴하지 않는다”고 본다. 統一 論議와 關聯해 韓國 政府가 어떤 搜査(修辭)를 갖다 붙인다 해도 北韓 體制 崩壞를 前提로 한 吸收統一 試圖로 認識한다. 擴聲器 放送에 對한 北韓의 反應은 實際的 威脅으로 받아들여서라기보다 體制 存立에 對한 深刻한 不安과 體制競爭 以後 생겨난 劣等感의 發露라고 봐야 할 것이다.

    北韓은 休戰線 隣近 地域을 ‘電線地域’으로 規定해 住民의 通行과 移動을 嚴格하게 統制해왔다. 電線規律에 따라 前方地域 軍人이 駐屯地 밖에서 移動하는 것을 徹底하게 統制했다. 過去에 擴聲器 放送이 影響을 미치는 地域엔 ‘管理가 可能한’ 軍人과 一部 住民뿐이었다. 하지만 狀況이 바뀌었다. 經濟難 以後 住民들은 比較的 자유로운 移動이 可能해졌으며 이 ‘場마당 世代’는 階級性보다 物質과 實利를 重要視 한다. 向後 幹部로 登用될 때 旣成世代와는 다른 行步를 보일 公算이 크다.

    心理戰은 드러내놓고 擴聲器를 트는 方式이 아니라 隱密하고도 精巧하게 이뤄져야 한다. 北·中 國境을 통해 外部 情報가 流入되고 한便으로는 休戰線을 통해 外部 情報가 傳播돼 交集合을 이루면 北韓 政權은 위태로운 地境에 이를 수밖에 없다. 南北 間의 經濟交流 및 協力 또한 有用한 心理戰 手段이다. 南北關係가 좋으면 中斷하고, 나빠지면 再開하기를 反復하는 心理戰은 效果도 貧弱할뿐더러 애꿎은 國民만 戰爭 威脅에 시달리게 할 수 있다.

    隱密하되 廣範圍하게

    또한 北韓 住民을 相對로 한 心理戰은 ‘眞實’만을 담아야 한다. 그래야 韓國 體制에 對한 眞正한 憧憬을 이끌어낼 수 있다. 一部 脫北 人事의 ‘糊口之策’이라는 批判까지 듣는 對北 삐라처럼 粗惡하거나 虛僞 事實, 惡意的 內容을 담아서는 안 된다. 自由民主主義의 優越性을 찾아 韓國에 온 脫北民의 幸福이 對北 心理戰에 담겼다면 韓國 社會가 實際로 脫北民이 待接받고 살 만한 곳이어야 한다.

    카카오톡의 보이스톡으로도 平壤의 知人과 實時間으로 通話가 可能한 世上이다.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 心理戰의 威力은 ‘眞實’에서 나온다. 獨裁集團에 對한 威脅과 脅迫의 手段이 아니라 北韓 同胞를 끌어안는 道具로서 精巧하고 隱密하면서도 廣範圍하게 遂行해야 한다. “明白한 軍事的 敵對行爲 없이 敵軍이나 相對國 國民에게 心理的 刺戟과 壓力을 준다”는 心理戰의 敎科書的 正義를 곱씹어볼 必要가 있다.

    北韓의 對南 心理戰

    인터넷·모바일 利用해 男男葛藤 부추겨


    北韓의 對南 心理戰은 勞動黨 統一戰線部(部長 김양건)가 主管한다. 통전部 傘下에 101連絡所, 813連絡所, 310連絡所, 26連絡所를 뒀는데, 101連絡所가 心理戰 專擔 工作機構다.

    101連絡所 傘下 5局 中 1國은 新聞, 2國은 잡지, 3國은 인터넷, 4國은 音樂, 5國은 文學을 擔當한다. 3國은 네이버, 카카오(다음) 等 韓國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等의 方式으로 對南 心理戰을 벌인다. 韓國 政府 政策을 誹謗하고 對北 友好 輿論을 擴散하는 게 主目的. 5國은 韓國 作家 名義로 內部 宣傳用 體制 宣傳物을 만든다.

    813連絡所는 對南宣傳물을 出版한다. 製作된 出版物을 在日本朝鮮人總聯合會(朝總聯), 在中朝鮮人總聯合會(在中總聯) 等에 配布한다. 310連絡所는 韓國 內 親北團體인 것처럼 僞裝해 活動한다. 白頭한라, 나라사랑實踐連帶 等의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活動한다. 26連絡所는 救國의 소리 放送 等 라디오를 통해 對南 心理戰을 펼치던 곳으로 現在는 ‘인터넷 連絡所’로 改編됐다.

    北韓은 平常時에는 先軍政治의 優越性, 金正恩의 偉大함 等 體制 宣傳 글을 主로 流布한다. 세월호 事件, 天安艦 爆沈 等 懸案이 불거졌을 때는 國內 사이트에 韓國人 名義로 政府를 批判하는 글과 댓글을 集中 揭載했다. 北韓 國家安全保衛部에서 일하다 脫北한 人事는 “100萬 名分이 넘는 韓國人 住民登錄番號를 北韓 工作機關에서 確保했다”고 證言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東亞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推薦記事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의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
    - "漢字路" 한글한자자동변환 서비스는 전통문화연구회 "울산대학교한국어처리연구실 옥철영(IT융합전공)교수팀"에서 개발한 한글한자자동변환기를 바탕하여 지속적으로 공동 연구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입니다.
    - 현재 고유명사(인명, 지명등)을 비롯한 여러 변환오류가 있으며 이를 해결하고자 많은 연구 개발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를 인지하시고 다른 곳에서 인용시 한자 변환 결과를 한번 더 검토하시고 사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 변환오류 및 건의,문의사항은 juntong@juntong.or.kr로 메일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Copyright ⓒ 2020 By '전통문화연구회(傳統文化硏究會)' All Rights reserved.
     한국   대만   중국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