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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德性 檢證엔 ‘어물쩍’ 冷·溫湯 오가는 極端 言辭|新東亞

道德性 檢證엔 ‘어물쩍’ 冷·溫湯 오가는 極端 言辭

김무성 새누리당 代表 ‘의뭉 話法’

  • 허만섭 記者 | mshue@donga.com

    入力 2015-09-17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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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痲藥 服用’ 사위 關聯 말 바꾸기 論難
    • 疑惑 提起되면 말끝 흐려
    • 公式的인 자리에서 대놓고 半말
    • 感性的 語彙로 安定感 만들기도
    도덕성 검증엔 ‘어물쩍’ 냉·온탕 오가는 극단 언사
    政治行爲의 90%는 말로 이뤄진다. 執權與黨의 首長이자 次期 大選走者 1, 2位를 다투는 김무성 새누리당 代表의 話法과 言述을 取材했다. 그는 요즘 사위의 痲藥 服用 및 봐주기 搜査·判決 疑惑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는 가끔 이런 自身의 道德性 檢證과 關聯된 事案에 對해선 不明確하게 말하거나 沈默하는 傾向을 보인다.

    判決文 等에 따르면, 忠北地域 財力家의 아들이자 金 代表의 둘째 사위인 姨母(38·S社 代表) 氏는 2011年 12月부터 2014年 6月 25日쯤까지 知人으로부터 코카인, 필로폰, 엑스터시, 大麻草 等을 받아 15次例 直接 吸入하거나 注射器로 投藥했다. 그는 지난해 11月 檢察에 拘束됐다가 올 2月 7日 法院에서 懲役 3年에 執行猶豫 4年을 宣告받고 出所했다. 李氏와 金 代表의 次女 金某(31) S大 敎授는 8月 26日 結婚했다.

    이 事件을 처음 報道한 ‘東亞日報’는 數詞와 判決에 特惠가 있다는 疑惑을 提起했다. 法院은 懲役 4年~9年 6個月인 量刑 基準 下限線을 벗어나 執行猶豫를 宣告했고 檢察은 抗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카인 1回, 大麻草 2回 服用 嫌疑로 懲役 8個月을 宣告받은 事例’에 비하면 李氏에 對한 判決은 지나치게 寬大한 것으로 비쳤다. 俳優 金芙宣은 페이스북에 “亂 大麻草 한 番 吸煙했다는 知人의 陳述로 8個月 拘束. 强性痲藥 필로폰 코카인 엑스터시 常習 服用者들은? 法은 萬人에게 公平한가”라고 反問했다.

    “아직 新郞감 안 데려온 둘째딸”

    金 代表는 ‘미디어오늘’李 實名을 報道하자 9月 10日 記者懇談會를 열어 이렇게 解明했다.



    “내 딸이 사위하고 만나서 交際했는데 오래 交際한 것은 아니지만 結婚하기로 決定했다. 約婚式은 안 했지만 兩家 父母를 만나서 婚姻을 言約하는 過程을 다 거쳤다. 그렇게 해서 結婚 날짜가 定해졌다. 그때까지 우리는 全혀 몰랐다. (사위가) 일이 있어서 몇 달間 外國에 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模樣이라고 생각했다. 裁判이 끝나고 出所한 지 한 달 程度 지나서 이 內容을 알게 됐다. 그래서 ‘絶對 안 된다, 破婚이다’ 이야기하고 說得했다. 父母가 子息 못 이긴다. ‘사랑한다’고 울면서 ‘結婚 꼭 하겠다’고 하는데 方法이 없더라.”

    이어 金 代表는 “동아일보에서 마치 政治人의 姻戚이기 때문에 量刑을 弱하게 했다, 影響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分明히 잘못됐다. 요새 世上에 政治人 家族이라면 더 重刑을 때리지 도와주는 判事 본 적 있나?”라며 自身과 無關하다는 點을 强調했다.

    그런데 金 代表가 次女-사위와 關聯해 말 바꾸기로 誤解받을 수 있는 말을 했다는 論難이 提起된다. 金 代表는 3月 24日 自身의 地域區인 釜山 영도구 한국해양대 토크콘서트에서 “나는 仲媒結婚을 했다. 선을 보고 네 番 만나 結婚했다. 抑鬱해 죽겠다. 結婚은 戀愛結婚이 第一 幸福하다. 집에 갈 때 아직 新郞감도 데려오지 않은 둘째딸을 보면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했다. 大學生 聽衆은 이 말에 爆笑를 터뜨렸다.

    하지만 金 代表가 9月 10日 解明한 內容을 常識線에서 풀어보면, 그의 海洋大 토크콘서트 때 둘째딸과 사위는 이미 兩家 父母의 承諾下에 婚姻을 言約하고 結婚式 날짜까지 잡은 사이였다. 또한 3月 7日 經 金 代表가 사위의 痲藥 服用을 알고 (2月 7日 사위가 出所한지 한 달 程度 지나 알게 됐다는 게 金 代表의 解明) 結婚을 挽留했지만 둘째딸의 要求로 結婚이 그대로 推進되던 狀況이었다. 實際로 둘째딸과 사위는 6個月 뒤 結婚했다.

    “딸 婚事로 집안 뒤집혔는데…”

    이런 情況上 金 代表가 3月 24日 “아직 新郞감도 데려오지 않은 둘째딸을 보면 머리가 아프다”라고 한 것은 事實과 다르게 말한 것으로 誤解받을 수 있다. 與圈 關係者는 “講演 時點엔 둘째딸의 婚事 問題로 金 代表의 집안이 뒤집힌 것 같은데 金 代表가 講演會에서 왜 굳이 그런 말을 했는지 잘 理解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金 代表의 解明 內容에도 不透明한 구석이 많다. 그는 “그때까지 우리는 全혀 몰랐다. (사위가) 일이 있어서 몇 달間 外國에 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런 模樣이라고 생각했다”고 解明했다. 여기서 ‘우리’가 누구를 指稱하는지 不明確하다. 그의 解明 前後 脈絡을 봐도 ‘우리’에 그의 둘째딸이 包含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그의 둘째딸이 사위의 拘束을 언제 알았는지는 重要한 問題다. 사위는 2014年 11月 拘束됐다가 올 2月 7日 1審 宣告와 함께 釋放됐다. 두 달 넘게 收監된 셈이다. 金 代表의 解明을 常識線에서 解釋하자면, 그의 둘째딸은 拘束 以前부터 사위와 婚姻을 言約한 사이였고 出所 以後에도 사위를 變함없이 사랑해 結婚을 强行했다.

    말하자면 둘째딸과 사위는 結婚을 앞둔 戀人關係를 持續해온 것인데, 普通 이런 緊密한 關係에서 男子가 長期間 外國에 나가게 되면 男女는 對面을 못하는 代身 通話나 文字메시지, e메일 等을 자주 交換하기 마련이다. 한 移動通信社 關係者는 “79個國에서 데이터 로밍 서비스를 實施한다. 海外電話는 全 世界 어디에서든 可能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위가 矯導所에서 通話하면 海外 로밍으로 잡히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사위는 收監되면서 戀人 사이인 金 代表의 둘째딸에게 ‘몇 달 間 外國에 나가 있을 것’이라고 둘러대긴 어려워 보인다. 通話가 잘 안 되면 今方 들통 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情況上 金 代表의 둘째딸은 사위가 拘束된 直後부터 사위의 拘束 事實을 알았을 蓋然性이 있다.

    둘째딸은 언제 알았나?

    萬若 둘째딸이 알았다면, ‘아버지인 金 代表는 果然 몰랐을까’ 하는 疑問이 불거질 수 있다. 둘째딸은 ‘30代 成人’이고 ‘大學敎授’며 金 代表의 表現에 따르면 ‘아주 模範的인 똑똑한 딸’이므로 常識的으로 볼 때 男便 될 사람의 變故를 아버지에게 알리는 게 딸 된 道理이고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請해볼 수도 있다.

    一部 言論은 둘째딸과 사위가 美國 留學 時節 自己들끼리 알게 돼 戀愛한 것으로 報道했다. 그러나 金 代表는 解明 過程에서 “오래 交際한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했다.

    ‘채널A’는 自體 取材를 土臺로 “2014年 8月 둘째딸과 사위가 맞선으로 알게 됐다”고 報道했다.

    萬若 둘째딸이 線으로 사위를 만나 사귀다 사위의 拘束 直後 이 事實을 알게 된 것이라면, 선 자리로 自身을 이끈 父母에게도 알려주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法院은 사위에게 善處를 해준 事由로 家族關係, 搜査에 協助한 點 等을 들었다. 사위는 裁判받을 當時 30代 未婚男이어서 扶養해야 할 家族이 없는데 어떤 家族關係가 兄의 減輕에 適用됐는지 疑問이다. 搜査에 協助한 點과 關聯해, 檢察은 사위의 집에서 제3자의 DNA가 檢出된 注射器가 나왔음에도 이 注射器의 使用者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위가 檢察에서 陳述을 拒否했다고 한다. 法曹界 人士는 “事實이라면 사위가 搜査에 제대로 協助하지 않은 것으로 볼 餘地가 있다”고 말했다.

    金 代表는 解明에서 “요새 世上에 政治人 家族이라면 더 重刑을 때리지 도와주는 判事 본 적 있나?”라고 말했다. 그러나 金 代表의 이 말을 立證하는 客觀的 事例나 統計는 쉽게 發見되지 않는다. 오히려 ‘法曹界에선 아직도 有錢無罪 無錢有罪, 前官禮遇가 通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2014年 5月 大法官 出身 안대희 總理候補者가 高額 受任料 收受 論難으로 落馬한 事實은 이런 믿음을 뒷받침한다.

    沈默 或은 不分明

    도덕성 검증엔 ‘어물쩍’ 냉·온탕 오가는 극단 언사

    高壓的 態度와 말套로 자주 口舌에 오르는 김무성 代表.

    金 代表의 親姻戚과 關聯된 ‘봐주기 搜査’ 論難은 이番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初 檢察은 數億 원臺 校費를 橫領한 嫌疑로 金 代表의 누나인 김용문 용문學院 理事長을 罰金 2000萬 원에 略式 起訴했다. 正式 裁判에 回附하지 않은 까닭에 봐주기 論難이 일었다. 法院은 略式 起訴된 이 事件을 正式 裁判에 回附했고 檢察 求刑量보다 무거운 懲役 10月에 執行猶豫 2年을 宣告했다.

    金 代表는 9月 10日 黨 公式會議 直後 每番 實施하는 백그라운드 브리핑(非公式 브리핑)에 應하지 않겠다고 黨職者를 통해 밝혔다. 사위의 痲藥 前科가 報道된 날이어서 그가 이를 意識해 中斷한 것 아니냐는 疑問이 나왔다.

    金 代表로선 自身의 解明에도 疑惑이 가시지 않는 點이 抑鬱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저런 情況에 비춰보면 봐주기 搜査·裁判 疑惑이 提起될 만도 하다. 金 代表의 大學 講演 內容이 말 바꾸기 論難을 自招한 面도 있다. 金 代表는 앞으로 言論의 質問에 積極 答해야 하고 좀 더 具體的으로 說明해야 한다. 公益 次元에서 이 問題에 對해 徹底한 調査가 이뤄질 必要가 있다.

    金 代表는 自身에게 提起된 道德性 檢證에 對해 不透明하게 對答하거나 沈默하는 傾向聖徒 보였다. 總選市民連帶는 2004年 金武星 當時 議員을 落選運動 對象에 包含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文書를 돌렸다.

    ‘김무성: 96. 5. (週) 서울 T社 이○○ 會長으로부터 首都圈地域事業者로 選定되게 이석채 情通部 長官에게 請託해달라는 付託을 받고 같은 해 7月 末 現金 2000萬 원을 받은 嫌疑로 罰金 1000萬 원, 追徵 2000萬 원.’

    2014年 10月 記者는 이러한 斡旋受財 嫌疑에 對한 說明을 要請했으나 金 代表 側은 분명하게 答辯하지 않았다.

    金 代表는 2013年 8月 29日 새누리당 硏鑽會 자리에서의 女記者 性醜行 論難에 對해서도 質問을 받았지만 별다른 答을 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私席에서 朴槿惠 大統領을 두고 ‘가시나’라고 말했다는 說에 對해서도 質問을 받았지만 答하지 않았다.

    金 代表의 둘째딸이 S大 敎授에 採用된 것을 두고 特惠 論難이 일기도 했다. 金 代表 側은 이 問題에 對해서도 詳細히 說明하진 않은 듯하다. 그러나 ‘金 代表의 둘째딸이 2013年 敎授에 採用될 무렵 金 代表가 이 大學 姨母 總長이 國會 證人에서 빠지도록 努力했다’는 論難이 解消된 것은 아니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議員은 2014年 한 放送에서 “그분의 要請이 있었던 것은 事實”이라고 말했다. 劉 議員은 當時 記者에게도 “金 代表가 國監 前 敎文委院長室에 들어오는 것을 본 사람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當時 記者가 여러 次例 答辯을 促求하자 金 代表 側 關係者는 “(金 代表는) ‘이 總長이 國監 證人으로 採擇된 것 같은데, 私生活 問題로 부르려는 것 같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이런 式으로 교문委員長과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듣는 사람 處地에선 빼달라는 쪽으로 解釋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이어지는 質問에 “그렇게 解釋하면, 뭐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關係者는 “證人에서 빼달라고 한 事實이 없다”고 했다.

    多少 高壓的으로 비치는 點도 金 代表의 話法 特性이다. 金 代表는 記者들의 質問에 자주 半말로 對答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2014年 8月 20日 寬勳클럽 招請討論會에서 “記者들에게 왜 半말을 하느냐”는 質問을 받기도 했다.

    이에 對해 그는 “半말, 제가 잘 알고 있고 고치려고 努力한다. 慶尙道 말套고, 靑年 時節 浦項에서 宏壯히 거친 鐵鋼會社에서 工場長 生活 5年 해서 말이 거칠어졌다. (政治 入門 後) 記者들과 生活을 거의 같이 했고 親同生 같은 생각에 나온 것인데 듣기 싫다면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거만, 그 自體”

    그러나 그는 관훈클럽 討論會 以後에도 記者들에게 半말을 繼續 했다. 私席에서 半말하는 것이야 別問題 될 일이 없지만, 그는 TV카메라가 撮影하는 가운데 걸어가면서 記者와 묻고 答하는 狀況에서 半말을 한다. 그의 半말이 고스란히 視聽者에게 傳達되는 境遇가 잦다.

    7月 10日 유승민 院內代表 辭退 後 한 女記者가 “只今 黨이 좀 어수선하니까…”라고 묻자 그는 “뭐가 어수선하노. 다 整理됐는데”라고 答했다. 이 映像에 對해 네티즌들은 “웃으면서 半말하는 게 아니네” “거만 그 自體, 半말도 氣分 나쁜 半말” “文化衝擊입니다” 같은 反應을 보였다. 다음은 그와 다른 한 記者가 걸으면서 나눈 또 다른 對話 映像內容이다.

    ▼ 釜山 書面 遊說에서 南北頂上會談 이야기를 鬱憤에 차서 하셨잖습니까.

    “응. 했지.”

    ▼ 그 內容이 國精院 발췌록과 宏壯히 恰似하다는 거죠.

    “뭐, 恰似할 수도 있지.”

    ▼ 네네. 그럼 國精院 발췌록 보셨단 말씀입니까.

    “아니, 발췌록을…왜 자꾸 그렇게 誘導質問을 하나?”

    金 代表의 處地에서 不便할 수 있는 質問이긴 하지만, 그는 이 質問에 半말로 對答하면서 거기에다 威壓的 雰圍氣까지 얹는다.

    네티즌들은 金 代表의 半말 應對를 이렇게도 評價한다.

    “社會에서도 혼자 親한 척하면서 相對에게 말 놓는 사람들 보기 안 좋다. 儼然히 公的으로 取材 나온 記者들이고 카메라까지 돌아가는데 말 놓는다는 건 그만큼 人間을 어떤 視角으로 보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 돌아가는데 자연스럽게 半말하던데. 그거 좀 거슬림. 가뜩이나 運動選手처럼 크시고 목소리도 中低音에 若干 高壓的으로 보이審. 記者 떠나서 그 사람들도 다 똑똑하고 國民이면서 有權者 아닙니까?”

    保守 + 中道 + 進步

    金 代表는 議員이나 高位公職者에게도 가끔 半말을 했다. 유승민 院內代表 辭退 波動 때인 7月 2日 새누리당 最高委員會議에서 金 代表는 김태호 最高委員이 말을 繼續 이어가려 하자 “그만해. 그만해”라며 말을 끊었고, 金 最高委員이 抗議하자 “會議 끝내겠습니다”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金 代表는 2013年 8月 29日 새누리당 硏鑽會 자리에서 다른 議員들에게 “꼬붕”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北韓 砲擊 事件 때인 8月 20日 金 代表는 國防部 國會連絡官 박문식 准將에게 “只今 漣川 隣近 住民들은 防空壕로 待避한 狀況이냐”라고 물었고 朴 准將은 “거기까지는 아직 把握을 못했다”고 答했다. 그러자 金 代表는 “그런 것도 모르고 무슨 報告를 하러 와! 내가 아는 걸 當身이 왜 몰라?”라고 半말로 호통쳤다.

    한 與圈 人士는 金 代表의 이런 말 習慣에 對해 “問題가 많다”며 이렇게 說明했다.

    “國會 出入記者가 1000名 안팎에 이르고 言論社마다 6個月~1年 單位로 出入處 移動이 發生한다. 與黨 代表가 어떻게 그 많은 記者와 親同生 같은 親分을 維持하나. 大多數 記者는 實際로 잘 모른다고 봐야지. 親同生 같은 생각에서 反말한다는 解明은 말이 안 된다. 뉴스, 藝能, 敎養 等 TV 프로그램에서 大部分의 出演者는 半말을 하지 않는다. 金 代表가 記者에게 半말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는 視聽者는 金 代表가 마치 自身에게 半말하는 것 같은 不快感을 갖기 쉽다. 2000年代 以後 매스컴에다 半말을 日常的으로 하는 大選走者는 金 代表 外엔 거의 못 봤다. ‘財力家 出身의 傲慢함’ ‘素養 不足’으로 誤解받기 쉽다.”

    金 代表의 言述은 ‘進步와 和解하는 中道的 性向’과 ‘保守的 性向’을 오간다는 評을 듣기도 한다.

    그는 5月 盧武鉉 前 大統領 追悼式에 參席해 “盧 前 大統領을 많이 批判했지만, 과(過)는 그만 따지고 공(功)을 높이 評價해 國民統合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5月 18日 5·18 光州民主化運動 記念式에선 ‘임을 위한 行進曲’을 불렀다. 前夜祭에서 물洗禮를 받자 “國民統合을 爲해서라면 물洗禮를 當할 覺悟가 돼 있다”고 했다. 그는 統進黨 오병윤 前 議員 善處 歎願書에 署名하기도 했다.

    그러나 以後 그의 發言은 保守로 ‘튜닝’된다. 그는 勞動改革과 關聯해 “大企業 强性 勞組가 쇠파이프로 公權力을 두들겨 팼다” “그런 不法行爲가 없었다면 우리나라가 國民所得 3萬 달러 水準을 넘었을 것” “디트로이트의 悲劇이 再現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進步左派의 蠢動으로 인해 大韓民國의 未來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우리는 中國보다 美國이라는 確實한 메시지를 傳達할 것” 같은 右派 强性 發言을 쏟아냈다.

    感性的 表現과 ‘柔軟性’

    다른 한便으로 金 代表는 感性的 表現도 잘 驅使한다. 그의 半말이나 버럭 火를 내는 習慣을 이런 次元에서 좋게 보는 사람도 많다. 金 代表는 사위의 痲藥 前科와 봐주기 搜査·判決 論難을 ‘딸 바보’ ‘딸 固執 못 꺾는 否定’을 聯想시키는 感性的 語彙로 잘 타 넘었다는 評을 듣는다. 院內代表에서 물러난 유승민 議員에겐 “辭退 못 말려 未安하다”는 말을 건넸다. 듣는 사람으로선 眞心이 傳達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는 가끔 “對等한 黨·청 關係” “二元執政府制 改憲”을 말하며 朴 大統領과 對立角을 세운다. 同時에 政府가 盧·사·政 合意를 이루자 “歷史에 한 劃을 그은 大妥協”이라고 치켜세운다. 이런 ‘悠然함’ 德에 그는 유승민 議員처럼 朴 大統領과 破局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未來權力’으로서의 安定感을 만들어낸다는 評價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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