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實力? 藝能感? 냄비는 끓고 있지만…|신동아

實力? 藝能感? 냄비는 끓고 있지만…

스타 셰프가 본 ‘스타 셰프 全盛時代’

  • 박찬일 | 料理師, 料理 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入力 2015-09-22 15: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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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料理의 時代다. 放送마다 料理 프로그램이 人氣다. 이른바 스타 셰프들이 主人公이다. 스타 셰프 養成學科마저 생겨났다. 이 絢爛한 料理의 時代는 얼마나 持續될까. 그 自身 스타 셰프인 박찬일 料理師가 觀察한 스타 셰프 時代의 빛과 그림자.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空中波 텔레비전 3곳 出演 및 諮問 要請, 라디오 2곳 出演, 出版 依賴 1곳, 出版할 書籍 推薦辭 依賴 1곳, 케이블텔레비전 出演 涉外 3곳, 綜編채널 出演 涉外 1곳, 百貨店 料理쇼 出演 涉外 1곳, 政府(農林水産部) 懇談會 招請 1곳, 政府 傘下機關 講演 涉外 1곳, 地自體 講演 涉外 1곳, 圖書館 講演 涉外 1곳…”.

    最近 筆者가 連絡받은 各種 出演 涉外의 大綱이다. 이 밖에도 記錄하지 않은 小小한 온갖 連絡이 文字 그대로 殺到했다. 筆者는 冊을 出刊하거나 原稿를 쓰기 때문에 元來 涉外 要請이 많은 便인데도 엄청난 變化를 實感한다.

    좀 웃기는 얘기지만 한 輸入 自動車 론칭쇼에서 料理를 좀 해줄 수 있느냐는 提案까지 받았다. 費用을 얼마나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材料費와 수고料를 따져 對答했다. 500萬 원이 넘지 않는 費用이었다. 그러자 擔當者가 아주 難處한 듯 한참 뜸을 들였다. 나는 “最小限의 費用이라 깎아드리기 어렵습니다” 하고 追加로 鄭重히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저희 豫算이 1500萬 원 잡혀 있는데 너무 적게 부르셔서….”

    ‘스타 셰프 養成學科’



    最近 한 料理雜誌를 뒤적이다가 놀라운 廣告를 하나 發見했다. 한 料理專門學校에서 내놓은 廣告였다. 나는 눈을 씻고 다시 봤다. 募集 學科에 아주 특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無慮 ‘스타 셰프 養成學科’였다. 스타 셰프를 養成한다니. 헛웃음이 나오는 程度가 아니라,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러 同僚 後輩들이 이 廣告를 보고 憂慮 섞인 連絡을 해왔다. 너무들 한다, 이게 무슨 짓이냐, 選任級 料理師들이 當場 뭔가 發言해야 한다, 아이들 다 망치겠다, 이런 意見이 나왔다.

    結局 아무 意見 表明을 하지 않았지만, 입맛이 썼다. 스타 셰프를 養成하겠다는 意志가 眞짜라고 해도, 그게 可能한 일인가. 훌륭한 名匠 셰프가 될 수 있는 基礎를 가르치겠다면 그것은 可能하다. 勿論 2年의 在學 期間에 初步的인 土臺를 잡아준다는 뜻이겠다.

    그런데 스타 셰프란 文字 그대로 大衆의 人氣를 擔保하는 人氣人을 말한다. 그것을 어떻게 養成하겠다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스타 셰프란 그야말로 偶然히 誕生한다. 實力이 좋다고 해서 스타가 되는 것도 아니고, 藝能感이 있거나 우연한 機會에 大衆의 關心을 끌게 된 境遇에나 可能하다. 그런데 그걸 ‘陽性’하겠다고? 이러다가 양현석과 박진영이 셰프를 키우겠다고 나설 일이다.

    이 學科와는 關聯 없지만 적어도 이른바 ‘스타 셰프’를 前面에 내세워 學生을 募集하는 專門學校가 늘고 있다. 志望生이 全部 該當되지는 않겠지만 多數가 그 셰프의 名聲에 반해서 支援하게 될 것이다. 서울의 한 專門學校는 한동안 에드워드 卷(권영민 氏)을 모델로 내세워 學生을 募集했다. 그에게 附與된 職責은 學長級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正式 커리큘럼 講義는 거의 없고, 가끔 特講하는 條件이란다.

    最近에는 그 人物이 바뀌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人氣 絶頂인 최현석 氏다. ‘冷藏庫를 付託해’라는 프로그램(JTBC)으로 높은 人氣를 누리게 된 料理師다. 그도 아마 비슷한 條件일 것이다. 이 밖에 ‘마스터셰프 코리아’(올리브TV)로 알려진 江레오 氏도 某 專門學校의 學科長級 待遇를 받고 廣告에 參與한다.

    一般 大學의 調理學科에서는 아직 이런 움직임이 없지만, 學生 募集에 어려움을 겪는 專門學校(雇傭勞動部 所管의 2年制 職業學校)에서 主로 스타 셰프 마케팅을 活潑하게 펼친다. 이런 마케팅이 問題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施設과 탄탄한 講師陣, 優秀한 材料와 學事 日程 投資가 더 優先인 것은 學校라면 當然할 일일 테다.

    筆者가 알기로는, 스타 셰프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7~8年 前의 일이다. 바로 에드워드 卷이 바람을 일으켰다. 當時 筆者는 서울 청담동 이탈리아 食堂에서 셰프로 일했다. 어느 날 雜誌를 보다가 印象的인 人物 인터뷰 記事를 읽었다. 美國에서 活動하다 中東으로 가서 俗稱 별이 일곱 個인 호텔의 首席廚房長이 된 立志傳的인 男子의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人物이 出衆했다.

    記者 出身인 筆者는 그의 人物 寫眞에서 받은 느낌으로, 곧바로 그가 스타가 될 것임을 豫感했다. 大衆이 좋아할 要素를 두루 갖췄기 때문이었다. 잘생겼지, 立志傳的인 成功 스토리를 가졌지, 막 뜨는 高級 西洋料理사지, 게다가 별이 일곱 個라니 말이다.

    餘談이지만, 호텔에 별이 일곱 個라는 건 多少 誇張된 마케팅이다. 法的인 拘束은 없지만, 호텔의 별은 다섯 個가 最高다. 별이 일곱 個라고 한 건 自負心을 表現하는 것일 텐데, 業界에서는 이런 것을 自激之心의 發露로 보기도 한다. 別 다섯 個란 單純히 施設로 完成되는 게 아니라 歷史와 傳統, 서비스의 格調 等이 組合돼야 받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最近 이탈리아 볼로냐를 訪問했는데, 다이애나妃가 묵은 호텔에 나도 묵을 機會가 있었다. 그 호텔의 별은 고작(?) 4個였다. 유럽 主要 都市의 最高級 호텔은 大部分 별이 4個다.

    에드워드 卷의 活躍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韓國에 스타 셰프 時代를 연 에드워드 卷.

    어쨌든 에드워드 卷은 날개를 달았다. 호텔을 그만두고 卽時 韓國으로 비즈니스를 하러 들어왔다. 한 有力紙는 그를 大門짝만하게 실어주었다(그 新聞은 나중에 그가 自身의 履歷을 一部 속였다는 記事를 실은 곳이기도 하다). 大衆 雜誌는 앞다퉈 그를 인터뷰했다. 完璧한 履歷과 容貌, 料理 實力이 포인트였다.

    當然히 電波 媒體도 달려들었다. 甚至於 드라마에도 出演했고, 온갖 娛樂프로그램度 그의 몫이었다. 한 케이블放送에는 主演으로 出演, 그 有名한 ‘고든 램지’ 式의 演技力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든 램지는 英國에서 製作된 ‘헬스키친’이라는 프로그램에서 料理師 志望生을 假借 없이 나무라고 侮辱을 주는 것으로 有名해진 英國의 스타 셰프다.

    그 프로그램에서 에드워드 卷의 캐릭터는 램지를 오마주韓 것처럼 보였다. 料理師 志望生을 무섭게 어르고 달래는 場面이 電波를 탔다. 그는 餘勢를 몰아 康男과 梨泰院, 한남동 等地에 高級 食堂을 여럿 열었다. 그에게 食堂을 같이 하자고 돈褓따리를 싸들고 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所聞도 들렸다. 어쨌든 스타 셰프의 時代는 그로부터 始作됐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1988年, 서울올림픽이 열렸다. 政府는 總力을 기울여 이 行事를 치렀다. 朴正熙 時代에 無窮花 다섯 個級 호텔이 몇 있었지만, 턱없이 모자랐다. 外國 資本도 끌어들여 많은 數의 호텔을 지었다. 當然히 高級 食堂도 들어섰다. 經濟에 돈이 돌았다. 江南에 富裕한 사람들이 出入할 수 있는 食堂이 연이어 생겼다. 청담동 時代의 開幕이었다. 當時를 記憶하는 人士는 이렇게 말했다.

    “食堂에 와인이 없어서 못 팔았다. 와인을 한 甁씩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으면 촌스러워 ‘가오(體面)’가 떨어지는 時代였다. 셰프가 없어서 칼만 쥐어도 자리에 앉혔다.”

    김대중 政府의 消費 振作策-카드 發給 最多 記錄 更新-等으로 청담동 競技는 가라앉을 줄 몰랐다. 料理師가 모자랐다. 正말 칼만 쥐어도 廚房長이었다. 普通 廚房長이 되는 데는 最少 10年의 歲月이 必要하다. 그런데 그럴 時間이 없었다. 高級 食堂은 雨後竹筍으로 생겼고, 料理師는 모자랐다. 3, 4年次가 廚房長이 되는 일이 許多했다. 中國料理가 膨脹하던 1970~80年代에 짜장면, 짬뽕에 糖水肉만 튀길 줄 알면 국자를 쥐고 廚房長이 되던 것과 恰似했다.

    그렇다보니 假짜 料理師도 亂舞했다. 신사동의 한 퓨전 食堂에 日本人이라는 셰프가 있었다. 韓國말은 語訥하게 하고, 日本語를 썼다. 當時 1億 가까운 年俸을 받았다. 그런데 그가 韓國人임이 밝혀졌다. 所得稅 申告를 하면서 住民登錄證을 낸 것이 禍根이었다. 只今은 거의 걸러졌지만, 假짜 履歷도 많았다. 世界的으로 有名한 프랑스, 이탈리아, 日本의 食堂에서 일했다는 履歷이었다. 甚至於 그곳에서 廚房長級으로 일했다는 履歷도 있었다. 勿論 말짱 거짓말이었다.

    陰地에서 陽地로

    大衆은 늘 새로운 스타를 渴求한다. 消費하고 난 스타는 버리고, 다른 스타를 찾는다. 그것이 大衆의 心理다. 大衆의 사랑을 永遠히 받는 일은 어렵다. 放送街에 ‘잘나갈 때 腰絶’이라는 말이 있다. 스타性을 끝없이 維持하는 方法을 自嘲的으로 表現한 것이다. 製作者들은 그래서 늘 새로운 스타를 供給하고자 한다.

    텔레비전에서 料理師가 登場한 것도 이런 흐름과 櫃를 같이한다. 過去 料理師는, 罪悚한 말씀이지만, 스스로 하고 싶어 料理師가 된 境遇가 드물었다. 大槪는 ‘먹여주고 재워주니’ 料理師가 됐다. 2層房에서 먹고 자며 煉炭불을 갈면서 料理를 배운 世代다. 그들에게 才致 있는 말솜씨와 번듯한 外貌를 期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새로운 世代의 料理師들은 自信感이 넘치고, 말솜씨도 좋다. 製作者들이 좋아할 要素를 갖춘 것이다.

    때마침 유럽과 日本은 셰프의 時代였다. 韓國에 아직 셰프 바람이 불기 前, 유럽과 美國은 푸드 프로그램이 넘쳐났다. 여러 프로그램에 料理師가 出演했다. 人氣도 높았다. 미슐랭 스타가 象徵하는 大衆的 人氣와 神祕感을 함께 누렸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料理를 배울 때, 한 料理師가 話題가 됐다. 大統領(普通 行政首班은 總理이지만 國家의 代表性은 大統領이 갖는다)의 晩餐에 그를 불렀는데, 아내의 解産 때문에 料理를 할 수 없다고 拒絶한 것이다. 미슐랭 별이 붙은 스타는 모두가 欽慕하는 對象이었다. 分子料理로 有名한 스페인의 미슐랭 別 셋 셰프 페란 아드리아는 ‘뉴욕타임스’ 飮食擔當記者가 자리를 付託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좋지, 뉴욕타임스니까 特別待遇를 해드리자고, 2年 後 보자고 말이야.”

    그의 食堂은 2年間 豫約이 꽉 차는 것으로 有名하다.

    韓國의 大衆媒體에 料理師가 登場해서 ‘웃기고 人氣를 끈’ 것은 아마도 ‘代價’라고 불리는 아무개 料理師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오랫동안 料理師들은 얼굴을 알 수 없는, 부엌 안에 있는 陰地의 人物이었다.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많은 스타 셰프를 輩出한 올리브TV.



    “여보, 이제 苦生 끝났어”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中國飮食의 達人으로 꼽히는 이연복 料理師.

    이제 料理師들은 陰地에서 陽地를 志向한다. 에드워드 卷이 有名해지기 前에 텔레비전에서 人氣를 끈 셰프가 있었다. 아무개 氏다. 그는 탤런트 최화정 氏가 進行하는 쇼(料理가 中心은 아니지만 一般 쇼에서 料理를 무게 있게 다룬 最初의 프로가 아닌가 싶다)에 出演해 人氣를 끌었다. 첫 放送을 한 날, 집에 가서 아내에게 했다는 말을 그의 입을 통해 直接 들었다.

    “여보, 이제 우리 苦生 끝났어!”

    그는 筆者의 親한 後輩이기도 하다. 얼마 前 幽明을 달리해서 많은 後輩를 가슴 아프게 했다. 어쨌든 그의 苦生은 끝나지 않았다. 그 열매를 따먹게 된 것은 後輩들이다. 마침 패션과 스타일을 다루던 CJ 系列의 올리브TV가 料理 專門放送을 宣言했다. 5年 前의 일이다. 當時 CP를 비롯한 多數의 프로듀서가 내게 諮問한 記憶이 난다. 料理專門放送이 먹힐 것인지 의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冒險은 成功했다. 그 放送을 통해 많은 스타가 輩出됐다. 只今 空中波에서 活動하는 料理師 大部分이 그 放送 出身이다. 그 이름 中에 이연복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나이 예순이 다 돼 스타 班列에 올랐다. 飮食 맛 좋기로 有名한 셰프이긴 했지만, 이렇게 人氣人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가 5年 前인가 올리브TV에 出演한 뒤 내게 술을 산다고 한 記憶이 난다. 100萬 員인가 하는 出演料를 받았다는 것이다. 空돈이 생긴 건 처음이라며 신나 했다.

    只今 그는 行事에 불려 가면 1000萬 원臺를 받고, 1億 원짜리 廣告를 찍는 人氣人이 됐다. 自身의 人生을 다룬 自敍傳 같은 冊도 出刊했다. 不過 4, 5年 前만 해도 想像도 못한 일이었다. 그를 만나러 가면, 늘 꾸깃꾸깃한 調理服 上衣에 기름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疲困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으로 나를 환하게 맞으며 짜장면을 볶고 饅頭를 튀겨주었다.

    그는 只今의 人氣를 實感치 못하겠다고 한다. 하도 오라는 데가 많아서 이제는 매니저를 雇用해야 할 판이라고 한다. 그의 食堂엔 電話만 받는 職員이 따로 있다.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그 食堂에 가보려고 電話를 걸어대니 늘 通話 中이다. 疲困한 職員이 어쩌다 무뚝뚝하게 電話를 받으면 또 非難이 빗발친다. 그래서 호텔처럼 따로 電話 받는 職員을 雇用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職員의 主 業務는 豫約이 아니라 豫約 拒絶이다. 두어 달 以上 밀려 있으니 願하는 날짜에 豫約을 해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豫約을 받기보다 拒絶하는 境遇가 더 많다는 말이다.

    이런 스타 셰프의 時代가 오래갈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料理가 世上의 話頭가 됐지만, 스타 셰프는 大衆媒體가 만들어낸 一種의 虛像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들의 飮食을 먹고 즐기고 消費하는 階層은 極少數다. 이런 狀況에서 一種의 비틀기와 諷刺가 나온다. 거리에서 ‘스타 셰프가 極讚 안 한 집’이라는 비틀기 廣告가 나오고, 길거리와 마트에서 파는 大衆飮食 材料를 가지고 스타 셰프처럼 멋 부려 차린 飮食 寫眞이 SNS에 나와서 웃음을 자아낸다.

    大衆은 언젠가 스타 셰프를 消費하는 것을 지겨워할 것이다. 大衆媒體 運營者들은 ‘포스트 셰프의 時代’를 準備하고 있을 게 틀림없다. 이제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아니라고? 한때 프로그램에 빠짐없이 나오던 食堂探訪이 造作說 等의 非難을 받으며 시들해져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疏外되는 料理師들

    조선작이 小說 ‘영자의 全盛時代’를 펴낸 것이 1973年이다. 只今은 셰프의 全盛時代다. 영자와 셰프 사이에는 聯關性이 없어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 不安하고 허술한 救助의 全盛時代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텔레비전에서 빛을 보며 人氣를 謳歌할 때 絶對 多數의 料理師는 고단한 勞動 現場에 있다. 料理師 職種에는 大體로 勞動組合도 없다. 아마도 組合 組織率이 가장 낮을 것이다. 一部 호텔에 所屬된 料理師나 組合員이다. 그나마 最近 入社한 境遇는 契約職 等으로 組合 加入率이 아주 낮다.

    料理師는 一般 會社員을 빼면 一般 勞動者 中에 數字가 가장 많다고 한다. 설마? 事實이다. 一般 食堂에서 일하는 多數의 ‘饌母’나 ‘姨母’ 等으로 불리는 女性 料理勞動者를 합치면 그런 比率이 나온다.

    零細하기로도 勞動者 中에 最高다. 5人 以下 業障이 大多數이며, 廢業率도 가장 높다. 食堂을 열어 1年 後 남아 있을 確率은 普通 30% 未滿이다. 5年까지 버티는 境遇는 10%도 안 된다. 最惡으로 치닫는 自營業 問題도 料理師와 關聯이 있다. 치킨 等의 業種에서 廚房을 맡은 이들이 모두 料理師인 셈이다. 零細하다보니 退職金을 못 받고, 賃金을 떼이는 일도 茶飯事다.

    실력? 예능감? 냄비는 끓고 있지만…
    박찬일

    料理師.

    2002年부터 淸潭洞 等地에서 일하며 셰프 時代의 胎動과 開幕을 지켜본 證人이기도 하다. 料理 칼럼니스트이자 作家로 ‘地中海 太陽의 料理師’ ‘追憶의 折半은 맛이다’ ‘뜨거운 한 입’ 等을 펴냈다.


    텔레비전을 틀면 料理師들이 나와서 料理를 하거나, 웃음꽃을 피우며 漫談을 한다. 그들을 凝視하며 陰地에서 닭을 튀기며 밥을 하는 多數의 勞動者 또한 그들과 같은 料理師다. 疏外는 이제 料理師 世界에서 우리가 直視해야 할 새로운 話頭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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